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단'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10.11 87. 피로 얼룩져간 능선 (16)
  2. 2010.09.27 82. 시작된 줄다리기 (6)
  3. 2010.07.21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10)

87. 피로 얼룩져간 능선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11 08:06

 

  1951년 8월 중순에 접어들어 장마가 그치자 미 제8군은 지체 없이 공격을 재개하여 공산군을 압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러프너(Clark L. Ruffner) 미 제2사단장은 펀치볼에 대한 공격과 병행하여 이를 감제할 수 있는 대우산 서측의 983고지도 함께 공격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일대를 선점하여 방어에 나선 북한군은 아군의 핵심방어선인 캔사스선과 후방지역을 깊숙이 감제 관측할 수 있는 이점을 살려 아군의 모든 군사 활동을 포격으로 손쉽게 제한할 수 있었지만, 반면 미 제2사단의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군의 피해는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장차 공격을 위한 발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983고지 확보는 필수적인 과제였습니다. 이 고지는 문등리와 사태리 계곡의 중간에 위치한 약 8킬로미터에 이르는 횡격실 능선의 주봉이었는데 능선 전체가 남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어 북한군의 방어에 상당히 유리한 반면 공격에 나선 아군 입장에서는 대단히 불리한 지형이었습니다. 때문에 이곳은 처음부터 피를 부어대지 않고는 점령하기 힘든 위치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위험한 임무가 제2사단장의 지휘를 받는 국군 제5사단 36연대가 공격부대에게 부여되었습니다.


  983고지를 방어하던 북한군도 이곳의 전술적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어 무려 2개 사단을 이 일대에 배치하여 놓았습니다. 그들은 고지로 연결되는 능선서측에는 제12사단 1연대를, 동측에는 제27사단 14연대를 나누어 배치한 후, 후속배후에 각 사단의 본진이 대기하는 형태로 철통같이 방어에 돌입하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모든 참호를 포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유개호(有蓋壺)화하였고 고지의 후방에는 신속한 보급이 가능하도록 깊숙한 교통호를, 반대로 아군이 진입할 전방에는 5,000여 발의 지뢰를 매설하여 놓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같은 배경과 준비 하에서 983고지 일대의 능선에서 벌어진 전투는 처음부터 워낙 많은 인명피해가 필연적으로 발생하였고 이를 취재하던 종군기자가 그 참혹함을“피의 능선(Bloody ridge line)”이라고 보도하면서 전사에 피의 능선전투로 불려 지게 되었습니다.


[능선을 피로 붉게 적셔 이후 피의 능선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8월 15일부터 고지일대에 대대적인 항공폭격 및 포병사격이 무려 3일간 집중적으로 실시된 후, 황엽(黃燁)대령이 이끄는 국군 제36연대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하지만 대대적인 사전 포격에도 불구하고 제거되지 않은 북한군은 격렬한 저항을 나섰고 더불어 아군은 적이 매설한 지뢰에 의해 진격이 저지되었습니다. 또다시 엄청난 포격을 가하여 지뢰지대를 개척한 후 야간에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적의 완강한 저항에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험준한 산악 지역에 구축된 요새진지는 화력과 정면공격만으로는 점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각인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제36연대는 후방으로 우회하여 적을 급습하기로 작전을 변경하였습니다. 우선 능선 맨 우측의 773고지를 공격하는 제5중대에서 특공대를 선발하여 후방 침투를 시도하였는데, 예상대로 전방만 신경을 쓰던 적의 배후를 강타하는데 성공하여 773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같은 방법을 전 공격부대에 즉시 적용시켜 공격 4일째인 8월 21일, 940고지 일대의 능선을 제3대대가 확보하였고, 드디어 8월 22일 11시 30분경 난공불락처럼 버텨오던 983고지의 정상을 제11중대가 점령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황엽대령은 공격으로 인하여 손실이 컸던 제36연대를 대신하여 983고지의 방어임무를 미 제2사단이 인수인계 받아 줄 것을 건의하고 이를 타당하다고 판단한 러프너 사단장도 승인하였으나, 막상 밴 플리트 제8군사령관은 한국군의 공적을 미군이 가로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부대 교체를 반대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력이 고갈되어 더 이상 고지를 사수할 여력이 없던 제36연대는 8월 26일 02시경에 북한군 1개 연대 규모의 역습을 받고 983일대에 포위되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북한군의 역습에 어렵게 점령한 고지를 포기하였습니다.]
(전후 촬영된 북한의 선전사진)


