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 (장진호전투)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12.12 15:28

새로운 방향으로의 공격 (장진호전투)


 

이 전투는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던 중 중공군 제9병단의 7개 사단에 포위되어 11 27일부터 12 11일까지 약 240㎞의 장진호 계곡을 철수한 작전이다.

미 제1해병사단은 혹심한 추위 속에서 겹겹이 에워싼 중공군의 포위망을 벗어나는 동안 엄청난 시련을 겪었으나, 근접 항공지원하에 과감한 돌파작전을 전개하여 함흥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는 철수라기보다‘후방으로의 공격’작전으로 중공군에게 수만명의 전사자 손실을 입힘으로써 이어진 흥남철수작전을 가능케 하였다.

 

 

 

중공군 포위망 속으로 공격

장진호 일대는 1,000m 이상의 고지대인 개마고원 일대 산악지역이었다. 또 깊은 계곡에 도로는 단 하나만 나 있어 교량이 파괴되면 차량통행이 불가능하였다. 이 무렵 날씨는 북풍이 몰아치는 엄동설한이었다. 주간에도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갔으며, 야간에는 영하 2845도까지 급강하하였다. 적설량은 많지 않았으나 곳에 따라 60㎝ 이상 눈이 쌓여 있었고, 눈보라가 칠 때는 15m 앞도 보이지 않았다.

 

 


장진호 전투 상황도

 

미 제1해병사단은 장진호 북쪽의 한·만 국경선으로 진출하기 위해 사단 주력이 하갈우리에 집결하고 있었다. 사단은 제7해병연대가 유담리를 확보하면 제5해병연대가 제7해병연대를 초월하여 무평리로 공격해 서부전선부대와 연결한다는 계획하에 11 27 08:00, 유담리를 향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미리 매복 중이던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중공군 제9병단은 제27군 예하 4개 사단이 장진호 북방에 전개하여 미 제1해병사단의 주력이 집결된 유담리에서 하갈우리를 포위 공격하고, 20군의 4개 사단이 장진호 서쪽에서 미 제1해병사단의 유일한 철수로인 유담리 - 하갈우리 - 함흥 간의 산악도로를 차단하고 있었으며, 26군의 4개 사단을 예비로 확보하고 있었다.

 

유담리 포위망 돌파작전

중공군 제79·89사단은 유담리에 집결한 미 제1해병사단을 북쪽과 서쪽에서 공격하고 제59사단이 신흥리 일대의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미 해병대는 진격을 중단하고 2개 연대로 유담리를 고수하면서 차단된 보급로 개통에 전투력을 집중하였다.

 

한편 미 제10군단장은 서부 미 제8군의 철수와 장진호 일대의 급박한 상황을 고려하여 11 30일 하갈우리의 사단지휘소를 방문해 함흥-흥남으로 철수하라고 명령하였다.

 

유담리의 미 제5·7해병연대는 협조된 작전으로 후방돌파를 시도하였다. 최초부터 덕동고개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을 물리치고 진지를 고수하고 있던 제7연대 제2대대 F중대와 본대가 연결함으로써 일단 덕동통로는 개통되었다. 12 3일 덕동고개에서 하갈우리까지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을 때 하갈우리에 있던 영연방 제41해병특공대가 북상하여 철수부대를 엄호함으로써 철수부대는 하갈우리에 진입하였고, 22㎞에 걸친 유담리 포위망 돌파작전은 12 4일 일단락되었다. 이들 부대가 유담리에서 하갈우리까지 철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77시간으로, 1㎞를 진출하는 데 3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미 제1해병사단은 이 전투에서 1,140명의 인명손실과 동상에 의한 1,194명의 비전투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들 부대는 철수 때 발생한 600여 명의 들것 환자와 함께 부대건제를 유지한 상태로 질서 있게 철수함으로써 해병대의 용맹성을 다시 한 번 과시하였다.

 

한편 장진호 동쪽의 신흥리 일대는 미 제7사단 제31연대장 지휘하에 제31연대 제3대대와 제32연대 제1대대, 57야전포병대대가 중공군 제27군의 제80·81사단의 5개연대로부터 포위공격을 받았다. 후방으로부터의 구출이 지연되자 이 부대는 소집단으로 포위망을 돌파해 하갈우리로 철수하였다. 수색부대의 구출작전으로 2,500명 중 1,050명이 구출되었고 300명은 전사, 나머지 1,150명은 실종되었다.


 

하갈우리 포위망 돌파작전

사단지휘소가 있는 하갈우리는 11 27일 중공군 제58사단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는데, 미 제1해병연대 제3대대와 공병대대가 적의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갈우리 일대의 미 해병대

 

사단은 철수작업의 일환으로 12 2일부터 5일까지 4,312명의 부상자와 대량의 군수물자를 공중으로 후송하였다. 후송이 불가능한 시설과 물자는 파기한 후 병력은 12 6일 새벽에 철수하기 시작하였다.

