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최초의 전차, M36 "잭슨"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4.20 15:07
  M36 "잭슨" 구축전차는 강력한 M3 90mm 대전차포를 탑재해 독일전차를 상대하는데 투입되었고 6·25 전쟁 중에는 북한군과 중공군의 주력 전차인 T-34/85를 상대하기 위해 한국군에 인도되었습니다(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구축전차를 대대적으로 투입한 것은 역시 독일이었습니다. 독소전 기간 중 소련군의 강력한 기갑전력에 수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했던 독일은 돌격포와 구축전차, 대전차 자주포 등을 대량 생산해 전선에 배치했지만 결국 패하고 말았죠.
  독소전 기간 중 격파되어 소련군에게 노획된 핀란드군의 Ⅲ호 돌격포. 기존 전차의 차체에 두터운 장갑을 두른 전투실과 장포신 대전차포를 장착한 근접 화력지원용 자주포로 초기에는 보병의 화력지원이 목적이었지만 갈수록 수가 늘어나는 소련 전차전력에 맞서 대전차 임무에 주로 투입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구축전차와 혼동하기 쉽지만 용도로 분류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 6·25를 방문해주시는 방문자 여러분들은 전쟁 기간 중 우리 국군 장병들이 단순히 미군 전차들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실 경우가 많으실 겁니다.
  솔직히 휴전 이후 국군이 운용한 전차가 388대의 M4A3E8 "셔먼"이었고 이후 M47 "패튼"과 M48 "패튼"을 넘겨받아 아직도 보병사단에서 주력전차로 운용 중이니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실 분들의 한탄어린 근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한반도에는 약 1,027대의 K-1 전차가 독립 기갑여단과 기계화 보병사단 및 일선 보병사단에 배치돼 유사시 북한 기갑부대의 공세를 저지함과 동시에 반격의 선봉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5 기갑여단, 필자 제공 )
  그렇지만 1987년, K-1 전차가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현재 한반도에는 1,027대의 K-1 전차와 400여대의 K1A1 전차( 아직 생산이 이뤄지고 있는데다 군사 보안 관계 상 정확한 수치는 제외하겠습니다 )들이 일선 기계화 보병사단과 독립 기갑여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로 군림하고 있는 지상의 왕자, K1A1! 120mm 활강포와 복합 장갑으로 무장해 북한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차인 "천마호"도 쉽게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과거 북한에게 수적으로 열세였던 한국군 기갑부대는 이제 질적인 우세를 통해 지상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30 기계화 보병사단, 필자 제공 )
  따라서 아직까지 전차가 필요한 보병사단에서 미국제 전차들이 운용되더라도 과거처럼 미국제 일색이던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니 우리 군을 믿고 열심히 응원해주는 것이 저희들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자! 이번에 소개할 것은 개전 이후까지 전차라고는 단 한 대도 없던 한국군에 최초로 배치된 '전차'입니다.

