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2/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21 09:42

 밤 11시에 중대장에게 보고하고 목표를 향해 출발하였다. 기관총 1정당 실탄 400발과 소총 실탄 80발, 수류탄 4개씩을 휴대하고 눈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내가 선두에 서서 가는데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리까지 빠져 도저히 빨리 전진할 수가 없었다.

 한 발씩 한 발씩 전진해 가는데 달빛은 없으나, 온 산이 눈으로 덮여 찾아 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앞이 안 보였다. 불과 1킬로의 거리를 무려 3시간이나 걸려 고지 중간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2개조로 편성하여 좌우에서 은밀하게 올라갔다. 긴장하여 위를 감시하며 올라가는데 아무런 저항이나 움직임도 없어서 정상에 오를 수가 있었다. 정상은 너무나도 급경사이고 암석으로 이루어진 칼날 같은 봉우리였다.



[높은 산이 514고지고 옆 산에 올라가 기습 사격을 한 듯한데 산에 나무들이 뒤덮혀 자세한 지형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곤지암cc 앞에서 촬영]

 기관총 장치하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해서 분대장과 정상을 둘러보니 바위를 사이에 두고 한정씩 장치할만한 곳이 있어서 기관총 1정은 제 1공격 목표 지점으로 대충 조준해놓고 1정은 정상을 향해 조준 해놓은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화기 소대장 이상없이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그 곳에서 공격 목표가 잘 보이는 가?"

 "잘 보입니다. 날만 밝으면 적의 움직임을 똑똑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 소위만 믿겠다. 조용히 대기하라. 이상!"

 분대장이 차고 있는 야광 시계가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관총이 있는 곳에 한 사람을 경계 배치하고 남은 인원은 능선 밑의 바위 옆에 모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침묵을 지키면서 날 밝기만을 기다렸다. 동녘 하늘이 뿌옇게 트기 시작하고 조금 지나니 적진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각자 정위치!"

 기관총을 중심으로 대원들을 배치시키고 나는 제 1목표를 직접 조준했다.



 교통호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사수에게 인계하고 옆의 기관총을 조준해 보았다. 514고지 정상으로부터 제 1목표 지점으로 연결된 교통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분대장이 조준해 논 교통호 복판이 잘 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놈만 있으면 갈겨 대!" 하고 분대장과 사수에게 지시한 다음 중대장에게 보고를 했다.

 "적 진지가 잘 보입니다. 공격 목표를 될 수 있으면 좌측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다! 지원 사격 잘 부탁한다!"

 공격 개시 10분 전.

 드디어 105mm 곡사포와 81mm 지원포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통호에 명중되는 것은 한방도 없었다. 적군들은 한 놈도 움직이지를 않았었다. 10분간의 지원 포사격이 끝나서야 교통호에서 일제히 나뭇가지로 위장한 중공군이 모습을 나타나더니 사격 자세를 취했다.



 그 때 우리 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예광탄이 정확하게 중공군 세 놈을 명중시켰다. 다시 두 놈이 일어서다가 불의의 측면 공격을 받고 푹푹 쓰러졌다. 바로 그 때 교통호를 조준하고 있던 분대장이 방아쇠를 당겼다.

 예광탄이 밝히는 지점을 보니 교통호를 따라 내려오다가 정통으로 맞았는지 앞으로 푹 쓰러지며 밑으로 굴렀다. 다시 다섯 놈이 뛰어 내려 오다가 모조리 굴러버렸다. 제 1목표 지점을 보았지만 연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81mm 박격포는 몇 발씩 연막탄만 쏘아주고 있으나 서북풍이 부는 관계로 좌측 진지는 연막에 싸였다가도 바로 개여서 관측이 잘 되었다.

 제 1목표에 대해서도 계속 사격을 하니 꼼짝 못하고 있다. 그때 중대장으로부터 무전이 왔다.

 "목표 지점에 육박했으니 사격연신하라!"

 나는 제 1목표를 향해 쏘던 기관총 사격을 중지시키고 목표 지점을 관찰했다. 그 때 두 놈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쏴!"

