중공군의 괴상한 대전차 전술 - 전차포 포구 쏘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10.25 08:41



 미 해병들이 유담리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 길은 덕동고개를 넘어 하갈우리로 통한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사진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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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6·25전쟁 참전군대에서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제일 머리를 많이 
굴린 군대가 중공군일 것이다.



원체가 믿을 것은 숫자 뿐이었고 맞선
부대는 화력 세계 최강인 미군이었다.


그러니 중공군은 그 격차를 줄이고자 잔머리 수준의
창의력을 무수히 시도했었다.

매복 기습이나 인해 전술, 한국군 선별 공격, 갱도 전술,
등은 중공군의 쉬지 않은 머리 쓰기의 결과물들이다.


이중에서도 전차도 대 전차 화기도 없이 미군 기갑 부대에
맞서는 수단 부재의 일선 보병 중공군들을 상대로 교육시킨
대전차 공격 수단이 상당히 특이 하다못해 괴상하다.

즉 적 전차와 맞붙으면 적 전차가 포탄 발사 후
즉시 전차 포신 내부에 화력을 퍼 부어 넣으라는 것이다.


M 26 퍼싱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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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은 중공군 소부대 지휘관들이 포탄을 발사하면
전차포 폐쇄기가
자동적으로 낙하 개방되며 탄피를 뒤로
배출하고 그런 상태로 다음
포탄 장진까지 열린 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폐쇄기는 그냥 아래로 열린 채 있다가 포탄을 장전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위로 튀어 붙으면서 포미를
폐쇄 장전을 완료한다.


그러니 포탄 발사 직후에서 다음 탄을 장전할 때까지의
짧은 시간에
포신 속에 사격을 해대면 탄약수를 명중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M-26 퍼싱 전차의 90mm 포탄 적재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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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에서 이 괴상한 대전차 공격술이
실제로
미군 전차를 상대로 실행되었다.


배경 설명이 잠깐 필요할 듯하다.

1950년 11월 해병 1 사단은 서북지방에서 북진하는 미 8군과
연결하기 위해서 함흥평야에서 고원인 장진호 지역으로 들어섰다.

입구인 수동에서 중공군을 박살 낸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이미 소개했었다.


미 해병 1 사단의 진격로와 퇴각로 - 장진호 바로 아래
영국 해병대가 호되게 당한 Hellfire valley와
도착 예정지인 하갈우리와 출발지인 고토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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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위협이 현실화 되었을 때 장진호 진격 해병 1사단은
사단 전 병력이 좁은 산길에 뱀처럼 길게 배치된 취약한
상황에 있었다.


맨 뒤 고토리에 과달카날에서 맹렬한 전투 지휘로 유명했던
루이스
‘체스티’ 풀러 대령이 지휘하는 해병 11연대가
후속하고 있었다


장진호반에서 고토리로 철수하는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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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 장진호 남단 넓은 개활지인 하갈우리에
스미스 소장이 지휘하는 해병 1사단 본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좁은 협궤의 철로 종착역이다.

거기서부터 위로 올라가 강을 가로 막아 만든 긴 바늘 귀 같은
장진호가 있는데 장진호 좌안에 해병들 주력인
5연대와 7연대가
진격해 있었다.
리첸버그 대령이 통합 지휘를 했었다.


그리고 호수 건넌 장진호 우안 신흥리에는 미 육군 31연대
전투단이
전진해 있었다.

증강된 해병 1 사단을 공격하는 중공군 9병단 병력은
6만 명이나 되었다.

병단은 장진호에 들어온 긴 장사진의 해병 행렬을 따라 병력을
긴 포위망 형식으로 배치했다.


병단장 송 시륜[宋 時倫]은 유담리와 신훙리로 깊숙이 들어온
선두의 두 개 해병 연대와
우측의 육군 연대를 먼저 격멸하기로
하고  11월 27일 주력을 이곳에
집중해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신홍리 쪽 장진호 우안의 육군은 궤멸 되었지만
해병
두 개 연대는 중공군을 격퇴하고 하갈우리로 탈출해나갈
출구인 덕동 고개도 방어해 냈다.


