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경찰 매복 전술 의 막바지 작전-1955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0.17 07:04

1950년대 대한민국의 큰 암 덩어리였던 공비들을 소탕한
큰 이유는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과 포섭 공작, 두 전술이 결합된 것이
치밀하게 전개되어 성과를 거두었었기 때문이다.


전투 경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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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복 전술은 이들의 식량 조달을 차단해서 공비 조직이
고사[枯死]하게 했고 이들 공비들을 적극 포용하는 포섭 공작 전술은
끝내 공비 조직들이 붕괴하게 만들었다.


두 전술로서 오합지졸(烏合之卒)화 되어 가던 공비 잔당들은
사찰 경찰들이 정보력을 바탕으로 이 잡듯 잡아 소탕했다.

여기에 경찰의 매복 전술에 몰려 식량 조달 수단을 잃고
갈 데까지 간 공비들을 소탕했던 사례를 소개한다.

이 때는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만인 1955년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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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2일 부산일보에 보도 된 공비 이 홍이의
사살과 정 순덕의 체포 기사 -이들이 공비 생활을
무려 14년간이나 했다는 사실이 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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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존 공비의 소탕은 장기적이며 지구력이 필요하였다.
그들 공빕 잔당들은 잠복지에서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다른 3자를
통하여 필요한 식량이나 물품을 구입하였기 때문에
노출이 안되었다.


다음은 경찰이 2개월이나 장기 잠복한 끝에 정읍군 당 위원장
신 현복[申 鉉福]과 조직 부장 김 상실[金 相實]을 생포 사살한
특례다.

전기 신 현복과 김 상실이 정읍군 내장면 고당산에 잠복하고 있는 것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정읍 경찰에서는
1955년 1월부터 4명[ 경사2, 순경2]을 고당산에 고정 배치하여
주야 감시를 하였으나 아무런 꼬리를 잡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4명은 상부에 보고하여 숯굽는 사람으로 가장해
고당산 골짜기에서 숯 굽는 화전민들 속에 끼어 들었다.


고산 지대에는 어디나 숯을 굽는 화전민들이 떠돌아 다니기 때문에
이들은 자주 공비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공비들은 이들을 포섭하여 필요한
물품을 구입함으로서 위험한 보급투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4명의 경찰관은 정체를 철저하게 감춘 채 화전민들과
열심히 숯을 구우면서
공비들과 접촉할 기회를 고대하였다.



1955년 2월 초순경의 어느 날 이곳 숯가마로 15세 정도의 소년이 찾아 왔다.
그는 돈을 후하게 내놓으면서 전지(電池)와 고무신 그리고 소금을
사다가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경찰관 1 명이 자청해서 사다 주겠다고 인심을 쓰는체 하였다.


다음날 경찰관은 상부에 이를 보고하고 물건을 구입한 다음
산으로 올라가
물건 보따리를 숯가마 앞에 놓아두었다.
소년은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에 보니 물건이 없어졌다.
경찰들은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지 않았다.
일단은 소년을 안심시켜서 계속 접촉하게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다시 그 소년이 나타나서 쌀을 한 말 사다달라고
하였다.

그의 말인즉 병든 부모를 모신 관계로 자신이 장에까지
갈 수없다는 평계의 둘러 부치기였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잠복 경찰은 상부에 연락하고는 쌀을 사다 놓았더니
다음날 와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받아갔다.


공비 토벌 비상대기조의 오침 - 작업화는 물론 총과 수류탄까지 갖춘
빈틈없는 완전 무장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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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이날은 순경 2 명이 주부식 준비로 산으로 내려가고
경사 2 명만이 남았다.

이날 밤 22시 30분경 산위에서
소년이 앞서고 그 뒤를
두 명의 그림자가 따르고 있었다.


유난히 밝은 달 속에서 두명의 경찰은 그들이 노리고 있던
바로 신현복과 김상실이 나타난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경찰이 잠자고 있는 집으로 들어왔다.
집은 통나무로 만든 [가이]집이고 출입문이 두 곳있었다.


얼마후 앞의 소년이 한쪽 문으로 들어오더니 다른 문으로
나가 두 사람을 불러 들였다.


