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5.06 곰곰이 생각해 볼 용맹한 지휘관의 최후 (136)
  2. 2010.10.19 돌출부에 대한 단상 (11)
  3. 2010.08.03 한반도 최초의 전차전 [ 1 ] (6)

곰곰이 생각해 볼 용맹한 지휘관의 최후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1.05.06 13:52

지난 2006년 충남 천안시는 관내 충절오거리에서 도리티고개에 이르는
약 2Km의 대로를 ‘마틴의 거리’로 명명하였고, 2010년에는 기념비까지 세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 로버트 마틴(Robert R. Martin) 대령이
6ㆍ25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첫 고위 장교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불과 60년 전의 과거를 머나먼 옛이야기로 생각하는 현세태에 비추어 봤을 때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천안시에 조성 된 마틴의 거리 표지석

천안에 방어선을 구축한 미 24사단 34연대는
1950년 7월 7일 밤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남진하여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T-34전차를 앞세운 압도적인 적의 공세에
미군 129명이 장렬히 전사하면서 참패하였습니다.

연대장 마틴 대령도 직접 2.36인치 로켓포를 들고 적 전차를 요격하기 위해
맨 앞으로 달려 나가다가 산화하였습니다.

미 34연대장 마틴은 T-34를 직접 요격하려다 산화하였습니다.

그가 34연대장으로 부임한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았을 때 일입니다.
비록 패하였지만 중과부적의 상태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군인의 장렬한 최후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천안시도 마틴 대령이하 산화한 미군들을 기리려
기념물을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군사적 측면에서 천안전투는 긍정적으로만 판단하기에는
문제가 많은 전투였습니다.

천안전투 기념비문

우선 마틴 대령의 적 전차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은
엄밀히 말해 최고지휘관이 삼가해야 할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일선 각개병사의 전투력이 뛰어나더라도
이를 지휘할 우두머리가 없다면 그 부대는 오합지졸에 불과한 집단에 불과하여
전투에서 승리를 바라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대장이 전사하면 그 다음 선임이 부대를 지휘하면 되지 않느냐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마틴 대령의 전사 후 34연대가 급속히 붕괴된 사례에서 보듯이
이 또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로버트 마틴의 생전모습과 비문

그런데 부임 후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아 전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엄밀히 말하면 마틴 대령만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도 힘듭니다.

미 24사단장 딘(William F. Dean) 소장은 천안의 북쪽인 평택~안성 일대에서
북한군을 막으라고 지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 34연대가 미군 중 6?25전쟁에 제일 먼저 참전 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붕괴로 인해 예하 대대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철수하자 격노하였습니다.

(좌에서 우) 워커 미 8군사령관, 딘 미 24사단장,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

그래서 러브리스(Jay B. Loveless) 34연대장을 해임하고,
일본에 있던 마틴 대령을 급히 소환하여 부대의 지휘를 맡겼는데,
상당히 저돌적인 성격의 마틴 대령은 딘 소장이 평소에도 아끼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전을 벌이던 급박한 시점에 지휘관을 교체한 것은
결코 올바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마틴 대령이 부랴부랴 천안에 도착했을 때
단화를 신고 있었을 만큼 전투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대전전투 당시의 미 24사단

당연히 자신이 지휘하여 할 34연대의 상황이나 적의 동태,
그리고 전투에 관한 제반 내용을 제대로 숙지할 수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차를 앞세운 압도적인 적에게 겁을 먹은 부하들이 전투에 임하도록
가장 앞에 나가 최전선의 병사와 같이 함께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천안은 허무하게 적에게 피탈되었고
지휘관을 잃고 하염없이 무너진 34연대는 이후 해체당하였습니다.

천안전투 기념식

전시에 지휘관은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때문에 교전 때문이 아니더라도 불의의 사고로 지휘관을 잃게 된 부대는
최대한 빨리 지휘체계를 복구하여야 하며
평시에도 이런 부분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합니다.

