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해당되는 글 174건

  1. 2010.07.07 57. 간파된 적의 약점 (3)
  2. 2010.07.06 전함 백두산(3/4) (10)
  3. 2010.07.06 공비들 고사시킨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 2편 (8)

57. 간파된 적의 약점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07 15:53

  6·25전쟁을 살펴볼 때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의외로 서로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싸운 전쟁이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행위가 처음부터 쌍방이 약속을 하고 일정한 규칙에 의해 벌이는 스포츠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전에 상대방의 전술이나 전력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6·25전쟁은  발발부터 약 1년이 되는 1951년 6월까지 상대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치른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개전초기의 북한군이나 이후 갑작스럽게 등장한 중공군에 대해 너무나 몰랐고 이런 무지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상대에 대해 너무 몰라 톡톡히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무지함은 공산군 측도 사실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국군과 유엔군이 1월 25일부터 전 전선에서 대규모의 공세를 감행하자 중공군 지휘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내심 유엔군의 반격이 있다하더라도 빨라야 2월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유엔군이 썬더볼트 작전을 막 시작하였을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 고위간부회의에 참석하여 차후작전 방향을 논의하였는데, 여기서 나온 결론은 지난 3차례의 공세로 타격을 입고 전의를 상실한 유엔군이 곧바로 공세로 나올 수는 없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1월 4일, 서울 점령 후 중공군의 방어 전략은 부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상외로 아군의 반격이 빨리 개시되자 중공군은 서부전선에서 유엔군의 공격을 최대한 지연하면서 한강선에서 강력히 서울을 방어한다는 방침을 수립했습니다. 이를 위해 중공군은 서부지역에 중공군 2개 군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을 투입하고, 중동부 지역에 중공군 4개 군단과 북한군 3개 군단을 투입하도록 지시함과 동시에 원산의 제9병단 예하 제26군(군단)을 철원에 집결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시간이 부족하였고 유엔군의 강력한 화력에 의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없었습니다. 중공군도 그만큼 모르는 것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중공군의 늦장 대처가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에게 고민이 되었습니다. 중공군이 제3차 공세로 국군과 유엔군을 37도선까지 밀어낸 후, 약 20일 동안 꼼짝도 않고 있다가 아군의 반격에 당황하는 모습이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미군 같으면 전선을 돌파하면 계속하여 적을 밀어붙여 전과를 확대해야하는데, 중공군은 바로 그러한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공세를 멈추는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민은 중공군의 참전이후 새롭게 변한 전쟁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바로 중공군의 치명적인 약점을 간파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결정적인 순간에 공세가 약화되는 이상한 패턴을 반복하였습니다.]


  리지웨이는 중공군이 6·25전쟁에 개입한 이후의 공세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공군의 제1차 공세는 10월 25일에 시작되어, 11월 1일 청천강으로 철수한 유엔군의 추격을 중단함으로써 끝이 났는데, 공세기간은 8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제2차 공세는 유엔군의 크리스마스공세 직후인 11월 25일 야간에 시작되어 12월 2일 중공군이 추격을 중단할 때까지였는데, 이때의 공세기간도 8일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제3차 공세는 12월 31일 시작되어 1월 7일 중공군이 진격을 중단할 때까지, 역시 8일간 실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공군의 한 가지 패턴이 감지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공세는 8일이 지나면 이상하다 싶을 만큼 약화되었고, 그 다음의 공세는 대략 1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 벌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보급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공군이 공세를 펼치다가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려 아군을 당황하게 만든 것은 결코 신비한 전술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 할 방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중국이 공세에 나서기 위해서는 약 한달 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런 준비기간 후 공세에 나서면 8일 정도밖에 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차후 이런 분석이 속속 입증되었는데, 당시 중공군의 보급능력은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엔 공군의 후방폭격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공군의 기동부대들은 최초의 보급으로 전투를 수행하며, 전투 중 재보급이 불가능하였습니다. 따라서 당시 중공군은 전투병이 최대한 1주일분의 식량, 탄약 등을 휴대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닥나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베일에 가려있던 중공군의 약점이 확인된 것이었습니다.


[중공군은 보급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중공군에게 다음의 공세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격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제8군 예하의 전 부대에게 1월 31일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이 비로 1.4후퇴 후 도망가기에만 급급하였던 유엔군이 적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조기에 작전방침을 바꾸어 적극 공세로 바뀐 배경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소득은 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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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백두산(3/4)

웹툰 모음 2010.07.06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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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07.06 1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때에 만약 백두산함이 없었더라면...(후방에 엄청난 피해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림 속의 우리 해군의 복장이 왠지 2차세계대전 당시의 구 일본제국해군의 복장(약모라든지 철모...)과 왠지 유사하게 느껴지네요...