 총탄은 다시 명중하여 푹 쓰러진다. 적들은 150m 거리의 측 후방에서 사격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중대장으로부터 다시 사격 연신하라는 지시를 받고 514 고지 교통호를 조준케 했다. 그때 분대장의 기관총이 한 상자를 다 쏘고 실탄을 장진했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뛰어 내려오고 있던 5-6명에게 대기하고 있었던 다른 기관총이 불을 토했고 뛰어 내려오던 적병은 탄력 때문에 정지하지 못하고 모두 기관총 실탄에 맞아 나가 뒹굴었다.

 "소대장님! 점령했습니다."

 탄약수가 소리를 쳐서 제 1목표를 돌아보니 아군 2명이 올라와서 참호를 향하여 M1 소총을 쏘고 이어서 수류탄을 투척하고 있었다. 수류탄 폭음이 나고 뒤이어 10여 명이 올라와서는 514고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쉬익! 쉬익!" 하며 적의 포탄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날카로운 봉우리라 명중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직사포가 아니 곡사포라면 명중이 가능할까, 포탄은 50m 쯤 후방에서 터졌다. 다시 두 발이 날아오더니 전방 산 밑에서 터졌다.

 우리는 그 조준선상 밖에 있었다. 나는 마음을 놓고 514고지 교통호 시발점에 대고 쏘도록 하고, 기관총 1 정을 내가 직접 적의 철수로를 향해 조준했다. 아니나 다를까 적병 수 십 명이 자세를 구부리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곳을 향해 가로 활대와 세로 활대를 다 풀어놓고 좌우상하로 마구 갈겨댔다.

 더러는 맞아 쓰러지고 더러는 능선너머로 도망쳤다. 공격 소대는 514고지 9부 능선에까지 도달했다. "따쿵!" 소리가 들려 나는 기관총을 놔두고 뒷걸음쳐서 산 뒤로 몸을 낮추며 대원들을 차폐시켰다.

 뒤이어 "따따따---!" 수백발의 실탄이 우리를 향하여 날아왔다. "땡!" 하는 금속성이 들리더니 기관총이 굴렀다. 나는 구르는 기관총을 한 손으로 잡자 옆에 있던 사수가 다리 부분을 같이 잡았다.

 기관총 삼각대에 총탄이 맞아 쇠가 우그러지고 맞을 때의 충격으로 굴렀던 것이다. 포탄과 소총탄도 사격이 중단되어 고개를 들고 보니 514고지 정상에 1명이 뛰어 올라가더니 수류탄을 후사면을 향하여 힘껏 던지고 앉아서 소총을 마구 쏘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곧이어 10여명이 올라가 앞드려서 도주하는 적을 향해서 쏘았다.


                                           [영화 고지전의 돌격장면]

 81mm 박격포와 61mm 박격포가 도주하는 적을 향해 맹타하고 사단포는 적의 후방 포진지를 향해 때렸다.

 그 때 정찰기 한 대가 날아와 전방을 두 바퀴 돌았는데 무스탕 전투기 3대가 날아왔다. 정찰기는 적진으로 내려 박히는가 했더니 치솟아 올랐고 연막탄이 터져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전투기 3대는 기수를 아래로 쏜살같이 내려 박으며 기관총 사격에 이어 로케트 사격을 하고 치솟았다. 교대로 때리던 전투기는 폭탄 2개씩을 떨어뜨리고 마지막으로 네이팜 탄의 불바다를 만든 다음 유유히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난공불락이던 514고지는 점령하게 되었다. 중대장으로부터 철수명령을 받은 나는 병력을 인솔하고 제 1목표로 올라갔다.

 "분대장 몇 놈이나 죽었나 세어 봐!"

 가슴 높이까지 파논 교통호에는 중공군들이 발 들여 놀 틈도 없이 죽어 있었다. 그런데 총 맞아 죽은 자 같지 않게 옆으로 누워있는 자가 있어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자의 가슴을 향해 카빈총을 한 발 쏘았다.

 그 중공군은 "아---!" 소리를 지르며 고통의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갔다.

 "이 뙤놈들 봐라! 죽은 척하고 누워있어 어이 너희들 교통호와 벙커 속에 있는 놈들 모조리 한방씩 쏴 버려!"

 대원들이 모조리 확인 사살을 하니 벙커 속에서 한 놈이 손을 들고 나왔다. 일일이 확인 사살을 한 다음 포로를 나무에 묶어 놓았다. 중대장과 잔여 중대원들이 모두 올라왔다.

 "정 소위 공로가 컸소! 정말 수고했소."