비로소 해병대 사단 본부와 외부와 연결된 비상 활주로를
가지고 있는
하갈우리를 점령해서 해병들을 두 토막 내는 것이
옳다는 정보 판단을 한
송 시륜은 미약한 병력이 지키는
하갈우리를
전력을 다해 11월 28일 밤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갈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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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북쪽 유담리의 두 개 연대가 철수해서 하갈우리의
부대와
연계하기 전의 위급한 순간이었다.


스미스 장군은 후방 고토리의 11연대에 신속한 증원을 요청했다.
증원군은 중공군이 장악하고 있는 산길을 16킬로나 통과해야
했다.

연대장 풀러 대령은 마침 전날 밤 후방으로부터 달려온
영국 해병대 병력을
주력으로 해병과 육군 병력으로서
병력 850명과 트럭 150여량,
그리고 탱크 1개 중대를
증원 부대를 구성, 11월 29일 아침 6시 30분에
고토리를
출발시켰다.


이 구원 특임 부대 이름은 영국 해병 지휘관 드리스데일 중령의
이름을 따서 드리스데일 부대라 임시 명명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이 증원군 파견을 이미 예상하고
하갈우리와 고토리 중간의 좁은 산길 좌우 산악에 대 병력을
새까맣게 깔아 놓고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공군은 산길에 들어선 이 부대 선두의 트럭 한대를 격파시켜서
길을 막아 놓고 토막 난 부대를 낮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파상 공격을 했다.

다음날 몇 량의 전차를 중심으로 해서 소수의 병력이
살아 남아
하갈우리로 사단본부로 들어갔으나 대부분의 부대는
이 지옥의 화염[Hellfire Valley]계곡 전투에서 섬멸되었다.


850명의 출발 인원 중 162명이 전사내지 실종되었고
절반이 넘는 450명이
포로가 되었다.


유담리의 해병 전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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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꾸로 방향을 돌려 고토리로 철수하다가
공격당한 부대도 있었다.

1 해병사단의 1전차 대대 B 중대였다.
장비는 M-26 퍼싱 탱크였다.


이미 출발한 드레스데일 특임 부대가 당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후방 고토리의
연대장 풀러 대령은 고토리
방어를 위해서 잔류했던
B중대의 2개 소대를 드레스데일
부대 구원을 위해 파견했다.


다른 앞 부대의 잔류 전차까지 합쳐서 12량의 퍼싱 전차와
이를 후속하는 20여량의 구난차, 유조차등등의 트럭들로
구성 된 긴급 구조 부대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는 오후
5시쯤 고토리를 출발했다.


하갈우리로 통하는 협궤 철도를 따라 철수하는 해병
-전방의 F4U 콜세어기가 투하하는 네이팜 공격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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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대에 중대장 윌리암 대위가 동행했었다.

이들이 8키로 쯤 가자 산산조각이 나서 길을 꽉 막고 있는
드레스데일
부대의 파괴 차량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


이런 상황에서 작전 임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중대장은
고토리로의 후퇴를 결심했다.

부대는 180도로 방향을 바꾸어 고토리로 향했다.

행군 방향이 거꾸로 되어 뒤에서 후속하던
트럭들이 이번에는 선두가 되었다.


중공군은 이 트럭들을 먼저 공격해서 역시
철수 부대의 후퇴
진행도 틀어막았다.
전차 부대는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9병단장 송 시륜 -대장정때 연대장을
했던 노병이었다.

모택동의 긴급지시로 11월 16일 장진호 주변에 전개를 끝낸
그는 11월 2일 장진호 입구 수동에서 해병들에게
섬멸당한 휘하 124 사단의 복수를 하겠다고 무리한 작전을 벌여
수만명의 중공군을 동장군의 먹이로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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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들은 어둠이 오는 속에서 방어진을 치고
밤새 벌떼처럼 몰려와서 공격하는 중공군들과 격전을 치렀다.


전차병들은 전차 위에까지 쇄도하는 중공군들을 상대로
혈투를 벌였다.


중공군들이 사격 후 즉각 전차 포구에 사격을 하는
대전차 전술을
구사한 것은 전투 초기였던 초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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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방어진을 친 곳은 하우갈리와 흥남을
연결하는 협궤도
철도 옆이었다.

