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싱'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10.06.04 '불굴의 감투정신, 백마고지 전투' (15)
  2. 2010.05.31 '아군을 위협한 KS-12 대공포' (23)
  3. 2010.05.26 '구국의 영웅, 소년 전차병' (14)

'불굴의 감투정신, 백마고지 전투'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6.04 22:59
  백마고지( 白馬高地 ) 전투는 1952년 10월 6일부터 철원 북방 395고지를 방어하고 있던 한국구 제9 보병사단이 중공군 제38군의 공격을 받고 약 10일 동안의 혈전 끝에 고지를 굳건히 지켜낸 승전( 勝戰 )입니다. 
  제9 보병사단이 이 전투에서 거둔 승리는 중공군 참전 이후 걸핏하면 야습과 인해전술에 말려들어 연전연패를 면치 못했던 한국군이 마침내 적의 전술을 간파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저지해내고 반격에 성공했다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하부대가 차량화를 진행해 유사시 기동 예비전력으로서 활약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제9 보병사단 “백마부대”( 취재 협조 : 육군 제9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O.K Army 9th Infantry Division "White Horse" )

   여러분은 디엔 비엔 푸 전투를 통해 끈질긴 감투정신이 결국 강력한 적을 격파하고 승리를 이끌어 낸다는 전훈을 아실 수 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 역시 불굴의 감투정신으로 압도적인 규모의 적과 불리한 지형을 극복하고 이뤄낸 쾌거였습니다.
   제9 보병사단의 별칭의 발단이 된 “백마고지 전투”는 1951년 10월, 요충지였던 제395 고지를 향한 중공군 제38군의 공세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9 보병사단은 춘천대첩의 전과를 이룩했던 김종오 소장의 지휘 하에 1951년 9월 중순부터 철의 삼각지대를 이루는 강원도 철원군에 투입돼 좌측의 제395 고지를 기점으로 우측의 중강리까지 약11km에 이르는 철원평야를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제9 보병사단 정면에 포진한 적군은 중공군 제38군 예하 113·114 보병사단으로 예비 부대로 제112 보병사단이 후방대기 중이었습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중인 미군 병사들의 고난을 봐도 알 수 있듯 고지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이를 맞이할 제9 보병사단의 주저항선은 구릉으로 이어진 395 고지 일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는 개활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의 중공군을 맞아 싸우자면 자연 천혜의 성벽 역할을 해줄 고지대가 필수였지만 이 곳은 아군에게 불리한 지형 그 자체였던 셈이죠.
 
뿐만 아니라 북방에 위치한 효성산 619 고지를 비롯한 유리한 고지군은 전부 중공군이 완전히 장악해 사단 방어지역을 손바닥 보듯 훤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철원평야 일대를 효과적으로 감제할 수 있는 고지였던 제395 고지의 모습입니다.
  사진 상으로 척 봐도 고지의 전략적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단장 김종오 소장은 장차 중공군이 마지막 남은 요충지인 395 고지를 함락시켜 철원평야를 제압하는 동시에 철원군 일대를 중심으로 철의 삼각지대를 비롯한 주변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여 중부전선에서 전략적 이점을 확보함으로써 아군을 크게 위협하려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한 방어태세를 강화할 것을 예하 연대장들에게 지시합니다.
  여기에 이를 입증하듯 사단 관할지역 전방에서 중공군의 공격 징후가 파악되면서 김종오 소장은 자신의 예측이 옳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1952년 9월 22일, 김종오 소장은 좌측 전방의 395 고지에 임익순 대령의 제30 보병연대를, 우측 전방에는 김봉철 대령의 제29 보병연대를 전개시키는 한편 이주일 대령의 제28 보병연대를 예비 부대로 대기시켜 유사시 양 연대를 지원하도록 지시합니다.
  오늘날 제9 보병사단 전차대대로 차량화 보병사단으로 개편되면서 전차 역시 우수한 성능의 K-1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취재 협조 : 제9 보병사단 "백마부대",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O.K Army 9th Infantry Division "White Horse" )
  
