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대전'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11.12 100. 끝나지 않은 전쟁 (117)
  2. 2010.07.28 65. 거인의 퇴장 (5)
  3. 2010.07.08 미그기 격추한 영국 프로펠러 전투기 (8)

100. 끝나지 않은 전쟁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1.12 08:17


  그 거대했던 규모에 걸맞게 6·25전쟁의 성격은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해석됩니다. 대표적으로 “공산주의의 침략에 대한 집단안보 수호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있는가하면 “한반도 내에서 해방이후 지속되어온 이념적 갈등의 연장이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또한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6·25전쟁은 원인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 내부적 요인과 국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발생한 국제전적 내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전쟁 개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할 대상은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쟁의 종결이나 휴전은 상당히 힘든 과정이지만 개시는 순간의 선택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북한이 남침할 수밖에 없게끔 당시의 상황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일부 수정주의시각이 회자될 정도로 6·25전쟁과 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북한의 남침에 의해 전쟁이 개시되었다는 점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결국은 전쟁은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자가 일으키는 것이므로 전쟁을 시작하였던 북한과 이를 비호하였던 소련 그리고 직접 참전하여 비극을 만들어낸 중국의 책임은 역사에서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습니다.


  또한 3년 1개월 2일간의 짧지 않은 전쟁을 결과 면에서 본다면‘국내적으로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란’이었다고 정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 하나의 도움도 되지 않고 오로지 피해만 안겨준 참사였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수많은 피와 재물을 받쳐가며 조금이라도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 때문에 막판에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외치던 당시 한국정부의 입장이 명분상으로 맞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만큼 감내하기 어려운 심각한 피해를 입었으면 적어도 통일을 이루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까지는 달성하여야 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맞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얻은 것은 없고 오로지 잃은 것 뿐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처럼 희생당한 반대급부로 불안정했던 세계질서가 6·25전쟁을 통해 공고한 냉전체제를 구축하면서 역설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은 제2차 대전 후 들불처럼 세계 각지에서 타올라갔던 공산주의의 팽창을 꺾어 버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데는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과 달리 북한의 제 1후견인인 소련이 직접 개입을 꺼렸던 데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했지만 무려 2,000만 명이 희생당하고 유럽 러시아일대가 초토화되는 끔직한 악몽을 겪었고 아직 이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였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정면 대결을 최대한 회피하려 들었습니다. 따라서 6·25전쟁이후 보다 확고하게 대립하며 벌어진 냉전기간 동안 비록 첨예한 체제경쟁을 수반하였고 핵의 위협에 세계는 숨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바로 직전에 있었던 제2차 대전 같은 초유의 사태는 막아내었습니다. 그렇다면 6·25전쟁은 국제적으로 비화되었지만 세계대전을 예방한 전쟁이 되어버린 셈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산이 여섯 번 이상 바뀔 만큼 어느덧 전쟁이 발발한지 60년이 되었고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전쟁의 제 1관계자였던 소련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고 가장 많은 피를 흘리며 대적하였던 중국과는 수교를 맺어 첫 번째 교역 상대국이 되었을 만큼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냉전으로 통칭되던 국제 사회의 갈등 또한 과거의 유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허리는 휴전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6·25전쟁 당시 보다 더 많은 군대와 무기가 서로를 향하여 대치하고 있습니다. 휴전은 결코 전쟁의 끝이 아니므로 6·25전쟁이 종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잊고 있었지만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입니다. 끝.

P.S. 이로써 ‘생생 6.25’코너에 지난 1여 년간 연재한 6·25전쟁사가 끝났습니다. 본 연재는 최용호-김병륜 공저의 '그때 그날' (삼우사 2003년)을 기본으로 하여 최근까지 간행된 각종 최신 공간사를 참고하여 집필하였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군데군데 오타가 있고 생략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잘못은 집필자의 능력부족 때문이며 정중히 양해의 말씀을 구하고자 합니다. 혹시 이후에 내용과 관련하여 질문이 있으면 http://blog.chosun.com/xqon (august 의 軍史世界)에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ugust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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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적 갈등의 연장이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또한 있습니다.

