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0.04.22 안양 상공에서 격추 된 최초 적기 (42)
  2. 2010.04.06 1사단의 운산 탈출과 미 90mm 고사포 (10)
  3. 2010.04.01 소련 공습한 미 공군 전투기 (5)

안양 상공에서 격추 된 최초 적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22 08:39

 

F82 쌍발 야간 전투기 기체 아래에 붙은 것은 야간용 레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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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발발하자 서울 거주 미국인 긴급 피난을 위해서

미공군 수송기가 서울 근교 김포 비행장에 파견되었다.


북한 공군기는 이 C-54수송기를 지상에서 공격해서
염상(炎上)시켰다.



북한기의 공습으로 불타는 미공군 C 54 수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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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군은 일본에서 수송기를 호위할 호위기를 파견했다.

그런 임무를 받고 일본에서 날아온 전투기 중에 우리가

잘 보지 못하던 이상한 모양을 한 쌍동의 전투기가 있었다.


F 82 G 전투기로서 F 51무스탕 전투기 2기를 옆으로 연결한
쌍발에
쌍동의 전투기였다.


승무원은 두 명이다.

야간 영격이 주 임무였다.

큰 레이다가 기수 아래 달려있고 조종사중 한 명이

이 레이다 조작을 담당했다.



미공군 C47 수송기 민간형은 DC 3. 최고의 쌍발 수송기라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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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우슈의 이다쓰케 기지에 주둔해 있었는데 한국에

긴급히 파견하는 느려 빠진 C 47 수송기를 한국 김포까지
장시간 동반 호위 할 만큼 항속 거리가 긴

마땅한 전투기가 F82 빼고는 없었다.


그래서 이 독특한 모양의 전투기가 김포까지 날아왔다가

공중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날 고공은 F80이 초계하고 저공은 F82가 담당하기로 하였다.



F80 슈팅 스타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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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6·25전쟁에서 최초로 북한 전투기를 격추한 F82의

레이다 조작 담당 조종사 칼 프레이저 중위의 회고이다.


우리 기(機)가 교민 철수를 위해서 파견한 수송기 호위를 위해서

김포 비행장 상공을 초계 비행하고 있을 때 낮게 깔린 구름 속에서

북한 전투기 야크 7B기들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찰리 모란과
프레드 라킨스가
조종하는 같은 편대의 다른 F82 G에게 덤벼들었다.


그 북한기의 사격 솜씨가 상당히 좋아서 찰리 전투기의

꼬리를 명중시켜 파편을 여러 곳으로 비산시켰다.




내 비행기의 조종사 허드슨은 미끄러지듯 기수를 돌려 도전해온

북한 편대 편대장기의 후미를 물었다.


우리가 자신의 꼬리를 물은 것을 알아 챈 북한 기는

옆의 구름 속으로 도피를 시도했다.

우리에게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는 불과 몇 십 미터 뒤에서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름 속에서도 적기를 잘 볼 수가 있었다.


우리의 첫 발사는 적기의 기체 후미 파고 들어 사방으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적 야크기 조종사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면서 힘든 상승을 시도했다.


우리는 뒤쫓아 가며 적기의 우측 날개의 연료탱크 부분을
조준하고
다시 한 번 기총소사를 가했다.

이 사격으로 연료 탱크에 불이 붙었다. 

오른쪽 날개의 후랩과 보조익이 떨어져 나갔다.

보기에도 적기는 더 이상 조종 가능 상태가 아니었다.


적기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후미를 따르던 우리 기는 적기를

충돌 일보 직전까지 근접했다,


나는 적기 조종사가 후방석을  뒤돌아보며  뒷 조종사에게
뭐라고
고함치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다 틀렸으니 탈출하라고 했을 것이다.]



6·25전쟁에서 최초로 격추된 야크 7B형-복좌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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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기 조종사는 캐노피를 뒤로 밀고 날개 위로 기어 나왔다.

그는 다시 뒤로 기대듯 돌아보며 후방석 조종사에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후방석 조종사는 너무 겁을 먹었던가 부상했던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적 조종사는 날개에 선채 낙하산의 고리를 당겼다.

