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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2 100. 끝나지 않은 전쟁 (117)
  2. 2010.11.05 97. 멈추어진 전쟁 (140)
  3. 2010.07.27 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4)

100. 끝나지 않은 전쟁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12 08:17


  그 거대했던 규모에 걸맞게 6·25전쟁의 성격은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해석됩니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집단안보 수호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있는가하면 “한반도 내에서 해방이후 지속되어온 이념적 갈등의 연장이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또한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6·25전쟁은 원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 내부적 요인과 국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발생한 국제전적 내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전쟁 개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할 대상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쟁의 종결이나 휴전은 상당히 힘든 과정이지만 개시는 순간의 선택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남침할 수밖에 없게끔 당시의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일부 수정주의시각이 회자될 정도로 6·25전쟁과 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북한의 남침에 의해 전쟁이 개시되었다는 점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결국은 전쟁은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자가 일으키는 것이므로 전쟁을 시작하였던 북한과 이를 비호하였던 소련 그리고 직접 참전하여 비극을 만들어낸 중국의 책임은 역사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또한 3년 1개월 2일간의 짧지 않은 전쟁을 결과 면에서 본다면‘국내적으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란’이었다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하나의 도움도 되지 않고 오로지 피해만 안겨준 참사였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수많은 피와 재물을 받쳐가며 조금이라도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막판에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외치던 당시 한국정부의 입장이 명분상으로 맞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만큼 감내하기 어려운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면 적어도 통일을 이루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까지는 달성하여야 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맞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얻은 것은 없고 오로지 잃은 것 뿐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희생당한 반대급부로 불안정했던 세계질서가 6·25전쟁을 통해 공고한 냉전체제를 구축하면서 역설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은 제2차 대전 후 들불처럼 세계 각지에서 타올라갔던 공산주의의 팽창을 꺾어 버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과 달리 북한의 제 1후견인인 소련이 직접 개입을 꺼렸던 데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했지만 무려 2,000만 명이 희생당하고 유럽 러시아일대가 초토화되는 끔직한 악몽을 겪었고 아직 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최대한 회피하려 들었습니다. 따라서 6·25전쟁이후 보다 확고하게 대립하며 벌어진 냉전기간 동안 비록 첨예한 체제경쟁을 수반하였고 핵의 위협에 세계는 숨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바로 직전에 있었던 제2차 대전 같은 초유의 사태는 막아내었습니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국제적으로 비화되었지만 세계대전을 예방한 전쟁이 되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산이 여섯 번 이상 바뀔 만큼 어느덧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전쟁의 제 1관계자였던 소련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고 가장 많은 피를 흘리며 대적하였던 중국과는 수교를 맺어 첫 번째 교역 상대국이 되었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냉전으로 통칭되던 국제 사회의 갈등 또한 과거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허리는 휴전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6·25전쟁 당시 보다 더 많은 군대와 무기가 서로를 향하여 대치하고 있습니다. 휴전은 결코 전쟁의 끝이 아니므로 6·25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잊고 있었지만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입니다. 끝.

P.S. 이로써 ‘생생 6.25’코너에 지난 1여 년간 연재한 6·25전쟁사가 끝났습니다. 본 연재는 최용호-김병륜 공저의 '그때 그날' (삼우사 2003년)을 기본으로 하여 최근까지 간행된 각종 최신 공간사를 참고하여 집필하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군데군데 오타가 있고 생략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잘못은 집필자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정중히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후에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으면 http://blog.chosun.com/xqon (august 의 軍史世界)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ugust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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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적 갈등의 연장이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또한 있습니다.

  12. 고태진 2013.09.19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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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18. Serasaco Branca Love Tips 2014.02.16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19. Construction Lawyer 2014.04.2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0. http://www.estyma.eu/ 2014.04.2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1. 피알앤애드 2014.06.25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97. 멈추어진 전쟁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5 08:13

  휴전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 가장 커다란 문제는 전쟁의 제1당사자인 한국정부가 휴전을 반대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마이동풍 같은 공산군 측과 2년간 밀고 당기며 어렵게 협상을 마무리 짖게 되었지만 막상 같은 배에 타고 있던 한국이 휴전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정부는 반대를 넘어 오히려 국군 단독으로 북진을 하겠다고 호헌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많은 희생을 보았음에도 막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불완전한 분단이 계속 이어지는 휴전을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대의명분상으로 타당하였습니다.


