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사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10.20 91. 파로호를 장악하다 (17)
  2. 2010.08.03 백인엽대령의 희생정신 (38)
  3. 2010.03.09 23. 포항에서의 일진일퇴 (62)

91. 파로호를 장악하다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20 11:28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과 수입면에 걸쳐 있는 해발 1,124미터의 백석산 일대는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전형적인 강원도 두메산골로 서측에는 북한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남측에는 파로호(화천호)가 동에서 서로 북한강과 연결된 곳이었는데, 이로 인하여 전선이 남쪽으로 심한 만곡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을 담당하던 미 제10군단은 좌측을 담당한 미 제9군단과의 연결을 단축시키고 동시에 우측에 있는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에서 고군분투하던 미 제2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전선을 북상시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백석산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전선을 단축하고 파로호를 완벽하게 확보하기 위해 전선을 북상시켜야 했습니다.](1951년 5월 파로호와 화천댐의 모습)


  당시에 이곳을 담당하던 부대는 국군 제7사단이었는데, 장마가 끝난 8월 18일부터 피의 능선을 공격중인 미 제2사단과 보조를 맞추어 서서히 북상을 개시하였습니다. 제7사단은 9월 16일에 백석산 남쪽 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772고지(일명 마가터)를 점령하고, 이어서 9월 18일에선 백석산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883고지(선의대)를 점령하는 등 계획대로 주변 고지들을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국군 제7사단은 그 동안 장기간에 걸쳐서 임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부대재편이 요구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따라서 백석산 점령은 진지를 인계받을 제8사단이 담당하기로 예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단장의 능선을 공격 중이던 미 제2사단이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에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곳에 집중되어 있던 적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이어스 미 제10군단장은 백석산의 탈환 없이는 단장의 능선지역에 몰려있는 적을 분산시키기 어렵다고 결론내리고, 9월 22일 진지교대를 앞두고 있던 국군 제7사단에게 즉시 공격을 개시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로써 후방으로 빠질 준비를 하던 제7사단은 황급히 공격준비를 갖추어 9월 24일부터 백석산 공략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대대적인 지원 포격과 함께 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예하 제8연대가 서측능선으로, 제3연대가 동측능선을 따라 9월 25일부터 양면공격을 개시하였고 이틀간에 걸친 공세 끝에 백석산의 정상부근까지 도달하였지만 제7사단은 그동안 너무 지쳐있던 상태여서 점령에는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9월 28일부로 임무를 노전평 지역 전투에서 승리한 후 이동한 국군 제8사단에게 인계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때 백석산을 담당하던 북한군 제5군단 32사단도 많은 피해를 입어 같은 날 북한군 제12사단과 임무를 교대하였습니다. 이로써 백석산은 피아 양측 모두 새롭게 충전된 부대들이 정면에서 격돌하는 결전의 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아군의 폭격과 포격에 북한군의 전력은 급속도로 저하되고 있었지만 만일 백석산을 아군에게 피탈당하면 10킬로미터 후방인 해발 1,277미터의 어은산까지 후퇴하여야 하기 때문에 백석산을 지켜야 한다는 북한군의 의지만은 상당히 컸습니다. 최영희(崔榮喜) 제8사단장은 좁은 능선에만 병력을 집중시키면 적들도 전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고 서측에 제26연대, 중앙에 제16연대, 동측에 제10연대를 배치하여 3개연대가 9월 30일 06시 동시에 공격에 나섰습니다.


  대대적인 포격이 백석산 정상과 후사면을 강타하였고 뒤이어 공격제대가 정상을 향해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공격제대가 적진지에 접근해 갈수록 적의 저항은 강렬해 져서 목표를 불과 200미터를 남기고 공격이 돈좌되었습니다. 최영희 사단장은 서두르지 않고 일단 정상 인근에 급편진지를 편성하여 전력을 재정비하였고 다음날 아침, 항공기가 적의 진지를 강타한 틈을 타서 2개 대대가 좌측 봉우리와 우측 봉우리를 동시에 공격하여 마침내 10월 1일 12시경 백석산을 점령하였습니다.


