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군단'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11.04 96.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99)
  2. 2010.05.18 44. 비호산에서 빛난 칠성 (6)
  3. 2010.05.12 42. 예상하지 못한 적의 공세 (7)

96.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04 08:17


  언제부터인가 휴전회담이 재개될 때면 묵시적인 관행에 따라 전선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져들고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 때문에 예상보다 휴전회담이 장기화되자 1952년 이후로 전선은 피아모두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거쳐 확보한 방어선을 공고히 하는 형태로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결국 언제인지는 전쟁의 종결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식되었고 다만 전쟁이 멈추었을 때 상대보다 내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모색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대미를 장식할 대공세를 준비하였습니다.]


  특히 회담지연 전술을 적절히 활용한 공산군측은 이 시기에 전력을 대폭적으로 증강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1953년 봄이 되었을 때 공산군은 중공군 135만 명, 북한군 45만 명 등 총 180만 명의 대병력과 각종 장비를 전선에 배치시켰는데, 이것은 6·25전쟁 발발 이래 최대의 병력 수준이었습니다. 결심만 한다면 지난 1951년 초여름의 제6차 공세이후 전략적으로 포기하고 있던 대규모의 공세를 재개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반면 종전에만 급급하였던 유엔군으로서는 이에 맞선 전력증강이 없었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는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대장이 건의한‘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편 계획’의 조속한 추진에 나섰는데, 이것 또한 엄밀히 말해 국군이 북한의 도발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전을 염두에 둔 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1953년 5월 1일에는 현리전투로 해체되었던 제3군단이 재창설되었고, 6월 18일까지 제26, 27사단이 신편 됨으로써, 국군은 휴전발효 직전에 총 3개 군단 18개 사단의 전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이던 6월 8일, 포로송환협상이 타결되면서 휴전이 현실화 되자 공산군측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고 선전하고 한국정부의 북진주장과 휴전반대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유엔군의 반격을 유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인 공세를 감행하고자 했습니다. 중공군 참전이후 계속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국군이 전담하고 있는 전선을 노렸고 이때 공세지점으로 결정된 곳이 국군 제2군단이 담당하던 화천북방의 금성돌출부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은 국군 담당지역 중에서 지형이 특히 험하여 기갑 및 화력지원이 취약하다고 판단된 곳이었습니다.


[금성돌출부에서 중공군의 제7차 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1953년 6월 10일 밤, 1개 군의 중공군이 국군 제5, 8사단 일대를 집중 공격하였으나 어느덧 산전수전 다 겪은 국군의 효과적인 지연에 막혀 9일간 13킬로미터 정면에서 4킬로미터를 남진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유엔군도 현 전선을 그냥 인정 할 것이라 판단한 공산군측은 작전이 성공한 것이라 만족해하며 6월 18일 전후로 예상 되는 휴전협정의 조인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변수가 생겼습니다. 6월 18일 자정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27,000여명의 반공포로가 석방되면서 조인 직전에 있던 휴전회담은 중단된 것이었습니다.


  선전효과를 노렸던 공산군측의 의도는 일거에 좌절되었고 상황은 급속히 냉각되었지만 공산군측은 휴전회담 자체를 깨려하지 않았습니다. 작전 자체가 휴전을 염두에 두었을 만큼 공산군측고 휴전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자존심 문제라 생각한 중공군은 지난 51년 5월, 제6차 공세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한 화천저수지의 재점령을 목표로 대규모 공세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공군의 대병력이 이 일대로 집결되면서 긴장이 높아지자 클라크는 휴전을 염두에 두고 일본으로 빼놓았던 미 제24사단과 제187공수연대를 한국으로 황급히 재배치했습니다.


