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군민(軍民)이 만든 6ㆍ25 진지, 아직도 남아있다!(1/3)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2.01 14:07

 6ㆍ25전쟁시 서울 북방에서 전차를 앞세운 적의 대군에게 무참히 붕괴된 국군 사단과는 대조적으로 중부 전선의 춘천을 지킨 6사단은 대단한 전투력을 발휘해서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부 부대는 북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을 추격까지 했었다.

[6사단 7연대 -1949년, 국방 장관 부대 방문시의 군장 사열]



 6사단의 활약을 소개하는 전사에는 접두어처럼 반드시 앞에 붙는 한 사실이 있다. 6사단은 6ㆍ25전쟁 전에 북한의 침공에 대비해서 군과 민이 합동으로 적의 접근로에 대규모의 진지를 구축했었다는 사실이다.

 6ㆍ25전쟁 당시 군경만 싸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들이 크고 작게 호국의 일선에서 군을 도왔었고, 또 직접 싸우다가 희생했었다. 그러나 춘천 전투에서처럼 수 천 명의 학생들이 적의 침략에 대비한 방어 준비를 한곳은 찾기가 힘들다.

 민간인들이 군을 지원하여 진지 공사를 한 사례는 서부전선의 1사단 지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임진강 지역에서 군 생활을 할 당시 군민 합동의 진지 공사를 했을만한 지역들을 찾아보았지만 그 지역이 민감한 접적 지역들인지라 전쟁 후에도 미군과 국군이 수없이 후속 진지 공사들을 해서 1사단의 장병들과 학생들이 구축했던 진지들은 도저히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춘천 전투 때 적군의 측면을 기습했던 7연대 1대대 돌격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이 대용 장군은 6ㆍ25 첫 3일간 전투에서 자신의 공훈보다도 25일 단독으로 적 침공 부대를 가로막고 격파했던 16포병대대의 활약과 용맹한 1대대장 김용배 중령(준장 추서)의 리더십을 더 크게 평가했었지만 60년 전에 춘천의 학생들과 7연대 장병들이 땀 흘려 구축했었던 방어 진지의 덕택을 크게 보았다는 말을 자주했었다.

 여러 책자에 소개되었던 춘천 방어의 숨은 공신인 방어 진지 공사에 대해서 이대용 장군은 자세히 회고 하였다. 방어 진지 구축의 명령은 육군 본부 작전국에서 사단에 전달되었었다. 북괴의 하는 짓이 수상하니 유사시에 대비한 방어진지를 잘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육군 본부 작전 국장은 작고한 강문봉 대령이었다. 춘천의 7연대는 1949년 북한이 파견한 유격대들을 토벌하는 전투를 겪은 터라 이 지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지 공사는 봄에 시작되었다. 7연대의 옥산포 승리를 가져온 164고지 낮은 구릉지대를 방어 진지로 결정한 것은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이었다.

[비오는 날 옥산포에서 당겨서 찍은 164고지]



 이 지형은 약간 특이하다. 길이 4km 정도의 낮은 구릉형 산맥으로서 남북으로 뻗혀 있다. 너무 평범한 야산이라서 산맥의 이름도 없다. (이하 이 무명 능선을 164 고지 능선이라고 부른다.)

 6ㆍ25전쟁 전에는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어서 산 능선 좌우 쪽의 시야가 아주 좋았었다. 이 야산 산맥을 점거하면 서쪽으로는 옥산포 쪽으로 남하하는 적을 칠 수가 있고 동쪽으로는 샘밭 쪽에서 오는 적을 칠 수가 있다.


[164 고지 능선-소양강으로 가는 길목의 여우고개와 춘천 병원의 중간에 위치하여 있다. 푸른 펜으로 표시한 곳이 능선과 164 고지, 옥산포다.]



 휴전선 전방을 가보면 방어 진지들이 북을 보고 옆으로 횡렬로 뻗어 있는데 이 진지는 위 아래로 종렬로 구축되어 있다. 이대용 장군이 말하는 진지 공사의 내력은 이랬다. 육본의 지시에 진지를 만들 지형을 선정하고 7연대는 자체 연대 병력만으로 공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공사할 진지들이 많아 연대 병력만으로 진지 공사를 하면 도대체 어느 정도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좀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고마운 구원 군이 나타났다. 춘천 시내 각 중고등학교 학교에 배치된 배속장교들이 학생들에게 호국 교육을 시킬 겸해서 장병들의 진지 공사에 협조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자원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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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사에 호국군이나 배속 장교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와 혼란스런 분들이 많으리라. 이 글을 쓰면서 이대용 장군에게 확실히 알아보았다.

