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11.01 95. 휴전반대로 얻고자 한 것 (105)
  2. 2010.09.14 세계가 감탄한 터키 포로들의 정신력. (14)
  3. 2010.09.02 그녀의 이름으로 불려진 고지 (9)

95. 휴전반대로 얻고자 한 것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1 08:29

  1952년 12월 13일, 국제적십자사가 전쟁 종결과 상해포로의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하였을 만큼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열망은 커져 갔고  더불어 환경변화가 이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해 말에 있었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공화당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가 당선되었는데, 그는 공약이행 의지를 보이고자 취임 전인 1952년 12월 2일~5일, 한국을 전격적으로 방문함과 동시에 소련과의 물밑대화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아이젠하워는 전쟁 종결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당선자 신분으로 방한 당시 국군 수도사단을 방문한 모습)


  그리고 1953년 3월 5일, 스탈린(Joseph V. Stalin)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소련의 정권도 교체되는 공산권측의 격변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정권을 인수한 말렌코프(Georigi M. Malenkov) 주도의 소련 신정부는 3월 19일, 북한과 중국에 전문을 보내 전쟁 중지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이 1953년 2월 22일 부상포로의 우선 교환을 제의하였을 때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던 공산군 측은 이처럼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자 3월 28일 김일성과 펑떠화이 공동명의로 부상포로를 교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통보하면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4월 20일~5월 3일까지 판문점을 통해 부상포로들의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때 유엔군은 6,670명을 공산군측에 인계하고, 684명을 송환 받았습니다.


  유엔군측의 일관되고 강력한 자유송환원칙 주장에 공산군측도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6월 4일,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인도 등 5개국으로 구성된‘송환거부포로 관리위원회’가 송환을 원치 않는 포로들의 심사와 기타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면서 휴전회담의 최대 난제였던 포로송환의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휴전은 눈앞에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한국정부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는데, 그 이유는 포로송환협상 안이 송환을 원하지 않는 포로들의 즉각 석방을 주장한 한국정부의 의견이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한국은 휴전회담 대표를 소환시키고 휴전회담 불참을 선언하였습니다.


[석방된 반공포로의 모습]


  비록 이승만 대통령은 일관되게 분단을 고착화 시킬 수 있는 휴전을 반대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었지만 포로 송환문제가 타결되자 휴전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포로송환 협정 조인 이틀 전인 6월 6일, 헌병총사령관 원용덕 중장을 청와대로 불러, 반공포로를 석방을 지시하였습니다. 밀명에 따라 작전을 입안한 원용덕은 6월 18일 24시, 미군들을 따돌리고 광주, 마산, 부산, 영천, 논산 등의 각 지구 수용소를 경비하던 육군 헌병대로 하여금 수용된 반공포로 석방 작전을 펼치도록 조치하여 성공시켰습니다.


  수용소 주변에서 사전에 통지를 받았던 국민들과 행정기관들은 탈출한 포로들을 보호하여 미군 당국의 검거와 재수용이 실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 석방된 반공포로는 수용된 35,698명중 27,000여명이었는데 19일 06시에는 중앙방송을 통하여‘반공포로의 석방에 관한 담화문’을 발표하여 공식화하였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에 미국은 경악하였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한국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즉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클라크 유엔군사령관도 성명을 통하여 유감을 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격한 반응을 보인 곳은 공산군측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정되어 있던 휴전회담 실무협상 등 모든 회의를 취소하였으며, 6월 20일 본 회담에서 김일성과 펑떠화이 명의의 서한으로 비난하였을 만큼 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회담이 결렬되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만은 원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휴전협상을 거의 마무리할 단계에 이르고 있을 때 한국정부가 휴전을 격렬히 반대하고 나서자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지만 전쟁 당사자인 한국정부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휴전을 하기도 곤란하였습니다.


  한국정부의 반응이 워낙 완고하자 미국정부는 대통령 특사로 미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을 한국에 파견하여 다음과 같은 조건을 한국 측에 제시하여 묵시적인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은 ① 휴전 성립 후‘상호방위조약’체결, ② 장기간의 경제원조 제공, ③ 20개 사단으로 한국군을 20개 증편 등을 약속하였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우리의 안보를 지켜 준 커다란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정부는 휴전 자체보다 그 이후를 염려하였습니다.]