철도는 도로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있었다.
중공군이 포탄 발사 후 포구에 마구 사격을 해대는 대전차
전술을 구사했던 것을 전투 참가자 전차장 댄 베닛 하사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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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 속에서 수많은 중공군이 철도 건너에 집결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도와 우리 도로 사이에 농수로인 도랑이 있었다.이곳에도
중공군들이 잠복해있었다.


나는 포수 유진 멕과이어 병장에게 90mm 포신을 도로 아래로
지향하도록 내리고 철도변의 중공군에게 한방 먹이도록 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속에서 조준이 잘 안되어서 첫 발은
철도를
건너 건너편 산 사면을 후려쳤다.


나는 포수에게 조준을 더 낮추라고 지시했다.
조준 수정 후 두 번째 탄은 철로를 명중시켰다.

우리는 두 서 너 발을 계속 철로 옆에 흐르는 도랑에
숨은
중공군에게 날렸다.


계속 사격을 하며 전투 하고 있는 중에 믿을 수없는 일이 터졌다.
탄약수가 고폭탄 한 발을 약실에 장탄했는데 더 이상
들어가지도 않았고
다시 빼내려고 해도 빠지지를 않았다.

바로 어정쩡한 위치에서 포탄이 정지해버린 것이다.

탄약수 존 리렛 병장이 쩔쩔매자 베닛 하사가
폐쇄기 뒤에서 군화발로 포탄을 힘껏 내질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폐쇄기는 그대로 열린 채였다.



이런 포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베닛은
동료 전차의 승무원들을 구출해내는 전우애를
발휘해냈다.


중공군이 베닛의 앞 전차에 불을 지르자 전차장
스웨린거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탈춯해서 후방
수십 미터 뒤에 있던
베닛의 전차 밑으로 탈출했다.


전차 후미의 보병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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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중공군들은 전차를 맴돌며
치명타를 안길
기회를 노렸다.

탈출한 전차장 스웨린거가 베닛 전차 뒤에 장착된 보병 전화를 통해
구출을 요청하자 베닛은 전방 사수석 밑의 비상 탈출 해치를
열고 네 명의 차밑 은신 전차병들을
전차내로 구조해냈다.


장진호 전투에서 M-26전차뿐만 아니라 M4A3
전차도 많이 참전했었다. 하갈우리에서 진차창에
빠진 셔만 전차 구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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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상탈출 해치를 다시 주워 올려
재부착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해치는 꼭 맨홀 뚜껑같이 생겼다.]


중공군 한명이 전차 위로 뛰어 올라와 탄약수 잠망
경을
권총으로 쏘고 전차 안에 사격을 가할 틈새를
찾았다.


중공군이 공축 기관총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9명이
승차한
포탑 안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라서 이를 쏘지 못했다.


베닛의 전차는 급 발진과 급 정지의 과격한 기동으로
전차 위의 중공군을  떨어뜨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전방 사수석 밑 비상 탈출구는 밤새 열려 있었다.

중공군들은 야간 전투 내내 베닛의 전차 밑이
해치가 없어
뻥 뚫려 있던 것을 몰랐었다.


만약 알았었다면 중공군의 수류탄 한발에 전차는
끝장이 났을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계속 되었으나 전차 부대가 잘 방어 해냈고
새벽이 되자 중공군은 썰물처럼 물러갔다.

[증원 부대가 박살났음에도 하갈우리의 해병들은
 적 공격을 잘 싸워서 유담리의 해병이 철수했던
 12월 3일까지 사수해냈다.]

베닛은 중공군이 불을 질렀던 전차를 견인해서
다시 고토리로 돌아왔다.


그 전차의 후부 엔진실과 배기구 근처에 중공군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으나 엔진의 전기 계통만 화재로 손상 되었을 뿐
피해는
별로 크지 않았다.


고토리에서 도착했던 베닛 하사는 싣고 온 부상병을 내려놓고
전투 초기에 약실을 틀어막고 꼼짝도 안하던 의혹의 90mm 탄을
제거해서 조사해 보기로 했다.


포신을 아래로 내리고 승무원 다섯 명이 달라붙어
포 꽂일 대로 밀어봤지만 포탄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갈우리의 비상 활주로에서 긴급후송되는 부상병
스미스 소장이 건설한 비상 비행장은 해병들의
성공적인 탈출에 지대한 굥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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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른 전차 포 꽂일 대를 빌려다가 연장 연결하여
이십여 명의 전 소대원이 이 긴 포 꽂일 대를 밀어대자
그 제야 포탄이 겨우 폐쇄기 밖으로 빠져 나왔다.


