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신화, 백마고지전투(1/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29 19:27

 6ㆍ25전쟁은 끝을 맺지 못한 전쟁입니다. 국토는 전쟁 이전처럼 계속 분단된 상태고, 북의 계속되는 도발로 인해 이전보다 더 팽팽히 대치중인 상태입니다. 정확하게 3년 1개월 2일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6ㆍ25전쟁은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3년이 넘는 시간 이 전쟁을 분석해 보면 군사적으로 가장 극적인 전투가 벌어진 순간은 전쟁 초기 1년간뿐이었습니다.

[6ㆍ25전쟁은 초기 1년간 극적인 작전이 모두 벌어졌다고 보아도 될 정도입니다.]



 전쟁이 발발한지 거의 1년이 되는 1951년 5월말의 중공군 제6차 공세 이후부터 휴전까지 전선의 변화는 거의 없었습니다. 쉽게 말해 전쟁 초기 1년 동안 서울의 주인이 무려 4번이나 바뀌었을 만큼 남북으로 무려 2,300여 킬로미터를 쉴 새 없이 오르내렸지만, 나머지 2년 동안은 겨우 50여 킬로미터 정도를 밀고 당긴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전쟁 종결에 대한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이 남침을 개시하여 낙동강까지 밀어붙였을 때, 우리가 반격에 나서 한만국경까지 달려갔을 때, 그리고 중공군이 참전하여 무려 여섯 차례의 대공세를 연이어 계속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피아 모두는 전쟁을 자신의 승리로 종결 짖겠다는 의지가 강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벌어진 이상 당연한 이치였고, 그렇기 때문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켜 끝장을 보려하였던 것입니다.

[피아 모두 승기를 잡았을 때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1951년 6월이 되자, 어느덧 전쟁을 주도하던 미국과 중국 모두는 승리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았습니다. 최초 세 차례의 공세에서 아군을 매몰차게 몰아붙여 재미를 보았던 중공군도 이후 1951년 봄에 연이어 벌인 일련의 공세에 실패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자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유엔군의 화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온 미군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중공군에게 어이없이 무너졌었지만, 중공군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한 이후 유엔군은 눈앞에 개미떼처럼 밀려오는 적들이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돌적이었던 밴 플리트(Van Fleet) 신임 미 8군사령관은 북으로 내달리기 위해 유엔군사령부에 공세를 허락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을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51년 후반기에 유엔군이 북진을 개시하였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아군이 주도권을 다시 잡았지만 그렇다고 공세를 펼치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지난 가을 북진 당시에 유엔이나 미 행정부는 그 한계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로 보았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는 국경선까지 진격하여 적을 소탕하면 원론적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내려온 중공군은 엄연히 교전 대상이었는데 단지 이들을 만주로 몰아낸다고 과연 중국이 전쟁을 포기할 것인지는 의문이었습니다.

 유엔군 입장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은 정치적 한계였지만, 참전을 단행한 중공군 입장에서는 단지 하나의 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만주로 확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이곳까지 진격하여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였습니다. 따라서 정치 외교적으로 종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 군사적 공세로 전쟁을 마무리 짖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때문에 군사적으로 우위에 섰음에도 재 북진을 주저한 것입니다.

[전쟁은 성격이 바뀌면서 고지전으로 변하였습니다.]



 결국 중국도 미국도 전쟁을 일방의 승리로 끝낼 수 없다고 판단이 서자, 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 짖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전선이 형성된 바로 지금, 휴전을 하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결국 회담은 시작되었고, 그러다보니 전쟁의 목표는 휴전시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6ㆍ25전쟁 후반기를 상징하는 고지전이 개시된 것입니다. (계속)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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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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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보인다, 351고지 지원 작전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03 17:58

 실패로 막을 내린 중공군의 6차 공세이후 전쟁은 소강상태를 유지하면서 휴전 시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고지전으로 급격히 변모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남북을 급격하게 오가며 있어왔던 기동전이나 대공세는 어느덧 사라졌고 좁고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과도하다고 표현할 만큼 많은 병력과 화력이 집결되어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혈전이 일상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전쟁이 1년이 지나자 휴전을 염두에 둔 고지전으로 변하였습니다]



 인해전술을 앞세운 공산군은 야간에 병력으로 밀어붙였고, 아군은 주간에 강력한 화력으로 맞상대하였지만, 살이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고지에서의 화력 지원은 아군의 피해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용에 제약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고지전은 병력이 우세한 공산군 측이 유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군이 화력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면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종종 위험한 도박을 하여야 했습니다.

