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과연 전차기동이 불가능했을까?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30 08:17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여행을 다니시면서 도로 옆으로 펼쳐진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에 감격을 하시는 일이 잦으실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간혹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의문점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산악지대가 많고 군데군데 하천이 흐르는 '한반도의 지형에서 60년전 전차들은 어떻게 기동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죠. 이를 바라본 두 가지 시선, 즉 소련과 미국의 대조적인 판단으로 인해 우리가 비극을 맞이했으니까요.

[소련에서 제작된 5부작 전쟁영화 "유럽의 해방( Освобождение )"]


  이 영화는 1943년 7월 5일에 감행된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1945년 5월 2일, 베를린 함락에 이르는 대여정을 총 5개 장으로 나눠 1968년부터 3년에 걸쳐 개봉한 대작입니다.


  자! 6·25 전쟁에 관련된 정보를 전해야할 포스트에 웬 소련 전쟁영화를 소개하느냐? 라는 의문을 품으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전쟁에 참전한 무기 대부분이 출연함은 물론 이들이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주력으로 쓰였기 때문이죠(한마디로 영화 감상도 하고 당시에 쓰였던 무기들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공산권의 무기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쓰는 사람" 보다는 "한 대라도 더 빠르게" 완성시킴과 동시에 "저렴한 가격"의 추구일 겁니다. 그러나 모든 무기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당장 북한군과 중공군의 주력 전차로 운용된 T-34의 경우 5년 간에 걸친 실전경험을 통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T-34하면 85mm ZIS-S53 전차포를 장착한 T-34/85를 떠올리시겠지만 원래는 76.2mm F-34 전차포를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독일과의 전쟁이 없었다면 북한군은 이 전차로 남침을 감행했겠죠?




  강력한 85mm ZIS-S53 전차포를 탑재하고 엔진을 V-2-34 520 마력 디젤로 교체함으로써 공격력과 기동력, 방어력의 균형을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T-34/85. 이 전차가 바로 북한군에 242대가 넘겨짐으로써 남침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북위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의 지원으로 정권 수립을 하기도 전에 군대부터 보유하게 된 북한은 남침을 통한 무력 적화통일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6·25 전쟁 직전 북한군의 창설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충만했던 저는 양호실 책꽂이에 꽂혀있던 관련 서적들을 뽑아 읽었고 그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지형을 정밀 분석한 소련군 군사고문단은 산악지대가 많고 하천이 즐비한데다 도로가 협소하기 때문에 전차의 기동이 불편하고 한국군에 전차가 전무하기 때문에 구태여 많은 전차를 지원해야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어느 정도 아시다시피 북한군의 전력 증강은 철저하게 소련의 관리 하에 이뤄졌는데 최초 미하일 예피모비치 카투코프 대장을 주축으로 한 소련 군사고문단은 북한군에 2개 전차사단을 창설할 목적으로 500대의 T-34/85를 판매할 예정이었습니다.


  갓 해방된 북한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수의 전차를 구입할 생각을 했느냐? 라는 의문을 가지시겠지만 그 비용의 출처는 바로 소련이 제공한 2억 루블의 차관과 북한에서 생산되는 광물들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북한 지역에 증설한 공업지대의 힘도 컸고요.  오죽하면 전력 발전시설이 북한에 위치한 이유만으로 우리가 곤욕을 치러야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반도 지형을 정밀 분석해본 소련 군사고문단의 입장에서 볼 때 광활한 평야가 주류를 이뤄 전차가 기동하기에 별다른 문제점이 없던 유럽과는 완전 딴판이었다는 점이죠. 특히 한국군이 전차를 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것은 북한군의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속이 상할 일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결국 북한군에 공급된 T-34/85는 총 242대! 덕분에 북한군은 당초 창설할 2개 전차사단 대신 1개 전차여단의 창설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고 제208 전차 훈련연대와 같은 신병교육부대의 교육용 및 예비 차량 확보를 위해 편제를 소련군 정규 편제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소련이 비록 전차를 예정보다 절반 이하로 감축해 판매했지만 한반도 지형에서 전차 운용이 불리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점입니다.  실제 소련군의 철저한 감독 하에 작성된 작전 계획에서 보병사단에 배속된 전차연대의 임무 비중이 컸다는 점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천이나 늪지대는 전차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이지만 소련은 1944년 6월 22일에 감행한 바그라치온 작전을 통해 늪지대를 간단하게 돌파함으로써 독일군의 허를 찌른바 있었고 따라서 한반도 지형에서도 전차가 충분히 기동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오늘날 한국군이 2,200여대 이상의 전차를, 북한군이 3,800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한반도 지형이 전차들이 기동하는데 그렇게 불리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죠. 