펴진 낙하산은 그를 잡아채듯 기체에서 끌어냈다.

 



북한 주력 전투기 -야크 9기
이 전투기는 대전폭격도 했고 경북 의성 상공까지
날아와 공군의 연락기를 격추 하기도 했지만
원체 막강한 미군 항공력에 일찌감치 다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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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초기 북한 조종사를 포로로 잡았다는 한국군 기록은

있지만 그의 운명에 대해서 기술한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군복무시 한국군이 철수하면서 이 조종사를 사살했다는
풍문을 나이 많은 부사관에게  잠깐 들은바 있다.

그는 일본 육군 다찌아라이[太刀洗]소년 비행병학교 출신
비행사들은 한국 공군에도 많이 복무했지만 북한 공군에도
다수 합류해서 6·25전쟁 침공의 선두에 섰다가 미공군에 의해서 
대부분 전사했고 나머지 생존 조종사들은 김 일성에게
숙청당했다.
일본군 출신을 절대 신용하지 않았던 그에게 실컷
이용만 당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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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탈출 직후 기체는 뒤집어 지면서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공중전은 불과 300미터 이하 상공에서 벌어졌다.



허드슨에게 격추되는 야크기가 옆 편대원에게 꼬리 부분만
촬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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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로 돌아온 뒤에 편대원 모란이 적기 한기를 격추시킨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후미에 붙은 적기를 따돌렸지만 실속에 빠졌다.

그가 겨우 기체를 바로 잡았을 때 바로 정면에 다른

야크기가 날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서 그 적기를 격추시켰다.

F82 야간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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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기만 적기를 격추한 것이 아니었다.

적 야크기를 격추했던 다른 편대기인 F82기가 또 있었다.


북한 공군의 액운은 이것으로 끝나지만 않았다.

그날 늦은 오후 피난민들을 태우고 이륙하려고 했던 수
송기들을 공습하러
나타났던 8기의 북한 IL-10 공격기들은
출현한 적기를 보고
고공에서 급히 강하한 미 공군 F80
슈팅 스타기들에게 4기가 격추당했다.



김포 비행장에서 격추된 북한 IL-10 공격기
북한은 이 우수한 대지 공격기가 60기나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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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김포 비행장에서 수행했던 피난 민간인 구조 작전은

한명의 민간인 피해도 없이 완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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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슨에게 격추된 북한기가 야크 7B형이라는 기록도

있고 야크 11형이라는 기록도 있다.

여기에 다른 편대기가 격추한 북한 전투기가 LA-7형이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북한이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전투기를
혼성 편성해서
출격시킬 리가 없다.

격추기 조종사들이 적기들을 혼동한 듯하다.

여기서는 격추기의 기록자인 프레이저의 말대로

야크 7B형으로 포스팅한다.

그래도 북한이 정찰기도 아니고 공격편대에 복좌 전투기
[연습기]를
섞어
보낸 것은 특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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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기술했던 적 야크 7B기 한국 전쟁 3년 동안 유엔군
해공군기에게 격추당했던 공산측 976기의 첫 전투기였다.


북한 공군은 개전 일부터 서울 상공에 나타나서 활개를 펴고
시설이나
국군 병력들에게 기총 소사를 가했다.


그들의 큰 수확은 개전 당일 여의도 기지에 [주기駐機]해 있던

한국 공군기 10기에 기총소사를 해서 7기를 파괴시킨 것이다.

한국 공군사는 이들이 L 4 정찰기라고 말하고 있다.


 

L 4 정찰기 - 파이퍼 커브라는 민간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내구성이 아주 좋은 기체로서 비활주로에도 
별 문제없이 쉽게 착륙했다.
지금도 알래스카에서 사용하는 개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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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장부터 이 정도로 성과를 올렸다면 북한 공군의 간도
커질만큼 커졌을 것이다.

대공 사격도 미미하고 한국 공군의 저항도 없어졌으니
이들이 마음 놓고
떼거리로 날아다니다가 박살났다고 하겠다.


