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13 전멸한 북 사이드카 부대 (7)
  2. 2010.07.21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10)
  3. 2010.03.25 미군들의 전쟁공포증 (11)

전멸한 북 사이드카 부대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8.13 13:41

태평양 전사를 읽다 보면 마리아나 군도(群島) 칠면조 사냥
-Marianas Turkey Shoot.-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온다.


1944년 6월 19일 20일 간 사이판 섬  상륙작전을 실행하던

미 스프루언스 제독의  미 기동함대에 도전했던 
일 오자와 제독의 일본 항모가
세 척이나 침몰당하고 함재기가
600기나 격추당한 해전을 미 해군들이
부르는 속칭이다.

정식 명칭은 필리핀 해 해전이다.


숙련 조종사들을 거의 다 잃은 일본 해군이 급히 양성하여
구식 항공기에 태워 출격시킨
미숙한 신참 조종사들은 훈련도
잘 받고 신형 전투기를 조종하는
미 해군 조종사들의 적수가 아니었다.


필리핀 해 재전에서 필사적으로 미 해군기의 뇌격과 폭격을 피하는
일본 전투함들.- 오른쪽 가까이는 중순양함 조카이, 아니면 마야
이고 더 먼 곳의 회피 기동을 하는 것은 항모 지요다이다.
잘 보면 왼쪽에서 달려가는  어뢰들의  두 줄 흔적이 자세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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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 사냥이라는 것이 한국 언어 정서에는 없는 소리지만 이를

'파리 떼 두들겨 잡기' 정도로 해석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6·25 전쟁에서도 그런 칠면조 사냥이라는 별명이 붙은 전투가 있었다.

해상이 아니라 육상이었고 파괴 대상이 함재기가 아니라

모터 사이클과 트럭, 짚차등 차량이었지만 공격후 수 킬로에 널 부러진

그 잔해가 마치 칠면조 사냥을 연상케 헤서 이런 이름이 붙은 듯하다.


고성의 칠면조 사냥이다.[Kosong turkey shoot,]


1950년 6월 25일 불의의 기습을 감행했던 북한군은 사흘 뒤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좌익들이 동원한 서울 시민의 강제 환영을 받으며

서울시가 행진을 했다. 

행렬 중신에 105전차 여단의 T-34 탱크와 함께 긴 장사진을 친
모터 사이클
부대가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쟁 기념관의 모터 사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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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들이 사이드 카 부대라고 부른 이 부대는  적 105전차

여단 소속 83기계화 보병연대였다.


이들의 주력은 중국 인민 해방군 47군 소속이었던 조선족
부대였다.
47군 소속 조선족이 모두 차출하여
북한에 보내진 5,400 명중
1,000명이 105전차 여단의 83기계화 
보병 연대에 편입되어
주력이 되었던 것이다. 



북한 105 전차 여단- 서울 점령후 사단으로 승격- 소속 T-34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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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기계화 연대는 북한군들에게 사이드 카 부대로 불렸다.]

서울 입성 후 시가행진에서 위풍당당하게 굴러 가던

이 정예 부대는 그로부터 40일 뒤에 서울에서 한참을 남해안

고성 서방에서 전멸을 당해 그 기계화 부대라는 간판을 내려야 했다.



좌익들이 조직한 환영 인파 사이를 당당히 행진하는 서울 점령
북한군- 이들중 몇 명이나 살아 돌아  갔는지 궁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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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초.

후퇴를 거듭하던 유엔군은 낙동강 교두보라는 한반도 일각에
몰려 버렸다.

비록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새로운 병력과 보급품들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지만 공격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은 북한군의
공세는
거세기만 했다.


부산 교두보 확보에 불길한 적신호가 발령된 것은 서부 전선에서

국군 1사단과 잠깐 대결하고 한강 하구 쪽을 도강했던
방 호산 소장의
북한군 6사단이었다.

[한국군 1사단과 정면 대결 했던 북한군은 최 광이 지휘하는

 북한군 1사단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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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호산은 1913년 함경도 출신으로  공산계 항일  무장 투쟁의
경력이 깊다 .모스크바 유학 경험이 있어서 상당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방 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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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6·25전쟁 초기 전투지휘를 높이 평가한 중국의 전사가들은
그를 항미원조 전쟁[6·25전쟁]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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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은  문자 그대로 바람 같은 기동력을 발휘하여

서해안을 따라 급거 남진했다.