마틴 대령은 6ㆍ25전쟁에서 십자무공훈장을 추서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되었지만
알아본 것처럼 위 에피소드는 결코 반복되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의 사례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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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ㆍ25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첫 고위 장교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도

돌출부에 대한 단상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10.19 08:49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이북의 영토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현재 미치지 못하는 미수복지역입니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아쉽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지역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지방의 DMZ은 여타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전당시에 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이 지역이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최북단으로 남게 된 데는 한미 지휘관간은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의 DMZ이 북쪽으로 올라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51년, 중공군의 몇 차례에 걸친 대공세 이후 미국이건 중공이건 서서히 휴전을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길항이 있었으나 전선은 현재의 DMZ부근에서 거의 고착화되었는데, 그런 이유는 최대한 전선을 짧게 단축하는 것이 우리도 그렇고 공산군 측도 유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덧 전쟁은 서서히 고착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선에 참호가 깊게 파여지고 고착화 되었다면 그것은 공격보다 방어를 염두에 둔 배치인데, 이 경우 전선이 길게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이를 방어하는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볼 때 크게 2군데의 최단 횡단점이 있는데 하나는 동안만과 서한만사이의 북위 39도 50분 지점과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38도선 지점입니다.

[북쪽의 횡단점은 전략상 공산군 측이 수용하기 곤란하여 두개의 횡단점 중 군사적으로 대치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은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선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성지역을 북에 넘겨주고 휴전을 하게 된 것은 아군의 공격을 공산측이 훌륭히 방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강-임진강 하구를 방어선으로 삼고자하던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암묵적인 와중에서 볼 때 고성지역의 돌출부는 사실 조금 특이한 지역입니다.  만일 가칠봉에서 간성읍까지 최단거리로 DMZ이 형성되었다면 전선의 길이를 약 20Km 정도 단축하여 방어에 유리 할 것이고 이점은 북측도 알고 있었습니다.

[개성은 도심 뒤에 고지가 있어 군사적으로 이곳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 만큼 휴전선은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형성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이 북으로 돌출하여 자유대한 지역으로 편입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1951년 6월 이후 동해안에서 작전을 벌이던 부대는 백선엽 소장이 지휘하던 국군 제1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태백산맥 서쪽과는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국군이 전담으로 방어하다보니 타 전선에 비해 화력지원이 충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훗날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오른 백선엽]


  포병전력의 확충이 여의치 않음을 고민하던 백선엽은 미 제7함대 제
5순양분대의 사령관으로 동해에서 작전 중인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 소장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의를 즉시 받아들여 국군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거침없이 함포 사격을 지원했습니다.

[알레이 버크 그 또한 해군대장까지 진급하였다]


  요청이 있으면 이유불문, 시간불문, 장소불문하고 즉각적으로 지원사격이 이루어졌을 만큼 두 장군은 궁합이 잘 맞았고 이러한 버크제독을 백선엽이 국군 제1군단의 포병사령관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이 덕분에 국군이 전담하던 동해안은 공산군이 감히 탄막을 뚫고 내려올 생각을 못하였고 그 결과 동해안의 휴전선은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해상포격은 국군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아군을 흥남으로 몰아넣고도 중공군이 배타고 후퇴하는 유엔군의 모습을 손가락 빨고 쳐다만 보았던 이유는 미 해군이 해상으로부터 쏟아부어대는 엄청난 탄막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전쟁 내내 공산군은 해상포격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할 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격을 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고 반대로 아군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호막 노릇을 하였습니다.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DDG-51 알레이 버크]


  호인이었던 버크는 전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미 해군 작전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미 해군발전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미 해군은 버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 해군 사상 최초로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 건조한 구축함의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바로 최강의 전투함으로 평가받는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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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10.19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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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최초의 전차전 [ 1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03 08:52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국군이 개전초기부터 일방적으로 밀린 이유는 한마디로 북한군과의 현격한 전력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국군 제1, 6사단처럼 나름대로 분전을 벌이며 적을 막아내기도 하였지만 경원축선이 뚫리면서 개전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당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이때 아군의 방어막을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워 돌파하였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군의 초기 전력은 턱없이 부족하였고 결국 일선에서는 극심한 전차 공포증까지 나타났습니다.


