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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21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10)
  2. 2010.04.01 맥아더가 만난 장군 그리고 병사[上] (11)
  3. 2010.02.16 16. 누가 빠른가??? (22)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1 08:32
  예나 지금이나 반격에는 항상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필수입니다.
  고대 전사에서도 기병이 예비대이자 반격의 중추로 활약했고 대포가 발명된 이후에는 공격과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죠(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반격작전을 지시하는 육군 총참모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이형근 준장에 대해 일부 분들은 "어찌 상관에게 항명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이형근 제2보병사단장의 반박이 무조건적으로 억지스러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당시 전황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전선에서는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T-34/85와 Su-76으로 인해 사실상 공황상태 그 자체였고 한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포로는 일격에 전차를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
  이 때문에 이형근 준장은 어차피 북한 전차를 상대할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천연 장애물인 한강선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한다는 상식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건의를 했습니다.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로는 북한군의 T-34/85를 원거리에서 일격에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한국군의 공황상태는 치명적인 패착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이형근 준장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일축하면서 "북괴군 놈들의 전차와 포병에 위축되지 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반격을 감행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걸작인 것이 바로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적 전차에 육탄 공격을 하라”는 명령이었는데 이 부분을 보자면 마치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을 방불케하기 충분한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차에 대한 육탄공격은 보병으로서는 대단히 큰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황이 파국으로 몰리는 위기 상황 하에서 정작 단합되어 어떻게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작전을 수립해야할 육군 수뇌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6월 25일은 그야말로 전방과 후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전개된 하루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이 지속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명령만을 하달하자 마침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채병덕 총참모장이 이형근 준장의 반박에 분을 못참고 채찍을 휘둘렀다는 험악한 풍문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하니 제7 보병사단 사령부는 가장 길었던 하루( The Longest Day )를 보낸 셈이었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과 달리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로지 현 위치 고수와 반격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지휘 계통마저 무시한 채 직권으로 예하부대를 출동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신이 명령에 제2 보병사단장이 끝까지 반박하자 마침내 채병덕 총참모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 2대대장 차갑준 소령에게 직접 구두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조국의 운명은 바로 이 곳 의정부에 달려 있다. 현재 포천 방면에서 넘어오는 고개( 축석령 ) 앞에는 적 전차 30대가 포진하고 있으니 즉시 특공대를 편성해 격퇴시켜라. 이 작전에서 귀관이 성공한다면 진급 규정에 관계없이 중령으로 특진시키겠다.”
 
군인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진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내려진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꽤 메리트가 큰 것이었고 따라서 차갑준 소령은 부대를 출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차갑준 소령의 2대대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탄약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 6·25 방문자 여러분들 중 혹시 1997년에 개봉한 파울 베르회펜( Paul Verho"ven )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감상하신 분들은 아마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지만 보병에게 지급되는 탄약의 양은 지독하게 적고 자동소총이 보편화된 현재 140발로는 택도 없는 지경입니다.
  아라크니드족의 대군을 맞아 요새를 지켜내야 하는 러프넥 중대원들의 사투 중 탄약이 바닥나 옆 동료의 탄창을 얻어쓰는 부분이죠.
  오늘날 한국군의 소총수는 개인당 140발의 5.56mm×45탄을 지급받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전시에 이 정도 양으로는 반나절도 채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K-2 소총의 경우 3점사나 연발로 사격할 때 30발 탄창 비우는데 20초도 채 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실제 제가 군복무 시 K-2 소총을 이용, 공포탄 20발 탄창 3개를 연발로 난사하여 측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쏘고 난 다음 3일 동안 방아쇠만 제외한 총의 전 부위를 완전 분해해 손질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 당시 한국군에게 지급된 미국제 M1 개런드 소총이 아무리 묵직하고 반동이 강한 7.62mm×63탄을 사용하더라도 최소 1인당 8발 클립 11개, 총 88발이라는 만만치 않은 양이 지급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카빈 소총은 15발 탄창 11개, 톰슨 기관단총은 30발 탄창 7개가 지급되었습니다 )
  문제는 당시 2대대 병사들에게 지급된 M1 소총탄은 1인당 평균 2~5개 클립, 총 16~40발이 고작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전시 지급량의 절반도 못 채운 셈입니다.
  카빈의 경우는 더 심각해 평균 15발, 즉 1인당 1탄창이 고작이었고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경우 20발 탄창 4개 - 총 80발이 전부였습니다.


  차갑준 소령이나 예하의 중대장들이 봐도 이런 상태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상황이었고 회의 끝에 축석령에서 탄약을 재보급받기로 결정, 6월 26일 오전 3시를 기해 부대를 출동시킵니다.