귀순한 전 북한 병사들로 구성 된 편의대.
공비로 변장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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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경찰은 잠자는 척 하다가 사람들이 들어오자 갑자기
일어 나면서 각자
한 놈씩 밖으로 몰고 나가서 격투를 벌였다.
이 사이에 소년은 도망치고 말았다.


유도가 3 단인 김경사는 쉽게 한 놈을 때려 눕혔으나 이 경사는
상대방의 체구가 워낙 커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를 바라 보는 김 경사는 한 놈을 깔고 앉아 있어 지원 할 수가 없었다.
목적은 두 공비의 생포에 있었지만 죽일 수도 없었다.

이 경사는 서로 물고 치고 있는 격투를 계속하다가 끝내는 비탈을
둘이 맞잡고 굴러 떨어져 골짜기 냇가에서 서로 졸을 집어 들고
던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판단한 김 경사는 마침내 한 놈만 생포하기로 하고
깔아 뭉개고 있던 놈을 달아나게 하고는 등 뒤에서
카빈 총으로 사살한 다음 이 경사한테로 달려가 몸집이
큰 김 상실을 생포 한 것이다.


이 결투는 30분이나 계속 되었으며 이 경사는 공비에게
팔을 물려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이로써 2 개월 동안 끈기 있는 잠복으로 끝내 마지막
붉은 뿌리를
도려내고 만것이다.

토벌 작전에 일망 타진 된  공비들 여자  공비들이 많음에 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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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1만명의 세력을 자랑하며 남한 정부를  타도하고
공산 정부 수립까지 꿈꾸었던 남한 공비들은 몰락을
거듭하여 전쟁이 끝난 1955년에도 약 40여명의
망실 공비들먼이 준동했었다. 

이 마지막 망실 공비들을 끝까지 추적해서 1963년 11월 마지막
공비 이 홍이를 사살하고 여공비 정 순덕을 체포한 주인공도
경찰들이었다.



1963년 11월 사살 된 이 홍이의 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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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 6ㆍ25 블로그의 작년 글에 무기와 기동력이 변변치 않았던
경찰들이 준동하는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매복 전술을
고안해서 치밀하게 전개하는 작전을 소개했었다.


윗 사례는 경찰의 매복 전술 때문에 몰릴대로 몰린
공비들이 본연의 임무인 유격 활동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은신에 급급했던 말기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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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춘천 전투 참전 중대장의 수기(4/4)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0.17 07:01

6월 28일 오후 3시경, 제 7연대 부연대장 최 영수 중령이
써 보낸 서면 명령이 제 1대대장 김 용배 소령에게 왔다.

‘제 1 대대는 즉시 금병산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모래재[沙峴]로 이동하라“ 는 내용이었다.

제 1 대대의 제일 후미 중대가 금병산을 떠난 것은
오후 4시[16;0]경이었다.


이리하여 춘천 지구 전투는 치열한 공방전 3일간 반 만에
막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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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독에게 자신의 전투담을 들려 주는  이 대용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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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춘천 전투에 대해서 쓴 이 대용 장군의 회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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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춘천 지구 전투에 대한 평가
이 전투의 전략적 평가는 하지 않겠다.
단지 어찌하여1개 연대가 열세한 화력을 가지고도 절대
우세한 화력과 기동력과 4배나 되는 병력 우세에다가
기습이라는 이점까지 가지고 감행한 북한군을 3일간이나
춘천 지구에서 호각[互角]으로 싸우고 막대한 피해를
적군에게 입혔는지의 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원인에 대해서 증언한다.

가. 제 7연대는 방어 시설의 사전유비(事前有備]가 있었다.
제 7연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춘천지구 방어를 위한
제 1대대에 진지를 중요한 곳에 구축해놓고 이 진지 점령에 대한
사전 훈련이 되어 있었다.


이 진지는 6ㆍ25 첫날 적군의 남침을 측방 또는 정면에서
저지 시키고 6ㆍ25 둘째 날은 적군을 옥산포에서 북쪽으로
쫓아 내고 큰 심리적 타격을 주며 아군의 사기를 충전시키는
거점 역할을 했다 .


