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7.08 미그기 격추한 영국 프로펠러 전투기 (8)
  2. 2010.03.25 영국 항모 트라이엄프의 6·25전쟁 참전기 (15)

미그기 격추한 영국 프로펠러 전투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08 08:37

 


영국 해군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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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 익어가는 1952년 8월 9일.

황해의 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에서 함재기 씨 퓨리 4기 편대가

평양 북방의 철도 시설을 폭격하는 임무를 가지고 출격했다.

편대장은 경력 8년의 카마이클이었다.


영 항모 테세우스- 13,400톤, 48기 탑재
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 최초 참전 트라이엄프에 이은
두번째 교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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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퓨리는 그 앞 세대인 씨 화이어가 함재기로서 여러 문제점을

들어내자 그 대체기로서 전쟁 중에 급히 개발한 전투기다.

씨 화이어는 육상의 명전투기 스피트화이어를 함상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육상에서 스피트화이어로 맹활약을 했던 명전투기였지만

전투 환경이 너무 다른 함상에서 쓰기에 여러 문젯 점을

노출했다.


직렬 엔진의 기수가 너무 길어 시야가 무척 가려

졌었고 좁은 바퀴의 약한 육상용 착륙장치는 거친 함상

착륙을 버티어 나지를 못했다.


씨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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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거친 착륙으로 동체 후면에도 주름이 잡혀 이 연약한

육상의 왕자는
해상에서는 부적합한 전투기라는 해군 당국의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씨 퓨리다.

1759마력의 강한 추진력에 튼튼하게 만든 기체로 시야를 좋게하는

짧은 기수를 가진  둥근 래디얼 엔진을 갖추었다.

최고 속도는 460마일이었고 4문이 20mm 기관포를 장비했다.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에 왔을 때 탄생했던 미국 해군의
F8 베어켓와
비슷한 운명을 갖게 된다.

제트 시대가 도래해서 프로펠러기는 더 이상 주역이 될 수는 없었다.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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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가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 진입하는 길목인 

대동강 하류의

진남포 근방 상공에서 뜻밖의 강적을 만났다.

2 번 기 조종사 칼 하인즈 준위가 편대 후방 우측에서

미그기들이 고속으로 접근중이라는 경보를 발한 것이다.


미그기들은 압록강 상공일대 미그 골목이라는

지역 일대에서만 출격 했었다.

그러나 가끔 평양 상공까지도 남하해서 유엔기들을

공격했다.



이륙하는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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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장 카마이클 대위는 급히 상황을 살폈다.

그는 처음에는 미그기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그기들은 태양을 등지고 덤벼왔다.

후방에서 접근하는 미그기는 2 개 편대 8기나 되었다.



미그-1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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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좌측 4번 기의 편대원 엘리스는 적기가 원거리에서 발사한

예광탄들이 기체를 스쳐가자 편대를 이탈하여

급격한 피신 기동을 했다.


편대장 카마이클은 즉시 전 편대원들에게 기수를 미그기들에게

돌리고 반격했다.


프로펠러기로서 훨씬 나은 미그기들에게 대응할 방법은

그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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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나 프러펠러 전투기와 제트기가 붙은 공중전은

서 너 번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두 성능 차이가

나는 전투기들이 조우하면 서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격해서 정면 승부를 결해본다는 점이다.

이날의 경우도 꼭 같았다.

B-29에서 촬영한 미그-15 편대,
공격을 위해 B-29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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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의 전환과 함께 4기의 씨 퓨리기들은  ‘가위’ 기동에  들어갔다.


이것은 미 해군 중령 태처가 태평양 전쟁 초기 개발한

방어 비행을 말한다. -THATCHER'WEAVE-라고 불렸다.


한기 또는 두기가 마치 꽈배기 꼬듯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번갈아

향하여 교차비행을 하는 것으로 적기가 동료기의 후미를


공격하기가 매우 힘들게 한다.


미그기들은 4기 편대로 나뉘어 각기 두 기씩의 영국 기를

추격했다.


그러나 씨 퓨리기들이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주는 타이트한

방어기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미그기들은 사격을 하지를 못하고
겉돌았다.


 순간 카마이클의 정면으로 한 미그기가

돌입해왔다. 성급한 그 조종사는 후미를

공격하기 힘들자 정면으로 돌았던 것이다.