그리고 유사시를 대비해 사단에 배속된 전부일 대령의 제51 보병연대( 현 제12 보병사단 “을지부대” 예하 )를 대대 단위로 분산 배치시켜 평야 일대에 위치해 취약한 주저항선의 방어를 강화했습니다. 
  한편 백마고지를 담당한 제30 보병연대는 임익순 대령의 지시에 따라 요충지 395 고지에 1대대를 배치해 방어진지를 구축하게 하고 중마산 일원에 2대대를, 역곡천 남안에는 3대대를 예비부대로 배치해 방어준비에 박차를 가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방어준비를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포진한 중공군의 규모는 너무나도 압도적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박격포는 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에서 가장 효과적인 무기체계로 그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주요 기계화 보병사단에 K-242와 같은 자주 박격포를 집중배치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0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
  공격 준비를 마친 후 제9 보병사단 정면을 향해 야포와 박격포로 맹렬한 공격준비 포격을 실시한 중공군은 마침내 10월 6일 여명을 기해 일제히 봉래호의 제방을 폭파시켜 역곡천을 범람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역곡천 남안의 3대대가 증원전력으로 투입되는데 차질을 빚었고 이를 신호로 중공군은 마침내 395 고지로 맹렬히 돌격해 들어왔습니다. 
  꽹과리와 징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 들어오는 압도적인 규모의 중공군을 맞아 제30 보병연대 1대대는 대대장 김영선 소령( 육군사관학교 7기, 예비역 중장 )의 지휘 아래 무려 3차례나 치열하게 저항했습니다.
  이렇게 결사적인 1대대의 방어전으로 중공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결국 10월 6일 공세는 제9 보병사단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첫 날 전투에서 스타일을 구긴 중공군 제38군은 다음 날 제4차 공세를 감행, 2개 대대로 1대대의 전초진지를 포위한 다음 지속적으로 보병 돌격과 지원 포격을 병행, 마침내 395 고지 정상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촬영된 백마고지의 전경
 
그러자 김종오 소장은 즉각 이주일 대령의 제28 보병연대를 투입시켜 2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고지를 탈환했고 이 날 공세에서도 중공군은 막대한 병력 손실을 입었습니다.
  전황이 갈수록 고착상태에 빠지자 10월 8일, 중공군 제38군은 예비 연대를 투입해 치열한 공격준비 포격을 가하면서 제5차 공세를 감행하여 오전 8시를 기해 다시 제395 고지 정상을 장악했지만 최창용 중령의 제28 보병연대 3대대가 반격을 감행하자 23시에 고지를 내주고 퇴각했습니다.
  불과 3일 만에 5차례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결과 중공군 제38군의 113, 114 보병사단의 피해가 심각할 정도로 늘어났지만 정신없이 반격에 투입된 제28 보병연대는 물론 고지를 담당한 제30 보병연대까지 장교, 부사관, 병사들의 손실이 심각해 재편성조차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자 김종오 소장은 우측 전방에 배치된 제29 보병연대의 투입을 검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치열한 격전을 거듭하며 백마고지는 문자 그대로 벙커와 참호선으로 뒤덮여버렸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 외로 급박하게 돌아가 10월 9일 자정을 기해 중공군 제38군이 6차 공세를 감행하자 이미 전력이 바닥난 제30 보병연대는 결국 3시간 만에 고지 정상과 우측 능선을 함락당한 후 퇴각해야 했고 일출과 동시에 김봉철 대령의 제29 보병연대가 신속하게 역습을 감행해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이은 공세에서 막대한 손실만 입으며 아무런 성과가 없자 제38군 사령부는 마침내 제112 보병사단의 연대까지 동원해 10월 10일, 대규모 인해전술을 감행했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제9 보병사단의 잔여 장병들은 소총에 착검을 한 뒤 참호로 뛰어든 적병들과 처절한 백병전을 전개했습니다.
  처절한 공방전 결과 고지 일대에는 양군의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였고 대검이 부러지자 철모를 벗어 적병의 머리를 강타하고 야전삽으로 후려치는 문자 그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삼국시대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치열했던 사투의 현장. 백마고지 전투에서 제9 보병사단 장병들은 치열한 적의 사격을 극복하고 아군의 시체를 뛰어넘는 악전고투를 치렀습니다.
  이 날 펼쳐진 치열한 전투로 395 고지는 무려 3차례나 빼앗기고 탈환하는 과정이 반복되어 중공군이 최종적으로 장악했지만 11일 오전, 마침내 이대철 소령의 제29 보병연대 1대대가 김경진 소령의 2대대 병력을 증원받아 과감한 돌격을 감행하여 정상을 탈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중공군은 악귀와 같이 저항하는 제9 보병사단 장병들의 감투정신( 敢鬪精神 )에 기겁했지만 막대한 피해만 입고 물러서기에는 395 고지의 전략적인 가치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에 전투는 4일이나 더 지속되었습니다.
  무려 10일에 걸쳐 지속된 395 고지 전투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바로 10월 15일 새벽을 기해 감행된 제28 보병연대의 최후 공세로 이 전투에서 28 보병연대의 장교와 부사관, 병사들은 능선을 뒤덮은 전우들의 시체를 뛰어넘는 돌격하는 사투를 펼쳤습니다.
  제28 보병연대가 395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자 제29 보병연대는 질 수 없다는 듯 고지 북방에 위치한 전초진지를 탈환해 중공군을 완전히 몰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총 10일 간에 걸쳐 무려 12차례나 치고받는 공방전을 치른 중공군 제38군은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해 후방으로 퇴각해 재정비에 착수해야 했고 제9 보병사단 역시 혹심한 손실을 입어 재편성이 필요했습니다.

