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총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26 28. 맥아더의 집념 그리고 반대 (11)
  2. 2010.03.05 22. 기회로 승화시킨 위기 (24)
  3. 2010.02.16 16. 누가 빠른가??? (22)

28. 맥아더의 집념 그리고 반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26 08:48



 

  인천상륙작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맥아더 원수의 고집에 의해 실행되었다고 하여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만큼 그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맥아더는 6월 29일, 전쟁발발 후 한강방어선 시찰당시에 이미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군을 일거에 격멸하고 전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병참선의 요충인 서울을 측방에서 기습 공격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와 후방을 차단하는 대담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더불어 서울을 조속히 탈환하여야 한국 국민들에게 정치적,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는 신속히 참전한 미군 전초부대조차 무참히 붕괴되며 후퇴를 거듭하던 7월초, 이미 구체적 작전수립을 지시하였습니다. 명령에 따라 미 극동사령부는 서해안의 인천, 군산, 그리고 동해안의 주문진에 상륙하는 세 가지 제안을 상정하였고 이중 인천으로 상륙하는 100-B계획을 채택하였으나, 8월이 되어도 북한군 공세가 예상 외로 강하여 막상 상륙작전을 실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선의 상황과는 별개로 미 합참뿐만 아니라 극동군 해군조차도 인천상륙을 처음부터 반대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는데 사실 모두 타당한 분석이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9미터나 되어 상륙시간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낙동강 방어선과 거리가 너무 멀어 상륙군이 각개 격파될 위험성이 크다. 현재 보유한 원거리 상륙용 선박이 부족하고 상륙병력 차출 시 병력 부족으로 인하여 낙동강 방어선의 유지가 곤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병력이 한반도 집중되면 일본방어에 공백이 발생한다.”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같은 이유 때문에 방심하고 있는 적을 기습하기 위해서라도 인천으로 상륙하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더불어 만일 낙동강 방어선부터 차근차근 북진할 경우에 예상되는 약 10만의 아군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러 본토에서 극동군사령부를 일부로 찾아온 콜린스(Joseph L. Collins) 미 육군 참모총장이 맥아더에게 오히려 설득되었던 사실은 그의 신념이 어느 정도로 강렬하였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맥아더의 생각대로 계획은 진행되었고 9월을 목표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상륙전 함상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국군 해병대]


  맥아더는 상륙군으로는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사단을 주축으로 미 제10군단을 재창설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극동군사령부 참모장인 알몬드(Edward Almond)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미군은 극심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서 예정된 시간 내에 부대를 구성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비록 예비역을 소집하여 연대별로 부대를 구성하는대로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작전 개시 직전까지 완편 된 부대의 참가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국군 제1해병연대가 미 제1해병사단에, 국군 제17연대가 미 제7사단에 배속됨으로써 작전 직전에 부대를 완편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국군도 역사적인 작전에 당당한 주역으로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상륙작전은 치밀한 사전정지 작업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듭니다. 특히 인천은 수로 조건이 나빠 야간에 대규모 선단 운행이 불가능하고 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일거에 상륙군을 투입하기 구조적으로 어려워 더더욱 상륙군이 적진에 고립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아침과 저녁 만조시간에 맞추어 2단계 상륙계획을 작성했고 12시간의 간격동안 함포사격과 항공차단으로 북한군의 증원을 저지하는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적색해안에 상륙하는 미 제5해병연대 병사들]


  더불어 상륙지역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클라크(Eugene F. Clark) 대위를 책임자로 하는 정찰대를 9월 1일 영흥도로 파견하여 인천항 주변의 북한군 배치 및 기뢰 부설 상황 등을 정찰하였고, 아울러 상륙 당일에 팔미도 등대를 수리해 함대 진입시간에 맞추어 점등함으로써 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작전 개시에 맞추어 상대방이 오판하도록 기만책을 병행하여 인천에 대한 포격과 동시에 동해안의 영덕과 삼척, 주문진 그리고 서해안의 군산과 남포 일대에 대해 양동작전을 펼쳐 북한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한마디로 치밀한 작전에 의해 거대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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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6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황 판단을 잘 하는 것은 전략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그
    리고 어떤 분석요인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당시 인천과 군산 모두 상륙작전을 하기에는 조금은 부적합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허를 찌르는 작전은 역시 두고두고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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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회로 승화시킨 위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05 08:54

 

  전술한 바와 같이 낙동강 방어선이 처음 구축되었을 때 왜관-영덕간은 국군 5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었는데 7개 사단이나 되는 북한군의 8월공세가 시작되자마자 곳곳이 돌파되는 위기상황이 조성되었습니다. 국군의 담당지역은 지형상으로 낙동강과 같은 천연장애물도 없어서 방어에 극히 불리한 조건이었는데 그 만큼 여러 군데서 혈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 국군 수도사단과 제17연대가 담당하였던 전선중앙부의 안강-기계에서의 격전도 전사에 길이 전해질 격전이었습니다.