  12. 고태진 2013.09.19 13: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으로 얻은 것은 없고 오로지 잃은 것 뿐이다. 지구에서 전쟁이 사라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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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추상적인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18. Serasaco Branca Love Tips 2014.02.16 2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면, “내전에 대한 강대국의 개입이다”이라는 전혀 상반된 의견

  19. Construction Lawyer 2014.04.20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론과 달리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0. http://www.estyma.eu/ 2014.04.26 15: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은 전쟁을 벌이겠다고 마음먹은 자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엄연하고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21. 피알앤애드 2014.06.25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65. 거인의 퇴장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8 08:13

 
  전쟁 종결 방법에 관한 맥아더의 강력한 의지는 영국을 비롯한 자유진영 측의 반발을 불러왔을 뿐만 아니라 협상으로 전쟁을 종결지으려는 트루먼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미군이 아닌 유엔군사령관의 직위를 가진 맥아더가 전쟁을 지휘하는 한 정부와의 불화는 더욱 격화될 것임이 명확하게 되었습니다. 맥아더가 설득당하여 그의 고집을 꺾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던 워싱턴 당국은 맥아더를 해임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임된 전쟁영웅의 귀환을 반기는 뉴욕시민]


  1951년 4월 11일,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맥아더 원수를 해임시켰다는 워싱턴 발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당시 맥아더는 유엔군사령관이라는 직위 외에도 주일 연합군사령관, 극동 미군사령관, 극동 미 육군사령관의 직위를 함께 보유한 제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군인이기 이전에 일본을 통치하는 총독과 같은 존재였고 인천상륙작전에서 알 수 있다시피 6·25전쟁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하던 또 하나의 주요 정치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거물의 갑작스런 해임소식에 세계는 놀랐으나 사실 맥아더의 해임은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요에 따라 지휘관을 교체하는 것은 군 통수권자의 고유권한이지만, 문제는 맥아더가 미군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공화당으로부터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전쟁영웅이라는 점이 정치인 트루먼에게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맥아더의 해임은 선거에 임박해 있던 그에게 분명히 일종의 모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심을 거듭한 트루먼은 마샬, 브래들리, 애치슨, 해리만 등의 참모들과 협의를 거쳐 극약처방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의 후임으로 어려운 시기에 제8군을 잘 이끌어 왔던 리지웨이를 임명하였습니다.
   

  1951년 4월 14일, 유엔군사령관으로 영전한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공석이 된 제8군사령관에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중장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제1급 전투사령관이라는 보증서가 붙어 있는 역전의 용사로 상당히 공세지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 같이 최고 지휘부가 일거에 교체됨으로써 전쟁의 양상은 전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공세적인 성격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와 신중한 성격의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의 지휘체제로부터 신중한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와 공세적인 제8군사령관 밴플리트 체제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내한 한 브래들리 합참의장을 안내하는 리지웨이와 밴플리트]


  이 시점에서 새로운 지휘부의 최대 화두는 소련의 개입이었습니다. 소련의 개입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전면개입, 해-공군만 투입하는 제한개입, 장비와 물자만 지원하는 간접개입 등으로 나뉘어 질수 있었는데, 당시 정보에 의하면  간접개입단계로 파악하고 있던 중이었고 규모는 중국군의 참전이후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현 단계에서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는 개입이 이뤄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한마디로 가장 큰 고민일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1951년 4월말까지 소련은 북한이나 중국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중국과 북한이 소련에게 가장 많이 그리고 간절히 도움을 원했던 것은 절대 열세 상태에 있던 공군이었습니다. 비록 소련이 MIG-15같은 최신병기를 공급하여 주었지만 흔히 미그회랑(MIG Ally)이라 불리던 한만국경에서나 작전을 펼칠 수 있었지, 정작 가장 중요한 38도선일대는 공중지원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야포나 전차의 지원도 그리 충분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으로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됩니다.


  가장 큰 가능성이 중국이 전쟁에서 완승을 거두어 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는 사태를 소련이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가능성입니다. 다음으로 소련의 국력에서 더 이상의 개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는 주장입니다. 소련은 불과 6년 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오천만 명이상의 인명손실을 입었고 국토의 대부분도 황폐화되어 재건에 매진하여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언급되는데, 분명한 것은 적어도 그 당시 시점에서는 소련이 미국과의 직접대결을 회피하였던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1945년 8월 만주점령 당시 환영받는 소련군,

소련은 막강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적극적인 개입은 주저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소련이 6·25전쟁에 확대 개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주요 당사자였고 중국의 개입을 사주하기도 하였던 소련이 막상 이런 소극적인 자세를 전쟁 내내 견지하자 중국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이것은 후일 중-소 이념분쟁의 한 가지 원인으로 발전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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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번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 또한 고마울따름입니다.

