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6·25전쟁 60주년 사업

톡!톡! 자료실 2009.12.30 15:11

6·25전쟁 60주년 사업은?


전후세대들이 6·25전쟁 실상을 이해하고, 국내·외 참전 용사 및 가족들의 명예를 선양하며, 참전국과 유대강화를 위해 국민과 장병이 동참할 수 있는 창의적인 내용을 적극 발굴하여 감동과 느낌이 있는 6·25전쟁 60주년 행사를 추진함으로써 전쟁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임



주요 추진사업

  ▶ 전투기념행사

임진강 전투, 지평리 전투, 화령장 전투, 인천 상륙작전, 낙동강지구 전투,
장진호 전투, 대한해협해전, 공군작전 등

[인천상륙작전 기념식]


▶ 호국보훈행사
6·25 참전 갑종장교 60주년 기념,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찾기 명부 발간,
참전국 6·25전쟁 기념행사 군대표단 참가, 백선엽 장군 회고록 발간,
6·25전쟁 바로 알리는 번역도서 배부 등

[유가족 신원확인을 위한 체혈]

▶ 문화체육예술행사
6·25전쟁 60주년 특별기획전, 군 창작 뮤지컬 공연, 한·터키 군인 친선 축구 / 전승기념행사, 휴전선 155마일 국제 사이클 대회 등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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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용어가 「6·25전쟁」인가?

생생! 6·25/우리고장 국방유적지 2009.12.29 16:39

 

왜 용어가  6·25전쟁 인가?


 『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에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6·25전쟁? 6·25사변? 한국전쟁? 어느 것으로 불러야 하느냐는 용어에 대한 것입니다.

  전쟁 발발 60여년이 되도록 용어통일이 안된 것을 보면 6·25전쟁이 얼마나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용어하나에도 많은 논란을 벌일 정도로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습니다.


  국방부와 정부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서 검토한 결과 6·25를 「6·25전쟁」이라고 통일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

 

 

80년대, 북한 국가로 인정 못해 ‘사변’으로 불러

    80년대 까지는 6·25사변으로 불리는데 큰 이의가 없었습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쟁'과 '사변'을 구분하는 핵심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를 '국가'로 볼 것이냐의 문제였는데 당시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데 이견이 크게 없었던 것이지요. 


<사전적 의미>

동란 : 폭동, 반란, 전기쟁이 일어나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지는 일

사변 : ① “전쟁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이상의 무력이 사용되는 난리” 

         ② “상대국에 선전포고 없이 무력을 쓰는 일”

전쟁 : 국가 또는 그에 준하는 집단 간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 상대방의
         의지를 강제하는 행위 또는 상태


  UN이 한반도에서 유일의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국가는 '대한민국' 뿐이고 민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댄 북한은 반민족적 범죄 집단이기 때문에 국가간의 교전상태에 붙여줄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 '사변'이라고 명명했던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UN 가입한 북한 UN 회원국 인정 불가피

   그런데 90년대 들어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냉전체제 붕괴로 인해 국제정세가 변했고 '91년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UN회원국으로서의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초기에는 남북한간의 대결이었으나 UN과 중공군이 개입한 6·25의 국제전적 성격을 제기하며 6·25를 '전쟁'이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유엔의 참전 결의]


  또한 한편에서는 외국학자들의 책이 번역, 발간되면서 'Korean war'를 '한국전쟁'으로 번역한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전쟁'이 '6·25전쟁'에 비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용어처럼 인식되어 자주 사용되었고 지금도 자주 접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제3자 시각반영 우리 주체가 없는 용어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정도로 인식되어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적당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둘이 아닌데 유독 '6·25전쟁'만을 '한국전쟁'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겪은 고통의 역사인데 이것을 남의 나라 전쟁 이야기 하듯이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특히 북한은 여전히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이 일으킨 전쟁' 같은 전쟁 주체가 모호해지거나 전쟁 책임이 뒤바뀌어 이해될 우려가 있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조심스럽기까지 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방부와 정부, 6·25전쟁으로 명명

이에 정부에서는 용어의 통일을 위해 90년대 이후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90년대 : ‘6·25’ 관련 명칭 검토 필요성 제기(국방부 통일부, 교육부 행자부 등)