( 휴전반대 집회 모습 )


  사실 이승만대통령이나 한국 정부도 휴전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정부가 걱정하였던 것은 휴전 이후의 문제였습니다. 어떠한 후속 안전보장 조치 없이 분단만 계속 이어진 상태로 단지 총을 쏘지 않는 것만으로 대한민국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이 확고한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휴전반대를 적극 이용하였던 측면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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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ünstiger kredit 2013.05.15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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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sbobet 2013.09.30 2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과 북한이 더 이상 재결합하지 왜 궁금 해서요

세계가 감탄한 터키 포로들의 정신력.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9.14 08:04

       

지난 4월, 6·25특집 TV 프로에서 터키 참전 용사인 슐레이만
비르빌레이라는 분이 60년 만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자신이
한국 근무시 딸처럼 살피던
한국인 여자 고아를 찾는 사연이
보도되었었다.


술레이만 씨와 어린 아일라 [지금의 김은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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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혈전장 평북 군우리 근처에서 부모를 잃고 떠도는
이 어린아이를 구한 25 세의 술레이만은 아이에게 아일라 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한국 파병 기간동안 친 딸처럼 길렀다.


1952년 한국 파견 기한이 다 된 술레이만은 아일라를 터키로
데려 가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모색해 봐도 잘 되지가 않자
할 수없이 아일라를
터키군이 수원에 세운 고아원
‘앙카라 학원’에 맡기고 떠났었다.


술레이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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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화 속에 엮어진 휴머니즘의 이야기는 술레이만이
어쩔 수없이
귀국하여야하는 시점에서 영원히 헤어지는 것으로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부녀 이상의 정이 든 두 사람은 그 긴 세월을 서로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를 앙카라로 방문했던 방송국의 협력으로 아일라라고 불리던

한국 고아를 찾을 수가 있었다.
이미 손자들을 둔 아일라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할머니가 된 아일라 김 은자 씨가 북받치는 울음 속에
슐레이만 씨와 부등켜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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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방문한 술레이만 부부는 방송국의 주선으로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서
60년 만에 옛 아일라였던 김 은자씨와
눈물의 재회를 했다.

그 장면은 나에게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 상봉을 계기로 참전 터키군의 활동을 테마로 글을
써보려고 했으나
기회가 잘 되지 않았다.
오늘 그 기회를 가져본다.


터키 군은 6·25전쟁에 5,000명 규모의 여단을 파병해서
한국 방어의 일선에서 싸웠다.


터키군들은  군우리, 금량장, 퇴계원 등의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전사를 뒤져 보면 6·25전쟁 참전 터키군은 특히 백병전에
강한 것으로
명성을 날렸었다.


한국 참전 터키 여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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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어키 군은 돌격 선에서 총검을 번득이며 적진으로 돌격해서

온전한 생존자는 물론이고 부상자 한 명 없이 섬멸해버리는
가공할 육박전 능력을 발휘했었다.


그러나 터키 군이 세계에 그 용맹함과 함께 이름을
드높게 날린 것은
포로 생활이라는 극한 상활에서
발휘한 강철 같은
군기와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한국 파병 터키 군은 1950년 10월 유엔군이 한창
북상할 때
한국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타이밍이 안 좋았다.


1950년 10월 부산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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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북쪽으로 이동해서 미군 25사 예하 부대로서

전선에
배치되었던 터어키 군은 11월 26일부터 12월 6일까지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연달아 격렬한 전투를 했다.


터어키 군 -참전국중 제일 많은 병사들이 콧수염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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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한국 전투에서 터키 군은  와원, 신림리,
군우리 협곡,
그리고 선천등에서 연달아 벌어진 네 번의 전투에서 
잘 싸웠지만
218명이 전사하고 100여 명이 포로가 되는
큰 타격을 입었다
[매복을 당한 군우리에서의 피해가 제일 컸다,
 보유장비의 70%를 손실했다.]


터어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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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말 초전 기습에 재미를 보아 다수의 포로를 획득했던
중공군의 이들 유엔군 포로 취급은 교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지금도 군사 심리전에서 연구되고 있는 차원 높은 특유의
세뇌 기술이
적용되었다.
대륙에서 일본군과 장 개석군들 포로를 취급하면서
축적한 중공군의 노우 하우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중공군의 미군 포로들과 터어키 영국군등의 포로들은 1950년울
지나 1951년도 중반까지도 그들의 수용소가 있었던
‘지옥의 골짜기’에서 엄청난 고초를 치렀다.

