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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30 66. 다시 서울을 노린 중공군 (12)
  2. 2010.07.19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1] (18)

66. 다시 서울을 노린 중공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30 08:13

  암울했던 1.4후퇴의 기억을 멀리하고 1951년 4월 중순, 봄이 되었을 때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부대들은 38선 북쪽의 임진강~전곡~화천~양양을 연하는 캔사스(Kansas)선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중공군의 제3차 공세 이전으로 상황이 다시 돌아간 것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지난 6개월간의 경험을 통해 중공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에서는 전쟁을 더 이상 확대하려는 생각은 포기하고 있었고 현재 확보한 캔사스선을 중심으로 휴전을 구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덧 중공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북으로 전선을 밀어붙였습니다.]

  반면 유엔군 측의 이러한 생각과 달리 공산군 측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제4차 공세가 비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아직까지도 지난 3번의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기분 좋았던 과거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전략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에 대규모의 병력과 보급품을 집결하여 새로운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감지한 신임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중장은 철의 삼각지대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작전명 불굴(Dauntless Operation)로 명명한 일련의 공세를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임자였던 리지웨이에 비해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의 지휘관이었던 밴 플리트는 그의 성향대로 먼저 선제 타격에 나선 것이었는데,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던 공격이 4월 22일 오후가 되면서부터 전선 도처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이 감지되면서 진출이 저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서울을 국군과 유엔군에게 군말 없이 내주고 후퇴를 거듭해온 공산군은 이때쯤 새로운 공세준비를 완료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지난 제4차 공세가 중동부전선을 돌파하여 국군과 유엔군을 단절 시키려 하였던 전술적인 목적이 컸다면 이번 공세는 상당히 전략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의 재점령이었습니다.


  공산군 측 최고사령관 펑떠화이는 중공군 27만과 북한군 3만 5천으로 이루어진 총 30만 5천명의 대병력을 이용한 전형적인 인해전술로 서울을 일거에 포위하여 한강이북에서 유엔군의 주력을 격멸하여 노동절(May Day)전에 서울을 탈취해서 마오쩌둥에게 선물로 바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펑은 지난 3월 서울을 순순히 내준 대신 한강이북으로 건너온 서부전선의 유엔군 주력을 이번 공세에 일거에 격멸하여 서울을 다시 탈취하여 전선을 한강까지 밀어 붙임과 동시에 유엔군의 항전의지를 철저히 꺾으려 하였습니다.


[중공군은 서울을 재점령할 대공세를 계획하였습니다.]


  4월 22일, 어둠이 깔리자 공산군은 아군의 전 전선에 4시간에 걸친 강력한 공격준비사격을 실시하면서 전사에 중공군의 제5차 공세로 기록된 대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포격이 멈추자 서부전선의 중공군은 서울을 포위하기 위하여 3개의 방향에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각각 9개 사단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19병단(서방의 야전군 개념)이 개성-문산 축선에서 국군 제1사단과 영 제29여단을, 제3병단이 연천-동두천 축선에서 미 제3사단과 터키여단을 향하여 공세를 시작하면서 직접 서울을 노렸습니다.


  마치 6·25전쟁 개전 당시의 모습과 흡사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4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이 투입되었지만 이번에는 같은 장소로 무려 18개 사단이 공격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외곽에서는 제9병단 예하 3개 사단이 김화~포천 축선에서 광덕산줄기를 따라서 미 제25, 24사단을 목표로 남하하였고 나머지 6개 사단이 화천-춘천 축선에서 국군 제6사단과 미 제1해병사단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북한군 제3, 5군단이 동부전선의 인제-신남 축선에서 공세로 나왔습니다.


[중공군 제5차 공세 상황도]


  공산군은 이번 작전에서도 예외 없이 기동력과 화력이 열세인 국군 사단들이 담당하고 있던 지역을 먼저 돌파하여 후방으로 진출한 후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하려 했습니다. 공산군의 이 같은 공격으로 서부지역에서 국군 제1사단이 담당하고 있는 파평산 일대와 바로 옆 설마리를 담당하던 영국 제29여단이 중공군의 대 공격에 직면하게 되었고, 중부전선에서는 사창리에서 유엔군의 외곽을 담당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이 집중 공격을 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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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호성 2010.09.22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만 좀하시지!

  2. 한호성 2010.09.22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관순:안중근:링컨:윤봉길:김구 대한돕닙 만세!

  3. Haberdashery 2011.10.30 00: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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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1]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19 08:33
  개전 초기 한국군을 공황상태로 몰아간 북한군의 T-34/85
  전차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군을 상대로 북한군 전차부대는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군에게 있어 6월 25일은 치욕의 날이자 절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는 하루입니다.
  이 날 새벽 4시 30분을 기해 암호명 "폭풍"으로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 2개 군단의 일제 공격준비 포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를 앞세운 보병들의 진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특히 오전에 개성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함락된 데 이어 포천마저 함락됨은 물론 밤 10시에 동두천까지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함락되면서 한국군 지휘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전차라는 무기를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한국군은 졸지에 T-34/85의 무한궤도에 참혹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참담했던 6월 25일이 지나고 26일 오전 1시가 됐을 때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 야전 사령부에는 세 명의 '별'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로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 제2 보병사단 "노도부대" 사단장 이형근 준장, 그리고 제7 보병사단장 유재흥 준장이 그들이었죠. 
  한시가 급한 시각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전면적인 붕괴가 시작된 중서부 전선의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채병덕 총참모장은 제2, 7 보병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7 보병사단은 1연대와 18연대를 병렬해 덕정에서 38도선 방면으로, 2 보병사단은 5연대로 축석령에서 포천을 향하여 26일 미명을 기해 역습하시오.” 