 




철수 중인 미 해병대.



 

 

철수 중에 휴식하고 있는 미 해병대

 

이때 극동공군 수송사령관 윌리엄 터너(William H. Tunner) 소장이 해병 사단장 스미스 소장을 방문하여 ‘모든 전투 장비를 버리고 병력만이라도 공중 철수할 것’을 제의하였으나, 사단장은 “해병대 역사상 그 같은 불명예는 없었다”고 그 제의를 일축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철수하기로 하였다. 결심을 굳힌 사단장은 각 제대가 철수준비를 하는 동안 장병들에게 “사단은 철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후방의 적을 격멸하고 함흥까지 진출하는 새로운 방향에 대한 공격이다”고 강조하면서 장병들의 전의를 북돋웠다.

 

중공군은 철수하는 미 제1해병사단을 포위섬멸하기 위해 제20군으로 철수로를 차단함과 동시에 예비인 제26군을 투입해 철수하는 병력을 추격하였다. 사단은 제5해병연대가 하갈우리를 방어하면서 철수부대를 엄호하는 한편 제7해병연대는 후방으로 공격하면서 통로를 개척하였다. 전차를 선두로 강력한 근접항공지원하에 통로를 개척하고 철수로상의 주요 애로지점은 도로 좌우측 부대가 공격해 사전 확보함으로써 중공군의 포위와 기습을 방지하였다.

 

1만여 명의 병력과 1,500여 명의 피란민, 그리고 1,000여 대의 차량이 이동한 하갈우리 포위망 돌파작전은 선두부대가 12 7일 새벽에 고토리에 도착하고 14:30분께 엄호부대가 철수함으로써 끝났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103명이 전사하고 7명이 실종되었으며, 506명이 부상당하였다.

 

고토리 포위망 돌파작전

중공군은 제58·60사단의 일부 병력이 고토리-진흥리 간 애로지역과 황초령 일대를 차단하고, 89사단이 진흥리 남쪽을 차단하고 있었다.


미 제1해병사단은 12 8 08:00, 진흥리에 있는 제1해병연대 제1대대로 하여금 북쪽으로 공격해 황초령의 요충지인 1081고지를 확보토록 하였다. 이후 제1해병연대의 엄호하에 제7해병연대가 선두에서 철수하고 제5해병연대가 후속하도록 하였다.

 

12 8일 야간에는 기온이 40도 이하로 급강하하였다. 이 때문에 고토리 이남의 애로지역을 지키고 있던 중공군은 꽁꽁 얼어붙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중공군은 고토리 남쪽 6㎞ 지점의 수문교(고토리-황초령 중간)를 파괴하여 유엔군의 철수를 차단하였다. 이 수문교는 약 450m의 계곡을 연결하는 교량으로, 이 교량이 복구되지 않을 경우 미 제1해병사단은 차량·전차·야포 등 각종 전투 장비를 유기하고 후퇴하여야 할 처지였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M-2 임시교량 경간목(무게 2, 5×2×15피트) 4개가 필요하였다. 극동 공군은 12 7 C-119 수송기 8대에 낙하산 2개를 부착한 경간목을 800피트 상공에서 공중 투하하였다. 그중 한 개는 중공군 지역에 떨어졌고, 1개는 파손되었으나 나머지 6개는 안전하게 투하되었다. 공병대대는 12 9 15:00시께 파괴된 수문교에 항공기로 공수된 경간목을 이용, 임시교량을 가설하였다. 가설이 완료된 후 병력과 차량은 밤새도록 유도병의 안내를 받으며 교량을 건너 12 10 08:30분 진흥리에 도착하였다.

 

진흥리를 통과한 다음부터는 미 제3사단의 엄호를 받으면서 함흥으로 전진하여 12 11 21:00시에 모두 함흥에 도착하였다. 이 작전에서 미군은 75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실종되었으며 256명이 부상하였다.

 

 

중공군에 의해 파괴된 교량 (수문교)

 

 

파괴된 교량을 복구 후 행군을 계속하는 해병대.

 

 

철수 중 눈 속에서 휴식을 하는 해병대원들

 

 

하갈우리로 향하는 미 해병대원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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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east growth cream 2013.12.17 0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이 수석대표(해군 중장)와 대표들을 전송하기 위해 나온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대장, 호디스 육군 소장

  2. Great Home 2013.12.17 0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지난 1951년 6월을 전후하여 제기되었으며, 그 후 7월 10일 쌍방 협상대표들은 개성에서 만나 최초 회담을 개최하였다.’

중공군의 괴상한 대전차 전술 - 전차포 포구 쏘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10.25 08:41



 미 해병들이 유담리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 길은 덕동고개를 넘어 하갈우리로 통한다.
날씨가 얼마나 추웠는지 사진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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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6·25전쟁 참전군대에서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제일 머리를 많이 
굴린 군대가 중공군일 것이다.



