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0.10.01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9)
  2. 2010.08.13 전멸한 북 사이드카 부대 (7)
  3. 2010.07.08 미그기 격추한 영국 프로펠러 전투기 (8)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01 08:21

  휴전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쌍방 모두는 휴전협상 자체를 파국에 빠뜨릴 수 있는 거대한 전면공세는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휴전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는 않았고 다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조성을 위한 제한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엔군은 공산군 측이 회담을 결렬시키려 할 때 강력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여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1951년 휴전회담의 시작과 동시에 군사적인 대응 전략이나 전술은 이전과는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열하게 대지공격을 펼치는 유엔군 전투기]

  공산군에게 유엔군의 화력은 넘을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임진강 하구-화천 저수지-간성을 연하는 캔사스선(Kansas Line)북방 10~20킬로미터에 와이오밍 선(Wyoming Line)으로 명명된 느슨한 방어선을 설정하여 놓고 있었는데, 이는 내심 휴전선으로 생각하던 캔사스선의 확고한 점령을 위한 전초진지(前哨陣地)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2중의 방어개념은 적이 대규모 공세를 취해올 경우에는 상당히 유효하였지만, 전력을 분산한 상태였기 때문에 종심 1~2킬로미터 내외에서 단일 고지군(高地群)을 목표로 벌어지는 제한전에서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뒤에 든든하게 설정 된 완충지대를 믿고 적이 공격해 올 때마다 제한적으로 후퇴한다는 것은 이제는 고려하기 힘든 전술이 되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는 와이오밍선의 방어진지를 캔사스선과 동일한 강도로 축성하도록 지시하여 후퇴 없이 와이오밍 선에서 적을 격퇴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그 덕분에 오늘날 휴전선이 애초 계획하였던 화천호-속초선보다 대략 10킬로미터 이상씩 북으로 북상한 현재의 위치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저돌적인 밴 플리트의 적극적인 대응전략으로 임시방어선으로 설정된 와이오밍선은 영구진지화 되면서 차후 작전은 이 일대의 고지군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공산군 측이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고의로 휴전회담을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동안 대규모 공세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시간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밴 플리트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아서 적에게 전력 정비의 여유를 주지 않고 유리한 지형을 계속 확보하기 위하여 과감한 공세를 감행하였습니다. 하지만 휴전회담장이 포함된 서부지역에서 공세를 감행할 경우 회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고지쟁탈전의 소모전 상황을 알려주는 탄피]


  사실 휴전하였을 경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려는 고지쟁탈전은 이미 전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북한군과 중공군은 이전처럼 주로 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국군의 출혈을 강요시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휴전반대 운동을 약화시키려는 부차적인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국군이 담당한 지역이 지리적인 여건 상 미군지역보다 화력이 약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산군에 비하여 병력에서는 여전히 열세였으나 화력과 기동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국군이 담당하던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중동부 산악지역에서는 이런 이점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힘들었습니다.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면서 고지쟁탈전은 쌍방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강요하였습니다. 공격하는 병력은 아무래도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노출되고 체력소모가 심하여 상당히 불리한 형국이었지만, 물 한 모금조차 산 아래서 조달하여야 할 만큼 보급의 제한을 극심히 받는 고지를 계속하여 방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1951년 9월 펀치볼을 공격하던 미 제1해병사단에서 사상최초로 헬기를 이용하여 병력을 기동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후 헬리콥터는 지상군의 필수장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헬리콥터는 새로운 전쟁 수단으로 급속히 부각하였습니다.]


  사실 6·25전쟁에서 이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진 일련의 고지전투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 오래가서 이후 오래 동안 고지확보를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작전으로 여기는 시류가 있기도 하였지만, 고지 쟁탈전과 고지위주의 병력배치는 단지 상대에게 휴전을 강요하고 유리한 위치에 서기위한 상황 하에서 적용되는 특이한 전술이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보급이 제한되어 스스로 고립될 수 있는 고지의 점령과 확보는 일반적인 전쟁양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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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개시된 휴전회담  (7) 2010.09.17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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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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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전멸한 북 사이드카 부대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8.13 13:41

태평양 전사를 읽다 보면 마리아나 군도(群島) 칠면조 사냥
-Marianas Turkey Shoot.-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온다.


1944년 6월 19일 20일 간 사이판 섬  상륙작전을 실행하던

미 스프루언스 제독의  미 기동함대에 도전했던 
일 오자와 제독의 일본 항모가
세 척이나 침몰당하고 함재기가
600기나 격추당한 해전을 미 해군들이
부르는 속칭이다.

