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가 다투는 미군 TOP 에이스 격추 전공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9.02 13:10

 한반도에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월 10일. 미 5공군은 최고 에이스 한 명을 북한 평북 군우리 상공에서 잃었다. 에이스(Ace)는 5기 이상을 격추한 조종사에게 주어지는 영예 칭호다.

[데이비스 소령]


 적기 14기를 격추한 공군 소령 조지 데이비스 소령이 적 미그기에게 피격당해 비상 탈출도 못하고, F-86 애기(愛機)와 같이 추락하여 전사했다. 데이비스 소령은 1942년 임관하여 태평양 전쟁 동안 P-47 조종사로 출격했었다. 그는 뉴기니아 전역(戰域)에서 일본기를 7기나 격추하여 태평양 전쟁의 에이스가 되었다. 그는 미 공군 조종사 중 태평양 전쟁과 6ㆍ25전쟁 양 전쟁에 걸쳐 각각 5기 이상 격추한 더블 에이스 일곱 명중 한 명이었다.

 6ㆍ25전쟁 중에 최고 격추왕은 공산기 16기를 격추시킨 조셉 맥코넬 대위였었고, 그 뒤를 15기 격추의 제임스 자바라 소령과 14.5기를 격추한 마뉴엘 헤르난데즈 대위가 따르고 있었다.

[15기 격추의 제임스 자바라 소령이 조종하던 F-86]


 데이비스 소령이 피격당해 전사하기 전 그는 14기를 격추함으로써 조만간 6ㆍ25전쟁의 격추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는 학교 선생처럼 얌전한 외모와 조용한 성격을 가졌지만, 하늘에서는 겁 없는 킬러로 돌변했던 타고난 에이스였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데이비스 소령이 격추했었던 적기들은 미숙한 실력의 중공군이나 북한 조종사들이 모는 것들이 아니라 모두 미군과 동등한 실력을 가진 솜씨 좋은 소련 조종사들이 조종하는 강적들이었다.

[334전투비행단 중앙이 단장 프레스톤 대령(4기 격추), 오른쪽이 데이비드 마샬 소령(6.5기 격추), 좌측이 조지 데이비스 소령(14기 격추)]


 이날 마지막이 된 출격은 그의 14번째 출격이었다. 6ㆍ25전쟁 격추왕 맥코넬 대위도 적기에게 격추 당해서 서해상에서 구출된 바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스 소령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가 전사하고 이틀 뒤에 미 공군은 깊은 애도와 함께 그의 전사를 발표하였다. 데이비스 소령은 사후 미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받았다. 미국 탑 에이스중의 한명을 격추했다는 소식에 놀란 중국 공군은 자체 조사를 벌여 조종사 장지휘가 데이비스 소령을 격추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지휘에게 전투 영웅 지위를 수여하고, 그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데이비스 소령이 격추된 진상에 대해서 여러 이견이 있다. 미군 측의 발표는 이렇다. 데이비스 소령은 그의 편대기 한 기의 산소가 다 떨어져서 동료기의 호위를 받고 김포 기지로 돌아가고 그와 그의 동료기(윙맨) 2기만 계속 작전을 수행 중에 12기의 적 미그기를 발견하였다.

 미그기들은 F-84가 대지 공격 작전 중인 남쪽 군우리 방면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데이비스 소령은 윙맨과 함께 급강하하여 미그기들을 공격하였다. 데이비스는 미그기 한 대의 후미를 잡고 기총탄 세례를 가해 이를 격추시켰다.

 첫 번째 적기를 격추하자 이어 목표를 바꾸어 두번째 적기를 추격하여 사격을 가했다. 이때 그의 후미에 미그기가 나타나서 공격해왔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개의치 않고 공격을 계속하였다. 후미의 적기는 이 순간 사격을 개시하였다. 이 사격이 데이비스 소령의 조준을 흐트러지게 하여 앞의 적기는 파손만 입고 도주했다.