  하천이 많다고 해도 도섭장비가 잘 발달된 소련제 전차들이 스노켈만 장착해도 어렵지 않게 도하가 가능하다는 점은 개전 초기 북한군 제1 군단의 임진강 돌파로 증명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기는 해도 전차가 충분히 한반도 지형에서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소련의 시선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군사고문단은 하천이 많고 산악지대가 전 국토의 70%에 달하는 한반도의 지형에서 전차가 기동하기는 어렵다는 결론과 이승만 정부의 무모한 북진통일 주장에 우려를 표시, 한국군에 전차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시선은 어떠했을까요?

  미국 역시 기본적으로 한반도 지형에서 전차가 기동하기에는 너무나도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당연히 초기에 가지고 왔던 약간의 기갑차량들을 1949년, 철군과 함께 고스란히 가지고 가버렸죠.  덕분에 북한군이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로 전차여단과 자주포 대대를 창설하고 있을 때 우리 군은 기갑연대에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27대와 M3 반궤도 장갑차를 보유하는데 그치고 있었습니다.  정보부를 통해 속속 북한군의 T-34/85에 대한 위협을 감지한 한국군의 신성모 국방장관은 미국에게 M26 "퍼싱" 중전차 183대를 공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간단하게 거절당하고 말았죠.


  한반도 지형에서 M26을 운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미군이었지만 막상 참전하고 보니 전차의 기동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 아이러니였고 결국 M26은 200대나 한반도에 투입되어 맹활약했습니다.

  미국이 한국군에게 퍼싱 전차를 공여하기를 거부한 원인은 앞서 언급한 지형적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실제 미군의 참전 이후 논밭 및 진흙탕으로 범벅이 된 도로에서 퍼싱이 빠져버리는 순간 견인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무래도 논밭과 좁은 도로, 줄기차게 흐르는 하천과 산악지대로 인해 한반도에서 퍼싱이나 셔먼이 기동하기에는 불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고 수시로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슬로건으로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있던 이승만 정부에 대한 우려도 한몫 두둑이 했지만요.




  전차가 기동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최초 판단과 달리 개전 이후 참전한 미군은 별다른 문제없이 한반도에 1,326대의 전차를 끌고 와 작전을 수행했고 중요한 위기 때마다 전차들이 해결사로 나서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전차 공여 거부로 인해 6월 25일, 북한군의 공세 속에서 전차가 전혀없던 한국군은 처절한 육탄돌격을 감행하는 등 참혹한 피해만 입은 채 낙동강까지 밀려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외관상 불가능해 보여도 반드시 가능성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보라는 얘기가 있듯 최소한의 가능성에 주목한 소련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판단한 미국의 대조적인 시선은 역사의 향방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되었습니다.


  현재 퍼싱의 군사 이야기에 연재 중인 만슈타인은 1994년 6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MBC와 KBS에서 활발하게 방영해주던 전쟁영화들을 두루 시청하면서 "밀리터리"라는 취미를 16년째 영위하고 있습니다. 

  2001년, 인터넷이 개통되기가 무섭게 다음의 밀리터리 카페에서 활동하며 축적한 지식과 자료들을 기반으로 2004년 1월 1일, 포탈 사이트 "야후! 코리아"에 최초로 전쟁영화 전문 블로그인 "퍼싱의 전쟁영화 이야기"를 개설해 6년 째 장기적으로 운용 중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한 소중함을 워낙 중요시하다보니 자연스레 사진 촬영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 캐논 EOS 7D와 EOS 50D로 사진 촬영을 즐기는 편이며 군사 전문지 "월간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에서 사진 / 취재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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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30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지금 우리가 퍼싱이 제공해주는 군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군이 해설하고 우리 군이 파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말인가요?
    우리나라 625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던 퍼싱이 제공하는 군사이야기를 역사로 듣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해명좀 해주세요.