  의정부의 운명이 걸린 축석령으로 향하는 2대대! 하지만 이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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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익열사 2010.09.03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형근 장군... 대한민국 군대 군번 1번 아닌가요?

  2.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쉽 트루퍼스의 요새 전투 장면은 지금봐도 긴장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3. FPS를 할때 2011.06.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오브듀티 5 월드앳 워에서 개런드 M1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128발이 주어지는데 여기서도 죽은 동료의 총알을 노획하지 않으면 사실상 한 게임 반도 못가서 총알이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게임 안에서도 이럴진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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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가 만난 장군 그리고 병사[上]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4.01 08:00

 

“ 따르릉 ! ”


  일요일 아침,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벨 소리에 극동군 총사령관 나는 눈을 떴다.  이 시간에 전화가 왔다는 것은 급한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었지만, 지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팔을 내밀어 수화기를 집어 들자 당직 부관이 간략한 인사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하였다.


“ 각하 !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


[북한의 전면남침 소식에 맥아더는 일요일 단잠을 깨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 뭐라고 ? ” 대답만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평화가 찾아 온지 겨우 5년밖에 안되었는데, 전쟁이라니 ?...한국군은 국내 치안 유지나 할 수 있는 수준인데, 과연 북한군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냐 ! 이것은 꿈이 틀림없어...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맥아더 개인에게는 불과 5년 만에 맞이한 전쟁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멍하니 눈을 뜨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지난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또 다시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 각하 ! 무슨 지시라도 내리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 " 이번에는 참모장 알몬드였다.  그때서야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극동군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맥아더의 신임이 높았던 알몬드는 이후 미 제10군단이 재창설되면서 군단장으로 임명됩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알몬드와 함께 하고 있는 맥아더)]


  이것은 6.25전쟁과 관련하여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의 회고록, 제일 처음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처럼 맥아더의 6.25전쟁 개입은 전쟁 발발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전쟁 개입여부와 관련 없이 일단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여야 할 임무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아더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관여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토쿄의 사령부를 나오는 맥아더)]


  맥아더는 일단 극동군사령부 군수참모차장인 처치(John H. Church)를 단장으로 하는 소수의 연락단을 파견하여 전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활동한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전해졌고 본국에서도 본격적인 군사개입 가능성이 거론되자 맥아더는 최전선을 직접 시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전선을 직접 시찰하러 1950년 6월 29일 수원에 도착한 맥아더
(무초 미 대사와 함께)]

  그리고 6월 29일, 그는 전용기를 타고 수원비행장에 도착하여 선발대로 파견된 처치장군 일행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군을 대표하고 있는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서울이 함락되고 상황이 몹시 불리한데, 당신은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나갈 것이오?”  그러자 채병덕은  “2백만 장정을 징집하여 침략자를 육탄으로  무찌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국군을 대표하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답변에 맥아더는 몹시 실망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맥아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기까지는 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굴든(Joseph C. Goulden)이 지은 한국전쟁(The Untold Story of the Korean War )에 따르면 그 이후에 맥아더는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하여 “어떻게 저런 자가 일국의 총참모장입니까? 속히 해임 하십시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 채병덕은 패전을 책임지고 직위해제 당하였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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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인연 2010.04.0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제가 알지 못했던 전쟁의 일화들을
    많이 듣고 갑니다(^^*)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진 것이라고는 육체밖에 없으니 그렇게라도 막고 싶었던 우리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죄라면 허약한 국력이 죄였지요.
    그러나 일국의 참모총장이니 보다 전략적인 답변이 있었어야 했겠지요.
    맥아더는 그런 답변을 원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도 일본에서 단 2일만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현장을 확인할 정도로 책임있고 적극적이었으니까요.
    이번 연평도 천안함 사고? 사건?에 있어서 원인도 모른 채 4일간 관계관 회의를 한 것과 비교가 되네요.

  3. 보안대장 2010.04.18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는 세상살이 // 천인함 관련 대책회의를 비난하는 데, 네 따위가 뭘 안다고 씨부렁거리느냐?
    너도 채병덕처럼 무턱대고, 북한소행이고 평양을 폭격하겠다거나 장산곶 상륙하겠다고 헛소리할 놈이구나?