 이 순간에 데이비스 소령은 가속하고 급강하로서 후미의 적기를 떨쳐내는 회피 비행을 하여야 했지만 그는 오히려 대담하게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틀어 세번째 적기를 공격하려고 하다가 뒤를 쫓던 적기의 명중탄을 받고 압록강 남방 30리 지점에서 격추되었다.

 위의 발표가 미 공군이 발표한 내용이다.

 반면 중공군 공군의 발표는 이렇다.

 데이비스의 소령이 포함된 대군의 미 공군기를 요격하러 출격한 중공군 미그기 전투단은 장지휘와 그의 동료 지유의 미그기들은 주력 편대들과 잠시 분리 되어서 날아가고 있었다.

[소련의 미그 15기 - 소련 격추왕 뻬뻬랴프 상좌(22.5기 격추)의 미그기다.]


 장지휘와 그의 동료 지유는 본대와 다시 합류하려고 방향을 잡아 비행을 하던 중에 장지휘는 평북 태천 부근 상공에서 8기의 F-86기가 비행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즉각 급강하하여 두 기의 F-86을 공격하였다. 그는 첫번째 기를 격추하였고, 이어서 두번째 기도 격추하였다. 

 첫번째 기가 데이비스의 소령의 전투기이고 두번째 기가 동료 편대원 윌리엄 A. 리틀필드 중위의 기였다. 리틀필드 F-86기는 격추된 것이 아니라 피해가 경미해서 남한 김포 비행장으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그러나 금방 다른 미군 F-86기들이 습격해 와서 장지휘와 그의 동료 지유의 기도 격추되었다.

 장지휘는 낙하산으로 탈출해서 살아났으나, 동료 지유는 전사했다. 두 사람의 미그기를 격추한 미 조종사들은 도날드 로드왈드 소령과 제임스 R. 로스 중위로 추정되지만, 그들의 건 카메라에 격추 사진을 찍지 못했고, 목격한 동료 조종사들의 증언이 없어 격추로 인정받지 못했다.

[장지휘]


 미국의 발표에 미 공군의 탑 에이스가 북한 상공에서 격추된 것을 알게 된 중국 공군은 즉각 그날 출격한 조종사들의 출격 보고서를 검토해서 그를 격추한 중국군 조종사가 장지휘라는 사실을 주목하고 격추 현장에 수색대를 급파해서 이를 확인했다.

 수색대는 격추 된 F-86기와 데이비스 소령의 유체(遺體)를 발견하고 데이비스 소령의 소지품을 회수했다. 그의 추락지점은 낙하산으로 탈출한 장지휘가 착륙한 지점으로부터 500미터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과 지상에서 공중전을 지켜본 중공군 149사단 병사들 20여명의 증언에 따라 중국 공군은 장지휘를 데이비스 소령을 격추한 조종사로 발표하였다.

 장지휘에게는 이 날의 공중전이 그가 경험한 최초의 공중전이었다. 그러니까 데이비스 소령은 중국 애송이 조종사에게 당한 것이다. 장지휘는 6ㆍ25전쟁 중 총 10회의 공중전을 겪었고, 4기의 미군기를 격추하였다. 그는 그 후 소련 유학도 다녀오고 중국 공군에서 승승장구하여 공군 참모 차장(부사령원)까지 승진하였다. 퇴역 후에는 엔타이시 부시장을 지냈다.

[데이비스 소령의 건 카메라에 촬영된 MIG-15 기 격추 장면]


 중국이 미국의 탑 에이스 중의 한 명인 데이비스 소령을 격추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교전국인 미국을 비롯해서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이나 국가가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40여년이 지나고 나서 소련에서 중국 공군의 데이비스 소령 격추를 부인하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소련은 미하일 아키모비치 아베린 중위가 데이비스 소령의 F-86기를 격추한 조종사라는 사실을 미디어를 통해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이날 출격했던 소련 공군 64항공사단의 조종사들은 중국 공군의 미그기들이 미군기에 공격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달려가 아베린 중위가 데이비스의 F-86기를 격추하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소련 64항공사단장 게오르게이 로보포 퇴역 중장이 집필했던 회고록에서 짧지만 언급되었던 내용이기도 했다. 즉 데이비스 소령을 격추한 장지휘와 그의 동료는 데이비스 소령이 격추한 미그기들의 조종사라는 것이다.

