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9.01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19)
  2. 2010.08.10 70. 매봉 및 한석산 전투 (3)
  3. 2010.07.16 62. 다시 탈환한 서울 (7)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1 08:16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군 예비로 후방에 배치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를 급거 이동 전개시켰습니다. 다행히도 이들 부대가 이동이 들어가던 5월 19일을 전후하여 보급에 고질적으로 문제가 많던 중공군의 공세는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하였고 이틈을 타서 미 제3사단은 장평리 일대에 집결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제3사단이 돌파구를 막으러 긴급 이동 전개에 들어갑니다.]


  미 제3사단이 정찰에 돌입한 결과 속사리-하진부리 일대까지 남하한 중공군이 그 동안의 공세로 몹시 지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3사단은 즉시 반격을 펼치기로 하고 운두령 일대를 공격하였습니다. 깊숙이 남하한 중공군 주력의 배후에 위치한 운두령은 속사리 북방 10킬로미터 지점인 해발 1,326미터의 회령봉과 해발 1,577미터의 계방산사이에 놓인 고개인데, 현리로부터 속사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31번 도로가 지나는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국군 제3군단의 붕괴를 가져온 오마치고개처럼 아군이 점령할 경우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고립시킬 수 있는 목지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중공군의 거센 저항으로 인하여 운두령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화력은 지쳐있는 중공군을 서서히 압도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반격 3일 만인 5월 22일 18시경 미 제3사단은 마침내 운두령 정상을 점령했습니다. 불과 5일전 중공군의 공세초기에 오마치가 피탈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참담한 상황이 완벽하게 재연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국군 제1군단이 대관령을 선점함으로써 깊숙이 남하하였던 중공군은 순식간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주력은 국군 제3군단을 추격하다가 너무 멀리 내려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퇴로가 차단당하자마자 이어진 엄청난 포화와 공습에 대책 없이 녹아내려 갔습니다. 미 제3사단의 운두령전투는 적의 5월 공세를 저지하는 것은 물론 공격 기세를 완전히 차단하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이로써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국군 제3군단을 붕괴시키는 등 전술적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그로 인하여 얻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전략적으로 대실패한 공세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군에게도 이번 공세는 너무나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운두령 점령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우선 적의 차기 작전 예측에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공군 제6차 공세를 앞두고 미 제8군사령부 역시 5월 중순에 중공군의 새로운 공세가 있을 것으로 시기는 정확히 예측하였으나 주력의 지향방향에 대해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이 중-서부의 주력을 불과 일주일 만에 중-동부로 이동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공중정찰을 통해 중공군의 이동 징후를 탐지하였으나 이를 중공군의 기만책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공세 초기인 5월 17일에 신남 일대의 국군 제5, 7사단이 붕괴된 점만으로도 중공군의 지향방향을 식별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제8군의 예비였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의 이동이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이 때문에 중공군의 과도한 남진을 촉진시켰고 그것이 침략자 스스로의 무덤을 파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군 제3군단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패배를 제8군의 전략부재에서 찾을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군 제3군단 스스로에게 더욱 많은 문제가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리 일대에서 전면방어 또는 인제-홍천 축선에서의 공격 등처럼 중공군이 예상치 못하였던 방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격이나 저항은 고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후퇴를 선택한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후퇴가 아닌 붕괴였고 이점에 대한 국군 제3군단의 어떤 변명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밴 플리트가 현리전투 패배의 책임을 물어 5월 26일부로 제3군단을 해체시켜 국군 제9사단을 미 제10군단에, 국군 제3사단을 국군 제1군단에 각각 배속 전환한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국군의 위상이 변화된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변화보다 국군에게 더 한 굴욕은 미 제8군이 직접 모든 국군부대를 지휘하는 체계로 바뀐 점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미군은 국군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뜻에서 육군본부를 통해 국군부대를 지휘해왔으나 이런 절차를 파기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국군 제1군단마저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형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런 굴욕은 내 나라를 내가 지키지 못한데서 온 당연한 귀책사유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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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25 2010.09.03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당시 국군의 화력수준이 어떤수준이였는지 알고계시면 간단히 알려주세요~
    드라마나 영화보면 M1카빈랑톰슨나오던데 맞나요?

