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10.07.05 [포토 에세이] 대한해협 해전, 그 날을 되새기며 (15)
  2. 2010.07.02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1 ] (4)
  3. 2010.06.30 그들의 이야기 [ 3 ] (129)

[포토 에세이] 대한해협 해전, 그 날을 되새기며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05 08:21

  어떻게든 전투함정을 구입하기 위해 손원일 제독을 비롯한 해군 장병들의 모금으로 구입한 해양실습선 "백두산함"


  오늘날의 구축함들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초계정에 불과했지만 이 배는 당시 이 정도 함정을 도입하기 위해 발버둥쳐야했던 한국 해군의 참상을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야간, 부산 서북방 해상에서 한국해군의 백두산함은 거수불명의 선박을 향해 국제 해양신호 규정에 따른 발광신호 신호를 보냈습니다.
   '단쓰쓰쓰, 단단쓰단!'
   이것은 모르스 부호로 표기하면 ‘ㆍ--- , ㆍㆍ-ㆍ’이 되고 의미를 유추하자면 국제 해양신호 규정에 따라 "지그, 폭스( J.F )" - "귀하의 국기를 게양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당시 백두산함은 6월 25일 새벽 4시 30분을 기해 개전이 벌어지면서 유사시를 대비한 북한 해군의 작전에 대비해 15시, 주둔지인 진해를 출항한 상태였습니다.


  백두산함은 초계정이라 본격적인 구축함이 아니었기에 무장은 가장 강력한 것이 3인치 포 1문일 정도로 취약했지만 장병들은 물러서지 않고 북한의 무장 수송선을 격침시켰습니다.

  19시 30분을 기해 백두산함의 견시수는 국기를 게양하지 않은 거수불명의 선박을 발견, 2시간에 걸친 추격 끝에 21시 30분까지 수차례에 걸쳐 선박에게 신호를 보내 국적과 목적지를 물었지만 묵묵부답만 이어졌고 북한 해군 선박으로 의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2시 30분, 마침내 백두산함은 최후의 신호인 "쓰쓰쓰, 단쓰단단"( OL ) 즉, "즉각 정선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를 발신했습니다.
  그리고 주포인 3인치 포를 사격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거수불명 선박의 100m 전방까지 접근했습니다.
  발광신호의 섬광을 이용해 선박을 세밀하게 살핀 결과 선명도, 국기조차 없는 문자 그대로 유령선박, 혹은 괴선박 그 자체였기에 백두산함의 수병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순간, 갑판에 늘어서 있던 사복차림의 인원들 사이에서 북한 해군의 수병복을 착용한 인원들이 포착되었습니다.
  "적이다! 서둘러 적함으로부터 이격한다!!"
  순식간에 백두산함은 비상 체제로 돌입했고 해군본부에 신속하게 상황을 타전했습니다.
  당시 해군 함정 도입 협상을 위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손원일 제독을 대신해 해군본부를 지키고 있던 김영철 대령은 지체할 것 없이 6월 26일 00시 10분, 적함을 격침시킬 것을 지시했습니다.
  마침내 6월 26일 00시 30분, 백두산함의 3인치 주포가 불을 뿜으며 대한해협 해전이 발발했습니다.
  당시 백두산함은 주포 실탄 사격을 실시한 적이 없었지만 포수와 장전수는 침착하게 조준해 적함을 향해 꾸준히 3인치 포탄을 날려보냈습니다.
  이 때 사격한 20발의 포탄 중 5발이 적함에 명중했고 백두산함은 보다 효과적인 유효탄을 날리기 위해 적함의 좌현 1마일 전방까지 항진했습니다.
  "좋아! 절대 놓치지 마라. 사격!!"


  백두산함의 투혼으로 600명에 달하는 무장 유격대원을 태운 북한 무장 수송선은 결국 동해상에서 격침되고 말았습니다.

