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가 만난 장군 그리고 병사[上]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4.01 08:00

 

“ 따르릉 ! ”


  일요일 아침, 적막을 깨뜨리는 전화 벨 소리에 극동군 총사령관 나는 눈을 떴다.  이 시간에 전화가 왔다는 것은 급한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었지만, 지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팔을 내밀어 수화기를 집어 들자 당직 부관이 간략한 인사를 하고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하였다.


“ 각하 ! 한반도에서 북한의 전면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


[북한의 전면남침 소식에 맥아더는 일요일 단잠을 깨었습니다.]


  나는 너무 놀라 “ 뭐라고 ? ” 대답만하고 전화를 내려놓았다.

  '평화가 찾아 온지 겨우 5년밖에 안되었는데, 전쟁이라니 ?...한국군은 국내 치안 유지나 할 수 있는 수준인데, 과연 북한군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냐 ! 이것은 꿈이 틀림없어...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맥아더 개인에게는 불과 5년 만에 맞이한 전쟁이었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멍하니 눈을 뜨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지난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또 다시 전화 벨소리가 울렸고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 각하 ! 무슨 지시라도 내리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 " 이번에는 참모장 알몬드였다.  그때서야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알게 되었다.




[극동군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맥아더의 신임이 높았던 알몬드는 이후 미 제10군단이 재창설되면서 군단장으로 임명됩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알몬드와 함께 하고 있는 맥아더)]


  이것은 6.25전쟁과 관련하여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의 회고록, 제일 처음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처럼 맥아더의 6.25전쟁 개입은 전쟁 발발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의 전쟁 개입여부와 관련 없이 일단 한국에 있는 미국인들을 보호하여야 할 임무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맥아더는 전쟁 발발과 동시에 관여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토쿄의 사령부를 나오는 맥아더)]


  맥아더는 일단 극동군사령부 군수참모차장인 처치(John H. Church)를 단장으로 하는 소수의 연락단을 파견하여 전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국에 도착하여  활동한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급보가 전해졌고 본국에서도 본격적인 군사개입 가능성이 거론되자 맥아더는 최전선을 직접 시찰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전선을 직접 시찰하러 1950년 6월 29일 수원에 도착한 맥아더
(무초 미 대사와 함께)]

  그리고 6월 29일, 그는 전용기를 타고 수원비행장에 도착하여 선발대로 파견된 처치장군 일행의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군을 대표하고 있는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습니다. “서울이 함락되고 상황이 몹시 불리한데, 당신은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나갈 것이오?”  그러자 채병덕은  “2백만 장정을 징집하여 침략자를 육탄으로  무찌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국군을 대표하는 채병덕 총참모장의 답변에 맥아더는 몹시 실망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맥아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기까지는 전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굴든(Joseph C. Goulden)이 지은 한국전쟁(The Untold Story of the Korean War )에 따르면 그 이후에 맥아더는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하여 “어떻게 저런 자가 일국의 총참모장입니까? 속히 해임 하십시오!”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 채병덕은 패전을 책임지고 직위해제 당하였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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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인연 2010.04.01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제가 알지 못했던 전쟁의 일화들을
    많이 듣고 갑니다(^^*)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2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진 것이라고는 육체밖에 없으니 그렇게라도 막고 싶었던 우리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죄라면 허약한 국력이 죄였지요.
    그러나 일국의 참모총장이니 보다 전략적인 답변이 있었어야 했겠지요.
    맥아더는 그런 답변을 원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자신도 일본에서 단 2일만에 한국으로 건너와서 현장을 확인할 정도로 책임있고 적극적이었으니까요.
    이번 연평도 천안함 사고? 사건?에 있어서 원인도 모른 채 4일간 관계관 회의를 한 것과 비교가 되네요.

  3. 보안대장 2010.04.18 0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는 세상살이 // 천인함 관련 대책회의를 비난하는 데, 네 따위가 뭘 안다고 씨부렁거리느냐?
    너도 채병덕처럼 무턱대고, 북한소행이고 평양을 폭격하겠다거나 장산곶 상륙하겠다고 헛소리할 놈이구나?

