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1.11 99. 세계에 영향을 끼친 전쟁 (115)
  2. 2010.09.15 80. 불승불패(不勝不敗)의 전략 (15)

99. 세계에 영향을 끼친 전쟁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11 09:42

  우리 현대사 최악의 비극이었던 6·25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사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중대사건이었습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불과 6개월도 되지 않아 당시 세계의 변방이었던 극동의 한반도를 넘어 무한정 커져 갔습니다. 우선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5대륙 16개국에서 전투부대를 파견하였고,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은 최대 130여만의 대군을 한반도에 진주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외견상 직접 무력개입을 시인하지 않았지만 조종사를 은밀히 참전시켰던 소련이나 미국의 명령에 의해 소해정을 파견하였던 일본 그리고 의무대처럼 비전투 부대를 파견한 여러 나라를 합하면 6·25전쟁은 무려 30여 개국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거대한 국제전이었습니다.


[6·25전쟁은 거대한 국제전이었습니다(에티오피아 병사들)]


  이처럼 6·25전쟁이 순식간 국제적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국제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제2차 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곧바로 시작된 숨 막히는 냉정이 처음으로 열전으로 비화된 곳이 바로 한반도였습니다. 때문에 전 세계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데올로기를 수호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그들과 전혀 상관이 없던 한반도의 국지전에 뛰어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정치적으로 세계 질서를 휘 젖는 유엔의 5대 상임이사국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이 전쟁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냉전체제의 구축과 군비경쟁의 신호탄이 6·25전쟁은 참전 및 관련 국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무려 500억 달러가 넘는 전비를 투입하고 연인원 180만여 명의 병력을 참전시켜 14만여 명에 이르는 인원피해를 입었던 미국의 참전이유는‘아시아에서 미국을 시험해보기 위한 공산주의의 도전’을 처음부터 물리쳐야 된다는 전략적 시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참전에도 불구하고 6·25전쟁은 미국이 승패를 확실하게 결정짓지 못한 최초의 전쟁이 되었고 이 때문에 미국국민과 군인, 모두에게 그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 되어갔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주도적으로 유엔군을 이끌고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자유세계의 리더의 자리에 올랐고 이를 기화로 이후 베트남전쟁을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분쟁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면서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절대 강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결정책은 한때 소련과의 무한경쟁을 벌여왔지만 1991년 소련 붕괴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위치를 점하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냉전체제가 더욱 공고화 되었습니다.](베를린에서 군사대치 중인 미군과 소련군)


  반면 미국의 맞상대였던 소련은 전쟁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았을 만큼 전쟁 시작의 실제 당사자이면서도 얻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공산권내에서도 비난을 받았는데, 중국을 전쟁에 끌어 들여 미국과 동시에 약화시키려는 책략을 꾸몄다는 의심까지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휴전 후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감소했고 중국과는 적대적 관계로 서서히 변하여 1960년대 들어서 중소이념분쟁을 벌이는 지경에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 후 건국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참전하여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본 중국은 국력을 급속히 소모하여 경제 재건이 늦어졌고 많은 서방국가와 적대관계가 되어 20년 동안 유엔에 가입할 수 없었을 만큼 국제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반면 1958년 중공군을 북한에서 모두 철수시켰지만 어느덧 북한에서 소련이 위치를 대신할 만큼 영향력을 넓힘과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제3세계의 리더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분단국이었던 대만의 장개석은 6·25전쟁으로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습니다. 사실 6·25전쟁에 중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중국이 분쟁을 벌일 곳은 타이완이었고 만일 그랬다면 미국이 굳이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은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내전에 관여하려는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제7함대로 대만해협을 봉쇄하는 전략적 조치를 취하였고 이  덕분에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일본은 6·25전쟁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입니다(1951년 폐허 속에서 속속 재건되는 도쿄)]