  2. ╋만슈타인╋ 2010.03.30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는 세상살이// 제 해설은 엄연히 실제 참고자료와 당시의 전투기록 등을 토대로 작성되는 것입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를 비롯한 각종 연구기관의 인원들 중 한국전쟁 전후 세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이 분들 역시 당시의 기록들을 참고하여 자료서적을 편찬해 내고 있으며 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3. 강준일 2010.07.01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님// 디펜스타임즈 7월호 기사 잘 읽었습니다.

    내용이 언제나 간편하면서도 배치를 잘 해주시는데 아! 6.25도 마찬가지라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건필하세요~

  4. 강효섭 2010.07.02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지는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만슈타인님 기사는 난이도가 쉽게 조정되어서 읽기가 좋더군요

    항상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5. 김형래 2010.07.11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글의 내용에서 포스가 심상치 않았는데 디펜스타임즈 코리아 기자시군요

    국방부는 워낙 경직된 조직체계라 글쓰는 방식이 쉽지 않을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6. 김수민 2010.07.19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펜스타임즈 2009년 1월호는 표지가 아주 멋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온통 육군 위주라 좀 아쉽습니다.

    해군도 은근히 멋진 것 많은데요 ㅠ_ㅠ

  7. 아라파트 2012.03.0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노캘...

    전차 승무원들은 사실 스노켈 장비도 별로 본적 없고 도하나 도섭도 거의 해본적이 없다지요.(4년 군생활 중 2번 해봣슴니다.) 그리고 몇몇 도하킷 장착 가능한 전차들의 경우도 내부 튜브가 손상 되어있는 등. 스노클이 불가능 한 상태라죠. 아마도 강은 다리로만 건널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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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 승무원들은 사실 스노켈 장비도 별로 본적 없고 도하나 도섭도 거의 해본적이 없다지요.(4년 군생활 중 2번 해봣슴니다.) 그리고 몇몇 도하킷 장착 가능한 전차들의 경우도 내부 튜브가 손상 되어있는 등. 스노클이 불가능 한 상태라죠. 아마도 강은 다리로만 건널 모양입니다.

  13. indonesia rattan furniture 2012.12.30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논의 충분한 시간을내어 특

  14. obat herbal keputihan 2013.02.06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능한 전차들의 경우도 내부 튜브가 손상

영국 항모 트라이엄프의 6·25전쟁 참전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3.25 09:16
 

[트라이엄프의 활동을 함재기 화이어플라이기 중심으로 보여주는 동영상]


  6·25전쟁중 영국군은 상당한 육해공의 병력을 파견해서 중요한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싸웠다. 
1951년 봄, 임진강 전선에서 중공군 춘계 공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그로스터 연대의 용맹한 일화를 육군이 남겼고, 압록강 상공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미터어 쌍발 전투기로 공산군 미그 15기와 힘겨운 공중전을 벌인 영국 공군의 분투기도 한국 항공 전사에 기록했었다.


  영국 해군 역시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군으로 김일성 남침 불과 며칠 후부터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남침 불과 일주일 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국 해군 순양함과 같이 동해안에서 남파 병력 호송대를 호위하던 북한 어뢰정 세 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었다.
6·25전쟁중 영국 해군은 황해를, 미군은 동해를 맡아서 3년간 작전했었다. 영국 해군은 6·25전쟁 참전중에 여러 전투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특이한 활동으로서 최초로 파견된 영 항공모함 트라이엄프의 활약을 소개한다. 트라이엄프는 2차 세계 대전 바로 후인 1946년 5월 6일 취역했다. 총 톤수 1,7000 인 경항모였다.


[영 항모 트라이엄프]


  6·25전쟁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에섹스급 항모들이 27,000톤의대형이어서 80기의 전투기나 공격기를 탑재하는데 트라이엄프는 작전시에 단지 24기만 탑재했었다. 트라이엄프의 함재기들은 이미 구식이 되어가는 프로펠러 전투기 씨화이어와 역시 프로펠러 전투기인 화이어플라이 기들이었다. 씨화이어 기는 유명한 스피트화이어기들의 해군용이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착륙 장치가 강화된 것이다.