[전선 중앙부에서 거대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8월 5일, 청송 서쪽에 배치되어 있던 국군 수도사단이 북한군의 공격으로 의성 방향으로 철수하면서 의성-청송-영덕을 연결하는 약 50킬로미터 전선에 간격이 발생하였지만 육군본부 및 제8군에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청송에서 기계에 이르는 유일 통로인 31번 국도가 워낙 험준한 산악지대를 통과하는 소로라서 북한군 대부대가 기동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역으로 간파한 북한군 제12사단은 무주공산인 산악 지역을 기습 통과 하여 8월 8일에 기계 북방 20킬로미터 지점인 죽장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국군은 이러한 급박한 사태에 놀랐으나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10일, 기계까지 신속히 남하하였습니다. 만일 북한군이 계속하여 안강-경주 방향으로 진출한다면 낙동강 방어선의 중앙은 완전히 절단되어 대구와 포항의 후방이 차단될 수도 있는 엄청난 상황이었습니다. 위기를 실감한 육군본부에서는 8월 10일부로 포항지구 전투사령부를 설치하여 방어에 나서도록 조치하였지만 문제는 가용병력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후방에서 편성 중에 있던 제25연대를 궁여지책으로 투입시켰는데, 상황이 너무 급박하여 축차적으로 투입하는 악수를 두었습니다. 개전초에 의정부 방어전에서의 실수가 재현되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북한의 공세는 예상을 넘어서는 강력한 수준이었습니다.]


  정일권 참모총장과 김홍일 제1군단장은 고심 끝에 제17연대와 의성에 있던 수도사단에게 현 전선에서 후퇴하여 안강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의성일대를 포기하면서 전선을 안쪽으로 좀 더 축소하는 대신 제17연대와 수도사단 제1연대로 하여금 안강에서 북한군의 진출을 차단하고, 수도사단 제18연대가 기계에서 후방 지역을 공격함으로써 안강-기계 일대에 포진한 북한군 제12사단을 일거에 섬멸하려는 대담한 결심이었습니다. 다만 문제는 북한군의 경주 또는 포항 진출보다 아군의 안강 도착이 빨라야 실현될 수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이때 전선에서 미묘한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유엔 해‧공군의 쉴 틈 없는 후방공격으로 인하여 8월 10일, 기계까지 진출했던 북한군 제12사단이 보급이 지연되면서 진격에 탄력을 잃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틈을 타서 8월 12일, 제17연대가 안강에 도착하여 안강-포항간의 도로를 차단했고 다음날 수도사단 제1연대와 제26연대도 안강에 도착하여 북한군의 경주 진출을 막았습니다. 더불어 수도사단 제18연대와 독립기갑연대가 기계 북쪽에서 북한군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순식간 북한군 제12사단을 역포위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안강-기계 전투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습니다. ]


  이제 위기는 호기로 역전되었고 8월 18일, 기계 일대에서 총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북한군 제12사단은 후방이 차단되자 전투 의욕을 상실하면서 일거에 괴멸되었습니다. 북한군의 기습돌파로 전선 중앙이 붕괴될 위기는 아군의 대승으로 역전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적 1,245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는데 전쟁 발발 후 국군이 거둔 최대의 전과였습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개전 초에 있었던 홍천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에게 부대해체와 다름없는 참담한 대패를 당하였던 바로 그 부대였는데 안강-기계전투에서 또다시 치욕을 맛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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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2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에서 적의 위기는 바로 우리의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용하는 것은 바로 전략의 우수성이라 할 것입니다.