편대장 카마이클의 캐노피 위로 적기가

쏟아내는 예광탄의 불줄기가 연달아

지나갔다.



미공군 F-86에 격추당하는 미그 15기.
아래 멀리 압록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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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이클은 과감하게 적기에게 접근하며

20미리 기관포문을 열었다.


기관포의 화력이 적에게 몰리는 순간

정면에 쇄도한 적기는 카마이클의 씨 퓨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그의 코스가 우리 편대기 들을 화망을 지나가야한다는

것을 잊었던듯 하다.

2번기 칼이 사격을 해서 이 전투기에 약간의 명중탄을 냈다.


미그기는 칼의 사격를 피해서 다른 2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두 씨 퓨리 기의 정면에 나선 것이다.


3번기의 피트 데이비스 대위와 4번기는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두 기다 이 미그기에 명중탄을 퍼부었다.


이미 상처를 입었던 미그기는  제대로

대응기동이나 사격도 못했다.

미그기는 연기를 뿜으며 멀리 저공으로

추락해갔다.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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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그기는 6·25전쟁중 영국 해군기가

격추한 유일한 미그기다.

카마이클은 이 미그기 격추를 인정받고

1953년 특별 무공 훈장을 받았다.


첨언한다면 공산 제트 전투기와 유엔군 측의 프로펠러
전투기가
격돌해서 공산군 제트기가 격추당한 사건은 또 있었다.


미 해병 콜세어 기가 역시 대동강 상공에서 미그기와 조우하고

이에 과감히 돌격해서 격추시켰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미그기에게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었다.



미 해병대 콜세어 F-4U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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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날 조종했던 씨 퓨리 기는 나중에 영국 해군에서 은퇴해서

1957-1958년 버마 공군에게 매각되었다가 다시 호주로 팔려

현재는 한 호주의 개인 조종사가 취미생활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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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07.08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 history채널에서 dogfight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월남전 당시의 미군의 프롭전투기 2대가 자신들을 향해 비행해 오는 북베트남군의 미그기를 격추시킨것을 봤습니다. 프롭기로 제트기를 격추시키는것은 어려울텐데...
    그나저나 저기 f4u콜세어기의 조종사는 탈출을 하고 살아남았을지...

  2. 재롱박사 2010.07.09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그기 조종사는 경험이 부족한 북한이나 중국의 신참 파일럿일 줄 알았는데 조종사도 노련하고 기체정비도 잘 된 서소련군 미그기를 프로펠러기로 격추시켰다니 더욱 대단한 전과로군요.
    그런데 2번기 조종사가 칼 하인츠 준위라고 되어 있는데 오타인가요?
    영국군에는 준위 자체가 없고 또 저 당시 준사관 조종사 제도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3. 코호하는사람 2010.07.12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의 스핏파이어는 없구나 ㅜㅠ

  4. 의료혁명★클릭하세요 2010.10.13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정보◑ 좋은 글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평생건강지킴이 : 내 병은 내가 고친다.>

  5. brother ink cartridge fill 2012.05.28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 이런 종류의 매우 드문 일 인데요 .. 그것은 이와 같은 기사를 사냥하는 과잉 시간이다. 꽤 유익한뿐만 아니라 내용이 매우 분명 플러스 간결 있습니다. 나는거야이 게시물의 외관을 더욱

  6. cheap refills tattoo 2012.05.2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들이 exensive 재산 또는 가정이 될 수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물건 이러한 유형의 작은 수량을 통해 돈이 안 전체와 함께 기술 배면 제어 키에 관한 몇몇 비버입니다.

  7. drivers refurb 2012.05.28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의이 종류는 단지 특정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고 연구하는 데 도움이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제안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다른 기사 또는 블로그 게시물 있나요? 감사

  8. 2013.07.07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트남에서도 스카이레이더한테 격추당한 미그17이 있었죠

영국 항모 트라이엄프의 6·25전쟁 참전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3.25 09:16
 

[트라이엄프의 활동을 함재기 화이어플라이기 중심으로 보여주는 동영상]


  6·25전쟁중 영국군은 상당한 육해공의 병력을 파견해서 중요한 유엔군의 일원으로서 싸웠다. 
1951년 봄, 임진강 전선에서 중공군 춘계 공세에 큰 피해를 입었던 그로스터 연대의 용맹한 일화를 육군이 남겼고, 압록강 상공에서 성능이 한참 떨어지는 미터어 쌍발 전투기로 공산군 미그 15기와 힘겨운 공중전을 벌인 영국 공군의 분투기도 한국 항공 전사에 기록했었다.


