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리'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3.09.26 국군 제3군단 해체되다 (현리 철수작전) (2)
  2. 2010.09.10 79. 용문산의 승전보 (16)
  3. 2010.09.01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19)

국군 제3군단 해체되다 (현리 철수작전)

생생! 6·25/만화형 전쟁사 "우리가 겪은 6ㆍ25전쟁" 2013.09.26 15:24

국군 제3군단 해체되다 (현리 철수작전)

이 전투는 중공군 5월 공세 시 국군 제3군단이 중공군 2개 군과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고 방어에 실패한 후 하진부리 부근까지 후퇴한 철수작전이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제3군단의 서측 미 제10군단지역을 집중 돌파하여 후방의 오마치 고개를 점령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은 지휘체제가 와해되고 상하 인접부대 간의 협조가 단절되어 조직적인 철수를 하지 못하였다. 이 전투로 국군 제3군단은 많은 인원 및 장비 손실뿐만 아니라 군단이 해체되는 수모를 당하였다.



현리 철수작전 상황도



중공군에게 선점당한 오마치고개

중공군은 5 16 17:30분에 국군 제3군단 서쪽에서 방어 중인 미 제10군단의 국군 제7사단 지역을 향해 집중적으로 공격해왔다. 이에 따라 20:00시경 국군 제7사단의 전방연대들이 붕괴되면서 통신마저 두절되어 상급부대에서는 국군 제7사단의 상황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한편 오마치 고개를 차단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중공군 제20군 예하 제60사단 제178연대 제2대대는 국군이 배치된 진지를 우회해 빠른 속도로 국군 제7사단의 바어종심을 향해 기동하였다. 그 결과 중공군 첨병중대가 17 04:00시에, 대대가 07:00시에 오마치 고개 일대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들은 16 18:00시부터 17 07:00시까지 13시간 동안에 동부전선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뚫고 무려 25km나 기동하였던 것이다.

 

국군 제3군단의 좌측 사단인 제9사단은 20:00시경 국군 제7사단 제5연대가 전투지경선을 넘어 사단지역으로 철수하면서 전장상황을 알게 되었다. 9사단장은 03:00시경에 철수를 건의하였으나, 군단장은 미 제10군단으로부터 아무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듣고 철수를 허락하지 않았다. 9사단장은 퇴로가 차단당하기 전에 기동장비를 먼저 철수토록 하였으나 유일한 철수로인 오마치 고개를 중공군이 이미 점령하고 있어 철수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이 상황을 보고받은 사단장은 04:00시경 예하부대에 철수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예하부대들이 17 10:00시경 철수를 위해 용포 일대에 집결하였으나 이곳을 미리 선점한 중공군의 공격으로 북쪽으로 퇴각하여 13:40분경 현리에 도착하였다.

 

군단 우측 부대인 국군 제3사단은 북한군 제5군단의 공격을 받고 방어하던 중 제9사단으로부터 제7사단이 철수하였다는 사실과 오마치 고개를 중공군이 이미 점령하고 있다는 상황을 전달받고 17 08:00시 철수명령을 하달하여 13:00시경 현리에 집결하였다.

 

이에 따라 현리에는 국군 3사단과 제9사단, 군단직할부대, 7사단 제5연대, 수도사단 제1연대 제1대대 등 많은 병력이 혼재된 상황이 되었고, 중공군이 오마치 고개를 점령하였다는 상황이 전파되자 장병들의 불안과 동요가 확산되었다.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라

5 17 14:00시경 헬기로 현리에 도착한 군단장 사단장들과의 작전회의에서 3사단장에게 부대를 통합 지휘해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여 철수하라고 명령하고 15:30분 하진부리의 군단지휘소로 복귀하였다.

 

3사단장과 제9사단장은 17:00시경 포위망 돌파계획을 예햐 연대에 하달하였다. 먼저 제9사단 제30연대가 공격하여 중간목표인 736고지와 785고지를 확보하고, 이후 제3사단 제18연대가 초월 공격하여 오마치 고개를 탈환한 후 810고지와 681고지를 확보하도록 하였다.

