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28 65. 거인의 퇴장 (5)
  2. 2010.02.02 10. 예상보다 빨랐던 미국의 참전 (7)
  3. 2010.01.12 6·25전쟁 연표Ⅲ(1951. 1. 1 ∼ 6. 30) (9)

65. 거인의 퇴장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8 08:13

 
  전쟁 종결 방법에 관한 맥아더의 강력한 의지는 영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측의 반발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지으려는 트루먼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군이 아닌 유엔군사령관의 직위를 가진 맥아더가 전쟁을 지휘하는 한 정부와의 불화는 더욱 격화될 것임이 명확하게 되었습니다. 맥아더가 설득당하여 그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던 워싱턴 당국은 맥아더를 해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임된 전쟁영웅의 귀환을 반기는 뉴욕시민]


  1951년 4월 11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맥아더 원수를 해임시켰다는 워싱턴 발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당시 맥아더는 유엔군사령관이라는 직위 외에도 주일 연합군사령관, 극동 미군사령관, 극동 미 육군사령관의 직위를 함께 보유한 제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군인이기 이전에 일본을 통치하는 총독과 같은 존재였고 인천상륙작전에서 알 수 있다시피 6·25전쟁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하던 또 하나의 주요 정치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거물의 갑작스런 해임소식에 세계는 놀랐으나 사실 맥아더의 해임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요에 따라 지휘관을 교체하는 것은 군 통수권자의 고유권한이지만, 문제는 맥아더가 미군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공화당으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전쟁영웅이라는 점이 정치인 트루먼에게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맥아더의 해임은 선거에 임박해 있던 그에게 분명히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심을 거듭한 트루먼은 마샬, 브래들리, 애치슨, 해리만 등의 참모들과 협의를 거쳐 극약처방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의 후임으로 어려운 시기에 제8군을 잘 이끌어 왔던 리지웨이를 임명하였습니다.
   

  1951년 4월 14일, 유엔군사령관으로 영전한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공석이 된 제8군사령관에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중장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제1급 전투사령관이라는 보증서가 붙어 있는 역전의 용사로 상당히 공세지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 같이 최고 지휘부가 일거에 교체됨으로써 전쟁의 양상은 전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공세적인 성격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와 신중한 성격의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의 지휘체제로부터 신중한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와 공세적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체제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내한 한 브래들리 합참의장을 안내하는 리지웨이와 밴플리트]


  이 시점에서 새로운 지휘부의 최대 화두는 소련의 개입이었습니다. 소련의 개입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전면개입, 해-공군만 투입하는 제한개입, 장비와 물자만 지원하는 간접개입 등으로 나뉘어 질수 있었는데, 당시 정보에 의하면  간접개입단계로 파악하고 있던 중이었고 규모는 중국군의 참전이후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현 단계에서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는 개입이 이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한마디로 가장 큰 고민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1951년 4월말까지 소련은 북한이나 중국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중국과 북한이 소련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간절히 도움을 원했던 것은 절대 열세 상태에 있던 공군이었습니다. 비록 소련이 MIG-15같은 최신병기를 공급하여 주었지만 흔히 미그회랑(MIG Ally)이라 불리던 한만국경에서나 작전을 펼칠 수 있었지, 정작 가장 중요한 38도선일대는 공중지원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야포나 전차의 지원도 그리 충분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으로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됩니다.


  가장 큰 가능성이 중국이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어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사태를 소련이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입니다. 다음으로 소련의 국력에서 더 이상의 개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소련은 불과 6년 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천만 명이상의 인명손실을 입었고 국토의 대부분도 황폐화되어 재건에 매진하여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언급되는데,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 당시 시점에서는 소련이 미국과의 직접대결을 회피하였던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1945년 8월 만주점령 당시 환영받는 소련군,

소련은 막강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주저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련이 6·25전쟁에 확대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주요 당사자였고 중국의 개입을 사주하기도 하였던 소련이 막상 이런 소극적인 자세를 전쟁 내내 견지하자 중국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이것은 후일 중-소 이념분쟁의 한 가지 원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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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번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 또한 고마울따름입니다.