    현재처럼 위기와 기회가 수시로 바뀌고, 바로 바로 이어지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작은 위기라도 맞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할 것입니다. 현세는 작은 위기로 바로 치명타로 작용하는 세상이니까요.
    특히 국방에 있어서는 더욱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

  3. 유비무환 2010.05.01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아버지가 7/5에 김천에서 학도병으로 자원하고, 7/29에 수도사단에 배치된 후 처음 경험했던 전투가 안강기계전투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북괴넘들이 마구 공격해올때 겁나서 참호속에 소총 붙들고 쭈그리고 앉아있었다고 하네요.. 17살때였으니까, 많이 두려웠을것입니다. 낙동강에서 치열하게 전투하다가 9월부터 반격하기 시작하여 11월 30일 후퇴명령이 떨어지기 까지 함북까지 진격했다고 합니다. 통일이 바로 앞이었었는데,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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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견에 앞서 파병업무를 협조하기 위하여 연락장교단을 한국에 파견하였으며 이 협조과정에..

  8. Haberdashery 2011.10.30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발한 초음속 비행기 “T-50 고등훈련기”, 지능형 정찰견 "견마로봇", 국

  9. PetFoodGuides.net 2011.11.04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군 제12사단은 개전 초에 있었던 홍천 전투에서 국군 제6사단에게 부대해체와 다름없는 참담한 대패를 당하였던 바로 그 부대였는데 안강-기계전투에서 또다시 치욕을 맛보았습니다.

  10. Guitar Reviews 2011.11.04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군의 기습돌파로 전선 중앙이 붕괴될 위기는 아군의 대승으로 역전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적 1,245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는데 전쟁 발발 후 국군이 거둔 최대의 전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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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누가 빠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6 10:25


 

  제19연대장 무어 대령이 하동을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히는데 채병덕 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지고 참모총장(당시에는 총참모장으로 통칭)에서 해임된 후 단지 명칭만 있는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되어 있던 채병덕은 무어에게 하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격부대의 안내역을 자임하였습니다. 무어는 채병덕의 의견에 동의하고 하동을 공격하여 가급적 오랫동안 확보함으로써 진주 방어를 위한 시간을 획득하려 결심하였습니다.


[미군의 무덤으로 변한 하동고개]


  제19연대에 긴급 배속된 미 제29연대 제3대대는 무어의 명령에 따라 26일 0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동 동쪽 8킬로미터 지점의 횡천리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야간행군을 위험하게 생각한 제3대대장은 하동으로 진입을 다음날로 미루고 횡천리에서 일단 숙영하였는데, 당시 제3대대 병사들은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을 한잠도 자지 못했을 만큼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누렸던 마지막 휴식이었습니다.


  연대의 명령에 따라 27일 08시 45분경 하동고개를 향해 출발한 제3대대는 09시경, 우계리 일대에서 10~15명의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이들을 추격하였는데 그것은 북한군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북한군의 뒤를 쫓아 하동고개로 진입한 순간 매복하여 있던 적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고 순식간 고개에 갇힌 제3대대는 대항도 못해보고 붕괴되었습니다. 7월 28일에 집계된 피해는 전사 2명, 부상 52명, 행방불명 349명으로 추산되었고 제3대대를 안내하던 채병덕도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북한군이 유인책에 미군이 완벽하게 결려든 전투로 그해 9월 말, 미 제25사단이 하동을 탈환했을 때 미군 시신 313구를 발견하였을 만큼 치욕스런 결과였습니다.


[상황을 오판한 미군은 참담한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하동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하였음에도 제8군사령부는 그때까지도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적은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진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7월 29일 오전부터 정면공격과 함께 양익포위 공격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7월 31일 06시경 진주를 함락시키게 되었을 때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가 확인되었고 미군은 경악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북한군이 마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은 부산에서 불과 4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증원군은 아직 바다를 건너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산을 노리는 적은 예상과 달리 2개 사단의 엄청난 규모였지만 이를 막아야 할 미 제24사단은 만신창이 상태였습니다. 긴박성을 감안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유일한 예비인 제27연대를 마산에 투입하고, 7월 31일 부산에 상륙할 예정인 제5연대 전투단을 마산에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싸움은 “북한군이 부산을 점령하는 것이 빠른가? 증원군이 부산에 상륙하는 것이 빠른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미 제25사단은 놀라운 기동을 선보이며 마산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결국 워커장군은 8월 1일부로 전 전선을 낙동강 선으로 철수시켜 병력을 절약하고, 상주에 있는 미 제25사단을 240여 킬로미터를 이동시켜 마산 정면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마산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군 제6사단의 예상치 못한 진격이 유엔군을 놀라게 하였지만 이제부터 미 제25사단은 이를 능가하는 기동을 전사에 선보였습니다. 만난의 난관을 극복하고 미 제25사단은 36시간 만인 8월 3일 17시 30분, 마산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강화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보지 못한 이러한 놀라운 이동 전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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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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