 "아닙니다. 중대원들이 중대장님을 중심으로 단결했었기 때문입니다."

 514고지에 방어 부대를 배치하고 교대 부대가 도착할 때를 기다리는데 1소대장이 보고를 한다.

 "중대장님 뙤놈들 시체가 121구나 됩니다. 이 고지 뒤에 즐비합니다."

 "1소대장 오늘 잘 싸웠어!"

 나는 1 소대장 손을 꽉 쥐고 번쩍 올려주었다.

 "아닙니다. 특공대 덕입니다! 뙤놈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니 별로 저항도 받지 않고 점령할 수가 있었습니다."

 광주 곤지암 514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을 섬멸하고 고지를 점령했지만 아군들도 실패한 1차 공격과 성공한 2차 공격에서 4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기발한 기습으로 점령을 했었지만 큰 격전이었다. 이 전투의 특징은 여순 203 고지와 같이 적이 신체적으로 접근 또는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는 곳에 의외로 화력만은 마음대로 도달하는 허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1951년 6월 27일 강 건너에 국군이 떠난 것을 안심하고 도강하다가 측면 봉의산에 있던 인접 부대가 1km가 넘는 장거리에서 퍼부은 대전차포와 기관총, 그리고 박격포, 곡사포등의 화력에 섬멸된 북한군의 사례를 생각하게 한다.

 정철모 씨는 후에 중공군에게 포로가 되었지만 탈출해서 북상, 신의주 앞 바다에 있는(유격대가 점령하고 있는) 섬을 거쳐 귀환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당시 책에는 소령 때 전역하여 공무원을 하다가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몇 년 뒤 잡지에서 보니 정 철모 씨가 6ㆍ25 때 헤어진 연인과 다시 결합했다는 기사가 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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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 514고지의 기관총 기습 작전(1/2)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11.18 14:19

 10여 년 전 6ㆍ25전쟁 당시 소대장으로 참전한 정철모 씨가 쓴 '탈주 400리'를 읽다가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에서 겪은 514 고지 공격 부분이 흥미가 있어서 기억해 두었었다.

 정철모 씨는 6ㆍ25전쟁 때 청주대학교에 재학하다가 장교로 임관, 당시 6사단 19연대 1대대 1중대 소대장이었다.

 1951년 2월 중공군에게 밀리던 유엔군은 다시 반격을 실시하여 북진할 때, 그의 중대는 경기도 광주군 곤지암 부근에서 중공군이 강력하게 방어하던 514고지에 대한 공격 명령을 받게 되었다.

[곤지암 부근 514 고지]



 화력이 좋은 미군도 1주일이나 공격했는데 점령하지 못했던 고지를, 고지 옆에 절벽을 두고 떨어져 있는 다른 고지로 은밀히 야간 침투에서 적의 참호에 기관총을 가하는 기발한 작전으로 적을 격퇴했다는 스토리다.

 마치 1904년 일본군이 러시아 군이 장악하고 있던 여순의 203고지를 공격했던 상황과 대단히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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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년 만주에 상륙하여 쿠로파트킨 지휘의 러시아군을 공격했었던 오야마 지휘의 일본군은 원래 강력히 요새화해 놓은 여순 반도 끝의 여순을 공격할 계획이 없었다.

 여순을 그저 포위만 해놓고 만주 평야로 북진해서 적의 주력과 결판을 낼 계획이었는데, 일본 해군의 요청에 의해서 여순 항에 숨어있던 러시아 극동 함대를 파괴하기 위해서 방향을 바꾸어 여순을 공략했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막강한 적 요새 방어에 엄청난 피해만 입고 물러서야했다. 피해만 늘어가고 시간이 가던 중 여순 앞 바다에서 초계 항해하던 일본 해군은 여순 방어선과 동 떨어진 외딴 곳에 203고지를 발견하고 육군에 통보했다.

[1904년 11월 203고지]



 거리가 멀지만 그 곳에서는 여순 항내가 잘 보였다. 점령 후 관측소를 설치하고 육군 포병으로 항내의 러시아 함대를 하나하나 조준 포격을 하면 정박 상태의 극동 함대를 모두 격침시킬 수가 있었다. 

 일본군은 203고지에 전력을 집중했고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러시아 방어군은 격렬하게 저항했었지만, 치열한 혈전 끝에 203고지는 결국 일본 함대에 점령당했고 여순 항내의 러시아 극동 함대는 육군 중포의 장거리 사격에 모두 격파되었다.