  워낙 강력한 상대를 맞이해야 했던 탓에.... 독소전 당시 독일 기갑부대는 소련군이 투입한 T-34 전차에 경악한 나머지 전차의 성능을 강화했고 그 결과 미군 전차부대는 문자 그대로 "쌍코피"가 터졌습니다. -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전차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꽤 복잡한 단계를 이루지만 방문자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맞딱뜨린 T-34/76은 그 때까지 독일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전차들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때문에 독일은 이 전차를 효과적으로 파괴할 신형 전차가 필요했고 그 결과 두 대의 전차가 등장하게 됩니다.
  바로 Ⅴ호 전차 "판터"와 Ⅵ호 전차 "티거"가 그들이었죠!
  차기 주력전차로 계획되었던Ⅴ호 전차 "판터"는 75mm kwk 42 전차포와 경사장갑을 도입해 T-34/76을 능가하는 전차로 재탄생했습니다.
  Ⅵ호 전차 "티거"는 불과 1,354대라는 적은 수량만 생산되었지만 이 전차 1대를 격파하기 위해 미군은 최소 3~6대에 달하는 전차를 손실해야 했습니다. -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티거 전차는 독일군의 상징으로 널리 칭송될만큼 유명세를 타는 덕분에 오늘날에도 이처럼 소련제 T-55 전차를 개조한 모조차량을 몰고 다니는 팬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방문자 여러분들 중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팬저 탱크라는 플라스틱 모형을 구입해 조립해 본 분들은 이 전차가 어떻게 생겼는지 금새 떠오르실 겁니다.
  또한 티거 역시 "타이거 탱크"라는 이름으로 기억하실 것이고요.
  이렇게 전장에 데뷔한 두 전차는 몰려오는 T-34/76을 닥치는 대로 격파해버렸고 덕분에 화력 강화형인 T-34/85, 즉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 선봉을 맡은 전차가 등장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전장에 데뷔한 판터와 티거는 몰려오는 소련군의 T-34/76을 순식간에 "깡통"으로 만들어 버렸고 이에 대항해 T-34/85가 투입됩니다.
  판터와 티거는 1942년부터 참전한 미군 전차부대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입혔는데 특히 장갑 방어력과 공격력이 열세인 주력전차들은 거의 대량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미군이 이렇게 큰 피해를 입은 원인은 우선 당시 미군의 교리가 "전차는 어디까지 적 방어선을 돌파하는 임무에만 충실하고 적 전차는 구축전차들이 처리한다"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 기갑병과의 잘못된 교리로 인해 전선의 미군 전차부대는 독일 전차부대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독일전차를 상대해야할 M10 "울버린" 구축전차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데다 차량 자체가 매복 전투에 적합한 형태라 직접적으로 전차들을 지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실제 미군의 주력전차인 M4 "셔먼"의 75mm 전차포는 어디까지 보병 제압에 유리한 포였을 뿐 "판터"와 "티거"를 상대하기엔 위력이 부족했습니다.
  반면 M10 "울버린" 구축전차에 탑재된 76.2mm 포는 500m 이내에서 판터와 티거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격파된 판터 전차 잔해 앞에서 포즈를 취한 미군 병사들. 워낙 강력한 독일전차부대와 맞서싸워야 했던 미군이다보니 전후 차기 주력전차 계획을 추진하면서 독일과 협조를 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구축전차들이 별도의 독립부대를 이뤄 전차부대와 따로 행동했던 탓에 전차부대가 독일전차와 마주치더라도 구축전차들이 제 시간에 지원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독일군이 보다 강력한 신형 전차인 티거Ⅱ를 투입하자 미군은 자연히 더욱 강력한 무장을 물색했고 그 결과 M3 90mm 주포를 탑재한 신형 구축전차가 등장합니다.
  바로 M36 "잭슨", 본 포스트의 주인공이 탄생한 것이죠.
  M36 "잭슨"은 사진과 같이 대구경 90mm 전차포를 탑재한 덕분에 화력에서 독일전차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M36의 별칭인 "잭슨"은 남북전쟁 당시 활약한 남군의 스톤월 잭슨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인데 생산은 자동차 회사로 유명한 GMC가 담당했습니다.
  M36의 배치는 미군 내에서 골칫거리로 작용했습니다. 우선 차체가 부족하다 보니 기존 M10A1 "울버린"의 차체를 전용하는 것부터 시작해 디젤엔진을 장착한 M10의 차체까지 전용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미군 전차들은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던 터라 군수/보급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
  여기에 주포의 위력은 강력하지만 대신 포탑을 새롭게 설계해야 했던만큼 생산일정에도 적잖은 차질을 빚었습니다.

