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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13 88. 너무나 혹독한 댓가 (12)
  2. 2010.08.18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上] (3)

88. 너무나 혹독한 댓가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13 08:12


  어처구니없이 국군 제36연대가 어렵게 차지한 983고지를 다시 피탈 당하며 피의 능선 지역에서 완전히 물러나자, 바이어스(Clovis E. Byers) 미 제10군단장은 작전을 처음부터 재검토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군이 피의 능선 지역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었다는 결론을 도출하였고 군단 전체가 동시에 정면의 적을 강하게 압박하여 피의 능선 후방에 집중되어 있던 적의 화력과 예비대를 좌우로 분신시킴과 동시에 피의 능선을 재장악한다는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미 제10군단은 새로운 방법으로 반격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미 제10군단은 8월 31일 06시부터 가용한 전 부대를 전진배치 시켜 일제히 공세에 돌입하였습니다. 미 제2사단 9연대가 국군 제36연대를 대신하여 피의 능선을 공략하였으나, 초전의 모습은 국군 제36연대가 공격당시와 크게 차이가 없었습니다. 구조적으로 남쪽으로 흘러내린 급경사인 피의 능선은 북에서 남으로 방어전을 펼치기에 너무나 적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예기치 못한 한 가지 문제가 미군의 전투력을 저하시켰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군은 인종갈등을 고려하여 인종별로 단위 부대를 구성하였는데 미 제9연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로 940고지 공격에 나선 제9연대 3대대는 흑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전투 경험이 부족하였던 데다가 대대장의 돌격명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만큼 군기가 문란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돌격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분노한 미 제2사단장은 제3대대장을 해임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미 육군에서 흑인만으로 구성된 대대를 해체하고 흑인 병사들을 각 부대에 균등하게 재배치하게 되는 계기가 되면서 역설적으로 부대 내에서 보이지 않던 인종 간 의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9월 초순에 접어들어서도 피의 능선에서의 공격은 지지부진했고 함락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는데, 인내를 가지고 공격을 계속 가하여 능선 배후 공략에 성공하자 바이어스의 예상대로 서서히 적의 저항도 둔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피의 능선 좌측에서 국군 제7사단과 우측의 미 제38연대가 협공을 가하자 자연스럽게 983고지의 북한군은 후방이 차단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군은 9월 3일, 은밀히 철수 해 버렸고 미 제9연대는 9월 5일 14시경 983고지를 무혈점령하였습니다.


[미군은 피로 얼룩진 983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


  피의 능선전투에서 국군은 전사 및 실종 154명, 부상 816명이, 후속한 미군이 전사 및 실종 587명, 부상 1,216명의 인명손실이 발생했습니다. 더불어 밴 플리트가 전쟁 발발 이래 가장 많은 포격을 실시했다고 하였을 만큼 무려 41만여 발의 어마어마한 포탄을 소모하였습니다. 결국 능선하나를 탈취하기 위하여 어마어마한 인명과 물자가 투입된 것이었는데 이것은 고지쟁탈전의 소모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지표이고 결코 효과적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휴전회담이후 6·25전쟁은 좁은 곳에서 더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제8군은 1951년도 8월 중순부터 펀치볼 및 피의 능선지역에서 실시한 하계공세를 펼쳤지만 북한군의 강력한 저항에 상당히 고전을 했습니다. 특히나 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예상을 뛰어넘는 피해가 동반된다는 사실은 이후 작전을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고심을 거듭한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는 휴전을 염두에 둔 고지쟁탈전을 지양하고, 중동부 전선에서 대규모의 공세작전을 실시하여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목적으로 맹조의 발톱(Talon's)이로 명명된 작전계획을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에게 건의했습니다.


  개요는 원산부근에 대규모 상륙 및 공수작전을 실시하여 북한군의 배후를 절단시킴과  동시에, 지상군이 전선을 김화-금강산-장전선으로 밀어 올린다는 것으로 지난 1950년 10월의 감격스러웠던 북진이후 처음으로 입안된 야심만만한 공세작전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인명과 물자의 손실이 심각한 고지 쟁탈전을 회피하면서 공산군에게 치명타를 안겨주어 전선을 대폭 북상시켜 일직선으로 정리하면 다급해진 공산군이 휴전 회담장으로 이끌려 나올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중하였던 리지웨이는“공산군에게 치명타를 안길 경우, 오히려 휴전회담에 장애가 될 것이라”라고 판단하여 휴전회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의 지상 작전만 승인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계속하여 고지쟁탈전을 몰입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밴 플리트는 적극적인 공세를 제안하였으나 아쉽게도 기각 됩니다]