[백석산을 점령하면서 이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 되었습니다.]


  제8사단은 백석산 점령을 공고히 하기 위해 10월 6일부터 백석산 북방으로 내려와 어은산 방향으로 공격을 계속하였고 그 결과 10월 28일에는 현재의 휴전선 부근인 북한강변 동측의 삼막골-슬구내미-1090고지(어은산 남쪽 2킬로미터 부근)를 연하는 선까지 진출하여 공격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후 제8사단은 어은산을 지척에 두고 적의 반격에 대비하여 진지강화에 힘쓰게 되면서 이때 확보한 전선이 군사분계선으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로 인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화천댐과 파로호는 확실하게 아군이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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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엽대령의 희생정신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03 08:21


 
오늘날 인내의 화신이자 각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
  그가 남긴 유훈은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큰 감흥이 되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라 정실 쓰키야마 부인을 처형하고 장남 노부야스를 할복시킴은 물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지 이동령에도 아무런 불평 불만없이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결과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오타니 요시쓰구, 우키다 히데이에가 주축이 된 서군을 격파하고 일본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人の一生は重荷を負うて 遠き道を行くが如し
  急ぐべからず。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心に望み起らば
  困窮したるときを思い出すべし。
  堪忍は無事長久の基、怒りは敵と思え
  勝つことばかり知りて、負けることを知らざれば
  害その身に至る。
  己を責めて人を責めるな
  及ばざるは過ぎたるより勝れり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마라.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마음에 욕망이 생기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지나친 것보다 나은 것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
  풀잎 위의 이슬도 무거워지면 떨어지기 마련이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 ━

 
아! 6·25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흔히들 일본 통일의 3대 주역으로 꼽히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평가가 남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온갗 수모와 치욕을 견뎌내며 참고 또 참아내며 아무런 불평없이 살아온 결과 최종적으로 에도 바쿠후를 창건하고 200년이 넘는 태평성대를 이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은 오늘날 우리 세대들에게 많은 감흥을 줍니다.


  그 중에서도 1616년, 슨푸성에서 임종하기 전에 남긴 유훈은 시간에 쫓기고 한탕 인생을 추구하는 현대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데 이 중 '
不自由を常と思えば不足なし, 즉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에 해당되는 일화가 바로 6·25 전쟁 중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1950년 6월 25일, 개전 이후 1년 동안
육·해·공 3군 총사령관 겸 육군총참모장을 역임하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정일권 중장(위의 사진)이 자신의 계급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제 2보병사단 사단장에 임명되었던 일입니다.
  명색이 육군참모총장 및 3군의 수장을 역임한 장성에게 국방부 장관도 아닌 육군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 사단장을 맡으라니, 이렇게 황당한 인사가 또 없을 것입니다.
  요즘 같았으면 아마 정일권 중장은 부당한 인사에 항의하기 위해 전역 지원서를 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정일권 중장은 이러한 부당한 인사에도 불구하고 제 2보병사단장 부임을 앞두고 "이 충무공의 백의종군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일선에 투신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전 이래 혁혁한 전공을 세웠던 백선엽 제1 보병사단장의 동생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을 역임한 후 다시 연대장으로 임명된 경우입니다. 


  백인엽 대령은 개전 직전에 발발한 여수·순천 제14 보병연대 반란사건 당시 제12 보병연대를 지휘해 진압작전을 성공리에 이끈 지휘관이었습니다.