원체가 믿을 것은 숫자 뿐이었고 맞선
부대는 화력 세계 최강인 미군이었다.


그러니 중공군은 그 격차를 줄이고자 잔머리 수준의
창의력을 무수히 시도했었다.

매복 기습이나 인해 전술, 한국군 선별 공격, 갱도 전술,
등은 중공군의 쉬지 않은 머리 쓰기의 결과물들이다.


이중에서도 전차도 대 전차 화기도 없이 미군 기갑 부대에
맞서는 수단 부재의 일선 보병 중공군들을 상대로 교육시킨
대전차 공격 수단이 상당히 특이 하다못해 괴상하다.

즉 적 전차와 맞붙으면 적 전차가 포탄 발사 후
즉시 전차 포신 내부에 화력을 퍼 부어 넣으라는 것이다.


M 26 퍼싱 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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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은 중공군 소부대 지휘관들이 포탄을 발사하면
전차포 폐쇄기가
자동적으로 낙하 개방되며 탄피를 뒤로
배출하고 그런 상태로 다음
포탄 장진까지 열린 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폐쇄기는 그냥 아래로 열린 채 있다가 포탄을 장전하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위로 튀어 붙으면서 포미를
폐쇄 장전을 완료한다.


그러니 포탄 발사 직후에서 다음 탄을 장전할 때까지의
짧은 시간에
포신 속에 사격을 해대면 탄약수를 명중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M-26 퍼싱 전차의 90mm 포탄 적재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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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에서 이 괴상한 대전차 공격술이
실제로
미군 전차를 상대로 실행되었다.


배경 설명이 잠깐 필요할 듯하다.

1950년 11월 해병 1 사단은 서북지방에서 북진하는 미 8군과
연결하기 위해서 함흥평야에서 고원인 장진호 지역으로 들어섰다.

입구인 수동에서 중공군을 박살 낸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이미 소개했었다.


미 해병 1 사단의 진격로와 퇴각로 - 장진호 바로 아래
영국 해병대가 호되게 당한 Hellfire valley와
도착 예정지인 하갈우리와 출발지인 고토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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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위협이 현실화 되었을 때 장진호 진격 해병 1사단은
사단 전 병력이 좁은 산길에 뱀처럼 길게 배치된 취약한
상황에 있었다.


맨 뒤 고토리에 과달카날에서 맹렬한 전투 지휘로 유명했던
루이스
‘체스티’ 풀러 대령이 지휘하는 해병 11연대가
후속하고 있었다


장진호반에서 고토리로 철수하는 미 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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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 장진호 남단 넓은 개활지인 하갈우리에
스미스 소장이 지휘하는 해병 1사단 본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좁은 협궤의 철로 종착역이다.

거기서부터 위로 올라가 강을 가로 막아 만든 긴 바늘 귀 같은
장진호가 있는데 장진호 좌안에 해병들 주력인
5연대와 7연대가
진격해 있었다.
리첸버그 대령이 통합 지휘를 했었다.


그리고 호수 건넌 장진호 우안 신흥리에는 미 육군 31연대
전투단이
전진해 있었다.

증강된 해병 1 사단을 공격하는 중공군 9병단 병력은
6만 명이나 되었다.

병단은 장진호에 들어온 긴 장사진의 해병 행렬을 따라 병력을
긴 포위망 형식으로 배치했다.


병단장 송 시륜[宋 時倫]은 유담리와 신훙리로 깊숙이 들어온
선두의 두 개 해병 연대와
우측의 육군 연대를 먼저 격멸하기로
하고  11월 27일 주력을 이곳에
집중해서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신홍리 쪽 장진호 우안의 육군은 궤멸 되었지만
해병
두 개 연대는 중공군을 격퇴하고 하갈우리로 탈출해나갈
출구인 덕동 고개도 방어해 냈다.


비로소 해병대 사단 본부와 외부와 연결된 비상 활주로를
가지고 있는
하갈우리를 점령해서 해병들을 두 토막 내는 것이
옳다는 정보 판단을 한
송 시륜은 미약한 병력이 지키는
하갈우리를
전력을 다해 11월 28일 밤부터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갈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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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북쪽 유담리의 두 개 연대가 철수해서 하갈우리의
부대와
연계하기 전의 위급한 순간이었다.


스미스 장군은 후방 고토리의 11연대에 신속한 증원을 요청했다.
증원군은 중공군이 장악하고 있는 산길을 16킬로나 통과해야
했다.

연대장 풀러 대령은 마침 전날 밤 후방으로부터 달려온
영국 해병대 병력을
주력으로 해병과 육군 병력으로서
병력 850명과 트럭 150여량,
그리고 탱크 1개 중대를
증원 부대를 구성, 11월 29일 아침 6시 30분에
고토리를
출발시켰다.


