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11.01 95. 휴전반대로 얻고자 한 것 (105)
  2. 2010.10.28 94. 해방구가 되어버린 포로수용소 (224)
  3. 2010.10.26 92. 전설로 남게 된 백마고지 (207)

95. 휴전반대로 얻고자 한 것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1 08:29

  1952년 12월 13일, 국제적십자사가 전쟁 종결과 상해포로의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하였을 만큼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열망은 커져 갔고  더불어 환경변화가 이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해 말에 있었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가 당선되었는데, 그는 공약이행 의지를 보이고자 취임 전인 1952년 12월 2일~5일, 한국을 전격적으로 방문함과 동시에 소련과의 물밑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당선자 신분으로 방한 당시 국군 수도사단을 방문한 모습)


  그리고 1953년 3월 5일, 스탈린(Joseph V. Stalin)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소련의 정권도 교체되는 공산권측의 격변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정권을 인수한 말렌코프(Georigi M. Malenkov) 주도의 소련 신정부는 3월 19일, 북한과 중국에 전문을 보내 전쟁 중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1953년 2월 22일 부상포로의 우선 교환을 제의하였을 때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던 공산군 측은 이처럼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자 3월 28일 김일성과 펑떠화이 공동명의로 부상포로를 교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통보하면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4월 20일~5월 3일까지 판문점을 통해 부상포로들의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유엔군은 6,670명을 공산군측에 인계하고, 684명을 송환 받았습니다.


  유엔군측의 일관되고 강력한 자유송환원칙 주장에 공산군측도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6월 4일,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송환거부포로 관리위원회’가 송환을 원치 않는 포로들의 심사와 기타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면서 휴전회담의 최대 난제였던 포로송환의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휴전은 눈앞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한국정부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는데, 그 이유는 포로송환협상 안이 송환을 원하지 않는 포로들의 즉각 석방을 주장한 한국정부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한국은 휴전회담 대표를 소환시키고 휴전회담 불참을 선언하였습니다.


[석방된 반공포로의 모습]


  비록 이승만 대통령은 일관되게 분단을 고착화 시킬 수 있는 휴전을 반대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었지만 포로 송환문제가 타결되자 휴전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포로송환 협정 조인 이틀 전인 6월 6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을 청와대로 불러, 반공포로를 석방을 지시하였습니다. 밀명에 따라 작전을 입안한 원용덕은 6월 18일 24시, 미군들을 따돌리고 광주, 마산, 부산, 영천, 논산 등의 각 지구 수용소를 경비하던 육군 헌병대로 하여금 수용된 반공포로 석방 작전을 펼치도록 조치하여 성공시켰습니다.


  수용소 주변에서 사전에 통지를 받았던 국민들과 행정기관들은 탈출한 포로들을 보호하여 미군 당국의 검거와 재수용이 실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 석방된 반공포로는 수용된 35,698명중 27,000여명이었는데 19일 06시에는 중앙방송을 통하여‘반공포로의 석방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하여 공식화하였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에 미국은 경악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즉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클라크 유엔군사령관도 성명을 통하여 유감을 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격한 반응을 보인 곳은 공산군측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정되어 있던 휴전회담 실무협상 등 모든 회의를 취소하였으며, 6월 20일 본 회담에서 김일성과 펑떠화이 명의의 서한으로 비난하였을 만큼 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회담이 결렬되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만은 원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휴전협상을 거의 마무리할 단계에 이르고 있을 때 한국정부가 휴전을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자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지만 전쟁 당사자인 한국정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휴전을 하기도 곤란하였습니다.


  한국정부의 반응이 워낙 완고하자 미국정부는 대통령 특사로 미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을 한국에 파견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을 한국 측에 제시하여 묵시적인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은 ① 휴전 성립 후‘상호방위조약’체결, ② 장기간의 경제원조 제공, ③ 20개 사단으로 한국군을 20개 증편 등을 약속하였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우리의 안보를 지켜 준 커다란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정부는 휴전 자체보다 그 이후를 염려하였습니다.]