공중전 능력이 형편없는 복좌 연습기를 미군의 최신예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싯점에도 출격을 시킨것은 이런 잘못된
자신감의 타성 때문일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단 이틀째 되던 날 이날 북한 공군은
무려 7기나
격추 당했다.


이날 이후 북한군은 그들이 소련으로부터 미그 15기를
공여
받을 때까지 한번도 유엔기에 도전해오지를 않았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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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ibson guitars 2012.09.24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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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uefa live 2012.09.25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팀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합니다.

  4. workout tips 2012.09.26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섰다가 미공군에 의해서 대부분 전사했고 나머지 생존 조종사들은 김 일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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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단의 운산 탈출과 미 90mm 고사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06 07:11

  세계 포병 전투사에서 가장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남겼고, 그래서 포병 밀리터리 매니아의 최고 관심을 받고 있고, 또 그래서 그 프라 모델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포병 포는 독일 군이 사용했었던 88mm 포이다.




[88mm 포를 자세히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이 포는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기는 고사포[지금은 대공포라는 말이 더 일반화 되었지만 이 대구경 포가 활약하던 시절에는 고사포로 통했다.]로 태어났다. 개발의 주체도 육군이 아닌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였다. 1928년, 88mm 포는 지금 세계 전차포의 주류를 이루는 120mm포를 개발한 독일 라인메탈사에 의해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일 라인메탈사의 88mm 포, 대량으로 생산되어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전차 못지 않은 큰 활약을 했다.]


  그러나 이 88미리 포를 세계 역사의 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것은
독일 육군이었고 그 신화적 명성은 적기 격추가 아니라 적 전차의 격파로 얻어진 것이다. 이 88미리 고사포는 스페인 내전 시부터 히틀러가 파병한 콘도르 레지온 부대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지상 목표 포격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9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부터였다. 이 전격전에서 88mm 포의 지상 목표 타격의 효율성에 눈뜬 사람은 프랑스 남부를 휩쓴 기갑사단을 지휘했던 에르빈 롬멜 장군이었다. 88미리 포의 위명(威名)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은 북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막을 무대로 펼쳐진 전투에서이다.



[독일 88mm 포.1분간 20-24발의 속사가 가능하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 롬멜은 부족했던 독일 전차의 전력을
이 88mm 포를 최대로 활용해서 메꾸었다. 롬멜은 키가 커서 노출이 잘 되는 88mm를 땅을 파고 묻어 포신을 1m도 정도 높이로만 노출 시키고  이것마저도 천막천으로 덮어서 북아프리카에 흔한 모래 언덕으로 위장해서 사용했다. 그는 리비아 전투에서 영국 전차들을 유인해서 단 하루만에 유인에 걸린  영 전차 300대중에서 230대를 대파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일군은 리비아와 이집트 전선의 여러 곳에서 영국 전차대를 교
묘히 유인해서 이 매복한 88mm포로 전멸 시키자 그 공포의 충격이 전 연합군에게 전파되었었다. 장사정의 사거리에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독일88mm에 비해서 구경이 40-60mm정도의 초기 영국 전차들은 상대가 되지가 못했다. 전차포 사거리 포 밖에서 광선처럼 날아온 거대 폭탄을 맞고 마치 도끼에 찍힌 정어리 통조림처럼 산산조각이 났었다.




88mm 포의 귀재'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88mm포가 지상 목표 타격에 큰 활약을 한것은 88mm가 가진 또 다른 특별한 기능때문이기도 했다.
88mm가 육공 양면에서 대활약 할 수있었던 것은 대공포답지 않게 포의 고저각 운신이 엄청나게 컸었다. 즉 대공사격을 위해서 포신을 90도 가까운 고각으로 올릴 수도 있지만 고지 잠복 진지에서 포신을 수평 아래로 내려 산 아래 접근하는 전차를 타격할 수 있는 마이너스 10도 각도의 저각 사격도 가능했다.


  전쟁 초기에는 타국의 고사포들은 이런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었기에
88mm 포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88mm 포는 지형상 전투 거리가 짧은 유럽 대륙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지만 광활한 소련 전선에서는 대량의 적 전차 격파로 다시 대 활약을 했다. 물론 88mm가 지상목표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본연의 대공기능에도 충실했다.