이 구원 특임 부대 이름은 영국 해병 지휘관 드리스데일 중령의
이름을 따서 드리스데일 부대라 임시 명명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이 증원군 파견을 이미 예상하고
하갈우리와 고토리 중간의 좁은 산길 좌우 산악에 대 병력을
새까맣게 깔아 놓고 대기하고 있던 중이었다.


중공군은 산길에 들어선 이 부대 선두의 트럭 한대를 격파시켜서
길을 막아 놓고 토막 난 부대를 낮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파상 공격을 했다.

다음날 몇 량의 전차를 중심으로 해서 소수의 병력이
살아 남아
하갈우리로 사단본부로 들어갔으나 대부분의 부대는
이 지옥의 화염[Hellfire Valley]계곡 전투에서 섬멸되었다.


850명의 출발 인원 중 162명이 전사내지 실종되었고
절반이 넘는 450명이
포로가 되었다.


유담리의 해병 전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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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거꾸로 방향을 돌려 고토리로 철수하다가
공격당한 부대도 있었다.

1 해병사단의 1전차 대대 B 중대였다.
장비는 M-26 퍼싱 탱크였다.


이미 출발한 드레스데일 특임 부대가 당하고 있다는
정보를 접한 후방 고토리의
연대장 풀러 대령은 고토리
방어를 위해서 잔류했던
B중대의 2개 소대를 드레스데일
부대 구원을 위해 파견했다.


다른 앞 부대의 잔류 전차까지 합쳐서 12량의 퍼싱 전차와
이를 후속하는 20여량의 구난차, 유조차등등의 트럭들로
구성 된 긴급 구조 부대는 이미 석양이 지고 있는 오후
5시쯤 고토리를 출발했다.


하갈우리로 통하는 협궤 철도를 따라 철수하는 해병
-전방의 F4U 콜세어기가 투하하는 네이팜 공격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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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대에 중대장 윌리암 대위가 동행했었다.

이들이 8키로 쯤 가자 산산조각이 나서 길을 꽉 막고 있는
드레스데일
부대의 파괴 차량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


이런 상황에서 작전 임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중대장은
고토리로의 후퇴를 결심했다.

부대는 180도로 방향을 바꾸어 고토리로 향했다.

행군 방향이 거꾸로 되어 뒤에서 후속하던
트럭들이 이번에는 선두가 되었다.


중공군은 이 트럭들을 먼저 공격해서 역시
철수 부대의 후퇴
진행도 틀어막았다.
전차 부대는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되었다.


9병단장 송 시륜 -대장정때 연대장을
했던 노병이었다.

모택동의 긴급지시로 11월 16일 장진호 주변에 전개를 끝낸
그는 11월 2일 장진호 입구 수동에서 해병들에게
섬멸당한 휘하 124 사단의 복수를 하겠다고 무리한 작전을 벌여
수만명의 중공군을 동장군의 먹이로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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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들은 어둠이 오는 속에서 방어진을 치고
밤새 벌떼처럼 몰려와서 공격하는 중공군들과 격전을 치렀다.


전차병들은 전차 위에까지 쇄도하는 중공군들을 상대로
혈투를 벌였다.


중공군들이 사격 후 즉각 전차 포구에 사격을 하는
대전차 전술을
구사한 것은 전투 초기였던 초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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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방어진을 친 곳은 하우갈리와 흥남을
연결하는 협궤도
철도 옆이었다.

철도는 도로보다 약간 낮은 위치에 있었다.
중공군이 포탄 발사 후 포구에 마구 사격을 해대는 대전차
전술을 구사했던 것을 전투 참가자 전차장 댄 베닛 하사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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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 속에서 수많은 중공군이 철도 건너에 집결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철도와 우리 도로 사이에 농수로인 도랑이 있었다.이곳에도
중공군들이 잠복해있었다.


나는 포수 유진 멕과이어 병장에게 90mm 포신을 도로 아래로
지향하도록 내리고 철도변의 중공군에게 한방 먹이도록 했다.


그러나 캄캄한 어둠속에서 조준이 잘 안되어서 첫 발은
철도를
건너 건너편 산 사면을 후려쳤다.


나는 포수에게 조준을 더 낮추라고 지시했다.
조준 수정 후 두 번째 탄은 철로를 명중시켰다.

우리는 두 서 너 발을 계속 철로 옆에 흐르는 도랑에
숨은
중공군에게 날렸다.


계속 사격을 하며 전투 하고 있는 중에 믿을 수없는 일이 터졌다.
탄약수가 고폭탄 한 발을 약실에 장탄했는데 더 이상
들어가지도 않았고
다시 빼내려고 해도 빠지지를 않았다.

바로 어정쩡한 위치에서 포탄이 정지해버린 것이다.

