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튼'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8.03 한반도 최초의 전차전 [ 1 ] (6)
  2. 2010.06.16 '6.25의 또 다른 영웅, M46 "패튼"' (5)
  3. 2010.06.07 50. 전쟁 이전 상태로의 회귀 (17)

한반도 최초의 전차전 [ 1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03 08:52

  6·25전쟁이 발발하자마자 국군이 개전초기부터 일방적으로 밀린 이유는 한마디로 북한군과의 현격한 전력차이 때문이었습니다.  국군 제1, 6사단처럼 나름대로 분전을 벌이며 적을 막아내기도 하였지만 경원축선이 뚫리면서 개전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당하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이때 아군의 방어막을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워 돌파하였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군의 초기 전력은 턱없이 부족하였고 결국 일선에서는 극심한 전차 공포증까지 나타났습니다.


[전차를 앞세워 서울 점령한 북한군]


  북한군을 얕보고 자신만만하게 참전한 미군도 1950년 7월 5일 죽미령에서 벌어진 최초의 교전에서 머리에 혹이 나는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나서야 북한군의 전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 많은 미군의 방어선을 유유자적하게 돌파한 북한군의 주력도 역시 전차였습니다.  그만큼 6·25전쟁 초기에 북한군의 T-34는 압도적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죽미령전투 (사진-연합뉴스)]


  죽미령 다음에 미군이 방어선을 구축한 곳이 천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산에서 초전에 일방적으로 코피가 터진 스미스특임대(Task Force Smiths)의 참패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천안에 방어선을 전개한 미 제24사단 34연대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 제78전차대대 소속의 M-24 채피(Chafee) 경전차 8대로 구성된 로 전차소대가 1950년 7월 8일 천안에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안에 나타난 M-24 전차소대]


  북한의 전차부대에 스미스특임대가 혼 줄이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제34연대 장병들은 그들의 전차가 모습을 보이자 환호를 지르며 이들을 맞이하였고, 전차소대원들은 보병부대의 뜨거운 환영에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그러나 전차소대원들은 앞으로 그들이 맞붙어 싸워야 할 북한군의 T-34 전차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T-34가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훌륭한 소련제 전차라는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도 노획하여 사용하였을 만큼 T-34는 훌륭한 전차였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이 같은 편이어서 미군이 T-34와 싸운 경험이 없었으므로 앞으로 교전하여야 할 적 전차의 성능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차라리 북한군이 독일제 판터(Panther)나 티거(Tiger)를 몰고 나왔다면 두려움을 가지고 전투에 나섰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전선에서 독일의 티거전차 1 : 1 직접 교전 시에 후퇴해도 군법으로 책임을 묻지 않을 정도로 강한 상대는 철저히 인정하였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미군 주력전차인 M-4도 티거와 직접 교전을 삼가 하도록 하였습니다.( 독일의 티거와 미군의 주력이었던 M-4의 비교 모습 )]


  어쨌든 초전에 스미스특임대가 북한군 기갑부대에 박살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전차소대원들이나 전차소대를 증원받은 미 제34연대는 충분히 북한군을 격멸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만만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사병들과는 달리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지휘관들은 앞으로의 상황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일화입니다.


[젊은 전차소대장은 적 전차를 이렇게 만들겠다고 자신하였습니다]


  전선을 시찰하는 도중 전차소대를 보게 된 워커(Walton Walker) 미 제8군 사령관은 전차소대장에게 "귀관은 무엇을 하려 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소대장은 "저는 돌격할 생각입니다." 라고 결연히 대답을 하였는데, 워커 사령관을 안내하던 딘(William F. Dean) 미 제24사단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전차소대장이 죽음을 각오한 것 같은 결연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커는 북한군 전차에 대한 정면 돌격이 무모한 시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안 인근에서 전선을 시찰하던 워커(좌)와 딘]


  패튼(George Patton Jr.)의 오른팔로 제20군단을 지휘하며 유럽평원을 휩쓸고 다닌 워커는 유럽의 기갑전에서 겪었던 실전을 일일이 예로 들면서 적 전차를 상대하는 요령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워커는 혈기왕성한 전차소대장에게 "지금 우리는 공격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유리한 장소에서 적을 지연시켜야 할 때다."라고 말하며 신중히 작전을 펼칠 것을 주문하였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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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nline for free therapies consultations 2012.05.23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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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서 겪었던 실전을 일일이 예로 들면서 적 전차를 상대하는 요령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워커는 혈기왕성한 전차소대장에게