  4. clothing factory 2011.05.25 2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성 인터넷 프로토콜 (VoIP, Voice over Internet Protocol) 은 인터넷 프로토콜 을 이용 하여 소비자 에게 음성 통신 제공 을 하는 시스템 을 말한다.

  5. Rory Kratzer 2012.05.31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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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과연 전차기동이 불가능했을까?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30 08:17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여행을 다니시면서 도로 옆으로 펼쳐진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에 감격을 하시는 일이 잦으실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간혹 드는 의문점이 하나 있었는데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의문점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산악지대가 많고 군데군데 하천이 흐르는 '한반도의 지형에서 60년전 전차들은 어떻게 기동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죠. 이를 바라본 두 가지 시선, 즉 소련과 미국의 대조적인 판단으로 인해 우리가 비극을 맞이했으니까요.

[소련에서 제작된 5부작 전쟁영화 "유럽의 해방( Освобождение )"]


  이 영화는 1943년 7월 5일에 감행된 쿠르스크 전투를 시작으로 1945년 5월 2일, 베를린 함락에 이르는 대여정을 총 5개 장으로 나눠 1968년부터 3년에 걸쳐 개봉한 대작입니다.


  자! 6·25 전쟁에 관련된 정보를 전해야할 포스트에 웬 소련 전쟁영화를 소개하느냐? 라는 의문을 품으실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전쟁에 참전한 무기 대부분이 출연함은 물론 이들이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주력으로 쓰였기 때문이죠(한마디로 영화 감상도 하고 당시에 쓰였던 무기들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공산권의 무기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쓰는 사람" 보다는 "한 대라도 더 빠르게" 완성시킴과 동시에 "저렴한 가격"의 추구일 겁니다. 그러나 모든 무기들이 그렇지 않은 것이 당장 북한군과 중공군의 주력 전차로 운용된 T-34의 경우 5년 간에 걸친 실전경험을 통해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T-34하면 85mm ZIS-S53 전차포를 장착한 T-34/85를 떠올리시겠지만 원래는 76.2mm F-34 전차포를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독일과의 전쟁이 없었다면 북한군은 이 전차로 남침을 감행했겠죠?




  강력한 85mm ZIS-S53 전차포를 탑재하고 엔진을 V-2-34 520 마력 디젤로 교체함으로써 공격력과 기동력, 방어력의 균형을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T-34/85. 이 전차가 바로 북한군에 242대가 넘겨짐으로써 남침의 선봉에 서게 됩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북위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의 지원으로 정권 수립을 하기도 전에 군대부터 보유하게 된 북한은 남침을 통한 무력 적화통일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6·25 전쟁 직전 북한군의 창설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충만했던 저는 양호실 책꽂이에 꽂혀있던 관련 서적들을 뽑아 읽었고 그 중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지형을 정밀 분석한 소련군 군사고문단은 산악지대가 많고 하천이 즐비한데다 도로가 협소하기 때문에 전차의 기동이 불편하고 한국군에 전차가 전무하기 때문에 구태여 많은 전차를 지원해야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어느 정도 아시다시피 북한군의 전력 증강은 철저하게 소련의 관리 하에 이뤄졌는데 최초 미하일 예피모비치 카투코프 대장을 주축으로 한 소련 군사고문단은 북한군에 2개 전차사단을 창설할 목적으로 500대의 T-34/85를 판매할 예정이었습니다.


  갓 해방된 북한이 무슨 돈이 있어서 이렇게 많은 수의 전차를 구입할 생각을 했느냐? 라는 의문을 가지시겠지만 그 비용의 출처는 바로 소련이 제공한 2억 루블의 차관과 북한에서 생산되는 광물들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이 북한 지역에 증설한 공업지대의 힘도 컸고요.  오죽하면 전력 발전시설이 북한에 위치한 이유만으로 우리가 곤욕을 치러야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한반도 지형을 정밀 분석해본 소련 군사고문단의 입장에서 볼 때 광활한 평야가 주류를 이뤄 전차가 기동하기에 별다른 문제점이 없던 유럽과는 완전 딴판이었다는 점이죠. 특히 한국군이 전차를 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한 것은 북한군의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속이 상할 일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결국 북한군에 공급된 T-34/85는 총 242대! 덕분에 북한군은 당초 창설할 2개 전차사단 대신 1개 전차여단의 창설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고 제208 전차 훈련연대와 같은 신병교육부대의 교육용 및 예비 차량 확보를 위해 편제를 소련군 정규 편제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소련이 비록 전차를 예정보다 절반 이하로 감축해 판매했지만 한반도 지형에서 전차 운용이 불리하지 않다는 점을 감안했다는 점입니다.  실제 소련군의 철저한 감독 하에 작성된 작전 계획에서 보병사단에 배속된 전차연대의 임무 비중이 컸다는 점을 봐도 그렇습니다.