  전쟁 후기 독일 영공을 밤낮없이 휘젓고 다닌 영미군의 대형 폭격기들은 포함한 많은 항공기들이 이 88mm 포가 쏘아 올린 무수한 탄들의 탄막에 걸려 격추되었었다.




[독일 88mm와 120mm 포가 터뜨리는 치열한 대공 탄막을 결사적으로 통과하는 미 B-17 폭격기대]


  미군에도 88mm 포와 비슷한 대공포[고사포]가 있었다.
90mm M2 고사포다. 미국이 제공권을 확실히 틀어쥐지 못했던 태평양 전쟁초기. 이 90mm 고사포[구형 M1]는 미드웨이나 과달카날등에서 공습해오는 일본군 폭격기나 전투기들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었다.




[1944년. 오키나와, 대공 경계 중의 90mm 고사포]


  1943년도에 출현한 개량형 M 2 형은 88mm처럼 수평아래 저각 사격이 가능했다.덕택에 유명한 발지전투에서 직접 사격으로 독일 타이거 전차들을  격파하는 롬멜식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트기의 시대가 오자 대구경 고사포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미 90mm 포는 6·25전쟁에 참전해서지막 은퇴 무대를 장식했다. 6·25전쟁중 한국에 전개된 미군의 90mm 고사포는 독일의 88mm 포와 같이 대공 임무가 아니라 지상 임무에 동원되어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미 M-2 고사포의 지상 목표 포격 준비]


  90mm 고사포는 윌리암 헤닉 대령이 지휘하는 제 10 고사포 포병단
그룹의 한 포대로서 한국에 도착해서 있을 지도 모를 북한 공군의 부산 폭격에 대비해서 잠시 부산 영공 방위에 투입되었었다. [원래의 고사포병단에 다른 포병대대를 혼성했기에 고사포 포병단 그룹이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포병단 그룹장 윌리암 헤닉 대령은 독일 이민의 후손으로서 미 육사 졸업생이다. 한국에 오기 전 해안 포대장등 다양한 포병 지휘관의 이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같이 북진하면서 손발을 맞춰온 백선엽 장군의 평에 의하면 아주 겸손하고 노련한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제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구성이 독특하다.


제 78 고사포 대대  [90mm 고사포 18문]

제 9야포 대대 [155mm 포 18문]

제 2 중박격포 대대[4.2인치 박격포 18문]


  1950년 한국에 도착했던 제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미 1군단의 군단 포병으로서 부산 방공 임무를 마치고 그해 9월 다부동 전투에서 선방했던 한국군  1 사단의 지원 업무를 부여 받았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헤닉 대령은 ”내 평생 국군 1사단과 합동 작전을 할 때 최고로 잘 싸웠었다“고 회고했다고 백 선엽 장군의 자서전은 밝히고 있다. 이 미국의 고사포가 국군 1사단에 배속되어 북진하며 싸웠던 기록이 백선엽 대장의‘군과  나’라는 자서전에서 잘 소개되어 있다.



  [백 선엽 장군의 회고록 -

  장군의 사진은 휴전회담 대표시 사진]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유엔군이 인천 상륙 직후 백선엽 장군의 1 사단이  낙동강 전선에서 적의 후방으로 돌입하여 보급선을 끊어 궁극적으로 적 3개 사단의 적을 붕괴시키는 공격 작전 때부터 막강한 화력 지원을 했었다. 서울 수복 후 다시 옛 주둔지 임진강 전선으로 복귀한 1사단은 이 10 고사포 포병 그룹과 함께 북진의 길에 올랐다. 평양 선두 탈환을 목표로 쾌속 진군하는 1 사단에 이 고사포 포병 그룹이 동행하며 지원을 했다. 북한군은 평양의 남방 15 킬로미터에 있는 지동리에  밀집된 토치카로 종심(縱深) 깊은 주 저항거점을 만들고 대기 하고 있있다. 방어선의 1사단이 12연대를 선두로 하여 야습할 때 10 고사포 포병 부대는 대규모 화력 지원으로 이 북한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일조를 하게 하였다.