  2. JEAN 2010.11.18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6/25를 얼마나 아십니까?"
    모든 국민이 다 6/25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신들이 지켜던 대한민국이 지금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집에 불과하다. 북한이나 김일성에 동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당신들의 신념과 2010년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한민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신들의 가치관이 만고불변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 경직된 국가관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이 당신들이 필요했을지는 모르나,
    지금과 미래를 위해서는 당신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한다.

  3. Jim 2012.04.1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 이미친 Jean새끼야... 너희 같은놈들과 같은 하늘아래 살고있다는것이 구역질난다. 나도 젊은 세대지만 역사도 모르고 다양성 운운 경직성 운운하는 니같은 못난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4. Jim 2012.04.15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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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매봉 및 한석산 전투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0 09:04

 

  공산군의 제5차 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자,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즉시 반격에 나섰습니다. 전임 사령관 리지웨이는 일단 상황을 본 후 점진적으로 공세로 전환하는 신중한 스타일의 지휘를 하였지만 밴 플리트는 저돌적인 성격대로 즉각 추격을 결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공산군의 전투력이 고갈된 취약시기를 이용하여 적을 38선 이북으로 완전히 밀어 붙이고 공산군에게 차기공세를 준비할 수 있는 재편성과 휴식의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밴 플리트는 곧바로 반격을 개시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


  사실 이것은 상당히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중공군의 약점이 무엇인지 간파한 이상 그들이 회복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5차례의 공세를 통해서 중공군은 한번 공세가 끝나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회복기를 두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점을 알게 된 이상 집요하게 파고들어 적을 괴롭게 만들수록 중공군의 재정비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이번 중공군의 공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중동부전선을 좀 더 위로 쳐올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세 당시에 공산군 주력을 서부전선에서는 훌륭히 막아내었지만, 오히려 중공군 조공이 견제 공격을 가한 중동부 전선에서 아군은 고전을 겪었습니다. 전선 중앙의 사창리에서 벌어진 국군 제6사단의 붕괴는 서부전선에서 선전을 펼치던 아군이 서울을 다시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철군하여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더불어 중-동부전선의 주 보급로인 홍천-인제-간성간 도로가 북한군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당하였습니다. 따라서 태백산맥 서쪽의 국군 제3군단과 동해안 연안의 국군 제1군단은 보급로가 제한을 받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밴 플리트는 전술도로의 탈환이 시급함을 깨닫고 서부전선에서 적의 공세를 좌절시키자마자 즉시 반격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전방 각 사단들에게 5월 2일부터 위력수색과, 중요목표지역에 대한 공격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부전선의 국군 6개 사단이 5월 7일, 미주리 선(Missouri Line)으로 명명된 춘천-인제-미시령-속초를 연하는 선을 향해 일제히 반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히 확보해야할 고지가 인제의 우측을 감제하는 위치에 있는 한석산과 매봉이었습니다. 당연히 적 또한 이곳을 계속하여 차지하려 하면서 연일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한석산과 매봉을 놓고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 포로가 된 북한군 )


  당시 한석산을 공격한 부대는 국군 제3군단 9사단 30연대였는데, 이 전투에서 제30연대는 72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적 사살 895명, 포로 42명과 4트럭 분량의 보급품 및 탄약을 노획함으로써 지난 제5차 공세 당시에 깊숙이 남진하여 있던 북한군에게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 전투는 1,000미터가 넘는 산악 능선에서 대승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는데, 여담으로 참패를 당한 북한군은 약 1년 전 6.25전쟁 초기에 바로 인근의 홍천에서 굴욕을 겪었던 제12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30연대가 혈전 끝에 확보한 한석산은 차후공격을 위한 유리한 발판으로 사용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실 고지는 차지하면 적을 감제하기는 쉽지만 후속 보급이 어려워 지속적으로 확보하기가 생각보다는 어렵습니다. 특히 전선이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어 유동적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뒤이어 실시된 중공군 제6차 공세를 견디지 못한 국군 제3군단이 현리 일대에서 붕괴되었을 때 어렵게 확보한 한석산은 이 같은 이유로 곧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음 공세를 준비완료 하였습니다.]