 6ㆍ25전쟁에서 활약한 배속 장교들은 각 중고등학교 체육 선생들 중에서 선발했었다. 태릉의 육사는 서울 공대 자리에 육사 분교를 설치하고, 이들을 5주간 훈련시켜 예비역 소위로 임관시킨 사람들이다. 각 학교마다 크기에 따라 1-2명씩 배치되었었다. 배속 장교로 근무할 때는 군 장교와 꼭 같은 계급장과 군복을 착용했었다.

 한국의 배속 장교들은 일제가 각 학교에 배치했었던 배속 장교 제도를 도입한 것이었다. 배속 장교들은 전쟁 발발과 동시 전부 현역으로 동원되었었다. 현역으로 소집된 배속 장교 출신들은 주로 행정 분야에 근무했었으나 일선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전투에 참전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 중에 뛰어난 전공을 세운 장교들도 있었다.

 군에 계속 남아 직업 군인의 길을 간 배속 장교들도 다수 있어서 이 중에 육군 대장도 나왔었다. 정진권 대장이 그 분이다. 호국군은 배속 장교들과는 다른 조직으로서 각 연대에서 지방 젊은이들을 모아서 단기 훈련을 시키고 간부를 역시 예비역 장교로서 임관시켰었다. 

 당시 국방 장관이었던 이범석 장군이 시작한 제도로서 간부들을 두어번만 배출하고 호국군 선발은 중단되었다. 호국군 장교들은 군모도 국군의 군모가 아닌 헬로 모자라고 불리는 모자(해군들이 쓰는 개리슨 햇)를 썼었고, 배속 장교보다는 다소 낮은 대우를 받았다.

 전쟁 발발과 함께 호국군 소위들도 소집되어 현역이 되었다. 역시 이 호국군에서도 육군 대장이 나왔다. 박노영 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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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춘천 시내의 춘천 고등학교, 춘천 사범학교, 춘천 농업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공사 지원에 나섰다. 놀랍게도 춘천 여자 고등학교도 자원해서 여학생들도 진지 공사를 지원해주었다고 했었다. 특히 춘천 농고 학생들은 삽이나 괭이같은 농기구를 지참하고 나와 작업 속도가 높았었고, 또 제일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었다.

 이 뜻밖의 도움에 7연대 주변의 춘천 진지 공사는 아주 쾌속으로 진행되어 6ㆍ25전쟁 두 달 전에 그 엄청난 임무가 다 완료되었다. 이 장군은 7연대 1대대가 맡은 164고지 능선에 대한 공사는 한 열흘 정도 걸렸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이 협조한 진지 공사가 164고지 능선 한 곳만이 아니었다. 2대대 지역인 소양강 남안에도 진지가 만들어졌고, 6ㆍ25전쟁 첫 사흘간 7연대 본부와 포병 지휘소가 있던 우두산에도 진지 공사가 있었으며, 6사단 사령부 전방 지휘소가 있었던 봉의산에도 진지 공사를 했었다.

 방어 진지가 완성되자 7연대 1대대는 6ㆍ25전쟁 당일까지 두 번에 걸쳐 진지 투입 훈련을 해서 지형 숙지를 했었다. 6ㆍ25전쟁 중 최대의 선방(善防)을 했던 6연대는 이렇게 학생들의 도움으로 적어도 반쯤은 전투 준비를 하고 적의 침공에 맞섰었다.

 기억력 좋은 이대용 장군은 학생들과 함께 진지 공사에 적극 협조 해주었던 각 학교의 배속 장교들의 이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한병, 김정남... 등등.

 춘천 전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내가 옥산포에 처음 가본 것은 작년 연말이었다. 첫 방문은 춘천에 갈 일이 있던 참에 옥산포가 어떤 곳인지 그저 한 번 알아본다는 호기심 차원에서 한 것이었다.

[옥산포에서 촬영한 164고지 능선]



 물어물어 소양교를 건너 옥산포에 도착했을 시각은 날도 어두워지고 당시는 옥산포 전투에 대해서 잘 아는 지식도 없던 터라 작은 강변 마을의 이미지가 있었던 옥산포가 번화한 시가지가 된 것만 발견하고 그냥 돌아왔었다.

[왼쪽이 임부택 연대장. 오른 쪽이 김종오 사단장]



 또 춘천에 갈 일이 있었던 지난 봄, 미리 옥산포 전투 상황도 잘 숙지하고, 164고지 능선의 지도도 구해서 아침 일찍부터 서울을 떠났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추적추적 왔었다.