[씨화이어]

 

  이 전투기는 빠르고 운동성도 좋지만 그 모양[실루엣]이 북한 공군의 야크 9와 비슷해 자주 오인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1950년 6월 트라이엄프는 영국 해군 극동 함대에 이동 배치되었다. 사령관은 죠지 앤드류스 소장이었다. 배속된 극동 해역으로 항해하던 중 홍콩 근해에서 트라이엄프와 다른 호위함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받았다. 트라이엄프와 호위하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항해를 계속하여 일본 구레[吳]항에 기착했다. 구레 항은 호주군 해군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작전해역으로 투입 전 트라이엄프는 호위하고 있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이 군항에서 재급유와  재보급을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비행하기 힘들만큼 상태가 안 좋은 네 기의 씨화이어기와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내려놓았다. 작전을 위한 격납고내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트라이엄프는 다시 한국 해역으로 출발하면서 다른 영국과 호주함들과 기동 함대를 구성했다.


[영 함재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기]


  기동함대를 구성했던 영국함들은 순양함 저메이카, 구축함 HMS 콘소트였다. 두 함들은 6·25전쟁중에 활발한 활동과 전과를 거두게 된다. 이 영국함들에 호주 프리게이트 함 HMAS 숄하벤과 영국 급유함 웨이브 콘퀘러가 가세해서 6·25전쟁참전 영연방 함대를 이루었다. 트라이엄프 함대는 출항하자 오키나와로 남하하여 급유를 받은 다음 미 7함대의 미 항모 부대와 함께 연합 함대를 구성 출동하였다. 황해 작전 해역에 도착한 트라이엄프의 함재기[827 해군 항공대]들은 미 함대와 합동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3일 첫 출격이 있었다. 미 해군 항모 밸리 포지[에섹스급 항모]와 협동 작전이었다. 트라이엄프의 12기의 씨화이어와 9기의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출동하였다.


[미 항모 밸리 포지]


  영 함재기들은 황해도 해주 비행장을 들이쳤다. 유감스럽게도 적기는 없었다. 공격대는 비행장 빌딩과 격납고를 파괴하고 귀함했다. 다음 날에도 트라이엄프의 공격대가 출격했다. 이 날에는 괄목할 전과가 있었다. 연안과 해주 사이의 철교를 부수어 철로를 끊고 북한군 병영과 고사포 진지를 기총소사했다. 트라이엄프는 대지 공격이 없으면 주로 대잠 정찰과 대공 초계 업무를 맡았다.


  평양 폭격이 있은 지 2 주 뒤인 7월 19일, 트라이엄프가 탑재한 구난기인 씨 오터 쌍엽기가 조종사 케인 중령이 조종하고 황해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 원산 앞 바다까지 장거리를 날아가 격추된 미군 콜세어 기의 조종사를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구출해내는 위험한 구조 임무를 완료했다.   이 구난 업무는 구식 씨 오터 기들의 마지막 전시 출동 임무였다.


[항모 탑재 구난 비행정 씨 오터. 1943년 취역했다.]


  7월 28일 거의 비극으로 끝 날 뻔한 재난이 발생했다. 씨 화이어 일개 편대가 함대 북동방 공역에서 함대의 레이다가 잡은 미확인 비행체들을 확인 차 출격하였다. 씨화이어들은 그 미 확인 비행체들이 함대에 내습하는 적기가 아니라 미 공군의 B-29임을 발견하고 안심하였다. 마음 놓고 접근했던 씨 화이어 3번 기는 300야드 거리에서  B29 한 기로부터 느닷없는 불줄기의 세례를 받았다. 앞에서 말한 듯 멀리서 보는 씨 화이어의 실루엣[외형]이 북한 야크기와 비슷했기 때문에 한 미 B 29기의 기총수들이 기관총을 쐈기 때문이다.


[씨화이어 기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야크 9기]


  씨화이어기들이 일제히 회피 기동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한 기의 연료 탱크에 기총 탄이 명중했다. 기체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조종사는 크게 화상을 입었으나 기체를 뒤집고 자유 낙하하는 방법으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파도가 너무 거칠고 높아 항모에 탑재한 씨 오터 기로도 바다에 표류하는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조종사는 속절없이 한 시간동안이나  파도에 떠밀려 다니다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미국 구축함  에버솔에 구출되었다. 이 사건 뒤 영국 전투기들은 동체와 날개에 검고 흰줄을 쳐서 야크기가 아님을  알렸다.


