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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2 100. 끝나지 않은 전쟁 (117)
  2. 2010.10.19 돌출부에 대한 단상 (11)
  3. 2010.09.28 중공군의 첫 대패- 수동의 터널 전투 (6)

100. 끝나지 않은 전쟁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12 08:17


  그 거대했던 규모에 걸맞게 6·25전쟁의 성격은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해석됩니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집단안보 수호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있는가하면 “한반도 내에서 해방이후 지속되어온 이념적 갈등의 연장이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또한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6·25전쟁은 원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 내부적 요인과 국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발생한 국제전적 내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전쟁 개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할 대상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쟁의 종결이나 휴전은 상당히 힘든 과정이지만 개시는 순간의 선택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남침할 수밖에 없게끔 당시의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일부 수정주의시각이 회자될 정도로 6·25전쟁과 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북한의 남침에 의해 전쟁이 개시되었다는 점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결국은 전쟁은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자가 일으키는 것이므로 전쟁을 시작하였던 북한과 이를 비호하였던 소련 그리고 직접 참전하여 비극을 만들어낸 중국의 책임은 역사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또한 3년 1개월 2일간의 짧지 않은 전쟁을 결과 면에서 본다면‘국내적으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란’이었다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하나의 도움도 되지 않고 오로지 피해만 안겨준 참사였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수많은 피와 재물을 받쳐가며 조금이라도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막판에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외치던 당시 한국정부의 입장이 명분상으로 맞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만큼 감내하기 어려운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면 적어도 통일을 이루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까지는 달성하여야 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맞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얻은 것은 없고 오로지 잃은 것 뿐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희생당한 반대급부로 불안정했던 세계질서가 6·25전쟁을 통해 공고한 냉전체제를 구축하면서 역설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은 제2차 대전 후 들불처럼 세계 각지에서 타올라갔던 공산주의의 팽창을 꺾어 버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과 달리 북한의 제 1후견인인 소련이 직접 개입을 꺼렸던 데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했지만 무려 2,000만 명이 희생당하고 유럽 러시아일대가 초토화되는 끔직한 악몽을 겪었고 아직 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최대한 회피하려 들었습니다. 따라서 6·25전쟁이후 보다 확고하게 대립하며 벌어진 냉전기간 동안 비록 첨예한 체제경쟁을 수반하였고 핵의 위협에 세계는 숨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바로 직전에 있었던 제2차 대전 같은 초유의 사태는 막아내었습니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국제적으로 비화되었지만 세계대전을 예방한 전쟁이 되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산이 여섯 번 이상 바뀔 만큼 어느덧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전쟁의 제 1관계자였던 소련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고 가장 많은 피를 흘리며 대적하였던 중국과는 수교를 맺어 첫 번째 교역 상대국이 되었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냉전으로 통칭되던 국제 사회의 갈등 또한 과거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허리는 휴전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6·25전쟁 당시 보다 더 많은 군대와 무기가 서로를 향하여 대치하고 있습니다. 휴전은 결코 전쟁의 끝이 아니므로 6·25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잊고 있었지만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입니다. 끝.

P.S. 이로써 ‘생생 6.25’코너에 지난 1여 년간 연재한 6·25전쟁사가 끝났습니다. 본 연재는 최용호-김병륜 공저의 '그때 그날' (삼우사 2003년)을 기본으로 하여 최근까지 간행된 각종 최신 공간사를 참고하여 집필하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군데군데 오타가 있고 생략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잘못은 집필자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정중히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후에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으면 http://blog.chosun.com/xqon (august 의 軍史世界)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ugust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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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적 갈등의 연장이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또한 있습니다.