정식 명칭은 필리핀 해 해전이다.


숙련 조종사들을 거의 다 잃은 일본 해군이 급히 양성하여
구식 항공기에 태워 출격시킨
미숙한 신참 조종사들은 훈련도
잘 받고 신형 전투기를 조종하는
미 해군 조종사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필리핀 해 재전에서 필사적으로 미 해군기의 뇌격과 폭격을 피하는
일본 전투함들.- 오른쪽 가까이는 중순양함 조카이, 아니면 마야
이고 더 먼 곳의 회피 기동을 하는 것은 항모 지요다이다.
잘 보면 왼쪽에서 달려가는  어뢰들의  두 줄 흔적이 자세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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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사냥이라는 것이 한국 언어 정서에는 없는 소리지만 이를

'파리 떼 두들겨 잡기' 정도로 해석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6·25 전쟁에서도 그런 칠면조 사냥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투가 있었다.

해상이 아니라 육상이었고 파괴 대상이 함재기가 아니라

모터 사이클과 트럭, 짚차등 차량이었지만 공격후 수 킬로에 널 부러진

그 잔해가 마치 칠면조 사냥을 연상케 헤서 이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고성의 칠면조 사냥이다.[Kosong turkey shoot,]


1950년 6월 25일 불의의 기습을 감행했던 북한군은 사흘 뒤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좌익들이 동원한 서울 시민의 강제 환영을 받으며

서울시가 행진을 했다. 

행렬 중신에 105전차 여단의 T-34 탱크와 함께 긴 장사진을 친
모터 사이클
부대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쟁 기념관의 모터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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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들이 사이드 카 부대라고 부른 이 부대는  적 105전차

여단 소속 83기계화 보병연대였다.


이들의 주력은 중국 인민 해방군 47군 소속이었던 조선족
부대였다.
47군 소속 조선족이 모두 차출하여
북한에 보내진 5,400 명중
1,000명이 105전차 여단의 83기계화 
보병 연대에 편입되어
주력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 105 전차 여단- 서울 점령후 사단으로 승격- 소속 T-34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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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기계화 연대는 북한군들에게 사이드 카 부대로 불렸다.]

서울 입성 후 시가행진에서 위풍당당하게 굴러 가던

이 정예 부대는 그로부터 40일 뒤에 서울에서 한참을 남해안

고성 서방에서 전멸을 당해 그 기계화 부대라는 간판을 내려야 했다.



좌익들이 조직한 환영 인파 사이를 당당히 행진하는 서울 점령
북한군- 이들중 몇 명이나 살아 돌아  갔는지 궁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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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초.

후퇴를 거듭하던 유엔군은 낙동강 교두보라는 한반도 일각에
몰려 버렸다.

비록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새로운 병력과 보급품들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지만 공격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은 북한군의
공세는
거세기만 했다.


부산 교두보 확보에 불길한 적신호가 발령된 것은 서부 전선에서

국군 1사단과 잠깐 대결하고 한강 하구 쪽을 도강했던
방 호산 소장의
북한군 6사단이었다.

[한국군 1사단과 정면 대결 했던 북한군은 최 광이 지휘하는

 북한군 1사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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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호산은 1913년 함경도 출신으로  공산계 항일  무장 투쟁의
경력이 깊다 .모스크바 유학 경험이 있어서 상당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방 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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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25전쟁 초기 전투지휘를 높이 평가한 중국의 전사가들은
그를 항미원조 전쟁[6·25전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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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은  문자 그대로 바람 같은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해안을 따라 급거 남진했다.

호남 지방을 관통하고 남해안에 도달하자 그대로 좌로 방향을
틀어  
섬진강을 건너서 낙동강 교두보의 측면에 나타났다.


워커 중장에게 이 부대의 측면 출현은 심야에 도끼를 든 도둑이

옆 울타리를 뜯고 나타난 것과 같았다.


놀란 미8군은 북 6사단을 격퇴하기 위해서 19 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19연대에 배속된 29연대는 2대대는 7월 22일 하동고개에서

북한군의 매복에 걸려  35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대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에서 전임 채병덕 참모총장이 전사했다.

그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미군의 자문역으로
백의종군했었다.


여세는 몰은 6사단은 7월31일 진주를 점령했다.

마산의 점령은 시간문제였다.

측면에 나타난 적이 무서운 전투력을 가진 부대라는 것을

알게 된 워커는 막강한 반격부대를 구성했다.