  결국 제36연대는 983고지에서 능선 아래쪽인 940고지일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추격해온 적에게 8월 27일 밤에 이마저 내줌으로써 허무하게도 공격 이전은 상태로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과잉 친절이 불러온 어이없는 결과였고 그동안 흘린 피가 무효가 되어버린 아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피의 능선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국군 제36연대는 8월 28일 10시부로 제2사단 배속이 해제된 후 후방으로 철수하여 재편성에 착수했고 피의 능선을 재점령하는 임무는 미 제2사단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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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10.1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피의 능선 전투에서 활약한 제5 보병사단 "열쇠부대" 36 보병연대의 현재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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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만슈타인╋ 2010.10.11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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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시작된 줄다리기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27 08:16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첨예한 신경전을 보였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회담장에 마주앉았지만 처음부터 회담이 잘 되었을리 없었습니다. 7월 11일부터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으나 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자세부터 커다란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엔군 측은 협상의제, 휴전감시방법, 전쟁포로 등 군사적인 문제만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라고 주장했지만, 공산군 측은 즉각적인 적대행위 중지, 외국군 철수 등을 우선적으로 토의하자며 정치적인 주장을 앞세워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다못해 공통의제로 떠오른 군사분계선마저 우리는 현 전선보다 북쪽을, 북한 측은 전쟁 전의 남북 분계선인 38선을 주장하였을 정도였습니다.


[회담장 출발 직전 리지웨이의 환송을 받는 휴전협상 대표단]


  처음부터 이렇게 난항을 겪은 것은 휴전회담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자하는 공산군 측의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대표단만 해도 유엔군 측은 정치에 관여해 본 일이 없는 순수한 야전 군인들로 구성하였지만, 반면 공산측은 군복을 입었지만 정치경험이 있는 자들로 선발했을 정도였고 더구나 회담을 실질적으로 막후에서 지휘하던 자는 스탈린이었습니다. 그는 형식상 마오쩌둥에게 회담의 전권을 위임한 것처럼 하였지만 회담장소를 최초에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공해상의 덴마크 병원선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공산군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서 회담을 벌이도록 전문으로 통해 지시하였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이러한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제1차 회담이 시작되었지만, 유엔군은 1개월간의 전투중지 명령을 내렸을 정도로 몇 주일이면 회담이 완전히 끝나고 휴전에 이를 것으로 낙관적으로 예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치열한 설전 끝에 7월 26일에야 총 5개항으로 구성된 토의의제를 겨우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의제선정은 이제부터 말로써 싸울 범위를 선정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이렇게 겨우 합의를 도출한 제1차 휴전회담은 이후 2년간 계속되는 지루한 마라톤의 출발점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것은 토의의제 중 제 2항에 규정한 군사분계선 설정이었습니다. 전쟁이전 남북 간 분계선이었던 38도선을 주장하는 공산군 측과 해-공군의 우세를 반영해 오히려 현 접촉선 보다 아군의 전략적인 공격 범위에 노출 된 북쪽에 분계선을 설정해야한다는 유엔군 측과 주장이 팽팽히 맞섰고 결국 8월 23일, 공산군 측이 일방적으로 회담불참을 선언함으로써 회담이 결렬되었습니다.


[첨예한 회담 이면에는 이런 모습도 간혹 있었습니다.