호남 지방을 관통하고 남해안에 도달하자 그대로 좌로 방향을
틀어  
섬진강을 건너서 낙동강 교두보의 측면에 나타났다.


워커 중장에게 이 부대의 측면 출현은 심야에 도끼를 든 도둑이

옆 울타리를 뜯고 나타난 것과 같았다.


놀란 미8군은 북 6사단을 격퇴하기 위해서 19 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19연대에 배속된 29연대는 2대대는 7월 22일 하동고개에서

북한군의 매복에 걸려  350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하는 대패배를 당했다.


이 전투에서 전임 채병덕 참모총장이 전사했다.

그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서 미군의 자문역으로
백의종군했었다.


여세는 몰은 6사단은 7월31일 진주를 점령했다.

마산의 점령은 시간문제였다.

측면에 나타난 적이 무서운 전투력을 가진 부대라는 것을

알게 된 워커는 막강한 반격부대를 구성했다.


미 25사단과 본토에서 도착한 5전투단[RCT] 그리고 긴급히

한국으로 출동한 미 해병 1여단이었다.


낙동강 교두보의 서부에 나타난 북 6사단을 구축하고 잃은 땅을

회복할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는 미 25사단장 킨 소장의 이름을

따서 킨 태스크 포스[TF]라고 명명되었다.



우측 창원으로 부터 공격을 개시한 미 해병은 남쪽 축선을 따라
고성으로 진격했다.- 최종 목표는 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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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을 향한 반격은 8월 6일부터 개시되었다.

미국이나 한국의 전사에는 이 쪽 공격을 담당한 부대가 방 호산의

6사단뿐이었다고만 하지만 실상은 북 105여단의 83기계화 연대와

북 5사단 병력이 증파되었었다. - 뒤에 말한다-


사흘간 이들을 산과 계곡에 들어 밖여 저항하는 이들을
분쇄하고
전진을 하기 전에 사흘이나 소비해야 했다.

북한군은 마산 진동리 일대의 적을 소탕하고 서쪽의 진주를
향하여
전진해  갔다.


이 이야기는 서쪽을 향해 전진하던  해병 1여단의 정예 5연대가

8월 10일 공격 방향을 남으로 돌려 고성을 공격했을 때 발생했다.


해병들이 낮은 구릉과 논이 많은 고성 북쪽을 향해 진격하자
적들은
지형을 이용해서 반격해왔다.

그러나 해병들은 고성으로 들어가는 남행 도로가 스쳐가는

대다복 고개를 성공적으로 돌파했다.


고성 못 미처 지역에서 충분한 경계 태세로 한밤을 지센 해병들은

다음날 8월 11일 새벽, 어둠이 가시기 전 맹렬한 기세로 공격을 해온

북한군과 격렬한 전투를 한 차례 치러 이들을 물리치고

다시 얼마 멀지 않은 고성을 향해 진격했다.


북한군은 47mm 일본군  속사포까지 잠복 해놓고
해병들을 포격했다.

한 해병 장교의 짚 차가 이 포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났다.

속사포는 뒤에서 후속하던 전차까지 공격하다가 전차포의
반격으로
파괴되었다.



일본제 1 식 47mm 속사포 [대 전차포]. 남양전선에서 활약.
북한군이 이것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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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앞세운 해병들이 북쪽에서 무섭게 밀고 들어오고 해병대의

포병 포화까지 집중하던 점심 무렵에 고성의 북한군의 기계화 부대는

전 부대 이동 장비를 몰고서 서쪽 사천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트럭과 짚 차 그리고 모터 사이클들은 모두 동원되었다.

그 긴 행군 장경[長徑]은 무려 수 킬로미터나 되었다.

그들이 달리는 곳은 비포장 도로였고 뜨거운 태양에

바짝 마른 도로의 먼지는 자욱하게 상공을 가렸다.

인근 상공 어디서나 발견되는 대부대의 이동이었다.

이 부대는 앞에서 소개했던 105 전차 사단의 83기계화 보병연대였다.


이 무렵 105 전차 사단은 낙동강 북쪽에 있었다.