   총 1,772대가 생산된 M36 "잭슨" 구축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후반기에 실전 투입되었고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자 한반도로 투입될 준비를 갖췄지만 차체를 봐서 알 수 있듯 매복전투를 주력으로 하는 구축전차보다는 직접적으로 북한군의 T-34/85에 맞설 수 있는 M26 "퍼싱", M46 "패튼", M4A3E8 "셔먼"이 더 요긴했기 때문에( M36의 장갑은 차체 전면이 51mm, 측면이 38mm에 불과해 85mm 포탄을 맞으면 일격에 격파되었습니다 ) 실질적으로 주임무인 대전차 전투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M36의 차체 상부 사진으로 전차보다 장갑이 얇은데다 개방형 포탑을 채용하는 통에 상부에서 포탄이라도 폭발할 경우 전차병들이 몰살당하기 좋았기 때문에 T-34/85를 상대하는 임무에는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1950년 11월, 부산광역시 동래구 일대에 소재한 육군 종합학교 내에 전차과가 창설되어 전차병이 양성되기 시작하자 미군은 한국군에 전차를 공급하고자 했지만 당장 자신들이 쓸 차량도 부족한 형편이었습니다.
  한국군 입장에서는 이제 전차병들이 양성되는 판국에 기왕이면 전차를 직접 끌고 전장에서 활약하고 싶어했고 이 때문에 미군은 M36 "잭슨"을 공급하기로 결정합니다.
  비록 주력전차가 아닌 구축전차지만 북한군 기갑전력이 사실상 궤멸되어 전차와 맞서싸울 확률이 크게 낮아졌고 탑재된 90mm 주포는 충분히 T-34/85를 격파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데다 미군 자신도 운용할 일이 거의 없어 한국군에게 필요한 차량을 충분히 넘겨줄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리하여 1951년 10월 15일, 선박편으로 부산항에 하역된 M36 "잭슨" 22대로 한국군 최초의 전차부대인 제51 전차중대가 창설됩니다.
  제51 전차중대는 10월 17일, LST(상륙함)에 탑승해 강원도 속초에 상륙하여 휴전 시까지 동부전선 일대에서 아군의 화력지원을 담당했습니다.
  "북한군, 전부 각오해!!"  전쟁 말기 치열하게 전개된 고지 쟁탈전에서 강력한 90mm 주포로 무장한 M36은 한국군에게 든든한 존재였습니다. -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1952년 4월~1952년 2월에 걸친 기간에는 제52 전차중대가 광주에서 창설되는 것을 시작으로 총 9개 전차중대가 M36 "잭슨" 구축전차로 창설되었습니다.
  개전 초, 단 1대의 전차도 보유하지 못했던 한국군이 이제는 총 198대의 M36 "잭슨"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9개 전차중대는 이후 3개 전차대대에 배속되었는데 각 대대는 총 66대의 M36으로 편성되었습니다 )
  1952년 10월, 치열했던 백마고지 전투 당시 조칠성 대위의 제53 전차중대 소속 M36 "잭슨" 구축전차들은 고지를 공략하는 제9 보병사단을 90mm 전차포로 화력 지원해 중공군을 격퇴하고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는데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M47 "패튼"과 M4A3E8 "셔먼"으로 모두 한국군에서 운용된 차량입니다. 이 차량들이 주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 대전차 임무를 수행하는 구축전차인 M36은 퇴역해 백령도 등의 주요 해안 요충지에서 해안포대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활약한 M36 "잭슨" 구축전차는 휴전 이후 한동안 운용되다가 곧 미국으로부터 공급된 신형 전차들에게 임무를 넘겨준 후 일부 차량이 백령도에 해안포로 배치되는 등 주요 해안 요충지에서 해안포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제가 현역 시절 포신만 떼어내 콘크리트 거치대에 장착한 M36 포신이 고철로 방치돼 녹슬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정도였으니까요.
   야전에서 정비 중인 한국군의 M36으로 독특한 위장무늬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잉여 M36은 인도 - 파키스탄 전쟁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T-55 전차를 격파함으로써 구식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음을 입증했습니다.
  M36은 한국군 최초의 전차전력으로서 전쟁 말기 아군 보병들의 든든한 수호자로 오늘날에도 영원히 추앙받을 구축전차입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M36 "잭슨"의 모습으로 주포를 M3A1으로 교체한 차량입니다.
  좌측의 차량은 M46 "패튼"으로 보다 강력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차체가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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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w 2010.04.21 16: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티거(tiger)짱 근데 티거 장갑을위한 엔진의크기 그앤진때문에 방출해야하는 열때문에 많이죽지 않았나요?
    (여기서m10이 엄청난역활을 했다는데??)
    미군 퍼싱은 언제나왔나요???? 장난아니던디 ㅎㄷㄷ 돌격+화력 짱이던디(디스카버리체널에서)

  2. 빌헬름 비트리히 2010.04.21 2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거와 판터 전차의 활약은 아른헴에서도 이어졌죠.

    특히 공수부대 킬러로 맹활약했는데 잘 보고 갑니다.

    디펜스타임즈 코리아는 서점에 나왔나요? 요즘 발행일을 제때 안 지키는 것 같던데요

  3. sanro 2010.04.22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현재의 군 근무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고 군복무에 제외 되는 인원도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2 년 6 개월 이상 연장하고 특히 기술 분과는 더욱 교육의 기간을 늘리고 교육의 심도도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남자들 군에서 보낸 기간이 절대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기술이나, 생활의 태도, 대인 관계등을 배워서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더 심도있는 과학적 무기를 개발 생산해야 합니다. 현대전은 기술 전입니다. 전쟁은 국가나 인족의 안존에 직결된 것입니다. 한국군은 더 강력해야 합니다. 현재 상당히 나약한 상태에 있다고 봅니다.