  2. qwe 2012.02.19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병전우회 자유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중공군이 물밀듯이 서울로 향하여 내려오고있던 1950년12월23일 워커 미8군 사령관은 서울북쪽 의정부의 미군부대를 방문하는 길에 아들 샘 워커중위에게 은성훈장을 직접 수여하기로 했다. 얼어붙은 도로를 맹속도로 달리고 있던 워커중장의 짚을 추월하려던 한국군 트럭이 추월했다. 짚이 옆으로 뒹굴면서 보좌관과운전병은 튕겨나와 살았지만 워커중장은 즉사했다. 이승만대통령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사고를 낸 한국군 운전병을 즉시 처형하도록 지시한다. 옆에 있던 미 군사고문관 짐 하우스만 대위가 말려 운전병은 3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 짐 하우스만 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런 뼈아픈 지적을 했다.
    <하버드 대학의 고풍어린 교내 예배당 벽에는 한국전에서 목숨을 바친 20여명의 하버드생 병사들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들을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내보냈다. 교수들도 참전해 더러는 전사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했다. 그러나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전사한 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는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게하는 표지는 없다. 존경하는 소대장님, 용감한 중대장님, 대대장님, 그리고 생명을 던져 진지를 지켜낸 병사들의 애기는 입으로만 전해질 뿐 그들을 기릴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전후 팔응 잃은 국회의원, 눈이 날아간 국방장관을 갖지 못했다. 행사장이나 연회장 같은 데서 한국전 전상자들을 만나 본 적도 없다.>
    여중생 두명이 미군 장갑차 깔려 죽은 것만 기역하는 젊은이들은 6.25때 한국을 지키는 작전을 총지휘했던 미군사령관이 한국인의 과실로 죽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도 다른 미군 사령관의 아들이 자원하여 참전, 폭격임무에 종사하다가 전사한 사실도 모를 것이다.
    알아도 아무 감흥이 없다면 국가적으로,인간적으로 구제불능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위와 같은 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로 모교를 소개 했습니다.

    "6.25때 교통사고로 죽은 워커 중장"이라는 글을 써주신 참전 해병 선배님, 올리신 글 잘 읽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많은 가르침이 되었으면 합니다. 선배님께서 "한국의 어느 학교에도 전사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는 자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표지는 없다."라고한 하우스만 대위의 회고록을 인용하셨는데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의 모교 '서울고등학교'는 한국전쟁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한 학생이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많은 학교입니다. 제일 많은 학교가 제주 오현고등학교고, 저의 모교가 2번째라고 합니다. 저의 모교에는 1956년도에 포충탑(褒忠塔)이라는 탑을 건립, 제막하였습니다. 포충탑의 뜻은 충성된 마음을 기리는 탑이라는 뜻이며, 초대 이승만 대통령께서 하사하신 친필 휘호입니다. 그 탑의 뒷면에는 "조국을위해 생명을 바친 학우들에게"란 15자의 글을 그 당시 모교 은사로 재직하고 계셨던 시인 조병화 선생님께서 지어주셨고, 6.25전쟁 참전 학도병들숭에서 전사한 30명의 학우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그 후 4.19의거 때 희생된 학우들, 또 월남전 파월전에 수류탄을 덮고 산화하신 강재구 학우등 총 33명의 이름이 각인되어있어 후배들에게 애국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강재구 소령의 흉상은 그 동기들이 졸업 30주년 기념으로 제막하였습니다. 포충탑,강재구 소령 동상,삼일탑(3.1탑)등 3개 시설물은 국가보훈처로부터 2002년 12월11일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된 바 있습니다.
    선배님 제 모교 자랑인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에도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학우들"의 뜻을 기리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과 같은 글을 해병대 전우회 자유게시판에 올렸습니다. What an excellant high school we attended! How smart and nice the education we received was!! How noble

    __________

    지난 해 7월 8일 독립신문(http://independent.co.kr/ )독립군 게시판 623번 글에 실렸던 이 칼럼은 비록 짧지만 우리가 주한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우정을 이해하기 위해 몹시 중요한 글이므로 일독을 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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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그기 격추한 영국 프로펠러 전투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08 08:37

 


영국 해군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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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 익어가는 1952년 8월 9일.

