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사스선'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10.01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9)
  2. 2010.09.06 77. 최대의 패배를 감수한 중공군 (8)
  3. 2010.07.21 63. 다시 38선으로 (3)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01 08:21

  휴전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쌍방 모두는 휴전협상 자체를 파국에 빠뜨릴 수 있는 거대한 전면공세는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휴전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는 않았고 다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조성을 위한 제한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엔군은 공산군 측이 회담을 결렬시키려 할 때 강력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여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1951년 휴전회담의 시작과 동시에 군사적인 대응 전략이나 전술은 이전과는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열하게 대지공격을 펼치는 유엔군 전투기]

  공산군에게 유엔군의 화력은 넘을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임진강 하구-화천 저수지-간성을 연하는 캔사스선(Kansas Line)북방 10~20킬로미터에 와이오밍 선(Wyoming Line)으로 명명된 느슨한 방어선을 설정하여 놓고 있었는데, 이는 내심 휴전선으로 생각하던 캔사스선의 확고한 점령을 위한 전초진지(前哨陣地)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2중의 방어개념은 적이 대규모 공세를 취해올 경우에는 상당히 유효하였지만, 전력을 분산한 상태였기 때문에 종심 1~2킬로미터 내외에서 단일 고지군(高地群)을 목표로 벌어지는 제한전에서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뒤에 든든하게 설정 된 완충지대를 믿고 적이 공격해 올 때마다 제한적으로 후퇴한다는 것은 이제는 고려하기 힘든 전술이 되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는 와이오밍선의 방어진지를 캔사스선과 동일한 강도로 축성하도록 지시하여 후퇴 없이 와이오밍 선에서 적을 격퇴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그 덕분에 오늘날 휴전선이 애초 계획하였던 화천호-속초선보다 대략 10킬로미터 이상씩 북으로 북상한 현재의 위치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저돌적인 밴 플리트의 적극적인 대응전략으로 임시방어선으로 설정된 와이오밍선은 영구진지화 되면서 차후 작전은 이 일대의 고지군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공산군 측이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고의로 휴전회담을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동안 대규모 공세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시간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밴 플리트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아서 적에게 전력 정비의 여유를 주지 않고 유리한 지형을 계속 확보하기 위하여 과감한 공세를 감행하였습니다. 하지만 휴전회담장이 포함된 서부지역에서 공세를 감행할 경우 회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고지쟁탈전의 소모전 상황을 알려주는 탄피]


  사실 휴전하였을 경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려는 고지쟁탈전은 이미 전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북한군과 중공군은 이전처럼 주로 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국군의 출혈을 강요시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휴전반대 운동을 약화시키려는 부차적인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국군이 담당한 지역이 지리적인 여건 상 미군지역보다 화력이 약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산군에 비하여 병력에서는 여전히 열세였으나 화력과 기동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국군이 담당하던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중동부 산악지역에서는 이런 이점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힘들었습니다.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면서 고지쟁탈전은 쌍방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강요하였습니다. 공격하는 병력은 아무래도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노출되고 체력소모가 심하여 상당히 불리한 형국이었지만, 물 한 모금조차 산 아래서 조달하여야 할 만큼 보급의 제한을 극심히 받는 고지를 계속하여 방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1951년 9월 펀치볼을 공격하던 미 제1해병사단에서 사상최초로 헬기를 이용하여 병력을 기동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후 헬리콥터는 지상군의 필수장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헬리콥터는 새로운 전쟁 수단으로 급속히 부각하였습니다.]


  사실 6·25전쟁에서 이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진 일련의 고지전투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 오래가서 이후 오래 동안 고지확보를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작전으로 여기는 시류가 있기도 하였지만, 고지 쟁탈전과 고지위주의 병력배치는 단지 상대에게 휴전을 강요하고 유리한 위치에 서기위한 상황 하에서 적용되는 특이한 전술이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보급이 제한되어 스스로 고립될 수 있는 고지의 점령과 확보는 일반적인 전쟁양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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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77. 최대의 패배를 감수한 중공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6 08:36

  미 제3사단이 운두령 일대를 차단하자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은 돌출 고립된 중공군을 소탕하라고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에게 지시하였고 이 명령은 예하 군단장에게 즉시 하달되었습니다. 당시 명령을 받은 제10군단장 알몬드는 미 해병 제1사단을 홍천 북방의 한계(철정)로부터 양구 방향으로, 미 제2사단은 한계-인제 방향으로 공격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고, 운두령을 점령했던 미 제3사단으로 하여금 포위망에 갇힌 중공군을 격멸하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몰락으로 동부전선을 모두 책임지게 된 미 제10군단의 작전 반경이 너무 컸고 더불어 험악한 지형으로 말미암아 진출이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였습니다.


[험악한 지형으로 미 제10군단의 반격은 지지부진하였습니다.]