  4. 산두발 2010.04.22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도" 타이거"를 "티거"라고 쓰는병사가있네....ㅉㅉㅉ 과거국내모형잡지사에서 쓰던표현인데 우리가언제부터 독일식발음으로 호칭했나요 "타이거"(호랑이)원산지가 독일도아니고

  5. 밀리매니아 2010.04.22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10년 좌파정권이라...
    현재 밀매들한테 물어보십시요. (밀매분들은 대다수 보수우파적이십니다..)
    보수우파라는 현정권과 노무현정부때의 국방정책을..
    어느때 더 우리 군 전력이 향상되었는지를...그분들도 전정권인 노무현 정부때
    아주 많은 전력증강이 되었습니다..

    • 그리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지요. 2010.04.23 0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

    • 야구홀릭 2010.04.29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뻘짓도 만만찮게 했지요. 당장 똥파이브를 대체할 전투기도 부족한데 한가하게 F50만들어 수출도 아직 미정이고 공격형헬기와 보병수송용 헬기 노후화되어 급해 죽겠는데 성능미달과 수송인원도 적은 국산헬기 만든다며 예산낭비..성능이라도 어느정도 담보되야 수출길이라도 트는데 이건 개발하는 기체자체가 현용보다 나을 것이 없는 수준이라 우리군만 또 뒤집어쓸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정말 한심하죠. 이걸 전력강화라 부를수있을까요?

  6. 햇살 2010.04.23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 복무기간이 너무 짧은것은 정말 우려 할 만한 일이다. 군인은 군인 다울 수 있어야 한다. 보다 많은 젊은이가 군인답게 될 수 있는 여건과 조건이 필요하다. 결코 그것은 국익에 반 하지 않는다!

  7. 강여은 2010.07.11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는 너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8. insure employed automobiles 2012.05.31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게 뛰어난 뒤에 나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결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너무 많아요. 그것을 통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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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cipro 2013.03.24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현재의 군 근무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고 군복무에 제외 되는 인원도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2 년 6 개월 이상 연장하고 특히 기술 분과는 더욱 교육의 기간을 늘리고 교육의 심도도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남자들 군에서 보낸 기간이 절대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무언가

  15. 숫자는 힘 2014.01.12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달 머겅 두번 머겅

  16. 숫자는 힘 2014.01.12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달 머겅 두번 머겅

킨 특수 임무부대(Kean TF)의 역공격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4.05 12:33

오늘날 고전 전쟁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머나먼 다리"(A Bridge Too Far) - 크게 보시려면 클릭을! -

  머나먼 다리는 오늘날 CG와 세트 촬영이 주류를 이루던 영화와 달리 700명에 달하는 공수부대원과 대량의 C-47 수송기, 그리고 40대 이상의 전차와 각종 장갑차량을 동원해 촬영한 블록버스터를 자랑했습니다.

