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단'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9.27 82. 시작된 줄다리기 (6)
  2. 2010.09.01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19)
  3. 2010.07.21 63. 다시 38선으로 (3)

82. 시작된 줄다리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27 08:16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첨예한 신경전을 보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회담장에 마주앉았지만 처음부터 회담이 잘 되었을리 없었습니다. 7월 11일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으나 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자세부터 커다란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엔군 측은 협상의제, 휴전감시방법, 전쟁포로 등 군사적인 문제만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라고 주장했지만, 공산군 측은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지, 외국군 철수 등을 우선적으로 토의하자며 정치적인 주장을 앞세워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공통의제로 떠오른 군사분계선마저 우리는 현 전선보다 북쪽을, 북한 측은 전쟁 전의 남북 분계선인 38선을 주장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회담장 출발 직전 리지웨이의 환송을 받는 휴전협상 대표단]


  처음부터 이렇게 난항을 겪은 것은 휴전회담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자하는 공산군 측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대표단만 해도 유엔군 측은 정치에 관여해 본 일이 없는 순수한 야전 군인들로 구성하였지만, 반면 공산측은 군복을 입었지만 정치경험이 있는 자들로 선발했을 정도였고 더구나 회담을 실질적으로 막후에서 지휘하던 자는 스탈린이었습니다. 그는 형식상 마오쩌둥에게 회담의 전권을 위임한 것처럼 하였지만 회담장소를 최초에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공해상의 덴마크 병원선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공산군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서 회담을 벌이도록 전문으로 통해 지시하였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이러한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제1차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유엔군은 1개월간의 전투중지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몇 주일이면 회담이 완전히 끝나고 휴전에 이를 것으로 낙관적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설전 끝에 7월 26일에야 총 5개항으로 구성된 토의의제를 겨우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의제선정은 이제부터 말로써 싸울 범위를 선정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이렇게 겨우 합의를 도출한 제1차 휴전회담은 이후 2년간 계속되는 지루한 마라톤의 출발점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것은 토의의제 중 제 2항에 규정한 군사분계선 설정이었습니다. 전쟁이전 남북 간 분계선이었던 38도선을 주장하는 공산군 측과 해-공군의 우세를 반영해 오히려 현 접촉선 보다 아군의 전략적인 공격 범위에 노출 된 북쪽에 분계선을 설정해야한다는 유엔군 측과 주장이 팽팽히 맞섰고 결국 8월 23일, 공산군 측이 일방적으로 회담불참을 선언함으로써 회담이 결렬되었습니다.


[첨예한 회담 이면에는 이런 모습도 간혹 있었습니다.

회담장 밖에서 단소를 나누는 유엔군 헬기 조종사와 북한여군]


  이에 유엔군은 군사적 압박을 가하여 공산군을 회담장으로 다시 불러낸다는 방침을 수립하고, 또한 차후 예상되는 군사분계선 설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려기 위한 제한적인 군사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양구 지역의 해안분지(이른바 펀치볼),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백석산 등지를 점령했고 동해안의 국군 제1군단이 월비산을, 중부지역에서는 국군 제2사단이 금성의 서남쪽 후방까지 진출하였으며, 국군 제6사단이 금성천과 교암산을 점령했습니다. 결국 아군의 행동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공산군 측은 결국 회담 재개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엔군은 회담장소의 불리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당시 접촉선인 경기도 파주군 진서면 어룡리의 널문리 마을로 장소변경을 주장하였고 회담 재개가 다급해진 공산군 측이 개성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회담성사가 어려워 질것으로 예측하여 여기에 전격 동의함으로써 이곳이 새로운 회담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만큼 1951년 초가을에 있었던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아군의 압박은 전사에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공산군 측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던 군사작전이었습니다.