탄약수 존 리렛 병장이 쩔쩔매자 베닛 하사가
폐쇄기 뒤에서 군화발로 포탄을 힘껏 내질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폐쇄기는 그대로 열린 채였다.



이런 포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베닛은
동료 전차의 승무원들을 구출해내는 전우애를
발휘해냈다.


중공군이 베닛의 앞 전차에 불을 지르자 전차장
스웨린거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탈춯해서 후방
수십 미터 뒤에 있던
베닛의 전차 밑으로 탈출했다.


전차 후미의 보병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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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중공군들은 전차를 맴돌며
치명타를 안길
기회를 노렸다.

탈출한 전차장 스웨린거가 베닛 전차 뒤에 장착된 보병 전화를 통해
구출을 요청하자 베닛은 전방 사수석 밑의 비상 탈출 해치를
열고 네 명의 차밑 은신 전차병들을
전차내로 구조해냈다.


장진호 전투에서 M-26전차뿐만 아니라 M4A3
전차도 많이 참전했었다. 하갈우리에서 진차창에
빠진 셔만 전차 구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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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비상탈출 해치를 다시 주워 올려
재부착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해치는 꼭 맨홀 뚜껑같이 생겼다.]


중공군 한명이 전차 위로 뛰어 올라와 탄약수 잠망
경을
권총으로 쏘고 전차 안에 사격을 가할 틈새를
찾았다.


중공군이 공축 기관총 바로 앞에 있었는데도 9명이
승차한
포탑 안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라서 이를 쏘지 못했다.


베닛의 전차는 급 발진과 급 정지의 과격한 기동으로
전차 위의 중공군을  떨어뜨려
위기에서 벗어났다.


전방 사수석 밑 비상 탈출구는 밤새 열려 있었다.

중공군들은 야간 전투 내내 베닛의 전차 밑이
해치가 없어
뻥 뚫려 있던 것을 몰랐었다.


만약 알았었다면 중공군의 수류탄 한발에 전차는
끝장이 났을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계속 되었으나 전차 부대가 잘 방어 해냈고
새벽이 되자 중공군은 썰물처럼 물러갔다.

[증원 부대가 박살났음에도 하갈우리의 해병들은
 적 공격을 잘 싸워서 유담리의 해병이 철수했던
 12월 3일까지 사수해냈다.]

베닛은 중공군이 불을 질렀던 전차를 견인해서
다시 고토리로 돌아왔다.


그 전차의 후부 엔진실과 배기구 근처에 중공군이 기름을 뿌리고
불을 붙였으나 엔진의 전기 계통만 화재로 손상 되었을 뿐
피해는
별로 크지 않았다.


고토리에서 도착했던 베닛 하사는 싣고 온 부상병을 내려놓고
전투 초기에 약실을 틀어막고 꼼짝도 안하던 의혹의 90mm 탄을
제거해서 조사해 보기로 했다.


포신을 아래로 내리고 승무원 다섯 명이 달라붙어
포 꽂일 대로 밀어봤지만 포탄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갈우리의 비상 활주로에서 긴급후송되는 부상병
스미스 소장이 건설한 비상 비행장은 해병들의
성공적인 탈출에 지대한 굥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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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른 전차 포 꽂일 대를 빌려다가 연장 연결하여
이십여 명의 전 소대원이 이 긴 포 꽂일 대를 밀어대자
그 제야 포탄이 겨우 폐쇄기 밖으로 빠져 나왔다.


이상했던 포탄을 검사해보자 탄체에 박힌 두어 발의
중공군
따발총 실탄이 발견되었다.

장진중의 포탄이 요지부동을 했단 것은 두 가지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중공군이 발사한 실탄이 박히자 그 용량만큼 탄체가
팽창하여 포강 표면에 과도 밀착해버렸을 가능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중공군 실탄이 탄두와 포강내 표면사이에
들어 밖혀 단단한 쇄기 역할을 했던 것이리라.


간이 덜컹해진 베닛이 더 살펴보자 포신 안에서
두 세 발의 중공군의
실탄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M-26 전차 증공군이 노힉한 로케트 포에 당한
관통 부위가 포탑에 보인다.
차체 앞에 장착한 것은 비상탈출 해치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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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들은 그 아슬아슬 했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간밤에 중공군들은 전차에 쇄도하여 전차 격파를
시도했었다.


어떤 중공군이 전차포 발사를 기다리고 있다가
포탄이 발사되자말자 낮게 내린 포구에 따발총을
들이대고 발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만약 베닛의 포수가 90mm 포탄 장전이 1초만 늦었어도
중공군이 난사한 따발 총탄이 열린 폐쇄기를 통과해서
포탑 안을 휘저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운이 더 나빴다면 폐쇄기 뒤의 탄약수는 명중되었을 것이고
포탑 안에 마구 난비하는 실탄이 전차장이나 포수에게
부상을 당했을 것이다.