  평양을 탈환하고 다시 북진 길에 올라 통일이 바로 눈앞에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유엔군은 중공군의 대거 개입이라는 큰 장벽을 만났다. 백선엽 장군은 제 2군단장으로 전보 되었으나 중공군의 매복 공격으로 전선이 위급하자 다시 1사단장직으로 되돌아갔다.그 때 1사단은 평북 운산에서 며칠째 중공군과 치고받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1사단 선두의 제 15연대는 이미 중공군과의 힘 부치는 전투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1950년 10월 31일, 다시 사단장이 된 백 선엽 장군이 운산의 1 사단을 찾아 갈 때 운산 주변 산악은 중공군들이 미 공습을 방해하느라 여기 저기 피운 산불로 연기가 자욱했었다.연기가 뒤덮은 골짜기와 산등성마다 우글거리는 중공군 병사들을 볼 수 있었고 살기(殺氣)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백 장군은 먼저 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는 미 포병 사령부를 찾아가서 헤닉 대령부터 만났다.

  헤닉 대령은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헤닉 대령은 정색을 하며 경고했다. "적이 계속 아군의 틈새로 파고 들어와서 포위망을 조이고 있습니다. 오늘을 견디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아직 사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백 선엽 장군은 "왜 그리 투지가 없습니까?" 하며 못마땅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나의 정직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오늘 중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한국군 1 사단과 우리 미군 지원 부대는 전멸 할 것입니다."  즉, 그날  밤 안으로 운산 아군을 단단히 묶어 버릴 중공군의 포위망이 완성 된다는 경고였다.


  노련한 헤닉 대령의 진지한 경고에 그제야 충격을 받은 백 장군은 1사단 연대장들을 만나보고 상황이 엄중함을 실감했다. 그는 즉시 국군 1사단이 배속되었던 미 1군단 사령관 밀번 장군을 면담하고 의견 상신을 하고 야간 철수를 허락받았다.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장군과 미 1 군단장 밀번 장군]


  그날 밤 후방 영변의 1사단 사령부에서 백 선엽 장군은 불안속에
1사단의 철수가 잘 진행되기만을 기도했다. 단지 북쪽 1 사단 쪽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며 철수 작전이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다소 안심을 했을 따름이다.


  한편 미 1군단 사령부에서 철수 명령을 받은 1사단은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밤을 도와 전 사단이 철수를 개시하였다. 헤닉 대령의 고사포 포병단 그룹은 1만 5천발의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백 선엽 사단장이 철수를 건의하러 가면서 부탁했던대로 적절한 사격 계획을 세워 1사단이 철수 작전을 개시하기 전부터 주변 산악에서 칼을 갈고 있던 중공군들을 이 잡듯한 지역사격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6.25 전쟁의 미 90mm 포 사격]

  헤닉 대령은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온 밤을 지새며 포사격을 직접 지휘했다. 표적 선정과 각 포대의 사격까지 직접 현장을 뛰어 다니며 격려하고 지도했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 표적의 크기와 셩격에 따라 보유했던 90mm 고사포와 155mm, 그리고 4.2 박격포의 포탄들의 불줄기를 표적에 들씌웠다. 90mm는 고사포는 표적에 따라 융통성있게 조준경으로 포착한 적군을 직사로 포격하거나 일반 곡사포와 같이 곡사를 해서 중공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일반 곡사포와 달리 째지는 듯이 날카롭게 울리는 90mm 고사포의 포성은 중공군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군 1사단에게는 헤닉 대령의 고사포 포병단 그룹뿐만 아니라 미 6전차대대의 대대장 그루던 중령이 지휘하는 50여대의 최신형 M46 전차까지 있었다. 엄청난 포병의 지원과 미 전차대의 엄호가 국군 1사단의 철수를 도왔다. 중공군은 그날 밤 한국군 1 사단도 포위하고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가 상상을 초월한 대 포격에 단념하고 불벼락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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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2월초, 송시륜이 지휘하는 중공군 9병단은
장진호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미 해병 1사단
섬멸에 미련을 못 버리고 함흥평야까지 쫓아 왔었다.