  7월 13일 밤, 지난 6월의 제한적인 공세와는 비교가 안 되는 5개 군의 대병력이 국군 제2군단의 금성 돌출부지역을 강타하면서 6·25전사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중공군의 제7차 대공세가 게시되었습니다. 중공군은 압도적인 병력을 이용하여 금성을 양익포위 하여 전면에 배치된 국군 제6사단과 제8사단을 일거에 섬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테일러(Maxwell D. Taylor) 제8군사령관은 포위를 거부하고자 방어선을 금성천 남단으로 조정하여 아군의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국군 제2군단과 미 제9군단이 적근산과 백암산을 연하는 선으로 후퇴하여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7월 16일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시켰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래왔듯이 중공군의 공세 여력이 바닥이 나자 아군은 반격으로 전환하여 7월 19일에 다시 금성천과 북한강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마지막 공세로 전선을 남하시켰으나 엄청난 피해를 겪었습니다. ]


  중공군이 패주하자 국군은 금성천 북방으로 재진출하려 하였으나 휴전을 염두에 둔 유엔군사령부의 제지로 마지막 혈전은 거기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국군 제2군단은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에서 피탈당한 지역의 절반정도만을 회복하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중공군은 전쟁 막바지에 무려 6만 명 정도의 사상자를 내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6·25전쟁의 마지막 혈전이자 국군의 마지막 전과로 전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생생! 6·25 > 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98. 전쟁이 남긴 것  (154) 2010.11.08
97. 멈추어진 전쟁  (140) 2010.11.05
96. 중공군의 마지막 공세  (99) 2010.11.04
95. 휴전반대로 얻고자 한 것  (105) 2010.11.01
94. 해방구가 되어버린 포로수용소  (224) 2010.10.28
93. 전혀 새로운 난제  (227) 2010.10.27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prepare-for-test.com 2013.08.22 0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해 끙끙 머리를 감싸 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왜 이리도 미련이 남는지, 아직까지 접수는 하지 못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뭔가 부족한 듯 한데, 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위해 족집게 특강의 서류전형 마무리 특집!

  3. weight loss holy grail review 2013.08.24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

  4. book of ra deluxe 2013.08.28 0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私はそれがいくつかの退屈な古い記事になるだろうと思ったが、それは本当に私の時間を補償する。私は私のブログでこのページへのリンクを掲載する予定です。私は確信している私の訪問者は、それが非常に有用で探します

  5. Airport Car Parking 2013.09.02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쳐 지나갑니다. 왜 이리도 미련이 스쳐 지나갑니다. 왜 이리도 미련이 스쳐 지나갑니다. 왜 이리도 미련이

  6. uktutor.org 2013.09.02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는지, 아직까지 접수는 하지 못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뭔가 부족한 듯 한데, 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위해 족집게 특강의 서류전형 마무리 특집!

  7. sms lån med betalningsanmärknin 2013.09.04 0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따라 전선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져들고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포로송환 문제 때문에 예상보다 휴

  8. personal trainer toronto 2013.09.05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 빠져들고는 하였에 빠져들고는 하였에 빠져들고는 하였

  9. Duo Residencesaxn--lnapengarmedbetalningsanmrkningochutanskerhet 2013.09.07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 빠져들고는 하였에 빠에 빠져들고는 하였에 빠에 빠져들고는 하였에 빠

  10. http://employeemonitoringapp.com/2013/08/28/utilizing-the-employ 2013.09.08 0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Good thing, the worker chase software package may also be used for work-related functions. Through this program, you'll be completely eased that the business or company that you simply have established consists by individuals whom you'll be able to trust.이리도 미련이 남는지, 아직까지 접수는 하지 못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11. looking for a Florida home 2013.09.16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없는 역사의 흐름으로 인식되었고 다만 전쟁이 멈추었을 때 상대보다 내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모색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12. online roulette 2013.09.25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Wonderful! Actually wealthy content and extremely helpful in sequence. I got it my answer from over here. I extremely advocate his/her mechanism with the helpful educational information. Thanks a lot………..