  영국 해군 역시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유엔군으로 김일성 남침 불과 며칠 후부터 적극적으로 참전했다. 남침 불과 일주일 후인 1950년 7월 2일 미국 해군 순양함과 같이 동해안에서 남파 병력 호송대를 호위하던 북한 어뢰정 세 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었다.
6·25전쟁중 영국 해군은 황해를, 미군은 동해를 맡아서 3년간 작전했었다. 영국 해군은 6·25전쟁 참전중에 여러 전투 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특이한 활동으로서 최초로 파견된 영 항공모함 트라이엄프의 활약을 소개한다. 트라이엄프는 2차 세계 대전 바로 후인 1946년 5월 6일 취역했다. 총 톤수 1,7000 인 경항모였다.


[영 항모 트라이엄프]


  6·25전쟁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에섹스급 항모들이 27,000톤의대형이어서 80기의 전투기나 공격기를 탑재하는데 트라이엄프는 작전시에 단지 24기만 탑재했었다. 트라이엄프의 함재기들은 이미 구식이 되어가는 프로펠러 전투기 씨화이어와 역시 프로펠러 전투기인 화이어플라이 기들이었다. 씨화이어 기는 유명한 스피트화이어기들의 해군용이다.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고 착륙 장치가 강화된 것이다.


[씨화이어]

 

  이 전투기는 빠르고 운동성도 좋지만 그 모양[실루엣]이 북한 공군의 야크 9와 비슷해 자주 오인을 받았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1950년 6월 트라이엄프는 영국 해군 극동 함대에 이동 배치되었다. 사령관은 죠지 앤드류스 소장이었다. 배속된 극동 해역으로 항해하던 중 홍콩 근해에서 트라이엄프와 다른 호위함들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받았다. 트라이엄프와 호위하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항해를 계속하여 일본 구레[吳]항에 기착했다. 구레 항은 호주군 해군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작전해역으로 투입 전 트라이엄프는 호위하고 있던 구축함 코삭과 함께 이 군항에서 재급유와  재보급을 실시하였다,


  이곳에서 비행하기 힘들만큼 상태가 안 좋은 네 기의 씨화이어기와 두 기의 화이어플라이기를 내려놓았다. 작전을 위한 격납고내 여유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트라이엄프는 다시 한국 해역으로 출발하면서 다른 영국과 호주함들과 기동 함대를 구성했다.


[영 함재 공격기 화이어플라이 기]


  기동함대를 구성했던 영국함들은 순양함 저메이카, 구축함 HMS 콘소트였다. 두 함들은 6·25전쟁중에 활발한 활동과 전과를 거두게 된다. 이 영국함들에 호주 프리게이트 함 HMAS 숄하벤과 영국 급유함 웨이브 콘퀘러가 가세해서 6·25전쟁참전 영연방 함대를 이루었다. 트라이엄프 함대는 출항하자 오키나와로 남하하여 급유를 받은 다음 미 7함대의 미 항모 부대와 함께 연합 함대를 구성 출동하였다. 황해 작전 해역에 도착한 트라이엄프의 함재기[827 해군 항공대]들은 미 함대와 합동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3일 첫 출격이 있었다. 미 해군 항모 밸리 포지[에섹스급 항모]와 협동 작전이었다. 트라이엄프의 12기의 씨화이어와 9기의 화이어플라이기들이 출동하였다.


[미 항모 밸리 포지]


  영 함재기들은 황해도 해주 비행장을 들이쳤다. 유감스럽게도 적기는 없었다. 공격대는 비행장 빌딩과 격납고를 파괴하고 귀함했다. 다음 날에도 트라이엄프의 공격대가 출격했다. 이 날에는 괄목할 전과가 있었다. 연안과 해주 사이의 철교를 부수어 철로를 끊고 북한군 병영과 고사포 진지를 기총소사했다. 트라이엄프는 대지 공격이 없으면 주로 대잠 정찰과 대공 초계 업무를 맡았다.