포로들은 추위로 지옥 같은 고통을 받았고 환자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 나갔다.
식량이라고는 귀리나 옥수수 따위 곡물을
자루 채 던져주고 먹으라고 했으나 양이 형편없이 부족했다
굶고 병든 포로들을 중공군들이 중국에서가져 온 장 티프스가
파도처럼 덮쳐서 한 수용소의 미군 포로들이 절반이나
사망하기도 했다.

포로들에게 부식 조달이 좋아진 것은 1951년 여름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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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이 고착된 1951년 여름부터 보급도 좋아지고
병원 서비스도
개선되기 시작했다.
중공군은 물질적인 상황을 개선하고 나서부터 중공군은
포로들을 ‘인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비인간적인 고문이나 지나친 강제 노동도 없었고 심지어
중공군이
운영했었던 압록강가 벽동 포로 수용소는
보초병은커녕 울타리도 없었다.


압록강변 벽동 포로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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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인도적인 처우 뒤에는 중공군이 노리는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포로들은 하루 여섯 시간 씩 영어를 잘하는 강사로부터
정치 강의를 들으며
미국 사회 구조의 차별성과 자본주의
비인간성을 강의 받으며 모국을 미워하는 심리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 세계 최대 빈국이었던 중국은 인간미 넘치는 이상사회라는
거짓된 이미지가 세뇌되었다.


지루하고 따분한 공산주의 선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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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서 중공군은 미군 포로 사회에 끊임없는 동요를 일으켰다.

중공군의 교묘한 갈등을 부채질 하는 음모는 포로와 포로들
사이에서도 공작
되었다.
포로들의 조직 통제 기능을 무력화 시키는 조처로서 장교들의
특권을 모두 무시하는 관리 지침이 하달되었다.

“여기는 계급이 없는 사회다. 너희들은 모두가 평등하다! ”
이 조처에 철없는 미군 사병들은 당장 반응을 보이며 환호했다.

그들은 그 때까지 상관으로 모셨던 장교들의 등을 툭 치며
야유를 보냈다.
“어이-! 잭!”
선임하사님이나 소대장님 그리고 중대장님의 호칭은
땅 속으로
버려져야 했다.
간부들에게는 은연중 굴욕적인 천하고 더러운 일을 시켜
사병들에게 경멸 당하게 만들었다.
포로들 자치 회장 격에는 자기 계급을 상사라고 거짓말한
질 안 좋은 일등병이 명색 '선거’로 임명되었다.
계급의 무시는 조직의 통제 내지 관리를 마비시켰다.
사회적 규범이나 개인적 염치를 챙기기 힘든 극한적인
포로생활에서
각 인간들은 묶는 끈이 다 끊어지다 보니
미군 포로들 집단들은
완전히 콩가루 집안이 되었다.
서로 의심하고 반목하며 갈등하는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중공군은 이를 바라보며 내심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최강국의 포로들이 자기들이 손을 좀 쓰니 콩가루가 되었고
콩가루들은 자기들의 밥이었다.

중공군의 단수 높은 포로 관리에 미군들은 중공군의 의도대로
심리적으로 각개 격파가 되었다.
물론 풀려날 때까지 꿋꿋이 버틴 미군들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포로들과는 갈등하면서도 중공군들에게는
협조하는
병사들은 훨씬 더 많았다.
몇몇 미국인들은 자신의 동포에 대하여 법죄적인 행위를,
그리고
매우 소수는 반역죄를 저질렀다.



벽동 포로 수용소의 터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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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의 포로 관리의 노회함은 결국 전쟁이 끝나고 21명의
세뇌된
미군들이 조국인 미국으로 가기를 거부하고
당시 세계 최저
빈국(貧國)의 하나인 중국행을 택하게 만들었다.

미군으로 보면 반역자가 양산된 것이다.
전쟁 후 미국 관련 당국에서 중공군에게 휘둘려 포로들이
콩가루 집안이 되어 질시하고 반목하였던 이 포로들의
행태가 논란이 되었었다.

더구나 포로 신세가 되고 보급이 형편없는 식사와
전염병으로 다수의
미군들이 힘없이 사망했던 사건도
문제로 다루어 졌다.

최악의 상황에서 군인이 발휘해야 하는 강인성이
결핍된 사실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옥수수나 콩 또는 귀리나 조 따위만 배급되었으니
어떻게든 이 알량한 음식이라도 악착같이 먹어서 체력을
조정해야 하는데
미군들 중에 이런 가축에게나 먹이는
사료를 먹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삶은 물만 마시는
철부지도 많았었다.
이렇게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허약해져
죽는 병사들이 많았었다.