  반면 5월 25일경 서부전선에서는 임진강까지, 중부전선에서는 춘천까지 전선을 걷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10군단의 이런 부진에 대해 밴 플리트는 군단장을 독촉하였고 고심하던 알몬드는 미 제2사단이 한계-인제를 신속히 돌파하여야 전선을 밀어붙일 수 있을 것으로 결론내리고 공격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명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2사단은 선두에 나설 선봉부대로 사단에 임시 증원된 제187공수연대 2대대에 2개 전차 중대를 배속하여 게르하트(Gerhardt)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하였습니다. 하지만 불가피한 사전으로 부대편성이 지연되자 전차 1개 소대(4대)와 수색분대(인원11명, 지프 3대), 공병 1개 소대(트럭 2대)로 부대를 축소 편성한 후 이를 제72전차대대의 부대대장인 뉴먼(Charles A. Newman)소령으로 하여금 지휘하도록 조치한 후 급히 출발시켰습니다.


  그런데 뉴먼의 부대는 중공군이 철수하며 설치하였을지도 모를 대전차 장애물을 공병이 탐지한 후 전진하였고 있었기 때문에 진격이 상당히 지체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런 진격 모습을 헬기에서 알몬드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목도한 알몬드는 현장에 즉시 착륙하여“지금은 지뢰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귀관은 지뢰에 부딪칠 때까지 최고속도로 진격하라”고 단호한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군단장의 명령을 받은 뉴먼은 모든 것을 운에 맞기고 적이 혼비백산할 정도의 신속한 속도로 부대를 쾌속 진격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알몬드의 판단대로 불과 3시간 만에 적진을 무려 30킬로미터나 돌파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뉴먼의 부대는 쾌속 진격하였고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뉴먼의 부대가 적진을 뚫고 신속한 속도로 진출하자, 철수 중에 있던 중공군은 지뢰를 매설할 틈도 없을 만큼 혼비백산하여 도주하기 바빴던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항복한 포로들을 너무 많아 불과 4명의 공병대원이 80명의 포로를 감시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뉴먼부대에 후속하여 진출한 미 제10군단에 의해 속사리까지 진출하였던 중공군의 주력 2개 군의 후방은 완전히 차단되면서 일거에 궤멸되었으며, 단 1개 군만이 뉴먼 부대가 소양강 도하지점을 차단하기 전에 겨우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전사에 유엔군의 제3차 반격작전으로 기록된 이번 작전으로 유엔군이 지난 3월경에 휴전선으로 구상하던 캔사스선(Kansas Line 임진강-연천-화천호-양양)을 다시 확보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이를 10~20킬로미터 넘어선 북방인 와이오밍선(Wyoming Line)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이것은 휴전을 희망하던 유엔군이 내심 북으로 최대한 올라갈 수 있는 정책적 목표선이었고 더 이상 올라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정치적, 군사적으로 목표를 이룬 유엔군은 여유를 가지고 중공군의 반응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중공군의 최대의 패배를 기록하였습니다.]


  반면 펑떠화이가 아군의 허점을 노려 야심만만하게 개시하였던 중공군 제6차 공세는 이렇게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초기에는 그의 의도대로 순조롭게 목표가 달성되는 듯 했으나 속사리까지 진출하였던 부대들이 공격 기세를 상실한 상태에서 유엔군에게 후방이 차단되자 오히려 함정에 빠진 격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펑은 아군의 방어선에서 국군이 취약하다는 나름대로의 정확한 분석을 하였지만 스스로의 약점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중공군의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전략을 구사하였던 것이고 그 결과 중공군은 이번 공세에서 6·25전쟁 참전이후 가장 처참한 패배를 경험하였습니다. 펑은 지피(知彼)는 하였지만 지기(知己)를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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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오밍선과 캔사스선 돌파 사이에 그런 작전 사연이 있었군요. 항상 돌파전이나 포위전 국면에서 소수의 부대가 결정적 돌파나 포위를 하는 게 역사에 종종 있었는데 여기서도 그랬군요.

  5. 신창균 2012.08.15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1107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77편 최대의 패배를 감수한 중공군 편을 잘봤습니다.

    동부전선을 모두 책임지게된 미 제 10군단의 너무나 큰 작전반경, 험악한 진형이라는 핸디캡을 이겨내고 전선을 밀어붙인 제 10군단이 활약이 눈부셨습니다. 특히 알몬드가 “지금은 지뢰 따위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귀관은 지뢰에 부딪칠 때까지 최고속도로 진격하라"라고 단호한 명령을 내렸던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결정은 옳았고, 그에 따라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므로 많은 목숨을 구했고, 적군을 와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도자의 올바른 판단력과 단호한 결정력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펑더화이의 야심만만하게 개시하였던 중공군 제 6차공세가 참담한 실패로 무너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피는 알앗지만 지기를 몰랐던 펑더화이의 전쟁전술에서 지기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지기를 몰랐던 대가는 6.25 참전이후 가장 처참한 패배였던 것입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

  6. Chatrandom.com 2013.04.03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제 방향으로 공격하여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도록 하였고, 운두령을 점령했던 미 제3사단으로 하여금 포위망에 갇힌 중공군을

  7. chatrandom 2013.04.27 0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 제3사단이 운두령 일대를 차단하자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은 돌출 고립된 중공군을 소탕하라고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에게 지시하였고 이 명령은 예하 군단장에게 즉시 하달되었습니다.