[비행운을 배출하는 F-86]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고, 현재 항공 전사 전문가들은 결정적이고 객관적인 물증이 없어서 어느 쪽이 진짜 승자인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날 동료기로서 같이 출격했다가 데이비스의 피격 장면을 지켜보았던 리틀필드 중위는 데이비스 소령 기를 겨냥한 미그기의 37mm와 23mm 포탄사격이 조종석 부근에 집중 폭발했었기 때문에 데이비스 소령이 추락 전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날 일기에 변화가 있어서 항상 고공에서는 볼 수 있는 미그기의 배기 구름을 발견치 못했다는 것도 피격의 불운을 만난 한 원인이 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항공 작가는 데이비스 소령이 6ㆍ25전쟁의 최고 에이스가 되고 싶은 욕망에서 중국의 미그기가 따라 붙은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무리하게 적기를 격추시키려다 오히려 격추되었다고 애석해 했다.

 이는 태평양 전쟁 때 격추왕 리차드 봉 소령(40기 격추)을 두 기 차이로 뒤쫓으며 기록갱신의 조급함으로 공중전 중에 P-38기의 연료 탱크를 단채 급회전을 하다가 추락하여 전사한 토마스 맥과이어 소령(38기 격추)과 그 경우가 아주 유사하다.
 (비행 거리를 늘여 적기를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맥과이어는 적기와 만나서도 연료 탱크를 버리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중 미 두 탑에이스가 조종했었던 P-38]


 추락한 데이비스 소령의 유체에서 회수했던 군번은 현재 단동의 항일원조 군사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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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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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미원조가 맞습니다

  8. 동북아 2013.04.15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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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vanessa bruno pas cher 2013.04.19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춤형 오픈캐스트를 준비하는 풀반장이었습니다~

‘갑산의 백정 놈’ 공습 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5.06 20:17

1951년 함경북도에 갑산지역에 낙하산으로 투입 된 31명의 영도부대는
이 지역에서 자생해서 활동하고 있던 백호부대라는 유격대와 합류해서
활기봉을 근거지로 삼고 왕성한 게릴라 활동을 하였다.

영도부대는 미국 CIA에서 조직하고 훈련시켜 적지에 투입한 유격대였다.
본부가 부산 영도에 있다 해서 영도부대라 불렸다.

[북한의 후방에서 활약하다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한 영도부대에 대해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영도부대가 험준한 산악지대인 갑산과 삼수, 혜산진 등에서 출몰하여
후방지역에서 유격활동을 펼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지역 공산당 간부들은
1951년 8월 29일 갑산에서 삼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 그리고 군 간부들이 회합을 가지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또한 남한 유격대 소탕의 결의대회를 하기로 하였다.

이 지역의 리[里]당 위원장같은 조무래기 공산당 간부까지
총망라해서 참석한 붉은 대회였다.

갑산에 정보망을 구축(構築)해 놓았던 백호부대는 이 정보를 입수하자
무선으로 부산 영도의 본부로 바로 보고했다.

여러 단계에 걸쳐 논의가 오고 간 끝에 이들 공산당 수뇌부를 공중 폭격으로
격멸하는 임무가 동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 해군 기동부대인
CVG-5에게 주어졌다.

갑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항모 에섹스 함 - 태평양 전쟁중에 24척이 건조된 에섹스급의 선두함이었다.

그 때까지 미 해군기가 갑산같이 먼 북쪽까지 출격한 일은 없었다.
먼저 10월 25일 정찰기가 고공으로 갑산 상공을 비행하며
공산당 간부회의가 열릴 갑산 읍내 중심부 지역의 사진을 촬영해왔다.

