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군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9.07 78. 국군 제6사단의 와신상담 (40)
  2. 2010.08.30 75. 국군 제3군단 최후의 날 (8)
  3. 2010.08.10 70. 매봉 및 한석산 전투 (3)

78. 국군 제6사단의 와신상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9.07 13:53

 

  결론적으로 중공군의 제6차 공세는 중공군 최대의 패배로 기록될 만큼 엄청난 실패로 막을 내렸지만 그 과정 중에 국군 제3군단 해체라는 국군 역사상 최악의 기록도 남겼습니다. 밴 플리트가 분노하여 즉시 국군 제3군단을 해체하고 이후 형식적이나마 존재하던 국군의 지휘권을 박탈하여 유엔군 단일 지휘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강수를 두게 하였을 만큼 참담하였습니다. 평창-횡성전투, 사창리전투의 연속된 패전으로 국군에 대한 유엔군의 신뢰가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벌어진 현리전투의 결과는 그야말로 국군을 믿지 못할 존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국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위대한 전투가 바로 인근에서 벌어졌습니다.


[국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위대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1951년 5월 16일, 제6차 공세를 감행한 중공군과 북한군은 중동부 전선에 주공을 투입함과 동시에 조공이 서부지역의 유엔군이 국군 제3군단지역으로 증원되는 것을 차단할 목적으로 북한강 계곡으로 진입하였습니다. 이곳에 나타난 공산군은 중공군은 3개 사단으로 구성된 제19병단예하의 제63군이었고 이들은 지난 4월에 있었던 제5차 공세당시에 사창리에서 혼쭐이 난 국군 제6사단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들어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중공군은 미군을 피해서 집요하게 국군이 담당하던 섹터로 돌파구를 확장하려 시도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용문산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적이 이곳을 점령하면 아군의 전선은 서부와 동부로 양분되어 각개 격파될 수도 있는 전략상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시 국군 제6사단은 해발 1,157미터의 용문산일대를 점령하여 방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사창리패전의 경험과 이후 위기를 대신 막아낸 영연방 제27여단의 가평전투를 직접 목도한 장도영 사단장은 무엇보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회복이 중요하다가 판단하여 병사들의 정신무장을 강화하면서 훈련에 열중하였습니다. 사창리전투 후 구사일생으로 부대가 해체될 수도 있는 위기는 넘겼지만 주변의 미군들로부터 겁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수모를 겪던 국군 제6사단은 이처럼 묵묵히 내실을 다지며 치욕을 극복할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결사라는 글자를 새긴 머리띠를 둘러맨 제19연대 2대대병사들]


  제6사단은 용문산을 중심으로 서쪽에 제19연대를, 동쪽에는 제7연대를 배치하여 방어선을 구축해 놓은 상태였는데, 주저항선이 북한강에서 12~17킬로미터 정도 떨어져있어 적이 전면으로 도하하여 교두보를 확보할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따라서 장도영 사단장은 예비로 후방에 빠져있던 제2연대를 홍천강 남단에 추진 배치하는 역발상적인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후방에서 최전선으로 전개 된 제2연대의 제1대대가 미사리의 559고지에, 제2대대가 해발 381미터의 울업산에, 제3대대가 연대의 예비로 울업산의 후방인 353고지에 각각 전면방어진지를 구축하였고 더불어 장병의 각오를 다지기 위하여‘결사’라고 쓴 머리띠를 착용하였습니다. 그만큼 비장한 각오로 방어진지를 준비하고 결전을 기다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규모 중공군이 남하하며 북한강 일대에서 전운이 감돌자, 제2연대의 서측에 배치된 국군 제2사단 31연대와 동측에 배치된 미 제7사단 17연대가 후방에 마련된 주저항선으로 철수하게 되면서 제2연대만이 적진에 홀로 돌출 되어 포위될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사창리의 실패를 여기에서 만회하겠다’는 굳은 결의에 불타있던 제2연대의 장병들은 중공군의 포위공격에 대비하여 전면방어 태세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었습니다. 청성부대는 중과부적인 상태에서 고립방어에 들어가 원주에서, 지평리에서, 설마리에서, 가평에서, 펀치볼에서 압도적인 중공군을 막아내거나 지연시켰던 유엔군의 교훈을 따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지 구축 완료 후 얼마 되지 않아 북한강 북쪽에서 중공군의 활동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연대 정찰대가 5월 17일 적의 예상도하지점을 정찰하던 중 중대규모의 중공군이 이미 홍천강을 도하하여 계곡에 집결중인 것을 발견하고 이들을 교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워지면서 중공은 도처에서 북한강과 홍천강을 도하해오자 정찰대는 방어선 안으로 철수하였습니다.