  하천이나 늪지대는 전차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이지만 소련은 1944년 6월 22일에 감행한 바그라치온 작전을 통해 늪지대를 간단하게 돌파함으로써 독일군의 허를 찌른바 있었고 따라서 한반도 지형에서도 전차가 충분히 기동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오늘날 한국군이 2,200여대 이상의 전차를, 북한군이 3,800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만 봐도 한반도 지형이 전차들이 기동하는데 그렇게 불리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죠. 

  하천이 많다고 해도 도섭장비가 잘 발달된 소련제 전차들이 스노켈만 장착해도 어렵지 않게 도하가 가능하다는 점은 개전 초기 북한군 제1 군단의 임진강 돌파로 증명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제약이 있기는 해도 전차가 충분히 한반도 지형에서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소련의 시선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과 군사고문단은 하천이 많고 산악지대가 전 국토의 70%에 달하는 한반도의 지형에서 전차가 기동하기는 어렵다는 결론과 이승만 정부의 무모한 북진통일 주장에 우려를 표시, 한국군에 전차 지원을 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시선은 어떠했을까요?

  미국 역시 기본적으로 한반도 지형에서 전차가 기동하기에는 너무나도 불리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당연히 초기에 가지고 왔던 약간의 기갑차량들을 1949년, 철군과 함께 고스란히 가지고 가버렸죠.  덕분에 북한군이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로 전차여단과 자주포 대대를 창설하고 있을 때 우리 군은 기갑연대에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 27대와 M3 반궤도 장갑차를 보유하는데 그치고 있었습니다.  정보부를 통해 속속 북한군의 T-34/85에 대한 위협을 감지한 한국군의 신성모 국방장관은 미국에게 M26 "퍼싱" 중전차 183대를 공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간단하게 거절당하고 말았죠.


  한반도 지형에서 M26을 운용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미군이었지만 막상 참전하고 보니 전차의 기동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 아이러니였고 결국 M26은 200대나 한반도에 투입되어 맹활약했습니다.

  미국이 한국군에게 퍼싱 전차를 공여하기를 거부한 원인은 앞서 언급한 지형적인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실제 미군의 참전 이후 논밭 및 진흙탕으로 범벅이 된 도로에서 퍼싱이 빠져버리는 순간 견인을 요구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무래도 논밭과 좁은 도로, 줄기차게 흐르는 하천과 산악지대로 인해 한반도에서 퍼싱이나 셔먼이 기동하기에는 불리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고 수시로 "아침은 서울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는 슬로건으로 북진통일을 주장하고 있던 이승만 정부에 대한 우려도 한몫 두둑이 했지만요.




  전차가 기동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최초 판단과 달리 개전 이후 참전한 미군은 별다른 문제없이 한반도에 1,326대의 전차를 끌고 와 작전을 수행했고 중요한 위기 때마다 전차들이 해결사로 나서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미국의 전차 공여 거부로 인해 6월 25일, 북한군의 공세 속에서 전차가 전혀없던 한국군은 처절한 육탄돌격을 감행하는 등 참혹한 피해만 입은 채 낙동강까지 밀려나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외관상 불가능해 보여도 반드시 가능성이 있다면 한번 시도해보라는 얘기가 있듯 최소한의 가능성에 주목한 소련과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판단한 미국의 대조적인 시선은 역사의 향방에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 셈이 되었습니다.


  현재 퍼싱의 군사 이야기에 연재 중인 만슈타인은 1994년 6월, 초등학교 3학년 시절 MBC와 KBS에서 활발하게 방영해주던 전쟁영화들을 두루 시청하면서 "밀리터리"라는 취미를 16년째 영위하고 있습니다. 