조종사들은 정찰기가 촬영해온 사진을 면밀하게 분석하며 목표를 익혔다.

특징있는 주변의 지형지물과 건물들이 공격 목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목표 지역은 동서쪽에 큰길이 감싸고 있었고 남쪽에는 도랑이 있었다.
동쪽의 산언덕 자락이 목표지역으로 뻗어 나와 있었다.
주요 목표들은 담으로 나누어진 세 개 구역 내 건물들이었다.

건물들은 모두 16 동이었다.
각 건물들은 목재와 시멘트로 만들어져서 화재에 무방비인 취약점이 있었다.

이들 건물 중의 한 동은 북한의 내무서였다.
북한군 대대 본부 건물도 있었다.

그리고 북쪽 구역에 있는 제일 중요한 목표인 조선 노동당 강당도 있었다.
이 강당에서 붉은 간부들의 결의대회가 있을 예정이었다.

이 지역에 낯선 미 해군기의 출현을 위장하기 위해서 10월 28일 갑산에서
동남쪽으로 35마일 떨어진 속현이라는 곳의 공장 시설을 폭격했다.

1951년 10월 29일 새벽 03:30과 04:00 사이에 기동부대 조종사들은 모두 기상해서
식사를 하고 출격 브리핑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받고 숙지했다.

갑산에서의 공격은 9시에 개시될 예정이었다.
VF-53의 비행 부대장 클레이튼 피셔 중령은 갑산의 대공 사격은
미미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간 주로 적의 대공화망이 밀집 된 철도이나 교량을 공격하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던 조종사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안 좋은 정보도 들려주었다.
갑산이 구조 헬리콥터의 운행 거리 밖이기 때문에
만일 격추되더라고 구조 헬기의 파견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사전에 공습이 적에게 발각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격대는 이륙과 동시에 파도 높이로 바다를 건너 육지에 진입하면
나무 높이로 저공 비행할 예정이었다.

목표에 도달하면 수직으로 고도를 올려 공격하는 것이 작전의 전모였다.

이들 공격대의 조종사들은 갑산일대에 영도 부대의 유격대가 활동하고 있으며
공습과 동시에 이들도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07:30에서 07:45 사이에 CVA-15의 항모(航母) 에섹스 함에서
콜세어 기들과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이륙하였다.


갈매기 형의 날개를 가진 F4U 콜세어기

대기는 맑고 조용해서 비행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피셔 중령이 8기의 F4U 콜세어 기 공격대를 지휘했다.

8기의 콜세어 기들은 두 개의 4기 편대로 구성했다.
각 콜세어 기들은 500파운드 폭탄 한 발과 4발의 소형 폭탄들을
적재하고 있었다.

VF -54의 비행대장 폴 그레이 중령이 지휘하는 8기의 AD 스카이레이더 기들도
4기 일개 편대로 구성되었다.

이 대형 공격기들은 2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300갤런의 네이팜탄,
8발의 소형 250파운드 폭탄을 운반할 수가 있었다.
단발 프로펠라 기로서는 대단한 무장량이었다.

6ㆍ25전중 항모에서 이륙하는 스카이레이더 기
[당시 AD 스카이레이더로 불렸음]

공격대가 운반해갈 총 44,000파운드의 폭탄이 3-4 에이커 넓이의
갑산 읍내 목표 구역에 퍼부어질 것이었다.

항모에서 이륙한 공격기들은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편성하고,
먼저 갑산 남쪽 속현 쪽으로 날아갔다.

그 하루 전 속현에 가한 공습의 위장 효과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공산군들은 미군기들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속현을 공격하기 위해서
출격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공격대는 무선 침묵을 그대로 유지하며 속현의 서쪽을 지나자마자
기수를 수직으로 들고 급상승으로 폭격 고도를 높였다.