  평양 폭격이 있은 지 2 주 뒤인 7월 19일, 트라이엄프가 탑재한 구난기인 씨 오터 쌍엽기가 조종사 케인 중령이 조종하고 황해에서 한반도를 가로질러 동해 원산 앞 바다까지 장거리를 날아가 격추된 미군 콜세어 기의 조종사를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무릅쓰고 가까스로 구출해내는 위험한 구조 임무를 완료했다.   이 구난 업무는 구식 씨 오터 기들의 마지막 전시 출동 임무였다.


[항모 탑재 구난 비행정 씨 오터. 1943년 취역했다.]


  7월 28일 거의 비극으로 끝 날 뻔한 재난이 발생했다. 씨 화이어 일개 편대가 함대 북동방 공역에서 함대의 레이다가 잡은 미확인 비행체들을 확인 차 출격하였다. 씨화이어들은 그 미 확인 비행체들이 함대에 내습하는 적기가 아니라 미 공군의 B-29임을 발견하고 안심하였다. 마음 놓고 접근했던 씨 화이어 3번 기는 300야드 거리에서  B29 한 기로부터 느닷없는 불줄기의 세례를 받았다. 앞에서 말한 듯 멀리서 보는 씨 화이어의 실루엣[외형]이 북한 야크기와 비슷했기 때문에 한 미 B 29기의 기총수들이 기관총을 쐈기 때문이다.


[씨화이어 기들과 비슷하게 보이는 야크 9기]


  씨화이어기들이 일제히 회피 기동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한 기의 연료 탱크에 기총 탄이 명중했다. 기체에 불이 붙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화이트 조종사는 크게 화상을 입었으나 기체를 뒤집고 자유 낙하하는 방법으로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다. 파도가 너무 거칠고 높아 항모에 탑재한 씨 오터 기로도 바다에 표류하는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화이트 조종사는 속절없이 한 시간동안이나  파도에 떠밀려 다니다가 연락을 받고 현장에 달려온 미국 구축함  에버솔에 구출되었다. 이 사건 뒤 영국 전투기들은 동체와 날개에 검고 흰줄을 쳐서 야크기가 아님을  알렸다.


[식별 표식을 한 씨화이어 기]

 

  트라이엄프는 계속 현장에서 대공 및 대잠 활동을 수행하고 다시 일본의 구레로 돌아왔다. 8일간 머무르며 재정비와 보급을 마친 트라이엄프는 7월 9일 영 순양함 케니아와 구축함 코머스, 그리고 두 척의 카나다 HMCS 아타바스칸 과 수우등의 전투함과 같이 출항했다. 이번에 주어진 주요 임무는 적 항구에 대한 집중적인 사진 정찰이었다. 함대는 적에게 점령당한 남한의 목포나 군산 그리고 인천을 정찰했고 북쪽의 진남포까지 항공 촬영하였다. 비행대장 맥라크란드 중령은 순양함 저메이카가 군산시에 위치한 대형 공장을 포격하는 것을 유도했다.


  8월 14일 진남포 인근 대동강 하구에 큰 대형 선박 세 척이 정박 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케인 중령 지휘 아래 오후에  6기의 씨 화이어기들과 6기의 화이어 플라이기들이 로케트 탄으로 무장하고 출격하였다. 편대는 대공포화가 격심했지만 로케트 공격으로 이 선박들을 대파시켰다. 나중에 격파된 한 척은 북한 해군 소해정이었고 한 척은 2,000톤 크기의 화물선, 한 척은 800톤의 연안선으로 밝혀졌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기동 함대는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영 씨화이어의 착함 모습 - 착륙할 때 후미의 훅이 걸리는

과정을 살펴 보시기 바람]


  정찰 업무가 끝나고 트라이엄프는 계속 서해를 초계하며 작전을 이어 나갔다. 며칠간의 작전에서 교묘하게 위장한 북한의 150톤 되는 무장선 한 척을 열 여섯 발의 로케트로 격침시켰다. 연안용 작은 배들도 여러 척 격침했고 해변에 설치된 오일 탱크를 파괴하였다.