  하지만 타이완이 입은 혜택은 일본에 비한다면 세발의 피였습니다. 6·25전쟁으로 가장 큰 수혜국이 된 나라는 이의가 없는 일본이었습니다. 제2차 대전 후 일본의 재건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처럼 보일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독일과 달리 분단을 면하였던 것부터가 일본에게는 행운이었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전쟁의 후방기지와 병참기지로 변모하면서 급속히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수상이던 요시다는‘천우신조’라고 기뻐하였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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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불승불패(不勝不敗)의 전략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15 07:53

 

  6·25전쟁 발발이전 이전부터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은 변함이 없었고 그것은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1.4후퇴 이후 간간히 터져 나오는 휴전에 대해 반대하는  소리는 점점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1951년 전반기부터 미 행정부 내의 대(對) 한반도 정책은“휴전장치 하에 전쟁을 종결한다”는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수행 정책결정을 두고 한-미간의 갈등이 표출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정점이 4월 11일 행정부의 휴전정책에 반대해온 맥아더 원수의 해임이었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이 컸기에 정부와 국민들은 휴전을 반대하였습니다.]


  맥아더와 달리 미 정부 당국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였던 신임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은 미 제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밴플리트 중장에게 캔사스선과 와이오밍선을 넘어가는 모든 부대의 작전은 유엔군 사령관의 승인 하에 실시하도록 조치하면서 모든 군사작전의 목적은 협상으로 휴전이 되도록 이끄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만약이지만 1951년 후반기가 되면서부터 유엔군이 한반도에 통일한국을 건설할 의지가 있었다면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6차 공세를 끝으로 중공군의 전력은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들만큼 약화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유엔군의 해-공군, 기갑전력, 포병전력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은 한국 국민과 정부의 간절한 북진의지를 애써 무시하면서 결코 캔사스선을 넘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을 회복한 유엔군이 전세를 1950년 10월 수준으로 다시 돌려 버릴 수 있는 결정적인 군사적 호기를 버리면서까지 북진에 소극적인 일차적인 이유는 또다시 북진을 감행할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할 막대한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유엔군의 입장에서 볼 때 설령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중국과 교전 상태였으므로 압록강은 종전의 상징이 될 수 없었고 오히려 강을 사이에 놓고 중공군과 장기전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컸습니다. 만일 완승을 위해 만주로 진출하고 나아가 북경까지 진격해도 중국은 거대한 영토를 배경으로 항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난 중일전쟁을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하였습니다.


[중일전쟁 당시에도 일본은 중국을 압도하였지만 완전점령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서방세계 입장에서 중공군은 두 번째 적에 불과하며 진짜 적은 소련이라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이 확대될 경우 소련의 직접 개입 가능성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러한 확전은 6·25전쟁에 미군을 비롯한 서방이 유엔의 이름을 빌려 개입한 최초의 목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북한의 도발로 전쟁이 개시되었지만 이번 기회에 통일을 원하는 한국국민과 한국정부의 바람과 달리 이미 6·25전쟁은 우리의 의사대로 진행되기에는 너무 져버린 전쟁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느덧 이 전쟁에서 완승을 바란다는 것은 전쟁의 성격상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KO승이 아닌 판정승으로 명예로운 휴전을 이끌어 내야하고 이를 위해 적이 휴전회담에 응해 올 수 있도록 적당한 수준의 압력만 가하면 될 것으로 미국은 판단하였습니다. 이것은 현 접촉선을 휴전선으로 가정하였을 때, 차후 방어에 용이한 감제고지를 확보하여 진지를 구축함과 동시에 적이 재차 공세를 감행해 오더라도 더 이상 후퇴함 없이 적을 물리칠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대폭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미국의 방침은 이기지도 않고 지지도 않겠다는 불승불패(不勝不敗)였습니다.