[널문리의 임시 회담장, 이후 이곳이 판문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곳은 널문리 마을 초입에 있던 주막 앞은 사방이 탁 특인 평범한 콩밭이었는데 여기에 텐트를 치고 회담이 재개 되었습니다. 이곳은 단지 남북 간 군사 접촉선에서 평평하게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는 중간지점으로 어느 일방도 사전에 매복하고 있다가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기는 힘들다는 지리적인 이유만으로 선정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널문리의‘널’자를 교전당사국중의 하나였던 중국어로 표기할 수 없어 이를 의역하여‘널문리 주막’의 한자어 표기인 ‘판문점(板門店)’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세계적으로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유명한 지명이 되었고 아쉽게도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생생! 6·25 > 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9) 2010.10.01
83. 뜨거운 감자, 개성  (5) 2010.09.30
82. 시작된 줄다리기  (6) 2010.09.27
81. 개시된 휴전회담  (7) 2010.09.17
80. 불승불패(不勝不敗)의 전략  (15) 2010.09.15
79. 용문산의 승전보  (16) 2010.09.10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05.14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auto insurance rates 2012.05.21 1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건 그냥 아주 가끔 읽어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이트에 대해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거의 주제에 게시된 것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찾았 함께. 웹 사이트는 더 많은 이유 테마를 이해하고자하는 사람에게 최적입니다. 멋진 일들; 계속 쓸 제발!

  3. countrywide insurance 2012.05.21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좋은 웹 사이트를 포용했습니다. 내가 진정 명시적 사람이 여기에 멋진 보고서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해줘서 감사에 대해서 말을하고자합니다. 이것은 엘리트 서면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와 블로그에서 유용한 의견을 공개하기위한.

  4. farmers insurance promises 2012.05.21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이 당신에게 완전히 새로운 완벽하게 준비 여가 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고상한 위에있는 사람은 먼저 말해두 겠는데. 당신의 작은 친구 천사는 일반적으로 수행된다. 그들은 여러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위협하지 않습니다. 웹사이트 웹 사이트의 손님은 그들이 아늑하고 저장할 수 한랭의 움직임 이내 측면을 방어.

  5. rattan furniture exporter 2012.12.30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로 작성된 콘텐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 및 사이트

  6. research essay 2013.02.07 0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각합니다. 정말 누텔라 상품의 가격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하지만, 이건 정말 저렴한 것 같습니다.항목을 추가하려면 그것과 음료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76. 운두령에서의 역전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1 08:16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군 예비로 후방에 배치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를 급거 이동 전개시켰습니다. 다행히도 이들 부대가 이동이 들어가던 5월 19일을 전후하여 보급에 고질적으로 문제가 많던 중공군의 공세는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하였고 이틈을 타서 미 제3사단은 장평리 일대에 집결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미 제3사단이 돌파구를 막으러 긴급 이동 전개에 들어갑니다.]


  미 제3사단이 정찰에 돌입한 결과 속사리-하진부리 일대까지 남하한 중공군이 그 동안의 공세로 몹시 지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 제3사단은 즉시 반격을 펼치기로 하고 운두령 일대를 공격하였습니다. 깊숙이 남하한 중공군 주력의 배후에 위치한 운두령은 속사리 북방 10킬로미터 지점인 해발 1,326미터의 회령봉과 해발 1,577미터의 계방산사이에 놓인 고개인데, 현리로부터 속사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31번 도로가 지나는 주요 길목이었습니다. 이곳은 마치 국군 제3군단의 붕괴를 가져온 오마치고개처럼 아군이 점령할 경우 중공군의 퇴로를 차단하면서 고립시킬 수 있는 목지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중공군의 거센 저항으로 인하여 운두령 일대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화력은 지쳐있는 중공군을 서서히 압도하여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반격 3일 만인 5월 22일 18시경 미 제3사단은 마침내 운두령 정상을 점령했습니다. 불과 5일전 중공군의 공세초기에 오마치가 피탈됨으로써 국군 제3군단이 무기력하게 무너졌던 참담한 상황이 완벽하게 재연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번에는 주연과 조연이 뒤바뀐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국군 제1군단이 대관령을 선점함으로써 깊숙이 남하하였던 중공군은 순식간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공군주력은 국군 제3군단을 추격하다가 너무 멀리 내려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퇴로가 차단당하자마자 이어진 엄청난 포화와 공습에 대책 없이 녹아내려 갔습니다. 미 제3사단의 운두령전투는 적의 5월 공세를 저지하는 것은 물론 공격 기세를 완전히 차단하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이로써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국군 제3군단을 붕괴시키는 등 전술적으로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그로 인하여 얻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전략적으로 대실패한 공세로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군에게도 이번 공세는 너무나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습니다.