  머나먼 다리! 본 블로그를 방문해주시는 분들 중에 4~50대 이상 되시는 분들 중 이 영화를 한번쯤 감상해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 영화는 1944년 후반기를 기해 제2차 세계대전을 보다 빠르게 종전시키고자 하는 연합군 수뇌부의 지나친 성급함이 낳은 최악의 실패인 "마켓 가든 작전"(Operation 'Market Garden')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작전은 독일이 국경선에 구축한 요새지대인 "지크프리트 선"을 정면 돌파하지 않고 주변국인 네덜란드의 운하를 따라 건설된 교량들에 공수부대를 강하시켜 점령한 뒤 기갑부대가 통과해 곧장 독일의 군수산업 중심지인 루르로 진격해 들어간다는 기상천외하면서도 한편으로 대단히 무모한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영국 제1 공수사단이 점령할 아른헴에는 궤멸직전의 전력이었지만 독일이 자랑하는 정예부대인 무장 친위대 제2 기갑군단 예하 제9 SS 기갑사단 "호엔 슈타우펜"과 제10 SS 기갑사단 "프룬츠 베르크"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사단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패잔병 집단이었지만 전투 의지가 충천해 영국 제1 공수사단의 공격을 몇 차례나 격퇴시키며 분전한 끝에 본토에서 증원된 지원부대와 합류해 아른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 일대에는 빈약한 전력이기는 했지만 무장 친위대(Waffen SS) 제2 기갑군단 예하 2개 기갑사단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죠.(무장 친위대는 오늘날로 치자면 청와대 경호실과 유사한 군사조직이지만 이들은 전차와 자주포, 병력 수송용 반궤도 장갑차 등을 갖춘 기갑사단들을 여럿 거느린 육군과 동급의 부대였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는 '풍차와 운하의 나라' 답게 운하를 따라 형성된 좁은 도로와 다수의 교량으로 방어전을 수행하는 독일군과 무장 친위대에게 기가 막힌 방어거점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사전 정찰을 통해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전쟁을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내고자 했던 연합군 수뇌부는 주저없이 "마켓 가든 작전"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당시 영국 제1 공수사단이 점령할 목표였던 아른헴 대교. 하지만 이 교량 일대에는 제9 SS 기갑사단의 견고한 방어선이 구축된 상태였고 연합군의 작전을 간파한 독일군이 속속 지원부대를 급파함으로써 교량 점령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3개의 주요 교량을 장악할 연합군의 3개 공수사단(영국 제1 공수사단 "붉은 악마", 미국 제82 공수사단 "올 아메리칸", 제101 공수사단 "울부짖는 독수리")은 예정된 강하지점에 무사히 강하해 교량 장악을 위해 이동했지만 이들을 지원할 영국 제30 군단의 전차들은 그 시각,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의 지형을 이용해 성공적인 지연작전을 펼쳤고 결국 무장 친위대 제 2기갑군단이 포진한 아른헴 대교를 점령했던 영국 제1 공수사단은 10,005명의 병력 중 2,163명만 생존해 귀환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이 전투는 빈약한 전력(당시 무장 친위대 제 2기갑군단의 2개 기갑사단이 보유한 전차와 자주포는 다 합쳐야 20대도 채 안되었고 병력은 장교/부사관/병 합계 6,000여명에 불과했습니다)을 보유한 무장 친위대와 완전 편제를 갖추고 강하한 영국군의 정예 제 1공수사단의 정면 대결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오늘날 정예부대의 대명사로 꼽히는 독일군, 그 중에서도 해골마크와 'SS' 문자를 달고 다니는 무장 친위대는 멋진 복장과 더불어 절망적인 상황 하에서도 광신적인 전투본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상대가 아무리 패전한 부대라도 주밀한 적정 정찰과 치밀한 준비가 동반하지 않으면 패전할 수 있음을 인식시켜준 전투였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무장 친위대 제 2기갑군단의 참패로 끝나 연합군이 독일 본토로 진격해 들어갈 수 있었던 전투였지만 독일군은 예상 외로 분전해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함은 물론 차츰 증원부대가 합류하면서 결국 연합군의 패배로 끝났으니까요. 결국 이 전투는 상대가 아무리 궤멸직전의 타격을 입은 패잔병 집단이라도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되며 철저한 현지 지형정찰 및 다양한 차선책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6·25 전쟁 중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물론 있었습니다.  그 대상이 하필이면 미군과 북한군이었다는 점이 불행이었지만요.  1950년 7월 말까지 윌리엄 벤자민 킨 소장의 미 제 25보병사단은 마산 일대에서 방호산 소장의 북한군 제 6보병사단과의 격렬한 전투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킨 특수임무부대를 지휘한 미 제25 보병사단장 "윌리엄 벤자민 킨" 소장.

  1897년 7월 9일 뉴욕주 버팔로에서 태어나 1918년, 웨스트 포인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보병 소위로 임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활약한 걸출한 군인으로 제25 보병사단장으로 6.25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화력과 기갑전력에서 북한군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전투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언제나 북한군이 먼저 타격하면 미군이 반격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양상이었습니다. 
  때문에 미 제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은 킨 소장에게 사단 전 병력을 동원해 마산 정면에서 수시로 공세를 감행하는 북한군 제 6보병사단을 격멸한 후 방어선을 진주까지 확대해 북한군의 전력 집중을 분산시키는 과감한 돌파작전을 지시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마켓 가든 작전과 은근히 유사성을 띄고 있지요?  더욱이 제공권은 미 공군이 쥐고 있었던 점, 그리고 북한군의 기갑전력이 연일 지속되는 공습으로 인해 약화되어 가는 점을 보자면 마켓 가든 작전 당시 독일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공세의 입장에 처해있던 북한군의 사상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니까요. 

  현재 이라크에서 작전 중인 미 제25 보병사단 병사들의 모습으로 제25 보병사단의 오랜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공세는 잘만 성사시키면 현재의 절망적인 전황을 뒤바꿔 부산 일대의 안전을 획득함과 동시에 경북 일대로 집중된 북한군의 공세 전력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사단장 킨 소장은 이 기막힌 공격을 위해 8월 3일까지 경북 상주 일대에 집결해 있던 제 25 보병사단의 예비대는 물론 한국군 2,447명까지 배속시켜 총 15,334명이라는 대군을 마산 일대에 전개시켰습니다.