  13. thesis writing 2013.09.30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소개서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겠죠. 모든 항목에 자신이 왜 적합한 인재인지,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는지를 항상 보여줄 수 있도록 작성이 필요합니다. 위의 항목을 통해 의외의 부분에서 여러분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해보세요~

  14. Condo living in Bal Harbour 2013.10.24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통해 의외의 부분에서 여러분의 매력을 발산할 수 통해 의외의 부분에서 여러분의 매력을 발산할 수

  15. car leasing 2013.10.24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군사전략이 모색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16. research interest statement 2013.10.24 2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리도 미련이 남는지, 아직까지 접수는 하지 못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뭔가 부족한 듯 한데, 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위해 족집게 특강의 서류전형 마무리 특집!

  17. http://essay-writing-service-australia.com/ 2013.10.26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h! Amazing and really rich content and very useful information. I got it my solution from over here. I highly recommend his/her workings with the useful informative information. Thanks a lot………..

  18. http://essay-writing-boss 2013.10.27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h! Amazing job with the article. I come across few helps over here related by this post to do my task nicely. I highly recommend this. Thanks a lot………

  19. http://write-my-essay-4-me 2013.10.27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Oh! Amazing vocation with the piece. I hit upon few helps over here related by this post to act my task nicely. I highly recommend this. Thanks a lot………

  20. data entry speed test 2013.11.06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천으로 널리 메뚜기를 아이들은 꽤 많이 잡기도 했습니다. 다음 편에선 요 초딩 아이들이 메뚜기를 잡은 이야기도 좀 들려

  21. car leasing 2013.11.18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후로 전선은 피아모두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거쳐 확보한 방어선을 공고히 하는 형태로 서서히 변해갔습

44. 비호산에서 빛난 칠성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5.18 09:52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의 등장으로 초전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부대는 국군 제1사단과 제6사단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앞에 서있던 제6사단 2연대는 후방의 온정리가 점령되면서 연대 전체가 붕괴되는 참사를 입게 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출몰한 중공군은 야간 및 산악전투에 상당히 능숙했고 더불어 피리와 꽹과리 등을 이용하여 아군의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심리전에도 뛰어난 면모를 보였습니다. 더구나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제파식 집중공격을 감행하여 아군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중공군은 참전 초기에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중공군 특유의 공격방식을 국군과 유엔군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 불렀는데, 사실 중공군 참전 초기에는 중공군의 병력이 아군을 일방적으로 압도할 만큼 많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국군 담당지역이나 교통요충지처럼 반드시 돌파하여야 할 핵심지역으로 가용한 전력을 집중시키는 전술을 구사하였습니다. 따라서 넓게 퍼져있던 아군 입장에서는 중공군이 출몰하지 않아 평온한 지역도 있었지만 중공군과 조우한 부대는 체감 상 엄청나게 많은 적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인해전술은 1951년 봄에 연이어 있었던 세 차례의 대공세 당시였습니다.


  엄청난 변화에 놀란 국군 제2군단은 10월 27일, 가용 전투역량을 총집중하여 10월 29일까지 3일 동안이나 온정리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중공군의 공격에 퇴로가 차단되어 증원부대들 까지 한 번에 붕괴되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제2군단은 무참히 붕괴되어가고 있던 예하 제6사단과 제8사단을 최대한 수습해 후방인 청천강 방어선까지 철수하여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퇴로를 확보해 주어야 했는데 이때 구원투수로 평양탈환 작전에 참가했던 국군 제7사단(칠성부대-七星部隊)이 나섰습니다. 당시 육군 예비로 영변 일대에 집결하던 제7사단은 제2군단이 붕괴되어 가자 10월 29일부로 제2군단으로 배속을 전환하여 군우리(軍隅里)로 출동합니다.


[제7사단이 위기를 막기 위해 출동합니다.]