이상했던 포탄을 검사해보자 탄체에 박힌 두어 발의
중공군
따발총 실탄이 발견되었다.

장진중의 포탄이 요지부동을 했단 것은 두 가지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중공군이 발사한 실탄이 박히자 그 용량만큼 탄체가
팽창하여 포강 표면에 과도 밀착해버렸을 가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중공군 실탄이 탄두와 포강내 표면사이에
들어 밖혀 단단한 쇄기 역할을 했던 것이리라.


간이 덜컹해진 베닛이 더 살펴보자 포신 안에서
두 세 발의 중공군의
실탄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M-26 전차 증공군이 노힉한 로케트 포에 당한
관통 부위가 포탑에 보인다.
차체 앞에 장착한 것은 비상탈출 해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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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들은 그 아슬아슬 했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간밤에 중공군들은 전차에 쇄도하여 전차 격파를
시도했었다.


어떤 중공군이 전차포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포탄이 발사되자말자 낮게 내린 포구에 따발총을
들이대고 발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베닛의 포수가 90mm 포탄 장전이 1초만 늦었어도
중공군이 난사한 따발 총탄이 열린 폐쇄기를 통과해서
포탑 안을 휘저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운이 더 나빴다면 폐쇄기 뒤의 탄약수는 명중되었을 것이고
포탑 안에 마구 난비하는 실탄이 전차장이나 포수에게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정 떨어진 베닛을 그 손상된 포탄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나와서 고토리 옆을 흐르는
개천에 버렸다.


만약 따발총이 아닌 기관총의 예광탄이 포구 속에 발사되었더라면
90mm 포탄은 즉시 폭발해서 승무원들을 죽이고 적재 포탄의
유폭[誘爆]으로 전차는 대폭발을 했음이 틀림없다.



후에 베닛은 중공군 보병들이 전차에 육박 공격을 할 때
전차가 포탄을 발사 후 폐쇄기가 열려있는 짧은
순간에 포구에 실탄을 쏴 넣으면 포탑안의 전차병들을
살상시킬 수 있다는 대전차 공격 방법을 교육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닛은 몇 십 년 뒤에도 진저리를 치며 회상했다.

“ 우리가 살아 남을 수있었던 이유는  우리 탄약수가
   조금 더 빨랐든가, 중공군이 조금 더
늦었던가 -- 아니면
   양쪽 다던가---
하여튼 우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빈약한 전투 자산에 막강한 미군 화력 앞에 내세울 것은
인명[人命]밖에 없었던 중공군이 머리를 쥐어짜서 만들어낸
고육지계[苦肉之計]가 이 지경까지도 갔던 것이다.


[나쁜 뜻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중 국군이
 얼른 배워서 거꾸로 중공군에게 써 먹은 기발한 전술도 있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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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90 mm 전차포에 관통당한 북 T-34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30 19:15

 

1950년 한국 전선에 동원이 결정된 미 해병대 1사단 완전 편성이

어렵자 일단 2개 연대만으로 여단을 급조하여 한국으로 파견했다.


여단에 배속된 해병 1사단 소속 1전차 대대 A중대는  

8월 초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낙동강 교두보의 미군들이

서쪽 측방의 적 위협 제거 작전에 참가하여 큰 역할을 했다.



1950년 8월 3일 창원역에 도착한 미 해병 1 전차대대 A중대.
미국 출발전 M-26전차를 수령했었고 시험 발사는 단 두 발만했었다.
전차대는 이 창원역 구내에서야 겨우 틈을 얻어 90mm
포의 영점 사격을 할 수있었다.
이 사실은 해병들이 얼마나 급하게  한국 전선으로
출동했는지를 알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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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습적으로 낙동강을 도강하여 미 전선으로 파고 든

북한군을 구축하기 위해서 낙동강 남안으로 급거 이동하였다. 


북한군은 미 공군의 거센 폭격에도 불구하고 몰래

밤마다 은밀하게 낙동강에 수침교[水沈橋]를 건설했다.


1950년 8월 6일 야간.

이 다리 위로 북한군 정예 4사단과 서울 점령의 선두에 섰던

105전차 사단의 병력과 전차들이 도강했다. 