    저때 당시까지도 해군에서는 구 일본군의 복장이 조금은 사용되었던 것일까요...

    환쟁이님께서 자세한 고증도 공부하신 후에 작업에 들어가시는 것 같네요... ^^;

    흥미진진한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2. 환쟁이 2010.07.06 16: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철모에 대한 자료는 결국 찾지 못했고요, 근무복은 일본 해군과 유사하게 입은 사진을 봤습니다. (흑백에 흐릿해서 확실하진 않지만... 제가 보기엔 그랬어요.)
    그 때 육군도 미군이나 일본군의 복장이 섞여 있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마 해군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렸습니다. ^^ 항상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3. 뽀로리 2010.07.12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컥.. 북한군들 무섭다;; ㄷㄷ

  4. 록나비 2010.08.25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용남 함장님, 이 당시 꽤 젊으셨던걸로 알고 있는데...

  5. 대한민국해군 2010.09.12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생각에는아마저때일본군복을사용했을것같아요
    해병대다큐멘터리를봤는데그때당시해병대가일본군이버린군복과무기를사용했다고하더군요...

    • 대한민국해군 2011.08.01 1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래서 제생각은 해군도 해병대처럼 일본군 복장을 입었을것 같습니다

  6. 최중원 2011.05.21 2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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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들 고사시킨 전투 경찰의 매복 전술 2편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7.06 08:23


 


처형을 앞둔 경찰관 살해 공비들 .
경찰을 죽이고 탈출을 시도해서 전원 사형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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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있기는 한 고역이었다.

참기가 어려워 뒤척이는 순간 누가 신호를 보냈다.

“쉿!”

분명 적이 멀리서 흔적을 보였다.

공비들은 한 줄로 서서 달빛 속을 걸어왔다.

공비들 특유의 악취가 산들바람을 타고

먼저 대원들에게 도착했다.

대원들은 아연 긴장했다.


공비들이 마을 앞을 태연자약하게 통과해서 오는 것을 보니

과연 소문대로 대장 외팔이는 대담한
성격을 가진 것이 틀림없었다.


공비들이 고추밭에 들어서자 마른 고춧대가 사각거리며

소음을 냈다.


공비들 특유의 악취가 짙어 지더니 불규칙한

발자국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리고 어둠 저편에서 공비들의 상반신부터 노출이

되었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공비들이

잠복 지점으로 들어섰다.


20미터, 10미터, 5미터, 소총을 든 공비 선두 첨병이 

내 앞을 지나갔다. 등의 짐을 이기느라 고개를 앞으로

뺀 적들이 2,3미터 간격으로 우리 앞을 통과하고 있었다.


완전한 돌출 타겟이었다.

네 명이 나의 정면을 통과했던 순간이었다.

“ 쏴라!”


빠바바앙 -!

일제 사격에 돌출 사격은 무너져 내렸고

대원들은 스프링처럼 공비대열로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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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았던 월남의 매복전에서도 일제 사격과 크레머를

터뜨려 적에게 섬멸적 타격을 가하고도 이렇게 총검돌격을

하는 일은 없었는데 하여튼 이 시절 한국 전투경찰이
대단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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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닥쳐야 할 육박전의 대상은 없었다.

기습에 기적적으로 살아난 적 두어 명이 노루처럼

이리저리 뛰어 달아나는 뒤에다 대고 대원들이 따라가며

총을 쏘았다.


미처 짐을 벗지 못한 적 한명은 총 개머리 판에

타격되어 생포됐으며 나머지는 총이나 약탈 짐을 지고

둑길 아래에 쳐 막혀 있었다.


생포 1명에[김경준, 선전책] 사살 5명의 전과였다.

일차 타격으로 부안 공비 9명중 6명을 섬멸 한 것이다.


생포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끌려오자 나는

신원확인 질문으로 시간을 끄는 사찰계장과 우두거니 서있는

경비계장을 제치고 이들을 직접 심문했다.

“ 제 2의 비상 집합 장소는 어디냐?”

“-----”
“제대로 말하면 살려 주겠다.그렇지 않으면--”

즉결 처분한다는 위협이었다.


“천연암 아래요.”

“제 3의 장소는?”
“그 너머 고지라우.”

“무장은 소총 몇 정이었나?“
”석 자루 뿐이었어유.“

소총이 3 정뿐이라면 달아난 적은 모두 비무장이라는

결론이다. 시체에서 거둔 총이 석 자루였다.


나는 경비계장에게 생포자를 재갈 물리고 앞세워

곧바로 제 2, 제 3의 비상 장소를 찾아가도록 시켰다.

대원 중 6 명이 그 뒤를 따랐다.


나와 사찰 계장은 공비 시체 검사를 맡았다.