[중공군의 대대적인 도하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5월 18일 아침이 밝아오자 중공군은 중대 규모로 나뉘어 도처에서 홍천강 도하를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나온 제2연대는 과감한 저항으로 이들의 도하를 저지시켰습니다. 주간 공격에서 아군의 강력한 저항에 돌파가 실패한 중공군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아군의 전면 방어진지를 우회하여 제2연대를 완전히 포위하고자 대구모 공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제2대대가 방어하는 울업산과 제1대대가 담당하는 장락산맥에 연대 규모의 중공군이 나타나 도하공격을 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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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 6사단의 와신상담편 잘봤습니다. 패전을 계속하다 결사라는 머리띠를 둘러맨 19연대 제2대대 병사들을 보면서 결연한 의지를 느꼈습니다.
    땅에 떨어진 국군의 위상을 살리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배수의 진을 치는 국군 제 6사단이 존경스럽습니다. 비장한 각오와 장도영 사단장의 후방의 제2연대를 홍청간 남단에 추진 배치하는 역발상적인 초강수를 두는 등 전략과 각오가 대단했다는 것을 글에서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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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국군 제3군단 최후의 날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30 08:20

 

  중요한 목지점인 오마치고개를 중공군이 장악하였다는 사실을 아군이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미 제10군단 예하 인 국군 제7사단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중공군이 국군 제3군단 후방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국군 제9사단은 만일을 대비하여 사단이 보유한 차량과 중장비 200여대를 창촌 일대로 철수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오마치고개의 피탈이 파악되었습니다. 이들 철수 차량제대가 후방의 창촌으로 가려면 오마치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동 중에 중공군으로부터 급습을 당하였고 이를 통해 고개가 차단당한 사실을 인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인근 국군 제3사단과 군단본부에도 즉시 보고되었습니다.


[중공군의 오마치고개 점령 사실은 국군 붕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군단본부는 이를 잘못된 보고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설령 적이 오마치고개를 장악했다하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침투부대나 공비들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직 그곳을 관할하는 미 제10군단으로부터 어떠한 사실도 통보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 반나절 만에 중공군이 전선을 가르고 30킬로미터 후방까지 침투 할 수 있었겠냐하는 막연한 생각도 그런 오판을 가져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단본부가 이처럼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막상 중공군은 오마치고개는 물론 훨씬 남쪽 후방인 침교에서도 두 번째 포위망을 구축하던 중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퇴로가 엄중히 차단당한 국군 제3, 9사단이 오마치고개를 거쳐 후방으로 후퇴가 5월 17일 오후에는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설령 오마치고개를 넘었다하더라도 후방인 침교마저 적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여서 오마치고개의 중요성은 이미 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집어볼 점은 오마치고개가 아니라 바로 국군 제3군단의 항전의지였습니다.


  국군 제3군단과 예하 사단들은 단지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접하자마자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후퇴를 결심하였습니다. 물론 퇴로의 차단은 포위를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패배와 몰살을 뜻하는 단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마치고개의 피탈 소식을 전해들은 국군 제3군단은 5월 17일 오전 중에 이미 항전을 포기하고 철수를 목적으로 대책 없이 현리일대로 전방부대들이 집결하는데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공산군은 아군을 부분적으로 포위만 하였지 압박을 가하던 상태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먼저 국군 제3군단은 후퇴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국군 제7사단의 붕괴로 말미암아 먼저 뚫려 버린 미 제10군단 지역은 미 제2사단의 선전으로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지 않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국군의 무능이 바로 펑떠화이가 이번 공세를 국군지역으로 하게 만든 이유였고 철저하게 불행히도 그런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흘러갔습니다.