[식별 표식을 한 씨화이어 기]

 

  트라이엄프는 계속 현장에서 대공 및 대잠 활동을 수행하고 다시 일본의 구레로 돌아왔다. 8일간 머무르며 재정비와 보급을 마친 트라이엄프는 7월 9일 영 순양함 케니아와 구축함 코머스, 그리고 두 척의 카나다 HMCS 아타바스칸 과 수우등의 전투함과 같이 출항했다. 이번에 주어진 주요 임무는 적 항구에 대한 집중적인 사진 정찰이었다. 함대는 적에게 점령당한 남한의 목포나 군산 그리고 인천을 정찰했고 북쪽의 진남포까지 항공 촬영하였다. 비행대장 맥라크란드 중령은 순양함 저메이카가 군산시에 위치한 대형 공장을 포격하는 것을 유도했다.


  8월 14일 진남포 인근 대동강 하구에 큰 대형 선박 세 척이 정박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인 중령 지휘 아래 오후에  6기의 씨 화이어기들과 6기의 화이어 플라이기들이 로케트 탄으로 무장하고 출격하였다. 편대는 대공포화가 격심했지만 로케트 공격으로 이 선박들을 대파시켰다. 나중에 격파된 한 척은 북한 해군 소해정이었고 한 척은 2,000톤 크기의 화물선, 한 척은 800톤의 연안선으로 밝혀졌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기동 함대는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영 씨화이어의 착함 모습 - 착륙할 때 후미의 훅이 걸리는

과정을 살펴 보시기 바람]


  정찰 업무가 끝나고 트라이엄프는 계속 서해를 초계하며 작전을 이어 나갔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연안용 작은 배들도 여러 척 격침했고 해변에 설치된 오일 탱크를 파괴하였다.


  8월 19일에는 영국 구축함 콘소트와 트라이엄프의 화이어플라이가 협동하여 군산에 있는 공장을 포격했다. 8월 23일 고장 사고 격추등의 이유로 작전 가능했던 24기의 함재기가 단지 9기만 남자 트라이엄프는 일본의 사세보 항으로 돌아왔다. 트라이엄프는 일본 사세보로 돌아와 싱가폴에서 함재기들을 수송해온 항모 개조 공작선 유니콘으로부터 14기의 함재기를 인수받았다. 


  트라이엄프가 사세보에 기항해있는 사이 황해에서초계 항해를 하던 구축함 HMS 코뮤스는 군산 서쪽 85마일 해역에서 북한 공군 IL-10 두 기의 공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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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는 김포 아니면 수원 비행장에서 출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격위치는 어청도에서도 중국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제공권도 없는 북한기가 이렇게 먼곳까지 출격을 나왔던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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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의 우현이 파괴되고 수병 한명이 전사했고 한 명이 부상했다. 함은 동료함 콘소트의 호위 아래 사세보로 돌아왔다.


[소련제 IL 10 공격기]


  8월 26일 다시 출항한 트라이엄프는 한국의 서해안으로 출발하였다. 북한 서해안에 정찰비행을 나간 두기의 화이어플라이기 들은 해변에서 숲으로 우거진 세개의 이상한 섬을발견하였다.그러나 잘 살펴보니 나무와 풀로 뒤덮어 위장한 세척의 북한 위장선이었다. 세 척은 위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이어플라이기에 즉각 파괴되었다.  이번 출동에서 적의 100톤짜리 어선을 비롯한 여러 척의 북한 배들을 파괴하였다. 트라이엄프는 통상의 초계업무를 했고 함대의 순양함 저메이카와 구축함 채리티의 연안 함포사격을 위한 사전 정찰과 탄착점 유도를 하는 지원 업무를 했다.


 

  8월 29일 트라이엄프 함상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 기가 꼬리에 달린 정지 후크없이 착륙하다가 항모 갑판을 미끄러져 안전벽에 부딪힌 사고가 발생했다. 나무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 함교로 날아가 작전실의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맥라크란 중령을 후려쳤다. 맥라크란 중령은 800 해군 비행대의 대장이었다. 맥라크란 중령은 이 불운한 사고에서 얻은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한 해역에서 의식을 갖춘 장례식으로 수장되었다. 그는 6․25전쟁중에 사망한 유일한 해군 조종사였다.