이들은 1950년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완수하려는 광기로서 병사가 죽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저돌(猪突)공격을 해왔다.


천혜의 낙동강 벙어선이 뚫린 미군은 사력을 다해

이들 침투부대의 격멸에 나섰고 이에 해병들이 참가

한 것이다..


8월 15일 낙동강 남안 오봉리 능선을 점령하라는 명에 따라

해병들은 공격에 나섰다.


이 오봉리 격전장에서 활약한 전차 소대는 A 중대3 소대였다.

소대장은 스위트 중위, 그는 1942년 군에 입대하여

괌섬 상륙작전과 이오지마 상륙작전의 실전을 경험한

노련한 고참 군인이었다.


뒤의 높은 산 전면의 낮은 산맥이 오봉리 능선.
적 전차들은 앞 도로를 따라 공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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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대는 오봉리를 공격하는 진격하는 해병의 머리위로

무수한 포탄을 날려 보내 능선의 북한군을 격멸했다.

전차 소대가 날려 보낸 적 76미리 사단포만도 12문이었고

기관총 진지는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었다.


소련제 76mm 사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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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과 연료 소모도 극심해 전차들은 수시로 후방 1마일 지점에

설치한 이동 정비소 및 보급소로 돌아와 포탄을 적재해야만 했다.

미 해병들의 분전으로 오봉리 능선의 일각을 점령했으나

예상되는 적 반격에 대비할 예비대가 없었다.

할 수없이 철수한 해병들은 다음 날도 적과 대치했다.


그 전투일 8월 17일 밤 20;00

적 전차 부대가 선도하는 보병들이 도로를 따라 공격해 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전차 소대와 해병들은 급히 영격할 기동을 했다.


이 전투에서  해병 전차 소대는 적 T-34와 격돌했다.

이 전차전에서 아주 드문 전과가 있었다.

해병 M-26 전차가 발사한 신형 90mm 철갑탄이 소련제

T-34를 관통해 버린 것이다.


90mm 포탄이 T-34 우측 전방 기관총 아래에 구멍을 
만들고 대각선으로 차체를 통과했다.
다른 한 발은 조종석 전방 아래를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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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중위가 지휘하는 해병 전차 소대는 오봉리 능선과

126 OP 고지 사이의 좁은  고개를 장악하고 소대 전차 4량이

횡으로 전개되었다.


고개의 좌측에 플러튼[A-34]의 전차가, 중앙에 스위니크

전차[A-33]가 우측에, 그리고 이들 3량의 전차 후방에

소대장 스위트 중위의 지휘 전차가 자리 잡았다.


소대는 5량의 전차 편성인데 스위트 소대의

닉 프라이어 전차가 고저각 조작이 되지 않았다.

그 전차는 열외로 시키고 투입되지 않았다.

 

적 전차 4량의 선투 전차는 어둠을 뚫고 출격한 공군기의

로케트 공격에 파괴되어 버렸지만 나머지 3량은

계속 전진해 왔다.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들은 미군 방어선의 측면을 성공적으로

기습했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어둠 속에 잠복하고 있던 소대장 스위트 중위는 적 전차가

사거리 내에 들어오자 전방의 플러튼 하사에게 말했다.

“고속 철갑탄[HVAP]을 쏴라 !”


이 신형탄은 탄두심이 텅스텐과 카바이드로 되어 있고

탄속이 M-16탄보다도 더 빠른 3,350 ft/초나 되어

관통력이 기존 철갑탄보다 훨씬 우수했다.

이미 낙동강 서부의 고성 부근 전투에서 적 T-34전차를

깨끗이 뚫어 버린 전과를 올렸었다.


그러나 명령을 받은 플러튼이 신형탄을 장전하기도 전에

고개 밑 125 고지 아래쪽에 배치된 육군의 3.5 로케트 포 사수가

지근거리에서 적 전차에게 일탄을 발사했다.


로케트 탄은 적 T-34 전차 궤도를 파괴하고 전차 후미에 장착된

연료 탱크에 화재를 일으켰다.

그러나 T-34는 그런 상태로 계속 달려왔다.


그 전차가 100야드의 거리에 들어오자 플러튼은

포수 스탠리 타노우스키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타노우스키는 90mm 신형 탄 세 발을 연속해서 발사했다.

