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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6 16. 누가 빠른가??? (22)
  2. 2010.02.12 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12)
  3. 2010.01.18 6. 서울에서 지체한 북한군 (8)

16. 누가 빠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6 10:25


 

  제19연대장 무어 대령이 하동을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히는데 채병덕 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지고 참모총장(당시에는 총참모장으로 통칭)에서 해임된 후 단지 명칭만 있는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되어 있던 채병덕은 무어에게 하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격부대의 안내역을 자임하였습니다. 무어는 채병덕의 의견에 동의하고 하동을 공격하여 가급적 오랫동안 확보함으로써 진주 방어를 위한 시간을 획득하려 결심하였습니다.


[미군의 무덤으로 변한 하동고개]


  제19연대에 긴급 배속된 미 제29연대 제3대대는 무어의 명령에 따라 26일 0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동 동쪽 8킬로미터 지점의 횡천리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야간행군을 위험하게 생각한 제3대대장은 하동으로 진입을 다음날로 미루고 횡천리에서 일단 숙영하였는데, 당시 제3대대 병사들은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을 한잠도 자지 못했을 만큼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누렸던 마지막 휴식이었습니다.


  연대의 명령에 따라 27일 08시 45분경 하동고개를 향해 출발한 제3대대는 09시경, 우계리 일대에서 10~15명의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이들을 추격하였는데 그것은 북한군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북한군의 뒤를 쫓아 하동고개로 진입한 순간 매복하여 있던 적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고 순식간 고개에 갇힌 제3대대는 대항도 못해보고 붕괴되었습니다. 7월 28일에 집계된 피해는 전사 2명, 부상 52명, 행방불명 349명으로 추산되었고 제3대대를 안내하던 채병덕도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북한군이 유인책에 미군이 완벽하게 결려든 전투로 그해 9월 말, 미 제25사단이 하동을 탈환했을 때 미군 시신 313구를 발견하였을 만큼 치욕스런 결과였습니다.


[상황을 오판한 미군은 참담한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하동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하였음에도 제8군사령부는 그때까지도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적은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진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7월 29일 오전부터 정면공격과 함께 양익포위 공격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7월 31일 06시경 진주를 함락시키게 되었을 때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가 확인되었고 미군은 경악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북한군이 마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은 부산에서 불과 4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증원군은 아직 바다를 건너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산을 노리는 적은 예상과 달리 2개 사단의 엄청난 규모였지만 이를 막아야 할 미 제24사단은 만신창이 상태였습니다. 긴박성을 감안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유일한 예비인 제27연대를 마산에 투입하고, 7월 31일 부산에 상륙할 예정인 제5연대 전투단을 마산에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싸움은 “북한군이 부산을 점령하는 것이 빠른가? 증원군이 부산에 상륙하는 것이 빠른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미 제25사단은 놀라운 기동을 선보이며 마산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결국 워커장군은 8월 1일부로 전 전선을 낙동강 선으로 철수시켜 병력을 절약하고, 상주에 있는 미 제25사단을 240여 킬로미터를 이동시켜 마산 정면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마산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군 제6사단의 예상치 못한 진격이 유엔군을 놀라게 하였지만 이제부터 미 제25사단은 이를 능가하는 기동을 전사에 선보였습니다. 만난의 난관을 극복하고 미 제25사단은 36시간 만인 8월 3일 17시 30분, 마산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강화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보지 못한 이러한 놀라운 이동 전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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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냥 내어준 호남평야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2 08:28


 

  7월 20일, 치열한 교전에도 불구하고 대전이 함락되자 아군은 소백산맥을 넘어 후퇴해야만 했습니다. 삼남의 갈림길인 교통의 요지 대전을 지나면 길이 크게 둘로 갈라지게 되는데, 하나는 대구를 거쳐 부산에 아르는  경부가도고 또 하나는 전주를 거쳐 목포에 이르는 호남가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황급히 미군이 참전하였지만 아군의 부족한 전력으로 이 축선을 모두 방어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7월이 되어서도 북한군의 진격은 매서웠습니다.]