  1마일 내로 접근한 백두산함은 일제히 3인치 포와 중기관총, 기관포를 난사했고 거리가 가까웠던 덕분에 발사한 포탄 10발이 전부 적함에 명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518정이 37mm 기관포를 난사함으로써 백두산함은 든든한 속사화력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북한 무장 수송선 역시 37mm 기관포와 12.7mm DshK 중기관총을 난사하며 대응했고 이 때문에 백두산함에서 부상병들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백두산함은 물러섬없이 적함 1,000m 전방까지 치고 들어가 3인치 포와 중기관총을 난사해 마스트를 부러뜨린 후 기관실 외부 선체를 벌집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격렬한 공격을 받은 북한 무장 수송선은 마침내 01시 10분을 기해 서서히 좌측으로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쉽게 최후를 맞이할 수 없다는 듯 침몰하는 와중에도 적함은 사격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400m 거리에서 적의 포탄이 백두산함의 조타실 좌현 하부를 관통하고 3인치 주포에도 명중해 주포를 작동불능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김종식 소위 등 여러 장병들이 부상을 당했고 전병익 중사와 김창학 하사는 끝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피해가 만만치 않았던 백두산함은 결국 적함을 끝장내지 못한 채 거리를 벌렸지만 01시 35분을 기해 해역에 돌아와 보니 이미 북한의 무장 수송선은 침몰한 상태였습니다.
  결국 대한해협 해전을 통해 약 600여명의 무장 유격대원들을 수송하던 북한 무장 수송선을 격침시킴으로써 전략적 요충지인 부산 일대에 대한 북한군의 후방 교란 작전 기도가 완전 봉쇄되었고 이후 부산항은 전쟁 전 기간 동안 중요 보급항과 교두보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끝까지 전투를 포기하지 않은 백두산함의 투혼으로 우리 군은 개전 초기 지연작전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날 행사의 기함이 된 독도함( 모든 사진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그 날의 빛나는 승리로부터 60년이 지난 2010년 6월 25일, 대한해협 해전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서는 한국군의 자랑스런 독도함을 중심으로 한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해전 재현행사가 펼쳐졌습니다.

  몰려든 내빈들의 인파로 독도함의 헬리콥터 갑판은 금새 가득차 버렸습니다.

  아마 그 날의 승리가 오늘날 어린 꿈나무들의 밝은 미래를 열어줬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산 대남초등학교 학생인 윤지원·김남훈 학생.

  앞으로 학교생활하면서 6.25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몸바친 선열들을 잊지 마시길...

  마침내 백두산함 참전용사들이 입장하는 가운데 대한해협 전승행사가 펼쳐졌습니다.

  당시 백두산함 갑판사관이었던 최영석 예비역 대령이 선두에 섰습니다.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절도있는 자세를 잊지않는 모습에서 그 날의 감격이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캐논 파워샷 G10으로 현장을 촬영하고 계시는 백두산함 참전 용사

  이 날 우천 관계로 일부 참전자 분들은 우의를 착용하셨습니다( 정작 절 포함한 취재진과 독도함 간부들은 그렇지를 못하네요 )

  당시 소위 계급으로 참전해 그 날의 상황을 설명하시는 최영석 예비역 대령.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킨 조국인데 오늘날 참여연대의 천안함 격침사건 관련 서한 제출 등 이적행위가 벌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셨습니다.

  묵묵히 선배님들의 상황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해군 장교 및 부사관들

  이 날 대한해협 해전 재현에는 폐어선이 동원되었습니다.
  격침되기 전의 모습

  이 날 백두산함의 대역을 맡은 울산급 호위함인 FFK-959 부산함이 북한 무장 수송선 역할을 맡은 폐어선을 향해 76.2mm 주포를 사격하고 있습니다.

  76.2mm 주포탄과 40mm 기관포탄을 얻어맞은 북한 무장 수송선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기울기 시작합니다( 클릭하시면 적함을 향해 날아드는 40mm 포탄의 궤적을 살필 수 있습니다 )

  백두산함의 맹렬한 포격으로 적함은 순식간에 전투력을 상실하고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이 날 518정 역할을 맡은 포항급 초계함인 PCC-765 "여수함" 역시 76.2mm 주포와 40mm 기관포를 난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당한 천안함은 포항급 14번함입니다.

  북한 무장 수송선이 완전히 격침된 후 이어진 해상사열에서 항진하는 윤영하급 고속함인 PKG-713 "조천형"함
  제2차 연평해전에서 불시의 기습공격을 받았지만 끝까지 투혼을 불태운 참수리 357정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할 것입니다.

  사열의 선두를 맡은 KDX-Ⅱ 대조영함의 장병들이 일제히 독도함의 내빈들을 향해 경례하고 있습니다.
  대한해협 해전 승전 60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 해군은 강력한 이지스 구축함을 중심으로 214급 잠수함을 보유하는 등 대양해군의 위상을 강력하게 구축했습니다.
저작자 표시 변경 금지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형래 2010.07.11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포탄의 궤적이 정확하게 찍혔네요

    저도 DSLR 카메라 한 대 장만하고 싶어집니다.