 

30연대장은 17:30븐경에 제3대대가 736고지를 확보하고 제1대대가 제3대대를 후속하여 785고지를 확보토록 하였다. 그러나 예하 대대가 아직 용포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도착하는 즉시 공격토록 하였다. 그러던 중 일몰 이후부터 각 부대 간의 통신이 두절되어 상황파악이 어려워졌다. 군단 대부분의 병력이 협소한 현리 용포 일대의 공간에 일시에 집결되면서 무전기의 혼선으로 상하부대간 통신이 두절되고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먼저 공격한 제3대대는 22:00시경 736고지를 무혈점령했지만 785고지를 점령하기로 한 제 1대대가 내린천을 따라 남하하다가 방태산으로 퇴각해 버리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자 사단전체가 방태산으로 퇴각하기 시작하였다. 이 처럼 현리 일대에 집결해 있던 일부 병력들의 적의 기습을 받아 방태산으로 흩어지고, 9사단이 대오를 잃고 방태산으로 퇴각하는 등 상황이 급박해지자 현리 일대에서 공격대기 중이던 제3사단장은 5 18 03:30경 예하 부대에 모든 장비를 파괴하고 방태산을 지나 창촌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현리지구전투 비문.       /         현리지구전투에서 중공군에게 포로가 된 국군.



국군 제3군단사령부의 해체

중공군은 17일 오전에 오마치 고개와 침교 일대를 각각 1개 연대 규모가 선점하였고, 오후에는 사단 주력이 증원되었다. 따라서 3권단이 공격작전을 개시하였을 당시에는 이미 2개 사단 규모가 퇴로를 차단한 상태였고, 현리 일대도 중공군 제20군 제58사단 제173연대와 북한군 제5군단 제6사단 제1연다가 내부 포위를 완료한 상태였다.

 

국군 제3군단의 철수는 조직적인 철수가 아닌 무질서한 패주였다. 장교-병사 할 것 없이 뒤섞여 철수하였다. 중공군의 집요한 추격으로 대오를 추스르기도 힘들었다. 광원리에서 창촌으로 이동한 후 집결하려 하였지만 그마저도 중공군이 먼저 차단하고 있어 대부분의 철수 병력이 계방산을 넘어 하진부리로 이동하였다.

 

5 20일 하진부리에 집결한 병력은 제9사단이 40%, 3사단이 34,2%에 불과하였다.

 

중공군은 5 20일 야음을 이용해 운둔령을 넘어 속사리까지 진출하였다. 이에 제 3군단은 04:30분경 하진부리에서 퇴각해 횡계리로 이동하였다. 미 제8군 사령관은 제3군단장에게 하진부리에서 더 이상 철수하지 말고 그곳에서 적을 저지하라고 직접 명령한 상태였다. 그러나 제3군단은 5 21일 다시 퇴각하여 제3사단은 송계리로, 9사단은 대화로 각각 퇴각하고, 군단사령부는 횡계리에서 영월로 퇴각하였다.

 

5 25일 강릉 비행장의 육군본부 전방지휘소에 미 제8군사령관이 방문하였다. 정일권 육군 총참모장도 있는 자리에서 밴 플리트 장군은 한국군 3군단을 해체하고 육군 본부의 작전권도 폐지한다. 육군본부의 임무는 작전을 제외한 인사와 행정, 군수와 훈련에만 국한한다. 국군 1군단은 내 지휘를 직접 받아야 하고, 육군본부 전방지휘소도 폐지한다.” 고 말하였다. 국군부대의 지휘권이 완전히 유엔군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밴 플리트 장군의 통보를 듣기만 하였다.

 

3군단 소속이던 국군 제9사단은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었고, 국군 제3사단은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었다. 국군 제3군단은 1951 1 10일 중공군 3차공세 후 해체된 제2군단에 이어 5 26일 두 번째로 해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3군단 해체의 결정적 이유는 하진부리 일대에서 더 이상 철수하지 말고 적을 저지하라는 미 제8군 사령관의 명령을 어기고 횡계리 ㅡ 영월로 후퇴를 거듭한 때문이었다.




오마치(오미재)고개에 있는 현리지구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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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태진 2013.09.27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 작전 상황도 보니까, 정말 치열함을 느낄 수가 있네요. 새로운 지식 알게되었답니다.

  2. 기재현 2013.09.30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내용은 강원도 인제군의 현리 전투를 이야기하는데... 작전 상황도는 경기도 가평군의 지도가 나오네요... 수정이 필요합니다.

79. 용문산의 승전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10 08:41

  하지만 제2연대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사단 및 군단에서 지원된 5개 포병대대의 조명 및 화력지원 하에 중공군의 공격을 맨 앞에서부터 저지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압도적이었던 중공군 일부가 방어선을 돌파하고 제1, 2대대의 진지까지 접근하여 위기가 고조되기도 하였으나 제2연대 용사들은 진지 안으로 들어온 중공군과 백병전을 펼쳐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분명히 이런 상황이면 국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맞았는데, 예측을 벗어난 제2연대의 이러한 용전분투는 중공군이 참전한 후 처음 겪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동쪽의 국군 제3군단은 현리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제 2연대의 용전분투는 중공군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제2연대가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저항을 계속하자, 중공군은 이곳을 국군 제6사단의 주저항선인 것으로 오판하였습니다. 중공군은 제6사단을 제거하기 위해 5월 19일 새벽부터는 제63군 주력 모두를 이곳에 투입하면서 총공세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장도영 사단장이 원하던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최대한 많은 적들을 끌어 모은 후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궤멸시키려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선전을 펼친 제2연대가 좀 더 버텨주어야 했습니다.