황해의 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에서 함재기 씨 퓨리 4기 편대가

평양 북방의 철도 시설을 폭격하는 임무를 가지고 출격했다.

편대장은 경력 8년의 카마이클이었다.


영 항모 테세우스- 13,400톤, 48기 탑재
영국 항공모함 테세우스, 최초 참전 트라이엄프에 이은
두번째 교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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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퓨리는 그 앞 세대인 씨 화이어가 함재기로서 여러 문제점을

들어내자 그 대체기로서 전쟁 중에 급히 개발한 전투기다.

씨 화이어는 육상의 명전투기 스피트화이어를 함상용으로

개조한 것이다.


육상에서 스피트화이어로 맹활약을 했던 명전투기였지만

전투 환경이 너무 다른 함상에서 쓰기에 여러 문젯 점을

노출했다.


직렬 엔진의 기수가 너무 길어 시야가 무척 가려

졌었고 좁은 바퀴의 약한 육상용 착륙장치는 거친 함상

착륙을 버티어 나지를 못했다.


씨파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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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거친 착륙으로 동체 후면에도 주름이 잡혀 이 연약한

육상의 왕자는
해상에서는 부적합한 전투기라는 해군 당국의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씨 퓨리다.

1759마력의 강한 추진력에 튼튼하게 만든 기체로 시야를 좋게하는

짧은 기수를 가진  둥근 래디얼 엔진을 갖추었다.

최고 속도는 460마일이었고 4문이 20mm 기관포를 장비했다.


2차 세계대전이 거의 끝에 왔을 때 탄생했던 미국 해군의
F8 베어켓와
비슷한 운명을 갖게 된다.

제트 시대가 도래해서 프로펠러기는 더 이상 주역이 될 수는 없었다.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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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가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 진입하는 길목인 

대동강 하류의

진남포 근방 상공에서 뜻밖의 강적을 만났다.

2 번 기 조종사 칼 하인즈 준위가 편대 후방 우측에서

미그기들이 고속으로 접근중이라는 경보를 발한 것이다.


미그기들은 압록강 상공일대 미그 골목이라는

지역 일대에서만 출격 했었다.

그러나 가끔 평양 상공까지도 남하해서 유엔기들을

공격했다.



이륙하는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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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대장 카마이클 대위는 급히 상황을 살폈다.

그는 처음에는 미그기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미그기들은 태양을 등지고 덤벼왔다.

후방에서 접근하는 미그기는 2 개 편대 8기나 되었다.



미그-1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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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좌측 4번 기의 편대원 엘리스는 적기가 원거리에서 발사한

예광탄들이 기체를 스쳐가자 편대를 이탈하여

급격한 피신 기동을 했다.


편대장 카마이클은 즉시 전 편대원들에게 기수를 미그기들에게

돌리고 반격했다.


프로펠러기로서 훨씬 나은 미그기들에게 대응할 방법은

그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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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나 프러펠러 전투기와 제트기가 붙은 공중전은

서 너 번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두 성능 차이가

나는 전투기들이 조우하면 서로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격해서 정면 승부를 결해본다는 점이다.

이날의 경우도 꼭 같았다.

B-29에서 촬영한 미그-15 편대,
공격을 위해 B-29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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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의 전환과 함께 4기의 씨 퓨리기들은  ‘가위’ 기동에  들어갔다.


이것은 미 해군 중령 태처가 태평양 전쟁 초기 개발한

방어 비행을 말한다. -THATCHER'WEAVE-라고 불렸다.


한기 또는 두기가 마치 꽈배기 꼬듯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번갈아

향하여 교차비행을 하는 것으로 적기가 동료기의 후미를


공격하기가 매우 힘들게 한다.


미그기들은 4기 편대로 나뉘어 각기 두 기씩의 영국 기를

추격했다.