  위기가 고조되어 가던 11월 2일, 제7사단은 청천강 상류지역을 감제(瞰制)할 수 있고 군우리에서 안주와 순천에 이르는 도로와 철도를 통제할 수 있는 요충지인 해발 622미터 비호산에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습니다. 이곳을 중공군이 점령한다면, 제8군의 후방으로 향하는 통로가 순식간 개방되면서 아군 전체가 일순간 붕괴될 수 있는 결정적인 지형이었으므로 제7사단은 반드시 사수하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4개 사단으로 편성된 중공군 제38군(군단급 부대)의 선두부대가 제7사단 방어진지로 돌격하여 들어왔습니다.


  전쟁 중반기 이후에서나 볼 수 있던 치열한 고지쟁탈전이 비호산에서 벌어졌습니다. 제7사단은 최초 중공군의 공격에 잠시 정상을 허락하였지만 반격을 가하여 즉시 되찾고 끈기 있게 방어해 내었습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병력을 앞세운 중공군의 계속된 공격에 결국 11월 5일 정상이 다시 중공군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만일 이 상태에서 중공군이 청천강 후방으로 곧바로 진출한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을 잘 알고 있던 신상철(申尙澈) 제7사단장은 11월 6일 08시, 모든 역량을 총 집중하여 비호산 정상을 다시 탈환하였습니다. 이처럼 2차례의 공방전에서 패배한 중공군 제38군은 서서히 전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고 동시에 인근의 중공군 제39, 40군도 공세를 멈추었습니다.


[제7사단의 선전으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였습니다.]


  비호산 전투는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거둔 첫 번째 승리라는 상징성과 함께, 제8군 전체를 위기에서 구출한 결정적인 전투였습니다. 중공군은 제1차 공세를 통해 제8군 전체를 일거에 격파하려 하였으나 운산, 온정리, 운산 일대에서 일부 아군부대를 격파하는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을 뿐입니다. 이후 밝혀진 여러 자료에 의하면 11월 5일을 끝으로 중공군의 보급역량이 바닥나 더 이상 공세를 지속하기 힘들었다고 밝혀졌지만, 중공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국군 제7사단의 용전분투가 없었다면 청천강 방어선 구축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Willy Lynds 2012.05.12 1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상적인 쓰기 - 업! 우리는 앞에서 telemedicine을 인식없이 수단을 통해 보았습니다. 정말 유익 운영이 오늘뿐 아니라 효과 사람들의 수행합니다. 와 함께 일반적 관한 정보를 만드는 조직은 정원의 치료 측면에서 게시물을 확인하십시오. 블로그가 우리에게 상당한 도움을 줄 것입니다.

  2. Paris Driesel 2012.05.12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확실히 콘텐츠 자료를 주셔서 감사 있도록 저희 블로그에 일반적입니다. 내용이 정말로 산이 내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새로운 정보와 사실에 대한 힌트를 유지 하다니 귀하의 웹사이트를 도서를 표시합니다.

  3. Olen Paulhus 2012.05.12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내가 거의 몇 시간이 그것에 대해 정원에 온실을 위해 쫓아 다 녔 때부터이 특정 귀하의 게시를 찾는되는하므로 활력이다. 사람은 훨씬 더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 플러스이 사람의 쓰기 업 내 테마 이런 종류에 관한 유용한 정보와 더불어 혁신적인 몇 가지 발견했습니다 스캔. 이러한 특정을 드러내는 많은 감사합니다!

  4. compare prices online 2012.06.01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이 여기 있나 좋은 정보를 제공합니다. 제가 예를 주 휴대 전화에 대해이 주제를보고 결국했습니다. 내 문서 학교에 가서도 좋은 내가 당신의 웹사이트에서 이걸 발견 했어요 생각합니다. 여기서 좋은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5. how to save money on food when traveling 2012.06.01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반했어요. 당신은 확실히 최신 매우 뛰어난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개인이 모든 개인에 대한 환자가 흥미하게 실현할 수있는 요소를 발간했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장기적으로 사용하기위한 것입 보존 해요.