  총공세를 감행한 중공군은 08시경 제1대대가 방어중인 559고지를 연대규모로 포위 공격하였으나, 제1대대는 근접항공지원 하에 고지를 고수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공중폭격이 종료되자 중공군 증원부대가 장락산맥 계곡으로 투입되어 제1대대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일순간 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굴복할 제1대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3시간동안 혈전을 펼치면서 5월 19일 15시경, 적의 포위망을 뚫고 연대본진이 있는 나산으로 철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동시에 울업산을 방어하던 제2대대는 중공군 제189사단이 공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10배나 많은 적의 공격을 받은 제2대대는 19시경 근접항공지원의 엄호 하에 427고지로 철수를 단행했습니다. 이로써 제2연대의 방어정면은 353고지-나산을 연하는 선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전처럼 무질서한 후퇴가 아니라 최선을 다한 방어 후 예정된 후방 방어진지로 이동한 성공적인 철수였습니다. 제2연대는 이곳에서 방어전을 계속 펼쳐내었고 더 큰 전투가 제2연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문사전투 상황도]


  국군 제6사단을 밀어붙였다고 오판한 중공군 제63군은 20시경 예하 3개 사단 모두를 투입하여 총공세에 나섰습니다. 이때부터 제1대대는 나산에서, 제3대대는 353고지에서, 제2대대는 427고지에서 전면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조명탄을 밝힌 가운데 진내로 접근한 중공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했습니다. 제2연대는 지금까지 어떠한 유엔군 부대들도 경험해 보지 못한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고립방어전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방어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 방어진지가 붕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제2연대는 강력한 정신력으로 방어진지를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엿보던 장도영 사단장은 현리의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판단한 미 제8군의 반격명령이 하달되자 용문산 일대의 주 저항선 좌우에 배치되어 있던 제19연대와 제7연대에 공격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들 연대들은 5월 20일 05시에 진지를 박차고 나와 반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제2연대에 매몰되어 있던 중공군 제63군의 배후를 제19연대와 제7연대가 차단하자 순식간 중공군은 역 포위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유하거나 지원 가능한 모든 화력이 포위망 안에 갇혀 있는 중공군을 향해 집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공군으로써는 전혀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이었습니다.


  5월 21일 03시경 중공군은 서둘러 북한강 이북으로 철수를, 아니 도망치기 시작했고 국군 제6사단의 무서운 추격이 개시되었습니다. 북으로 도망가던 중공군 제63군은 화천저수지에 퇴로가 막히게 되었고 이곳에서 국군 제6사단의 맹공을 받으면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국군 제6사단은 불과 한 달 전에 사창리에서 당한 수모를 몇 배 이상 중공군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용문산에서 화천호로 이어진 일련의 전투 결과 3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25,000여 중공군 제63군은 완전히 격멸되었고 이것은 6·25전쟁에서 국군 유엔군을 통틀어 사단급 부대가 단일 전투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중공군은 화천호에서 녹아내렸고 이후 파로호로 명칭이 바뀝니다.]


  이 놀라운 승리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화천호를 오랑캐를 물리친 호수라는 의미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국군 제3군단이 해체될 만큼 국군에 대한 유엔군의 신뢰가 무너지던 바로 그 시점에서 터져 나온 극적인 역전타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국군을 쫓아다니던 중공군에 대한 콤플렉스를 날려버리는 계기가 되었고 중공군도 더 이상 국군을 얕잡아 보고 국군 방어지역으로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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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 2010.09.10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몇달째 너무도 잼있게 보고 있습니다.

  2. 오늘도 2010.09.10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보고 감니다

  3. 비도승우 2010.09.22 0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민해방군 아닌 인민훼방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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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아수라와 같은 용맹으로 인해를 이루는 중공군을 격퇴한 국군 6사단의 이야기를 잘 봤습니다. 제 2연대가 잘버텨주어 중공군을 한 곳으로 최대한 끌어 모아 화력을 집중하여 일거에 궤멸시킨 전략은 훌륭했습니다. 특히 버텨준 제 2연대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퇴로를 차단당해도 굴복하지 싸우다가 성공적으로 전략적 후퇴를 한 제 1대대 얘기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제 2연대가 10배나 많은 중공군을 상대로 고립방어전에 들어가 싸운 모습에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선배 군인들의 용맹한 정신과 임전무퇴의 정신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25000여 중공군을 괴멸시켜 화천호가 파로호로 명칭이 바뀌었다는 것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6.25 전쟁의 용문산의 승전보는 보는 내내 참 기분좋았던 글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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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1 08:16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군 예비로 후방에 배치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를 급거 이동 전개시켰습니다. 다행히도 이들 부대가 이동이 들어가던 5월 19일을 전후하여 보급에 고질적으로 문제가 많던 중공군의 공세는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하였고 이틈을 타서 미 제3사단은 장평리 일대에 집결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제3사단이 돌파구를 막으러 긴급 이동 전개에 들어갑니다.]