그러나 씨 퓨리기들이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물어주는 타이트한

방어기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미그기들은 사격을 하지를 못하고
겉돌았다.


 순간 카마이클의 정면으로 한 미그기가

돌입해왔다. 성급한 그 조종사는 후미를

공격하기 힘들자 정면으로 돌았던 것이다.

편대장 카마이클의 캐노피 위로 적기가

쏟아내는 예광탄의 불줄기가 연달아

지나갔다.



미공군 F-86에 격추당하는 미그 15기.
아래 멀리 압록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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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마이클은 과감하게 적기에게 접근하며

20미리 기관포문을 열었다.


기관포의 화력이 적에게 몰리는 순간

정면에 쇄도한 적기는 카마이클의 씨 퓨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그의 코스가 우리 편대기 들을 화망을 지나가야한다는

것을 잊었던듯 하다.

2번기 칼이 사격을 해서 이 전투기에 약간의 명중탄을 냈다.


미그기는 칼의 사격를 피해서 다른 2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두 씨 퓨리 기의 정면에 나선 것이다.


3번기의 피트 데이비스 대위와 4번기는

이런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두 기다 이 미그기에 명중탄을 퍼부었다.


이미 상처를 입었던 미그기는  제대로

대응기동이나 사격도 못했다.

미그기는 연기를 뿜으며 멀리 저공으로

추락해갔다.



씨 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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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그기는 6·25전쟁중 영국 해군기가

격추한 유일한 미그기다.

카마이클은 이 미그기 격추를 인정받고

1953년 특별 무공 훈장을 받았다.


첨언한다면 공산 제트 전투기와 유엔군 측의 프로펠러
전투기가
격돌해서 공산군 제트기가 격추당한 사건은 또 있었다.


미 해병 콜세어 기가 역시 대동강 상공에서 미그기와 조우하고

이에 과감히 돌격해서 격추시켰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미그기에게

격추되어 낙하산으로 비상 탈출했었다.



미 해병대 콜세어 F-4U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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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날 조종했던 씨 퓨리 기는 나중에 영국 해군에서 은퇴해서

1957-1958년 버마 공군에게 매각되었다가 다시 호주로 팔려

현재는 한 호주의 개인 조종사가 취미생활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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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07.08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 history채널에서 dogfight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월남전 당시의 미군의 프롭전투기 2대가 자신들을 향해 비행해 오는 북베트남군의 미그기를 격추시킨것을 봤습니다. 프롭기로 제트기를 격추시키는것은 어려울텐데...
    그나저나 저기 f4u콜세어기의 조종사는 탈출을 하고 살아남았을지...

  2. 재롱박사 2010.07.09 2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그기 조종사는 경험이 부족한 북한이나 중국의 신참 파일럿일 줄 알았는데 조종사도 노련하고 기체정비도 잘 된 서소련군 미그기를 프로펠러기로 격추시켰다니 더욱 대단한 전과로군요.
    그런데 2번기 조종사가 칼 하인츠 준위라고 되어 있는데 오타인가요?
    영국군에는 준위 자체가 없고 또 저 당시 준사관 조종사 제도도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3. 코호하는사람 2010.07.12 1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의 스핏파이어는 없구나 ㅜㅠ

  4. 의료혁명★클릭하세요 2010.10.13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건㎾강정보◑ 좋은 글 감사합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평생건강지킴이 : 내 병은 내가 고친다.>

  5. brother ink cartridge fill 2012.05.28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시 이런 종류의 매우 드문 일 인데요 .. 그것은 이와 같은 기사를 사냥하는 과잉 시간이다. 꽤 유익한뿐만 아니라 내용이 매우 분명 플러스 간결 있습니다. 나는거야이 게시물의 외관을 더욱

  6. cheap refills tattoo 2012.05.28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들이 exensive 재산 또는 가정이 될 수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물건 이러한 유형의 작은 수량을 통해 돈이 안 전체와 함께 기술 배면 제어 키에 관한 몇몇 비버입니다.

  7. drivers refurb 2012.05.28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사의이 종류는 단지 특정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고 연구하는 데 도움이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 제안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다른 기사 또는 블로그 게시물 있나요? 감사

  8. 2013.07.07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트남에서도 스카이레이더한테 격추당한 미그17이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