 예들 들어 1951년 5월에 홍천 북방 778고지에서 벌어진 벙커(Bunker)고지 전투에서 고지를 선점하던 미 2사단 38연대가 10배 가까이 많은 중공군 12군에게 포위당하여 점령될 위기에 놓이자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진지에 몸을 숨기고 진내 포격을 실시하여 중공군을 격퇴시킨 경우도 있었지만, 사실 상당히 위험한 전술이었습니다. 정밀유도무기가 없던 당시에 이러한 위험을 상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하늘에서의 폭격이었습니다.

[고지의 목표지점을 공습하는 모습]



 적어도 제대로 통제만 된다면 포격보다는 좁은 고지를 놓고 혈전을 벌이는 지상군에 대한 지원은 공습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휴전을 앞둔 1953년 3월에 동부전선 351고지 전투에서 대한민국 공군이 보여준 항공 지원 작전은 이러한 예에 걸 맞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그 훌륭했던 전과는 대한민국 공군의 전설로 지금까지도 자랑스럽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1952년이 되었을 때, 어느덧 대한민국 조종사들은 단독으로 출격하여 작전을 펼칠 수 있을 만큼 기량이 향상되었지만 보유한 하드웨어는 그리 충실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인수한 주력기는 지금까지도 최강의 프로펠러 전투기라는 명성을 가진 F-51이었지만 한반도 하늘의 주역은 어느덧 제트기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공군의 F-51은 공대공 전투가 아닌 대지 공격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한국공군의 위상을 만천하에 떨친 승호리 철교 폭격 작전]



 금강산 남쪽에 위치한 351고지를 적이 확보한다면 우리 측 방어지역의 전부를 감제할 수 있게 되어 아군의 방어가 위태롭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방어를 위해, 북한은 공격을 위해서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지점으로, 연일 피 비린내 나는 혈전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공산군이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피아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아군의 이점인 화력지원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연일 이어진 공산군의 공세에 고지가 피탈될 위기에 놓이자 공군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강릉기지에 위치한 제10전투비행단은 위기에 몰린 아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가동이 가능한 25대의 F-51전투기를 쉴 새 없이 교대로 투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히 고지에 대한 공습이라면 크게 어려울 일이 없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작전의 주안점은 피아를 정확히 구별하여 정확히 타격을 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351고지]



 그러기 위해 최대한 저공비행을 하여야 했고 더불어 공격유도에 나선 전선통제기의 역할도 막중하였습니다. 작전수립부터 실행까지 한국 공군 단독으로 진행된 351고지 지원 작전을 위해 미군에서 파견 나온 T-6 전선통제기에도 한국 조종사들이 탑승하여 공격 목표를 정확히 지정하였습니다. 이렇게 목표를 유도 받았지만 F-51 전투기 조종사들도 피아식별이 육안으로 가능한 위치까지 초저공으로 비행하는 위험을 감수하며 적을 공격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군 지상군은 오폭으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었던 반면 정확하게 타격을 당한 공산군은 커다란 손실을 입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전투 과정은 5월말까지 계속 반복되었는데 기체에 그려진 태극기가 뚜렷이 보일 정도로 낮게 내려와 지원하는 공군의 활약은 고립된 351고지에서 악전고투하며 방어전에 임하던 지상군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고 반면 공산군에게는 악몽이었습니다.

[은빛 날개에 새겨진 태극기는 승리의 표상이었습니다.]



 비록 아쉽게도 휴전 직전 단행 된 공산군의 대대적인 공세로 고지가 피탈되면서 치열했던 전투가 막을 내렸지만 수개월간 지속된 351고지 지원 작전은 대한민국 공군의 모범적인 지상군 지원 사례가 되었고, 특히 산악지형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에서 앞으로도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할 지침이 되었습니다. 피격의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상군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 선배 조종사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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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대전차 전투와 2.36인치 로켓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03 17:52

 6ㆍ25전쟁 개시와 함께 서울 북방 동두천-포천 정면에서 국군이 붕괴했던 큰 이유중 하나는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부친 전차 부대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대책도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파괴된 북한 T-34 전차]


 대전차 공격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이다. 초전 서울 북방에서 국군이 대패한 것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저 전사했던 채병덕 장군과 신성모 국방 장관을 비난하는 감성적 말만 모든 것을 덮어두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견(필자 : 울프독)으로는 당시 한국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던 미 고문단과 일본 GHQ의 책임도 분석 연구의 대상으로 올려놓지 않을 수가 없다.
 