[203고지 점령 직후 일본 육군중포들을 대규모 화력을 여순 항내에 퍼부었다. 불타고  있는 곳은 유류 저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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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철모 씨 부대는 경기도 이천을 지나 곤지암의 오향리 북쪽 514고지를 향해서 약 30리 쯤 되는 곳으로 갔다. 미군이 일주일 동안 공격했지만 피해만 입고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곳을 6사단 19연대 1대대 1중대가 인계 받았다.

 1중대의 첫 공격은 실패했다.

[좋았던 시절의 중공군이 미군 포로들을 호송하고 있다. 기고만장했던 그들에게 가해지기 시작한 반격은 불과 두달후 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정 철모 씨의 글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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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억세게 재수가 없는 날이다. 많은 피해만 입고 실패한 중대장은 화를 참지 못해서 술만 마시고 있었다. 4시경이 되었을 때 대대장과 작전장교가 모처럼만에 우리 진지로 올라왔다. 중대장과 소대장들이 마중을 하자 대대장은 한다는 소리가

 "중대장! 며칠간 공격하느라 수고했소. 허나 여보 저 고지하나 점령 못하고 많은 사상자만 내요? 머리를 써야지 머리를! 매일 꼭 같은 방향으로 공격을 하니 점령할 수가 있소? 앞으로 나가서 한 번 봅시다."

 관측이 잘 되는 곳으로 나가 엎드려서 전방을 관측하며 중대장은 적의 배치 상황과 화력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공격 실패의 이유를 설명했다.

 "중대장! 공격에 실패한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소? 공격 방향을 바꾸어요! 저 뾰족한 봉우리에도 적군이 배치되어 있소?"

 "그 곳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됐어! 돌아갑시다."

[국군 포병의 사격]



 중대 지휘소로 돌아온 대대장은 상황판에다 붉은 색연필로 공격방향을 긋고 화살표시를 했다. 그리고 뾰족한 봉우리로 화살 표시를 한 다음

 "정 소위는 몇 소대장인가?"

 "화기 소대장입니다?"

 대대장은 바로 작전 명령을 내렸다.

 "정 소위도 이리와! 내 설명을 잘 들어! 중대장, 내일 다시 여명 공격하시오. 내일은 1개 소대를 전면 우측 능선으로 공격시키되 적의 수류탄 투척거리내로 접근하지 말고 양동 작전만 하도록.

 적의 관심은 그 쪽으로 집중시키고 주공[主攻]은 1개 소대로는 이제까지 공격을 하지 않았던 제일 좌측 능선으로 시키쇼. 적으로부터 노출된 지점이고 경사도가 심하나 공격 개시와 동시에 연막탄을 계속 쏘아서 관측을 차단시켜 주겠소.

 그리고 정 소위는 기관총 2정을 가지고 적의 측 후방에 위치한 이 뾰족한 봉우리를 점령하고 공격 개시와 동시에 적이 머리를 들 수 없도록 지원 사격을 하시오. 이 고지 높이로 보아서 적 진지가 환히 보일거야. 정 소위는 특공대원 8명을 차출해서 이리 데려 오시오."

[514고지의 아랫쪽 계곡]



 "넷!"

하고 대답한 나는 기관총 분대원 중에서 건장한 대원으로 8명을 선발하여 데리고 갔다. 대대장은 술 한 병을 가져 오라고 하였다.

 "1중대는 수차 공격을 했으나 많은 사상자만 내고 번번히 실패했다. 제군들은 특공대로서 적의 측 후방에 위치한 저기 보이는 저 뾰죽한 고지를 점령하고 공격 부대를 지원해야 한다. 내일의 공격 성패는 제군들 손에 달려 있다. 특공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주기 바란다!"

 대대장은 의미심장한 훈시를 하고는 한사람씩 악수를 하고는 술을 따라 주었다.

 "정 소위! 저 고지에도 경계병 몇 명은 있을지 모르니 은밀하게 접근해서 처치하고 지원하도록 하게. 무운을 비네!"

 나는 대원들에게 준비상황을 일일이 알려주고 대기하고 있었다.

 "중대장님 밤 11시 정각에 출발하겠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서 두 시간은 잡아야 되겠습니다."