'97. 10월 : 관련부처 추천한 전문가 초청 명칭관련 학술세미나 ⇒ 6·25전쟁 잠정결론

'98. 6월 : 미 육군성, 2000년 한국전참전기념행사시 Korean war 공식 번역요청
              * 공식 검토 결과 「Korean war ⇒ 6·25전쟁」로 통보

'00년 : 국방부 주관 6·25전쟁 제50주년 기념사업시 공식명칭 ‘6?25전쟁’ 사용
           * 국무총리 주재 회의 시 ’6·25전쟁‘으로 명칭 통일(‘98. 9. 24)

'04.4월 : 교육인적자원부 학계 전문가 감수 거쳐 교과서 편수용어로 '6·25전쟁' 확정

'10년 : 6·25전쟁 제60주년 기념위원회 공식명칭으로 ‘6·25전쟁’ 사용  
 


  '98년도 미국이 한국전 참전 5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Korean war'에 대한 공식 번역을 요청 했을 때도 '6·25전쟁'으로 공식통보하였고 교과부에서도 모든 교과서 편수용어로 '6·25전쟁'을 확정하였습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물론이고 국방부가 간행하는 각종 공식간행물도 '6·25전쟁'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2월혁명'이나 러시아의 '10월혁명'같이 발발시점에 따라 특정사건을 명명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습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건 발생일을 기준으로 명명한 '6·25전쟁'이 그나마 북한의 남침에 대한 역사인식과 우리 민족의 경험이 축적된 것을 반영하는 '객관적 명칭'이라고 보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6·25전쟁과 관련한 명칭은“어느 것이 맞고 틀리냐”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다만 학자가 아닌 일반 소시민으로써 그때 벌어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호칭할 용어를 '통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잡한 얘기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북한의 불범남침의 역사적 책임의식을 분명히 담고 있으면서 우리 국민정서와 관념에 부합한 '6·25전쟁'이라고 통일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우리 국방부 사업단도 그래서『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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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我幸行 2010.01.10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는 김성주의 난(亂)] 혹은 경인공란(庚寅共亂)이라 불러야 합니다.
    영어로는 Korean Civil War가 바른 표현이라 봅니다.

  2. 한국인 2010.03.14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성주의 난도 맞지만 그렇게 부르지 않는 이유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책임을 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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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김명섭 교수님이 쓰신 "전쟁명명의 정치학"이라는 논문을 많이 참고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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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09.12.29 15:46

“신 기자, 아직 살아 있었나?”

 

 


한국인 AP종군기자 ‘신화봉’




 

  <언론인 신화봉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신화봉 기자(외국명 Bill Shin)는 한국인이면서 AP통신기자 자격을 갖고 6·25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입니다. 다른 외국 종군기자들과 달리 인천상륙작전을 특종하면서도 한국인이 겪는 한국인의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여 한국의 입장을 대변한 기자이기도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정부 대변인을 맡기려고 했을 정도로 신화봉 기자는 신임을 받기도 했습니다. 6·25전쟁을 겪고 나서 쓴 「휴전선 열리는 날」이라는 책은 6·25전쟁을 생생하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특종을 많이 하여 ‘스쿠프(scoop) 신’으로 불렸던 그를 만나보겠습니다.


  1950년 9월 15일 부산.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의 한국 특파원이던 신화봉 기자는 어디론가 정신없이 뛰었다. 어서 소식을 동경 AP지국에 전해야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외국 특파원들이 공동으로 쓰던 미군 보도과로 달려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종의 생명은 보안이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방으로 방향을 잡았다. 교환수가 나왔다. “동경 2201 또는 2202번 대 주시오.” 동경의 랜돌프 기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직 살아 있나?” 평상시라면 그의 농담을 넉살 좋게 받아주었겠지만 이날은 사정이 달랐다.

  “중대 기사다. 인천이다. 빨리해.”신기자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기사를 읽어댔다. “유엔군이 오늘 아침 인천 월미도에 상륙했다…”로 시작하는 AP통신의 이 기사는 6·25전쟁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의 하나였던 인천상륙작전을 처음으로 보도한 특종이었다. 오후 1시50분의 일이었다. 맥아더 사령부의 공식 발표는 그로부터 수시간 뒤인 그날 밤에 있었다.