유엔군의 서쪽 측면이 의외로 쉽게 뚫리자 북한군 전선 사령부

[충북 수안보 위치]가 83연대를 따로 떼어서 서쪽으로 급파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83기계화 보병 연대는 원칙으로 보면 북쪽에서 육박해 들어오는

해병들의 기세를 판단하고 그 전날 야음을 틈타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해병들이 고성읍을 점령하기 일보 직전에야 보따리를 싸서

허겁지겁 도망 길에 오른 것은 북한군 상부의 융통성 없는
사수 명령에
시간을 보내다가 늦게야 철수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콜세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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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대의 각종 전투 장비가 수 킬로 뿌연 먼지를 날리며

도로를 달리는
것을 북한군은 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해상의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해병 VMF-323 전투 비행단 소속 F4U
콜세어 기 편대를 놓칠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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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병 비행단은 지금 F/A 18로 장비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미라마의
해병 항공대 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고성 공습의 수훈 부대 해병 항공대 VMF-323 부대의 현재 전투기
F/A -18 호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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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세어 기들은 먹이를 본 독수리처럼 이 먼지 속으로 급강하했다.

공격은 행렬 선두 차량에 집중되었다.

선두 차량이 파괴되면 행렬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선두 차량에 이어 맨 후미 차량도 첫 번 공격의 대상이었다.


차량 행군 대열을 앞뒤로 막아버린 콜세어들은 20mm 기관포와

로케트 포탄으로 북한군 표적들을 무자비하게 타격하기 시작했다.

도로 양쪽은 논이었다.

차량이건 모터 사이클이건 바퀴 달린 것이 도망 갈 곳은 없었다.



콜세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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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북한군들에게 검고 괴상하게 생긴 콜세어 기는

생긴 것부터가 두려운 존재였다.
이  괴물이 폭음도 요란하게 날아오며 기총소사를 하자
북한병들은 질겁을 하고 
논으로 튀어 흩어졌다.

100여량의 장비중 온전하게 남아있는 차량도 없었지만
북한군도 200여명이나
격멸되었다.


도로는 금방 검게 탄 차량의 연기와 파편과 죽은 시체로 가득 찼다.

고성을 점령하고 금방 현장으로 달려온 해병들은 행군을 가로막는

파괴 차량들을 도저 전차로 밀어 내면서 그날로
사천 남방 장천까지 전진했다.



북한 83 기계화 보병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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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콜세어 기중에 한 기가 저공으로 기총소사를 하다가

머리를 들지 못하고
  산언덕과 박치기 하여
조종사 한 명이 전사하였다.


지상에서 맞대응한 기관총에 맞았는지 기체 고장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참전 해병 조종사에서 최초의 전사자이다.


몇 십 분에  걸친 항공 공격으로 득의만만하게 서울 입성의
시가행진을 하던
  83 기계화 보병 연대는 사실상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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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습에서 한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해병대의 L-19 연락기를 조종하던 허버트 바렌타인 상사는

이 죽음의 함정에서 탈출했거나 먼저 출발했던  북한군 짚차
한 대가
행열의 훨씬 앞서
사천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것을
발견했다.


해병 정찰기 OY .-육군 명 L-19로서  나중에 0-1 버드 독으로
불렸다. 미 세스나 회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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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짚 차에는 운전병과 고급 장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뒷 좌석에 타고 있었다.


그 짚차 한 대 잡자고 바쁘게 적 차량과 모터 사이클 들을
부수고 있는
콜세어 기를 부를 수는 없었다.


그와 뒷좌석에 탑승하고 있던 포병 관측장교 패트릭 시버트 중위와

둘 다  장비하고  있던 38구경 리볼버로 이들을 공습하기로 했다.

몇 차례나 저공비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북한군 짚의 승차인간들에게
권총 사격을 했지만 짚 차는 그저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였다.


대상이 무장하지 않은 경비행기인 것을 안 북한군은 계속  

달리면서 권총으로 대응했다.


두 어 번의 공습이 실패로 끝나고  실탄도 남지 않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기로 하였다.

경비행기가 다시 저공으로 접근하자 운전병은 매번 하듯
뒤를 뒤 돌아 보았다.

그러나 너무 길게 돌아 보았다.


앞은 구부러진  언덕길이고 앞은 낭떠러지에 가까운

계곡의 급사면이었다.