[능선을 기어오르며 인해전술을 펼치는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


  국군 제3, 9사단이 고심 끝에 시도한 작전은 결사항전이 아니라 한심하게도 오마치고개 돌파작전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오로지 후퇴를 염두에 두었던 작전이었습니다. 양 사단에서 각 1개 연대씩 차출하여 5월 17일 21시, 오마치고개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한마디로 앞에서 밀려오는 적은 그대로 놔두고 퇴로를 뚫기 위해 뒤로 돌아 공격을 가하는 치욕적인 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그 결과 부대에 대한 통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대들은 북한군의 무능으로 말미암아 유일하게 개방되어 있던 방대산을 무질서하게 넘어 철수, 아니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공용화기는 물론 개인 화기까지 버린 병사도 있었으며, 주요 간부들은 계급장마저 떼어버리고 철수하는 그야말로 오합지졸들의 나 살기 경쟁으로 작전상 철수가 아닌 도망이었습니다. 적에게 패해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줄행랑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국군 제3군단은 통제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부대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방대산의 철수로가 얼마나 혼잡하였던지 그냥 서 있으면 떠밀려서 앞으로 나아 갈 정도였다고 전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대열 속에는 말단의 사병은 물론 국군 제3사단장 김종오준장, 제9사단장 최석(崔錫)준장, 군단 참모장 심언봉(沈彦俸)준장등 3명의 장성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군의 이러한 비참한 도주는 창촌-광원리-하진부리까지 70킬로미터를 내려와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습니다. 5월 27일까지 70퍼센트 정도의 병력과 30퍼센트 정도의 장비가 간신히 수습될 수 있었는데, 어쩌면 이 정도의 병력이 수습된 것만 해도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우측으로 남하한 북한군 3개 군단이 정상적으로 진출하여, 최초 계획대로 3중 포위망을 완성하였더라면, 방대산 및 계방산 일대에서 무방비 상태에서 무참한 살육전이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기 때문입니다.


[5월 27일 전투상황도]


  하지만 이러한 예측도 엄밀히 말하면 사상 최대 패전에 대한 핑계일 뿐입니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을 다녔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라는 가정이 나오는 것이었지, 결코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국군 제3군단을 공산군이 양익에서 완전히 포위하였어도 공중으로 보급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결사항전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저항은 애초부터 생각도 못했고 도망만 다니다 국군은 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당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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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과자 2010.08.31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 군단장 유제흥장군이 먼저 비행기 타고 달아나서 그게 부대내에 악영향을 끼쳐서 순식간에 무너진걸로 압니다

  2. 2010.09.03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걸 보고 가마귀 날자 배 떨러진다고 하죠..
    물론 유장군의 책임은 크지만.....

  3. Kim 2010.09.03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나 당시 군단장이던 유재흥장군은 맡는 보직마다 참패를 겪었지요. 개전 초 7사단의 궤멸적 타격, 2군단장 재임시 덕천전투 패배 3군단장 재임시 3군단의 현리전투 패배. 이때 밴플리트 장군과의 대면에서 대단한 명언도 남겼는데 뭐 어쨌든 전쟁에서 지휘부의 혼란이 예하병력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전례라 하겠습니다.

