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유환(無備有患)의 대표적 전투, 오산전투(2/4)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3.25 10:28

6ㆍ25전쟁 발발 당시에 미군 병사들의 수준은 한마디로 형편없었습니다.

제 2차세계대전 종전 후 상당수의 노련한 군인들은 군대를 떠났으며,

일본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 대부분은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신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지옥의 태평
양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선배들의 노고 덕분에,

마치 휴양지에 놀러온 것 같은 분위기에 젖어
점령군으로 유유자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본 점령군으로 있던 미군은 어느덧 상무 정신이 쇠퇴하여 있었습니다>

일본은 젊은 신참 병사들에게 더 할 수 없는 파라다이스였습니다.
부대 바로 앞에서는 새롭고 기이한 문화에 유혹되었고,
이곳의 일상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너무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였던 간부들조차도 과거의 사실을 망각하고

어렵게 찾아 온 이런 감미로운 평화를 즐기는데 동참하였습니다.

이런 환경에 익숙해져버린 미군에게 제대로된 훈련이나 엄격한 군기는
애시 당초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으며,
그들의 총은 어느덧 녹슬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미군에게 평생 들어 보지도 못한

‘KOREA’라는 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하였고,
미군이 앞으로 상대하여야 할 적이 북한이라는 사실은
한마디로 관심 밖의 문제였습니다.

        <명령에 의해 전쟁터에 뛰어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부산역에서 열차로 이동 준비 중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하지만 나태함과 자만심으로 사전 정보나 준비없이
무작정 싸움터에 뛰어든 결과가 얼마나 참담하고 비참한 것인지를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빨이 닳고 빠져서 싸울 능력이 퇴화한 늙은 사자였고,

이런 늙은 사자 무리에서 단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제일 먼저
하이에나 굴속에 뛰어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7월 1일, 부산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기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
7월 3일 경, 평택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최초 스미스 중령은 지형정찰을 통해 오산일대에 방어 배치를 건의하였으나,

한ㆍ미 작전협의에 따라 평택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후속하는 미 34연대가 평택-안성선에 투입 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자,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전방으로 추진하여 오산일대에 방어선을 편성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으며, 이때 스미스 중령은 이미 그 준비에 착수하고 있었습니다.

          <대전역에서 이동 중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방어선을 구축한 곳은 죽미령이라 부르는
오산북방 4km 지점에 있는 낮은 능선지대였습니다.

이곳은 국도와 철로가 지나는 천혜의 교통로로

북한군 주력이 당연히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북한군 선봉부대의 진격을 둔화시킨다면 미 24사단 본진이
후방에서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임무은
북한군에게 미군의 등장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었으므로
교전으로 북한군을 막기보다는 미군의 존재에 놀라 북한군 스스로 진격을 멈추거나
속도를 둔화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비록 병력이 절대 열세였어도

그것을 그리 커다란 문제로 여기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방어진지와 북한군의 격방향>

스미스 대대 장병들은 7월 5일 03:00에 진지에 진입하였으며,
스미스 중령은 B중대를 죽미령 양측의 90고지와 117고지에,
C중대를 인근 92고지에 배치시키고,
105mm곡사포 6문으로 구성된 포대를 죽미령 후방 수청리에 포진시켰습니다.

포대는 모두 120발 포탄을 휴대하고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그 중 5번포 1문을 대전차용 고폭탄 6발과 함께 보병과 포대 사이의 중간지점에
전진 배치시켜 북한의 전차를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비가 내리는 새벽의 어둠 속에서 진지구축에 들어갔지만
이동에 시간을 많이 빼앗겨 해 뜰 무렵까지 완료하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보병화기의 시험사격과 포병의 기점사격만 간신히 끝낼 수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 뒤에 전개할 사단 본진이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를 지원 할 어떠한 준비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 부대 간 통신망도 개통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후퇴하는 국군을 구경하는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하지만 그들도 이 대열에 동참하게 됩니다>

이것은 만에 하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위험에 빠질 경우
이들을 도울 준비나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면서 국군으로부터 간간히 전선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참고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대 간에 연락을 유지하지 못하고 정보도 무시하였던 것은 한마디로
적을 깔보지 않고는 할 수 없었던 무모함이었습니다. (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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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3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19 13:58