짚 차는 그대로 계곡으로 돌진하여 거꾸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 상태라면 두 북한군은 죽었거나 중상을 입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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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특수 임무 부대는 방 호산의 6사단 부대를 몰아부쳤지만

독한 호산은 형편이 어려워져도  단념하지 않았다.

북 6사단 특공대는 전진하는 미군의 후방으로 침투해서
진동리의 2개의 포병대대를 기습해서
큰  타격을 주었다.


사천 점령을 앞두고 급히 되돌아온 해병들의 반격으로 6사단은
격퇴 되었지만
포병 장비는 모두 항공 공격으로 파괴하여야 했다.

그러나 다시 서쪽을 위한 공격은 일단 정지해야 했다.

북쪽에서 낙동강을 건넌 북한군의 대부대가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원래 적이 점령한 진주로 예정했던 킨 특수부대의 임무는 적의

마산 공격 눙력을 분쇄한 것에 만족하여야 했다.


방 호산은 이 낙동강 교두보 서쪽 전투에서 2,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그는 9.15 인천 상륙작전으로 낙동강의 북한군이 붕괴하여 태백산맥을

타고 북상할 때 부대를 잘 인솔하고 귀대해서 김일성의 격찬을 받았고

이중 영웅을 칭호를 수여 받은 뒤  군단장이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김 일성은 명성이 높아지고 
북한 체제에 불만이 많았던 방 호산을 그냥 놓아 두지 않았다.

방 호산은 1955년 숙청당해서 지방의 
탄광 부지배인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그 뒤의 소식은 알지 못한다.


김일성의 직속 졸개였었고 김 일성의 처 김정숙 동생의
남편이었던
83기계화 보병 연대의 직속 사령관 유경수가
승승장구하던 것과는 대조된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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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imothy 2010.08.17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고 감니다. 이글은 북괴군 입장에서 보니 감이 새롭고 더욱 실감이 있어 좋읍니다. 감사합니다.

  2. esk0441 2010.08.17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쓰신분이 북괘 군 인가여?

  3. chaffee2080 2010.09.14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괴군은 아닙니다. 다만 좀 외곬수인듯...^^

  4. 김광수 2010.10.01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동전투에서 사용된 oy-1,정찰기는 고성인근에 활주로가 없어서 미군들이 합판을 논에다가 깔아서 활주로로 사욯했다는것을 읽은적이 있네요, 부모님이 진주서 사셨는데 그 당시 피란을 가는데 인문군이 사이드카에 기관총을 달고
    먼지를 일으키고 달려오는것을 보고 놀라 고갯마루옆으로 할머니랑 어머니랑 도망을 가는데 이 북한군들이 사이드카를 세우고 "동무들 도망가지 마시라우 같은 동포인데 왜 도망하느냐 "하더라는데 아마 선무부대 아니였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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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1 08:32
  예나 지금이나 반격에는 항상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필수입니다.
  고대 전사에서도 기병이 예비대이자 반격의 중추로 활약했고 대포가 발명된 이후에는 공격과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죠(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반격작전을 지시하는 육군 총참모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이형근 준장에 대해 일부 분들은 "어찌 상관에게 항명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이형근 제2보병사단장의 반박이 무조건적으로 억지스러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당시 전황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전선에서는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T-34/85와 Su-76으로 인해 사실상 공황상태 그 자체였고 한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포로는 일격에 전차를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
  이 때문에 이형근 준장은 어차피 북한 전차를 상대할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천연 장애물인 한강선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한다는 상식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건의를 했습니다.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로는 북한군의 T-34/85를 원거리에서 일격에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한국군의 공황상태는 치명적인 패착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이형근 준장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일축하면서 "북괴군 놈들의 전차와 포병에 위축되지 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반격을 감행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걸작인 것이 바로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적 전차에 육탄 공격을 하라”는 명령이었는데 이 부분을 보자면 마치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을 방불케하기 충분한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차에 대한 육탄공격은 보병으로서는 대단히 큰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황이 파국으로 몰리는 위기 상황 하에서 정작 단합되어 어떻게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작전을 수립해야할 육군 수뇌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6월 25일은 그야말로 전방과 후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전개된 하루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이 지속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명령만을 하달하자 마침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채병덕 총참모장이 이형근 준장의 반박에 분을 못참고 채찍을 휘둘렀다는 험악한 풍문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하니 제7 보병사단 사령부는 가장 길었던 하루( The Longest Day )를 보낸 셈이었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과 달리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로지 현 위치 고수와 반격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지휘 계통마저 무시한 채 직권으로 예하부대를 출동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신이 명령에 제2 보병사단장이 끝까지 반박하자 마침내 채병덕 총참모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 2대대장 차갑준 소령에게 직접 구두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조국의 운명은 바로 이 곳 의정부에 달려 있다. 현재 포천 방면에서 넘어오는 고개( 축석령 ) 앞에는 적 전차 30대가 포진하고 있으니 즉시 특공대를 편성해 격퇴시켜라. 이 작전에서 귀관이 성공한다면 진급 규정에 관계없이 중령으로 특진시키겠다.”
 