  12. 고태진 2013.09.19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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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18. Serasaco Branca Love Tips 2014.02.16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19. Construction Lawyer 2014.04.2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0. http://www.estyma.eu/ 2014.04.2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1. 피알앤애드 2014.06.25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출부에 대한 단상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10.19 08:49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이북의 영토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현재 미치지 못하는 미수복지역입니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아쉽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지역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지방의 DMZ은 여타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전당시에 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이 지역이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최북단으로 남게 된 데는 한미 지휘관간은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의 DMZ이 북쪽으로 올라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51년, 중공군의 몇 차례에 걸친 대공세 이후 미국이건 중공이건 서서히 휴전을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길항이 있었으나 전선은 현재의 DMZ부근에서 거의 고착화되었는데, 그런 이유는 최대한 전선을 짧게 단축하는 것이 우리도 그렇고 공산군 측도 유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덧 전쟁은 서서히 고착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선에 참호가 깊게 파여지고 고착화 되었다면 그것은 공격보다 방어를 염두에 둔 배치인데, 이 경우 전선이 길게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이를 방어하는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볼 때 크게 2군데의 최단 횡단점이 있는데 하나는 동안만과 서한만사이의 북위 39도 50분 지점과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38도선 지점입니다.

[북쪽의 횡단점은 전략상 공산군 측이 수용하기 곤란하여 두개의 횡단점 중 군사적으로 대치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은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선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성지역을 북에 넘겨주고 휴전을 하게 된 것은 아군의 공격을 공산측이 훌륭히 방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강-임진강 하구를 방어선으로 삼고자하던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암묵적인 와중에서 볼 때 고성지역의 돌출부는 사실 조금 특이한 지역입니다.  만일 가칠봉에서 간성읍까지 최단거리로 DMZ이 형성되었다면 전선의 길이를 약 20Km 정도 단축하여 방어에 유리 할 것이고 이점은 북측도 알고 있었습니다.

[개성은 도심 뒤에 고지가 있어 군사적으로 이곳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 만큼 휴전선은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형성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이 북으로 돌출하여 자유대한 지역으로 편입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1951년 6월 이후 동해안에서 작전을 벌이던 부대는 백선엽 소장이 지휘하던 국군 제1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태백산맥 서쪽과는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국군이 전담으로 방어하다보니 타 전선에 비해 화력지원이 충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훗날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오른 백선엽]


  포병전력의 확충이 여의치 않음을 고민하던 백선엽은 미 제7함대 제
5순양분대의 사령관으로 동해에서 작전 중인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 소장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의를 즉시 받아들여 국군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거침없이 함포 사격을 지원했습니다.

[알레이 버크 그 또한 해군대장까지 진급하였다]


  요청이 있으면 이유불문, 시간불문, 장소불문하고 즉각적으로 지원사격이 이루어졌을 만큼 두 장군은 궁합이 잘 맞았고 이러한 버크제독을 백선엽이 국군 제1군단의 포병사령관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이 덕분에 국군이 전담하던 동해안은 공산군이 감히 탄막을 뚫고 내려올 생각을 못하였고 그 결과 동해안의 휴전선은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해상포격은 국군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아군을 흥남으로 몰아넣고도 중공군이 배타고 후퇴하는 유엔군의 모습을 손가락 빨고 쳐다만 보았던 이유는 미 해군이 해상으로부터 쏟아부어대는 엄청난 탄막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전쟁 내내 공산군은 해상포격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할 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격을 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고 반대로 아군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호막 노릇을 하였습니다.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DDG-51 알레이 버크]


  호인이었던 버크는 전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미 해군 작전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미 해군발전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미 해군은 버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 해군 사상 최초로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 건조한 구축함의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바로 최강의 전투함으로 평가받는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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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10.19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괴와 중공은 당시에 미주리같은 미국의 거함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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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11. http://motowynajem.pl/ 2014.04.26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

중공군의 첫 대패- 수동의 터널 전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9.28 08:17



압록강을 건너오는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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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0월 한반도 파견을 결정한 중공은 팽덕회가
지휘하는
30만 대군을 한반도 중앙의 산악지대에 침투시켰다.
이들은 참전 초기에  평안북도 산간지대에서 잠복기습으로
유엔군에게 큰 패배를 안겼었다.