정 떨어진 베닛을 그 손상된 포탄을 조심스럽게 가지고
나와서 고토리 옆을 흐르는
개천에 버렸다.


만약 따발총이 아닌 기관총의 예광탄이 포구 속에 발사되었더라면
90mm 포탄은 즉시 폭발해서 승무원들을 죽이고 적재 포탄의
유폭[誘爆]으로 전차는 대폭발을 했음이 틀림없다.



후에 베닛은 중공군 보병들이 전차에 육박 공격을 할 때
전차가 포탄을 발사 후 폐쇄기가 열려있는 짧은
순간에 포구에 실탄을 쏴 넣으면 포탑안의 전차병들을
살상시킬 수 있다는 대전차 공격 방법을 교육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베닛은 몇 십 년 뒤에도 진저리를 치며 회상했다.

“ 우리가 살아 남을 수있었던 이유는  우리 탄약수가
   조금 더 빨랐든가, 중공군이 조금 더
늦었던가 -- 아니면
   양쪽 다던가---
하여튼 우리는 운이 좋았습니다.“


빈약한 전투 자산에 막강한 미군 화력 앞에 내세울 것은
인명[人命]밖에 없었던 중공군이 머리를 쥐어짜서 만들어낸
고육지계[苦肉之計]가 이 지경까지도 갔던 것이다.


[나쁜 뜻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중 국군이
 얼른 배워서 거꾸로 중공군에게 써 먹은 기발한 전술도 있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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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들의 횡재 - 장진호 목재소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8.20 08:52

 


6·25전쟁중 변변치 못한 군용품들이었지만 공산군의 일부

군용품중 한국군과 UN 군 사이에 인기를 끌던 노획품들이

있었다. 


소제 TT 권총이 한국군뿐만 아니라 UN군 장병 사이에

제일 인기가 있었고 따발총도 인기 노획품이었다.


미군들도 중공군의 큼직한 야전삽을  즐겨 사용되었고

국군들 사이에 그들의 튼튼하게 만든 농구화도 인기가 있었다.

인천 상륙 성공직 후 맥아더의 축하를 받는 미 1 해병 사단의
스미스 소장 -  빈  권총집이 말해주듯 그는 속기사 자격증도
있는 온건한 학구파였다.그러나 인천과 장진호 전역에서
어느 맹장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의 용맹한 지휘를 했다.
----------------------------------------------------

그런 노획품 중에 대단히 특징 있는 것이 있었다.

미 해병들이 장진호반 아래 하갈우리에서 노획한 산판 제재소와

엄청난 양의 벌채된 통나무였다.

이 원목들은 장진호 일대의 원시림에서 벌채 된 것이었다.


다른 전투 상황이었다면 이 통나무들은 미 해병들과
별다른 관련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50년 겨울, 혹독한 추위가 몰려온 이 고원지대에서

미 해병들은 이 통나무들을 모두 제재소에서 가공해서
정말 요긴하게 잘 활용했다.


하갈우리
---------

어떻게 통나무들이 그렇게 잘 활용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자.


6·25전쟁에 8월부터 참전한 미 해병 제 1사단은 과달카날과

유황도에서 극악하게 저항하는 일본군들을 격멸하고 섬들을
점령하는
전공을 세운 미 최 정예 보병 사단이었다.


6·25전쟁 개전한달 만에 한국으로 파병되어 낙동강 전선의

위기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9월에는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 탈환의 영웅적 주인공이 된다.

이 사단은 서울 탈환 후 다시 동해안으로 이동하여

흥남을 거쳐 장진호로 향하게 된다.


해병 1사단은 배속된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이 구상한대로

한반도 북방을 동서로 가로질러 동쪽 평안북도에서 북상중인

미 1 기병사단과 상봉하는 작전을  개시했다.


한반도의 북쪽을 양단하는 작전이었던 만큼 잘만 되었으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참전을 결정한 중공군이 이미 10월 16일부터
압록강을
건너 서쪽 워커 장군의 8군과 동쪽의 아몬드
10군단 사이 80마일
공간을 파고 들어 잠복하고 있었고 그 뒤로도
추가 병력이 계속 후속해서 증파 되고 있었다.


즉 1 해병 사단은 둥지를 틀고 있던 적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작전을 수행하라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제대로 정보 수집과 판단도 하지 않고 대 전략을 구상했던

아몬드의 실수였다.


해병의 작전을 간파한 모택동이 움직였다.

그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송 시륜의 6병단에게 UN군의

한반도 북부 절단을 거부하는 대작전을 개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6병단은 동계 장구도 제대로 못 한 채 급히 한반도로 출동했다.

[이 결과로 수없는 동사자와 동상자가 생겨서 병단은 전투력을

 잃은 폐병단이 되어 다시 몇 개월간 다시 부대 편성을 해야했다.]