  2. qwe 2012.02.19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병전우회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중공군이 물밀듯이 서울로 향하여 내려오고있던 1950년12월2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은 서울북쪽 의정부의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길에 아들 샘 워커중위에게 은성훈장을 직접 수여하기로 했다. 얼어붙은 도로를 맹속도로 달리고 있던 워커중장의 짚을 추월하려던 한국군 트럭이 추월했다. 짚이 옆으로 뒹굴면서 보좌관과운전병은 튕겨나와 살았지만 워커중장은 즉사했다. 이승만대통령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사고를 낸 한국군 운전병을 즉시 처형하도록 지시한다. 옆에 있던 미 군사고문관 짐 하우스만 대위가 말려 운전병은 3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 짐 하우스만 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런 뼈아픈 지적을 했다.
    <하버드 대학의 고풍어린 교내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에서 목숨을 바친 20여명의 하버드생 병사들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들을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내보냈다. 교수들도 참전해 더러는 전사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했다. 그러나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전사한 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는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게하는 표지는 없다. 존경하는 소대장님, 용감한 중대장님, 대대장님, 그리고 생명을 던져 진지를 지켜낸 병사들의 애기는 입으로만 전해질 뿐 그들을 기릴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전후 팔응 잃은 국회의원, 눈이 날아간 국방장관을 갖지 못했다. 행사장이나 연회장 같은 데서 한국전 전상자들을 만나 본 적도 없다.>
    여중생 두명이 미군 장갑차 깔려 죽은 것만 기역하는 젊은이들은 6.25때 한국을 지키는 작전을 총지휘했던 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의 과실로 죽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도 다른 미군 사령관의 아들이 자원하여 참전, 폭격임무에 종사하다가 전사한 사실도 모를 것이다.
    알아도 아무 감흥이 없다면 국가적으로,인간적으로 구제불능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위와 같은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로 모교를 소개 했습니다.

    "6.25때 교통사고로 죽은 워커 중장"이라는 글을 써주신 참전 해병 선배님,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배님께서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전사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는 자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표지는 없다."라고한 하우스만 대위의 회고록을 인용하셨는데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모교 '서울고등학교'는 한국전쟁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학생이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많은 학교입니다. 제일 많은 학교가 제주 오현고등학교고, 저의 모교가 2번째라고 합니다. 저의 모교에는 1956년도에 포충탑(褒忠塔)이라는 탑을 건립, 제막하였습니다. 포충탑의 뜻은 충성된 마음을 기리는 탑이라는 뜻이며,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 하사하신 친필 휘호입니다. 그 탑의 뒷면에는 "조국을위해 생명을 바친 학우들에게"란 15자의 글을 그 당시 모교 은사로 재직하고 계셨던 시인 조병화 선생님께서 지어주셨고, 6.25전쟁 참전 학도병들숭에서 전사한 30명의 학우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그 후 4.19의거 때 희생된 학우들, 또 월남전 파월전에 수류탄을 덮고 산화하신 강재구 학우등 총 33명의 이름이 각인되어있어 후배들에게 애국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강재구 소령의 흉상은 그 동기들이 졸업 30주년 기념으로 제막하였습니다. 포충탑,강재구 소령 동상,삼일탑(3.1탑)등 3개 시설물은 국가보훈처로부터 2002년 12월11일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선배님 제 모교 자랑인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에도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학우들"의 뜻을 기리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과 같은 글을 해병대 전우회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What an excellant high school we attended! How smart and nice the education we received was!! How noble

    __________

    지난 해 7월 8일 독립신문(http://independent.co.kr/ )독립군 게시판 623번 글에 실렸던 이 칼럼은 비록 짧지만 우리가 주한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우정을 이해하기 위해 몹시 중요한 글이므로 일독을 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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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상보다 빨랐던 미국의 참전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02 13:40

  북한이 남침 계획을 세웠을 때 고려하던 여러 변수 중, 가장 중요하였던 것이 미국이었습니다. 북한과 남침 세부안을 작성한 소련은 설령 미국의 대응이 있더라도 군사적인 개입은 상당히 늦을 것이라 판단하였고 그사이에 한반도 전체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면 된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더구나 1950년 1월 12일, 애치슨(Dean G. Acheson) 당시 미 국무장관이 미국의 태평양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하여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6.25전쟁 참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였을 만큼 즉각적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대통령 트루먼(Harry S. Truman)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즉각적인 참전을 결정한 트루먼]


  6월 25일 11시 04분(이하 한국 시간), UP통신의 보도로 6·25전쟁 발발소식이 미국 전역에 전해졌고 이어서 무쵸(John J. Mucio) 주한미국대사의 보고가 국무성에 도착하자 미주리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트루먼은 UN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도록 지시하고 비행기 편으로 즉시 귀환하였습니다. 그때 트루먼은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3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대처방안을 골똘히 구상한 후 중대한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속하도록 결정한 가장 극적인 판단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전면남침은 소련이 미국에 대해 시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침략을 방치한다면 공산당의 마수는 아시아 전역으로 미치게 되고,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이 유발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을 지켜내는데 미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러한 대통령의 결심과 별개로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극동군사령관에게 주한 미국인 소개를 위한 제한적 군사조치를 하달하였고 26일부터 29일까지 전원을 일본으로 철수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 상공에 출현한 북한군 YAK기를 미 공군이 격추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최초로 미국과 북한간의 교전이 벌어졌지만 이것은 미국의 참전에 따른 교전이라기보다 우발적 충돌이었습니다.



