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포사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01 49. 흥남 철수작전 (16)
  2. 2010.03.26 28. 맥아더의 집념 그리고 반대 (11)

49. 흥남 철수작전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6.01 08:15

  중공군의 제2차 공세로 인해 12월 6일, 미 제8군이 평양을 내어주고 38선으로 철수하자, 흥남 일대로 모여든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순식간 적진에 고립되어 버렸습니다. 한때 함흥-원산해안일대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저항하는 방안도 검토하였지만 12월 8일 맥아더는 해상철수를 지시하였습니다. 작전을 총지휘한 알몬드 미 제10군단장은 흥남항을 통해 아군이 순차적으로 철수하는 동안 퇴조항~함흥~동천리를 연결하는  반경 12킬로미터에 교두보를 설치하여 중공군의 공격을 차단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흥남 앞 바다에는 항공모함 7척, 전함 1척, 순양함 2척, 구축함 7척, 로켓포함 3척이 배치되었고 이들이 퍼부어대는 엄청난 화망으로 중공군의 접근을 거부시켰습니다.


[흥남항에 집결한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


  흥남에서 철수하는 아군의 병력은 총 105,000여명, 차량이 18,422대 그리고 각종 전투물자 35,000여톤의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이를 위해 미 해군은 125척의 수송선을 동원했으나, 절대량이 부족하여 2회 이상 운항을 하여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영웅적인 장진호 전투를 치르며 포위망 탈출에 성공하였으나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미 제1해병사단의 철수를 시작으로 12월 12일부터 개시된 해상철수작전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흥남 남쪽에 위치한 연포 비행장을 통한 항공철수도 병행되었습니다.


  교두보 밖에 중공군이 몰려들기는 하였지만 공격은 예상외로 미약했습니다. 한반도 북부의 동부지역에 12개 사단을 집중했던 중공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시는 흥남 일대에 밀집된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을 일거에 격멸시킬 수 있는 호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들 주력 대부분은 장진호 일대에서 미 제1해병사단과 힘겨루기를 하다가  대부분 허물어져 내렸고 남은 전력 또한 유엔군의 강력한 함포사격과 공중공격으로 만들어진 불벼락의 장벽을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흥남철수에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바로 피난민 문제였습니다. 아군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장사진을 이루며 흥남항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피난민에 대한 해결방책이 사실 없었습니다. 서부전선의 평양철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곳 또한 공산정권의 학정에 치를 떤 수십만의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가기를 원하였습니다. 전쟁 내내 남북 간의 인구 이동 추이를 보면 약 200여만의 북한 주민이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던 반면 자발적으로 북으로 올라간 인구는 극히 미약합니다. 대대로 살던 곳을 떠나 목숨을 걸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피난민들의 통계는 체제의 우월을 대변하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해상으로 탈출하는 피난민들의 모습]


  알몬드는 최초 약 3,000명 정도의 피난민을 철수시킨다는 생각이었으나 예상외로 많은 피난민이 부두지역으로 쇄도하자, 국군 제1군단장 김백일(金白一) 장군 등의 건의를 수용하여 선편이 닿는 데로 피난민을 철수시키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같은 극적인 조치로 98,000여명 정도의 피난민이 해상을 통하여 탈출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세계 전쟁사를 통틀어 보아도 찾아보기 힘든 철수작전이었습니다. 때문에 흥남철수는 단지 군사적인 측면에서 성공한 철수작전을 넘어 인도주의 작전으로도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구출되지 못하고 흥남 일대에 남아있는 피난민도 이와 비슷한 숫자였지만 당시여건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작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래가 없는 대규모의 함포와 공중폭격 덕분이었습니다. 이때 미 제7함대에서 발사한 5인치 함포는 18,637발이었는데 이것은 인천상륙작전 시 보다도 70퍼센트나 많은 양이었습니다. 그리고 12월 24일 14시 30분 마지막 엄호부대와 폭파요원들이 해안을 떠나면서 흥남항은 굉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미처 철수하지 못한 전투 물자들과 항만시설을 공산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폭파하였던 것인데 이로서 한 많은 흥남철수작전은 완료되었습니다.