미군은 항구를 떠나면서 
남은 포탄을 모두 소진시키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여분의 포탄을 모두 뒤 쫓아온
중공군 측에 퍼부었다.

이 어마어마한 포격에 간 떨어지게 놀란 송 시륜의 중공군은
미 해병이 증원 군을 받아서 반격하는 줄 오해하고
추격을
중단한채 허겁지겁 대피했었던 전사가 이날 밤 불벼락을 맞은 중공군의
행동을 추측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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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밤  미군이 무자비한 포격으로 소비했던 포탄은 무려
1만 3천발이나 되었다.




[6.25전쟁에서 적진을 타격하는 90mm 고사포]

  헤닉 대령은 1사단의 철수가 다 완료된 후에야 포병들을 철수시켰고 마지막으로 포병 사령부도 철수시켰다. [미측 기록은 철수가 이틀간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있다.]어마어마한 화력의 지원 아래 국군 1사단의 3개 연대는 무사히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나 운산 10킬로 후방에 있는 입석-영변으로 모두 안전하게 철수 할 수 있었다. 포병 화력의 덕을 입어 철수하였던 1사단은 운이 좋았다. 며칠전 바로 옆 산줄기 넘어 1사단 우익에서 중공군의 잠복 기습에 크게 패하고 철수했던 한국군 2군단[6,7,8사단]이 비워 둔 공간을 채우려 진격해 들어갔던 미 1기병사단의 8연대는 중공군의 포위망에 걸려 섬멸적 타격을 입었다.


  이 연대에도 1사단과 같은 신속한 철수 명령이 내렸지만 집중적인 10고사포 포병 그룹의 사격에 국군 1 사단에 손을 못 대게 된 중공군이 방향을 바꾸어 전력을 미 연대 공격에 집중했기 때문에 포위망을 탈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최선봉의 3대대는 겹겹으로 포위당해 1기병 단장 게이 소장이 눈물을 머금고 구원을 포기했던 비운의 전멸 대대가 되었다. 900명 대대원중 700명의 대대원이 전사했거나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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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 실종자 상당수가 포로가 되었다.중공군은
대다수가 부상자였던
미군 포로들을 북한군에게 넘겨주었고
북한군은 수백 명의 이들 포로들을 강변의 모래 사장에
끌고가 모두
학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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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련한 헤닉 대령이 불안한 전세를 읽고
철수를 강력 건의 한 것이 전쟁 발발 초기 임진강 전선에서 사수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시간을 끌다가 1사단이 붕괴당한 쓰라린 경험을 했던 백 선엽 장군의 신속한 결단을 하게 했고 고사 포병단 그룹의 이은 활약이 1사단을 구조해 냈던 것이다. 8군 휘하에서 한국군 사단들 중에 별 피해 없이 건제를 유지하고 탈출했던 사단은 1 사단이 유일하다. 이 공로로 헤닉 대령은 미 정부로부터 은성 무공 훈장을 수여받고 나중에 장군으로 진급하여 근무하다가 은퇴했다.



[전쟁기념관에 숨어있듯 조용히 전시 된 M-2 고사포]

 

  고사포 포병 여단은 전선 교착후 1사단과 작별하고 중부전선에 배치되어 높은 고각 사격이 가능했던 90mm 고사포는 보통의 곡사화기들이 다루기 힘든 높은 고지의 적을 포를 높이 올려 쏘는 직사 사격이나 곡사 사격으로 강타하며 보병사단을 지원했다. M2 고사포는 6·25전쟁 뒤 국군에게 제공되기도 했지만 현역에서 은퇴했다. 유도탄이 도래한 신 시대는 그런 대형 대공 무기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6.25전쟁에서 미 90mm 고사포의 지상 목표 포격 실적을 
독일 88mm 고사포에 비교해보면 그렇게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나 90mm 고사포는 한국 제일의 정예 사단을 적의 포위에서 구출해낸 공적을 세우고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의 마지막 무대를 알차게 장식했다고 하겠다.