  전쟁 기간 중의 혹심한 손실 이후 제9 보병사단은 베트남전 파병을 거쳐 오늘날 차량화 보병사단으로 개편되어 기동 예비전력으로 향상되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9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O.K Army 9th Infantry Division "White Horse" )
 
전투 결과 산의 형태가 사실상 민둥산이 되어버림은 물론 고지의 해발까지 낮아졌는데 그 형태가 마치 백마와 같다하여 이후 395 고지는 백마고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제9 보병사단이 압도적인 규모의 중공군 제38군을 맞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제51 보병연대를 증원시키는 등 충분한 병력 보충 및 적시에 역습과 재편성을 이끈 사단장 김종오 소장의 뛰어난 지휘능력이 큰 요인이었습니다.
  특히 김종오 소장은 395 고지를 담당한 연대를 전투가 끝남과 동시에 교체함으로써 해당 연대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지 않도록 만전을 기했습니다.
  덕분에 제28, 29, 30 보병연대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도 궤멸을 면했고 충분한 휴식과 물자 보급 및 병력 보충을 받아 사기를 잃지 않고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제9 보병사단에게 화력지원을 해준 제1 포병여단은 오늘날에도 서부전선의 방패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월간 디펜스타임즈 코리아 제공 )
  또한 제9 보병사단은 중공군이 투입할 수 없던 항공지원을 받아 열세한 병력을 강력한 화력으로 만회했는데 전투 기간 중 미 공군이 주간 669회, 야간 76회의 출격기록을 남기며 중공군의 머리 위로 폭탄과 기관포탄을 퍼부었고 미 제9 군단 포병여단과 한국군 제1 포병여단이 무려 20만발에 달하는 포탄을 395 고지에 발사함으로써 중공군은 공세 시마다 포탄 세례에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고 고지를 장악한 후에도 돌격해 들어오는 제9 보병사단 병력에게 효과적인 저항을 해보지도 전에 많은 수의 병력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백마고지 공방전에서 중공군 제38군은 3개 보병사단 9개 보병연대 중 7개 보병연대를 투입한 결과 무려 10,0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사상자들은 다름 아닌 숱한 실전경험으로 축적된 정예병들이었기 때문에 차후에 신병이 보충되더라도 숙련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기에 중공군은 손실에 비해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 문자 그대로 참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제9 보병사단 역시 3,500여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오늘날 백마고지는 휴전선 남방, 즉 DMZ에 위치하고 있어 베티 고지와 더불어 통한의 전적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백마부대의 치열했던 감투정신을 상징하는 백마고지 전적비입니다.
  그러나 백마고지 전투를 통해 제9 보병사단이 보여준 왕성한 전투의지와 불굴의 정신력은 이 시대, 한국군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고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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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영식 2010.06.11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아, 정말 처절한 전투였군요. 숭고한 희생에 조의를 표합니다.

  2. ㅇㅇ 2010.06.23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근데 첨부된영상 영화인가요? 제목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 강준일 2010.07.01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9 보병사단... 참으로 놀라운 수준의 발전을 이룬 것 같습니다.

    백마!

  4. 허승민 2010.07.06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눈물이 납니다. 열심히 전의를 불사르고 나라를 구하고자한 참전용사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5. 김형래 2010.07.11 0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1996년 3월에 입대해 9사단 30연대 1대대 3중대에서 복무했는데 모처럼만에 제 사단 활약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6. 김형래 2010.07.11 0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1996년 3월에 입대해 9사단 30연대 1대대 3중대에서 복무했는데 모처럼만에 제 사단 활약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7. 송현일 2010.07.30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이전투에참가하셔서 살아남으셨죠... 정말치열했네요.