( 휴전반대 집회 모습 )


  사실 이승만대통령이나 한국 정부도 휴전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정부가 걱정하였던 것은 휴전 이후의 문제였습니다. 어떠한 후속 안전보장 조치 없이 분단만 계속 이어진 상태로 단지 총을 쏘지 않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이 확고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휴전반대를 적극 이용하였던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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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북한이 더 이상 재결합하지 왜 궁금 해서요

94. 해방구가 되어버린 포로수용소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28 08:06


  공산군 포로는 아군이 반격을 개시한 1950년 9월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통일이 목전에 보여 획득된 포로를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평양, 인천 등지에 임시적으로 분산수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쟁의 양태가 바뀌고 장기화 조짐이 보이자 획득된 포로들을 전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최후방의 부산으로 이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부산에 집결된 포로는 14만 여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였는데, 그것은 10개 사단 규모의 북한군이 전선에 투입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전경]


  하지만 부산은 유엔군의 물류 거점이자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 있었으므로 이곳에 잠재적인 위험이 큰 대규모의 포로들을 집결시키는 것이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사령부는 거제도에 새로운 포로수용시설을 세워 순차적으로 포로들을 이곳으로 이송하였습니다. 전쟁 전에 거제도는 12만 여명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10만의 피난민과 14만의 포로가 몰려들면서 식수가 모자랄 정도로 섬 전체가 북새통이 되어 버렸습니다. 당시 신현리 독봉산 기슭의 계곡에 밀집된 형태의 수용소가 마련되었는데, 이처럼 좁은 구역에 시설이 집중되다보니 경비가 용이하였던 반면 포로들의 집단행동이 가능하게 되어 버렸고 이것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국군 경비병과 북한군 포로사이의 벌어지는 사소한 충돌 외에 그다지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네바협정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미군의 관리방침 때문에 국군 경비병들의 근무환경보다 오히려 포로들의 급식과 주거여건이 더 좋은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고 이것은 결국 포로들의 조직적인 집단행동이 벌어지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어느덧 포로들은 단지 총기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지휘체계와 조직체계를 갖춘 무력조직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휴전회담이 진척되자, 수용소는 조속한 송환을 요구하는 친공(親共)집단과 송환거부를 주장하는 반공(反共)집단으로 크게 나뉘어 충돌이 일상화되는 단계까지 비화되었고, 1951년 9월 초순에는 인민재판이 열어 반공포로 15명이 살해되는 사건까지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특수요원들을 의도적으로 포로가 되게 하여 수용소에 잠입시켰고 이들의 주도로 공산포로들을 조직화하여 반공포로들을 살상하는 등 후방지역의 분란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거제도 수용소는 대한민국 영토 최후방에 조성된 북한군의 해방구처럼 변모되어 갔습니다.


[국군 경비병이 압수한 사제 무기들]


  휴전회담에서 가장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군사분계선 확정 문제보다 자유 송환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자 오히려 포로문제가 휴전의 걸림돌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유 송환을 막기 위해서 송환심사를 거부하라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공산포로들이 소요를 일으켰는데, 이 과정에서 55명의 포로가 사망하고, 162명이 부상했으며, 소요를 진압하던 미군도 1명이 사망에 38명이 부상하였습니다. 이러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공산포로들의 폭동은 1952년 5월 6일 포로수용소장 돗드(Francis T. Dodd)가 인질이 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왔습니다.


  결국 미군은 포로들과 협상을 벌여 합의각서로 만들어 주는 굴욕을 겪은 끝에 돗드의 신병을 넘겨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신임 소장 콜슨(Charies F. Colson)이 서명한 각서에는 ① 유엔군이 다수의 포로들을 살상하였음을 시인한다. ② 포로의 송환문제는 판문점 결정에 따른다. ③ 포로들의 강제심사는 없다. ④ 포로의 대표단 조직을 승인 한다 등의 내용 등이 담겨 있었는데, 이 각서는 순식간 판문점 북한측 대표에게 전해져 포로문제 협상에서 유엔군 대표단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신임 유엔군사령관에 부임한 클라크(Mark W. Clark) 대장은 책임을 물어 부임한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콜슨을 5월 12일부로 해임하여 전임 수용소장인 돗드와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시켜 대령으로 강등하는 문책을 단행하였습니다. 이 같이 엄청난 일들이 반복되면서 1951년 1월에 수용소 개설 후 그해 9월까지 모두 8명의 수용소장이 교체되었는데, 사실 이처럼 포로수용소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너무 인권을 내세웠던 잘못된 운영정책에 기인한바 큽니다.