[전쟁 기념관의 M 2 고사포. 한국 수호의 한 공신인데 자기를 몰라보는 관람객들의 무심한 눈길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이 포는 서울 용산 전쟁 기념관에 가보면 볼 수가 있다.
별다른 설명도 없어 아무런 특징 없는 무기로 여긴 관람객들이 지나쳐 버리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국군 1사단을 중공군이 만든 죽음의 함정에서 구출했다는 이 고사포가 가진 역사의 향기를 맡아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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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mi5 2010.04.06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전쟁이 난다면 어찌될까 하고 생각해보네요..
    갑자기 끔찍해지네요..
    절대 그런 일 없어야되겠죠..^^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7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에 작전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런 작전을 원할하게 해주는 것은 장비와 물자다.
    우리는 자주국방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현대식 최신 장비를 갖추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3. 배상원 2010.04.0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기념관을 갈때마다 전시된 포들을 무심하게 지나쳣는데 다음엔 유심히 보아야 겠네요 ㅎㅎ

  4. 독립군토벌대장 2010.10.29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선엽이 개새기 목을 잘라 버리고 가족을 전체 매장시켜 버려 그 치욕을 너희 피로써 갚을 것이다

  5. 독립군토벌대장 2010.10.29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드시 갚는다 백선엽 백인엽이 북한에서 일제앞잡이 처단에 쫒겨 남한으로 내려와 이승만이의 반공주의에 되살아나 예전 독립군 토벌의 자랑스러운 경력은 내세우지 않은 채 개한미국의 장군으로 33의 나이에 합참의장이 되었다지? 역시 사람은 시대를 잘 만나고 눈치가 빨라야 하는구나 하지만 당신 가족과 당신의 목 그리고 당신이 죽고 난 후의 유골도 반드시 찢고 갈아 역사의 치욕을 반드시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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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공습한 미 공군 전투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01 09:52

[일본 쓰이키 기지에 주둔하던 F 80 비행단 기록 필름]


  6·25전쟁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보면 한 미묘한 사실이 발견된다.  남한과 북한의 후원국으로 간접적인 전쟁을 하면서도 직접대결은 극력 피했다는 사실이다. 전후 완전히 무장을 해제 하다시피했던 미국 자신도 그랬지만 유럽의 우방국들, 영국이나 프랑스등도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는 판국이니 대규모 무력 충돌은 피 할수가 없었다. 스탈린도 북한의 침략을 허락했었고 6·25전쟁중에 북한과 중국이 사용하던 전쟁무기들을 꾸준히 공급했으면서도 미국과 전면전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에 겁을 먹고 있었다. 소련 공군이 만주지역에 기지를 두고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참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조종사들에게 소련어가 아닌 중국어를 사용하라고 명령했었다.[조종사들의 반발로 이 무리한 명령은 취소되었다.]


   미군 역시 소련을 자극하는 군사행동은 자제했다. 6·25 참전 초기 황해에서 소련 해군기를 격추 시켰을 때도 비밀로 했었고 대청도 근해에 몰래 잠입해 들어온 소련 잠수함을 격침하고도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직접 대결을 피하기 위한 군사력 충돌을 피해 오던 양국의 조심성을 비웃는 직접적인 군사 공격이 있었다.


  미 공군기 두 기가 동해안에 인접한 소련 비행장을 공습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물론 상부로부터 지시를 받지 않은 공격이었다. 1950년 10월 8일. 소련 우라지보스톡 인근 쑤카야 레츠카 공군 기지를 두 기의 전투기가 공격했다. 동체에 별 표시가 뚜렷이 보이는 미 공군 F-80 두 기가 바다로부터 초 저공으로 내습, 비행장을 기총 소사했던 것이다. 이 F-80기들은 대구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 공군 49 전투 비행단 소속이다.


[소련 비행장을 공습한 전투기 형인 F-80 슈팅 스타기]


  대공 포대가 미처 손을 쓰기 전에 두 기는 일열[一列]로 주기한 소련 공군의 전투기들에게 기총소사를 가했다. 기총소사를 하고 스쳐갔던 두 F 80기들은 아무런 대공 사격이 없었던 것에 자신을 얻어 원을 그리고 되 돌아와 기총소사를 한번 더하고 재빠르게 도주했다. 이 소련 공군 기지에서 미공군기들에게 기총소사를 받고 격파 되었던 소련 전투기들은 공교롭게도 미국제 P-63 코브라 전투기들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초기 그 열등한 성능으로 일본 해군 제로기에게 고전했던 미 벨사 제작 P-39기를 성능을 개선한 형이다.