  이처럼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 제5차 공세를 슬기롭게 막아내고 5월 2일부터 5월 중순까지 곧바로 실시된 반격작전으로 전선을 12~14킬로미터를 북상시켜 38선 일대에 다시 고정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공군의 제5차 공세는 중공군의 출혈을 유도하며 전선을 오히려 북상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패로 막을 내린 제5차 공세에서 공산군은 아군 전선의 결정적 약점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곧바로 개시된 제6차 공세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제5차 공세 당시에 중공군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제6차 공세가 예상보다 빨리 실시되었고 이것은 전사에 엄청난 피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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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다시 탈환한 서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16 10:04

 

  지난 2월 10월 썬더볼트 작전으로 서부전선에서 한강남단까지 전진한 이후, 바로 강 건너편에 있는 서울은 유엔군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는 서울을 조기에 탈환하는 것이 지난 패배의 악몽을 떨치는 지름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11월 유엔군의 크리스마스공세 실패 이후 이어진 후퇴 그리고 서울의 포기를 한마디로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러한 악몽을 서울을 빨리 재탈환함으로써 하루 빨리 떨쳐 버리고자 했습니다.


[서울 탈환에 대한 맥아더와 리지웨이(左)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정치적 효과보다 군사적인 목표에 충실하여야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적을 격멸하고 밀어붙이면 서울은 저절로 탈환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서울 측방의 확보 없이 무턱대고 도심만 차지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바른 선택이 아니었고, 이미 서울 도심은 지난 1.4후퇴 당시에 완전 소개된 데다가 공습과 포격으로 폐허만 남아있는 텅 빈 상태였기 때문에 군사전략상 반드시 확보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맥아더는 여전히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지난번 북진의 실패로 말미암아 입김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던 성태여서 결국 리지웨이는 소신 것 작전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중부전선에서 격전이 펼쳐졌지만 서부전선은 한강을 경계로 하여 대치상태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아군이 도하할 의도를 하지 않아 교전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기회를 엿보던 결과 리지웨이의 예측대로 중부전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홍천을 공격 중이던 3월 12일부터 서울의 중공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항공정찰결과 서울에 주둔하던 대규모의 중공군 부대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관측되었고 또한 이날 한강을 도하한 미 제3사단의 정찰대도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3월 14일, 국군 제1사단에서 파견된 5개의 정찰대가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 시가지를 후속 정찰하였으나 적 부대를 발견하지 못 했고 이때 1개 정찰대가 중앙청으로 진출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내거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중부전선이 심각하게 무너지는 와중에 폐허가 된 텅 빈 서울을 중공군이 잡고 있을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습니다. 한 달여의 지루한 대치와 맥아더의 닦달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인내하며 기회를 엿보던 리지웨이는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로 진입하여 적정을 살피는 국군 제1사단 정찰대]


  3월 15일, 리지웨이는 미 제1군단장에게 강을 건너 서울 북쪽의 주요 고지군을 점령하도록 명령했습니다. 3월 15일 05시 30분에 수륙양용장갑차로 무장된 1개 대대가 마포방면으로 도하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 탈환임무를 부여받은 국군 제1사단 15연대는 16일 아침 도하를 완료하여 서울전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치열한 시가전 끝에 탈환한 지난 9. 28 서울수복작전 당시와 달리 중공군의 반격이나 시가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탈환한 서울은 지난 1년 동안 그 동안 4번이나 주인이 바뀌어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1.4후퇴 전 150만 서울시민중 부득이한 사유로 피난을 가지 않고 남아있는 시민은 20만이었는데, 이들에게 제공해줄 식량마저도 부족한 실정이었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별도의 수복행사를 열지 않고 부산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서울의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시민들에게 복귀를 자제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비록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전쟁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한국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킬 수 있었지만 당시의 전황으로 볼 때 또 다시 서울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 및 시민의 귀환은 상당기간 지연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한강을 건너 마포에 진입한 국군 제1사단]


  이것은 중공군의 공세가 재개되고 전략적으로 적을 막아내기 힘들다면 또 다시 서울을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물러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런 입장은 서울을 선선히 내주고 북으로 물러간 중공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덧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서울은 이제 단지 상징과 명분만 있는 곳이지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악착같이 사수항려야 할 장소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전쟁은 동아시아에서 3번째로 컸던 도시를 이처럼 유령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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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ke free money 2011.09.27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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