( 1950년 10월 원산에 상륙하였던 미 제1해병사단 이것은 6·25전쟁 중의 마지막 공세기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


  하지만 밴 플리트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고지전투가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워낙 많은 전투다 보니 맹조의 발톱 계획이 기각 당하자마자‘추계작전계획’으로 단지 이름만 바꾼 공세계획을 유엔군 사령부에 재차 건의했습니다. 일주일도 안 되어 대규모의 공세작전계획을 보고 받는 리지웨이는 밴 플리트의 집요함에 놀랐으나, 또다시 상륙 및 공수작전을 거부하면서 야심만만하게 수립하였던 계획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전황을 고려한다면 밴 플리트의 생각은 성공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 합리적인 계획으로 설령 통일은 힘들더라도 전선을 거의 39도선까지 걷어 올릴 수 있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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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上]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18 08:38

  대한민국 군번 제1호로 유명한 이형근(李亨根 1920~2002) 예비역대장은 1993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이른바 ‘6·25전쟁 초기의 10대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습니다.  개전 당시에 제2사단장이었고 이후 여러 요직을 거쳐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랐던 인물이 의심을 가졌을 만큼 전쟁 초기의 정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이상한 점이 많기는 하였습니다.


[ 6.25전쟁 초기의 10대 미스터리를 제기한 이형근 전 참모총장 ]


  그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경고하는 일선 부대의 적정동향보고를 수뇌부에서 철저할 정도로 묵살했다는 의혹으로 시작하여, 전쟁발발 열흘 전인 6월 15일 중앙요직은 물론 일선사단장과 연대장을 거의 동시에 대폭교체한 점, 6월 13일부터 20일에 걸친 대대적인 부대 재배치 등등 모두 10가지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이것들은 전쟁초기에 너무나 일방적으로 적을 이롭게 하고 반대로 아군의 몰락을 가져온 미스터리로 거론되기에 충분한 주장들입니다.


[전쟁직전인 1951년 6월 초 서울]


  그러한 이상 정황은 아직도 논란이 많고 여기에 대한 추가 연구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지만, 북한 측의 전쟁 사료가 완전하고도 가감 없이 사실그대로 공개되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오래 동안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런데 이형근 예비역 대장이 꼽은 미스터리들 중에서 네 번째가 6월 24일 0시 (또는 6월 23일 24시)를 기하여 육군본부가 전군에 내려져 있던 비상경계조치를 해제시켜 버렸던 사실입니다.


[창군 초기의 국군(1948년 여순 반란 당시)]


  사실 이점은 이형근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적인 의심사례로 거론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전쟁 징후를 느껴 오랜 기간 유지되어 왔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되고 불과 30시간도 지나지 않아 북한이 침공했다는 자체가 내부에 적을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아무리 사전에 남침을 계획하고 있던 북한군이라 하더라도 아군의 비상경계령이 해제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전쟁을 감행하기는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개전 초기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더구나 당시 육군본부의 비상경계 해제명령에도 불구하고 부대 자체판단으로 긴장된 경계태세를 계속하여 유지하였던 제6, 8사단의 경우는 개전 초에 상당히 선방하였던 반면, 4할 정도의 병력이 일거에 외출 외박을 나가 전력이 약화 된 제7사단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점만 봐도 비상경계령의 유무가 전쟁 초기의 전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훈련 중인 창군 초기의 국군]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더 살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1950년 들어와 아군은 정보기관이 수집한 각종 정보에 의거 북한의 전면 남침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4월 29일 처음 비상경계령을 발령하여 긴장된 전투태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쟁 발발 전까지 5월 3일~5월 9일 사이, 6월 2일~6월 11일의 두 차례에 걸쳐 경계령이 일시 해제가 되기도 하였지만 비상은 계속 이어진 상태였습니다.


[창군 초기 국군 수뇌부]


  따라서 6월 24일의 경계해제는 영구적인 조치가 아니라 앞선 두 번의 경우처럼 일시적인 해제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전의 예를 참조한다면 일단 경계해제 후 상황이 나빠지면 다시 비상경계에 돌입할 가능성은 농후하였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군 수뇌부에 잠입한 간첩의 공작 때문이라는 미스터리가 아니더라도 북한은 국군의 비상경계령 해제 조치가 가까운 시일 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 충분히 예측하고는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 전 국군 기갑연대를 검열하는 미 군사고문단]


  그런데 지난 두 차례의 비상경계령 일시 해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국군이 비상경계 태세를 계속하여 유지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사실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북한 측도 충분히 가까운 시일 내에 국군이 일시적이라도 경계령을 해제할 것이라 판단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설명할 그 이유는 어쩌면 그 시절 우리의 아픈 자화상이기도 하였습니다.[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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