  8. 임진 2011.04.06 1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내용에 나오는 "30 보병연대는 임익순 대령의..."는 제 아버지 입니다. 돌아가시기 전 회고록을 남기셨지요. 6.25 전쟁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셨는데 언젠가 시간이 되면 책으로 발간하려고 합니다.

  9. 중위 이승욱 2011.04.16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역 육군 중위 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신 육탄 3용사 및 백마고지전투에 참가하신 선배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태풍!!

  10. 밍키 2011.08.04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지전을 보고 백마고지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던 도중에 이렇게 좋은 자료, 내용을 접하게 되네요. 덕분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하나 더 배우고 갑니다.
    제 블로그에 참고자료로 활용할게요~^^
    정말 우리나라를 구하신 참전용사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네요.

  11. 홍진호 2011.08.15 0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큰아버지가 백마고지전에 포병 장교로 참전하셔서 혁혁한 공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5촌 아저씨 두분은 백마고지전에서 전사하셨구요. 그래서 백마고지 전적비에 저희 일가 세분의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아저씨 두분은 전사자로, 큰아버지는 참전자로.... 저희 아버지는 백마부대 출신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셨고 지금도 허벅지에 총알 파편이 박혀 있다고 합니다. 저는 백마부대 사단 의무대에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이래저래 백마고지, 백마부대 정말 감회가 무량하군요.

  12. 김경진 2011.09.14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 대대장 성함이 저랑 같네요

    자랑스럽습니다. ^^

  13. material protection wikipedia 2012.05.28 17: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내가 오랜 시간 그것이 거의 세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찾기 위해 노력 해왔다는 사실로 인해이 게시물의이 종류를 발견하는 단지 결과적으로 황홀 해요. 개인은 독서 이외에 상당히 실제로 문제가 해결이 자신만의 콘텐츠 사용 가능한 새것이 특정 문제에 대한 유용한 정보 이외에 몇 가지. 하는 표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4. see out there the assets just click 2012.05.28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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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을 위협한 KS-12 대공포'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31 09:00
  85mm KS-12는 고고도로 비행하는 항공기를 일격에 격추시키기 위해 1939년, 제식 채용되어 소련군의 주력 대공포로 운용되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전차포와 야포의 임무까지 수행한 만능 화포입니다( 본 포스트의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소련에서 촬영된 영화 "괴전차 T-34"의 한 장면으로 초창기 독일군에게 안겨준 충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독일군의 88mm FLAK 36 대공포의 대역으로 출연한 것이 바로 KS-12입니다.
  대공포 겸 대전차포, 야포의 임무를 수행한 만능 화포 KS-12는 총 14,422문이 생산되어 독소전 기간 중 소련군의 주력 대공포로 운용됨은 물론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12문이 넘겨져 야포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여러분은 대공 임무, 혹은 방공부대라는 용어를 들을 때 나이키 허큘리스나 비호, 천마 혹은 발칸포를 떠올리실 겁니다.

  하지만 이런 첨단병기가 흔해지기 전인 6.25 전쟁때까지만 해도 적의 항공기( Aircraft )를 격추시키기 위해서는 대공포( Anti-Aircraft Gun )가 투입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대공포가 무엇인가 하면 문자 그대로 신속하게 기동하는 항공기를 격추( 문자 그대로 명중시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시키기 위해 포탄을 고속으로 고공을 향해 발사하는 무기체계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급속히 늘어가는 대공포에 대항해 조종사 역시 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했고 군 수뇌부 입장에서도 국민의 혈세를 걷어 비싼 가격에 생산한 항공기를 대공포탄에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갈수록 성능을 강화했다는 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공포의 표준 중 하나였던 독일의 20mm FLAK 38. 우리 법규 규정에 따라 "포"로 구분이 되지만 좀더 세밀하게 분류하자면 대공 기관포가 됩니다.
  사주 및 대공 경계를 취하며 기계화 보병대대의 작전 간 기동을 엄호 중인 K-200A1 장갑차. 기계화가 완료되었지만 여전히 항공기의 공습에는 취약한 기갑부대에서의 대공 임무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6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etired Lieutenant. Kang, Shin-ho )
  한국군의 대표적인 대공 자주포인 K-30 "비호". 30mm KKCB 대공 기관포 2문을 탑재해 독일의 게파르트와 유사한 차량입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6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etired Leutenant. Kang, Shin-ho
  