  1950년 7월 말까지 경북 안동에서 청송에 이르는 전역 기간 중 북한군에게 혹심한 피해를 입은 한국군 수도사단은 결국 국방부에 의해 문책을 받아 사단장 김석원 준장이 보직 해임되고
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추천으로 백인엽 대령(위의사진)이 후임 사단장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개전 초 제17 보병연대장을 역임한 후 1950년 8월 1일, 27세의 나이에 최연소 사단장으로 승진한 백인엽 대령!
  요즘 같으면 고향 주민들이 동구밖 가수원길부터 경축 현수막을 내걸고 중·고등학교 동문들은 학교 교문에 현수막을 내걸며 자축할 경사와도 같은 일이었지만 전시의 상황에서 그런 여유는 한낱 꿈속의 꿈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백인엽 대령은 준장 진급( 1950년 10월 24일이 되어서야 겨우 '별'을 달았습니다 )도 하지 못한 채 사단을 이끌게 되었으니까요.
  여하튼 진급은 못했지만 사단장으로 부임한 백인엽 대령은 8월 한달 동안 낙동강 방어선의 중동부인 안강~기계 방면에서 포항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온 북한군 제 12사단과 766유격대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히고 해당 지역을 사수합니다.
  이 부대는 최근 좋은 흥행성적을 낸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들이 포항여중에서 결사적으로 저지하고자 했던 부대죠.
  이 전투에서 수도사단에 패한 766유격대는 비학산에서 해체돼 제12사단에 흡수되는 치욕을 겪습니다.
 
포항 지구의 격전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현재의 고착된 전선을 타개하는 한편 북한군에게 통쾌한 반격을 가할 크로마이트 작전, 즉 인천상륙작전에 한국군의 참전이 결정되면서 지휘관으로 누구를 임명하는가? 에 대한 인사 문제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심각하게 논의되었습니다.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과 연대장으로 각각 임명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신성모 국방부 장관.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은 가급적이면 전투를 잘 지휘할 수 있는 장교가 좋겠다는 견해를 피력했고 이에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이 때도 수도사단장 백인엽 대령을 추천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그 사람으로 합시다!"
  이승만 대통령은 흔쾌히 백인엽 대령의 임명을 승낙했습니다.
  문제는 크로마이트 작전에 참가할 한국 육군이 1개 연대라는 점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크로마이트 작전을 앞두고 한국군의 참전이 결정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지만 그 규모는 겨우 1개 연대에 불과해 백인엽 대령에게 큰 고민으로 다가섰습니다.

  당연히 신성모 장관은 사단장을 한 대령에게 다시 연대장을 역임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결국 백인엽 대령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현재 계획 중인 반격작전에 참가하는 연대의 지휘를 맡아주었으면 하오. 지금 사단장을 하고 있는 사람한테 이러는 것은 곤란하지만 백 대령의 의견을 듣고 싶소. 어찌하시겠소?"
  그러자 백인엽 대령은 불만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장관님, 전쟁을 하는데 사단장이면 어떻고 연대장이면 어떻겠습니까? 뭐 중대장도 괜찮습니다. 까짓거 백의종군 하지요. 맡겨만 주십시오”고 당차게 답변했습니다. 
  현재 연대를 지휘하는 사단장 보직을 수행하는 그에게 있어 이는 대단히 큰 치욕이자 불명예였음에도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과 더불어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강등시킨 백인엽 대령!
  하지만 그가 어느 부대를 지휘하느냐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할 부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신성모 국방부 장관에게 반드시 한국군의 이름을 드날릴 훌륭한 부대를 선정할 것을 신신당부했습니다.
  따라서 신성모 장관은 백인엽 대령을 호출해 어느 연대를 지휘하겠느냐고 물었고 백인엽 대령은 주저할 것 없이 개전 초부터 생사고락을 같이한 제17 보병연대를 선택했습니다.