그러나 미 해병 1사단은 50년 11월 초 흥남에서 장진호로 향하는

길목인 수동에서 송시륜  휘하 중공군 124사단과 초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서부 전선의 군우리에서 미 육군이  중공군에게 대패했던 것과

대조가 되었다.

이것은 전체 중공군의 첫 한반도 참전 대패였다.

패전한 중공군 124사장 위치량
---------------------------


그러나 장진호반으로 들어갈수록 저돌적인 아몬드 장군과는

다르게
1 해병 사단장 스미스 장군은 전방에 대군의 중공군이

증강되어 대기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아몬드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전진속도를 최대한 지연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 해병의 5및 7의 두 개 연대가 산맥과
장진호반의 좁은 사이인
유담리로 들어갔고 배속된 육군 7사
31연대는  비슷한 지형의 호수 건너
풍구리로 들어갔다.


뒤에서 후속하던  미 11 해병  연대는 고토리를 통과 중이었다.

호수 제방 남쪽 하갈우리에 도착한 이 시점에 스미스 장군은

결과에서 입증된 정확한 결단을 했다.


유담리와 신흥리의 해병과 육군 연대에게 전진을 최소한
늦추고
근처 고지를 점령하게하고 넓은 하갈우리에 비행장을

만들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해병들은  하갈우리 근처 고지를 점령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여차하면 해병 사단이 모두 철수해야할 비상상황에
만반의 대비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몬드의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전방에 정찰을 계속

실시하며 상황의 눈치를 보았다.

적정은 날로 우려스러워졌다.


날씨는 엄청나게 추워져서 땅이 돌처럼 굳어졌다.

활주로를 밀고 있던 불도저의 날이 상해서 예비 날을 용접하여

사용하여야 했다.


하갈우리에는 함흥으로 이어지는 좁은 협궤  철도가
들어와 있다.


이것은 일제가 장진호 부근의 울창한 산림을 벌채해서

운반해내던 철도였다.


용의주도한 준비에는 하갈우리에 많은 시설 건설이

필요하였다.건축 자재도 필요했다.


이 모든 자재를 흥남에서 좁은 길로 운반해 오려면

수송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더구나 이 길은 중공군에 의해서 차단되고 오직 급히 건설한
비상 비행장만이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비행기로 목재를 운반하는 것은 낭비적인

짓이었다.


이 순간에 해병들이 철도의 옆에서 발견한 제재소와

산더미 같은 통나무 원목은 해병대의 행운이었다.


해병 건설 공병들은 대원을 파견해서 제재소를

다시 가동하고 통나무를 제재하기 시작했다.

그 산더미 같은 원목을 다 제재해서 가공하기에 며칠이 걸렸다.


한편 뱀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 토막 낼 포위망을 형성한

중공군 제 9 병단 6만 명의 지휘관 송 시륜은 드디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초전의 수동 전투 패배에서  체면을 깎이고
악에 바쳐 있었다.


6병단장 송 시륜
-------------------


11월 27일 중공군의 주력[6만명의 병력중 5만 병력]은 유담리에

들어간 최선두의 미 해병
두 개 연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고지를 선점했던 해병들은 잘 싸워서 이들의
공격을 무산시키고 큰 피해를 주어서 격퇴하였다.

그러나 출현한 중공군의 대규모 병력에 놀란 해병은
시급한 철수를 결정했다.

유담리의 공세에서 실패한 송 시륜은  비로서 상황을 파악하고
공격 방향을 돌려 호수 건너 신흥리의  육군 7사단 31연대와
하갈우리의 해병사단 본부도 공격했다. 


육군 31사는 고전했지만 하갈우리의 해병들은 중공군을
격퇴해냈다.


유담리 구호소의 해병 부상자들 -상당수가 동상환자였댜.
--------------------------------------------------------


안달이 난 송시륜은 한국 참전 최초의 인해전술까지

써가며 맹공격했으나 
하갈우리를 점령할 수는 없었다.

최초에 하갈우리의 병력과 전투력을 얕보고 소수의
병력으로 공격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장진호 산길에 길게 배치된  해병들의 부대에서

사단 본부가 위치한 하갈우리가 전략적으로 제일 중요했었고

또 제일 허술하게 방어되고 있었는데 송 시륜은 큰 작전 실수를

했다고 하겠다.

이곳을 집중해서 쳤다면 해병의 사단본부는 섬멸되고

외부와의 유일한 통로인 비상 비행장을 잃고 사단은
3분되어 그 운명을 짐작하기가 곤란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집을 세우던 아몬드는 상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해병들에게

이미 총 퇴각 명령을 내려 놨던 터였다.