  무모하기 그지없는 반격작전을 지시한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
  이는 정말 정상적인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현 위치에서 방어전을 펴는 것이 아니라 적을 향해 역습을 가하라니!
  그야말로 화약을 안고 화로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죠.
  후에 육군본부 작전 명령 제91호로 공식 문서화된 반격작전의 개시 시간은 6월 26일 오전 8시로 최종 공격 목표는 급격하게 붕괴된 38도선의 회복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공격을 진행 중이라 적잖이 애를 먹고 있던 북한군에게 있어 한국군이 제 발로 진지에서 걸어나온다는 것은 행운 그 자체였습니다.
  문제는 당시 한국군이 제대로 된 반격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전력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국군 제7 보병사단은 이미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안 그래도 2개 보병연대만으로 격전을 치르는 통에 전력이 급격히 감소되었고 특히 제1 보병연대의 경우 동두천이 25일 밤 10시 무렵에 함락된 후 가까스로 수습된 잔여 병력으로 재편성을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육군본부는 부랴부랴 수도경비사령부 예하였던  제18 보병연대( 현 제3 보병사단 예하 "백골부대" )를 제7 보병사단에 배속시켜 반격작전에 나서도록 지시했습니다.

  오늘날 동부전선의 제1 군 예하로 철통 철책경계에 임하고 있는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
  그러나 개전 초반 이렇다할 활약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실상 사단이 궤멸되고 마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7 보병사단 5 보병연대, 필자 제공 )
  하지만 의정부는 그나마 상태가 좀 나은 경우였습니다.
  리영호 소장이 지휘하는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의 주력이 배치되어 있던 포천은 이미 전면적인 붕괴가 임박했는데 우선 제7 보병사단 9 보병연대가 사실상 와해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전선을 이탈, 25일 오전 11시를 기해 광릉 방면에서 간신히 잔여 전력을 추스려 후퇴를 하려던 찰나에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 변경되었던 제3 보병연대를 증원한 것이었죠.
   원래 제3 보병연대는 제7 보병사단 예하부대였다가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는데 다시 모 부대로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이후 제3 보병연대는 현재까지 제7 보병사단 예하 부대로 강원도 화천군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포천의 상황은 의정부보다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육군본부는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를 추가로 투입시켜 이형근 준장의 지휘 하에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하는 한편 반격에 나설 것을 지시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때 제7 보병사단에 증원된 3, 5 보병연대가 현재도 사단 예하 부대라는 것입니다.

  6월 25일 하루 동안 육군본부에서는 전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육군본부의 결정 및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을 수령한 양 사단장은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였는데 제7 보병사단장 유재흥 준장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사단 예하 2개 보병연대가 궤멸 직전의 타격을 받은데다 원래 자신의 예하부대인 제3 보병연대를 돌려받는 것은 둘째로 치고 제2 보병사단 병력까지 증원된데다 개전 초반의 붕괴된 전선을 회복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5연대는 가용 병력이 겨우 2개 대대에 불과합니다. 2개 대대만으로 적 1개 사단에 역습을 감행한다니,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현재로서는 조금만 더 현 위치를 사수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16연대와 25연대가 도착할 것입니다. 이 부대들이 완전 배치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때 반격을 감행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전장에서 병력을 축차 투입시키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소이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전선에서의 반격이라는 것은 후방에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정설입니다.
  당시 육군본부의 결정은 전선에 크나큰 파국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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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7.19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퍼싱의 군사이야기를 연재 중인 만슈타인입니다.

    본 포스트는 연재물로서 총 3회 분량으로 계획되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라도 답변을 남겨주시면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2. 강효섭 2010.07.1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님, 언제나 멋진 포스트 잘 보고 갑니다.

    개전 초반에 장군들끼리 저런 알력 다툼이 있었다니....

    적전에서 기막힌 추태 한 판 벌였네요 -_-;;

    • ╋만슈타인╋ 2010.07.20 1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이런 알력다툼 외에도 5.16 군사혁명과 12.12 군사반란이라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군님들의 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육군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김수민 2010.07.19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은 포천의 승진훈련장 같네요 ^^

  4. 조유진 2010.07.19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싱님, 글 잘보고 있는데요

    사진을 클릭해도 크게 보기가 안되네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5. opohobag 2010.07.20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병덕 의 색깔을 의심해 볼만합니다

    6.25 발반 전후해서 나온 여러가지 명령에 의혹이 가장 많습니다

    무능을 가장한 利敵명령...이랄까

  6.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무가내로 몸으로 막으라는 명령은 정말 충격적인 것 같네요

  7. 김창원 2010.10.02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군된지 얼마되지 않은 한국군의 수준이 보여준 한계였습니다

  8. 이소현 2010.11.09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초기 너무나도 혹독한 희생을 치른 장병들에게 묵념을

  9. 김종관 2010.11.09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속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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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잘못 투하한 조명탄에 노출된
    영국 얼스터 대대가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