  일본에서 건너온 미 제8군은 사령부를 대구에 신속히 설치하여 전의를 가다듬었지만, 호남 방면으로 내려 올 북한군을 상대할 전력은 없었습니다. 국군의 경우는 대전 함락직전인 7월 17일에 서해안지구방어사령부를 황급히 편성하였으나, 병력과 장비 면에서 소규모 민병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난관에 봉착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대전 전투에서 참패 후 부대 재편을 서두르던 미 제24사단으로 하여금 호남지역을 포기하는 대신에 전선을 축소하여 외곽인 진주-함양-거창에 이르는 100킬로미터의 방어선을 점령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 제24사단은 대전에서 당한 피해가 워낙 커 제대로 된 전투력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태였습니다.


  제8군은 이런 조치와 더불어 항공정찰을 강화하였는데, 장마철로 인하여 기상이 나빠 7월 20일 이후 호남지역으로 내려오던 북한군의 행적을 놓쳐 버렸습니다. 비가 그친 23일, 한 무리의 북한군이 군산에서 전주 방향으로 남하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제8군사령부는 이 부대가 대전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던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라고 판단하고, 이들이 현 상태로 계속 진출한다면 7월 25일에는 전주까지 진출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항공정찰이 불가능하였던 3일간에 북한군은 아군의 배후를 위협하는 놀라운 기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의 호남석권은 아군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 제4사단이 아니라 천안전투 이후 행방이 묘연하였던 북한군 제6사단이었고 어느새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호남평야를 가로질러 경상남도 진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7월말까지 제8군은 호남지역의 북한군은 대전 점령 후 금산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 거창으로 내려오고 있던 제4사단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안에서 제4사단과 갈라져서 아군의 감시망을 벗어난 서해안의 장항선 철도를 따라 남진한 부대는 방호산(方鎬山)이 지휘하는 북한군 제6사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장항에서 금강하구를 도하하여 군산으로 넘어온 후 호남지방을 폭풍처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전주(20일), 광주(21일)를 차례로 점령하였고 이후 연대 단위로 흩어져 목포와 여수를 점령한 후, 순천(25일)에 집결하면서 호남지역을 순식간 석권하여 버렸습니다. 그때서야 아군은 북한군 제6사단의 실체를 포착하였습니다. 미 공간사(公刊史)에는이 정보가 미국의 전쟁지도 방침을 변경시켰다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많은 미국의 전략가들이 북한군 제6사단의 기동은 한국전쟁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동이었다라고 경탄하게까지 만들었을 만큼 제6사단의 갑작스런 등장은 아군의 허를 찌른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제29연대 투입 직전의 하동]


  북한군 제6사단으로 인하여 경상남도의 서쪽 초입인 진주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워커는 이곳에 배치된 미 제24사단 제19연대의 전력 증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극동군사령부에 병력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 본토에서 열흘간의 항해 끝에 오키나와 도착한지 하루도지나지 않은 미 제29연대의 두 개 대대(제1,3대대)가 시급히 한반도로 이동하였습니다. 이들은 24일 부산을 거쳐 25일 진주에 도착하였지만 개인화기의 영점 조정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쉬지도 못하고 화급하게 제19연대에 합류하게 된 제29연대의 제1,3대대 장병들에게 제19연대장 무어(Ned D. Moore) 대령의 생각지도 못한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즉시 제1대대는 함양군 안의면 지역을 점령하여 방어하고, 제3대대는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하동을 공격하여 즉시 탈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령을 접수한 모트(Harold W, Mott) 제3대대장은 부대원들이 전투경험이 전무한데다 상황에 익숙지 못함을 들어 일단 방어에 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무어의 명령은 완강했고 그것은 비극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단 하루의 여유도 얻지 못한 채 전쟁의 모닥불 속에 던져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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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지코리아 2010.02.12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낼모레가 구정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명절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 백운도사 2010.02.13 1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탑재 될때마다 글 하나씩 읽어 나가니 625가 그림처럼 그려지네요