  4.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5. expedia deals with regard to airfare 2012.05.21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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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피알앤애드 2014.06.25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70. 매봉 및 한석산 전투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10 09:04

 

  공산군의 제5차 공세를 저지하는데 성공하자,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즉시 반격에 나섰습니다. 전임 사령관 리지웨이는 일단 상황을 본 후 점진적으로 공세로 전환하는 신중한 스타일의 지휘를 하였지만 밴 플리트는 저돌적인 성격대로 즉각 추격을 결심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공산군의 전투력이 고갈된 취약시기를 이용하여 적을 38선 이북으로 완전히 밀어 붙이고 공산군에게 차기공세를 준비할 수 있는 재편성과 휴식의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밴 플리트는 곧바로 반격을 개시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하고 있는 모습 )


  사실 이것은 상당히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중공군의 약점이 무엇인지 간파한 이상 그들이 회복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5차례의 공세를 통해서 중공군은 한번 공세가 끝나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회복기를 두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약점을 알게 된 이상 집요하게 파고들어 적을 괴롭게 만들수록 중공군의 재정비는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이번 중공군의 공세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인 중동부전선을 좀 더 위로 쳐올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세 당시에 공산군 주력을 서부전선에서는 훌륭히 막아내었지만, 오히려 중공군 조공이 견제 공격을 가한 중동부 전선에서 아군은 고전을 겪었습니다. 전선 중앙의 사창리에서 벌어진 국군 제6사단의 붕괴는 서부전선에서 선전을 펼치던 아군이 서울을 다시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철군하여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더불어 중-동부전선의 주 보급로인 홍천-인제-간성간 도로가 북한군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당하였습니다. 따라서 태백산맥 서쪽의 국군 제3군단과 동해안 연안의 국군 제1군단은 보급로가 제한을 받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밴 플리트는 전술도로의 탈환이 시급함을 깨닫고 서부전선에서 적의 공세를 좌절시키자마자 즉시 반격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밴 플리트는 전방 각 사단들에게 5월 2일부터 위력수색과, 중요목표지역에 대한 공격명령을 하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동부전선의 국군 6개 사단이 5월 7일, 미주리 선(Missouri Line)으로 명명된 춘천-인제-미시령-속초를 연하는 선을 향해 일제히 반격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히 확보해야할 고지가 인제의 우측을 감제하는 위치에 있는 한석산과 매봉이었습니다. 당연히 적 또한 이곳을 계속하여 차지하려 하면서 연일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한석산과 매봉을 놓고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습니다.]

( 포로가 된 북한군 )


  당시 한석산을 공격한 부대는 국군 제3군단 9사단 30연대였는데, 이 전투에서 제30연대는 72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적 사살 895명, 포로 42명과 4트럭 분량의 보급품 및 탄약을 노획함으로써 지난 제5차 공세 당시에 깊숙이 남진하여 있던 북한군에게 회복하기 힘든 치명타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 전투는 1,000미터가 넘는 산악 능선에서 대승을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는데, 여담으로 참패를 당한 북한군은 약 1년 전 6.25전쟁 초기에 바로 인근의 홍천에서 굴욕을 겪었던 제12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국군 제30연대가 혈전 끝에 확보한 한석산은 차후공격을 위한 유리한 발판으로 사용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실 고지는 차지하면 적을 감제하기는 쉽지만 후속 보급이 어려워 지속적으로 확보하기가 생각보다는 어렵습니다. 특히 전선이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어 유동적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예를 들어 뒤이어 실시된 중공군 제6차 공세를 견디지 못한 국군 제3군단이 현리 일대에서 붕괴되었을 때 어렵게 확보한 한석산은 이 같은 이유로 곧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공군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음 공세를 준비완료 하였습니다.]


  이처럼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 제5차 공세를 슬기롭게 막아내고 5월 2일부터 5월 중순까지 곧바로 실시된 반격작전으로 전선을 12~14킬로미터를 북상시켜 38선 일대에 다시 고정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공군의 제5차 공세는 중공군의 출혈을 유도하며 전선을 오히려 북상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패로 막을 내린 제5차 공세에서 공산군은 아군 전선의 결정적 약점을 발견하였고 이것은 곧바로 개시된 제6차 공세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었지만 제5차 공세 당시에 중공군은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제6차 공세가 예상보다 빨리 실시되었고 이것은 전사에 엄청난 피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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