미 25사단과 본토에서 도착한 5전투단[RCT] 그리고 긴급히

한국으로 출동한 미 해병 1여단이었다.


낙동강 교두보의 서부에 나타난 북 6사단을 구축하고 잃은 땅을

회복할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는 미 25사단장 킨 소장의 이름을

따서 킨 태스크 포스[TF]라고 명명되었다.



우측 창원으로 부터 공격을 개시한 미 해병은 남쪽 축선을 따라
고성으로 진격했다.- 최종 목표는 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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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을 향한 반격은 8월 6일부터 개시되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전사에는 이 쪽 공격을 담당한 부대가 방 호산의

6사단뿐이었다고만 하지만 실상은 북 105여단의 83기계화 연대와

북 5사단 병력이 증파되었었다. - 뒤에 말한다-


사흘간 이들을 산과 계곡에 들어 밖여 저항하는 이들을
분쇄하고
전진을 하기 전에 사흘이나 소비해야 했다.

북한군은 마산 진동리 일대의 적을 소탕하고 서쪽의 진주를
향하여
전진해  갔다.


이 이야기는 서쪽을 향해 전진하던  해병 1여단의 정예 5연대가

8월 10일 공격 방향을 남으로 돌려 고성을 공격했을 때 발생했다.


해병들이 낮은 구릉과 논이 많은 고성 북쪽을 향해 진격하자
적들은
지형을 이용해서 반격해왔다.

그러나 해병들은 고성으로 들어가는 남행 도로가 스쳐가는

대다복 고개를 성공적으로 돌파했다.


고성 못 미처 지역에서 충분한 경계 태세로 한밤을 지센 해병들은

다음날 8월 11일 새벽, 어둠이 가시기 전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해온

북한군과 격렬한 전투를 한 차례 치러 이들을 물리치고

다시 얼마 멀지 않은 고성을 향해 진격했다.


북한군은 47mm 일본군  속사포까지 잠복 해놓고
해병들을 포격했다.

한 해병 장교의 짚 차가 이 포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났다.

속사포는 뒤에서 후속하던 전차까지 공격하다가 전차포의
반격으로
파괴되었다.



일본제 1 식 47mm 속사포 [대 전차포]. 남양전선에서 활약.
북한군이 이것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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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앞세운 해병들이 북쪽에서 무섭게 밀고 들어오고 해병대의

포병 포화까지 집중하던 점심 무렵에 고성의 북한군의 기계화 부대는

전 부대 이동 장비를 몰고서 서쪽 사천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트럭과 짚 차 그리고 모터 사이클들은 모두 동원되었다.

그 긴 행군 장경[長徑]은 무려 수 킬로미터나 되었다.

그들이 달리는 곳은 비포장 도로였고 뜨거운 태양에

바짝 마른 도로의 먼지는 자욱하게 상공을 가렸다.

인근 상공 어디서나 발견되는 대부대의 이동이었다.

이 부대는 앞에서 소개했던 105 전차 사단의 83기계화 보병연대였다.


이 무렵 105 전차 사단은 낙동강 북쪽에 있었다.

유엔군의 서쪽 측면이 의외로 쉽게 뚫리자 북한군 전선 사령부

[충북 수안보 위치]가 83연대를 따로 떼어서 서쪽으로 급파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83기계화 보병 연대는 원칙으로 보면 북쪽에서 육박해 들어오는

해병들의 기세를 판단하고 그 전날 야음을 틈타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해병들이 고성읍을 점령하기 일보 직전에야 보따리를 싸서

허겁지겁 도망 길에 오른 것은 북한군 상부의 융통성 없는
사수 명령에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야 철수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콜세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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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대의 각종 전투 장비가 수 킬로 뿌연 먼지를 날리며

도로를 달리는
것을 북한군은 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해상의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해병 VMF-323 전투 비행단 소속 F4U
콜세어 기 편대를 놓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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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병 비행단은 지금 F/A 18로 장비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미라마의
해병 항공대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고성 공습의 수훈 부대 해병 항공대 VMF-323 부대의 현재 전투기
F/A -18 호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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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세어 기들은 먹이를 본 독수리처럼 이 먼지 속으로 급강하했다.

공격은 행렬 선두 차량에 집중되었다.

선두 차량이 파괴되면 행렬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선두 차량에 이어 맨 후미 차량도 첫 번 공격의 대상이었다.


차량 행군 대열을 앞뒤로 막아버린 콜세어들은 20mm 기관포와

로케트 포탄으로 북한군 표적들을 무자비하게 타격하기 시작했다.