 "도착하는 대로 즉시 보고하고 수시로 적의 움직임을 알리시오. 정 소위만 믿겠소 !"

 "염려 마십시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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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로 남은 이야기, 장진호 전투(3/3)

생생! 6·25/6·25전쟁 10대전투 2011.11.17 13:26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미 해병 1사단의 소식은 전 세계에 타전되어 자유 세계인들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 반면 중국 당국은 승리를 확신하며 전황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습니다. 사단장 스미스는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방향을 바꾸어 공격하는 것이다" 라는 유명한 훈시를 내렸고, 12월 6일, 드디어 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병대원들은 탈출로를 막아대는 중공군을 차례대로 격파하며 흥남을 향해 앞으로 나갔습니다.

[흥남항을 향해 탈출하는 미 해병 1사단]



 유담리와 하갈우리에서 실패를 맛본 중공군은 4개 사단을 황초령 일대에 추가 투입하였습니다. 중국은 미 해병 1사단을 완전히 섬멸할 경우, 미국인들이 입게 될 심리적 충격을 잘 알고 있어서 매체를 통해 연일 전황을 선전하였고, 미국 언론들도 그 과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인이 생중계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만큼 미 해병 1사단의 탈출극은 극적이었습니다.

 추위에 따른 비전투 손실이 많았던 만큼, 장진호전투의 환경은 미군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지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미군이 적보다 더 무서워한 혹한은 중공군에게도 지옥의 사신이었습니다. 후방으로부터의 보급을 원시적인 수단에만 의존하였던 중공군은 혹한의 산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고립되어 전투력을 상실하고는 하였습니다. 이것은 압도적 병력으로 포위망을 형성하고도 미 해병 1사단을 격멸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장진호전투에서 포로가 된 중공군]



 결론적으로 미 해병대의 의지는 중공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사투를 거듭하며 황초령을 넘어 12월 11일 흥남에 도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미 해병 1사단은 전사 393명, 부상 2,152명, 실종 76명의 피해를 입었지만, 이에 맞섰던 중공군 9병단의 피해는 전사자만도 25,000으로 추산될 정도였습니다. 한마디로 궤멸된 수준이라 할 수 있는데 때문에 9병단은 전선에 투입되지 못하고 이후 4개월 동안 부대정비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항공철수를 거부한 해병대의 분투는 막대한 장비와 보급품의 유기를 막는 효과도 가져왔습니다. 물론 물자보다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만 적들이 유기된 장비를 이용한다면 결국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장진호전투가 가진 의의의 미미한 일부분이라 할 것입니다. 미 해병 1사단의 분투는 진격하여 있던 미 10군단, 국군 1군단 포함 여타부대들이 안전하게 후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주었습니다.

[역사적인 흥남철수도 장진호전투가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더불어 사상 최대의 인도주의 작전으로 평가받는 10만의 피난민이 동반 철수에 성공한 흥남철수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또한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만 만일 중공군 9병단이 후방으로 완전히 빠져 재편을 필요로 할 정도로 타격을 입지 않고, 1.4후퇴를 불러온 중공군의 제3차 공세에 즉시 참가하였다면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유가 장진호전투를 패배로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온라인 사전 등에서는 후퇴한 것이니 전략적으로는 패배, 하지만 적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혔으니 전술적으로는 승리라고도 표현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런 의견도 후퇴를 무조건 패배로 보는 고루한 사고 때문에 나온 해석입니다. 적에게 더 많은 피해를 안겨주었으므로 전술적 승리라는 정의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미 10군단을 포함한 사상 최대의 인도적 작전과 중공군 9병단의 전선이탈은 분명한 전략적 승리입니다. 

[전설의 당사자였던 Chosin Few]



 하지만 무엇보다도 장진호전투가 어떤 면으로도 결코 패배로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Chosin Few로 통칭되는 참전용사들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는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기 싫을 만큼 지옥의 고통을 겪었으면서도 잊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전투이기 때문에 장진호전투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6ㆍ25전쟁 중 수많은 전투가 있었지만, 이처럼 장진호전투는 전설로 손꼽는데 결코 모자람이 없다 할 것입니다. //끝//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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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acker un compte facebook 2013.05.16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마디로 세계인이 생중계로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만큼 미 해병 1사단의 탈출극은 극적이었습니

  3. elektronik sigara 2013.05.16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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