[옥산포 거리-북쪽을 보고 촬영한 사진이다.]



 비 때문에 산에 올라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옥산포에서 비안개 속에 떠있던 164고지 능선의 원거리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 (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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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2.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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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송재철 2012.03.24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진!!1사단 15연대 일병송재철입니다.
    진지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무언가 가슴이찡한 느낌입니다.
    한번쯤 진지에 가서 경계자세를 취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6.25전쟁의 아픔을 다시한번 느끼면서 국방부의 이런 활동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잊지않겟습니다.
    wocjf1991@naver.com

  4. 일병 오태근 2012.03.31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골!
    3사단 방공중대 일병 오태근입니다.
    6.25 전쟁 안에 있는 작은 이야기들. 작은 곳, 그런 곳 하나하나까지
    각각의 사연들이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6.25에 대해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더 배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6.25에 대해 더욱 더 알아서
    제 2의 6.25가 발생하지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nonoboyso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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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이 약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1.08.09 15:58

 1950년 6월 28일 서울 함락까지, 전쟁 초기에 국군 수뇌부가 보여주었던 행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서울 사수에 급급한 나머지 총참모장 채병덕(蔡秉德)의 주도로 의정부축선에 축차적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일거에 소모시켜 버리고, 한강 이북에 5개 사단을 방치한 상태로 한강교 폭파를 단행하였던 전술은 무능함의 극치였다고 혹평을 받아 마땅합니다.

[전쟁 초기 대처가 미흡하였던 것으로 평가되는 채병덕 총참모장]


 결국 이 때문에 10만이었던 국군이 전쟁발발 일주일도 되지 않아 3만 선까지 몰락하게 되었고, 낙동강까지 밀려나 유엔군의 도움을 받은 다음에야 겨우 북한군의 진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축차 투입되어 순식간에 해체 된 부대는 2, 5, 7사단이었고, 수도경비사령부(수도사단)은 패전 부대를 긁어모아 간신히 재편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전략, 전술, 작전, 철학이 부재하여 벌어진 참변이었습니다.

[서울을 피탈당한 후 벌어진 한강방어전의 디오라마]


 의정부 축선을 담당하던 7사단이 북한군의 주력인 3, 4사단과 105땅크여단의 집중 공격으로 밀려난 것은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크고,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던 부분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던 서울에 대한 육군본부의 무의미한 집념이었습니다. 물론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로써, 150만의 시민이 살던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정치적 가치가 컸고, 이후 인공치하에 엄청난 탄압이 자행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방어에 나선 것은 타당합니다.

[전쟁 초기 북한군의 선봉이었던 전차부대]


 하지만 군사적으로 도저히 방어해 낼 능력이 없다면 시민을 안전하게 소개시키고 도시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했습니다. 아군의 북진 시, 북한이 도주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평양을 미련 없이 포기하였던 것과 1.4후퇴 당시에 서울을 순순히 적에게 내어주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위정자들과 군부는 거짓 정보로 시민을 혼란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국군의 급속한 몰락을 불러오는 자충수를 두었습니다.

* 자충수 : 바둑에서 자기가 돌을 놓으면 도리어 자기 수가 죽게 되는 수

[대부분의 중장비를 유기한 체 한강을 건너 후퇴하는 국군]


 이렇게 서울 북부에서 한심한 장면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던 6사단은 북한군 2군단을 몰락시키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는데, 역설적이지만 6사단이 대승을 거두게 된 데는 육군본부의 무능함이 크게 한 몫 하였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6사단은 육군본부와 연락이 두절되어 상부의 지시 없이 단독으로 작전을 벌이던 중이어서 타 전선의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도 일부부대는 선전을 펼쳤습니다.]


 오히려 국군이 해주로 진입했다는 라디오 방송을 그대로 믿어 모진교 폭파에 실패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춘천과 인제 일대로 북한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김종오 사단장은 사단 예비부대로 원주에 주둔하던 19연대에게 출동을 명하였습니다. 명령을 받은 19연대는 우선 선도대대를 징발된 차량 등을 이용하여 춘천으로 급거 출발시켰고, 본대는 열차편으로 청량리를 거쳐 춘천으로 이동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전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6사단 19연대의 이동로(점선-선도대대, 실선-본대), 열차를 이용한 본대는 의정부 인근인 청량리를 거쳐 춘천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날까지 6사단은 육군본부와 통신이 개방된 상태가 아니어서 사단의 의지대로 작전을 펼칠 수 있었는데, 이것은 이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육군본부는 후방에서 올라온 부대들을 앞뒤 가리지 않고, 의정부 축선에 축차적으로 투입하기에 급급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19연대가 이곳과 가까운 청량리에 왔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면 임의로 부대의 작전지역을 바꾸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춘천전투 기념비]