[영국 해군의 함상 장례식]


  9월 3일 출동한 트라이엄프 함대는 군산 비행장과 군산역을 포격한 저메이카를 위한 탄착점 유도를 했다. 9월6일 트라이엄프는 캐나다 구축함 아타바스칸, 아라뭉가, 그리고 바타안과 같이 황해를 떠나서 동해안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작전하던 미 7함대 항모 부대의 작전임무를 인계 받았다. 7함대는 일시 휴식과 보급 그리고 정비를 위하여 일본의 모항으로 귀항해야만 했다. 트라이엄프 함대의 동해안 작전은 9월 8일부터 시작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와 씨화이어등은 연일 북한 땅의 목표들을 공습해서 북한의 전쟁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했다.


  첫 주요 목표는 철도였다. 원산 남방으로 뻗은 철도를 따라 내려가던 6기의 씨 화이어와 6기의 화이어플라이는 한 작은 역에서 열차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화차들을 모두 벌집이 되게 파괴하고 기관차는 완전히 운행불능인 고철이 되게 부수어 놓았다. 이어서 동해안 철도를 따라 계속 수색하여 고원 역에서 80량의 화차를, 영흥 역에서 40량의 화차들을 발견해서 모두 파괴해버렸다.


[유엔기의 공습을 받는 북한 열차]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 9월 12일에 보급 및 재정비를 마친 트라이엄프는 호위하는 와라뭉가,채리티와 콕케이드, 콩코드등과 함께 기동 부대를 만들어 사세보를 출항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인천이었다. 바야흐로 역사적 인천 상륙작전이 임박했던 것이다.


[폭격받는 인천시]


  함대 승무원들에게는 행선지는 물론 비밀로 했다. 트라이엄프 기동부대의 임무는 상륙 작전 사전에 항공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상륙작전 직전 함대는 화력지원과 정찰 업무를 개시했다. 트라이엄프의 함포 사격 지원은 큰 성공을 가져왔다. 순양함 저메이카와 케니아의 함포는 화이어플라이가 지시한 고지의 북한군 목표를 포격해서 대 폭발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곳에 적 탄약고가 있었던 것이다. 산 꼭대기가 날아가 버리고 엄청난 연기가 2,500미터 이상 솟구쳤다. 그날 저녁 영 함대 사령관 앤드류 소장은  맥아더 원수로부터 치하 전문을 받았다. 인천 상륙 작전의 첫날 13,000명의 병력과 장비가 상륙했다.

 

  다음날 17일 새벽 북한 야크기 두기가 인천 앞 바다의 상륙 함대를 공습했다. 두 기는 미 순양함 로체스터를 폭격하고 그중 한 기는 겁 없이 더 먼 바다에 있던 영 순양함 저메이카를 기총소사를 했다. 수병 한 명이 전사하고 두 명이 부상했지만 야크기는 저메이카의 대공 사격에 격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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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습 전투기가 야크- 9기라는 설과 IL-10  기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영국 기록은 이 북한 기들을 IL-2로
 적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기가 투하한 폭탄의 크기가
 전투기용인 소형으로 보여 야크기 설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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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양함 저메이카]


  트라이엄프는 인천 상륙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9월 21일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항했다. 이 번이 트라이엄프의 마지막 작전 항해였던 것이다. 함재기들의 손실도 많았고 함의 이곳 저곳도 손을 보아야 할 함들이 많아 한국 파견 임무를 종결해야했다. 트라이엄프는 이틀간 사세보 드라이 독크에 들어가 작전 중 입은 파손 부위를 긴급 수선했다 9월 25일 트라이엄프는 임무를 일주일 뒤에 극동해역에 도착할 다른 항모 테세우스에게 인계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테세우스 - 트라이엄프와 같은 급이댜.]

 

  트라이엄프는 그 후 영국 해군에 장기간 더 봉사했다. 50년대 말에는 함정 수리를 전담하는 공작함으로 변신해서 재 취역을 했다. 퇴역한 트라이엄프는 1981년 스페인 고철 업자에게 팔려 해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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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3.26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좋은 시간이되세요..^^

  3. 야후 낙화 2010.03.2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기고글 잘 보았읍니다
    감사 드립니다 독님

  4. li815 2010.03.26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5. phy1133 2010.03.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 기고가가 되신 ~님께 축하 메세지 남김니다. 즐감~

  6. 장대수 2010.04.1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어요~

  7. Douglass Pabich 2012.05.31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유익한 기사 극단적인 재미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 내에있는 모든 사람을 겪고 있습니까? 나 역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쓰는 사람의 방법을 만끽하는 데 도움 것을 보내 겠소. 감사

  8. Michel Alvidrez 2012.05.3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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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Forest Skrebes 2012.05.31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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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edical emergency kit supplies 2012.10.21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5. Full Term Insurance 4 Sale Article 2014.03.31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

6‧25 전쟁의 수호신 M26 '퍼싱' 중전차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18 09:25

 


  개전 초 북한군의 주력전차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950년 8월 5일, 북한군은 반드시 부산까지 진격할 목적으로 8월 공세를 감행합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군 및 미군은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8월 17일, 공세 개시 12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진격 중이던 북한군의 T-34/85 3대는 2대의 거대 전차와 마주치게 됩니다. 