[한국정부는 표면적으로 휴전을 반대하였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군 단독으로 전쟁을 계속 할 수 없음은 한국정부가 오히려 잘 알고 있었고 더불어 휴전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없었습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결사반대를 외친 이면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전쟁재발 방지와 관련한 문제였습니다. 1953년 7월 초순까지도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에는 이에 대해 심각한 이견(異見)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949년 미군 철군 후 곧바로 북한의 침략을 받아 패망의 위기에 까지 몰렸던 한국 정부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휴전 후 미군과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철군한다 하더라도 중공군은 압록강만 건너면 언제든지 북한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그런 우려를 충족시켰습니다.


  결국 미국이 특사를 파견하여 상호방위조약처럼 전후 안전보장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해 주고 더불어 대부분의 현안이 합의되자 이승만 대통령도 휴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나름대로 실리를 취하면서도 명분상으로 마지못해 이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겉으로 보여준 우리정부의 단호한 모습이 공산군측을 상당히 불안하게 만들었고 특히 휴전 조인직전에 보여준 반공포로 석방은 그런 의구심을 증폭시켰습니다. 따라서 판문점에서 재개된 휴전회담에서 공산군측은 유엔군측에‘한국정부로 하여금 정전협정을 이행하도록 하는 대책’을 집중적으로 요구하였을 정도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측이 이슈화하고 있는 서해의 NLL(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은 막상 군사분계선 설정 시 해군력이 압도적이었던 유엔군이 스스로 이 이상 북으로 올라가 군사작전을 벌이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오히려 공산군측을 안심시켰던 한계선이었습니다. 그 만큼 유엔군은 휴전성립을 위해 한국 정부를 안심시킴과 동시에 공산군측을 달랬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공산군측을 불안하게 만들고 미국으로부터 차후 안전보장 책을 얻어낸 한국정부의 당시 행태는 전략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휴전협정서에 서명하는 해리슨과 남일]


  이처럼 공산군측은 내면적으로 미국보다 휴전에 더욱 매달리던 상태였습니다. 그들이 동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며 비극적인 전쟁을 벌인 대가로 얻게 된 소득이라는 것은 어느덧 감내하기 힘든 선까지 다 달은 엄청난 피해였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전선에서 실질적인 군사행동은 거의 중단되었고 포로의 인도 장소와 정전협정의 조인 장소 문제만 남아있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거듭한 양측은 7월 24일로 예정되었던 정전협정의 조인 일자를 7월 27일로 조정하여 당일 22시를 기해 전면 발효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10시 양측을 대표한 유엔군측의 해리슨 장군과 공산군측의 남일은 조인 장소에 착석했습니다. 그리고 인사도 교환하지 않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준비된 협정서에 10시 12분 조인을 마치자마자 해리슨은 헬기를 타고 문산리로 향했으며, 남일 또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프차를 타고 회담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까지 상대 진지를 향한 마지막 포격과 폭격은 계속 되었습니다. 특히 유엔군의 전폭기들은 북한의 전투력을 조금이라도 더 감소시킬 목적으로 북한의 비행장, 철로 등을 강타하였으며 해상에서 해군의 군함들이 함포사격을 실시했습니다. 그 만큼 상대가 너무나 미웠던 것이었습니다.