  단지 폭파만 놓고 본다면 한강교량 폭파가 부분적으로 실패한 작전입니다. 당시 한강의 교량은 광진구에 있던 광진교를 제외하고 용산과 노량진 사이에 있던 인도교와 3개의 철교였는데 6월 28일 폭파 당시에 이른바 A교와 B교로 불리는 두개의 철교는 폭파에 실패하였고 이들 다리는 이후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절단되었습니다. 따라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마음만 먹으면 한강을 즉시 도하할 수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유엔군의 폭격에 의해 한강교량 폭파가 완료되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주력이 한강을 도하하지 않고 3일간 진격을 멈추었던 사실을 미스터리로 만든 결정적 사유였습니다.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아군의 붕괴를 스스로 재촉시켜 버리면서 감행된 한강다리 폭파가 만일 완전히 성공하였다면 어쩌면 한강교량 폭파는 북한군의 진격을 일시적으로 저지한 필요충분조건이 되었을 것이고 또한 북한군의 서울 도심 지체가 굳이 미스터리로 남을 이유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파괴되지 않은 철교를 이용하여 한강을 도하하는 북한군 기갑부대
그들은 마음만 먹었다면 즉시 한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한강교량의 폭파는 우선 완전 폭파에 실패하였을 뿐 아니라 시기와 방법 자체가 잘못되었고 그 결과는 물론 효과도 미미하다 못해 엄청난 손실만 불러왔습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6·25전쟁 중 가장 성공적인 교량 폭파작전은 북한군이 실시한 1950년 10월 19일 대동강 인도교와 철교의 폭파입니다. 그들은 후퇴와중에도 얼마 남지 않은 북한군을 대동강 이북으로 완전 철수시키고 유엔군 도달 바로 직전에 완벽하게 교량을 폭파하여 효과를 극대화하였습니다.


[북한군이 후퇴 시 폭파하였던 대동강철교]


  그런데 ‘라주바예프 전쟁 보고서’처럼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발굴 된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의 한강 도하와 관련한 경악할 만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는데, 그것은 6·25전쟁 초기상황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이 상당히 잘못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같은 사실을 놓고도 그동안 너무 간과하던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는 한강교량 폭파 전에 이미 한강을 도하하였던 북한군 제6사단의 행적에 대해서 오래 동안 잘못 알고 있던 사실도 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이미 개전 다음날부터 한강을 건너오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전쟁 개시 다음날인 6월 26일 오후에 선도 부대를 시작으로 다음날까지 개풍에서 한강하구를 건너 무주공산과 다름없던 김포로 대부분 도하를 완료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북한군 제6사단의 극히 일부 선도부대만 김포반도로 진입한 것으로 파악하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6월 28일 한강교량 폭파 훨씬 이전에 이미 북한군 전체 제6사단은 한강도하를 완료한 상태였고 이들이 한강교량 이남을 아군보다 먼저 점령할 가능성이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룻배를 이용하여 한강철교 인근을 도하하는 북한군 한강하구를 이미 이런 식으로 도하하였습니다]


  따라서 급편 된 김포지구전투사령부(김포사)가 6월 26일부터 7월 3일까지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인 방어전을 그동안은 작은 전투사례로 분류하였지만 실로 엄청난 의의가 있음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북한군 제6사단은 6월 26일까지 영등포 점령하여 아군을 배후에서 포위하는 것이 목표였음이 밝혀졌는데 만일 김포사의 분전이 없었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즉, 한강다리의 파괴 여부와 상관없이 아군주력의 퇴로는 완전히 차단될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그림처럼 일산근처에서 북한군 제6사단이 도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이미 전쟁 다음날 한강하구를 통해 김포반도로 진입하였습니다.]


  어쩌면 전쟁 초기의 서울 함락이라는 비극적인 사건과 북한군 주력의 서울 지체에 가려 지금까지 일찌감치 한강을 도하한 북한군 제6사단에 맞서 싸웠던 김포사의 영웅적인 방어전이 소홀하게 취급된 경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북한군 주력이 서울에서 머무르는 동안 (그 정확한 이유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 대한민국 미래를 결정지을 극적인 전투는 바로 김포반도 일대에서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단신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하다 산화한 김포지구전투사령부 참모장 최복수 중령]


  개전 초기 무주공산과 다름없었던 김포반도를 사수하기 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병력을 끌어 모아 급편 된 임시부대였지만 김포사는 불리한 상황을 탓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김포비행장 탈환작전 당시에 참모장 최복수 중령은 단신으로 기관총을 거치한 지프차를 몰고 비행장을 질주하여 적을 유린하다 전사하였고 사령관 우병옥 중령은 패퇴의 책임을 통감하고 마지막 방어선이었던 원미산에서 자결하였습니다.


[고귀한 희생을 망각하였던 사실이 미스터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처럼 6·25전쟁 개전 초에 보기 드물 정도로 최고 지휘관들이 목숨을 걸고 솔선수범하여 전선 맨 앞에서 싸움을 벌인 곳이 바로 김포반도였습니다. 그들의 용전분투가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전쟁 초기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북한군이 서울에서 지체한 3일이 아니라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망각하고 있던 우리 자신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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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 2010.07.30 16: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는 김포사 전투에 관한 자료가 없습니다...
    김포사 전투에 관한 자료를 구하고 십은데... 관련 서적좀 가르처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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