[전차를 앞세워 서울 점령한 북한군]


  북한군을 얕보고 자신만만하게 참전한 미군도 1950년 7월 5일 죽미령에서 벌어진 최초의 교전에서 머리에 혹이 나는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북한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 많은 미군의 방어선을 유유자적하게 돌파한 북한군의 주력도 역시 전차였습니다.  그만큼 6·25전쟁 초기에 북한군의 T-34는 압도적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죽미령전투 (사진-연합뉴스)]


  죽미령 다음에 미군이 방어선을 구축한 곳이 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산에서 초전에 일방적으로 코피가 터진 스미스특임대(Task Force Smiths)의 참패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천안에 방어선을 전개한 미 제24사단 34연대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 제78전차대대 소속의 M-24 채피(Chafee) 경전차 8대로 구성된 로 전차소대가 1950년 7월 8일 천안에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안에 나타난 M-24 전차소대]


  북한의 전차부대에 스미스특임대가 혼 줄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제34연대 장병들은 그들의 전차가 모습을 보이자 환호를 지르며 이들을 맞이하였고, 전차소대원들은 보병부대의 뜨거운 환영에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그러나 전차소대원들은 앞으로 그들이 맞붙어 싸워야 할 북한군의 T-34 전차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T-34가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훌륭한 소련제 전차라는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도 노획하여 사용하였을 만큼 T-34는 훌륭한 전차였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이 같은 편이어서 미군이 T-34와 싸운 경험이 없었으므로 앞으로 교전하여야 할 적 전차의 성능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차라리 북한군이 독일제 판터(Panther)나 티거(Tiger)를 몰고 나왔다면 두려움을 가지고 전투에 나섰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전선에서 독일의 티거전차 1 : 1 직접 교전 시에 후퇴해도 군법으로 책임을 묻지 않을 정도로 강한 상대는 철저히 인정하였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군 주력전차인 M-4도 티거와 직접 교전을 삼가 하도록 하였습니다.( 독일의 티거와 미군의 주력이었던 M-4의 비교 모습 )]


  어쨌든 초전에 스미스특임대가 북한군 기갑부대에 박살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차소대원들이나 전차소대를 증원받은 미 제34연대는 충분히 북한군을 격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사병들과는 달리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지휘관들은 앞으로의 상황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일화입니다.


[젊은 전차소대장은 적 전차를 이렇게 만들겠다고 자신하였습니다]


  전선을 시찰하는 도중 전차소대를 보게 된 워커(Walton Walker) 미 제8군 사령관은 전차소대장에게 "귀관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소대장은 "저는 돌격할 생각입니다." 라고 결연히 대답을 하였는데, 워커 사령관을 안내하던 딘(William F. Dean) 미 제24사단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전차소대장이 죽음을 각오한 것 같은 결연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커는 북한군 전차에 대한 정면 돌격이 무모한 시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안 인근에서 전선을 시찰하던 워커(좌)와 딘]


  패튼(George Patton Jr.)의 오른팔로 제20군단을 지휘하며 유럽평원을 휩쓸고 다닌 워커는 유럽의 기갑전에서 겪었던 실전을 일일이 예로 들면서 적 전차를 상대하는 요령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워커는 혈기왕성한 전차소대장에게 "지금 우리는 공격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유리한 장소에서 적을 지연시켜야 할 때다."라고 말하며 신중히 작전을 펼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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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Lawyer Questions 2014.04.23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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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http://sezonmax.pl/ 2014.04.26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서 겪었던 실전을 일일이 예로 들면서 적 전차를 상대하는 요령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워커는 혈기왕성한 전차소대장에게

  6. Monsanto Company 2014.04.2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못했습니다. 단지 T-34가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훌륭한 소련제 전차라는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