[P-63, 엔진이 비행석 뒤에 있다.]


  미군에게는 성능이 좋은 전투기들이 속속 투입되어서 이 전투기는 거의 쓰이지 않았지만 당시 독일군과 싸우던 소련군에 제공되어 주로 대지 공격기로 많이 활용하였다. 주둔했던 소련  공군 부대는 821 독립 초계 비행단이었다. 일열로 주기했던 탓에 12기의 P 63기들이 F-80의 기총소사로 구멍 투성이가 되었고 연료를 만충해 놨던 한 기에서는 화재가 발생해서 완전 염상(炎上)해 버렸다. 벌집이 되었던 전투기들은 그럭저럭 수리를 해서 다시 비행 가능 상태로 만들어 놓았지만 불붙은 한 기는 다 타 버려 수리가 불가능했다. 소련 측에게는 다행하게도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F-80 슈팅스타 , 한국 공군에서 이 기형의 연습기인 T-33기를 운용했었다.]


  난데없이 공습을 받은 소련은 격분해서 미국 측에 강경하게 항의했다. 미 공군은 즉각 조사에 착수했다. 그날 출격했던 두 명의 조종사들을 일본의 극동 공군 사령부에 불려가 치밀한 조사를 받았지만 두 사람은 ‘항법상의 실수’ 로 소련 영토에 침입해서 공습을 했다는 것을 굽히지 않고 주장했다. 미 공군도 그렇게 발표했다. 외교의 뒷 무대에서 미국이 ‘유감‘ 표명 정도의 사과는 했는지 하여튼 소련은 이 문제를 크게 확대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다. 소련 비행장을 습격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속내는 지금으로서 알 수는 없다.



[P-63]


  그리고 이 동해안 최북단은 주로 미 해군 함재기들이 활동하던 구역이었는데 미 공군 F-80 전투기가 이 먼 곳까지 출동한 것도 좀 이색적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비슷하나마 추정 할만한 배경은 있다. 당시 동해안에 가장 근접한 곳에 있었던 중국 군용 비행장은 두만강 바로 옆에 위치한 훈춘에 있던 것이었다. 몇 년 전에 가 보니까 비행장은 없어지고 밭이 되어있었다. 훈춘 비행장의 공중 정찰 사진을 북한 땅에 있는 비행장으로 잘못 분석했던 결과를 비행사들에게 브리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훈춘 비행장과 우라지보스톡- 보이지는 않지만 우측 만에 있다.]


  가까운 북한 땅 회령에 옛 일본 육군 항공대의 9 비행연대 비행장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오해의 소지는 기본적으로 있었다. 그러니까 출격한 비행사들이 소련 비행장을 발견하고 이를 북한 비행장으로 착각하고 공격할 수 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일도 있었다. 6·25전쟁 초기 일본에서 평양을 폭격하고자 야간 출격했던 비행대가 전북 만경강을 대동강으로 오인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으로 오인한 이리를 폭격했던 어이없는 사례가 있었다. 이 실수가 소련 비행장 폭격 같은 오류는 얼마든지 범할 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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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사는 이리역!
    이리 역은 이렇게 전쟁시 폭격을 당했고,
    이후에 1977년 11월 11일 밤 한국화약열차에 의해 또 한 번 폭파되는 사고가 있었다.

    이 두 사건이 이리역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물론 삼일만세운동이나 기타 의병활동도 있기는 하였지만 단일 사건으로 가장 컷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2. cons for your home 2012.06.05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러한 특정 문제가 지금은 꽤 한동안보고 왔습니다뿐만 아니라 당신의 통찰력이 실제로 특별한 것을 무언가이다. 이러한 기록을 확산 주셔서 감사합니다.

  3. helpful internet site vitality 2012.06.05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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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irst aid kit for caravan 2012.10.21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후에 1977년 11월 11일 밤 한국화약열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