도로 양쪽은 논이었다.

차량이건 모터 사이클이건 바퀴 달린 것이 도망 갈 곳은 없었다.



콜세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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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북한군들에게 검고 괴상하게 생긴 콜세어 기는

생긴 것부터가 두려운 존재였다.
이  괴물이 폭음도 요란하게 날아오며 기총소사를 하자
북한병들은 질겁을 하고 
논으로 튀어 흩어졌다.

100여량의 장비중 온전하게 남아있는 차량도 없었지만
북한군도 200여명이나
격멸되었다.


도로는 금방 검게 탄 차량의 연기와 파편과 죽은 시체로 가득 찼다.

고성을 점령하고 금방 현장으로 달려온 해병들은 행군을 가로막는

파괴 차량들을 도저 전차로 밀어 내면서 그날로
사천 남방 장천까지 전진했다.



북한 83 기계화 보병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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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콜세어 기중에 한 기가 저공으로 기총소사를 하다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산언덕과 박치기 하여
조종사 한 명이 전사하였다.


지상에서 맞대응한 기관총에 맞았는지 기체 고장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참전 해병 조종사에서 최초의 전사자이다.


몇 십 분에  걸친 항공 공격으로 득의만만하게 서울 입성의
시가행진을 하던
  83 기계화 보병 연대는 사실상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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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습에서 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해병대의 L-19 연락기를 조종하던 허버트 바렌타인 상사는

이 죽음의 함정에서 탈출했거나 먼저 출발했던  북한군 짚차
한 대가
행열의 훨씬 앞서
사천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것을
발견했다.


해병 정찰기 OY .-육군 명 L-19로서  나중에 0-1 버드 독으로
불렸다. 미 세스나 회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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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짚 차에는 운전병과 고급 장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뒷 좌석에 타고 있었다.


그 짚차 한 대 잡자고 바쁘게 적 차량과 모터 사이클 들을
부수고 있는
콜세어 기를 부를 수는 없었다.


그와 뒷좌석에 탑승하고 있던 포병 관측장교 패트릭 시버트 중위와

둘 다  장비하고  있던 38구경 리볼버로 이들을 공습하기로 했다.

몇 차례나 저공비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북한군 짚의 승차인간들에게
권총 사격을 했지만 짚 차는 그저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였다.


대상이 무장하지 않은 경비행기인 것을 안 북한군은 계속  

달리면서 권총으로 대응했다.


두 어 번의 공습이 실패로 끝나고  실탄도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기로 하였다.

경비행기가 다시 저공으로 접근하자 운전병은 매번 하듯
뒤를 뒤 돌아 보았다.

그러나 너무 길게 돌아 보았다.


앞은 구부러진  언덕길이고 앞은 낭떠러지에 가까운

계곡의 급사면이었다.

짚 차는 그대로 계곡으로 돌진하여 거꾸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상태라면 두 북한군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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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특수 임무 부대는 방 호산의 6사단 부대를 몰아부쳤지만

독한 호산은 형편이 어려워져도  단념하지 않았다.

북 6사단 특공대는 전진하는 미군의 후방으로 침투해서
진동리의 2개의 포병대대를 기습해서
큰  타격을 주었다.


사천 점령을 앞두고 급히 되돌아온 해병들의 반격으로 6사단은
격퇴 되었지만
포병 장비는 모두 항공 공격으로 파괴하여야 했다.

그러나 다시 서쪽을 위한 공격은 일단 정지해야 했다.

북쪽에서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의 대부대가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원래 적이 점령한 진주로 예정했던 킨 특수부대의 임무는 적의

마산 공격 눙력을 분쇄한 것에 만족하여야 했다.


방 호산은 이 낙동강 교두보 서쪽 전투에서 2,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그는 9.15 인천 상륙작전으로 낙동강의 북한군이 붕괴하여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할 때 부대를 잘 인솔하고 귀대해서 김일성의 격찬을 받았고

이중 영웅을 칭호를 수여 받은 뒤  군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김 일성은 명성이 높아지고 
북한 체제에 불만이 많았던 방 호산을 그냥 놓아 두지 않았다.

방 호산은 1955년 숙청당해서 지방의 
탄광 부지배인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그 뒤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김일성의 직속 졸개였었고 김 일성의 처 김정숙 동생의
남편이었던
83기계화 보병 연대의 직속 사령관 유경수가
승승장구하던 것과는 대조된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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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othy 2010.08.17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감니다. 이글은 북괴군 입장에서 보니 감이 새롭고 더욱 실감이 있어 좋읍니다. 감사합니다.