벽동 포로 수용소의 터키군 포로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으면 들의 풀을 뜯어 먹는 강한
생존력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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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군의 개탄스런 포로생활의 진상을 조사하던 미군당국은

포로 생활에서 송환 된 미군들로부터 같은 수용소에서 생활을 했던
터어키 군 포로들이 어떻게 이 고된 생활을 극복해냈는지를 듣고
경탄했다. 미군의 경탄은 바로 언론을 통하여 세계로 퍼져 나갔다.


포로 수용소의 터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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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6·25전쟁의 고전 작품이 된

‘This kind of War.'의 저자 T.R,페렌바크는 죽음의
계곡 수용소와 벽동 포로 수용소에서
생활을 했던
슐리히터 상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쓰고 있다.

“ 여러 가지 사실 가운데 한 가지 뚜렷한 사실은 미국인
포로중에
50 퍼센트가 죽고 영국군 포로의 사망률이
영국 정부에 중대한
관심사가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인 포로는 별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터어키 포로들은
단 한사람도 죽지 않았다.“


터키 군들은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초지일관
터키 군인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비록 포로의 몸이 되었지만 터키 군인들은 전투중의
명령체계를
단단히 고수했었다.


미군처럼 중공군에게 아부하던 병사가 선거로 자치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포로 중 가장 계급이 높은 터키 장교가 당연히
포로들의 지휘를 맡았다.
포로가 되었지만 장교는 장교였고 부사관은 부사관이었고
사병은 사병이었다.
명령은 명령이고 복종은 복종이었다.


페렌바크는 계속 써내려갔다.
터키군의 대장은 매일의 근무표를 작성했다.
따라서 누가 나무를 하고 물을 길며 병자를 간호하는가를
대해
조금도 분쟁이 없었다.
그러나 미군의 부사관이나 군의관, 그리고 군목은
병자를 간호하고
혼수상태에 빠진 자의 옷을 빨아 주며
불을 때는데 쓸 나무를
하도록 사병들에게
사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간부들이 사정을 하면 사병들은 “제길할 ----너는 뭔데?”
하고 빈정댔다.

벽동 포로들은 대부분 온돌을 사용하는 민가에 수용되었기
때문에 대량의 장작을 만드는 것이 이들의 큰 업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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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포로들의 최고 책임자가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중공군
관리병들에게 반항했다는 죄로 붙잡혀 갈아 치워져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 3, 제 4의 선임자 또는 그 아래의 책임자가 줄줄히 터키군
지휘를 맡아도 그들이 하는 터어키 포로들을 통솔하는 방법이나
형식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터키 포로가 지나치게 중공군과 친하게 지내면
군법회의가
열리고 슐리히터는 방청하도록 초청되었다.


선임하사가 심판관으로 앉고 법정은 열렸으며
논고와 증언이 속행되었다.


그 터어키 사병이 적과 내통하고 있다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는
개같이 두들겨 맞았다.

그의 변호인도 그런 반역자를 감히 변호했다고 해서 얻어맞았다.

슐리히터가 물었다.

“그런 짓을 두 번하면 어떻게 하는가?”
질문에 터키군 간부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 때는 죽여 버린다.“


중공군은 세뇌시키려 든 대상에 물론 터키 포로들도 있었다.

그러나 매일 6시간씩 포로들을 화장실도 못 가게하고 실시하던
정치 교육
이나 숱한 공산주의 선전물이나 영화 상연의 홍수에도
이들 중에 마음이 변심하여 조국 터어키을 버리고 중공으로
간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미군들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어 놨던 중공군의
인간적인 대우에도 터키 군들은 그 뒤에 숨어있는 흉계를
경계하며
마음가짐을 단단히 가졌다.


지루한 정치 교육후 형식적인 자체 분임 토의 시간.
영어를 모르는 터어키 군과는 관계없는 시간이었다.
터어키 포로는 이런 시간에는 몰래 코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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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농촌 출신이 다수였던 터키 포로였지만

터어키 인들이 제일 증오하는 원수인 소련의 이데오르기가
공산주의였으니 그들이 본능적으로 거부했던 것은 당연했다.