이 진지구축 공사에는 춘천 남녀 고등학생까지 동원되어
군관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나. 아군 사단 포병의 활약이 크게 빛났다.
6.25 첫날의 우리 사단 포병의 활약을 눈부셨다.
제 7연대 제 1대대가 출동하여 방어 진지를 점령할 때까지





즉 25일 오전 10시 30분까지는
아군 사단 포병의 단독의 맹렬한
효과적인 집중 포격으로
북한 공산군 대부대가 5번 국도[화천 -춘천 가도]
한계울과 역골일대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어 춘천을 향하여
더 남진을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맨 윗쪽에 한계울과 역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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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아군 사단 포병은 아주 효과적으로 제 7연대를 지원해주었다.


다. 제 7연대는 공세적 방어를 했다.
6ㆍ25 첫날 야간에서 제 1대대 및 제 2대대에서 소수의
기습 부대를 적진 깊숙이 보내 야간 기습 교란 공격을 감행했고
연대 수색대도 그랬었다.


그리고 6월 26일 오전에 제 7연대 1대대가 옥산포의
적군 부대에
대한 기습 파쇄 공격은 아주 돋보였다.


라. 7연대 지휘관들의 전투 지휘력이 탁월했었다.

1대대 지휘관 김 용배 소령의 대담한 전투 지도도 돋보였고
7연대장 임 부택 중령의 대국을 보는 지휘도 빛이 났었다.


마. 지형은 방어에 유리했다.

국도 5번 도로[화천 -춘천가도]의 접근로는 대부대의 기동공간으로서는
너무 좁아 공격 대부대의 기동에 제한을 받아야 하고 46번 도로[양구-춘천]
접근로는 아주 협소하여 대부대의 기동 공간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북한강과 소양강이 춘천을 감싸주고 봉의산이
높이 솟아 방어에는 아주 유리한 지형이다.


제 7연대는 이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전술적으로 잘 이용했다.
단 소양교를 폭파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었다.


바 .북한군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은 전투 경험.

제 7연대는 1949년 8월,9월에 인제로부터 관대리 [冠垈里-현재의 新南]
38 선을 넘어 온 북한군 1 개 여단과 맞서 8연대와 협조하여
약 1개월간의 전투 끝에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시킨 전투 경험이
있어 북한군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사기가 드높았다‘


4. 추가 부언

이상 춘천지구 전투 제 7연대 제 1 중대 전투 개요 기록은 내가 [이 대용 장군]
전투시 자주 기록해 놓은 수첩과 살아 오면서 출간한 ‘압록강 푸른 물’
‘통곡하는 승리자,‘국경선에 밤이 오다’등등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쓰고 또한 나의 기억에 기초해서
제 7연대 제 1 중대의 춘천지구의 전투 경과를 그대로 적은 것이며
날짜는 추호도 착오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 둔다 .
시간에 대한 오차는 반[半] 시간 정도는 있을 수 있으나 거의
대부분은 정확 할 것이다.


제 7연대 제 1중대의 기록은 정확하지만 타 부대에 대한
언급의 정확성은 그 당사자들에게 일임하는 것이며 나의 진술은
차질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니 타대대나 타 중대에 대한
나의 언급은 단지 참고로 할뿐이며 신빙성을 크게 두지
말 것을 부탁한다.

현재 발간된 전사 책자들에는 크게 잘못된 부분이 많다.
앞으로도 계속 더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전사 수정 작업을
주의 깊게 하여야 할 것이다.


전사 기록은 정확한 진실성이 생명이다.
그렇지 못 할 때는 죽은 전사가 된다.
위선자들의 허위 선전의 도구가 된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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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춘천 전투 참전 중대장의 수기(3/4)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0.17 06:58

1950년 6월 27일 상황

(1) 봉의산 진지 방어 전투
6월 27분 새벽 4시경,
제 1 중대는 제 1대대에게 부여된 춘천 방어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서
석사동 숙영지를 떠나 봉의산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제 1 중대의 임무는 봉의산 기슭 후평동 쪽 낮은 능선을 따라 배치되어
우두동 여울[네다리 여울]을 도하하여 후평동 -석사동 방면으로 전진해오는
북한 공산군 부대의 예상 접근로를 차단하고 소양강변에서 북한 공산군
부대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제 1대대 잔여 병력은 제 1 중대 우측에 봉의산 일부와 후평동을
둘러싸고
배치되었다.