내가 죽은 공비들 시체에 섞여있는 외팔이의 시체를 검사하고

있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던 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어! 이거 멀쩡하네!“

하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죽은 시체로 보였던 공비에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놔라! 이 싸가지 없는 개들아!”


나는 달려가 보았다.

여자 공비였다.

허벅지에 중상을 입고 다량의 출혈을 한 것이

어둠 속에서도 확인 되었다.

그녀는 악을 쓰며 죽여주기를 원했다.

“언제 입산했나?”

“묻지 마라 이놈아 ! 나는 혁명 전사다 어서 죽이라 !”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싶었다.


그 녀는 결국 힘을 모아 “조선 의용군가”를 부르고

대원에게 처형당했다.


도주한 두 명의 공비는 제 2의 접선장소에서

체포가 되었지만 한 명은 끝내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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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공비중  한 명인 임한근은 김두운씨와

줄포 국민 학교 동창으로 밝혀져 그가 구해 내려고 노력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친구는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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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공비들도 군경이나 그 가족들을 함부로 죽였지만

군경도 포로들을 가차없이 즉결처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날 붙잡힌 포로 세 명도 김두운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찮게 생각한 부안 경찰서 사찰 계장이
모두 사살해버렸다.

어두운 한국사의 한 시절이었다.

김두운 씨는 이 사건뒤에 생포한 공비는 처형이 아니라
반드시 설득하고 감화시켜 전향시키기로 맹세했다.



죽음이 일상화 되었던 6·25전쟁후 한국.
여순 사건때 반란군들이 학살한 무고한 양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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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터지고 김두운 씨는 동료들과 다급한

후퇴 길에 올랐다.

시골 고향에서는 형님이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날 도주했던 공비가 따발총을 가진 무장병을 데리고

김두운 씨 가족을 몰살하러 왔다가 다행히 동구에서

형님을 만나 이미 김두운 가족이 좌익에게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혀를 차며 그대로 돌아갔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중국에서 공산화 대박을 터뜨린 모택동의 신화를

재현할 꿈을 가지고 입산했던 수 천 명의 남한 공비들은

모두 섬멸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소위 유격활동을 할 구역이 너무 좁았고

주변도 인구 밀집지역으로 뻗어나갈 공간도 없었다.


두 번째로 북한과의 연계 실패다.

북한은 공비들이 다 섬멸되기는 손가락을 물고 구경만

했지 한 푼의 지원도 해주지 못했다.

해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가 식량 확보의 실패다.

이것은 첫 번째의 실패이유와도 연관이 있다.

빨치산들은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식량을 공급해줄‘해방구'도 인구 밀집의 남한에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전투 경찰 경비아래 수확하는 농민들.
이 단계부터 경찰은 식량을 공동관리 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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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공비들의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공동 추수를 독려하고 수확물은 지서에 공동으로 보관시켰다.

부락민들은 식구의 한 끼만 가져가서 밥을 해먹도록 했다.


쌀이 손에 안 들어오자 공비들은 식량을 찾으러 민가로 내려왔다.


경찰은 이들을 매복전술로 맞받아 쳤다.

식량이 이들 입으로 가져가기 직전 좌절시키는 작전이었다


마침 내가 찾아낸 더 큰 경찰 매복 전술의 성공적인 사례를 

조금 이른 시기의 것이지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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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운산의 식량 사정은 더 나빠져서 대원들이 며칠씩 굶는 날이

  많았다. 1950년 4월 16일 도당 간부 몇 사람만 남겨놓고
  무장대원
40명 비무장 대원 20명, 모두 60명이 합쳐
  보급투쟁에 나섰다.


  구례 간전면 제기암 골에서 백운산 상봉은우회하여

  진상면 야지로 나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결사적인 시도였다.

 

  이틀간의 잠복 끝에 가까스로 식량 확보에는 성공했으나 
  돌아오는
도중 고리봉[상봉]근처에서 앞질러 와서 매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퇴로를 차단당했다 .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쫓기며 귀환을 시도했으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경찰의 추격으로 겨우 20명 정도만이 살아
  돌아왔다.


  이로서 전남 도당은 큰 타격을 입었고 식량을 비롯한
  제반 사정은

  더욱더 어려워졌다.

-----------------------------------------------------------


공비들은 시간이 지나고 경찰이 매복 토벌을 체계화 하자

식량 확보는 이들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전쟁 후반은 공비들은 식량 확보에 모든 전력을 쏟는

기현상의 유격전이 벌어졌다


공비들에게 식량은 생명이었고 이의 확보가

바로 전쟁이자 전투였다


식량 약탈은 보급 투쟁이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계급투쟁이 공산주의자의 목표인데 남한의

공비들은 식량약탈 투쟁을 주업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농민해방이니 부르조아지 타도니 남조선 혁명이니

하는 때깔 좋은 소리는 그들에게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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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비들은 자주 저녁 식사시간에 동네를 급습했다.