  6. 99 painless ways to save money 2012.06.01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문서에서 위대한 데이터가 있잖아요. 제가 최근에 수업에서 우리 양식 7 일간 현재 예를 들어이 주제에 관한 통해 읽고 있었 다니 또한 좋은 나는 너의 웹사이트에 이곳 아이디어를 발견 같아요. 이건 내가 perusing 좋은 시간 나을꺼 같아요.

42. 예상하지 못한 적의 공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5.12 09:34

 

  처음 중공군 지휘부는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원산 선에서 일단 진격을 멈추고 부대를 정비할 것으로 예상하였고, 따라서 이틈을 노려 청천강 일대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평양을 점령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을 향한 파죽지세의 진출을 계속하자 애당초 계획을 급히 수정하여 중요지역에 매복하고 있다가 기습을 가하는 것으로 전술로 바꾸었습니다. 특히 마오쩌둥은 화력이 비교적 미약한 국군 제2군단을 우선 기습하여 섬멸한 후에 미군과 영국군을 공격하라는, 구체적인 명령을 하달하였을 만큼 당시 아군의 진격 상황을 세밀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은 이미 아군의 상황을 파악한 상태였습니다.]


  지시에 따라 평안북도 운산(雲山) 온정리(溫井里) 일대에 은밀히 전개를 완료한 중공군 주력은 10월 25일, 국군이 담당한 전선 전면에 대대적으로 출몰하면서 처음으로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었습니다. 중공군 전사에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제1차 전역(戰役)이라고 부르는 중공군 제1차 공세가 시작된 것이었고 중공군은 국군지역을 돌파하여 유엔군의 후방으로 진출하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전선의 좌익인 영변(寧邊)에서 국군 제1사단이, 우익인 비호산에서 국군 제7사단이 선전함으로써 적의 기도를 일단 좌절시켰습니다. 그러나 전선의 중앙부이자 돌출부인 초산(楚山)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북진의 가장 앞에 섰던 국군 제6사단 7연대는 초산의 압록강가에 도달하였으나 순식간 중공군에 의해 배후가 차단되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고립된 제7연대를 구출하기 위해 아군이 초산으로 몰려들면 일거에 격멸할 회심의 계획을 수립하고 중공군은 길목마다 지키고 숨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방에서 출몰한 중공군과 교전 중이던 국군 제2군단은 막상 제7연대를 구출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제7연대로 하여금 분산하여 알아서 탈출하도록 지시를 하였는데, 이것은 결국 제7연대의 비참한 몰락을 불러왔지만 반면 중공군의 국군 유인계획을 실패하도록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중공군은 미군의 화력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국군 담당지역으로 돌파구를 열려고 시도한 중공군의 전략은 한마디로  미군을 겁내지만 국군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전선이 고착화된 1951년 여름까지 계속된 패턴이기도 하였습니다. 북한군은 1950년 7월 초, 죽미령에서 처음 미군과 교전하고 낙동강 전선까지 정신없이 몰아붙여 자신만만하게 참전한 미군당국을 놀라게 만들었는데, 반면 중공군은 이처럼 상당히 신중하였습니다.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처럼 북한군은 모르는 상대를 몰아붙여 상대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중공군은 미군의 잠재력과 능력을 잘 알고 신중을 기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전쟁은 프로들이 주도하는 형태로 급속히 성격이 바뀌어갔습니다.


  그런데 국군지역으로 전력을 집중한 중공군의 전략은 또 다른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중공군의 참전 초기에 미군은 중공군과 직접 조우하지 못하였으므로 상대의 규모나 능력을 전혀 몰랐습니다. 따라서 국군 제2군단이 대규모의 중공군 출현사실과 뛰어난 전투력에 대해 제8군에 보고했으나, 미군은 전투에 실패한 국군부대들이 변명을 위해서 중공군의 규모와 능력을 과장한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중공군 등장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는 실수를 스스로 범하도록 만들어 버린 셈이 되어 버렸고 이것은 후일 더 큰 화를 당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유엔군 최고지휘부는 중공군 등장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켰습니다.]