 

타노우스키는 명 사수였었고 사거리도 100야드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세발을 연속 발사했으니 불명중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적 T-34에는 아무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플러튼은 세 발 모두 빗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는 포수 타노우스키에게 벌컥 화를 냈다.

“이 멍청아! 안 맞았잖아!”


그러나 타노우스키 하사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항의했다.

“절대 명중 시켰습니다!”


나중에야 타노우스키가 발사한 신형 철갑탄이 T-34

전방 사수 전면을 뚫고 포탑내로 들어가 대각선으로

관통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적 85mm 포탄을 유폭시키지 못해 차내 폭발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속 철갑탄은 적 승무원을 살상하고 포탑 뒷 부분을
뚫고
엔진의 절반쯤을 부수고 다시 관통해서 오봉리 능선의
사면을
때렸다.


근처의 해병들은 전차들이 자신들을 오포격 하고 생각해서

전차에 사격중지 요청을 하려고 까지 하였다.

믿을 수 없는 관통력이었다.


T-34 전방 기관총,- 위가 관측구,아래가 총신이 나온 총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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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전차 차례였다.

그 전차도 90 mm 탄 사격에 간단히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적 행군 순서 네 번째 전차가 정지해서 좁은 계곡 건너
OP 고지의
해병들에게 사격을 해댔다.


스위트 소대의 전차 한 대가 더 잘 보이는 길 복판으로

이동하여 시야를 확보하고 이 전차에 포격을 가했다.


이 전차는 적 네 번째 전차에게 무려 6 발이나

퍼부었다.

전차에 화재가 발생했다.


첫 탄 명중 순간 승무원들이 전차에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해병 전차들이 가한 우박 같은 기관총 소사(掃射)에 모두

다시 전차로 기어 들어가 전차와 운명을 같이 했다.


세 번째 전차도 올라오는 고개 중간에서 90mm탄을 무려

여섯 발을 두들겨 맞고 폭발했다.

공격해오던 전차들은 모두 격파되었다.


후속하던 보병들은 A중대 2소대의 105mm 곡사포를 장비한

셔만 탱크들에게 기총 소사를 받고 모두 섬멸되었다.

오봉리 능선은 다음날 해병들에게 점령당했다.


8월 18일 밤에 이들은 다시 공격을 해왔지만 엄청난

손실만 입고 격퇴 되었다.


낙동강을 건너 공격해왔던 적 4사단과 105전차 사단은

대부분의 전력을 상실하고 무질서하게 낙동강을 건너

도주했다. 완전 패잔병의 패주 그것이었다.


적 전차를 관통 사격한 세실 플러튼 하사의 M-26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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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들의 두꺼운 장갑 속에 숨으면 모두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절대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서울 수복 당시에도 서울 시내로 진입한 M 26은 적 14.5mm
대전차
총에 관통당하여 총탄이 포탑 내부에 박히기도 했었고


후에 서부 전선에서 적이 발사한 122mm 포탄이 M-26 전차의
포수 잠망경을
내부로 때려넣어 포수의 두부를 타격, 전사하게 했다.


6.25전중 미 육군과 해병대의 M-26 전차가 발사한 90mm

고폭탄이 적 T-34 탱크를 파괴한 사례가 보고 되기도

했었다.

고폭탄이라는 철갑의 관통용이 아니라 인마 살상용인데도

사격의 상황에 따라 T-34 포탑이 파괴되기도 했다.


미 기갑 부대의 일부 연구 부서에서는 의외의 T-34 파괴가 소련의

열등한 금속 공학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었다.


이날 밤 고개에서 파괴 된 T-34 전차를 밀어내서
기동로를 확보하는 미 M4A3 도저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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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전선에서 대활약을 한 해병 전차 부대의 스위트 중위

소대는 한 달 뒤 9월 15일 인천 월미도 상륙작전에서 

월미도를 점령하는 주역을 하게 된다.


위에서 소개했던 일화의 주인공 세실 플러튼 [하사-SSG]는
월미도
육교의 인천 쪽에 나타난 북한 장갑차를 한 발로
날려 버리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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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SDAP 2010.08.03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싱 전차 강하죠...

    제2차세계대전때는 활약못하고 6.25떄 T-34 잡은...