장진호의 영웅 리첸버그 대령-[당시 장군 진급 예정]
리첸버그 대령이 지휘하는 7연대는 서울 탈환의
선두에 섰던 연대다. 후에 중장 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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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있는 군사 박물관에 가보면 군우리 전투나

운산 전투, 
그리고 장진호 동안(東岸)전투는 엄청나게 과장해서
선전해놓은 초전의
승리들을 볼 수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 전문가들이 입을 봉하고 모르는체하는
전투로서
초전에 장진호 입구에서  중공군 1 개사단이
미 해병 연대에게  호되게 당했던 수동 전투가 있다.


이 전투를 겪은 미 해병 하사 와랜드 커쉬의 전투 회고담을 소개한다.
[Face of war, Korean vignette에서 발췌.]


원산에 상륙하는 미 해병들 195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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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원산에 상륙한 1 해병사단 7연대 1대대의 3.5인치
로케트포 사수였다.

상륙후 부대는 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함흥평야에서
좌로 꺽어 장진호 방향으로 서진했다.


해병 1사단은 10군단장 아놀드 중장의 명령으로 이 산악지대를

통과해서 
서쪽 평안북도에서 북진중인 미 8군과 링크하는
작전 목표에 따라
전진하고 있는중이었다.

1사단장 스미스 소장은 원래 거칠고 때로는 마구잡이인

아몬드 장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뿐더러 대부대를 좁은 산길로
투입하는 것을 내심 찬성하지 않았다.


그의 예감과 같이 모 택동은 6·25전쟁 발발후
만주에 이동 전개를 마친 
송시륜 장군의 9병단에게 동해안을 진격해오는
10군단 해병들과
서쪽의 8군 사이를 파고 들어
이들을 포위 격멸하라고 지시했다.

송시륜은 대장정 때 연대장으로 참전했던 다혈질의

노병이었다.

그는 명에 의해 동계전투 장비도 부실한 그의 6만 병력을
한반도 중앙 산악지대로 침투시켰다.


송시륜의 9병단은 중공군이 항상 한국군을 먼저 치던

전술대로 선두에서 
전진해오던 김백일 장군의 1 군단을
잠복 기습해서 패주시켰다.


원산 해안의 미 해군 상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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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커쉬 하사가  쓴 전투 회상이다.

북한 원산에 별다른 저항도 받지않고 상륙하고 며칠후
우리는 트럭으로 차량 행군을 했다.
함흥을 조금 지난 지역이었다.
아침에 기상하자  우리는 행군을 계속했다.
남쪽으로 후퇴하는
한국군의 대열이 우리 사이를 빠져서 지나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오던 쪽을 가리키며“ Many Chinese !
 Many Chinese!"라고 겁먹은 표정으로 알려 주었다.


장진호 입구에 수동[SUDONG]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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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소총 중대마다 3.5인치 로케트 포가 몇 문씩 배치되었는데
이날 나는 C중대에 나가 있었다.
로케트 포 조가 합류했을 때 C 중대는 계곡물을 끼고 서쪽으로
전진하고 있었고 B중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시내 건너에서는 A중대가 도로를 따라 우리와 병행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우리는 행군을 정지하고 고지들의 첫 번째
능선으로 올라 어두어 지기 전에 호를 파기 시작했다.

*이 고지 선점의 해병대의 전술은 해병대가 장진호 대결에서

 중공군에게 패배당하지 않았던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된다.
 중공군이 나중에 자체 전술 분석에서 지적했지만
 미 육군이 중공군에게 피해를 입은 이유중의 하나가
 산타기를 싫어하고 도로에 집착했던 이유를 드는데
 이 점에서 해병대는 예외였다.