  8월 19일에는 영국 구축함 콘소트와 트라이엄프의 화이어플라이가 협동하여 군산에 있는 공장을 포격했다. 8월 23일 고장 사고 격추등의 이유로 작전 가능했던 24기의 함재기가 단지 9기만 남자 트라이엄프는 일본의 사세보 항으로 돌아왔다. 트라이엄프는 일본 사세보로 돌아와 싱가폴에서 함재기들을 수송해온 항모 개조 공작선 유니콘으로부터 14기의 함재기를 인수받았다. 


  트라이엄프가 사세보에 기항해있는 사이 황해에서초계 항해를 하던 구축함 HMS 코뮤스는 군산 서쪽 85마일 해역에서 북한 공군 IL-10 두 기의 공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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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기는 김포 아니면 수원 비행장에서 출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격위치는 어청도에서도 중국쪽으로 한참을 더 가야하는 곳인데 제공권도 없는 북한기가 이렇게 먼곳까지 출격을 나왔던 사실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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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의 우현이 파괴되고 수병 한명이 전사했고 한 명이 부상했다. 함은 동료함 콘소트의 호위 아래 사세보로 돌아왔다.


[소련제 IL 10 공격기]


  8월 26일 다시 출항한 트라이엄프는 한국의 서해안으로 출발하였다. 북한 서해안에 정찰비행을 나간 두기의 화이어플라이기 들은 해변에서 숲으로 우거진 세개의 이상한 섬을발견하였다.그러나 잘 살펴보니 나무와 풀로 뒤덮어 위장한 세척의 북한 위장선이었다. 세 척은 위장 노력에도 불구하고 화이어플라이기에 즉각 파괴되었다.  이번 출동에서 적의 100톤짜리 어선을 비롯한 여러 척의 북한 배들을 파괴하였다. 트라이엄프는 통상의 초계업무를 했고 함대의 순양함 저메이카와 구축함 채리티의 연안 함포사격을 위한 사전 정찰과 탄착점 유도를 하는 지원 업무를 했다.


 

  8월 29일 트라이엄프 함상에 큰 사고가 발생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 기가 꼬리에 달린 정지 후크없이 착륙하다가 항모 갑판을 미끄러져 안전벽에 부딪힌 사고가 발생했다. 나무 프로펠러가 떨어져 나가 함교로 날아가 작전실의 유리를 부수고 안으로 뛰어들어 맥라크란 중령을 후려쳤다. 맥라크란 중령은 800 해군 비행대의 대장이었다. 맥라크란 중령은 이 불운한 사고에서 얻은 부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한 해역에서 의식을 갖춘 장례식으로 수장되었다. 그는 6․25전쟁중에 사망한 유일한 해군 조종사였다.


[영국 해군의 함상 장례식]


  9월 3일 출동한 트라이엄프 함대는 군산 비행장과 군산역을 포격한 저메이카를 위한 탄착점 유도를 했다. 9월6일 트라이엄프는 캐나다 구축함 아타바스칸, 아라뭉가, 그리고 바타안과 같이 황해를 떠나서 동해안으로 이동했다. 그 곳에서 작전하던 미 7함대 항모 부대의 작전임무를 인계 받았다. 7함대는 일시 휴식과 보급 그리고 정비를 위하여 일본의 모항으로 귀항해야만 했다. 트라이엄프 함대의 동해안 작전은 9월 8일부터 시작했다. 함재기 화이어플라이와 씨화이어등은 연일 북한 땅의 목표들을 공습해서 북한의 전쟁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했다.


  첫 주요 목표는 철도였다. 원산 남방으로 뻗은 철도를 따라 내려가던 6기의 씨 화이어와 6기의 화이어플라이는 한 작은 역에서 열차를 발견하고 공격해서 화차들을 모두 벌집이 되게 파괴하고 기관차는 완전히 운행불능인 고철이 되게 부수어 놓았다. 이어서 동해안 철도를 따라 계속 수색하여 고원 역에서 80량의 화차를, 영흥 역에서 40량의 화차들을 발견해서 모두 파괴해버렸다.


[유엔기의 공습을 받는 북한 열차]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 9월 12일에 보급 및 재정비를 마친 트라이엄프는 호위하는 와라뭉가,채리티와 콕케이드, 콩코드등과 함께 기동 부대를 만들어 사세보를 출항했다. 목적지는 한국의 인천이었다. 바야흐로 역사적 인천 상륙작전이 임박했던 것이다.