  2. orbitz promo code 2012.05.25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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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수호신 M26 '퍼싱' 중전차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18 09:25

 


  개전 초 북한군의 주력전차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950년 8월 5일, 북한군은 반드시 부산까지 진격할 목적으로 8월 공세를 감행합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군 및 미군은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8월 17일, 공세 개시 12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진격 중이던 북한군의 T-34/85 3대는 2대의 거대 전차와 마주치게 됩니다. 

  북한군 전차병들은 개전 이후 최초로 한국으로 투입된 미군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에게 일방적인 K.O 승을 거두었던 전례가 있어 이 전차 역시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개전 이후 미군이 급히 한국으로 투입한 최초의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는 공격력, 방어력에서 T-34/85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전차를 무찌른 퍼싱, 북진의 선봉에 서다!



   M24 "채피"가 T-34/85에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자 미군은 급히 M26 "퍼싱" 중전차를 한반도로 투입합니다. 강력한 90mm M3 전차포와 최대 102mm 두께의 장갑을 두른 M26 “퍼싱” 중전차의 한반도 투입은 아군에게는 희망을, 적에게는 “공포의 사신”이 출현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북한군의 주력전차인 T-34/85는 성능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차량이었지만 퍼싱보다는 떨어지는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T-34/85가 빨랐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은 퍼싱이 우세했거든요.


 

  M26 "퍼싱" 중전차는 M3 90mm 전차포와 102mm에 달하는 장갑을 보유하고 있어 T-34/85를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차병들의 훈련 수준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다양한 전술 개발과 실전경험을 기반으로 한 미군이 북한군을 압도했습니다. 

  M26 퍼싱이 낙동강 전선에서 활약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이 계속 좌절되자 8월 21일 밤, 다부동으로 대규모의 북한 기갑부대가 돌진해 들어왔습니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M26 퍼싱 전차 1개 중대는 몰려오는 T-34/85와 Su-76 자주포들을 정확하게 조준해 명중시켰는데 밤에 치러진 전투로 포탄의 궤적이 선명하게 비춰지다 보니 마치 볼링장에서 공에 맞은 핀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투의 별칭이 바로 “볼링 구장” 전차전이 되었죠.


  북한군은 다부동에서 T-34/85 14대와 Su-76 5대를 잃었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미 해병대의 M26 퍼싱 전차들도 활약하게 됩니다.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미 해병대의 M26 퍼싱은 육중한 장갑과 90mm 전차포를 이용해 상륙 제대를 엄호하며 시가지로 진입했고 17일부터 영등포 방면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을 위해 출동한 T-34/85들을 닥치는 대로 부쉈습니다.



 

  M26 "퍼싱"의 등장으로 T-34/85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결과 북한군은 9월 20일까지 24대, 25일까지 12대( 총 36대! )의 T-34/85를 손실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합니다.   북한군 전차부대가 지리멸렬하자 9월 21일,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대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 선두에는 M26 퍼싱이 있었습니다. 

   M26 퍼싱을 선두에 세운 미군은 출발 5일 만인 9월 26일, 수원에서 인천상륙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조우했고 북한군은 38도선을 넘어 패주하기 시작했죠.  

  1950년 10월까지 북한군은 38도선 이남에서 239대의 T-34/85를 손실했는데 개전 당시 보유한 수가 242대였으니 사실상 전차부대가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반면 M26 퍼싱의 손실은 극히 적은 수준이었고 전선에는 200대가 투입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M26 퍼싱은 북진의 선봉으로 북한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10월 13일, 금천에서 T-34/85 8대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M26 퍼싱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의 혼란 속에서도 아군을 엄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만약 퍼싱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은 중공군의 포위 전술에 말려들어 혹독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비록 6·25 전쟁이 종전된 이후 후속 전차인 M47 “패튼”의 등장으로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차가 되었지만 이 차량의 활약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보전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26 "퍼싱" 중전차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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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ニンニク 2013.03.09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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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15. Bookmarking Post 2013.05.28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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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how to be a model 2013.07.15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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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direktlån 2013.09.11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8. The Panorama 2013.10.02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

  19. Ideas for successful Silent Auctions 2013.10.24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20. The Hillford 2013.10.28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

  21. Auctions for fundraising 2013.11.18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