  킨 특수임무부대의 반격을 위해 미군은 제89 전차대대를 배속시켜 기갑전력을 증강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세의 첨병을 맡을 기갑전력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1 해병여단과 M4A3E8 "셔먼" 전차를 장비한 제 89 전차대대, 그리고 M26 "퍼싱" 중전차를 장비한 해병대 제 1 전차대대까지 합류해 총 101대의 전차를 장비함으로써 제 25 보병사단은 사실상 오늘날의 기계화 보병사단(Mechanized Infantry Division)에 준하는 전력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반면 북한군 제 6보병사단이 동원한 T-34/85는 겨우 25대로 약 2개 대대 규모에 불과해 1 : 4의 열세에 놓여 있는 상태였고 총 병력 역시 7,500명 수준에 불과해 1 : 2로 미군이 우세했습니다.  
공세를 감행할 증강된 제 25보병사단은 사단장 윌리엄 벤자민 킨 소장의 이름을 따 "킨 특수임무부대"로 명명되었고 공격 개시 일자는 8월 7일로 정해졌습니다.

  1950년 8월 7일, 킨 특수임무부대는 전방의 북한군 제 6보병사단을 격멸하고 마산 - 진주 일대를 탈환하기 위해 전차들을 앞세워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예상 외로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당일, 북한군 제6 보병사단도 공세를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은 팔로군 시절의 전투경험과 소련에서 판매한 T-34/85 전차라는 이점을 절묘하게 접목시켜 킨 특수임무부대의 반격에 대응했습니다.

  우측에서 진격하던 헨리 피셔 대령의 제35 보병연대는 곧바로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의 공격 제대와 정면 충돌해 이들을 격퇴한 후 진격했지만 곧 Su-76 대전차 자주포의 지원을 받는 북한군 500명의 공격을 받아 고전하던 중 때마침 도착한 항공지원을 통해 간신히 격퇴시키고 자정까지 무촌리의 3차선 도로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연대장 피셔 대령은 예정과는 전혀 다른 북한군의 공격 앞에 당황했지만 이것은 양반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드윈 오드웨이 대령의 제 5해병연대 전투단이 담당한 좌측의 진동리 일대에서는 그야말로 피아가 뒤섞인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8월 7일, 오전 제 35보병연대가 공세에 돌입하던 시각 운이 나쁘게도 막 끼기 시작한 농무( 濃霧, 짙은 안개 )로 인해 항공지원은 어림도 없는데다 협곡과도 같은 지형으로 인해 오드웨이 대령은 연대를 횡대가 아닌 각 대대별로 종대 대형을 이뤄 진격하는 상대적으로 위험한 대열을 갖추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20여분간의 공격 준비 포격으로 북한군의 사상자가 속출했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죠.

  8월의 폭염과 산악지대는 북한군에게 기가 막힌 이점을 제공한 반면 킨 특수임무부대에게는 크나큰 장애물로 다가왔습니다.

  다행히 공격은 순조롭게 진행돼 제1 대대는 서진을 지속했고 2대대는 여우고지라 불리던 야반산의 북한군 진지를 점령하기 위한 공세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작전 계획은 1대대가 독도법의 판단 착오로 인해 당초 점령해야할 목표인 곡안리가 아닌 고성 도로 상에 위치한 우색재를 점령하는 실수를 범하면서 틀어졌습니다.
  

  특히 2대대가 지산리에 도착할 무렵 이 방면으로도 북한군 제6 보병사단의 공세가 시작돼 피아 간의 격렬한 혼전이 벌어져 통신병과 전령들은 어디에 포격 지원을 요청해야 할 지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진동리와 마산 간에 가설되었던 야전 전화선( 군 복무를 하신 분들은 잘 아실 일명 "삐삐선" )이 전차에 의해 절단됨에 따라 유선 통신이 사실상 두절돼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은 물론 사단장 킨 소장이 예하 부대들을 통제하는데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더욱이 8월은 그야말로 군인들에게는 가급적이면 영외 활동을 꺼리게 만들기 충분한 폭염이 쏟아지는 시기였고 때마침 이 지역의 기온은 무려 44도나 되었습니다.  
이런 기후에서 일사병 환자가 속출하지 않으면 정말 이상한 일이었고 실제 킨 특수임무부대 내에서 일사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지는 병사들이 늘어갔습니다.