6월 27일 오전 8시경 우두동 여울[네다리 여울] 도섭지점에
북한군 부대의
모습이 나타나고 곧 이어서 약 1개 중대 규모의
북한군이 강변에 출현하여 도하 작전을 개시하였다,






봉의산의 우측에 있는 소양강 혈전장. 우두산 남쪽 내다리
여울을 도섭하던 북한군을 좌측의 1대대가 화력을
집중하여 격멸한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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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도하를 결심했던 것은 전면에 배치되었던 김 종수 소령의
2대대가 후방으로 철수해서 강변을 그대로 비워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측면에 배치 된 1 대대를 큰 위협으로 보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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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 중대 방어진지에서 그 도하 지점까지의 거리는 가까운 곳에서는
약 1,000 미터 이고 먼 곳에서는 약 1,500m 쯤 되기 때문에 소총사격으로서는
큰 효과를 얻기 어려운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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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산포에서 북한군이 1 대대의 함정에 스스로 들어오게 했던
장거리에 간격에 대한 방만심이 이들을 또 다시 섬멸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 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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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대 중화기 중대에서 배속된 수냉식[M 1917] 2정과
제 1 중대 화기 소대의 경기관총[M1919 -LMG] 2정은 효과적인
사격을 할 수가 있었다.



1917 수냉식 기관총[HMG] 통칭- 총신이 과열되지 않아 총신 교환없이
수천 발을 사격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무거워 잘 사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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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소총[BAR]도 이에 가담하여 제 1 중대 진지의 자동화기들은
맹렬한 집중 사격을 강변에 있는 북한 공산군과 이미 강물 속에
들어 선
북한 공산군에게 가했다,

16포병대대는 홍천 방면의 2 연대 지원을 위해서 대대본부가
홍천으로 이동하고 춘천에 1 개 중대가 남아있었는데
이 중대의 포들이 지원 사격을 했다.

제 1 중대의 60mm 박격포도 강변의 적군을 강타하고
제 1대대의 81mm 박격포 일부도 포사격에 가세했다.

여기에 더해서 홍천의 6사단 2 연대 소속의
57mm 포 두 문이 7연대 1 대대 지원을 위해서 가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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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mm 대전차 포는 원래 각 연대에 배속된 보병의 중화기였으나
6.25 사변 직후에 사단 포병으로 소속이 바뀌고 일부 장교들도
보병에서 포병으로 병과가 바뀌었다. 심 일 중위는
포병으로 전과했으나 이 훈 중위는 보병 병과에 그냥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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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視界)와 사계(射界)는 확 트여져 있어 우리 사격을
방해하는
요소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제 1 중대 지역에 지원 나와 있던 이 훈 중위[8기 특]가
지휘하는 57mm 대전차 포 2 문도 인마 살상용 고폭탄[HE]을
맹렬히 퍼부었다.


허리까지 차는 수심 때문에 강물 속에 들어선 북한군 부대원들은
느리게 움직여서 우리 제 1 중대 진지로부터 비오듯이 쏟아내는
자동화기의 불벼락에 좋은 표적이 되어서 다수가 강물 속에서
사살되었다.


강변에서 움직이고 있는 후속 북한군 부대원들은 아군의
집중 사격에 지리멸렬상태로 빠져 살길을 찾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치열한 아군의 화력 속에서도 일개 소대 병력 30명 정도의
북한군이 일단 강을 건너는데 성공하였다.

우리의 자동화기와 포 사격들은 강을 무사히 건너온
적에게 집중했다.
순식간에 다수가 쓰러지자 도강 부대는 견디다 못해
다시 강을 건너 우두동 쪽을 되돌아 가면서
또 적지 않게 섬멸당했다.


벌겋게 물든 소양강물이 봉의산을 감싸고 흘러 내려갔다.
북한군을 사정없이 강타하던 두 문의 57mm 포가 갑자기 침묵했다.

이 훈 중위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단 시간내에
너무 많이 사격을 해서 포신이 뜨겁게 달아 올라
물을 축인 가마니를 번갈아 덮어가며 포신을 냉각시키고
있다고 했다,




57mm 포 - 소양강 전투에서 한국전 사상 최고 다량의
포탄을 발사했었고 전과도 최대로 컸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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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mm 포는 이날 7연대가 보유했었던 다량의 포탄을
공급받아 제한없이 쏘아댔다.
이 대용 장군은 두 문의 포가 100여발 이상 사격했을
것이라고 추상했다.