[휴전직후 비무장지대 설정 전 군사분계선에서 대치 모습 ]


  그리고 정각 22시가 되자 한반도 전역에서는 포성이 멎었고 마침내 3년 1개월 2일간 계속되었던 열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종전이 아닌 말 그대로 휴전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쟁의 끝이 아닌 엄연히 전쟁 중의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어느 일방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곧바로 확전이 될 수 있는 불안전하고 어정쩡한 미완의 평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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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7 08:19

  아군이 반격에 나선 후 1951년 3월에 접어들면서부터 또다시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을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중국도 저우언라이가 지리적 정치적 경계선으로써 38선은 이미 의미를 상실해 버렸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사실 우리나 유엔군 또한 굳이 여기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시 논쟁의 핵심은 38도선까지 진격한 이후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한국정부는 다시 한 번 북으로 내달려 통일을 하자고 주장하였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았고 이미 주변에서는 전쟁이 이 수준을 벗어나 더 커지기를 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38선이 다시 화두가 되었습니다.]


  즉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전쟁은 대한민국을 지리적으로 어느 선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따라 정치적, 군사적 전략이 완전히 달라질 상황이었습니다. 최초 전쟁에 개입한 유엔은 전쟁 전에 한국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38선 이남 지역만을 대한민국으로 해석했으나, 국군과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고 북한군을 괴멸시킨 후에는 대한민국을 한반도 전체라고 해석하여 북진을 승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자의 논리를 따르면 대한민국을 원래대로 구해냈으니 이제는 이 부근에서 종전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었고, 후자의 의견에 의하면 다시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확대전략을 구사해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미국 위정자들의 생각은 전자에 속했는데 그 이유는 중국이 직접 전쟁에 참가한 이상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다시 진출해도 과연 전쟁이 끝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소련이 개입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주요 참전 세력인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같은 이유로 38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견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판이 커져 소련이 개입하면 유럽에서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상당히 전전긍긍하던 상태였습니다.


  반면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완승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생한 이상 38선은 무의미하며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의 일관된 지론이었습니다. 더불어 전쟁 전부터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 역시 유엔군의 38선에서 전진이 멈추는 것에 대해 반대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비록 대대적인 여론조성에 들어가 통일의 당위성을 선전하였지만 전쟁은 우리의 의지대로 진행될 수 있던 시점을 지난 지 이미 한참 지난 후였습니다. 결국 38도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한다면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맥아더나 한국정부의 의견에 따라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을 경우 그것이 종전을 보장하지는 않고 오히려 1,2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국경선에서 중국 및 소련의 대군과 무한정으로 대치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가장 동서간의 거리가 짧은 청천강-원산을 연하는 선이 고려될 수 있었는데, 이 선은 200킬로미터가 채 못 되어 종전선으로 가장 유리한 위치였으나 평양을 포함하고 있어 상대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므로 우리의 의지대로 방어선을 구축하기 힘든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이 38선 부근인데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캔사스선까지 진출하는 것을 미국과 유엔군이 공산군과 협상에 임할 수 있는 체면을 회복하게 된 시점으로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워싱턴의 위정자들과 미군 수뇌부는 이 같은 의지를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에게 통보했습니다. 3월 20일자 맥아더에게 하달된 훈령은 직설적으로 공산군과 협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용상 분명히 확전을 제한하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맥아더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맥아더는 3월 21일자 전문에서 “더 이상의 제한을 가하지 말라. 현재의 제한사항만으로도 적을 북한지역에서 몰아내는데 곤란을 느끼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맥아더와 이승만은 같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어 궁합이 잘 맞는 사이였습니다. ]


  이러한 맥아더의 전문을 당국은 거부의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워싱턴 당국은 대통령의 성명으로 맥아더의 주장이 수용 불가함을 공식 언급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전쟁영웅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남다른 미국에서 맥아더의 반대의견을 함부로 저버릴 수 없었던 분위기 때문에 선택한 고육책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에 도달할 때쯤인 3월 23일과 24일에 연이어 맥아더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그는 유엔이 현재의 군사적 제한조치를 풀고 군사행동을 중국의 해안선과 오지까지 확대한다면 중국은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원자폭탄의 사용, 대만군의 참전 허용, 만주폭격 등을 재차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이미 트루먼에 의해 거부되었던 것들이었으므로 기자회견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맥아더의 절대적 의지이자 트루먼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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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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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희망 2010.09.23 2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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