다음날 우리 중대는 다시 도로를 따라 이동하여  다음 능선을

오르게 되었고 B중대는 우리가 있던 곳으로 옮겨와서
우리가 파놓은 참호 진지를 점령 보완했다.

중공군은 양익 포위의 작전개념으로 기동한것이지만
완전 포위가 되지 않아 오히려 외곽 후미 해병의 포병이
엄청난 화력으로 두들겨 팰 표적이 되었다.

중공군의 장진호 전역 실패 원인중의 하나가 미군의 병력을
실제보다 과소하게 정보 판단한 것이었다.
이때도 미 해병들의 규모와 전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로 공격을 개시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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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대가 진지 구축을 완료했던 지점은 수동마을에서
약 1마을 남쪽이었다.

*수동에서 장진호로 올라가는 길은 이 수동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7연대 1대대는 수동 마을에서 불과 1마일 남방의 고지들에
구축했다. 같은 연대 2대대는 727 고지를 우측에 두고
698고지의 좌측
기슭에 위치했다.

모리스 로쉬 소령의 3대대는 뒤로 약간 떨어져서 두 번째의
방어선이라 할만한 진지선을 만들어 연대의 열차를
보호하는 형태로 전개했다



진지 공사를 막 완료했던 자정께
중공군이 대거 공격해왔다.
때는 1950년 11월 2일이었다.

1대대를 공격한 중공군은 124사[사단]의 371연대였다.
그들은 해병의 정면 공격을 맡았고 다른 370연대는
후방으로 우회해서 동쪽으로 부터 후방 해병 부대를 쳤다.
372연대는 중공군 후방에서 예비대로 대기했다.


시내 건너에서 병진 행군을 하던 A중대는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우리의 위치보다 조금 앞선 건너 고지에 진지
구축을 마친 상태에서 중공군이 해병연대의 정면과 측면의
광정면에서 공격해왔다.


*북한군의 T-34전차 한량의 지원까지 받았다.

우리 고지가 제법 높아서 중공군이 쏴오는 수많은 녹색 예광탄들과

우리가 쏘는 붉은 예광탄이 오가는 것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가끔 하늘이 폭발 섬광으로 환하게 밝아지곤 하는 것도 보였다 .


A중대보다 악간 남쪽으로는 도로가 넒어 지는 곳이 있었는데

이 지점으로부터 바로 강 건너에 B중대 진지 밑을 지나는
터널의
입구가 관측되었다.
이 터널을 빠져 나온 철도는 북으로 껶여서 시내물과 도로에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장진호 바로 밑 하갈우리로 통하는 협궤 철도가

 이 전투 현장을 통과했다
.]

중대장은 중공군이 공격할 때 이 터널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에서

여러 정의 LMG와 AR을 터널 입구와 주변을 조준하고 설치하였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

중공군은 터널 안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와서 입구에
설치해놓은 우리 중대의
화망에 걸려들었다.
파리 떼를 두들겨 잡는 듯한 해병대의 기관총
사격이 적 700명을 사살하기까지 계속되었다.


7연대 1대대장 데이비스 중령.
그는 장진호에서 영웅적인 전투 지휘로 미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월남전에서의 사단장을 거쳐 4성 장군으로 전역'
2003년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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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능선에 자리 잡은 C중대의 -중공군이 공격해오는 방향-

서북쪽은 공격했지만
그 반대편 동해 쪽의 C중대 구역은
상당히 조용하였다.


약 반 시간 정도의 기관총 사격으로 적의 예봉이 꺾였을때

중대장은 옆 참호 속에 있던 자동 소총[AR]조에게 전방으로
이동하여  우리 능선과 다음 능선의 골짜기에
놓여있는 [중공군이 통과할]
철로 주변을 사격하라고 명령하였다.

*미 해병은 자동소총[AR]을 중시했다. 육군이 분대에
1 정을 배치했지만  해병은 2 정씩 배치했다.