  한편 중공군도 1951년 5월, 제6차 공세가 대 참패로 끝나버리면서 현재와 같은 재래식 장비와 군수지원 체제하에서는 결코 유엔군에게 치명타를 가져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고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중국도 한반도의 전쟁에 무한정 자신들의 피를 가져다 바치기에 곤란한 상황이 이르렀을 만큼 지난 제4차부터 제6차 공세에서 당한 희생이 너무 컸습니다. 따라서 제6차 공세 이후 중공군의 작전은 대규모 공세를 지양하고, 자신들이 장기인 야간전투, 근접전투 등을 통해 현상을 유지하는 소규모 작전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중공군도 이런 방식으로 미군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휴전을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중공군이 택할 수 있는 방책 또한 유엔군이 원하고 것처럼 적당한 선에서 체면의 손상을 받지 않고 전쟁을 중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휴전회담에 응하는 것이었고 묘하게도 양자의 이해가 맞아 들어갔습니다. 결국 전쟁의 가장 중요한 세력인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합치됨으로써 휴전은 가시화되면서 협상이라는 정치적인 전쟁으로 6·25전쟁의 성격이 확연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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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도승우 2010.09.22 0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al.30으로도 관통가능하다던 94식 장갑차따위를 놀란듯 보는 중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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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항상 6.25 전쟁때 통일한국이 생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중공군 그리고 배후의 소련군까지 복잡하게 얽힌 냉전 상황에서 어쩌면 휴전이 최선의 방안이었던걸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됐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 한국이 참 아쉽고 아쉬웠습니다.
    통일이 된다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 될 한반도의 힘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북한은 오래가지 못하고 한국에게 흡수될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 사후 , 김정은이 북한 3대 공식 지도자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미 김정남과 북한판 왕자의 난에서 승리를 했지만, 이것은 완전한 승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정은은 개혁 개방을 강조하지 않고 선군정치만 강조하는 정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반복하면 무엇이든 믿게 할 수 있다"는 히틀러의 선전상 요세프 괴벨스의 이론을 신봉한다는 북한 당국은 기아와 무너져 내리는 북한의 경제를 선군정치라는 환상으로 진실을 덮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김정남은 중국의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소련이 무너지고 고르바초프도 개혁,개방을 주장하여 러시아 경제를 살렸고, 중국또한 덩샤오핑식 개혁개방을 추진하여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정남은 북한에서 광명성총회사라는 자본주의식 대기업 회사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김정일의 폐쇄정치를 부정한 김정남의 왕자의 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김정은 직접지시하여 조사와 급습함으로써 김정남의 개혁에 대한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김정남은 북한 내부의 왕자의 난에서 패배했지만, 배후에 중국이 보호해주고 있습니다. 즉, 중국은 결국 북한 정권을 변화시켜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하나의 압력카드로 김정남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정남은 중국 당, 정, 군 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들의 그룹인 태자당이 직접 김정남을 비호하고 있습니다. 태자당은 중국의 최고파워 그룹으로 불리고 있는 그룹입니다.

    북한은 아직까지도 김정은 내부의 지도자 체제를 완벽히 굳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력카드로 김정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북한의 상황을 이용해서 북한의 내부분열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정남과 김정은 둘 다 상대함으로써 북한의 일관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게 하는게 아니라 두 명의 지도자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북한은 그 폐쇄된 경제구조와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등으로 언제든지 붕괴 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6.25 전쟁 때 중공군, 미군, 소련 등 국제 정치상황에서 전쟁을 종결짓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체제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빨리 통일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읽고 있습니다.

    충성! 수고하십시오!

    tlsckdrbs123@hanmail.net

  14. true religion jeans outlet 2012.11.29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록 6.25 전쟁 때 중공군, 미군, 소련 등 국제 정치상황에서 전쟁을 종결짓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북한체제는 불완전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빨리 통일한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5. 박성천 2012.12.17 2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북한군의 전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하나 북한군에 당하고, 중공군에 당한 국군과 유엔군
    지금은 다를까? 아니다
    지금도 별 차이 없다.
    우리는 흔히 6.25를 무승부로 보는데 착각이다.
    6.25전 개성은 남한의 땅이었다.
    그곳에는 넓은 평야도 있고 그유명한 개성인삼도 있고
    하지만 지금은 6.25이후 북한땅이다
    맞다. 판정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