  2. esk0441 2010.08.1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쓰신분이 북괘 군 인가여?

  3. chaffee2080 2010.09.14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괴군은 아닙니다. 다만 좀 외곬수인듯...^^

  4. 김광수 2010.10.01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동전투에서 사용된 oy-1,정찰기는 고성인근에 활주로가 없어서 미군들이 합판을 논에다가 깔아서 활주로로 사욯했다는것을 읽은적이 있네요, 부모님이 진주서 사셨는데 그 당시 피란을 가는데 인문군이 사이드카에 기관총을 달고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오는것을 보고 놀라 고갯마루옆으로 할머니랑 어머니랑 도망을 가는데 이 북한군들이 사이드카를 세우고 "동무들 도망가지 마시라우 같은 동포인데 왜 도망하느냐 "하더라는데 아마 선무부대 아니였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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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그기 격추한 영국 프로펠러 전투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08 08:37

 


영국 해군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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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 익어가는 1952년 8월 9일.

황해의 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에서 함재기 씨 퓨리 4기 편대가

평양 북방의 철도 시설을 폭격하는 임무를 가지고 출격했다.

편대장은 경력 8년의 카마이클이었다.


영 항모 테세우스- 13,400톤, 48기 탑재
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 최초 참전 트라이엄프에 이은
두번째 교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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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퓨리는 그 앞 세대인 씨 화이어가 함재기로서 여러 문제점을

들어내자 그 대체기로서 전쟁 중에 급히 개발한 전투기다.

씨 화이어는 육상의 명전투기 스피트화이어를 함상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육상에서 스피트화이어로 맹활약을 했던 명전투기였지만

전투 환경이 너무 다른 함상에서 쓰기에 여러 문젯 점을

노출했다.


직렬 엔진의 기수가 너무 길어 시야가 무척 가려

졌었고 좁은 바퀴의 약한 육상용 착륙장치는 거친 함상

착륙을 버티어 나지를 못했다.


씨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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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거친 착륙으로 동체 후면에도 주름이 잡혀 이 연약한

육상의 왕자는
해상에서는 부적합한 전투기라는 해군 당국의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씨 퓨리다.

1759마력의 강한 추진력에 튼튼하게 만든 기체로 시야를 좋게하는

짧은 기수를 가진  둥근 래디얼 엔진을 갖추었다.

최고 속도는 460마일이었고 4문이 20mm 기관포를 장비했다.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에 왔을 때 탄생했던 미국 해군의
F8 베어켓와
비슷한 운명을 갖게 된다.

제트 시대가 도래해서 프로펠러기는 더 이상 주역이 될 수는 없었다.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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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가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 진입하는 길목인 

대동강 하류의

진남포 근방 상공에서 뜻밖의 강적을 만났다.

2 번 기 조종사 칼 하인즈 준위가 편대 후방 우측에서

미그기들이 고속으로 접근중이라는 경보를 발한 것이다.


미그기들은 압록강 상공일대 미그 골목이라는

지역 일대에서만 출격 했었다.

그러나 가끔 평양 상공까지도 남하해서 유엔기들을

공격했다.



이륙하는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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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장 카마이클 대위는 급히 상황을 살폈다.

그는 처음에는 미그기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그기들은 태양을 등지고 덤벼왔다.

후방에서 접근하는 미그기는 2 개 편대 8기나 되었다.



미그-1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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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좌측 4번 기의 편대원 엘리스는 적기가 원거리에서 발사한

예광탄들이 기체를 스쳐가자 편대를 이탈하여

급격한 피신 기동을 했다.


편대장 카마이클은 즉시 전 편대원들에게 기수를 미그기들에게

돌리고 반격했다.


프로펠러기로서 훨씬 나은 미그기들에게 대응할 방법은

그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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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나 프러펠러 전투기와 제트기가 붙은 공중전은

서 너 번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두 성능 차이가

나는 전투기들이 조우하면 서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격해서 정면 승부를 결해본다는 점이다.

이날의 경우도 꼭 같았다.

B-29에서 촬영한 미그-15 편대,
공격을 위해 B-29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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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의 전환과 함께 4기의 씨 퓨리기들은  ‘가위’ 기동에  들어갔다.


이것은 미 해군 중령 태처가 태평양 전쟁 초기 개발한

방어 비행을 말한다. -THATCHER'WEAVE-라고 불렸다.