[폭격받는 인천시]


  함대 승무원들에게는 행선지는 물론 비밀로 했다. 트라이엄프 기동부대의 임무는 상륙 작전 사전에 항공지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상륙작전 직전 함대는 화력지원과 정찰 업무를 개시했다. 트라이엄프의 함포 사격 지원은 큰 성공을 가져왔다. 순양함 저메이카와 케니아의 함포는 화이어플라이가 지시한 고지의 북한군 목표를 포격해서 대 폭발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곳에 적 탄약고가 있었던 것이다. 산 꼭대기가 날아가 버리고 엄청난 연기가 2,500미터 이상 솟구쳤다. 그날 저녁 영 함대 사령관 앤드류 소장은  맥아더 원수로부터 치하 전문을 받았다. 인천 상륙 작전의 첫날 13,000명의 병력과 장비가 상륙했다.

 

  다음날 17일 새벽 북한 야크기 두기가 인천 앞 바다의 상륙 함대를 공습했다. 두 기는 미 순양함 로체스터를 폭격하고 그중 한 기는 겁 없이 더 먼 바다에 있던 영 순양함 저메이카를 기총소사를 했다. 수병 한 명이 전사하고 두 명이 부상했지만 야크기는 저메이카의 대공 사격에 격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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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습 전투기가 야크- 9기라는 설과 IL-10  기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영국 기록은 이 북한 기들을 IL-2로
 적어 놓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기가 투하한 폭탄의 크기가
 전투기용인 소형으로 보여 야크기 설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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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순양함 저메이카]


  트라이엄프는 인천 상륙작전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된 9월 21일 일본 사세보 항으로 귀항했다. 이 번이 트라이엄프의 마지막 작전 항해였던 것이다. 함재기들의 손실도 많았고 함의 이곳 저곳도 손을 보아야 할 함들이 많아 한국 파견 임무를 종결해야했다. 트라이엄프는 이틀간 사세보 드라이 독크에 들어가 작전 중 입은 파손 부위를 긴급 수선했다 9월 25일 트라이엄프는 임무를 일주일 뒤에 극동해역에 도착할 다른 항모 테세우스에게 인계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테세우스 - 트라이엄프와 같은 급이댜.]

 

  트라이엄프는 그 후 영국 해군에 장기간 더 봉사했다. 50년대 말에는 함정 수리를 전담하는 공작함으로 변신해서 재 취역을 했다. 퇴역한 트라이엄프는 1981년 스페인 고철 업자에게 팔려 해체 되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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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꾸는 세상살이 2010.03.25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2. mami5 2010.03.26 0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갑니다..
    좋은 시간이되세요..^^

  3. 야후 낙화 2010.03.26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첫 기고글 잘 보았읍니다
    감사 드립니다 독님

  4. li815 2010.03.26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정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5. phy1133 2010.03.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방부 기고가가 되신 ~님께 축하 메세지 남김니다. 즐감~

  6. 장대수 2010.04.10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어요~

  7. Douglass Pabich 2012.05.31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유익한 기사 극단적인 재미를 발견했습니다. 이 문제 내에있는 모든 사람을 겪고 있습니까? 나 역시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쓰는 사람의 방법을 만끽하는 데 도움 것을 보내 겠소. 감사

  8. Michel Alvidrez 2012.05.31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로젝트에 관한 연구를하는 동안 나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적절한 사실과 콘텐츠를 찾아서 해당 교사에게 우리의 생각 더하기 게시물을 제공할 수 있어요. 쓰기가 문제에게 상당한 감소.

  9. Forest Skrebes 2012.05.31 1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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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medical emergency kit supplies 2012.10.21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것에 그 한계가 있으니 한때의 용맹스럽던 트라이엄프도 수를 다하고 원래대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또 한 편의 역사가 쓰여진 것을 쓰여진 것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가 후에 어떻게 적혀질지 생각하고 현 시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15. Full Term Insurance 4 Sale Article 2014.03.31 1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월 9일 불순한 일기 때문에 트라이엄프는 단지 여덟 번의 출격만 했지만 4기의 화이어플라이들은 동해안 한 도시의 비행장을 파괴하였다. 역시 고장과 추락등으로 함재기가 단지 6기로 줄어든 트라이엄프는 9월 10일 사세보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