식구들의 밥상을 통째로 빼앗아서 미친 듯이 쓸어 넘고도

부족해서 밥을 더 담은 밥그릇을 가지고 다니며 게걸스럽게

밥을 먹을 정도로 굶주렸었다니 공비들의 뱃속

사정을 짐작할 만하다.



항공 촬영한 호남 농촌지역
공비 아지트가 있는 산에는 식량이 없었다.
식량 공급처인 농촌지역의 확보 실패가 공비를
죽음의 보급투쟁으로 내몰았다.

공비들이 식량을 구하러 이 농촌으로 오는 길에
경찰이 설치한 '매복'이라는 죽음의
덫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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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쌀 강탈해간다는데 좋아할 농민들이 없었다.

인심은 당장 돌아서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에 호의를 가지던 주민들도 한번 이라도

약탈을 당하면 당장 경찰 편으로 돌아섰다.


물고기인 공비들의 물이 되어줄 농민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경찰 토벌에 협조했다.


그러나 공비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급투쟁은

더욱 먼 거리까지 확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결국 자기들에게 등을 돌리는 주민들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고 오고 가는 장거리에 여러 매복을

가능하게 만드는 짓이었다.


과거 빨치산 생활을 경험한 분에 의하면

공비들이 마치 침투 간첩이 하듯 식량 약탈의

루트를 개척해 놓으면 경찰들이 단 시간 내에 귀신 같이

파악해서 매복을 했다고 회고했다.

즉 자신들의 아지트는 수십겹의 경찰 매복의 그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보급투쟁은 목숨을 걸어야 했었다.
앉아 있어도 죽음이 있었고 서서 움직여도 죽음이 있었던
것이 공비들의 운명이었다.



희생당한 전투 경찰 박원기의 장례식.
그칠 수없는 어머니의 통곡이 너무 슬프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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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한국의 공비들은 모택동의 정강산이나 연안의 화려한

꿈 대신 거지와 도둑이 결합된 화적떼로 퇴화하여 볼품없는
소멸의
길을 갔다.


식량 부족이 공비들을 말려 죽인 것이다.

공비들을 말려 죽였다고 할만한 매복전술은

한국의 전투경찰들이 몸으로 부딪히고 희생하면서 터득한 것이다.


한국 전투 경찰의 매복전술은 육군 대부분의

전술 교리가 미국 FM에서 가져온 것에 비하면 토종

한국형 전술이다.


나의 좁은 지식에 나중에 채 명신 장군이 월남에서 사용했던

중대기지 전술과 중공군 인해전술에 수류탄 대량 투척으로 맞섰던

고지 방어 전술 외에 이에 비견할 특별하게 폭 넓게 적용된

한국형 유명 토종 전술은 생각나지가 않는다.


군사 전문가들은 군의 환경을 맞추어서 자생적으로 창안되고

개발된 전술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한 것이 생각난다.

중국 모택동의 유격 전술이나 이스라엘 군대가 개발하고

활용해온 이스라엘 식 전격전 전략은 이 말을 증명해준다.


나는 20년 전 남아공의 특수 부대가 사막거주 부쉬만 종족들의

비법인 동물이나 사람 발자국 추격 술을 세세하게 캐묻고
연구하고 체계화해서 특수부대 교육용 매뉴얼로 만든 것을
보고 감탄한바 있었다.

특수부대는 이 교범으로 부대원를 훈련시켜 반도들의
추적 작전에
활용했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6·25전쟁 이나 월남전중 선배들이

몸으로 희생하며 터득하고 개발한 전훈을 교리로서

정리하는 측면이 매우 부족했다.


6·25전쟁 후 전투경찰의 매복 전술의 세련도는 분명 육군의

그것보다 한 수 앞선 것이었다.


한국 전투경찰의 매복전술이 정리되고 교범으로 정리되어
후배들에게 전달이 되었더라면
월남전등에서나 유용하게
쓰였을 것이고 한국의
전투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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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이아빠 2010.07.06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두운서장 노년 모습입니다.. http://www.wonbuddhism.or.kr/wonnews/interview/i1108.html

  2. 냥햏 2010.07.07 0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ㄱ-; 안그래도 소통이 잘 안된다는 평을 듣는것 같은데 .. 뎃글마저도 '승인'이 필요한건가요? 가끔 와서 좋은글 읽고 갑니다만 .. 운영 방식이 너무 구시대적인 것 같아 안타깝네요.

  3. Gray 2010.07.11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읽고 갑니다.

  4. 요츠 2011.05.23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이 뜨질 않네요..
    사진을 보고싶은데..

  5. carinsurancecompany community hunting 2012.05.26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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