그날  자동 소총조는 밤새도록 실탄 전량소진을 경계하여서

반자동으로만
사격하였다.
나는 다른 기관총들과 목표에 더 다가갔던 이 자동소총의
기총사격에
단 한명의 중공군도 무사히 철로를 지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골짜기에 겨우 도착했던 중공군의 무리는 기관총이

먼저 처리했을 것이고
그 나머지는 반자동 사격의
자동소총 사수가 끝장을 냈을 것이라고 보았다.


한달 뒤 해병들의 장진호 탈출. 아래에 협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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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해병 몇 명은 고지를 내려가 중공군의
시체의 수를
세기 시작했는데 100명이 넘자 싫증이 나서
그만 두었다.

해병 7연대의 1,2 양 대대는 이날 밤 5.,000여명의 중공군
124사단의
공격 병력을 섬멸해버렸다.


중공군 124 사단장 위 치량 - 대패후 그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1951년 춘계공세 때 북한강변에서 대패한 180사단장
정 기귀는 전사 강등[한국군으로 이야기 하면 이등병 강등]
뒤 군에서 불명예 제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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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해병들이 잘 싸웠고 중공군이
 견제하지 못한 후방의 포병 포 18문이 1,431발의 포탄을
 퍼부운  바람에 124 사단은 막심한 피해만 입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새자 출격한 콜세어 기들은 1,500발의 기관포탄과 15발의
로케트 폭탄, 그리고 여러 발의 고폭탄을 투하해서 중공군을
사살했다.


1951년 춘계공세에서 포로가 된 중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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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력의 집중과 고지를 점령한 해병의 분전은 중공군으로

  하여금 해병 7연대 1대대 지역에만 662구의 확인 시체가
  남기게 헸다.

*중공군 371연대의  5개 중대가 섬멸되었고 측 후방을 공격했던

 중공군 370연대의 2개 중대가 섬멸되었다.
 전투후 수동 전장에서 확인된 중공군의 시체만 793구였다.

*그들이 유기하지 않고 운반했던 전사자의 시체까지

 계산하면 전사자는 더 많을 것이고 여기에 두어 배가 넘을
 부상자들까지 합치면 124사단의 두 개 연대는 문자 그대로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하겠다.

* 사실상 궤멸 된 124 사단은 다음에 치열하게 벌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송시륜은 해병과의 초전에서 대패하고 서쪽의 평안북도에서
 [8군을 공격해서 ]성과를 올린
동료 장군들에게 형편없이
 체면을 잃자 불덩어리 같이 대노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장진호로 기어들어 오는 미 해병대를
 반드시 한명도 남김없이 전멸시키라고 다그쳤다.

*그의 체면 회복 작전 지휘는 방한 장구도 부족한

  60,000명의
9병단 병사들로 하여금 상식 밖의 무리한 공격을
  되풀이 하게 헸다. 
 
*결과 연속적인 작전 실패로 대 피해를 입고 

 해병 철수후에  함흥 평야에서 4개월 넘게 재 편성과
재정비를 했었다.

중공군의 무더기 죽음을 보여주는 이 유명한 사진은
수동 전투후 전장 정리 과정에서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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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이 초전에 잠복 기습 전술로 몇 개의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장진호 전역에서는 
그 사상자의 숫자로 보아 대패라고 할만한 큰 피해를 입었다. 
[60,000만 병력의 절반이 섬멸 되었다.]

중공군이 실질적으로 패한 장진호 전역의 첫 패배 는
미 해병들이 장진호 입구 수동에서 안겨주었던 것이다.
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수동 전투에 대해 중국의 전사가들은
현재 규모 를축소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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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tra 2010.10.02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수동전투가 있던 지역은 11월 1일인데 이정도면 낮엔 쌀쌀해도 동계복장까진 입지않아요ㅎ
    저 전투가 한국에선 잘 알려져 있지않아서 잘 모를수도 있지만, chaffee2080님 좀만 더 검색해보고 댓글다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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