  두번째로 연대장을 맡게 된 백인엽 대령의 의지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되어 있던 제17 보병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17 보병연대는 요충지인 경주 일대에 배치되어 있었고 당연히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중장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사단장에서 연대장으로 강등시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백인엽 대령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17 보병연대는 경주에서 이동해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미 해병대와 한국 해병대, 그리고 미 제7 보병사단과 한국군 제17 보병연대 등이 참여한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의 의표를 찌르며 성공리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개전 이후 두번째로 제 17보병연대장에 부임한 백인엽 대령은 인천을 탈환한 후 다시 수도 서울을 탈환하는데 앞장섰습니다.
  제 17보병연대는 개전 초 옹진반도에서 당했던 참패의 치욕을 되갚으며 인천 상륙 이후 미 제7 보병사단에 배속돼 잠실 방면에서 한강을 도하한 뒤 남산을 탈환하고, 북한군의 증원부대 및 퇴로 차단을 위해 망우리에 전개했습니다.


 
서울에 입성해 치열한 시가전을 치르고 있는 미 해병대원들. 제17 보병연대는 백인엽 대령의 지휘 하에 북한군의 발악적인 저항을 격퇴하며 9월 28일,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9월 28일 서울을 북한군에게서 탈환한 제17 보병연대가 폐허가 된 시가지의 잔해들을 치우는 한편 경무대 경호와 수도경비임무에 전념했고 이를 지켜본 미군들은 제17 보병연대를 ‘서울연대’로 호칭했습니다.
  이렇듯 백인엽 대령의 제17 보병연대는 서울탈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백인엽 대령은 10월 24일 준장 진급과 동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으로 영전했고, 제17 보병연대는 제2 보병사단에 예속된 후 저격능선전투에서 중공군을 격파하며 그 용맹을 과시했습니다.
  백인엽 대령의 희생정신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불합리한 대우라도 아무런 불만없이 잘 받아들여 성과를 낸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무리한 요구를 받거나 정도 이상의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으시더라도 백인엽 대령의 희생정신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고 호쾌하게 "예! 맡겨만 주십시오!!"를 외친다면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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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타임머신 2011.07.02 2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안중에 두었겠습니까.... 그냥 갈기고 보는거죠...
    형님인 백선엽 장군은 지리산 근처에서 빨갱이 잡는다고, 지리산 주변 주민들까지
    준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동생인 백인엽 장군은 여순사건 때, 반란 군인들은 이미 지리산 및 다른 지방으로
    도망쳤는데, 민간인 중에서 빨갱이 잡는다고, 사람들 죽이고...

    햐.... 자신들의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 죽이는거...
    뭐 별거 있습니까?

    임진왜란 때 공적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죽인다는 것...
    다 구라갔죠? 전시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치안이 불안할 때, 무력이 최고고
    그 무력으로 공적을 위해서라면, 민간인 가지고 노는거
    일도 아니죠...
    (요즘에야 개념이 잡혔지만... 글쎄요... 전시에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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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엽 성질 더러운 놈으로 유명했죠. 후퇴하다가 사병한명이 짚차를 막아서 통행에 방해했다고 권총으로 즉결처분한적도있고, 공산군에 부역한 민간인들 잡아내서 일본도로 참수하기도하고, 자기형인 백선엽장군 아니었다면 피해가족들한테 생매장되었을겁니다.
    그리고 선인재단 만들어서 온갖 비리를 저질렀죠. 인천의 화교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버려서 대만대사관에서 항의하고, 강제철거하면서 온갖 폭행사건 터지고..
    글쓴분은 역사공부 많이하시고 정신차리세요.

  6. 지랄하네 2013.02.03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미친 새끼 때문에 형 백선엽까지 도매급으로 욕 처먹는 건 아슈?

    • 영웅 2013.10.21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선엽이 지 자신만으로도 욕쳐먹어 마땅한 기회주의자 인데 동생의 개망나니짓은 화룡점정 정도....ㅋㅋ

  7. 개념 2013.02.13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도 모르는 사람들이 안보인다고 댓글로 똥을 싸놓네
    6.25전쟁때 북괴에 맞서 목숨바쳐 나라를 위해 충성한 장군아닌가?