이제는 단 8분내지 10분 정도만 지나면 갑산의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설사 갑산의 공산군들이 눈치를 챘다 하더라도
대비하기에 너무 촉박한 시간이었다.

공격대는 8,000피트 상공에서 수평을 잡자마자 급강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대는 해 뜨는 아침인 이 시간에 동쪽에서 해를 등지고 갑산에 쇄도했다.

기습은 대 성공이었다.
아무런 대공포화도 상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북쪽에 위치한 갑산은 지금까지 별다르게 심한 공습을 당하지 않았기에
대공포대도 없었고 방공호는 그저 형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더해서 표적 지역내에는 공습으로부터 모두를 보호하기에
너무 많은 공산당 간부 인원들이 몰려와 있었다.

공격기들이 급강하하는 순간이 적의 대공포가 포문을 열기에 적절한 순간이었다.

조종사가 목표를 조준하는 집중력을 분산시켜서 폭격의 명중도를 낮추는 반면
항공기가 지상 접근의 순간에 대공포화의 명중도를 높일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산에서는 그렇게 할  대공포화가 없었다.
덕분에 각 공격기들을 적재한 모든 폭탄을 목표에 투하시키고
이탈하는 공격 전술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갑산 공격기들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폭격 전법을 최대로 활용할 수가 있었다.

한 목표에 여러 번에 걸쳐 폭탄을 나누어서 투하를 할 수가 있던 것이다.
첫 폭격은 F4U 콜세어 기가 맡았다.


동해에서 동계 해상 작전 수행중의 함상 콜세어 기들

공격 대장 피셔 중령은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스카이레이더 편대의 공격에 앞서 콜세어 편대를 이끌고 급강하했습니다.
나는 급강하 중에 내 시계를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확히 09:00이었습니다.
나는 지상에 서있는 높은 무선 통신 안테나 탑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탑에 바로 옆에 있는 큰 건물을 조준하고 폭탄 투하를 했습니다.”

500파운드 폭탄들을 투하한 콜세어 기들은 후속한 대형기
스카이레이더 기들이 공격하도록 왼쪽으로 반전해서 선회하면서
뒤따라 가하는 스카이레이더 기들의 가공할 공격력을 지켜보았다.

콜세어 기들을 후속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접근하면서 먼저
첫 1,000파운드의 대형 폭탄을 500피트에서 1,000피트 사이의 상공에서 투하했다.

대형 폭탄을 투하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콜세어 기와 같이
좌측으로 상승 선회한 뒤 다시 돌아와 목표물에 나머지
1,000파운드 폭탄을 투하하였다.

다시 좌선회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선회 후 세 번째로 목표물을 타격했다.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300갤런의 네이팜 탄을 투하했고,
나머지 4기의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20mm 기총 소사를 하였다.

폭탄 적재량이 엄청난 스카이레이더 기들은 돌아와서 네 번째 공격을 했다.
네 번재 공격에서는 공격에서 파괴되지 않은 건물들에
소형 250파운드의 폭탄을 뿌리거나 시설물에 기관포 사격을 가했다.

조종사로 공격에 참여했던 허버트 리베링 대위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수레바퀴 모양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형 비행 대형을 만들어
빙빙 선회하며 폭격하고 상승하고, 폭격하고 상승하는 공격을 몇 번이고
반복했지요. 목표 지대는 연옥같이 변해버렸어요.”

갑산 읍의 심장부에 대한 공격은 아무 저항도 없이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에섹스에서 출격한 16기의 공격대는 한 기의 피해도 없이 항모로 무사 귀환했다

스카이레이더 공격대 대장 그레이 중령은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가 목표지역을 떠날 때 지상에는 남아 있는 아무 것도 없었고
거대한 파괴의 더미에서 엄청난 연기만 솟아오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촬영한 정찰 사진을 판독해본바 우리 공격대가 투하한 폭탄은
큰 도로로 둘러 싸여진 갑산 중심부 목표 지역에 단 한발을 빼놓고는
모두 명중했습니다.
목표 지역을 세 구역으로 나누어 놓은 담도 한 줄만 남고
모두 날아갔습니다.”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 19명의 백호 부대가 갑산 내무서를 습격해서
15명의 반공 인사를 석방하였다.