춘천 방어의 3 개 전투에서 포병들이 보병과 함께
큰 주역을 했다는 점에 전사적으로 유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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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 중위는 말고개 전투에서 적 SU-76 자주포
측면에 직격탄을 날려 파괴한 공을 세웠다.

전후 대령 때 진해 육군 대학의 교관으로
근무하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군을 떠났다.
퇴역후 심한 생활고에 버티지 못하고 인천 바다에
투신해서 생을 마감했다.

이 대용 장군은 이 훈 중위가 무척 똑똑한 인재였으
장군이 될 소양이 충분한 인재였었다고 그의 불행한
최후를 애석하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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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거리 사격의 전투는 북한 공산군이 우두동 강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약 2시간 동안 계속 되었다.
북한군 약 2개 중대는 이 소양강 전투에서 완전 섬멸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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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개전과 함께 북한군의 선봉에 서서 남침한 북한 전차
T-34를 파괴하지 못해서 후세에서도 별로 좋은 선입감을
주지 못한 57mm 포지만 이 소양강 전투에서 장거리 사격으로
큰 활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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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 우리 제 1 중대가 봉의산에서 철수할때까지
우두동 도하 지점인 내다리 여울에 북한 공산군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2] 봉의산 방어 포기 석사동으로 철수.
6월 27일 정오 [12:00]가 좀 지나서 북한 공산군 자주포[SU-76]
소양교에 진입 빠른 속도로 굴러오고 그 뒤를 북한 공산군
보병들이 뛰어서 뒤따라 오고 있었다.

7연대의 봉의산 방어진지 일각이 뚫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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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사 편찬 위원회의 전사는 이 것들이 자주포가 아니라
춘천의 미 함락에 초조해진 북한군 2 군단장 김 광협이 양구 전선의 
정예 7사단과 함께 불러와 투입한 10여량의 T-34라고 말하고
있다.
7 사단은 전원 중국 내전에서 단련 된 조선족으로
구성 된 부대다.

상태가 안 좋지만 북한 7사단장
전 우의 드문 사진이다. 

군단장 김 광협과 같이 조선족이다.

김 광협과 전 우는 춘천 공격을 했던 2 사단장 이 청송과 함께
김 일성으로부터 지지부지한 전과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전부 해임되었다.
후임들에 김 무정이나 최 현같은 과격한
인간들이 임명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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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 중대 방어 정면에는 북한 공산군이
나타나지 않고
조용하였다.


6월 27일 정오를 전후해서 봉의산 정상과 그 북쪽 부분
그리고 소양로 일대에서 북한 공산군이 퍼 붓는 포탄은
무수히 떨어지고 있었다.

전날 밤부터 가해진 적 포격으로 춘천 시내에는 크고 작은
여러 화재가 발생했었고 주민들은 우왕좌왕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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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방어 전투의 최대 실수인 소양교 파괴 미 실행은
아직 전황에 낙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던 사단장 김 종오 대장이
반격시를 대비해 파괴를 하지 않도록 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서울 방면의 비참한 국군 붕괴 사실이
제대로 전달 되지 못하고 있었다.

전방의 포병과 보병이 다 철수한 마당에 거칠 것 없었던
북한군은 그대로 도강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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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의산 동쪽에 배치되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봉의산
방어 중대인 제 1 중대에게 제 1 대대장 김 용배 소령으로부터
철수 명령이 내려온 것은 오후 15:00경이었다.



이 명령에 따라 제 1 중대장은 각 소대장을 불러 철수 명령을

하달하고 철수를 개시했다.
제일 후미 소대가 봉의산을 떠난 것은 오후 3시 50분 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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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적의 부대가 소양교를 건너 춘천에 침입하기 전
16 포병 대대 최 갑석 상사는 기민한 조치를 취했다.


강원도 지사와 만나 농협 창고에 보관한 정부미
반출을 동의 받아  군량미를
확보하고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정부 보유 휘발유를 인계 받아 부대의 기동력을
보강한 것이다.

덕분에 이 대용 장군은 7연대가 낙동강 전선까지 철수하며
싸우면서도 배를 곯은 기억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6사단이 계속 남하 철수하면서도 잘 싸웠던 것은 무기와
탄약을 보전할 수 있었고 충분한 식량과 연료를
확보한 것도 한 요소가 되었다.