[운두령 점령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습니다]


  우선 적의 차기 작전 예측에 완전히 실패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공군 제6차 공세를 앞두고 미 제8군사령부 역시 5월 중순에 중공군의 새로운 공세가 있을 것으로 시기는 정확히 예측하였으나 주력의 지향방향에 대해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이 중-서부의 주력을 불과 일주일 만에 중-동부로 이동시켜 공격준비를 완료하리라고는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아니 공중정찰을 통해 중공군의 이동 징후를 탐지하였으나 이를 중공군의 기만책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공세 초기인 5월 17일에 신남 일대의 국군 제5, 7사단이 붕괴된 점만으로도 중공군의 지향방향을 식별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제8군의 예비였던 미 제3사단과 미 제187공수연대의 이동이 늦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이 때문에 중공군의 과도한 남진을 촉진시켰고 그것이 침략자 스스로의 무덤을 파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지만 그 반대급부로 국군 제3군단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3군단의 패배를 제8군의 전략부재에서 찾을 수만은 없습니다. 오히려 국군 제3군단 스스로에게 더욱 많은 문제가 있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리 일대에서 전면방어 또는 인제-홍천 축선에서의 공격 등처럼 중공군이 예상치 못하였던 방책을 강구할 수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반격이나 저항은 고사하고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후퇴를 선택한 것은 결코 올바른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후퇴가 아닌 붕괴였고 이점에 대한 국군 제3군단의 어떤 변명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밴 플리트가 현리전투 패배의 책임을 물어 5월 26일부로 제3군단을 해체시켜 국군 제9사단을 미 제10군단에, 국군 제3사단을 국군 제1군단에 각각 배속 전환한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국군의 위상이 변화된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인 변화보다 국군에게 더 한 굴욕은 미 제8군이 직접 모든 국군부대를 지휘하는 체계로 바뀐 점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미군은 국군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뜻에서 육군본부를 통해 국군부대를 지휘해왔으나 이런 절차를 파기하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국군 제1군단마저 직접 지휘하는 것으로 형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런 굴욕은 내 나라를 내가 지키지 못한데서 온 당연한 귀책사유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6.25 2010.09.03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당시 국군의 화력수준이 어떤수준이였는지 알고계시면 간단히 알려주세요~
    드라마나 영화보면 M1카빈랑톰슨나오던데 맞나요?

  2. JEAN 2010.11.18 0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6/25를 얼마나 아십니까?"
    모든 국민이 다 6/25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신들이 지켜던 대한민국이 지금도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집에 불과하다. 북한이나 김일성에 동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당신들의 신념과 2010년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한민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당신들의 가치관이 만고불변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이제는 그 경직된 국가관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시대에 와있다.
    그 시대에 대한민국이 당신들이 필요했을지는 모르나,
    지금과 미래를 위해서는 당신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한다.

  3. Jim 2012.04.1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 이미친 Jean새끼야... 너희 같은놈들과 같은 하늘아래 살고있다는것이 구역질난다. 나도 젊은 세대지만 역사도 모르고 다양성 운운 경직성 운운하는 니같은 못난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4. Jim 2012.04.15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 이미친 Jean새끼야... 너희 같은놈들과 같은 하늘아래 살고있다는것이 구역질난다. 나도 젊은 세대지만 역사도 모르고 다양성 운운 경직성 운운하는 니같은 못난놈들이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5. home owner insurance cost 2012.05.25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그냥 기쁘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정말 정보와 매우 현명한 보관됩니다. 당신이 실제로 사람들이 오늘날 이해할 수있는 요소를 게시하고 모든 흥미로운 틈새했다. 전 직원이 장기에 관한 이런 종류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6. internet site sources additional helpful 2012.05.25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감동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최신 진정으로하고있어, 매우 현명한. 당신은 실제로 사람이 누구를 위해 자극 틈새 시장을 하였던 그것들로 이해를 가질 수있는 문제를 썼습니다. 오래 용어의 사용을 위해 이런 종류의 보존입니다.