  미 제3사단이 정찰에 돌입한 결과 속사리-하진부리 일대까지 남하한 중공군이 그 동안의 공세로 몹시 지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3사단은 즉시 반격을 펼치기로 하고 운두령 일대를 공격하였습니다. 깊숙이 남하한 중공군 주력의 배후에 위치한 운두령은 속사리 북방 10킬로미터 지점인 해발 1,326미터의 회령봉과 해발 1,577미터의 계방산사이에 놓인 고개인데, 현리로부터 속사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31번 도로가 지나는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국군 제3군단의 붕괴를 가져온 오마치고개처럼 아군이 점령할 경우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고립시킬 수 있는 목지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중공군의 거센 저항으로 인하여 운두령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화력은 지쳐있는 중공군을 서서히 압도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반격 3일 만인 5월 22일 18시경 미 제3사단은 마침내 운두령 정상을 점령했습니다. 불과 5일전 중공군의 공세초기에 오마치가 피탈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참담한 상황이 완벽하게 재연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국군 제1군단이 대관령을 선점함으로써 깊숙이 남하하였던 중공군은 순식간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주력은 국군 제3군단을 추격하다가 너무 멀리 내려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퇴로가 차단당하자마자 이어진 엄청난 포화와 공습에 대책 없이 녹아내려 갔습니다. 미 제3사단의 운두령전투는 적의 5월 공세를 저지하는 것은 물론 공격 기세를 완전히 차단하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이로써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국군 제3군단을 붕괴시키는 등 전술적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그로 인하여 얻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전략적으로 대실패한 공세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군에게도 이번 공세는 너무나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운두령 점령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우선 적의 차기 작전 예측에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공군 제6차 공세를 앞두고 미 제8군사령부 역시 5월 중순에 중공군의 새로운 공세가 있을 것으로 시기는 정확히 예측하였으나 주력의 지향방향에 대해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이 중-서부의 주력을 불과 일주일 만에 중-동부로 이동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공중정찰을 통해 중공군의 이동 징후를 탐지하였으나 이를 중공군의 기만책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공세 초기인 5월 17일에 신남 일대의 국군 제5, 7사단이 붕괴된 점만으로도 중공군의 지향방향을 식별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제8군의 예비였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의 이동이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이 때문에 중공군의 과도한 남진을 촉진시켰고 그것이 침략자 스스로의 무덤을 파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군 제3군단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패배를 제8군의 전략부재에서 찾을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군 제3군단 스스로에게 더욱 많은 문제가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리 일대에서 전면방어 또는 인제-홍천 축선에서의 공격 등처럼 중공군이 예상치 못하였던 방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격이나 저항은 고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후퇴를 선택한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후퇴가 아닌 붕괴였고 이점에 대한 국군 제3군단의 어떤 변명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밴 플리트가 현리전투 패배의 책임을 물어 5월 26일부로 제3군단을 해체시켜 국군 제9사단을 미 제10군단에, 국군 제3사단을 국군 제1군단에 각각 배속 전환한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국군의 위상이 변화된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변화보다 국군에게 더 한 굴욕은 미 제8군이 직접 모든 국군부대를 지휘하는 체계로 바뀐 점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미군은 국군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뜻에서 육군본부를 통해 국군부대를 지휘해왔으나 이런 절차를 파기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국군 제1군단마저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형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런 굴욕은 내 나라를 내가 지키지 못한데서 온 당연한 귀책사유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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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25 2010.09.03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당시 국군의 화력수준이 어떤수준이였는지 알고계시면 간단히 알려주세요~
    드라마나 영화보면 M1카빈랑톰슨나오던데 맞나요?

  2. JEAN 2010.11.18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6/25를 얼마나 아십니까?"
    모든 국민이 다 6/25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신들이 지켜던 대한민국이 지금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집에 불과하다. 북한이나 김일성에 동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당신들의 신념과 2010년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한민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신들의 가치관이 만고불변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 경직된 국가관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이 당신들이 필요했을지는 모르나,
    지금과 미래를 위해서는 당신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한다.

  3. Jim 2012.04.1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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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Jim 2012.04.15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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