[북한의 도발을 불법으로 규정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6월 27일 11시, 백악관에서 열린 제2차 안보회의에서 미 해‧공군의 참전을 결정되었고 지상군 참전에 관한 최종 판단은 맥아더 원수에게 맡겨졌습니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6월 29일에 맥아더는 한국으로 날아와 한강방어선을 직접 시찰하고 난 후 지상군 투입의 당위성을 6월 30일 03시, 트루먼 대통령에게 건의하였고 대통령의 허가가 나자마자 미군의 본격적인 개입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 제24사단에게 출동 명령이 하달되고 그 선발대로 선정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s)가 7월 1일 부산에 상륙하게 됨으로써 전쟁은 북한군과 한‧미 연합군간의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6월 26일 04시,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군의 적대행위 즉각 중지와 38선 이북으로 복귀 요구, 이를 시행하기 위한 회원 각국의 협조 및 북한에 대한 원조 금지를 요구하는 결의문”이 채택되었고 이어서 6월 28일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함과 동시에 회원국들에게 “한국을 도와 무력공격을 격퇴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이 일사천리로 채택되었습니다.



[유엔군 깃발을 전달받는 맥아더]


  7월 7일 개최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유엔군사령부 설치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유엔 역사상 최초로 유엔군사령부가 창설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맥아더 원수가 초대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7월 14일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의 작전 지휘권을 이양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북한군과 싸우는 아군은 유엔군의 깃발아래 하나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신속하였던 미국과 국제사회의 이러한 대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였던 대한민국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사회의 지원에 용기를 얻은 국군은 후퇴와중에도 부대를 재건하면서 전선을 재정비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 전세를 회복할 수 있던 상태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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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OHoO 2010.01.31 2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정말 좋은 취지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군요^^
    앞으로 자주 들리겠습니다!

    • Koreanwar60 2010.02.01 0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 감사합니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여
      6·25전쟁에 대해 바로 많이 알리기 위해 개설 하였습니다
      자주 들러주시고 홍보도 병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 새라새 2010.02.02 2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투루먼 대통령이 있었기에 제가 이 댓글을 달고 있을 수도 있는거네요 ㅎㅎ
    방문감사하고 좋은 글도 잘보고 갑니다..
    요즘은 6.25 별 신경을 쓰지 않는것 같은데.. 다시한번 우리나라에 대한 일면을 볼 수 잇었던 좋은 기회인것 같아 자주 들려야 겠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3. Koreanwar60 2010.02.02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문 감사합니다.
    자주 방문 하셔서 좋은 자료 얻어 갈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기위해서는 절대 잊어서는 안되죠...

  4. just what exactly halting sexaholics lust 2012.05.08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러한 종류의 현재 스타일이 뭐지에 대한 내 개인 정보를 확장하기 위해 나를 도와줍니다. 단지이 데이터를위한 많은 감사합니다!

  5. precisely what addicted sexaholics lust 2012.05.08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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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연표Ⅲ(1951. 1. 1 ∼ 6. 30)

톡!톡! 자료실/자료 톡!톡! 2010.01.12 16:08

 

 6·25전쟁 연표Ⅲ(1951. 1. 1 ∼ 6. 30)


1.2          국군 제1·6사단 한강 이남으로 철수.

1.4          서울 실함. 1·4후퇴 개시. 정부 부산으로 이전.

                         [혹한 속에 파란길에 나선 서울시민들. 과천 부근의 당시 모습(1951. 1)]


1.5          중공군, 서울 진입.

1.6          국군 제1사단, 안양부근에서 중공군과 교전.

              서부전선의 미 제1,제9군단, 평택·장호원 점령.
              미 제2사단, 원주 쟁탈전.

1.7         유엔군 37도선(평택-원주-삼척선)으로 철수, 신방어선 구축.

             국군과 유엔군, 충주·삼척에서 공산군 저지.
1.8         중공군, 신정공세 종료.

1.9         유재흥 소장 제3군단장 부임.

1.10        국군 제2군단 해체.

1.13        미국 한국에 병력 5만 증파 결정.  헌병사령관에 최경록 준장 임명.

1.14        유엔군 북위 37도선 중서부전선서 30만 중공군과 대치.

1.15        미 제1군단 울프하운드(Wolfhound) 위력수색전 개시.

1.17        중공, 휴전 5개원칙 거부.

1.19        미하원, 중공비난 결의안 가결.

1.22        국군, 전면공격 개시.

1.23        미 공군 F84기 33대, 신의주 상공에서 MIG기 30대와 공중전.

1.24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12개국, 신한국휴전안 제의.

1.25        미 제1, 제9군단 한강선을 목표로 선더볼트(Thunderbolt) 작전개시.