  여기에 8월 12일, 킨 특수임무부대는 미 제 24 보병사단의 대전 전투 다음으로 최악의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이 무렵 북한군 제 4보병사단이 창녕군 영산면 동부로 진출함과 동시에 제 3보병사단도 대구 공략을 위해 낙동강 도하를 시도하는 등 전선은 한 명의 병사라도 아쉬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당시 봉암리에 위치한 킨 특수임무부대의 포병대대를 기습 공격한 Su-76 대전차 자주포로 여기에 탑재된 76.2mm 포는 곡사포로도 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10km 내에서 포격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찰나에 예하 제555 포병대대와 제90 포병대대가 봉암리 일대에서 T-34/85 2대와 Su-76 대전차 자주포를 앞세운 북한군 제 6보병사단 13보병연대(연대장 한일동 대좌)의 포위 공격을 받아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 나는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막강한 화력을 발휘하는 포병대가 가장 취약할 때는 바로 이동할 때입니다. 이 때는 반드시 보병이나 전차의 엄호가 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 제공 )
  킨 특수임무부대의 참패를 교훈삼아 오늘날 한국군은 주요 보병사단의 기계화를 추진하는 것 못잖게 포병대와 보병대, 전차부대 상호 간의 협동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필자 제공 )

  포병이 무서운 때는 오로지 포병 진지를 점령해 완전 방열을 마치고 포격을 감행할 경우일 뿐, 이렇게 트럭에 견인되는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무방비 그 자체였으므로 전차를 앞세운 보병들에게는 이처럼 손쉬운 목표물이 없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봉암리는 "포병의 묘지", "피의 협곡"이라는 별칭이 붙어버렸고 킨 특수임무부대는 화력 지원을 담당할 3개 포병대대를 순식간에 손실해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결국 8월 13일, 사실상 작전은 중단되어 3일 후인 8월 16일 15시 50분을 기해 부대가 해체, 각각 위급한 전선으로 투입되면서 6·25전쟁 최초로 시도된 미군과 한국군의 공세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킨 특수임무부대의 마산 - 진주 공세는 아무리 열세인 적이라도 충분히 대비를 한 상태라면 결코 만만치 않으며 항시 적정에 대한 주밀한 정찰은 물론 포병대대와 같이 이동 중에는 무방비 상태인 지원부대의 엄호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적으로부터 각개격파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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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7 1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원과 엄호,
    이것은 작전을 돕는 것이 아니리 이 자체로도 하나의 작전임을 알아야 한다.
    이동중 경계가 느슨하고 노출되는 순간,
    화력의 우세만 믿고 미완의 계획으로 덤비는 공격 등은 부족한 작전계획에 속한다.

    우수한 장비나 물자를 잘 운용하는 것이 작전을 구사하는 지휘관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2. 하인츠 하르멜 2010.04.08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른헴 전투에서 펼친 무장 친위대의 활약상 잘 보고 갑니다. 킨 특수임무부대는 북한군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3. 남기호 지방인 2010.04.29 1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30 년대에 로우 컨트리스 1 차대전식 요새화 철거했다면, 1940 년대 화력전 시대에 몇 차례 기동 및 대전투로 전쟁의 향방이 결정되었을수도 ? ... 마켓 가든 작전 경우에, 연합국 지원으로 건설된 요새에 연합국이 당했을수도 ? ... (지나친 요새화는 양날의 칼)

  4. 미하일 투하체프스키 2010.06.01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나먼 다리 현충일날 특선영화로 자주 방영해준 영화... 재미있게 봤습니다.

  5. 김형래 2010.07.11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머나먼 다리를 현충일에 특선영화로 틀어주곤 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새롭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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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obat herbal tekanan darah 2013.02.06 2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낙동강, 낙동강방어선, 독도법, 보병사단, 셔먼, 역공

  12. sympathy message guide 2013.06.15 1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병 전투사에서 가장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남겼고, 그래서 포병 밀리터리 매니아의 최고 관심을 받고 있고, 또 그래서 그 프라

6‧25 전쟁의 수호신 M26 '퍼싱' 중전차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18 09:25

 


  개전 초 북한군의 주력전차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950년 8월 5일, 북한군은 반드시 부산까지 진격할 목적으로 8월 공세를 감행합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군 및 미군은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8월 17일, 공세 개시 12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진격 중이던 북한군의 T-34/85 3대는 2대의 거대 전차와 마주치게 됩니다. 

  북한군 전차병들은 개전 이후 최초로 한국으로 투입된 미군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에게 일방적인 K.O 승을 거두었던 전례가 있어 이 전차 역시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개전 이후 미군이 급히 한국으로 투입한 최초의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는 공격력, 방어력에서 T-34/85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전차를 무찌른 퍼싱, 북진의 선봉에 서다!