남진한 중공군에게 포탄 수송중인 중공군 마차.
북한군도 초기에 우마차를 수송 수단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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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중대가 석사동 춘천 사범학교 남단에 있는 도착한 것은
오후 5시경으로 부연대장 최영수 중령이 그곳에 남아서 제 1 중대를
마중해주었다.


최 영수 중령은 제 7연대는 내일 춘천 남쪽 원창 고개에서
방어 진지를 편성하고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시킨다고 말하고
우선 제 1 중대를 위한 저녁 식사 준비가 되어 가고 있으니
여기서 저녁밥을 먹고 학곡리를 지나 원창고개로 가라고 했다.


제 1 중대는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날 때 까지 일부 병력을
경계 배치하고 나머지 중대 장병들은 피곤한 몸을 풀기 위해
완전 무장을 한 채 아무 곳이나 쓰러져서 수면을 취했다 .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녁 식사 준비는 시간이 많이 걸려
제 1 중대 장병들을 깨워 가지고 저녁 식사를 분배를 할 때는
오후 6시 30분경이었다.


제 1 중대 장병들의 저녁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경계병들과 북한군 정찰대 간의 교전이 벌어졌다.
북한군 정찰대원들은 불과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사거리 12,000야드의 122mm 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곳에 그대로 머문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8-900미터 떨어져서 쏘는 북한군의 소총탄은 제 7연대
부연대장 찝차 부근에도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장병들은 빠른 동작으로 이곳을 철수하여
원창 고개로 향했다.


오후 7시 반 [19시 30분경] 학곡리 북쪽에서
제 1 중대를 기다리고 있는 제 1 대대장 김 용배 소령을 만났다.


이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 1 중대는 제 1대대 주력과 합류하여 제 1대대장 지휘하여
사래울 점말을 경유 대룡산[大龍山] 줄기의 수리봉[473 고지]
서쪽 산림 쪽에서 비를 맞으면서 밤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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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 춘천 방어 마지막 전투이며 네 번째 전투인
원창 고개 전투가 6사단 7 연대 장병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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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용 장군의 대대장 시절 모습-
그는 6.25 전중 2년 동안이나 전선에서 중대장과
대대장으로 전투를 겪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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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1950 6월 28일 상황

[1] 금병산 방어 전투
6월 27일 밤과 6월 28일 새벽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는 새벽
4시경에 멎었고 하늘을 뒤덮던 구름은 걷혔다.

6월 28일 새벽 5시 [05:00]경 제 1 중대는 제 1 대대의 일부로서
수리봉 원창고개 -금병산[652 고지]를 연결하는 능선을 따라
서쪽에 있는 금병산을 향하여 이동을 개시하였다.
원창 고개 방어 임무는 제 7연대 제 2대대가 맡고 있었다.



남진하는 북한군  시각에서 본 원창 고개와 금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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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대대는 제 1 중대는 제 2 중대 제 3 중대 순으로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배치하여 금병산 능선 일대에 방어 진지를 형성 배치를
끝낸 것은 6월 28일 오전 8시였다.


6월 28일 오전 10시경 북한군 약 1개 중대 병력은 대대 방어
정면 중앙을
담당하고 있는 제 2 중대 지역을 공격해 올라오고 있었다.

제 1 대대 81mm 박격포의 지원을 받아 제 2 중대는 잘 버티며
약 2시간의 격전 끝에 이를 물리쳤다.

제 3 중대 정면에도 적군이 공격해 왔으나 제 3 중대는 이를
잘 막아냈으며 방어진지를 완벽하게 유지되었다.



옥산포에서 바라본 춘천 봉의산 그 앞에 소양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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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중대 정면에는 극히 소수[약 1개 소대]의 적군이 출현했으나
이것 역시 격퇴되어 제 1 대대의 금병산 방어진지는 계속
확보되고 있었으나 우측 원창 고개를 방어하고 있던 제 7연대
2대대는 오전 중에는 방어 진지를 잘 유지하고 있었으나 정오가
좀 지나면서 대대 병력이 원창고개에서 모래재 쪽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2 대대는 예정 된 철수는 했지만 적에게 만만치 않은
 타격을 주어 그들의 침공 계획에 큰 지장을 주었다.] (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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