  8. 개그 2013.03.05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일화 많지....
    병사가 지프차 앞 막았다고 처형, 지프 시동 껐다고 운전병 처형...
    진정한 친일파 인간 쓰레기가 백인엽이다 차라리 채병덕이 양반이지..그나마 전선에서 뒤지기라도 했으니
    그러고도 아직도 살아있는거도 웃기고 이런걸 좋다고 빠는넘이 있는건 더한 개그다

  9. chat random 2013.05.02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날 인내의 화신이자 각 대기업 경영진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도쿠가와 지로사부로 이에야스

  10. 바른역사 2013.05.0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 신성모 대한민국역사이래 최고의 기회주의자요 야비하고 잔이한 아부꾼들 찬양하는 글을쓴 인물은 도데체 누구? ㅉㅉㅉ

  11. Click here 2013.05.27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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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www.bonnevillefinancial.com 2013.09.3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엽 제1 보병사단장의 동생 백인엽 대령이 사단장을 역임한 후 다시 연대장으로 임명된 경우입니다.

  13. 영웅 2013.10.20 0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을 칭송하네 ㅋㅋㅋ 조를까서 쳐 잡수세요 ㅋㅋ

  14. 양심좀가져라 2013.10.29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인엽이를 빠는 글도 있네. 최고의 부패쟁이, 최고의 기회주의자, 최고의 살인마. 이런 걸 좋다고 글을 쓰다니...위에서 시킨다고 뇌없이 그냥 글쓰지말고 머리로 생각 좀 하면서 살길.

  15. Relationship with Luminix Power 2014.02.13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의 부패쟁이, 최고의 기회주의자, 최고의 살인마. 이런 걸

  16. 여방오 2014.02.15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것.. 백인엽씨에게도 전쟁 중 공은 있겠죠..그런데 너무 찬양일색인 것 같은 아쉬움은 뭘까요.. 정일권씨나 백인엽씨. 개인적으로 인간애를 발휘한 김백일장군이 더 좋게 보여집니다, 전시라곤 하지만, 부하들에대한 즉결처형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휴전 후에 벌어진 이들 두 장군의 비리는 보릿고개에다 전후피해에 시름하던 국민들을 생각하면... 지휘관들의 공적도 많지만 이름없이 쓰러져간 하급장교, 병사들. 그 호국영령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글들도 많아졌음 좋겠습니다, 너무 탈도많았던 장성급만 다루시고 그분들만이 이 나라 이 겨레를 구한 것 같은 이 느낌은.. 평소 전사에 관심많아 예까지 와서 글은 잘 읽었습니다...

  17. Lawyers In Greentree 2014.04.10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자 백인엽 대령은 불만을 드러내기는 커녕 오히려

  18. seattle roofing 2014.04.13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사단, 17연대 2사단, 1사단, 6·25전쟁, 766유격대, 공군, 낙동강, 백선엽, 백인협, 북한군, 비학산, 사단장, 아625, 옹진반도, 육군, 포항여중, 포화속으로, 한국군, 해군, 해병대

  19. http://lamari.pl/ 2014.04.24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든 곤궁할 때를 생각하라.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 분노는 적이라 생각하라.
    승리만 알고 패배를 모르면 해가 자기 몸에 미친다.
    자신을 탓하되 남을 나무라지 마라.

  20. 보름달 2014.05.14 0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인마 미국놈 작전에 독립운가와 백성 민족을 잡는 쥐잡이 놈들이 결국 백인협 백선엽 살인을 일삼고 제주도 살인자 14연대 살인자 부대놈들이 헬리곱터원정 전라도 의상봉 중심으로 경찰살인자 박가놈 3인방과 묵인 6인배후 열락책 위조책이 용변산반도 전라도민을 무자비 죄도 묻지 않고 살인을 하고 지역감정을시킨 살인마 미국놈들이 우방국이라니 한심한 친일파놈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니 미래가 없다..

  21. Invincible76 2014.08.05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글쓴이는 인간의 기본 윤리개념도 없는 정신이상자 이신 듯..?
    큰 잘못도 없는 부대원이나 다른 장병들을 심심하면 밥먹듯이 '즉결처분'이라고 총살하던 그 인간백정 쓰레기를 찬양하는거 보니, 사탄의 자식이라도 되는겁니까 당신?