   M24 "채피"가 T-34/85에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자 미군은 급히 M26 "퍼싱" 중전차를 한반도로 투입합니다. 강력한 90mm M3 전차포와 최대 102mm 두께의 장갑을 두른 M26 “퍼싱” 중전차의 한반도 투입은 아군에게는 희망을, 적에게는 “공포의 사신”이 출현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북한군의 주력전차인 T-34/85는 성능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차량이었지만 퍼싱보다는 떨어지는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T-34/85가 빨랐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은 퍼싱이 우세했거든요.


 

  M26 "퍼싱" 중전차는 M3 90mm 전차포와 102mm에 달하는 장갑을 보유하고 있어 T-34/85를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차병들의 훈련 수준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다양한 전술 개발과 실전경험을 기반으로 한 미군이 북한군을 압도했습니다. 

  M26 퍼싱이 낙동강 전선에서 활약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이 계속 좌절되자 8월 21일 밤, 다부동으로 대규모의 북한 기갑부대가 돌진해 들어왔습니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M26 퍼싱 전차 1개 중대는 몰려오는 T-34/85와 Su-76 자주포들을 정확하게 조준해 명중시켰는데 밤에 치러진 전투로 포탄의 궤적이 선명하게 비춰지다 보니 마치 볼링장에서 공에 맞은 핀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투의 별칭이 바로 “볼링 구장” 전차전이 되었죠.


  북한군은 다부동에서 T-34/85 14대와 Su-76 5대를 잃었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미 해병대의 M26 퍼싱 전차들도 활약하게 됩니다.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미 해병대의 M26 퍼싱은 육중한 장갑과 90mm 전차포를 이용해 상륙 제대를 엄호하며 시가지로 진입했고 17일부터 영등포 방면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을 위해 출동한 T-34/85들을 닥치는 대로 부쉈습니다.



 

  M26 "퍼싱"의 등장으로 T-34/85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결과 북한군은 9월 20일까지 24대, 25일까지 12대( 총 36대! )의 T-34/85를 손실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합니다.   북한군 전차부대가 지리멸렬하자 9월 21일,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대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 선두에는 M26 퍼싱이 있었습니다. 

   M26 퍼싱을 선두에 세운 미군은 출발 5일 만인 9월 26일, 수원에서 인천상륙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조우했고 북한군은 38도선을 넘어 패주하기 시작했죠.  

  1950년 10월까지 북한군은 38도선 이남에서 239대의 T-34/85를 손실했는데 개전 당시 보유한 수가 242대였으니 사실상 전차부대가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반면 M26 퍼싱의 손실은 극히 적은 수준이었고 전선에는 200대가 투입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M26 퍼싱은 북진의 선봉으로 북한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10월 13일, 금천에서 T-34/85 8대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M26 퍼싱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의 혼란 속에서도 아군을 엄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만약 퍼싱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은 중공군의 포위 전술에 말려들어 혹독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비록 6·25 전쟁이 종전된 이후 후속 전차인 M47 “패튼”의 등장으로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차가 되었지만 이 차량의 활약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보전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26 "퍼싱" 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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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ニンニク 2013.03.09 0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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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ウォーターサーバー 2013.03.23 0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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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winamax.fr 2013.03.25 0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병 현역 중대장인 아들은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보다가 어떤 때는 고개를 돌려 먼산을 바라보고는 하였었지요.

  12. jackpot 6000 2013.03.31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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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go here 2013.04.03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은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보다가 어떤 때는 고개를 돌려 먼산을 바라보고는 하였었지

  14. http://howtowinthelotteryxx.net  2013.04.05 2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은 개전 이후 최초로 한국으로 투입된 미군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에게 일방적인 K.O 승을 거두었던 전례가 있어 이 전차 역시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15. Bookmarking Post 2013.05.28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사이트는 이유를 테마로 더보고 싶어 누구를위한 환상적이다. 환상적인 것들, 쓰기를 계속보실 수 있습니다.

  16. how to be a model 2013.07.15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전투장비를 보았는데, 아내는 모든 것들이 처음보는 것들이었지요. 그러나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육군 보병 현역 중대장인 아들은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보다가 어떤 때는 고개를 돌려 먼산을 바라보고는 하였었지요.

  17. direktlån 2013.09.11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8. The Panorama 2013.10.02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

  19. Ideas for successful Silent Auctions 2013.10.24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20. The Hillford 2013.10.28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

  21. Auctions for fundraising 2013.11.18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