  6. Monsanto Company 2014.04.28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못했습니다. 단지 T-34가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훌륭한 소련제 전차라는 정도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6.25의 또 다른 영웅, M46 "패튼"'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6.16 10:04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에 전시되어 있는 M46 "패튼" 전차로 전쟁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비교적 좋은 상태로 남아있는 차량 중 한 대입니다( 취재 협조 : 국립 대전현충원, 필자 제공 )

  북한군에게 있어 90mm 주포와 102mm 두께의 전면 장갑을 두른 M46 "패튼"은 독소전 당시 독일군의 "티거" 전차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M46 "패튼"의 전면으로 중전차의 특성상 대단히 위압적인 외형을 자랑합니다( 취재 협조 : 국립 대전현충원, 필자 제공 )
  6.25 전쟁 중 미군은 한반도에 1,326대의 전차를 투입시켜 북한 전차부대를 격파하고 오늘날의 휴전선에 이르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런 미군의 전차들 중 6.25가 최초이자 마지막 실전이며 이후 신형 전차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잊혀진 영웅이 하나 있으니 바로 M46 "패튼"입니다.
  M46 "패튼"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군의 티거 중전차에게 혹독한 희생을 치러야 했던 미군이 신속하게 대응수단으로 개발한 M26 "퍼싱" 중전차의 개량형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M26 "퍼싱"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출력이 약한 엔진인 포드사제 GAF 8기통 가솔린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이 엔진은 출력이 최소 400, 최대 500마력 정도를 낼 수 있어 중량 20톤대의 전차 정도는 시속 40km 이상으로 기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41.9톤에 달하는 M26 "퍼싱"을 제대로 가동시키자면 약간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M26 "퍼싱"을 가동시킨 원동력인 포드사의 GAF 8기통 가솔린 엔진은 최대 출력이 500마력 수준에 불과해 41.9톤에 달하는 전차를 가동시키기에는 출력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오늘날 한국군의 주력전차인 K1A1은 120mm 활강포와 500mm가 넘는 장갑 방어력으로 독일 MTU사의 Mb871 Ka-501 1,200 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0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
  다행히 시속 40km라는 나쁘지 않은 수준까지는 낼 수 있었지만 요컨대 엔진의 중요성은 일시적인 가속성이 아닌 지속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M26 "퍼싱"은 약간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마침 출력 810마력의 콘티넨탈 AV-1790-3이 유망주로 떠올랐는데 여기에 앨리슨사에서 개발한 전진 2단/후진 1단의 CD-850-1 교차 주행 변속기가 완성됨에 따라 기존 엔진보다 출력이 300마력 이상 증가된 콘티넨탈 AV-1790-3과는 최고의 조합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엔진과 변속기가 미국이 개발 중이던 신형 전차에 탑재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미군 입장에서 볼 때 굳이 M26 "퍼싱"에 신형 부품을 장착하느니 아예 새로운 전차에 탑재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6.25 전쟁의 발발과 동시에 신형 전차의 개발이 난항을 겪게 되자 미군은 입장을 바꾸게 됩니다.
  당시 미군은 M26과는 완전히 차원이 틀린 신형전차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하필이면 개발이 너무 지연되던 통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개발은 꾸준히 지속돼 마침내 M47 "패튼"으로 현실화됩니다.
  결국 출력을 810마력으로 강화한 콘티넨탈 AV-1790-3 엔진은 신형전차가 아닌 M46에 우선적으로 탑재됩니다.
  산악지대와 논밭 등 습지대가 많은 한반도의 지형에서 기존 GAF 8기통 가솔린 엔진은 출력부족을 일으켰고 덕분에 미군은 어쩔 수 없이 신형 엔진과 변속기, 그리고 길이를 단축시키면서도 위력은 기존 M3 전차포와 큰 차이가 없는 M3A1 주포를 탑재한 M26 "퍼싱"의 개량형을 생산하니 바로 M46 "패튼"의 탄생이었죠.