  북한군 전차병들은 개전 이후 최초로 한국으로 투입된 미군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에게 일방적인 K.O 승을 거두었던 전례가 있어 이 전차 역시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개전 이후 미군이 급히 한국으로 투입한 최초의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는 공격력, 방어력에서 T-34/85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전차를 무찌른 퍼싱, 북진의 선봉에 서다!



   M24 "채피"가 T-34/85에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자 미군은 급히 M26 "퍼싱" 중전차를 한반도로 투입합니다. 강력한 90mm M3 전차포와 최대 102mm 두께의 장갑을 두른 M26 “퍼싱” 중전차의 한반도 투입은 아군에게는 희망을, 적에게는 “공포의 사신”이 출현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북한군의 주력전차인 T-34/85는 성능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차량이었지만 퍼싱보다는 떨어지는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T-34/85가 빨랐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은 퍼싱이 우세했거든요.


 

  M26 "퍼싱" 중전차는 M3 90mm 전차포와 102mm에 달하는 장갑을 보유하고 있어 T-34/85를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차병들의 훈련 수준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다양한 전술 개발과 실전경험을 기반으로 한 미군이 북한군을 압도했습니다. 

  M26 퍼싱이 낙동강 전선에서 활약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이 계속 좌절되자 8월 21일 밤, 다부동으로 대규모의 북한 기갑부대가 돌진해 들어왔습니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M26 퍼싱 전차 1개 중대는 몰려오는 T-34/85와 Su-76 자주포들을 정확하게 조준해 명중시켰는데 밤에 치러진 전투로 포탄의 궤적이 선명하게 비춰지다 보니 마치 볼링장에서 공에 맞은 핀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투의 별칭이 바로 “볼링 구장” 전차전이 되었죠.


  북한군은 다부동에서 T-34/85 14대와 Su-76 5대를 잃었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미 해병대의 M26 퍼싱 전차들도 활약하게 됩니다.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미 해병대의 M26 퍼싱은 육중한 장갑과 90mm 전차포를 이용해 상륙 제대를 엄호하며 시가지로 진입했고 17일부터 영등포 방면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을 위해 출동한 T-34/85들을 닥치는 대로 부쉈습니다.



 

  M26 "퍼싱"의 등장으로 T-34/85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결과 북한군은 9월 20일까지 24대, 25일까지 12대( 총 36대! )의 T-34/85를 손실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합니다.   북한군 전차부대가 지리멸렬하자 9월 21일,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대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 선두에는 M26 퍼싱이 있었습니다. 

   M26 퍼싱을 선두에 세운 미군은 출발 5일 만인 9월 26일, 수원에서 인천상륙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조우했고 북한군은 38도선을 넘어 패주하기 시작했죠.  

  1950년 10월까지 북한군은 38도선 이남에서 239대의 T-34/85를 손실했는데 개전 당시 보유한 수가 242대였으니 사실상 전차부대가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반면 M26 퍼싱의 손실은 극히 적은 수준이었고 전선에는 200대가 투입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M26 퍼싱은 북진의 선봉으로 북한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10월 13일, 금천에서 T-34/85 8대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M26 퍼싱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의 혼란 속에서도 아군을 엄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만약 퍼싱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은 중공군의 포위 전술에 말려들어 혹독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비록 6·25 전쟁이 종전된 이후 후속 전차인 M47 “패튼”의 등장으로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차가 되었지만 이 차량의 활약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보전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26 "퍼싱" 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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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ニンニク 2013.03.09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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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15. Bookmarking Post 2013.05.28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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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how to be a model 2013.07.15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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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direktlån 2013.09.11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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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The Panorama 2013.10.02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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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Ideas for successful Silent Auctions 2013.10.24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20. The Hillford 2013.10.28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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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Auctions for fundraising 2013.11.18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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