  초창기의 대공포는 20~30mm 구경의 포탄을 기관총을 방불케하는 빠른 속도로 발사해 문자 그대로 항공기를 '벌집'으로 만드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갈수록 항공기가 상승할 수 있는 고도의 높이가 높아지자 마침내 각국의 군 수뇌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포탄의 구경을 키워서 아예 대포를 만들어주지. 그럼 한 방에 격추가 될테니 나쁠 것은 없다!"
  대구경 고사포의 대표주자인 독일의 88mm FLAK 36.  FLAK  18을 필두로 급속하게 개량을 거듭한 88mm  대공포 시리즈 중 가장 광범위하게 운용된 형식으로 전차포로 개량돼 티거 중전차의 주포로도 운용되었습니다.
  미국제 M2 90mm 대공포.  워낙 88mm 포의 인기가 높다보니 자연 조연으로 밀려난 경우지만 위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만 북한군 항공기들의 활동이 적다보니 대공 임무보다는 아래 사진처럼 야포의 임무를 더 많이 수행했지만요 )
  1950년 9월 15일, 대구 근교에서 북한군을 향해 포탄을 날려보내고 있는 M2의 모습으로 전형적인 야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소구경 포탄을 사용할 경우 탄약 낭비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내린 고육지책( 苦肉之策 )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런 대구경 포탄이야말로 느린 발사속도로 인해 더 심한 낭비를 초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구경 대공포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에 개발이 진행되었는데 우선 포탄의 구경이 큰 만큼 위력이 강력했다는 점입니다.
  즉, 표적을 명중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주변에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항공기는 맞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다녀야 했지만 덕분에 연료가 빠르게 소진돼 임무수행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는 점이죠.
  2009 서울 에어쇼에서 전시된 F-51 "무스탕" 전투기. 하지만 이런 기체도 대구경 대공포탄이 근처에서 폭발할 경우 정상적인 작전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취재 협조 : 공군 제15 혼성 전투비행단, 필자 제공 )

  그리고 20~30mm 구경의 포탄은 설사 명중되더라도 바로 격추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발이 피격된 상태에서도 무사히 활주로로 복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대구경 대공포탄은 워낙 위력이 강력한 통에 항공기가 피격될 경우 그 자리에서 두동강 나거나 대폭발을 일으키는 "원 샷, 원 킬"이 가능했습니다.
  여기에 포신과 포탄이 거대한만큼 사정거리 역시 기존 대공포에 비해 월등히 길어 저공으로 비행할 경우 항공기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죠.
  88mm FLAK 36을 기초로 개발된 전차포인 kwk 36 L/56을 탑재한 Ⅵ호 "티거" 중전차. 대공포는 대구경 포탄을 빠른 초속으로 곧게 날려보내는 특성 때문에 전차포의 모체로 많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러한 장점에 눈을 뜬 세계 각국에서는 야포를 방불케하는 대구경 대공포의 개발에 착수했는데 그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바로 독일의 88mm FLAK 18과 소련의 85mm KS-12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애크 애크" 혹은 "에이트·에이트"라며 투덜대는 미군의 대사에 귀가 솔깃해지실 것인데 이 두 속어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88mm 대공포였기 때문이죠.
  88mm 대공포는 대구경 88mm 포탄을 발사하는 바람에 B-17이나 아브로 랭카스터와 같은 대형 폭격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정거리도 10km가 넘었기 때문에 간혹가다 야포로서 포병화력 지원을 담당하기도 했고 철갑탄을 이용해 적 전차를 파괴하기까지 한 문자 그대로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셈입니다.
  유명한 티거 전차의 88mm kwk 36 L/56 전차포가 바로 이 88mm 대공포를 기초로 개발될 정도였으니 말이죠.
  "우리라고 질 것 같은가?!" 1939년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로기노프가 설계하고 제8 포병공장에서 14,422문을 생산한 KS-12 85mm 대공포. 오늘 포스트의 주인공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소련의 KS-12는 1939년,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로기노프가 설계한 대구겯 대공포로 중량 4.3톤·최대 사정거리 15.65km, 유효 사정거리가 10.5km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포는 칼리닌그라드에 위치한 제8 포병공장에서 생산이 되었는데 1941년 6월 22일, 독일군이 침공하자 긴급히 우랄 산맥 동쪽의 스페르들로프스크로 공장설비를 옮겨 종전 시까지 총 14,422문을 생산했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된 KS-12. 원래 방탄판이 부착되어 있었지만 실제 야전에서는 떼어낸채 운용했습니다. 총 운용인원은 7명으로 대공포로 운용할 경우 바퀴를 떼어낸 후 지면에 밀착시켰습니다.
  85mm KS-12를 기초로 개발된 D-5T 전차포를 탑재한 SU-85 돌격포. 비록 원거리 명중률이나 실제 위력이 88mm kwk 36 L/56에 비해 열세였지만 독일전차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D-5T를 탑재한 T-34/85 1943년형을 운용 중인 제38 독립 전차연대. 85mm KS-12는 전차포로 개량돼 T-34 전차에 탑재되었고 이 차량들의 개량형이 바로 북한군의 남침 선봉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소련은 독일의 티거 전차와 마찬가지로 이 포를 기초로 대전차 전투에 적합한 전차포인 D-5T와 S53을 개발해 Su-85 돌격포와 T-34/85 전차에 탑재하여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이 포의 존재는 당시 76.2mm가 주력이던 소련군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고 소련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독일과 소련의 치열했던 전쟁이 종전된 후 KS-12는 북한군에 12문이 넘겨졌습니다.
  당시 소련군의 편제는 중대공포 연대에 16문의 KS-12가 소속되었는데 12문이라는 적은 수를 넘겨준 것은 한국군에 전투기나 폭격기가 전무했기 떄문입니다.
  이는 대단히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당시 한국군에 공급된 T-6 "텍산"은 무장이 없는 훈련용 기체였고 P-47 썬더볼트와 같은 전투기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남침의 선봉!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0분, 38도선의 한국군 진지를 향해 사격 중인 북한군의 KS-12 포대의 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한국군의 항공기가 이렇다할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KS-12는 야포로서 보병들의 진격을 지원했습니다.