  M26의 개량형에 붙은 별칭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3 야전군 사령관으로 쾌속의 진격을 지휘했던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대장의 성을 딴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패튼"이란 별칭은 미국 역사상 가장 호쾌하면서도 권위주의적인 귀족 장군인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 대장의 성을 딴 것입니다.
  M46 "패튼"은 개발 과정에서 적잖은 난항을 겪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기존 GAF 엔진보다 덩치가 더 큰 콘티넨탈 AV-1790-3을 장착하자니 크기가 안 맞았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미군은 별 수 없이 차체 뒷쪽을 약 40cm 연장하는 개량을 실시합니다.
  M46 "패튼"으로 개량되면서 바뀐 점입니다.
  붉게 칠한 부분이 차체가 연장되면서 추가된 소형 롤러, 푸르게 칠한 부분이 신형 엔진의 장착으로 바뀐 후부 형태입니다 - 세부적으로 보시려면 클릭을 -
  차체를 완전히 새로 제작한 것이죠.
  이 때문에 기존 M26 전차보다 전륜( 군 용어로 보기륜이라고도 합니다 )과 기동륜( 스프로켓 )의 간격이 넓어지게 되자 이를 메꾸기 위해 별도의 소형 롤러를 장착하게 됩니다.
  이렇듯 고된 개량 과정을 거친 M46 "패튼"은 이미 M26 "퍼싱"이 북한군 전차부대를 흠씬 두들겨 팬 다음인 1950년 가을 무렵에야 본격적으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것 아닌지?!" M46 "패튼"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1950년 9월은 이미 M26 "퍼싱"이 북한군 전차들을 흠씬 두들겨 팬 다음이었습니다.
  늦게 투입된만큼 실전에서 북한군 전차를 많이 잡지는 못했지만 대신 M26 "퍼싱"보다 강력한 출력의 엔진을 이용한 패튼의 쾌속 진격은 미군과 한국군에게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특히 중공군이 개입한 이후 M46 "패튼"은 아군의 철수를 엄호함과 동시에 반격의 선봉에서 활약했고 그 때마다 적잖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만큼 아군의 작전 성공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가자 북으로~!!" 의정부 일대에서 진격 중인 M46 "패튼" 전차로 M3A1 전차포와 810 마력 엔진 덕분에 한반도에서도 큰 문제없이 작전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기간 중 M46 "패튼"은 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 지형에서 높은 엔진 출력을 이용해 M26 "퍼싱"보다 우수한 전투력을 발휘했습니다.
  유명한 장진호 전투 당시 압도적인 중공군의 공세 속에서도 M26 "퍼싱"과 더불어 맹활약함은 물론 리퍼 작전을 비롯한 대규모 반격작전과 전쟁 후반기의 고지 쟁탈전에서 M46의 활약으로 전황은 아무리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결코 경기도 이남까지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M46 "패튼"은 임시변통적인 성격이 강해 M26 "퍼싱"을 개조하는 선에서 1,215대+800대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미군 입장에서는 이미 강력한 신형 전차의 등장이 예고된 마당에 구식 전차를 약간 개량한 수준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M46 "패튼"은 신형 전차의 생산 때문에 겨우 800대만 신규 생산되는데 그쳤고 나머지 1,215대는 기존 M26 "퍼싱"을 개조하는 선상에서 끝났기 때문에 활약에 비해 비운의 전차, 잊혀진 전차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쟁 기간 중 북진의 선봉에서 활약한 M46 "패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M46 "패튼"은 용산의 전쟁기념관, 국립 대전현충원 등을 비롯한 주요 전적지에 전시되어 있으므로 이 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한번씩 들러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렸으면 합니다.
  오늘날 미군의 주력인 M1A1 "에이브람스" 전차.
  90mm 주포로 시작한 미군 중전차는 이제 120mm 활강포로 강화되었고 덩치 역시 더욱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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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여은 2010.07.11 0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부천에 거주하는데 인천 일대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었군요