군인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진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내려진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꽤 메리트가 큰 것이었고 따라서 차갑준 소령은 부대를 출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차갑준 소령의 2대대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탄약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 6·25 방문자 여러분들 중 혹시 1997년에 개봉한 파울 베르회펜( Paul Verho"ven )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감상하신 분들은 아마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지만 보병에게 지급되는 탄약의 양은 지독하게 적고 자동소총이 보편화된 현재 140발로는 택도 없는 지경입니다.
  아라크니드족의 대군을 맞아 요새를 지켜내야 하는 러프넥 중대원들의 사투 중 탄약이 바닥나 옆 동료의 탄창을 얻어쓰는 부분이죠.
  오늘날 한국군의 소총수는 개인당 140발의 5.56mm×45탄을 지급받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전시에 이 정도 양으로는 반나절도 채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K-2 소총의 경우 3점사나 연발로 사격할 때 30발 탄창 비우는데 20초도 채 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실제 제가 군복무 시 K-2 소총을 이용, 공포탄 20발 탄창 3개를 연발로 난사하여 측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쏘고 난 다음 3일 동안 방아쇠만 제외한 총의 전 부위를 완전 분해해 손질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 당시 한국군에게 지급된 미국제 M1 개런드 소총이 아무리 묵직하고 반동이 강한 7.62mm×63탄을 사용하더라도 최소 1인당 8발 클립 11개, 총 88발이라는 만만치 않은 양이 지급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카빈 소총은 15발 탄창 11개, 톰슨 기관단총은 30발 탄창 7개가 지급되었습니다 )
  문제는 당시 2대대 병사들에게 지급된 M1 소총탄은 1인당 평균 2~5개 클립, 총 16~40발이 고작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전시 지급량의 절반도 못 채운 셈입니다.
  카빈의 경우는 더 심각해 평균 15발, 즉 1인당 1탄창이 고작이었고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경우 20발 탄창 4개 - 총 80발이 전부였습니다.


  차갑준 소령이나 예하의 중대장들이 봐도 이런 상태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상황이었고 회의 끝에 축석령에서 탄약을 재보급받기로 결정, 6월 26일 오전 3시를 기해 부대를 출동시킵니다.

  의정부의 운명이 걸린 축석령으로 향하는 2대대! 하지만 이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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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익열사 2010.09.03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형근 장군... 대한민국 군대 군번 1번 아닌가요?

  2.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쉽 트루퍼스의 요새 전투 장면은 지금봐도 긴장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3. FPS를 할때 2011.06.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오브듀티 5 월드앳 워에서 개런드 M1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128발이 주어지는데 여기서도 죽은 동료의 총알을 노획하지 않으면 사실상 한 게임 반도 못가서 총알이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게임 안에서도 이럴진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수준이군요.

  4. absolutely free counceling obtain 2012.05.26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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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의 전쟁공포증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25 10:17