  8. Social Bookmark 2013.05.13 0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몰락으로 동부전선을 모두 책임지게 된 미 제10군단의 작전 반경이 너무 컸고 더불어 험악한 지형으.

63. 다시 38선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1 08:47

 

  서울의 군사적 의의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탈환한 이상 또다시 적에게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서울을 한 번 더 적에게 내어준다면 그때는 전선이 한강일대에서 완전히 고착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38선 일대인 임진강을 연하는 선까지는 전선을 밀어붙일 필요성이 절실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공세를 생각할 수 없도록 적에게 심대한 피해를 강요하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반복적으로 공세를 수행하는 동안 중공군과 북한군은 아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이전에 철수를 반복함으로써 주력을 격멸하는데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을 후퇴시키고는 있었지만 격멸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의정부 북방에 북한군 제1군단과 중공군 제26군이 몰려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들 중 의정부 서북쪽의 북한군 제1군단은 아군이 밀어붙이면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포진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아군이 문산 북방의 교량만을 먼저 차단할 수 있다면 이들을 일거에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리지웨이는 대구에 위치하고 있는 제187공수연대를 임진강 남쪽에 공수시켜 퇴로를 차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제187공수연대는 3월 23일 07시에 대구비행장을 이륙하여 문산 북동쪽에 성공적으로 낙하하는데 성공하였고 북한군 136명 사살과 149명을 포로로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포로 들을 신문한 결과, 중공군과 북한군의 주력은 공수연대의 투입 바로 직전에 임진강북쪽으로 철수하였음이 밝혀지면서 적의 주력을 차단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이처럼 의정부 북쪽이 텅 비게 되자 다음날 국군 제1사단이 문산-법원리까지 진출하였고 이어서 미 제3사단과 미 제25사단이 임진강까지 북상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동해안 지역에서 국군 수도사단과 국군 제9사단으로 편성된 국군 제1군단이 3월 25일부터 양양을 향하여 공세를 개시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9여단이 험준한 산악지역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동해상에 배치된 미 함정의 지원 함포사격에 의해 전의를 잃고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3월 27일 수도사단이 남대천을 도하하여 양양을 점령함으로써 한강하구 서쪽을 제외한 38선 일대에서 전선은 다시 형성되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군은 다시 38선에 섰고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였습니다.]


  이렇게 아군이 다시 38선 일대에 정렬하자 미국정부는 38선의 재 돌파에 관한 모든 것을 야전군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에게 일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1950년 10월에 있었던 북진과는 개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미국의 의도는 38선 이북을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 상태에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한적인 돌파만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으로 이어지는 선에 경고한 방어지대를 설치할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캔사스선(Kansas Line)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방어선은 총 184킬로미터에 이르렀지만 서부전선에서는 22킬로미터는 한강하구를, 중부전선은 16킬로미터에 걸친 화천저수지를 방어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4월 1일부터 현 전선을 38선에서 캔사스선까지 밀어 붙이기로 하고 이를 요철작전(Rugged Operation)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은 전열을 재정비한 상태가 아니어서 아군은 38도선을 기준으로 서부에서는 3.2~9.6킬로미터, 동부에서는 16킬로미터까지 손쉽게 북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 애초 캔사스선은 38선 북방에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연결하여 임의적으로 설정한 방어선이었는데, 아마도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때부터 대략 이 곳을 기준으로 미래의 군사분계선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아군이 캔사스선에 이르렀을 때, 중공군의 대부대가 평강-철원-김화를 연결하는 삼각지대(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Iron Triangle)에 집결하여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원산과 서울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여서 중공군의 차후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단속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은 캔사스선 10~20킬로미터 북방에 와이오밍선(Wyoming Ling)을 설정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에 재차 돌입하였습니다. 4월 11일 개시된 작전의 명칭은 작전명 불굴(Dauntless Operation)이었습니다. 작전명답게 제8군은 쉬지 않고 진격을 재개하여  전선을 한 번 더 북으로 걷어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초 공세는 비교적 용이하게 진행되었으나, 4월 22일부터는 도처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전진이 멈추었습니다.


[중공군은 대응이 거세어지면서 반격이 예상되었습니다. ]


  리지웨이는 이것이 적이 새로운 대공세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신호로 해석하였습니다. 지난 4차 공세이후 두 달이 경과하는 동안 중공군의 특이 동향이 없었는데, 그것은 중공군이 공세에 나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각 부대에“적의 공세를 중단하고 적의 역공에 대비하여 방어로 전환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철의 삼각지를 눈앞에 두고 공격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는 중공군이 언제 어디로 공격해 올 것인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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