  덕분에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당시 KS-12는 본업인 대공 경계가 아닌 야포의 임무를 수행해 진지에서 고전하던 한국군 장병들에게 85mm 포탄 세례를 퍼부어주었습니다.
  안 그래도 압도적인 전력차가 분명했던 북한군 포병으로 모자라 대공포탄까지 얻어맞아야 했던 당시 호국영령들의 고초를 생각하자면 전쟁에 대비하는 준비와 자세, 그리고 군비확충이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는 부분입니다.
  38도선을 돌파하고 개전 3일만에 서울을 함락시키는 등 쾌속 진격을 거듭한 북한군을 따라 KS-12!
  그러나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왔음에도 불구하고 KS-12는 잇따라 출몰하는 UN 공군에게 효과적인 방공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당시 KS-12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 컸고 UN 공군의 주력을 이룬 미 공군의 보잉 B-29가 워낙 고고도에서 비행하던 탓에 쉽사리 명중시키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개전 당시 한국군의 주력 항공기였던 T-6 "텍산". 이 기체는 문자 그대로 조종사들의 훈련기였지 전투기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북한은 개전 직전까지 최대한 300문 이상의 KS-12를 확보해야 했지만 뒤늦은 후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북진하는 UN군과 한국군의 진격 와중에 보유하고 있던 12문의 KS-12는 폭격에 파괴되거나 노획되었고 중공군의 개입 이후 소련으로부터 추가 수량이 넘겨져 산악지대에 은폐해 대공포의 임무를 수행하여 항공기들의 위협이 되었지만 이미 전선이 38도선 일대에 고착된 상태인데다 여전히 제공권을 장악한 UN 공군의 압도적인 대군을 저지하기에는 새발의 피에 불과했습니다.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KS-12. 전쟁 기간 중 아군에게 노획된 몇 안되는 생존자입니다.
  KS-12는 대전차포로도 운용될 수 있도록 높이를 최대한 낮게 조정할 수 있었습니다만 워낙 수가 적었던 탓에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대전차포로 운용하자니 높이가 높아 발각될 확률이 높았고 결국 전쟁 기간 중 KS-12가 대전차 임무에 투입된 기록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85mm라는 대구경과 10km 이상의 사정거리를 가진 KS-12는 휴전 직전까지 아군에게 적잖은 위협으로 작용했고 휴전 이후 중국이 제식명 72식으로 면허 생산함은 물론 북한 역시 지금까지 적잖은 양을 예비 전력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공에서 공격하는 전투기나 지상 공격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기갑부대에 K-30이 배치되듯 북한은 적잖은 수의 KS-12를 예비 전력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6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Retired Lieutenant. Kang, Shin-ho )