한국으로의 출동을 위해 일본에서 승선 중인 미 제24 보병사단 병사들의 모습으로 이들은 오랜 평화로 인해 기강이 많이 해이해져 있었습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쉽게 예를 들자면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는 얘기죠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제 1군단이 소련제 T-34/85를 앞세우고 대대적인 남침을 감행하면서 전쟁이 발발하자 전선을 시찰한 맥아더 원수는 신속하게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24 보병사단을 한반도로 투입하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초라한 규모의 군대였던 탓에 한때 수백만명에 달했던 육군은 1950년 개전 시점에서 59만 2천명에 불과했고 육군 항공대 소속이었던 폭격기와 전투기 상당수가 폐기 처분된데다 1947년,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해버리면서 모두 공군 소속으로 전환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59만 2천명의 병력 중 실질적인 정예 전력인 11개 사단이 공산권 국가들과의 격전에 대비해 모두 서독 지역에 배치된 상태였으므로 아시아 지역의 사단들은 대부분 편제에 못미치는 병력과 장비만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병사들의 기강!  태평양 전쟁 말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미군 병사들은 이제 전쟁은 "핵무기" 한 방이면 끝날 것이라는 안일한 사고에 젖어버렸고 자연스레 군 기강은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시작된 냉전에 대비해 일시 감축했던 군사력을 다시금 확장했고 무기를 대량 생산해 서유럽으로 배치시켰습니다.


  반면 소련은 종전 이후 파괴된 국토를 복구하고 새롭게 공산권으로 편입한 동구권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군사력을 감축시켰지만 그 와중에도 서유럽과의 전쟁에 대비해 본격적으로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소련 역시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차와 포병, 항공기, 해군 전력에 의한 재래식 전력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거든요.




  더욱이 소련은 북한과 중공의 무장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대량 생산된 무기들 덕분에 이들은 단시일 내로 무장을 갖추고 각급 부대들의 훈련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북한군은 소련에서 구입한 T-34/85 242대로 1개 전차여단과 1개 독립 전차연대를 편성하는 등 전차가 단 1대도 없던 한국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 먼저 한국으로 투입된 미 제24 보병사단 21보병연대 1대대장 찰스 스미스 중령 휘하 540명의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는 오산에서 북한군 제 4보병사단과 격돌하게 됩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북한군을 아주 우습게 깔보고 있었는데 한 예로 "우리가 도착한 것만으로도 북한군은 오줌을 지릴 것이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까지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를 어찌할까요. 오산 전투에서 T-34/85 33대를 앞세운 북한군 제4 보병사단의 공세를 받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T-34/85 4대를 격파하는 전과를 거뒀지만 그 대가로 150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는 큰 피해를 입음은 물론 가져갔던 105mm 곡사포 6문을 전부 손실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오는 참패를 당했습니다.  미군은 오산 전투를 통해 북한군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지만 이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죠. 북한군 제1군단은 지속적으로 남진을 계속해 천안과 연기군에서 다시금 미 제24 보병사단을 철저하게 유린했고 이 과정에서 미 제34 보병연대장 로버트 마틴 대령이 전사하는 등 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흔히들 미군하면 츄잉껌을 씹으며 사진기만 들이대면 포즈를 취해주는 천진난만함을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들은 한없이 진지해졌습니다. 결국 1950년 7월 20일, 충남 도청 소재지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대전시가 북한군 제3, 4 보병사단에게 함락당함은 물론 사단장인 윌리엄 딘 소장이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북한군의 포로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자 마침내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던 미군 병사들은 공포에 시달리며 이른바 "전쟁 공포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본토에서 증원군이 도착하고 미 공군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북한군의 공세가 거듭 좌절되며 서서히 해소되어 갔지만 전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상대를 주도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깔볼 경우 그 후유증이 주는 영향이 만만치 않다는 교훈을 보여준다고 해야겠습니다.

실제 전쟁 공포증에 걸린 미군들의 모습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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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5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공포증이야 미군들 뿐이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여건이 그것을 잊고 용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서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2. d 2010.05.13 0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에는 없는게 없는 것 같네요. 공포 범죄 사랑 복수 행복 쾌감 모든게 들어있군요....

  3. Argumentative essay topics 2011.09.28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보고 참 씁쓸했는데 말이죠.

  4. Beau Roussos 2012.05.31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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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medical emergency kit supplies 2012.10.21 0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러한 상황은 본토에서 증원군이 도착하고 미 공군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북한군의 공세가 거듭 좌절되며 서서히 해소되어 갔지만 전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상대를 주도면밀하게 살피지 않고 깔볼 경우 그 후유증이 주는 영향이 만만치 않다는 교훈을 보여준다고 해야겠습니다.

  11. What the Fuck 2014.01.05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들은 이걸보고 웃거나 아무것도 아닌일이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