    당시 얼마나 다급했나 그들의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625 60주년을 기해 만든 이 블로글에 많은 사람이 방문하여 626를 알았으면 좋겠네요

    전쟁 얘기를 이렇게 쉽게 작성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글 계속 올려주세요

  3. 탐진강 2010.02.14 12: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남을 한순간에 점령당했군요

  4. clothing factory 2011.05.25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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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서울에서 지체한 북한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1.18 09:28

 6. 서울에서 지체한 북한군

  상식과 전혀 반대로 엉뚱한 일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를 흔히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가장 극한 상황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전쟁터에서 이런 모습은 의외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또한 그 과정을 살펴보면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많은 미스터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개전 초에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공격하지 계속하지 않고 3일간이나 지체하였던 일이었습니다. 분명히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중동부전선에서 선전한 국군 제6사단 외에 전선의 상황은 상당히 비관적이었는데, 바로 이때 북한군 주력이 진격을 멈추고 서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군의 서울 점령을 상징하는 중앙청에 게양된 인공기]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과 아군 주력을 고립시키면서까지 시도된 한강교 폭파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한강에는 인도교(현 한강대교 구교)와 3개의 철교가 있었는데 2개의 철교가 폭파에 실패하여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북한군은 물론 국군에게 극심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며 남침의 선봉장 노릇을 하던 전차들까지 마음만 먹었다면 신속하게 한강을 건너 패주하고 있던 국군을 추격을 계속할 수 있었었습니다. 만일 이때 북한군의 진격이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면 국군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사실 북한 스스로 이에 대하여 명쾌하게 밝힌 자료가 없기 때문에 추측만 있고 이것이 미스터리가 되어버렸지만, 그러한 이유 중 하나로 당시에 북한이 정세를 크게 오판하고 있었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남침계획 수립당시 북한의 전쟁지도부는 “서울을 점령하면 남한 전 지역에서 남로당원이 봉기하여 이승만 정부가 순식간 붕괴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6월말까지도 민중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것은 전후에 김일성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세력을 숙청 할 때 구실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폭파되지 않은 한강 철교를 6월 30일 미군기가 폭격하는 모습 ]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한군이 3일간 서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알아본 바와 같이 북한의 초기 계획을 완전히 망쳐버린 국군 제6사단의 대승과 김포축선을 방어했던 김포지구전투사령부의 분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의정부 축선을 돌파하여 서울을 선점한 북한군 제3, 4사단의 좌우익 상황이 지지부진하자 더 이상 단독으로 앞서 나가기 힘들었던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북한군의 지체를 틈타 육군본부는 한강선 방어를 위해 임시로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편성했고 삼삼오오 한강을 도하해오는 철수병력을 재편성하여 6월 29일에는 간신히 한강방어선이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을 점령한 후 3일간을 지체했던 북한군은 그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고, 더불어 미국 지상군의 조기 참전가능성이 대두되자 6월 30일 밤부터 한강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전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을 마주보고 치열한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고 난 후인 7월 1일 04시, 철교를 이용하여 4대의 적 전차들이 강을 건너고 후속하여 북한군 주력이 영등포까지 진출하자 그동안 아군이 필사적으로 막아내던 한강 방어선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국군은 7월 3일, 경부축선을 따라 남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한강철교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는 북한군 전차]

  필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강 방어선은 붕괴되었지만 국군과 북한군이 한강을 사이에 놓고 대치했던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의 5일간은 전쟁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그러한 시간이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한강교 폭파로 인해 적진에 고립되며 붕괴되었던 국군 주력 부대들이 천금같은 5일간의 시간을 이용해 부대를 수습하고 재편성하여 지연전을 전개할 수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미군이 증원되어 참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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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sablanca 2010.01.22 0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은 비극이지만 마치 소설처럼 미스테리가 많군요.

  2. clothing factory 2011.05.25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3. 제르 2011.10.20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전쟁역사를 좋아하는데.. 이런 보물같은 자료들을 찾았군요

    감사합니다...

  4. business card printing template 2012.04.20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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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business cards software download 2012.04.20 12: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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