  7. sarasota people insurance quotes 2012.05.25 1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내가 반했어요. 당신은 진정으로 지식과 강렬한 현명한한지 확인하십시오. 개인은 사람이 모든 사람을위한 틈새 시장이 흥미로운 인류에 인식할 수있는 무언가를 작곡. 지금은 장기 신청을위한이 특정한 보존이다.

  8. SunVPN VPN service 2013.01.12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이 기사 사용할 수 있도록 원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이트는 축하에 있습니다. 매우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승인 코멘트를하고 상호 작용을 유도 할 수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9. free information 2013.04.02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이 기사 사용할 수 있도록 원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사이트는 축하에 있습니다. 매우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승인 코멘트를하고 상호 작용을 유도 할 수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10. chatrandom 2013.04.03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

  11. apple gadgets 2013.04.25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당신을 위해 매력적인 틈새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장기가 이용을 위해 이런 종류의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습

  12. chatrandom 2013.04.27 0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공군 제6차 공세가 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13. gclub 2013.04.29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밴 플리트가 현리전투 패배의 책임을 물어 5월 26일부로 제3군단을 해체시켜 국군 제9사단을 미 제10군단에, 국군 제3사단을 국군 제1군단에 각각 배속 전환한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14. Smart Bookmarks 2013.05.12 0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서히 둔화되기 시작하였고 이틈을 타서 미 제3사단은 장평리 일대에 집결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15. vapor brothers 2013.05.22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리까지 종심 70여 킬로미터의 대규모 돌파구가 형성되자, 군 예비로 후방에 배치하고 있던 미 제3사단과 미

  16. www.movingbestdeals.com 2013.05.28 0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당신을 위해 매력적인 틈새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장기가 이용을 위해 이런 종류의 대부분을 유지하고 있습

  17. write a condolence 2013.06.16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18. plumber freehold nj 2013.06.20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지 종심 70

  19. painting new jersey 2013.07.08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하고 있던 제8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그의 예상과 달리 중공군의 주력이 중-동부에 집중되어 속사리까

63. 다시 38선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1 08:47

 

  서울의 군사적 의의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탈환한 이상 또다시 적에게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서울을 한 번 더 적에게 내어준다면 그때는 전선이 한강일대에서 완전히 고착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38선 일대인 임진강을 연하는 선까지는 전선을 밀어붙일 필요성이 절실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공세를 생각할 수 없도록 적에게 심대한 피해를 강요하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반복적으로 공세를 수행하는 동안 중공군과 북한군은 아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이전에 철수를 반복함으로써 주력을 격멸하는데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을 후퇴시키고는 있었지만 격멸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의정부 북방에 북한군 제1군단과 중공군 제26군이 몰려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들 중 의정부 서북쪽의 북한군 제1군단은 아군이 밀어붙이면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포진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아군이 문산 북방의 교량만을 먼저 차단할 수 있다면 이들을 일거에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리지웨이는 대구에 위치하고 있는 제187공수연대를 임진강 남쪽에 공수시켜 퇴로를 차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제187공수연대는 3월 23일 07시에 대구비행장을 이륙하여 문산 북동쪽에 성공적으로 낙하하는데 성공하였고 북한군 136명 사살과 149명을 포로로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포로 들을 신문한 결과, 중공군과 북한군의 주력은 공수연대의 투입 바로 직전에 임진강북쪽으로 철수하였음이 밝혀지면서 적의 주력을 차단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이처럼 의정부 북쪽이 텅 비게 되자 다음날 국군 제1사단이 문산-법원리까지 진출하였고 이어서 미 제3사단과 미 제25사단이 임진강까지 북상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동해안 지역에서 국군 수도사단과 국군 제9사단으로 편성된 국군 제1군단이 3월 25일부터 양양을 향하여 공세를 개시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9여단이 험준한 산악지역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동해상에 배치된 미 함정의 지원 함포사격에 의해 전의를 잃고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3월 27일 수도사단이 남대천을 도하하여 양양을 점령함으로써 한강하구 서쪽을 제외한 38선 일대에서 전선은 다시 형성되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군은 다시 38선에 섰고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였습니다.]