회담장 밖에서 단소를 나누는 유엔군 헬기 조종사와 북한여군]


  이에 유엔군은 군사적 압박을 가하여 공산군을 회담장으로 다시 불러낸다는 방침을 수립하고, 또한 차후 예상되는 군사분계선 설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려기 위한 제한적인 군사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양구 지역의 해안분지(이른바 펀치볼),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백석산 등지를 점령했고 동해안의 국군 제1군단이 월비산을, 중부지역에서는 국군 제2사단이 금성의 서남쪽 후방까지 진출하였으며, 국군 제6사단이 금성천과 교암산을 점령했습니다. 결국 아군의 행동에 상당한 위기감을 느낀 공산군 측은 결국 회담 재개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유엔군은 회담장소의 불리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당시 접촉선인 경기도 파주군 진서면 어룡리의 널문리 마을로 장소변경을 주장하였고 회담 재개가 다급해진 공산군 측이 개성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회담성사가 어려워 질것으로 예측하여 여기에 전격 동의함으로써 이곳이 새로운 회담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그 만큼 1951년 초가을에 있었던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아군의 압박은 전사에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공산군 측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 일으켰던 군사작전이었습니다.


[널문리의 임시 회담장, 이후 이곳이 판문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유엔군 측이 제시한 곳은 널문리 마을 초입에 있던 주막 앞은 사방이 탁 특인 평범한 콩밭이었는데 여기에 텐트를 치고 회담이 재개 되었습니다. 이곳은 단지 남북 간 군사 접촉선에서 평평하게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는 중간지점으로 어느 일방도 사전에 매복하고 있다가 군사적인 위협을 가하기는 힘들다는 지리적인 이유만으로 선정되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널문리의‘널’자를 교전당사국중의 하나였던 중국어로 표기할 수 없어 이를 의역하여‘널문리 주막’의 한자어 표기인 ‘판문점(板門店)’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판문점은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바뀌었고 세계적으로 냉전시대를 상징하는 유명한 지명이 되었고 아쉽게도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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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14 2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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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2]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21 08:32
  예나 지금이나 반격에는 항상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필수입니다.
  고대 전사에서도 기병이 예비대이자 반격의 중추로 활약했고 대포가 발명된 이후에는 공격과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죠(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반격작전을 지시하는 육군 총참모장에게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 이형근 준장에 대해 일부 분들은 "어찌 상관에게 항명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하지만 이형근 제2보병사단장의 반박이 무조건적으로 억지스러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습니다.
  당시 전황은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죠.
  전선에서는 파죽지세로 밀려드는 T-34/85와 Su-76으로 인해 사실상 공황상태 그 자체였고 한국군이 보유한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바주카포로는 일격에 전차를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
  이 때문에 이형근 준장은 어차피 북한 전차를 상대할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천연 장애물인 한강선에서 방어전을 펼쳐야 한다는 상식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건의를 했습니다.
  당시 한국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로는 북한군의 T-34/85를 원거리에서 일격에 격파하기가 어려운 상태였고 이 때문에 한국군의 공황상태는 치명적인 패착으로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이형근 준장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일축하면서 "북괴군 놈들의 전차와 포병에 위축되지 마라! 강인한 정신력으로 반격을 감행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고함을 질러대는 한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가장 걸작인 것이 바로 “수류탄과 화염병으로 적 전차에 육탄 공격을 하라”는 명령이었는데 이 부분을 보자면 마치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일본군을 방불케하기 충분한 대목이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차에 대한 육탄공격은 보병으로서는 대단히 큰 모험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전반적인 전황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전황이 파국으로 몰리는 위기 상황 하에서 정작 단합되어 어떻게든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할 작전을 수립해야할 육군 수뇌부의 의견 대립으로 인해 6월 25일은 그야말로 전방과 후방에서 치열한 격전이 전개된 하루였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이 지속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된 명령만을 하달하자 마침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도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채병덕 총참모장이 이형근 준장의 반박에 분을 못참고 채찍을 휘둘렀다는 험악한 풍문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하니 제7 보병사단 사령부는 가장 길었던 하루( The Longest Day )를 보낸 셈이었습니다.
   채병덕 총참모장과 달리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한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 하지만 채병덕 총참모장은 오로지 현 위치 고수와 반격이라는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지휘 계통마저 무시한 채 직권으로 예하부대를 출동시키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자신이 명령에 제2 보병사단장이 끝까지 반박하자 마침내 채병덕 총참모장은 자신의 직권으로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 2대대장 차갑준 소령에게 직접 구두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조국의 운명은 바로 이 곳 의정부에 달려 있다. 현재 포천 방면에서 넘어오는 고개( 축석령 ) 앞에는 적 전차 30대가 포진하고 있으니 즉시 특공대를 편성해 격퇴시켜라. 이 작전에서 귀관이 성공한다면 진급 규정에 관계없이 중령으로 특진시키겠다.”
 