       <월미도에 상륙하는 한·미 해병대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의 나이 32살, 신출내기 ‘한국인’ 기자 신화봉은 그렇게 해서 입사 7개월 만에 세계적인 특종을 낚았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한국인 기자가 수 많은 외국 기자들을 제치고 이뤄낸, 의미 있는 특종이었다. 


   언론인 신화봉(미국명 Bill Shin)은 1918년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에서 그 유명한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일본 중앙대학 법학부를 다녔고 해방 후에는 38선을 넘어 월남, 서울에서 삶을 꾸렸다. 대학 시절부터 유창했던 영어 실력 덕에 미군의 통역일을 도우며 인연을 쌓다가 1947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헤이스팅스 대학 졸업반에 편입했고, 1949년 말에는 네브라스카 주립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의 안정된 일자리를 권유하는 주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 집에 불이 났을 때 자기만 살려고 도망쳤다가, 가족과 이웃이 불을 다 끈 뒤에 돌아와서 ‘내가 이 집의 주인이노라’ 한다면 어떻게 되겠소. 나는 내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있으니 더욱 더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싶소.” 그렇게 고국에 돌아와 1950년 2월 AP통신 서울특파원 무어 기자의 추천으로 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950년 6월 25일. 운명은 그를 또 다른 길로 이끌고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서울엔 비가 내렸다고 한다. 휴일 고즈넉한 분위기의 거리에 퍼지던 얇은 빗소리는 한층 여유를 뿜어냈다.

  신화봉은 그날 이삿짐을 꾸리다 오전 11시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서울 상공에 못보던 항공기가 북을 향해 바삐 날아가고 있었다. 전쟁이었다. 이날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은 38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했다. 그는 이날부터 1953년 7월 27일의 휴전성립 후까지, 전쟁의 현장에서 그 진상을 전 세계에 타전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미군 C-54 수송기로 비행중인 종군기자들, 맨뒷줄 맨 오른쪽이 

신화봉 기자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는 인천상륙작전 특종 이후 ‘스쿠프(특종) 신’으로 불렸다. 일부에서는 당시 AP통신의 인천상륙작전 보도가 작전 시행(15일) 전인 13일에 이뤄진 ‘위험한’ 특종이었다는 식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인다. 전쟁을 가름할 중대한 작전을 미리 보도한다는 것은, 아무리 종군(從軍)기자의 욕심이 앞선다 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전시 상황에서 작전기밀을 누설하면 이적행위로 군법회의에 회부된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인천으로 향하던 함정에 타지 못했던 그는 부산에서 당일 아침 모든 인맥을 동원해 상륙 성공 사실을 여러 차례 확인한 뒤 한국군을 설득, 국군 총사령관이었던 정일권 소장의 발표 형식을 빌어 역사적인 1보를 타전했다. 이튿날인 9월 16일자 동경발 AP기사에도 이 같은 사실이 언급돼 있다. “인천상륙 뉴스를 최초로 보도한 AP통신 특파원 빌 신은 오늘(16일) 미군에 의해 군용전화 사용을 금지당했다… 신은 어제(15일) 정일권 소장이 인천상륙을 발표했을 때 그곳에 있었던 단 한 사람의 국제 통신사 특파원이다.”

    <미군에 의해 군용전화 사용이 금지 되었다는 1950년 9월 16일 AP통신 기사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그는 이후에도 1952년 5월 7일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전대미문의 난동 사건(포로수용소의 미군 사령관이 공산군 포로의 포로가 됐다), 1953년 5월 휴전협상을 벌이던 유엔군측이 대폭 양보를 담은 새로운 극비 제안을 했다는 사실 등을 여러 차례 특종 보도했다.


                 <1952년 6월 거제도 76포소수용소의 폭로 폭동을 진압하는 유엔군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1953년 3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중앙)에게 휴전 회담 전망을 묻고 있는 신화봉 기자,

     왼쪽 민간복은 신태영 구방장관 : AP기자가 본 동경·서울·평양(신화봉 저)>


  1957년 AP통신을 떠난 뒤에도 언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세계통신사, 미군 전문지 성조에서 일했고, 64년 일본으로 건너가서도 시사통신사의 동경지국장을 지내고 한반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사평론’을 발행하는 등 언론 외길을 걸었다. 1980년 말 미국으로 이주해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그는 2002년 10월 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의 나이 8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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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leasing cars 2013.11.19 0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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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IPV Mini 2014.11.27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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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IPV Mini 2014.11.27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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