  미군이 주도하고 있는 유엔군의 막강한 공군과 포병을 두려워 한 중공군은 자신들의 장기인 야간전투, 근접전투를 폭 넓게 실시하여 우선 국군을 급속히 혼란에 빠뜨리고 더불어 미군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비록 중공군이 제1차 공세를 애초의 의도대로 완전하게 성공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국군과 유엔군의 진출을 저지시키고 후속부대의 전개를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지평리전투 상기행사 안내 바로가기(http://koreanwar60.tistory.com/157)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arbera Prator 2012.05.12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최근에 어렵게 이걸 읽는 중지하는 찾습니다. 따라서 흥미로운, 그래서 난 그냥 단순히 몰랐다 세부 넘치는. 저는 남자를 알게되어 기쁩니다과 여성은 서로 다른 측면으로 명을 표시,이 좋은 방법으로이 문제 제작되었습니다. 우수 블로그 작가줍니다. 당신이 기록을 보관해야합니다. 나는 미래에 어떻게 배우고 버틸 수 없습니다.

  2. Willie Boran 2012.05.12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확실히 당신이 가구 다니 정말 대단한 유용한 리소스입니다 있으며 별도로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료로 탁월한 자원을 제공하는 필요성을 보시려면 인터넷 웹사이트를 목격 좋아합니다. 이 우수한 자원을위한 많은 감사합니다!

  3. Dario Walljasper 2012.05.12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동료와 저는 이런 생각은 아마도 제출 큰 중에서 제출합니다. 그것은 독창적인 것입니다. 당신 정말로 내용에 공급할 주요 개념을 부러워 해요. 내 사업은 더 중요한 생각과 더 많은 블로그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것들은 운이 하나는 이런 정보의 보상 자의 알아냈나합니다. 최선을 멈춰라!!

  4. airline tickets cheap flights 2012.05.29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제 이러한 종류의 나는 이미이 시점에서 잠시 동안 고려하고있는 것입니다 무언가있을 수 있으며 이해 특별한입니다. 이러한 특정 정보를 공개를위한 많은 감사합니다.

  5. american airlines check in 2012.05.29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얼마 동안 다음과 같은 주제에 종사해야하는 것 뿐이예요. 나는 몇 시간에 관한 부부를 위해 찾는 우연히하여이 어쩌면 정말 재미있을에 글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감사합니다.

  6. how to get airline flight tracker site 2012.06.07 2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흥미로운 사실 하겠어요하면 당신의 블로그에 표시됩니다 본 사이트에 훌륭한 서비스 작업에 대해 매우 분명히 실제로 환성을 느낍니다. 웹사이트에서 이러한 종류의이 웹사이트의 좋은 서비스를하고이 웹 사이트의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합니다.

  7. 신창균 2012.08.12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충성!
    1107 공병단 130환경대대 상병 신창균입니다.

    42편 예상하지 못한 적의 공세 편을 잘 읽었습니다. 당시 중공군은 일본과의 전쟁, 국공내전을 통해 단련된 병사들이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국공내전을 끝낸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이라 국민당 군사들을 상당수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아직까지 불안한 내정의 상황을 해외 파병이라는 이름으로 잠재우려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항복한 국민당 군사들이 또 다시 반란이나 내전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한반도의 정치적인 힘을 유지하려고 했던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마오쩌둥은 한반도에 파병을 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옛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미군은 적인 중공군을 잘 몰랐고, 그들의 등장 의미를 너무나 축소하는 실수를 스스로 벌였고, 이건 나중에 큰 화를 당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항상 지나친 만용은 큰 화를 부른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한편, 개인적으 중공군이 국군의 군사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은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50년대의 한국 군사력에 비교하기 힘들만큼 강해졌으니 그것을 위안 삼았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충성!

    tlsckdrbs1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