[폭동 주도혐의로 연행되는 이학구]


  결국 신임 수용소장 보트너(Hayden L. Boatner) 준장은 실력행사에 들어가 6월 1일~10일 사이에 무장 병력을 수용소 내부로 진주시켜,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를 강제로 분리시킴과 동시에 밀반입하여 숨겨놓은 수많은 무기들을 수거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1년간에 걸쳐 용의주도하게 준비하였던 포로들의 폭동은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포로의 관리체계는 새롭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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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전설로 남게 된 백마고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26 08:13


  1951년 11월 27일 열린 휴전협상에서 현재 양측이 접촉하고 있던 임진강어구-판문점-철원북방-금성남방-문등리-가칠봉-고성남방의 전장 237킬로미터의 전선을 잠정적인 군사분계선으로 설정하고 1개월간 한시적인 정전을 갖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는데 이 시기에 양측의 생각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유엔군은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했던 군사분계선 문제가 타결되었기 때문에 이후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고 방심하였지만 반면 공산군은 이때를 전력의 열세를 최대한 만회하는 절호의 시기로 삼았습니다.


[완벽하게 구축된 진지에 엄폐된 중공군 전차]


  결국 1개월의 잠정휴전기간은 공산군 측에게 유엔군의 공습을 걱정하지 않고 벌건 대 낯에도 마음 놓고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여유를 부여하였습니다. 공산군의 진지는 참호와 교통호가 완벽하게 구축되면서 그동안 유엔군의 우위를 보장하였던 공군력과 화력의 효과가 급속도로 반감되었습니다. 비록 공산군 측도 협상이 파국에 이르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인 휴전시도보다는 시간 지연에 몰입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협상과 고지전이 계속 병행되었습니다.


  특히, 1952년 들어 포로에 관련한 협상에서 이견이 커지면서 휴전이 난망한 상태로 보이자 중부지역의 연천-철원 북방에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위한 고지쟁탈전이 격화되었습니다. 이때 전선 중앙인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있던 395고지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그저 그런 흔한 야산이었지만, 휴전협상이 시작될 때부터 395고지가 철원-평강-김화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 중 서남쪽 철원 꼭지점의 견부(肩部)를 구성하는 요충지에 자연스럽게 놓이게 되자 순식간 전쟁의 핵심지역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만일 적이 이 지역을 점령한다면 철원평야가 적의 감제(橄制) 하에 놓이면서 중부지역의 많은 통로를 아군이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백마고지로 불리게 된 395고지의 모습]


  이곳을 담당하던 부대는 1951년 10월 17일 미 제3사단과 교대한 국군 제9사단이었고 395고지 북쪽 후방의 효성산에 위치한 중공군 제42군은 이곳을 되찾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전투는 1951년 11월 3일, 1개 대대의 규모의 중공군이 국군 제29연대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처음에는 이를 쉽게 격퇴하였으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11월 5일 21시를 기하여 증강된 대대 규모의 중공군이 재차 공격을 감행하였고 아군 제29연대 1대대가 진지를 사수하지 못하고 후퇴함으로써 395고지를 적에게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군의 반격도 즉시 이루어져 제28연대가 하루 만에 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전초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이 일대는 소강상태를 계속 유지하였는데, 약 1년이 지난 1952년 중반기에 중공군이 최정예로 평가되던 제38군으로 교체되면서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1952년 10월 6일, 아군의 증원과 군수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중공군은 북쪽 전방에 있는 봉래호 수문을 폭파하여 아군의 후방을 관통하는 역곡천을 범람시킴과 동시에 대대적으로 공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국군 제9사단은 10월 15일까지 3개 사단을 교대로 투입하면서 인해전술을 감행하는 중공군 제38군과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6·25전쟁에서 벌어졌던 고지전의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395고지를 놓고 무려 10일간 쉬지 않고 벌어진 전투는 12차례의 쟁탈전을 통해 고지의 주인이 7회나 바뀌었습니다. 이곳을 반드시 지켜내어야 할 당위성을 잘 알고 있던 아군의 불같은 인내력은 3배나 많았던 중공군은 무참히 녹여버렸습니다. 국군 제9사단도 3,4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적 사살 8,234, 추정살상 6,098명, 포로 57명에서 알 수 있듯이 중공군 제38군은 완전히 소멸된 것과 다름없는 엄청난 참패를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 국군은 계속하여 철원평야를 아군의 통제 하에 두면서 전략적인 작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우의 시신 옆에서 고지를 사수하고 있는 국군' 이런 모습으로 백마고지를 지켜내었습니다.]


  작전기간 중 중공군은 총 55,000발, 아군은 총 219,954발이라는 어마어마한 포격을 이 작은 고지에 집중시켰는데 이것은 단기간의 지역전투로써는 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예입니다. 전투 결과 395고지 정상은 풀 한 포기 남아있을 수 없는 민둥산으로 변하였고 그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있는 모습처럼 보여 이 후부터 395고지일대를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이끈 제9사단은 백마부대라는 영광스런 호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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