  최소한 고공에서는 위협이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저공에서 비행할 경우 대구경 포탄 한 방에 전투기가 두 동강 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오늘날 공군에게 있어 대공포는 만만치 않은 위협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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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의 영웅, 소년 전차병'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5.26 09:30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전장으로 뛰어든 학도병 71명의 실화를 다룬 영화 "포화 속으로"
  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어쩌면 더욱 위험한 임무에 자원한 이들이 있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실제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남성들의 로망이자 정예 병과의 상징인 기갑! 이 전차를 조종하기 위해 오늘날에도 논산훈련소에서 선발돼 전남 장성의 육군 기계화학교에서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많은 대한의 건아들이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 Lee, Young-Soo )
  M36 "잭슨" 구축전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성교 하사와 오승환 하사. 
  세월이 흐를수록 작고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본 포스트의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 기간 중 숱한 희생을 치른 이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자신의 공부를 포기하고 망설임없이 총을 든 채 전장으로 향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학도병이라 불렀고 6월에 개봉할 예정인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는 제3 보병사단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스스로 후방 엄호를 자원, 북한의 정규 보병사단을 상대로 11시간이나 방어해낸 학도병 71명의 숭고한 희생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학도병 못지 않게 참혹했던 전장에서 더욱 분투하며 최후까지 싸웠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계셨으니 바로 소년 전차병들이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학업을 포기하고 망설임없이 전차병으로 입대해 M36 "잭슨" 구축전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한 소년 전차병들.
  이들은 평균 17~18세의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조국을 구하겠다는 신념은 성인들 못지 않았습니다.
  전장이 오늘날의 휴전선 일대로 축소되고 양측의 지리한 대치전과 고지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1952년 4월, 병무청의 모병관들은 날이 갈수록 인원 부족이 속출하는 기술병, 그 중에서도 장차 육군의 주축이 될 전차병들을 모집하기 위해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상대로 입영을 권유했습니다.
  당시 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갈 엘리트의 길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하사관으로 임관해 일본에 6개월 동안 기술 교육연수를 보내주겠다"는 모병관의 설명에 많은 학생들이 자원해 이 중 120명이 선발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전차병들은 논산훈련소에서 선발돼 장성의 육군 기계화학교로 이동하여 후반기 교육을 이수하여 정예 전차병으로 태어납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1952년 10월 25일, 육군 보병학교 전차교육대에서 거행된 소년 전차병 1기 수료식 기념 사진.
  하지만 애시당초 약속과 달리 이들 120명은 하사관이 아닌 일반 병사의 신분으로 논산의 제2 훈련소에서 보병 기초 교육훈련만을 수료한 다음 광주의 육군 보병학교 전차 교육대에서 3개월의 후반기 교육훈련을 이수했습니다.
  그야말로 속을대로 속은 것이지만 이 분들은 군말없이 혹독한 전차병 훈련을 마쳤고 마침내 10월 25일, 소년 전차병 제1기이자 육군 보병학교 전차 교육대 7기의 수료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당시 평균 17~18세의 어린 학생들이었던 소년 전차병들은 약속했던 일본 교육연수 및 하사관 임관을 하지 못한데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자대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수료식 이후 1주일 간의 휴가를 얻어 집에 다녀온 소년 전차병들은 11월 초, 한국군 최초의 전차인  M36 "잭슨" 구축전차 22대와 M32 구난전차 1대를 수령해 본격적인 운용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제57 전차중대 2소대원들의 기념 사진. 당시 제57 전차중대는 4개 소대로 편성돼 육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마침내 11월 15일, 소년 전차병들이 주축이 된 제57 전차중대가 창설돼 지속적인 적응훈련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 치열한 전장에서의 다급한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57 전차중대의 전선 투입이 시작되면서 이들의 활약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57 전차중대는 중대장 박우춘 대위를 포함한 7명의 장교와 병사 120명으로 편성되었는데 총 4대 소대로 분산되어 육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오늘날 전차는 유개식, 즉 상부 장갑판이 완전히 덮여 있지만 구축전차인 M36 "잭슨"은 상부 장갑판이 없어 적의 박격포탄이나 포탄 파편으로 인해 사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문제는 이들이 운용한 M36 "잭슨"이 일반 전차가 아닌
대전차 임무에 특화된 구축전차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해 북한군이나 중공군의 박격포 사격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소년 전차병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군의 고지 쟁탈전을 화력지원했고 주간에 발사된 90mm 포탄 세례로 중공군과 북한군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1953년 3월, 유명한 김만술 상사의 베티 고지 쟁탈전에서 M36 "잭슨" 2대가 박격포탄에 피격돼 사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소년 전차병들은 사격을 지속한 결과 제57 전차중대의 화력 지원으로 중공군이 격퇴되었고 노리 고지 쟁탈전에서도 이들의 활약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격전의 와중에 소년 전차병들의 야전생활은 고난의 연속 그 자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고된 야전생활을 견뎌낸 소년 전차병 생존자 분들. 이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겨울에는 차량이 올라오기도 힘든 고지 정상부에서 M2HB 중기관총용 탄통에 쌀을 씻어 밥을 지어먹으며 주간에는 화력 지원을, 야간에는 야음을 이용해 전차를 급습하려는 적을 경계하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생활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고난을 극복하며 끝까지 싸운 이들 소년 전차병들의 활약으로 휴전 직전까지 서부전선은 안정되었지만 휴전을 불과 2개월 앞둔 1953년 5월, 264 고지 전투에서 제1 소대장 박승일 소위가 적탄에 피격돼 전사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소년 전차병들의 후예, 오늘날 한국군의 기갑병들은 60년 전 북한 제105 전차여단이 침공했던 서부전선을 굳건히 사수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휴전 이후 제57 전차중대는 해체돼 일부 소년 전차병들은 그대로 군에 남아 간부가 되었지만 전역한 이들은 전쟁 기간 중 전차병의 고된 후유증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공부를 포기하고 스스로 전차병이 되어야 했지만 정작 국가는 이들의 희생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해주지 못했지만 지난 2005년 5월, 제28 보병사단 관할인 태풍 전망대에서 소년 전차병 생존자들이 주축이 되어 박승일 소위의 추도식이 열리고 기념비가 세워지는 등 오랫동안 잊혀졌던 소년 전차병들을 기리고 있습니다.
  박승일 소위가 전사한 264 고지에 건립된 소년 전차병 기념비. 오랜 세월 잊혀졌지만 이제 이 분들의 노고가 인정받게 되어 다행입니다.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2010년에도 소년 전차병들이 지켜낸 조국은 후배들의 손으로 굳건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2 기갑여단, 필자 제공. Special thanks to Captain. Lee, Young-Soo )
  여러분,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 우리 주위에 참전을 하여 불구가 되거나 고통을 받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마땅히 위로하고 그 분들의 노고를 치하해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소년 전차병 전우회 홈페이지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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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 전차대대 2010.05.26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2기갑여단 오랜만에 봅니다.

