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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7.22 음지에서 승리를 이끈이들 (6)

잊혀 질 수 없는 전투, 제2차 인천상륙작전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9.16 08:21

  미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1.4후퇴로 평택-삼척선까지 밀려난 전선을 38선 인근으로 다시 올리기로 결심했는데, 인천항 일대에 교두보를 다시 확보한다면 차후 반격 시에 상당히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1950년 9월 15일에 있었던 거대한 상륙작전까지는 필요 없고 강력한 제해권을 발판삼아 단지 인천항을 확보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작전을 지시했습니다.


[1.4후퇴 이후 반전을 이끈 명장 리지웨이]

(우측은 통역을 하는 언더우드가문의 원재한 선생)


  이에 따라 한국 해군과 해병대가 작전주체로 선정되었는데, 인천 앞바다와 도서는 아군의 통제권 하에 있었고 인천항 주둔 공산군도 그리 강력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아 충분히 가능한 작전으로 분석되었습니다. 작전을 총괄한 미 제95기동부대의 사령관 스미스(Allan Edward Smith) 소장은 YMS-510 강경함의 함장인 함덕창 대위에게 인천항 현황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의 수집을 지시하면서 작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습니다.


[스미스제독과 작전을 숙의 중인 손원일제독]


  1월 27일 07시 만조 때, 인천항 북쪽 인천기계제작소(현 만석부두 인근)앞에 침투한 강경함은 적 1개 소대가 경비하던 방어진지에 포격을 가하여 적을 격멸시킴과 동시에 4명의 특공대가 기습 상륙하여 정보 획득을 위한 2명의 포로를 생포하여 귀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날의 전과로 적의 방어 형태를 파악한 아군은 본격 상륙작전을 2월초로 예정하고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작전의 주역인 YMS-510 강경함]


  수립된 계획에 따라 인천에 상륙하기로 예정된 부대는 덕적도에 주둔하고 있던 김종기 해군 소령 지휘하의 해병대 1개 중대였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노명호 소령이 지휘하는 PC-701 백두산함이 2월 2일 덕적도에 도착했습니다.  수차례의 기만작전을 통하여 면밀히 분석을 마친 아군은 37도선에 정렬한 아군이 다시 북진을 개시하는 것(이른바 Thunderbolt작전)과 발맞추어 2월 10일 18시 만조 시간을 D-Day로 잡아 상륙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전에 참여한 PC-701 백두산함]


  아군 함대가 포격을 가하여 탄막을 만드는 동안 100여 명의 해병대가 상륙하여 교두보를 확보하여야 하는데 바로 그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나빠져 덕적도에 주둔한 해병대의 탑승이 지연되어 예정 만조시간에 상륙이 불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급보를 접한 노명호 함장과 김종기 소령은 인천 외항에 집결한 각 함정의 수병들 중에서 지원자를 모집해 총 37명의 특공대로 구성된 상륙 부대를 긴급 편성하였습니다.


[6·25전쟁 당시의 국군 해병대]


  드디어 D데이 H아워에 지원사격이 시작되어 포탄의 불벼락이 공산군 진지에 정확히 떨어지면서 적을 혼란에 빠뜨리자 이틈을 이용하여 김종기 소령이 지휘하는 특공대가 인천기계제작소 앞 부두에 안전하게 상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교두보를 확보한 후, 김종기 소령은 전 대원에게 각자 담당한 목표를 제압한 후 21시까지 기상대고지(현 제물포 고등학교 인근)에 집합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다음은 전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상륙 직전 인천 도심의 모습]


  “이제 우리들은 적지에 있다…(중략)…너희들은 돌아가려해도 보다시피 우리를 싣고 온 함은 이미 이안하고 없다. 나를 믿고 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살아나지 못할 것이다…(중략)…지시한 대로 인천시 기상대고지에 집합하라. 21시까지 집합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자로 확정한다.”


[작전을 준비하는 한국 해군의 모습]


  탄막이 걷히자 아군 특공대원은 함성을 지르며 각자 목표한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달려 나갔습니다. 당시 인천항은 적 1개 중대 규모가 방어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아군의 진격에 놀라 뒤도 돌아보지 못한 체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당시 아군은 소수의 특공대가 아니라 대부대가 상륙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제1대대 돌격 앞으로, 제2대대 돌격 앞으로” 하는 식으로 크게 소리 지르며 적을 기만하였고 적은 이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상륙 후 점거한 해안포대의 모습]


  21시, 아군 특공대는 계획대로 기상대고지를 완전히 점령하여 인천항을 장악하는데 성공했고 23시에는 시청(현재 중구청)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전의를 상실한 적은 방어를 포기하고 시 외곽으로 도주하였고, 악천후로 덕적도에 대기하고 있던 해병대 본진이 다음날 07시에 상륙하여 점령지를 특공대로부터 인수인계 받음으로써 성공적으로 인천항 확보작전이 종료되었습니다.


[기상대고지를 점령한 특공대]


  이처럼 소수의 자원 특공대원들에 의해 1.4후퇴 이후 한 달 만에 인천은 다시 탈환되었습니다. 전사에는 이를 제2차 인천상륙작전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비록 1951년 2월의 작전은 5개월 전에 있었던 인천상륙작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도 않지만, 엄연히 적진 속으로 강습하여 거점을 안전하게 확보한 상륙작전이었습니다.