갑산에 주둔했던 북한군들은 놀라서 엉성한 방공호로 도망쳤으나,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이 공습에서 산수 갑산 혜산진의 공산당 간부들과 군 간부들과
내무서 간부들이 전멸해버렸다.

나중에 영도부대는 북한 공산당 간부들이 이 공습으로
510명에서 530명이나 죽었다는 정보 보고를 해왔다.

삼수, 갑산, 혜산진의 조선 노동당 군당 조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제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기대 수명 5년의 숙명을 타고 난 스카이레이더 기는
월남전까지 겪고 1985년 가봉 공군에서 최후로 퇴역하였다.

이 공습에서 지방 간부급 졸개들이 줄초상이 나자 평양의 김일성 집단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했다.

평양 방송은 며칠을 두고 야만적인 폭격을 해댄
미제국주의자들을 광란적으로 규탄하였다.

방송은 조종사들을 “갑산의 인간 백정 놈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갑산 폭격 조종사들에게 거액의 현상금을 걸었다.

다행히 6ㆍ25 전쟁 중 갑산 작전 참가 조종사들중에 북한의 포로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그 때 북한의 증오서린 욕설이 인상 깊었던지 갑산 공습 작전을 소개했던
참전 해군 조종사가 갑산의 백정 놈[The butchers of Kapsan] 작전이라고 부른 것이
그 뒤에 미 해군 전사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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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car insurance 2011.10.0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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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online casino 2011.10.10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 써긴했지만... 그래두 성의니까... 가능한가염

  4. dual saw 2011.10.12 1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항공 공격 작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1958년 미국내의 한 TV 방송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5. bad credit car loans 2011.10.18 2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견에 앞서 파병업무를 협조하기 위하여 연락장교단을 한국에 파견하였으며 이 협조과정에..

  6. Dan 2011.10.22 0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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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du lich hongkong tron goi 2012.12.14 1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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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공호에 명중했던 지연 신관을 장착한 폭탄이 폭발해
    폭격대가 철수한 후 안심하고 있다가 다수가 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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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free credit report 2013.01.09 0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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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obat alami sakit jantung 2013.02.06 2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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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onlineaccountsoftware 2013.02.13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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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 Social Bookmarks 2013.05.13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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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은 기동부대 기함인 항모 에섹스 함에서 약 190 마일 북방에 위치해 있었다.

호주 해군 조종사의 극한 구조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6.19 09:32

 

6·25전쟁은 최초로 헬리콥터가 조종사 구출 작전에

동원되는 전쟁이었다.


아직 거리가 멀거나 바다위에 불시착한 조종사 구출에는

장거리의 비행정이 동원되었지만 거의 헬리콥터가 구출의

주역을 하였다.
 


시콜스키 HO3S 미 해군 헬리콥터
------------------------------


적진에 추락한 조종사를 구출하는 것이라서 -

- 때로는 공중전이나  대지공격보다는

더  위험한 임무가 공중 구조 작전이다.


6·25전쟁중  위험했던 조종사 구출 작전 중에 아주 아슬아슬했던

구조 작전 하나를 소개한다. 내가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6·25전쟁 구조전중 가장 위험했었던 구조 작전 중의 하나이다.


구조된 조종사는 호주 해군 조종사로서 희한하게도

기관단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관단총이 그가 구출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1951년 10월 26일,
호주 해군 소속 항모 시드니 함에서 출격했던 화이어플라이 기의

닐 맥미랜드 준위와 필립 행콕스 하사는 해주 북방 사리원
인근 지점에
격추되었다.


마침 같은 시드니 함에서 출격했던 씨 퓨리 기들이  근처
상공을
비행중이었다.