    전역한 지 1년 4개월이지만 정말 반갑네요.

    파주 훈련장에서 촬영하셨나요? 정말 멋진 장면입니다.

    • Koreanwar60 2010.05.26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훈련 촬영하던 날 지형이 역광방향이라 촬영에 적잖이 애를 먹었지만 든든한 88 전차대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2. 서현석 2010.05.26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년 전차병들의 활약상 잘 보고 갑니다.

    28 사단 전차대대 오랜만에 보네요.

  3. 23523 2010.05.26 17: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분들의 목숨건 사투가 있었기에 지금의 조국이 있음에도 아직 정신못차리고 데모질에 북한편에 돌아서서 반미친북 시위나하는 정신나간 이들이 있으니 걱정이 앞섭니다..

    • Koreanwar60 2010.05.26 1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작금에 들어 안보의식이 많이 약화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북한의 대남 적화 야욕이 강성함에도 불구하고 맹목적인 평화만을 제창함은 분명 문제가 있지요.

  4. 이성복 2010.05.26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년도 3월에 전역한 제 아들이 근무하였던 부대입니다. 2기갑여단 화이팅!

  5. 방자 2010.05.27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소년전차병 1기 수료식 사진속에 내 큰아버님이 계십니다. 언젠가 하신 말씀중에 '나라를 위해 자원해서 입대를 했지만 정말 전투중에 죽다 살아나기를 몇번 하고 나니까 조국이고 나발이고 적에 대한 적개심이 우선시하게 되어 물불 안가리고 싸우게 되더라" 라고 하신게 생각나는군요.
    당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평생 고생하고 계시지만 아직까지 생존해 계십니다.

  6. mami5 2010.05.27 08: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병은 살아 있다..^^
    늠늠하신 모습 보기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7. 흠!~ 2010.06.05 2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관리좀 하시지

  8. 강여은 2010.07.11 0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화 속으로 이번에 CGV에서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권상우 오빠 정말 멋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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