 국군이 보유했었던 유일한 대전차 무기는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로켓포가 있었다.  6ㆍ25전쟁 연구에서 이슈가 될 수 있는 것은 이들 57mm포와 2.36인치 로켓포가 적의 T-34전차 파괴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설이다. 아니 설(說)이 아니라 6ㆍ25전사의 사실로 내려오고 있는 현실이다.

[1950년 7월 대전 전투때 미 24사단을 지휘했었던 윌리엄 딘 소장의 프랑스 전선 사진. 앞에 57mm 대전차포]



 그러나 내가 이전에 이 블로그에 올린 말고개 전투를 보자. 57mm포가 적 SU-76 측면을 그대로 관통하였었고, 고지에서 발사한 2.36인치 로케트 포탄 한 발이 SU-76 포탑 안으로 들어가 차체가 대파되는 폭발을 유도했었다는 사실이 있었다.

 이것은 전차 파괴에 아무런 역할을 못했었다는 두 무기의 평판을 다시 검토하게 하는 모멘트를 주게 한다. 57mm 포가 전차를 파괴한 것은 여러 번 있었다. 수도사단 18연대 소속 이병형 대위는 [후에 대장] 1950년 7월 12일 청주 남방에서 T-34 전차가 둑을 넘느라 약한 장갑의 하복부를 노출하던 짧은 시간을 노려 철갑탄 두 발을 사격 격파 한 전공을 세운 일이 있었다.

 7월 8일 한국군이 후퇴 중에 충북 진천에서 기갑 연대의 박용실 대위가 M8 장갑차에 장착된 37mm포로 적 전차의 궤도를 사격해서 파괴했었다. 이 37mm포는 적 전차를 전혀 파괴하지 못했다는 57mm포 보다 훨씬 못했었던 파괴력을 가진 포이다.

 그렇다면 2.36인치 로켓포가 적 전차를 파괴한 일은 없었던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해병대는 9월 16일 부평으로 진격해서 서울 방향 외곽에 방어 진지를 만들고 일박(一泊)했다. 9월 17일 새벽 서울에서 진격해온 북한 18여단 대대 병력과 이를 지원하는 전차 부대는 조심성 없이 행군 해오다가 부평 부근 언덕에 잠복해 있던 이 해병 중대에 걸려들었다. 

 해병들의 공격 전 오케이 더그라스 병장이 중대가 잠복한 언덕에서 내려와 대기하다가 전차 차체 후방을 강타해서 정지시키고 비슷한 공격으로 두 번째 전차도 파괴 시켰다.

 


[2.36 인치 로케트 포]



 적 전차의 파괴와 함께 퍼부어진 화력과 이에 가세한 해병 1전차대대의 활약으로 적은 완전 섬멸되어 버렸다. 해병들에게도 3.5인치 로켓포가 지급되었지만 일부 부대에는 아직 장비 교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 2.36인치 로켓포가 그대로 지급되었었다.

 


[월미도와 인천을 이은 둑길에 대전차 방어선을 만든 해병대의 3.5인치 로켓포]



 

[1950년 9월 18일 부평에서 미 해병 더그라스 병장에게 차체 후부를 사격당하고 파괴된 T-34전차]



 위의 일화들은 개전 초기 무적의 괴물로 보였던 T-34 전차가 약한 무기에도 파괴되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군이 가졌었던 대전차 무기인 57mm포나 2.36인치 로켓포가 전혀 적 T-34전차를 파괴할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부족했었던 것은 이들 대전차 무기의 제한된 능력을 100퍼센트 활용하는 노우 하우를 사전에 알고 있지 못했을 따름이다. 한국군은 북 침공시 이 2.36인치 로켓포를 1,900문이나 보유하고 있었다.


[2.36인치 로켓 포탄]



 단순 논리로 말해서 이들 대량 보유한 로켓포를 잘만 사용했었으면 도로를 따라 내려오던 북 전차의 침공을 상당시간 저지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못한 책임을 국군에 지우기는 곤란하다. 서울 북방에서 적 전차에게 파죽지세의 공격을 허용하게 만들어서 국군이 패배했었던 동두천 -포천 전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큰 규모의 분석이나 세미나 그리고 청문회 같은 것이 없었다.

 6ㆍ25전쟁의 주도권을 쥐었던 미군이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고, 그 후에도 장기간 사회 분위기가 그런 것을 논할 분위기가 아니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 의견이지만 6ㆍ25전쟁 초기 동두천-포천의 국군 패배의 원인중의 기본 사항으로 국군 수뇌부의 미숙한 지휘와 정보 판단에 실수한 미 군사 고문단과 도오쿄 GHQ의 책임이 크다.