[마지막 철수선이 떠나면서 파괴되는 흥남항]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 국군과 유엔군이 흥남에서 철수함으로써 지난 10월 1일 38선을 돌파하여 북으로 내달려간 아군은 불과 85일 만에 38선 남으로 모두 내려오게 되었고 통일의 꿈은 서서히 사라져 갔습니다. 북진은 불과 25일만 달콤하였고  새롭게 등장한 적에 의해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이날은 맥아더가 크리스마스 공세로 전쟁의 종결을 희망한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전쟁은 언제 끝날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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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r insurance 2011.10.08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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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모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

  6. BCAA 2011.11.05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시점의 포항 공격이 예상 못 했던 것이라 학도병들이 최전방에 처하게 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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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맥아더의 집념 그리고 반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26 08:48



 

  인천상륙작전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맥아더 원수의 고집에 의해 실행되었다고 하여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만큼 그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맥아더는 6월 29일, 전쟁발발 후 한강방어선 시찰당시에 이미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북한군을 일거에 격멸하고 전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병참선의 요충인 서울을 측방에서 기습 공격함으로써, 북한군의 보급로와 후방을 차단하는 대담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더불어 서울을 조속히 탈환하여야 한국 국민들에게 정치적,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는 신속히 참전한 미군 전초부대조차 무참히 붕괴되며 후퇴를 거듭하던 7월초, 이미 구체적 작전수립을 지시하였습니다. 명령에 따라 미 극동사령부는 서해안의 인천, 군산, 그리고 동해안의 주문진에 상륙하는 세 가지 제안을 상정하였고 이중 인천으로 상륙하는 100-B계획을 채택하였으나, 8월이 되어도 북한군 공세가 예상 외로 강하여 막상 상륙작전을 실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선의 상황과는 별개로 미 합참뿐만 아니라 극동군 해군조차도 인천상륙을 처음부터 반대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었는데 사실 모두 타당한 분석이었습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9미터나 되어 상륙시간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낙동강 방어선과 거리가 너무 멀어 상륙군이 각개 격파될 위험성이 크다. 현재 보유한 원거리 상륙용 선박이 부족하고 상륙병력 차출 시 병력 부족으로 인하여 낙동강 방어선의 유지가 곤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병력이 한반도 집중되면 일본방어에 공백이 발생한다.”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는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같은 이유 때문에 방심하고 있는 적을 기습하기 위해서라도 인천으로 상륙하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더불어 만일 낙동강 방어선부터 차근차근 북진할 경우에 예상되는 약 10만의 아군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반대 의견을 제시하러 본토에서 극동군사령부를 일부로 찾아온 콜린스(Joseph L. Collins) 미 육군 참모총장이 맥아더에게 오히려 설득되었던 사실은 그의 신념이 어느 정도로 강렬하였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결국 맥아더의 생각대로 계획은 진행되었고 9월을 목표로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상륙전 함상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국군 해병대]


  맥아더는 상륙군으로는 미 제1해병사단과 미 제7사단을 주축으로 미 제10군단을 재창설하여 자신의 심복으로 극동군사령부 참모장인 알몬드(Edward Almond)에게 지휘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미군은 극심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서 예정된 시간 내에 부대를 구성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비록 예비역을 소집하여 연대별로 부대를 구성하는대로 배에 실어 일본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작전 개시 직전까지 완편 된 부대의 참가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결국 국군 제1해병연대가 미 제1해병사단에, 국군 제17연대가 미 제7사단에 배속됨으로써 작전 직전에 부대를 완편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국군도 역사적인 작전에 당당한 주역으로 참여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원래부터 상륙작전은 치밀한 사전정지 작업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듭니다. 특히 인천은 수로 조건이 나빠 야간에 대규모 선단 운행이 불가능하고 수간만의 차가 심하여 일거에 상륙군을 투입하기 구조적으로 어려워 더더욱 상륙군이 적진에 고립될 가능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아침과 저녁 만조시간에 맞추어 2단계 상륙계획을 작성했고 12시간의 간격동안 함포사격과 항공차단으로 북한군의 증원을 저지하는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적색해안에 상륙하는 미 제5해병연대 병사들]


  더불어 상륙지역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해 클라크(Eugene F. Clark) 대위를 책임자로 하는 정찰대를 9월 1일 영흥도로 파견하여 인천항 주변의 북한군 배치 및 기뢰 부설 상황 등을 정찰하였고, 아울러 상륙 당일에 팔미도 등대를 수리해 함대 진입시간에 맞추어 점등함으로써 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또한 작전 개시에 맞추어 상대방이 오판하도록 기만책을 병행하여 인천에 대한 포격과 동시에 동해안의 영덕과 삼척, 주문진 그리고 서해안의 군산과 남포 일대에 대해 양동작전을 펼쳐 북한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한마디로 치밀한 작전에 의해 거대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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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6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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