23. 포항에서의 일진일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09 08:17

 

  38선을 돌파하여 동해축선을 따라 남진하던 북한군 제5사단은 서쪽에서 청송-기계 축선으로 남진하던 제12사단과 보조를 맞춰 영덕-포항 방향으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때 영덕을 방어하던 국군 제3사단 제22, 23연대는 치열한 접전을 반복했지만, 제23연대의 일부 진지가 돌파되면서 방어선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순식간 전투력이 저하된 제3사단은 8월 10일, 강구의 남쪽 장사동으로 철수하여 방어선을 재편하게 되었습니다.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동해축선의 교량을 파괴하는 모습 ( 울진 남대천 )]


  동시에 강구 남서쪽 3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기계가 북한군 제 12사단에 의해 점령됨으로써 포항이 차단될 위기에 봉착하였고 이어서 다음날 북한군 제766유격연대의 일부가 마침내 포항 시내까지 진입하였습니다. 포항은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엔 해․공군의 발진 기지였기 때문에 최우선으로 타격할 검점이었습니다. 때문에 북한군은 제 12사단, 제 5사단, 제766유격 연대 등을 모든 전력을 집중하였고 그 결과 8월 11일에 선도부대가 포항시내 진입에 성공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비행장과 항구를 통하여 외부와 연결되고 있는 낙동강 교두보 동북 측의 포항은 아군이 어떻게든 사수하여야 하는 전략 거점이었습니다. 포항항과 영일비행장의 중요성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제 8군사령관 워커는 위기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미 제19연대 3대대를 증강시킨 브래들리 특수임무부대(Bradley TF)를 조직하여 즉시 포항에서 영일비행장에 이르는 도로를 차단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위기에 빠진 포항시내의 모습]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북한군 제 5사단 일부가 7번 국도를 우회하여 홍해까지 순식간 진출함으로써 배후가 차단된 국군 제 3사단이 장사동 일대에서 궤멸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제해권을 가진 유엔 해군의 지원으로 고립된 아군은 8월 17일 06시부터 해상철수를 단행하여 성공적으로 포항 남쪽의 구룡포로 이동함으로써 비록 장사동을 적에게 내주었으나 전력을 보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포항 탈환 임무를 부여받고 민부대(閔部隊)가 급거 출동하여 형산강 남쪽을 장악하였습니다.


  민부대는 개전 초에 의정부 축선에서 붕괴된 제7사단 재창설을 목적으로 민기식 대령 지휘 하에 기간요원으로 구성된 2개 대대규모의 임시부대였지만 포항의 위급한 상황이 민부대의 출동을 촉진시켰던 것이었습니다. 민부대는 포항 시내에 진주한 북한군이 유엔 해군의 함포사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고 포항 외곽으로 도주하였음을 확인하고, 8월 18일 새벽 포항 시내로 진입하여 포로 180명을 잡는 전과를 올리며 포항을 탈환하였습니다. 최초 출동에서 훌륭한 전과를 올린 민부대는 다음날 구룡포에서 북상한 국군 제 3사단에게 진지를 인계한 후 대구로 복귀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민부대를 지휘한 민기식]


  포항에 매몰되어 앞으로만 달려온 북한군은 계속되는 작전으로 피로가 누적되고 있었고 유엔 해‧공군의 집중적인 포격과 폭격으로 보급이 차단되어 전투력이 급감했습니다. 더구나 포항 공약에 동원된 3개 부대가 제대로 된 협조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달려들어 왔던데 반하여 가용 전투력이 극히 부족하였던 국군과 유엔군은 긴밀한 협조로 북한군을 격퇴하고 포항의 요충을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북한군은 상당 기간 동안 부대 정비에 임하게 되면서 이후 9월까지 동해안 지역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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