  2001년, 인터넷이 개통되기가 무섭게 다음의 밀리터리 카페에서 활동하며 축적한 지식과 자료들을 기반으로 2004년 1월 1일, 포탈 사이트 "야후! 코리아"에 최초로 전쟁영화 전문 블로그인 "퍼싱의 전쟁영화 이야기"를 개설해 6년 째 장기적으로 운용 중입니다.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한 소중함을 워낙 중요시하다보니 자연스레 사진 촬영에도 관심이 많아 현재 캐논 EOS 7D와 EOS 50D로 사진 촬영을 즐기는 편이며 군사 전문지 "월간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에서 사진 / 취재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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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30 1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지금 우리가 퍼싱이 제공해주는 군사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 군이 해설하고 우리 군이 파악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게 아니라는 말인가요?
    우리나라 625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던 퍼싱이 제공하는 군사이야기를 역사로 듣고 있는 것이라면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해명좀 해주세요.

  2. ╋만슈타인╋ 2010.03.30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는 세상살이// 제 해설은 엄연히 실제 참고자료와 당시의 전투기록 등을 토대로 작성되는 것입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전사학과를 비롯한 각종 연구기관의 인원들 중 한국전쟁 전후 세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이 분들 역시 당시의 기록들을 참고하여 자료서적을 편찬해 내고 있으며 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3. 강준일 2010.07.01 1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님// 디펜스타임즈 7월호 기사 잘 읽었습니다.

    내용이 언제나 간편하면서도 배치를 잘 해주시는데 아! 6.25도 마찬가지라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건필하세요~

  4. 강효섭 2010.07.02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지는 약간 어렵기는 하지만 만슈타인님 기사는 난이도가 쉽게 조정되어서 읽기가 좋더군요

    항상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5. 김형래 2010.07.11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글의 내용에서 포스가 심상치 않았는데 디펜스타임즈 코리아 기자시군요

    국방부는 워낙 경직된 조직체계라 글쓰는 방식이 쉽지 않을텐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6. 김수민 2010.07.19 21: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펜스타임즈 2009년 1월호는 표지가 아주 멋있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온통 육군 위주라 좀 아쉽습니다.

    해군도 은근히 멋진 것 많은데요 ㅠ_ㅠ

  7. 아라파트 2012.03.07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노캘...

    전차 승무원들은 사실 스노켈 장비도 별로 본적 없고 도하나 도섭도 거의 해본적이 없다지요.(4년 군생활 중 2번 해봣슴니다.) 그리고 몇몇 도하킷 장착 가능한 전차들의 경우도 내부 튜브가 손상 되어있는 등. 스노클이 불가능 한 상태라죠. 아마도 강은 다리로만 건널 모양입니다.

  8. Adaline Amadon 2012.06.01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에게 완벽을 제안했습니다. 표현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9. assurant health sales 2012.06.06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저 만족스럽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정보를 매우 현명한 보관됩니다. 누구든지 개인이 이해할 수있는 무언가를 제출하고 모든 개인에 대한 도전 주제를했다. 지금 이런 가능성을위한 활용 모으고있어.

  10. health insurance costs 2012.06.06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는 여기에 나열 받았습니다. 또 지금의 제가 여러분의 블로그 게시물 그들을 밝혀낸 것 좋은와 함께 학교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 해주 첫 주에이 주제에 관한보고 있으 려니까. 나는이 거기에있어 멋진 시간을 보냈어.

  11. car insurance for families of veterans 2012.06.06 1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내가 놀래 기절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최신 확실히하고있어, 매우 현명. 사람들은 사람들이 오늘날 누구나 매력적인 틈새를 만들기 인식할 수있는 무언가를 썼습니다. 난 그냥 같이 다가오는 업무와 관련하여 이런 종류의 보겠다.

  12. survival kit in a can 2012.10.21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차 승무원들은 사실 스노켈 장비도 별로 본적 없고 도하나 도섭도 거의 해본적이 없다지요.(4년 군생활 중 2번 해봣슴니다.) 그리고 몇몇 도하킷 장착 가능한 전차들의 경우도 내부 튜브가 손상 되어있는 등. 스노클이 불가능 한 상태라죠. 아마도 강은 다리로만 건널 모양입니다.