씨 퓨리
-------

강하 지점이 적 영토 깊숙했던 곳이라서 시드니함의 함장은

씨 퓨리 조종사들에게  공중 엄호 비행을 지속하며

적 보병들이 접근하는지 잘 감시하라고 긴급명령을 했다.



항모 시드니함의 화이어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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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어플라이.
영국 스피트화이어와 비슷하지만 제작회사도 제원도 다르다.
2인승인 복좌 공격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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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 시드니에는 미국 해군이 대여형식으로 파견해준

해군 헬리콥터와
조종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함장은 망서렸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는데 과연 헬리콥터가 75마일을 비행해서

적지로 들어가 해지기 전에 조종사들을 구출해서

돌아 올 수가 있겠는가에 자신이 서지를 않았다.


호주 항모 시드니
-----------------


그러나 미해군 헬리콥터 조종사가 한번 시도해보겠다고

자신있게 출격을 건의했다.
함장은 결단을 내려 헬리콥터에 출격을 명했다.


한편 육상에 기지를 둔 호주 공군 77전투 비행단의

미티어 제트 전투기들이 긴급 상황을 연락받고 급히

현장으로 날아왔다. 시드니 함의 씨 퓨리 두 기와

공군의 제트 전투기 두 기가 조종사들 상공을 맴돌며

엄호했지만 주변이 잔솔밭이어서 적군을 발견해서

기총소사로 제거 할 수가 없었다.


영국과 호주의 참전 제트 전투기 미티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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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5시 15분 공중에서 선회하던 미티어 기는 연료가

다되어 기지로 돌아 갈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씨 퓨리기 들도 연료가 바닥이 보였지만 조종사 캐바나와
솔트하우스 대위들은 구조 헬기가 올 때까지 버티어 보기로 하였다.


격추되어 구조를 기다리던 두 조종사들은 출격할 때 휴대하고

왔던 호주제 오웬 기관단총으로 접근해오는 적군들에게

점사[點射]를 하며 위협을 가했다.




오웬 기관단총
-------------

북한군은 기껏해야 권총정도로 무장했으리라고 생각했던
조종사들이
예측도 못했던 기관단총을 휘 두르자 놀라서
극히 조심했다.

덕분에 이들의 움직임은 거북이처럼 느려졌다.


드디어 5시 25분 .

멀리서 독특한 폭음과 함께 시드니함에서 출격한
미 해군 헬리콥터가  나타났다.



시드니 함의 미 해군 헬리콥터-
항모 수병들은 이 헬리콥터를 엉클 샘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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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는 즉시 격추 조종사의 위치를 파악하고

하강 착륙했다.


미 해군 항공대 내규에 헬리콥터는 최대 속도 100노트

이상을 내지를 못하게 하고 있었다.

엔진에 큰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의 위급 성을 실감했던 조종사는 20 노트나
더 빠른
120노트의 속도로 날아 왔었다.


이미 판이 다 깨졌다고 생각한 북한군은 기관단총의

사격을 무릅쓰고 근거리까지 다가왔다.


헬리콥터가 착륙과 동시에 뛰어 내린 구조 병 미 해군
콜리스 구딩은
조종사 후방 15 미터까지 접근했던
북한군을 발견하였다.

그는 기관단총을 휘둘러 두 명을 사살했다.

두 조종사를 태운 헬리콥터는 이륙하였다.


이미 어두어져 항공모함에 착륙하기는 무리였다.

헬리콥터는 한국 서울 근교 김포 기지로 직행했다.

한 시간 뒤 헬리콥터는 어둠이 깔린 김포 기지에
무사히 착륙하였다.


너무 어두어서 헬리콥터는 트럭이 비추는 헤드라이트
빛에 의지해서 야간 비상 착륙을 해야했다.
위험했던 이 헬리콥터의 구출작전은 6·25전쟁중 헬리콥터 구출
작전중 최장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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