 큰 피해를 본 우리 입장에서는 말한다면 주한 미 군사 고문단[KMC]의 수뇌부 일부는 배임(背任) 수준의 실수를 했다. 6ㆍ25전쟁 이전부터 북한 군사력 증강에 우려와 걱정을 가진 한국이 전차의 공급을 꾸준히 요청한 것을 거절 한 것이라던가, 6ㆍ25발발 며칠 전부터 긴박해지는 북한 침공 예보 정보를 게으르게 처리한 것 등을 예로 들 수가 있다.

 한국군은 북한이 전차 여단을 구성하고 수 백 량의 전차를 도입했으니 전차를 공급해달라는 말에 고문관 단장 로버츠 준장은 한국 지형에 전차는 필요 없다고 거절했었다. 기갑 병과였다는 그는 지형이 아니라 북한에 전차가 대량 도입된 현실 정보를 애써 보려하지 않았었다.

 전차를 못주겠으면 대전차의 최대 방어 무기인 대전차 지뢰라도 공급해 주었다면 북한 전차들이 초기에 그렇게 날뛰지 못 했을 것이다.(6ㆍ25전쟁 중 피해를 입은 미 전차의 66%가 대전차 지뢰에 파괴된 것이다.)

 북한 침공 시기 논에 물이 차는 모내기 철이었고 그날 비가 와서 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북 전차들이 우회하기가 극히 힘들었었다. 전장 환경은 적 전차에게 지뢰 공격을 가하기 아주 유리했었다. 국군은 나중에야 급히 한국으로 공수해온 대전차지뢰를 공급받아 수원에서 20여 발을 설치,두 대의 적 T-34 전차를 잡았었다.

 북한의 공격을 걱정하면 이들은 “북한이 공격하면 미군이 곧 달려 올 것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응수해서 국군 간부들의 입을 막았었다. 북한이 전차를 대량 도입했다고 하자 한국군에 지급한 57mm와 2.36인치 로켓포가 그런 전차쯤은 문제없이 격파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M-8 그레이 하운드 장갑차. 37mm 포가 장착 되어 있다.]



 그리고 대전차 공격의 기본 기술조차 교육시키지도 않았었고, 적 T-34전차의 약점에 대해서 알려 주지도 않았었다. 모든 것을 미군에 의존했어야 했던 국군은 그런 큰 소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1950년 6.25일 북한의 T-34가 밀고 내려오자 한국군의 57mm와 2.36인치 로켓포 사수들은 모두 제일 장갑이 두꺼운 적 전차의 정면을 사격해서 실패하였다. 57mm나 2.36인치 로켓포가 적 전차에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기록은 이 정면 사격에 실패한 전투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초기 부평의 해병들이 했듯 국군이 우회와 매복으로 T-34전차를 공격했었다는 무공담은 별로 없고 폭탄을 안고 적 탱크에 돌진했던 육탄 공격의 국군 용사들의 장렬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만 전해 온다. 

 육탄 공격을 가하고 전사한 장병들만 75-100명 설이 전해온다. 나는 동두천-의정부 전선에서 육탄 공격에 적 105전차여단의 전차들이 실제 파괴 된 사실은 북한 측 인사들의 말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105전차여단 정치 장교로 참전했던 오기완 씨의 수기와 내가 중국에서 뵌 북한 최강 연대 4사단 18연대 소대장의 증언은 위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국군의 전차 특공도 단순한 기록에서만 보일뿐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기록은 없었다. 한국군의 전차 공급을 거절하고 대전차 공격의 노우 하우도 전해주지 않은 미군 고문관들의 무신경과 태만함이 빚은 결과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이 블로그에서 국군이 서울 북방에서 패배했었던 원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은 계획이 있어서 이에 미리 예를 들어 보았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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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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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차 공격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이다. 초전 서울 북방에서 국군이 대패한 것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저 전사했던 채병덕 장군과 신성모 국방 장관을 비난하는 감성적 말만 모든 것을 덮어두고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5. Chaffee208 2012.05.14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이름만 차단하면 자신의 패악질이 감춰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는 건지..?? 요즘 알기로는 야후가 블로그 다 바꿔서 한번 난리가 났던 모양이던데... 아무튼 철 좀 드시죠. 사람 잘못보고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치 않으려만 들지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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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Small Business Directory 2013.05.08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군이 붕괴했던 큰 이유중 하나는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부친 전차 부대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8. quick loans 2013.09.20 1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9. buy instagram followers 2013.11.28 2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중 하나는 북한군 선봉에서 밀어 부친 전차 부대에 대한 아무런 수단도, 대책도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