 물불을 가리지 않고 후방에서 이동하는 족족 축차적으로 의정부축선 일대에 투입하였던 육군본부의 대응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가설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예비대의 조력을 받을 수 없었던 6사단은 춘천과 홍천 방어에 실패하였을 것이고, 북한군 2군단은 신속히 수원까지 남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것이 약이어서 개전 초기의 유일무이한 대승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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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수호한 혈전, 춘천전투(3/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08.01 16:39

 춘천을 선방하고 있던 7연대에 비해 2연대는 워낙 불리한 여건이어서 처음부터 고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물러나지는 않았습니다. 개전초기에 관대리, 현리 일대를 경계하던 1대대와 2대내는 부대 재편이 요구될 정도의 엄청난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양강 마노진 나루터 등에서 적을 저지했습니다. 하지만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고립되어 싸우던 이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전쟁 발발 당시의 춘천지구의 피아 배치 및 북한군 진격로]


 증강된 적 12사단이 양구-신남-홍천으로 내려오자 2연대는 20여명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편성하여 아랫다무리고개에서 적 자주포 2문을 파괴하는 전과를 올려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철정리까지 철수하는 동안 무려 8배나 강한 전력을 보유한 적과 맞선 2연대는 절반 정도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2연대는 모든 것을 바쳐 맨주먹으로 적을 저지하여 나갔습니다.

 바로 이때 춘천을 공격하던 북한군 2사단이 7연대의 선방에 가로막혀 예상외의 출혈을 입자, 북한군 2군단은 25일 21시 경 자은리까지 남진한 12사단의 2개 연대와 자주포 10대를 양구로 회군시켜 춘천공략에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로 인해 위기에 처한 2연대에 대한 압박이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북한군의 결정은 춘천지구전투에서 아군이 대승을 이끄는 마지막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춘천지구전투 당시 적의 선봉이었던 소련제 SU-76자주포]


 적 12사단이 주춤한 틈을 타서 철정리까지 후퇴한 2연대는 6월 27일 말고개 일대에 거점방어 진지를 편성하였습니다. 바로 이때 춘천방어전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는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 16포병대대의 일부 포대와 원주에서 황급하게 올라 온 19연대 일부 대대가 위기에 처한 2연대를 도우러 속속 증원되었습니다. 그리고 회군 관계로 잠시 진격을 멈춘 적 12사단이 자주포를 앞세우고 공격을 재개하였습니다.

 그동안 중과부적의 상태에도 굴하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지만 너무 지쳐있던 2연대를 대신하여 후방에서 전개한 19연대에서 차출된 11명의 용사가 말고개를 넘어서 전진하는 북한군 SU-76 자주포 10문을 파괴 및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고 동시에 후방에 전개하고 있던 16포병대대의 M-3곡사포가 일제히 불을 뿜어 말고개 일대에 고립된 북한군 12사단과 603모터찌크연대 잔류부대를 괴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말고개전투 기록화]


 이러한 2연대의 분전과 19연대의 구원 그리고 적시에 지원을 한 16포병대대의 분투를 바탕으로 국군 6사단은 최후 보루이자 요충지인 홍천을 끝까지 지켜 내었습니다. 서부전선의 아군이 서울을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후퇴한 와중에도 불구하고 춘천과 홍천 일대에서 연이어 벌어진 이러한 대승은 동부전선을 공략하던 북한군 2군단의 전력을 완전히 마비시켜 버렸고 더 나가 북한의 남침 전략 전체를 뒤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아군이 낙동강까지 밀려갔을 때 편제를 그나마 유지하여 전투에 투입할 수 있었던 부대는 수도, 1, 6, 8사단이었는데 춘천지구전투의 대승으로 수도사단과 1사단이 경부축선을 따라서 효과적으로 후퇴 할 수 있었고, 동해 축선이 막힌 8사단이 청성의 엄호 하에 태백산맥을 넘어와 동부전선을 담당 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춘천지구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의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춘천지구전투는 용기와 기백으로 얻은 대첩입니다]


 이처럼 6사단의 춘천지구전투는 국군이 초반의 패전하면서 서울을 3일 만에 적에게 내주는 굴욕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존된 전력을 구원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춘천지구에서의 신화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단장이하 모든 장병들이 사전에 충분한 훈련을 거쳐서 습득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불굴의 용기와 기백으로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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