1.30        국군, 북한군 제2군단 격멸작전 종료.

1.31        벨기에·룩셈부르크 지상군 도착.

2.1         유엔총회,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

2.5         이승만 대통령, 북진중지설 반발.

             중부전선의 국군 제3군단 및 미 제10군단 홍천을 목표로 라운드업
             (Round Up) 작전 개시.
2.7        수도사단, 강릉 및 대관령 수복.
2.10       국군 제1사단, 한강변으로 진출.
2.11       서울 재수복.  거창양민학살사건 발생.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2.13        지평리 전투, 미 제23사단 예하 제23연대와 프랑스 대대 중공군 제39군
             포위공격 격파.
2.21        미 제9·10군단, 원주-강릉 간의 도로를 확보하기 위한 킬러(Killer)개시.
3.7         유엔군, 춘천을 목표로 한 립퍼(Ripper) 작전 개시.
3.14       국군 제2사단, 서울 재탈환.  육군 제1훈련소 창설.
3.17       김일성, 최후까지 싸우겠다고 스탈린에 서한.
3.19       유엔군, 전 전선에서 진격.  공산군, 총퇴각.
             훈련시설 부족으로 국민방위군 20만명의 소집을 해제.

3.23       맥아더, 중국 본토공격 시사 중공군 최고사령관에게 전쟁종결협상 제의.
             미 제 187공수연대 문산투하.(토마호크 Toahawk 작전)
3.24       맥아더, 38선 이북 진격명령.  맥캔아더, 중공 격멸 결의 표명.
            이승만 대통령, 한·만국경까지 진격할 것. 그전에는 정전불가라고 담화.
3.28       제1군단장 김백일 소장, 비행기 사고로 순직.
3.29       국회, 국민방위군 의혹사건 폭로.
4.5        유엔군, 38도선에 연해 설정한 캔사스(Kansas)선 진격을 위해 러기드
             (Rugged) 작전 개시.
4.10       유엔군은 철의 삼각지를 확보하기 위한 돈틀리스(Dauntless)작전 실시.
             맥아더 원수 전격해임.
4.11       유엔군사령관 릿지웨이 대장 취임.
             미 제8군사령관으로 밴플리트 중장 취임.
4.14       유엔군, 전전선에서 캔사스(Kansas)선 도달.
4.17       거제도포로수용소 포로들, 강제송환반대탄원서 국회의장에 제출.
4.22       중공군, 제1차 춘계공세(4월 공세).  국군 제5사단, 인제 전투.
             국군 제6사단, 사창리 전투.  벨기에대대, 금굴산 전투.
             영국 제29여단, 설마리 전투.  터키여단, 장승천 전투.
4.23       영국 제27여단, 가평 전투.
4.28       휴전회담 본회의 재개, 중립국 감시단 구성 합의.
5.7         신성모 국방장관 해임, 이기붕 국방장관 취임.
             에티오피아 지상군 도착.
5.8         국회 정·부의장 선출.(의장 신익희, 부의장 김동성·조봉암)
5.15        제2대 부통령에 김성수 선출.
5.16        중공군, 제2차춘계공세.(5월 공세)
              미 제2사단, 벙커고지 전투.
             트루먼, 대한정책 '한국전을 협상으로 종결시킨다'는 원칙 확정.

5.18        유엔총회, 대중공 전략물자수출금지 결의.(유엔 최초의 경제제재)
              국군 제6사단, 용문산 전투.

5.21        국군 및 유엔군, 전면 반격 개시.
5.23        국군 제1군단, 대관령 확보.
5.26        정부, 통일 없는 휴전협정 반대 성명.
5.30        유엔군 데토네이트(Detonate) 작전으로 캔사스선으로 진출.
6.3          미 제1 및 제9nseks 파일드라이브(Piledriver) 작전을 실시.
              수도사단, 향로봉 전투.
6.9          이승만 대통령, 38선 정전 필사반대 선언.
6.10        정부, 부산에서 휴전반대 궐기대회.
6.12        철의 삼각지(철원·김화·평강) 탈환.
6.13        북한·중국·소련, 모스크바에서 전략회담, 38선 휴전전략에 합의.
6.15        콜롬비아 지상군 도착.
6.22        노르웨이 의료지원부대 도착.
6.23        소련 유엔대표 말리크, 유엔 안보리에서 휴전제의.
              이종찬 소장, 육군참모총장 취임.

6.27        참전 16개국, 말리크 제의를 공동 수락.
6.28        이승만 대통령, '휴전보다 죽음을 원한다'는 결의 표명.
6.30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 공산군에 휴전회담 제의.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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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g factory 2011.07.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고 있던 워싱턴 당국은 맥아더를 해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 bag factory 2011.07.23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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