터어키 포로들이 중공군이 떠벌리는 공산주의 세뇌교육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은 그런 헛 눈길은 자기의 사망 선고문에
스스로
도장을 찍는 행위였었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중공군이 뭐라 하루 종일 떠들어도 그들에게는 오직
알라
신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페렌바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학자나 군인이나 의사들은 오랫동안 미국인들이 
 왜 공산군의
포로 수용소에서 그렇게 많이 죽었는가, 
 왜 어떤 자는 죽고
어떤 자는 살아남았는가? 캐물을 것이다.

 그 답은 명쾌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것은 계산기로 튕길 수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에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


그는 터키 군 포로들의 행태가 답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터키 군
--------


6·25전전쟁중에 1만 5천여 명의 터어키 군이 참전해서 2,000여 명이

부상하고 168명이 실종했으며 721여 명이 전사했다.
그 중 462명이 그들이 목숨을 던져 지켜 낸 한국 남쪽
부산 재한 유엔 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다.

터키 여단은 전쟁이 끝나고 1960년까지 한국에 주둔했었다.


462명의 터키 전사자가 잠든 재한 유엔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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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이 앞에서 소개했던 술래이만 씨와 아일라와의

재상봉 장면에 어떤 한국 방문 UN군 장병들의 휴만 드라마보다도
한층 더 진한 감동을 받았던 것에는 그 배경이 있었다고
하겠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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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ogunking 2010.09.14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괜히 터키가 세계 최강 제국 오스만 투르크가 된 것이 아니었군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2. 武運長久 2010.09.14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한 정신력과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적의 선전과 회유에 굴하지 않은 터키군은 진정한 이슬람 전사들입니다...

    그래도 포로수용소와 그곳에서 벌어진 공산주의의 선전이라는게 정말 무서운것 같습니다...

    사병, 부사관, 장교 모두 갈라지게 만드는 중공군의 흉계...

    중공군의 포로대우가 북한군보다는 덜 가혹했다고 들었는데 그 부드러움 이면에 저런 무서운 내면이 있을줄은...

    명령을 받고 수행하고 따르기만하는 사병들의 심리와 스트레스를 이용해서 군기와 질서를 무너뜨리면...

  3. 武運長久 2010.09.14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진의 터키군 사진에 오른쪽 병사가 쓰고있는 모자는 소련군 전차병 모자 닮았네요...

  4. 웊프 독 2010.09.14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북진중에 노획한 것을 장난스럽게 쓰고 있는것 같습니다.

  5. chaffee2080 2010.09.14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어키는 당시 소련과 긴장관계에 있었고, 소련의 침공을 걱정하던 상황에서 참전했으므로 군인들의 반공의지가 상당히 높았습니다. 특히 배신자가 될 경우 본국의 가족들이 엄청난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점을 주지하여서 이탈을 방지하였다고 합니다. 미군의 경우는 일단 숫자가 많아서 스스로 통제도 힘들었을 뿐더러, 고난을 겪어보지 않은 장병들인지라 비교적 힘든 고난을 당하면 의지가 쉽사리 무너졌다고 하죠.

  6. 열심히 달리기 2010.09.17 17: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에 가보면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친절하게 대해주더군요.
    형제의 나라라고 이름을 붙일 만하게.

    오스만 투르크의 용맹한 전사들의 모습을 여기서 잘 보고 갑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육박전을 펼치면 부상병도 없게 상대편을 쓸어버린다는 이야기요.
    예니체리 군단의 후예들 답습니다. ㅎㄷㄷ

  7. 비도승우 2010.09.22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돌궐의 후예들이 당나라의 후예들에게 이겼군요 !!

  8. 황태 2010.10.05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군의 육박전 이야기는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적이 있습니다.
    영어가 잘 안되니 영어로 하는 세뇌교육되 무용지물일거고
    제일 중요한건 조직이 와해되지 않았다는것이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9. clothing factory 2011.05.25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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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으로 불려진 고지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9.02 09:15

  2000년대 들어서 외국의 유명 연예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닙니다.  이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돈 때문인데, 그만큼 우리나라가 문화 예술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시장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그리 의미 있는 시장이 아니었고 한국을 찾는 외국 유명 연예인들도 대부분 전성기를 지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근 내한 한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 (사진-스타뉴스)]


  그런데 의외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최근 못지않게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휴전이후에도 첨예한 대치가 이뤄지던 지난 1950년대가 바로 그랬는데, 당대의 초특급 스타들이 줄지어 내한하였습니다.  그때 한국을 찾은 유명연예인들을 살펴보면 밥 호프(Bob Hope), 마릴린 맥스웰(Marilyn Maxwell), 미키 루니(Mickey Rooney),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등 이루 거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1950년 10월 최전선인 원산에서 위문공연을 펼친 밥 호프]


  당시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여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만한 시장이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평생 이름도 들어 본적이 없던 한국을 찾아왔던 이유는 주한미군을 위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54년 초에 방한한 먼로는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미군 당국의 요청이 있자 망설이지 않고 한국으로 곧바로 건너와 병사들을 위해 한 겨울에 얇은 무대복을 입고 공연하였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습니다.