  이렇게 아군이 다시 38선 일대에 정렬하자 미국정부는 38선의 재 돌파에 관한 모든 것을 야전군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에게 일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1950년 10월에 있었던 북진과는 개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미국의 의도는 38선 이북을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 상태에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한적인 돌파만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으로 이어지는 선에 경고한 방어지대를 설치할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캔사스선(Kansas Line)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방어선은 총 184킬로미터에 이르렀지만 서부전선에서는 22킬로미터는 한강하구를, 중부전선은 16킬로미터에 걸친 화천저수지를 방어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4월 1일부터 현 전선을 38선에서 캔사스선까지 밀어 붙이기로 하고 이를 요철작전(Rugged Operation)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은 전열을 재정비한 상태가 아니어서 아군은 38도선을 기준으로 서부에서는 3.2~9.6킬로미터, 동부에서는 16킬로미터까지 손쉽게 북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 애초 캔사스선은 38선 북방에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연결하여 임의적으로 설정한 방어선이었는데, 아마도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때부터 대략 이 곳을 기준으로 미래의 군사분계선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아군이 캔사스선에 이르렀을 때, 중공군의 대부대가 평강-철원-김화를 연결하는 삼각지대(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Iron Triangle)에 집결하여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원산과 서울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여서 중공군의 차후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단속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은 캔사스선 10~20킬로미터 북방에 와이오밍선(Wyoming Ling)을 설정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에 재차 돌입하였습니다. 4월 11일 개시된 작전의 명칭은 작전명 불굴(Dauntless Operation)이었습니다. 작전명답게 제8군은 쉬지 않고 진격을 재개하여  전선을 한 번 더 북으로 걷어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초 공세는 비교적 용이하게 진행되었으나, 4월 22일부터는 도처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전진이 멈추었습니다.


[중공군은 대응이 거세어지면서 반격이 예상되었습니다. ]


  리지웨이는 이것이 적이 새로운 대공세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신호로 해석하였습니다. 지난 4차 공세이후 두 달이 경과하는 동안 중공군의 특이 동향이 없었는데, 그것은 중공군이 공세에 나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각 부대에“적의 공세를 중단하고 적의 역공에 대비하여 방어로 전환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철의 삼각지를 눈앞에 두고 공격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는 중공군이 언제 어디로 공격해 올 것인가였습니다.

'생생! 6·25 > 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5. 거인의 퇴장  (5) 2010.07.28
64. 어디까지 진격할 것인가  (4) 2010.07.27
63. 다시 38선으로  (3) 2010.07.21
62. 다시 탈환한 서울  (7) 2010.07.16
61. 도살작전과 절단작전  (6) 2010.07.15
60. 용기로 얻어낸 대승  (7) 2010.07.14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47insurancequotes digital 2012.05.26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감동 받았어. 당신은 진정으로 잘뿐만 아니라 똑똑해 정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에게 흥미로운 주제를 생성 인식할 수있다는 것을 썼습니다. 지금은 미래를위한 이런 종류의 활용 있겠어.

  2. 247insurancequotes multilevel alternatives 2012.05.26 14: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알아내는 당신으로부터 환상 정보, 남성. 내 앞에는 자신만의 요소를 이해했고, 당신은 단순히 너무 멋지세요. 당신이 현재이 기사에 있던 모든 물건을 사랑 해요. 당신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만 단지 smart.This 많은 감사가 논의 우수 블로그 유지하기 위하여 그것을 유지 관리할 수 있습니다.

  3. 247insurancequotes specs 2012.05.26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크레 더블, 좋은 포스트, 지금은 그들이 당신 you.You이에 대해 한 번 더 문서를 필요한 수 있도록 제공을 위해 post.Thank 당신에 대한 충분한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브라우징 많은 사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