군인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 바로 진급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내려진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은 꽤 메리트가 큰 것이었고 따라서 차갑준 소령은 부대를 출동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차갑준 소령의 2대대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탄약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 6·25 방문자 여러분들 중 혹시 1997년에 개봉한 파울 베르회펜( Paul Verho"ven ) 감독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감상하신 분들은 아마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지만 보병에게 지급되는 탄약의 양은 지독하게 적고 자동소총이 보편화된 현재 140발로는 택도 없는 지경입니다.
  아라크니드족의 대군을 맞아 요새를 지켜내야 하는 러프넥 중대원들의 사투 중 탄약이 바닥나 옆 동료의 탄창을 얻어쓰는 부분이죠.
  오늘날 한국군의 소총수는 개인당 140발의 5.56mm×45탄을 지급받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전시에 이 정도 양으로는 반나절도 채 못 버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K-2 소총의 경우 3점사나 연발로 사격할 때 30발 탄창 비우는데 20초도 채 안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실제 제가 군복무 시 K-2 소총을 이용, 공포탄 20발 탄창 3개를 연발로 난사하여 측정한 것입니다. 이렇게 쏘고 난 다음 3일 동안 방아쇠만 제외한 총의 전 부위를 완전 분해해 손질했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 당시 한국군에게 지급된 미국제 M1 개런드 소총이 아무리 묵직하고 반동이 강한 7.62mm×63탄을 사용하더라도 최소 1인당 8발 클립 11개, 총 88발이라는 만만치 않은 양이 지급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카빈 소총은 15발 탄창 11개, 톰슨 기관단총은 30발 탄창 7개가 지급되었습니다 )
  문제는 당시 2대대 병사들에게 지급된 M1 소총탄은 1인당 평균 2~5개 클립, 총 16~40발이 고작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전시 지급량의 절반도 못 채운 셈입니다.
  카빈의 경우는 더 심각해 평균 15발, 즉 1인당 1탄창이 고작이었고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경우 20발 탄창 4개 - 총 80발이 전부였습니다.


  차갑준 소령이나 예하의 중대장들이 봐도 이런 상태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상황이었고 회의 끝에 축석령에서 탄약을 재보급받기로 결정, 6월 26일 오전 3시를 기해 부대를 출동시킵니다.

  의정부의 운명이 걸린 축석령으로 향하는 2대대! 하지만 이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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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익열사 2010.09.03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형근 장군... 대한민국 군대 군번 1번 아닌가요?

  2.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쉽 트루퍼스의 요새 전투 장면은 지금봐도 긴장감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3. FPS를 할때 2011.06.06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콜오브듀티 5 월드앳 워에서 개런드 M1이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128발이 주어지는데 여기서도 죽은 동료의 총알을 노획하지 않으면 사실상 한 게임 반도 못가서 총알이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게임 안에서도 이럴진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는 안봐도 뻔한 수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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