  4. clothing factory 2011.05.25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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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누가 빠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16 10:25


 

  제19연대장 무어 대령이 하동을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히는데 채병덕 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지고 참모총장(당시에는 총참모장으로 통칭)에서 해임된 후 단지 명칭만 있는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되어 있던 채병덕은 무어에게 하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격부대의 안내역을 자임하였습니다. 무어는 채병덕의 의견에 동의하고 하동을 공격하여 가급적 오랫동안 확보함으로써 진주 방어를 위한 시간을 획득하려 결심하였습니다.


[미군의 무덤으로 변한 하동고개]


  제19연대에 긴급 배속된 미 제29연대 제3대대는 무어의 명령에 따라 26일 0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동 동쪽 8킬로미터 지점의 횡천리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습니다. 야간행군을 위험하게 생각한 제3대대장은 하동으로 진입을 다음날로 미루고 횡천리에서 일단 숙영하였는데, 당시 제3대대 병사들은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을 한잠도 자지 못했을 만큼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누렸던 마지막 휴식이었습니다.


  연대의 명령에 따라 27일 08시 45분경 하동고개를 향해 출발한 제3대대는 09시경, 우계리 일대에서 10~15명의 북한군과 조우하면서 이들을 추격하였는데 그것은 북한군이 파 놓은 함정이었습니다. 북한군의 뒤를 쫓아 하동고개로 진입한 순간 매복하여 있던 적의 집중사격이 시작되었고 순식간 고개에 갇힌 제3대대는 대항도 못해보고 붕괴되었습니다. 7월 28일에 집계된 피해는 전사 2명, 부상 52명, 행방불명 349명으로 추산되었고 제3대대를 안내하던 채병덕도 전사했습니다. 이 전투는 북한군이 유인책에 미군이 완벽하게 결려든 전투로 그해 9월 말, 미 제25사단이 하동을 탈환했을 때 미군 시신 313구를 발견하였을 만큼 치욕스런 결과였습니다.


[상황을 오판한 미군은 참담한 패배를 겪었습니다]


  이처럼 하동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하였음에도 제8군사령부는 그때까지도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면한 적은 북한군 제4사단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진주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7월 29일 오전부터 정면공격과 함께 양익포위 공격으로 총공세를 감행하여 7월 31일 06시경 진주를 함락시키게 되었을 때 북한군 제6사단의 정체가 확인되었고 미군은 경악하였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북한군이 마산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은 부산에서 불과 45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적 요충지였지만 증원군은 아직 바다를 건너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마산을 노리는 적은 예상과 달리 2개 사단의 엄청난 규모였지만 이를 막아야 할 미 제24사단은 만신창이 상태였습니다. 긴박성을 감안한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유일한 예비인 제27연대를 마산에 투입하고, 7월 31일 부산에 상륙할 예정인 제5연대 전투단을 마산에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싸움은 “북한군이 부산을 점령하는 것이 빠른가? 증원군이 부산에 상륙하는 것이 빠른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미 제25사단은 놀라운 기동을 선보이며 마산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결국 워커장군은 8월 1일부로 전 전선을 낙동강 선으로 철수시켜 병력을 절약하고, 상주에 있는 미 제25사단을 240여 킬로미터를 이동시켜 마산 정면으로 전환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마산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군 제6사단의 예상치 못한 진격이 유엔군을 놀라게 하였지만 이제부터 미 제25사단은 이를 능가하는 기동을 전사에 선보였습니다. 만난의 난관을 극복하고 미 제25사단은 36시간 만인 8월 3일 17시 30분, 마산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강화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보지 못한 이러한 놀라운 이동 전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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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kanjus mengkudu 2013.02.23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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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golf swing drills 2013.04.30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연대장 무어 대령이 하동을 공격하기로 결심을 굳히는데 채병덕 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

  9. Click Here 2013.05.04 0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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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http://www.allvoices.com/ 2013.05.15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전 초의 패배를 책임지고 참모총장(당시에는 총참모장으로 통칭)에서 해임된 후 단지 명칭만 있는 ‘경남지구편성군사령관’으로 좌천되어 있던 채병덕은 무어에게 하동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격부대의 안내역을 자임하였습니다

  11. Tuinmeubels 2013.05.16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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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videos 2013.05.16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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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ResumeOK 2013.05.18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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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Tours Costa Rica 2013.06.01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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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Jaco Tours 2013.06.01 16: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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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obituary example and samples 2013.06.06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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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lånutansäkerhet.org 2013.06.07 0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어의 명령에 따라 26일 0시 30분에 진주를 출발하여 우여곡절 끝에 하동 동쪽 8킬로미터 지점의 횡천리에

  18. managed vps 2013.07.04 1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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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CAG 2013.07.16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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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id alert 2013.07.17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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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click here 2013.07.20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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