철수하는 해병대가 전방의 항공 폭격을 지켜보고 있다.
하갈우리로 통하는 협궤 철도가 바로 아래에 보인다.
-------------------------------------------------


전방 유담리의 2개 해병 연대가 무사히 철수해서 하갈우리로

돌아오게 되면 혹독한 추위 속에 이들을 단 며칠이라도 따뜻하게

수용할 숙소가 필요하다.
그들은 전투와 추위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엄청난 수의 텐트를 건립해야 했다.


하갈우리 여기저기 안전한 곳에 텐트촌에 건설되었다.

이 텐트 촌  건설에도 목재가 필요했다.

미군의 크고 작은 텐트들은 지주목(支柱木)이 필요했고
그 양은 막대했다.

북한이 해병들에게 선사하고 떠난 통나무 원목은 대부분
지주목으로
가공되었다.


한국전중 미군 텐트 촌 - 군용 텐트는 여러형이 있었으나
모두 지주목이 있어야했다.
----------------------------------------


12월 3일 결국 유담리 쪽의 해병 2개 연대는 적의 봉쇄를 깨고

무사히
장진호 동쪽 하갈우리 사단  본부로 철수할 수가 있었다.


호수 오른쪽 신흥리로 전진했던 육군 7사단 31연대는 산산조각이

나서 연대장과 연대장 대리가 전사하고 연대기를 빼앗기는

대패를 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병력이 호수 얼음을 통해 탈출해

왔다.



유담리의 해병들
---------------


유담리의 해병들은 덕동고개를 넘어 하갈우리로 진군해

들어올 때 해병대 찬가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이들은 12,000명이었다.


전방의 병력이 합류한 하갈우리 사단본부의 병력은
20,000명이 가까웠다.
텐트촌의 크기도 엄청나게 컸다.

하갈우리에서 발견한 제재소와 통나무들이 이 엄혹한

시기에 나타나 준 것은 해병들의 큰 행운이라 하겠다.

2차 세계 대전 때의 모로코 전선의 미군  천막촌
---------------------------------------


전투와 추위에 지친 해병들은 북한 정권의 선물로 세운

따뜻한 텐트 안에서 뜨거운 식사와 휴식을 즐겼다.


환자들은 역시 긴급 치료를 받고 비상 비행장을

왕래하는 수송기를 타고 일본으로 후송되었다.


미 해병들의 천막은 다양해서 이런 원추 모양의 중소형 천막도
다량 설치되었었다.
-------------------------------------------------------


그처럼 격렬한 전투를 겪었지만 하갈우리의 해병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주변 산악의 중공군들에게 겹겹이 포위당한

그들이지만 부대에 믿기 힘든 루머가 떠돌았다.


루머는 해병들이 하갈우리에서 두어 달 시간을 보내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트루만이 핵무기로 한국 참전

중공군들을 쓸어버리고 다시 국경 쪽으로 진격해서

한반도 통일을 이룩한다는 루머였다.


겹겹이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그만큼 해병들의 자신감과

사기가 높았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루머는 함흥평야로 철수할 때까지도 끈질기게 떠돌다가

흥남 철수가 결정된 것을 알게 된 뒤에야 사라졌다.


해병들은 중상자들을 후송시키고 휴식과 정비를 한 다음

적 차단을 뚫고 고토리로 철수했다.

고토리의 해병11연대와 합류해서 사단 일체가 된 해병들은

이제 겁날 것이 없었다.


중공군은 계속 평북 군우리나 운산 같은 골짜기 기습을 노렸지만

해병들은 모두 극복하고 마지막 관문인 황초령[장진호 입구]의

차단한 중공군도 격멸해 버리고 죽음의 함정을 탈출해 나갔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해병들이 고토리 좁은 산길로 철수하고 있다.
---------------------------------------------------------


내키지 않아하는 해병들을 대군의 적병들이 잠복한 위험한

산길로 몰아넣었던 10군단장 아몬드는 해병들이 엄청난 병력에게

포위 된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장비를 모두 버리고 신속히

해안으로 탈출하라고 지시했었다.


사단장 스미스 장군은 이를 거부하고 중공군의 거센 공세를

맞받아치면서 모든 장비는 물론 전사자의 사체까지 모두

운구해 가지고 철수했다.


하갈우리에서 제재한 텐트 지주목도 모두 가지고 나와

흥남에서 다시 텐트촌을 만들고 승선을 대기할 때 다시 요긴하게

썼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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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his be 2010.08.22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병특수수색대출신의50대입니다. 감동적으로 글 잘 읽었습니다. 한번해병은 영원한해병

  2. 시라소닉 2010.08.25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과 목재와는 거리가 멀거라 생각했는데 엄청 요긴하게 쓰였네요...
    글과 함께 실린 사진 덕분에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3. Amoled 2010.09.17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울프독 님은 퍼싱이라는 분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블로그에서 엄청나게 비난하고 싸우시던데. 연유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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