[신혼여행 도중 방한하여 공연 중인 마릴린 먼로 ]


  대부분 그들은 금전적인 대가도 없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경우여서 최전선의 불편한 시설을 결코 탓하지 않았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그들은 오히려 이것을 당연한 의무로까지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당시 우리나라의 연예인들도 위험한 최전선으로 병사들을 찾아가 사지에서 고생하는 국군을 위문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병사를 위문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을 찾아왔던 할리우드 스타들 중에는 1957년 방한 한 제인 러셀(Jane Russell)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1953년 빅히트를 기록한 영화인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 에서 먼로와 주연으로 함께 나온 또 한명의 유명 섹시스타였습니다.  방한한 그녀는 경무대를 방문하여 이승만대통령을 예방하고 전방부대를 찾아가 위문공연도 펼쳤습니다.


[1957년 방한 한 제인 러셀의 모습]


  그런데 러셀이 잘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본의 아니게 그녀는 한국전쟁과 상당히 관련이 많습니다.  흔히 철의 삼각지대라 불린 중동부 전선의 요충지 금화에 있는 쌍둥이 고지를 미군들은 제인러셀고지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제인러셀고지는 피로 흘러넘친 격전지였던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저격능선 부근에 있던 무명고지였는데, 이곳의 이름이 제인러셀로 불리게 된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작전지도에 표기 된 제인러셀고지]


  툭 튀어 오른 쌍둥이 봉우리가 마치 러셀의 풍만한 가슴을 닮았다고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이었습니다.  러셀의 가슴은 할리우드 여배우 중 최고라고 여겨질 만큼 유명하였는데 삭막한 전쟁터에서, 그것도 병사들이 수 없이 죽어가며 빼앗고 지켜야할 고지의 이름을 만인의 여인이었던 그녀의 가슴을 상상하며 지었다는 것은 상당한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지옥의 전쟁터에서 잠시나마 낭만을 찾으려 하였던 것 같아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에 출연 중인 러셀과 먼로]


  1951년 휴전회담이 개시된 이후 한국전쟁의 양상은 양측 모두 이기려 하지도 그렇다고 지려 하지도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였고 그 결과 고지전이 가열되었습니다.  만일 전선을 돌파하여 전선을 밀어붙일 생각을 하였다면 그냥 지나쳐도 될 수많은 무명의 고지들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총과 폭탄에 의해 사라져갔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던 깊숙한 곳에 있던 이름 모를 수많은 고지는 현실에 등장한 지옥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병사들은 잠시간 낭만을 찾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 그들은 잠시 동안 전쟁을 잊고 싶었는지 전쟁과 관련 없는 많은 이름들을 전선의 무명고지 위에 남겼습니다.  화채그릇을 빗댄 펀치볼(Punch Bowl)전투, 먹음직스런 돼지갈비를 연상시키는 폭챂힐전투(Porkchop Hill)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고 제인러셀 또한 본의 아니게 선택된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의 희망과 달리 제인러셀 고지위의 전투는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었습니다.  단지 이름만으로 바뀔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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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글로그 2010.09.02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펀치볼 지역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화채그릇을 빗댔다는 말을 들으니 상당히 공감이 가네요. 실제로 보면 움푹 파여 있기는 했었던... 그 움푹 파인 곳에는 탱크도 못올라온다고... 저희 부대는 81미리 박격포가 도수운반이 안돼 들고 다녔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건너편에 북한군은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우리는 산 뒤에 초소를 짓고 있었고...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산 높은 곳에 있어 볼수 있었던 맑은 하늘, 은하수, 등이네요. 잘읽었습니다.

  2. biomass pellets 2011.09.15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지금의 한국이 존재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요론? 글들 많이 올려주심 참 좋을 것 같네요^^ 좋은 공부가 되네요^^

  3. home insurance organizations 2012.05.25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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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home owners insurance quotations 2012.05.25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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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national insurance 2012.05.25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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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ssangyong 2012.10.26 0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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