[작전 후 기념촬영을 한 특공대원들의 모습]


  바로 그때 유엔군이 북진작전을 개시하자 공산군은 더 이상 한강이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4후퇴 한 달 만에 아군은 다시 서울부근까지 다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적의 측면에 비수를 들이대는 위치인 인천을 확보한 해군 특공대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은 그 규모와 상관없이 전술적으로도 그리고 전략적으로 길이 빛날 위대한 작전이라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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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웅진 2010.09.16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마지막에서 두 번째 사진이 "그 유명한 다시 노획된 크롬웰 전차" 아닌지요? ^^

    그건 그렇고 배 이름과 제독님 이름 캡션... 뒤바뀌었습니다. -ㅅ-;

  2. 비도승우 2010.09.22 0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노획된 크롬웰 전차는 1951년 1월에 경기북부지역에서 전차전중 영국전차대가 제노획하지

    않았나요?(지역과 날짜는 잘 기억이 안나네요..)이 사진은 또다른 사례같아요..사진보고 흥분했음.

  3. 울프 독 2010.09.22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경기도 고양 전투에서 모두 유기된 크롬웰 전차대[14량]중 1량은
    한달 뒤 한강변에서 영 센추리언 전차에게 파괴 되었습니다.

    크롬웰을 북한군이 인천에 가져다 놓은 것은 처음 알았고
    북한군들이 크롬웰 전차위에서 촬영한 사진의
    미스테리를 이제 이해 했습니다.

  4.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5. progressive online login 2012.05.23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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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custom essay 2013.02.10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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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spiderman motocross 2013.09.22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 앞바다와 도서는 아군의 통제권 하에 있었고 인천항 주둔 공산군도 그리 강력한 것으로 판단

음지에서 승리를 이끈이들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22 08:30

  전쟁의 승패에 있어 병참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6·25전쟁 또한 군수지원의 중요성이 입증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남이던 북이던 38선을 넘어 서면서부터 심각한 군수문제에 시달리고는 하였습니다. 특히 제공권, 제해권을 유엔군에게 일방적으로 빼앗기고 수송수단도 열악한 공산군 측의 군수조달 문제는 전쟁 내내 고민거리였습니다.


[수송기를 이용한 보급은 장진호 전투 당시 미 해병 제1사단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군수조달 환경이 좋았던 아군 측이라 한반도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특히 산악이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다보니 최전선의 군수지원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하였습니다. 도로가 많이 개통된 현재도 동부전선의 산악지역은 폭설이라도 한번 내리면 병참선이 차단 될 정도로 조건이 나쁩니다.


[미군도 산악지대에서 달구지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러한데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없다시피 한 6·25전쟁 당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특히 1951년 말부터 휴전까지 진행된 참호전은 대부분 고지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고지에 주둔한 제 부대에 대해서 제때 병참지원을 해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전쟁 중반기이후 고지전으로 바뀌자 병참문제가 더욱 중요하여졌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전술(?)이 일반 노무자들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산악지대에 대한 보급을 민간에게 아웃소싱을 한 것이었는데, 전쟁 발발 직후부터 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소위 보국대를 비롯하여 유엔군 참전 이후 만들어진 민간 운반단 (CTC - Civilian Transport Corps), 한국근무단(일명 노무단), 부두하역단 등이 다양한 형태로 지원 활동을 하였습니다.

 

[산악전을 지원을 위해 조직된 민간인 부대의 모습]


  그중 최전선의 산악 고지전을 치르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속칭 지게부대라고 불린 노무대가 있었습니다.  이 노무대는 전쟁 동안 산세가 험한 지역에 위치한 부대에게 포탄, 식량 등의 보급품을 지게에 지고 운반하여 주었는데 대부분이 당장의 호구지책이 어려웠던 월남해 내려 온 청장년들이나 피난민들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징집으로 충당되기도 하였습니다.


[포탄 같은 중량물도 이 분들의 보급 수송에 절대 의존하였습니다.]


  물품운송에 민간을 동원하한 것은 전쟁 시작과 동시라고 추측은 되지만, 6·25전쟁사에 최초로 지게부대가 등장한 것은 1951년 2월에 있었던 썬더볼트(Thunderbolt) 작전 때였습니다. 1.4후퇴 후, 재반격에 나선 미 제25사단은 수리산 일대에서 저항하는 중국군 제150사단의 응전에 진격이 멈추었습니다. 이때 아군은 50여명의 노무자가 지게를 이용하여 고지대로 보급을 추진하는데 성공하였던 반면 중공군은 보급이 차단되어 방어선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화물 적재 후의 모습]


  전쟁 당시 노무자들의 규모는 육군 사단에 편성되어 전투근무지원을 직접 수행한 노무단원 9만여 명을 포함하여 약 30여만 명에 이르렀던 것으로 추산되며 공식 기록에 의하면 전쟁 시 임무를 수행하다가 희생당한 노무자들의 규모가 전사 2,064명, 실종 2,448명, 부상 4,282명 등으로 집계하고 있으나, 많은 수의 노무자들이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규모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군들은 이 분들을  A특공대라고 불렀습니다.]


  노무자들의 지원 수단은 주로 지게였는데 그 모습이 알파벳 A와 흡사하다고 하여 통상 근무단을 ' A Frame Army ' 즉, 지게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James Van Fleet 1892~1992) 장군은 회고록에서 "만일 노무자들이 없었다면 최소한 10만 명 정도의 미군병력을 추가로 파병했어야 했을 것이다."고 이들의 노고를 극찬하였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는 조국을 수호하는 원동력 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처럼 지게부대는 戰史의 전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군의 승리를 위하여 묵묵히 맞은바 임무를 다한 최고의 정예 부대였습니다.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음지에서 묵묵히 힘써 주신 지게부대 대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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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인영 2010.07.22 1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보급품을 수송한 분들이네요.

  2. 모글리 2011.10.15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KBS스펀지 131회 방송도 있네요...

    쫌 내용은 틀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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