  13. indonesia rattan furniture 2012.12.30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종류의 논의 충분한 시간을내어 특

  14. obat herbal keputihan 2013.02.06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능한 전차들의 경우도 내부 튜브가 손상

28. 맥아더의 집념 그리고 반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26 08:48



 

  인천상륙작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맥아더 원수의 고집에 의해 실행되었다고 하여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만큼 그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맥아더는 6월 29일, 전쟁발발 후 한강방어선 시찰당시에 이미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군을 일거에 격멸하고 전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병참선의 요충인 서울을 측방에서 기습 공격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와 후방을 차단하는 대담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더불어 서울을 조속히 탈환하여야 한국 국민들에게 정치적,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는 신속히 참전한 미군 전초부대조차 무참히 붕괴되며 후퇴를 거듭하던 7월초, 이미 구체적 작전수립을 지시하였습니다. 명령에 따라 미 극동사령부는 서해안의 인천, 군산, 그리고 동해안의 주문진에 상륙하는 세 가지 제안을 상정하였고 이중 인천으로 상륙하는 100-B계획을 채택하였으나, 8월이 되어도 북한군 공세가 예상 외로 강하여 막상 상륙작전을 실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선의 상황과는 별개로 미 합참뿐만 아니라 극동군 해군조차도 인천상륙을 처음부터 반대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는데 사실 모두 타당한 분석이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9미터나 되어 상륙시간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낙동강 방어선과 거리가 너무 멀어 상륙군이 각개 격파될 위험성이 크다. 현재 보유한 원거리 상륙용 선박이 부족하고 상륙병력 차출 시 병력 부족으로 인하여 낙동강 방어선의 유지가 곤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병력이 한반도 집중되면 일본방어에 공백이 발생한다.”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같은 이유 때문에 방심하고 있는 적을 기습하기 위해서라도 인천으로 상륙하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더불어 만일 낙동강 방어선부터 차근차근 북진할 경우에 예상되는 약 10만의 아군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러 본토에서 극동군사령부를 일부로 찾아온 콜린스(Joseph L. Collins) 미 육군 참모총장이 맥아더에게 오히려 설득되었던 사실은 그의 신념이 어느 정도로 강렬하였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맥아더의 생각대로 계획은 진행되었고 9월을 목표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상륙전 함상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국군 해병대]


  맥아더는 상륙군으로는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사단을 주축으로 미 제10군단을 재창설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극동군사령부 참모장인 알몬드(Edward Almond)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미군은 극심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서 예정된 시간 내에 부대를 구성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비록 예비역을 소집하여 연대별로 부대를 구성하는대로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작전 개시 직전까지 완편 된 부대의 참가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국군 제1해병연대가 미 제1해병사단에, 국군 제17연대가 미 제7사단에 배속됨으로써 작전 직전에 부대를 완편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국군도 역사적인 작전에 당당한 주역으로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상륙작전은 치밀한 사전정지 작업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듭니다. 특히 인천은 수로 조건이 나빠 야간에 대규모 선단 운행이 불가능하고 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일거에 상륙군을 투입하기 구조적으로 어려워 더더욱 상륙군이 적진에 고립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아침과 저녁 만조시간에 맞추어 2단계 상륙계획을 작성했고 12시간의 간격동안 함포사격과 항공차단으로 북한군의 증원을 저지하는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적색해안에 상륙하는 미 제5해병연대 병사들]


  더불어 상륙지역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클라크(Eugene F. Clark) 대위를 책임자로 하는 정찰대를 9월 1일 영흥도로 파견하여 인천항 주변의 북한군 배치 및 기뢰 부설 상황 등을 정찰하였고, 아울러 상륙 당일에 팔미도 등대를 수리해 함대 진입시간에 맞추어 점등함으로써 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작전 개시에 맞추어 상대방이 오판하도록 기만책을 병행하여 인천에 대한 포격과 동시에 동해안의 영덕과 삼척, 주문진 그리고 서해안의 군산과 남포 일대에 대해 양동작전을 펼쳐 북한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한마디로 치밀한 작전에 의해 거대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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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6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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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인천과 군산 모두 상륙작전을 하기에는 조금은 부적합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허를 찌르는 작전은 역시 두고두고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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