한기 또는 두기가 마치 꽈배기 꼬듯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번갈아

향하여 교차비행을 하는 것으로 적기가 동료기의 후미를


공격하기가 매우 힘들게 한다.


미그기들은 4기 편대로 나뉘어 각기 두 기씩의 영국 기를

추격했다.


그러나 씨 퓨리기들이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주는 타이트한

방어기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미그기들은 사격을 하지를 못하고
겉돌았다.


 순간 카마이클의 정면으로 한 미그기가

돌입해왔다. 성급한 그 조종사는 후미를

공격하기 힘들자 정면으로 돌았던 것이다.

편대장 카마이클의 캐노피 위로 적기가

쏟아내는 예광탄의 불줄기가 연달아

지나갔다.



미공군 F-86에 격추당하는 미그 15기.
아래 멀리 압록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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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이클은 과감하게 적기에게 접근하며

20미리 기관포문을 열었다.


기관포의 화력이 적에게 몰리는 순간

정면에 쇄도한 적기는 카마이클의 씨 퓨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그의 코스가 우리 편대기 들을 화망을 지나가야한다는

것을 잊었던듯 하다.

2번기 칼이 사격을 해서 이 전투기에 약간의 명중탄을 냈다.


미그기는 칼의 사격를 피해서 다른 2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두 씨 퓨리 기의 정면에 나선 것이다.


3번기의 피트 데이비스 대위와 4번기는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두 기다 이 미그기에 명중탄을 퍼부었다.


이미 상처를 입었던 미그기는  제대로

대응기동이나 사격도 못했다.

미그기는 연기를 뿜으며 멀리 저공으로

추락해갔다.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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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그기는 6·25전쟁중 영국 해군기가

격추한 유일한 미그기다.

카마이클은 이 미그기 격추를 인정받고

1953년 특별 무공 훈장을 받았다.


첨언한다면 공산 제트 전투기와 유엔군 측의 프로펠러
전투기가
격돌해서 공산군 제트기가 격추당한 사건은 또 있었다.


미 해병 콜세어 기가 역시 대동강 상공에서 미그기와 조우하고

이에 과감히 돌격해서 격추시켰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미그기에게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었다.



미 해병대 콜세어 F-4U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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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날 조종했던 씨 퓨리 기는 나중에 영국 해군에서 은퇴해서

1957-1958년 버마 공군에게 매각되었다가 다시 호주로 팔려

현재는 한 호주의 개인 조종사가 취미생활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武運長久 2010.07.08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 history채널에서 dogfight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월남전 당시의 미군의 프롭전투기 2대가 자신들을 향해 비행해 오는 북베트남군의 미그기를 격추시킨것을 봤습니다. 프롭기로 제트기를 격추시키는것은 어려울텐데...
    그나저나 저기 f4u콜세어기의 조종사는 탈출을 하고 살아남았을지...

  2. 재롱박사 2010.07.09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그기 조종사는 경험이 부족한 북한이나 중국의 신참 파일럿일 줄 알았는데 조종사도 노련하고 기체정비도 잘 된 서소련군 미그기를 프로펠러기로 격추시켰다니 더욱 대단한 전과로군요.
    그런데 2번기 조종사가 칼 하인츠 준위라고 되어 있는데 오타인가요?
    영국군에는 준위 자체가 없고 또 저 당시 준사관 조종사 제도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3. 코호하는사람 2010.07.12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의 스핏파이어는 없구나 ㅜㅠ

  4. 의료혁명★클릭하세요 2010.10.13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정보◑ 좋은 글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평생건강지킴이 : 내 병은 내가 고친다.>

  5. brother ink cartridge fill 2012.05.28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 이런 종류의 매우 드문 일 인데요 .. 그것은 이와 같은 기사를 사냥하는 과잉 시간이다. 꽤 유익한뿐만 아니라 내용이 매우 분명 플러스 간결 있습니다. 나는거야이 게시물의 외관을 더욱

  6. cheap refills tattoo 2012.05.2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들이 exensive 재산 또는 가정이 될 수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물건 이러한 유형의 작은 수량을 통해 돈이 안 전체와 함께 기술 배면 제어 키에 관한 몇몇 비버입니다.

  7. drivers refurb 2012.05.28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의이 종류는 단지 특정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고 연구하는 데 도움이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제안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다른 기사 또는 블로그 게시물 있나요? 감사

  8. 2013.07.07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트남에서도 스카이레이더한테 격추당한 미그17이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