    잘 몰랐던 사실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 chaffee2093 2010.10.16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직접 현장에 전시된 실차를 취재하시는 열정. 정말 대단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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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전쟁 이전 상태로의 회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6.07 09:53

 

  예상과 달리 유엔군이 평양을 쉽게 포기하고 38선까지 신속히 철수하자 중공군은 1950년 12월 6일 무주공산이 된 평양을 쉽게 접수하였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추격을 개시하였는데, 현대식 수송 장비를 사용하여 후퇴한 유엔군과 달리 중공군은 도보, 수레, 우마차, 심지어 쌍봉낙타까지 이용하여 시간이 갈수록 간격이 더욱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제공권은 완전히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중공군은 야간에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제8군이 평양으로부터 임진강 방어선까지 도망치듯이 200여 킬로미터를 후퇴하였던 2주 동안 평양 남쪽부터 38선 이북의 광활한 지역은 무인지대나 다름없었습니다.


[무주공산이 된 평양에 입성하는 중공군]


  이런 상황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유엔군이 중공군과의 전투를 극도로 기피하여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결과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2월 14일경 38선 일대인 임진강~화천~양양을 연하여 주저항선을 선정하고 서부전선은 미군이, 동부전선은 국군이 전담하는 등 임무를 분담하였지만 문제는 전투의지가 극도로 저하된 상태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불리하게 진행된 전쟁을 간신히 역전시켜 최종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상대의 결정타에 순식간 재역전 된 상태였는데, 이런 경우는 사실  전의를 쉽게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12월 21일, 추격하여 내려온 중공군들이 나타나면서 이제  38선 일대에서 중공군과의 일전은 예정되었습니다. 맥아더는 제8군에게 서울을 방어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그 일환으로 군 예비인 미 제1기병사단을 퇴계원 일대에 배치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와 달리 제8군에게서 서울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제8군은 서울 북방에 저장된 보급품을 한강 이남으로 이동시키고 사령부도 형식상 최소 인원만을 서울에 잔류시킨 후 대부분 대구로 이동시켰습니다. 한마디로 중공군이 공격해올 경우 접촉을 피하고 다시 철수하겠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해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중공군에 놀라 유엔군은 후퇴하였지만 중공군은 이렇게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중요한 때에 제8군 사령관 워커가 교통사고로 순직하는 비상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워커는 중공군의 공세에 일선부대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자 일일이 찾아다니며 격려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던 12월 23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대 시찰을 나가던 워커는 탑승한 지프차량이 현재의 서울 도봉동 596-5번지에서 서울방향으로 남하 중이던 국군 제6사단 트럭과 충돌하면서 현장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시 패튼(Geroge S. Patton Jr.)의 부하로 공세기동전에서 이름을 높인 워커는 6.25전쟁에서 낙동강 방어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방어전의 대가로도 전사에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6.25전쟁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 연이어 벌어진 1950년 하반기를 현장에서 맹렬하게 지휘하였던 용장이 어이없게 최후를 맞이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맥아더는 당시 미 육군본부 작전 및 행정 참모부장이었던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를 후임으로 지명하였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시에 제82공수사단장과 제18공수군단장으로 이탈리아 전선과 노르망디 상륙과 이후 유럽전선에서 많은 공적을 세운바 있던 경험이 풍부한 야전지휘관이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제8군사령관에 임명된 리지웨이는 12월 26일, 대구에 도착하여 임무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부대현황 파악이 끝나자마자 다음날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하여 자신은 한국에서 유엔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 머물며 싸우기 위해서 왔다고 천명하여 이 대통령을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중공군의 공세에 너무 놀라 후퇴하기 바빴던 전임자 워커가 다시 낙동강까지 유엔군의 철수를 고려하자 몹시 실망한 상태였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한국정부나 한국군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리지웨이가 신임 제8군 사령관이 되자 유엔군 전체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가슴의 수류탄이 인상적인 신임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


  그는 상징적으로 양쪽가슴에 두발의 수류탄을 매달고 전선의 최전방지역을 직접 순시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런 사령관의 의지 때문에 대구에 위치하고 있던 주요 참모들도 다시 전방지휘소인 서울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선에서는 적극적인 방어를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속속 시행되었습니다. 중공군의 개입이후 계속된 후퇴에 전의가 바닥까지 내려왔던 제8군은 새로운 지휘관의 부임과 더불어 새롭게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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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r insurance 2011.10.08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모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2. online casino 2011.10.10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일관 밝은 모습으로 당당히 봉사활동을 했었다는...취재진들의 질문이나 포즈에도 적극 응해주고 말이

  3. how to open a roth ira 2011.10.15 0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모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4. Kitchen Design 2011.10.18 0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5. bad credit car loans 2011.10.18 2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워낙 그 시점의 포항 공격이 예상 못 했던 것이라 학도병들이 최전방에 처하게 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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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edical billing and coding certification 2011.10.26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와 달리 제8군에게서 서울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7. medical billing and coding 2011.10.30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모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8. BCAA 2011.11.0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점의 포항 공격이 예상 못 했던 것이라 학도병들이 최전방에 처하게 된 것이고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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