    만슈타인님, 요즘 좋은 카메라 뭐가 좋을까요? ^^

  2. 강여은 2010.07.11 0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여군 부사관 분 외모가 출중하시네요

    요즘 여군이 부쩍 눈에 잘 띄어서 같은 여자로서 자부심이 높습니다.

  3. 강효섭 2010.07.1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조영함의 위용을 보니 백두산함부터 시작한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가 한 눈에 스쳐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4. 김수민 2010.07.19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부산함 오랜만에 보네요 ^^

    탄막 사격의 궤적까지 정확하게 잡아내시는 실력 놀랍습니다.

    • ╋만슈타인╋ 2010.07.20 18: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수민님// 감사드립니다.

      항상 정확하고 신속한 포착과 보도를 중시하는 디펜스타임즈 코리아 사진/취재기자로서의 사명감이 자아낸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보도 사진들이 게재될 예정이며 7월 20일에 발행될 8월호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5. 박소영 2010.10.02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폐어선을 침몰시킨 건가요?

    폭발 잔해가 어초가 되는 건 좋지만 해양오염의 우려도 좀 크네요 ^^

  6. chaffee2093 2010.10.16 15: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차피 어선의 수를 줄여야하는 판국인데 육상에서 해체작업해도 이리저리 골치입니다.

    다만 바다가 쓰레기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

  7. 관리자님 2011.04.15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6.25 전쟁에 관심이 많은 중학생입니다.

    그동안 6.25전쟁에 대해 어떻게 소개를 할까 하다가
    이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블로그에 있는 글을 제 미니홈피로 퍼가고 싶슨데
    괜찮으련지요?

  8.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번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 또한 고마울따름입니다.

  9. across the country car insurance business 2012.05.25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웅장한 제출! 분명히 항목을 통해 읽기, 즐겁게, 당신은 훌륭한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는 귀하의 블로그를 표시 예약 및 definately 언젠가 빨리 돌아올 것이다 확신합니다. 제가 확실히 잘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계속해서 당신을 자극해야 좋은 아침 해!

  10. auto insurance 2012.05.25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콘텐츠 물질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많은 감사를 블로그를 작성할 수 있고 자주 있습니다. 이 문서는 진정 산과 내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웹 블로그를 표시하고 달성 가능한 정보와 사실을 확인하게 예약하러 갈거야.

  11. car insurance firms 2012.05.25 1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이 본 게시 이상 사이에서 게시하는 것을 고려하십시오. 그것은 원본입니다. 나는 심각하게 당신이 문서에서 제시하는 주요 아이디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중요한 전망과 더​​ 많은 블로그와 포럼을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식의이 특정한 선물 선물 바구니를 위해 운이 좋은 사람의 이런 종류. 그것을 올리세요!!

  12. rattan indonesia 2012.12.30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 중요한 전망과 더​​ 많은 블로그와 포

한강다리 때문에 멈추었나? [ 1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7.02 07:59

 

  거대한 전쟁의 이면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 종종 벌어지고는 합니다. 이를 흔히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6.25전쟁 또한 미스터리로 불리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고 일부는 전쟁의 방향을 바꾸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전쟁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곧바로 한강을 건너 아군을 추격하지 않고 서울에 머무르며 3일간 진격을 멈추었던 사실입니다.


[남로당의 환호 속에 서울로 입성하는 북한군 T-34전차]

  그런데 이들은 3일간 전진을 멈추었고 이것은 이후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동부전선의 북한군 조공이 춘천-홍천을 돌파한 후 급속 우회하여 수원을 조기 점령함으로써 국군의 퇴로를 일거에 끓으려 했던 북한의 초기 전쟁전략이 국군 제6사단의 분전으로 와해되었다는 의견, 그 동안 남한에 은밀히 내재하고 있던 남로당 계열의 봉기를 기다렸다는 의견, 북한군의 역량 문제로 부대 재편과 보급을 하기 위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로 하였다는 의견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대전을 점령한 북한군의 낙서에서 계속 남진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서울에서의 3일간의 지체는 이후 북한군에게 커다란 짐이 되었습니다.


  사실 미스터리는 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원인을 명확히 모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북한군이 서울에서 3일간 지체한 사유를 북한 스스로 정확히 밝힌 것이 없어 아직도 미스터리로 분류되고 있지만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에 북한군이 한강을 건너지 못한 체 추격을 멈추었다고 추론하고 있고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전쟁 개시의 원죄가 있는 북한 측은 전쟁자료를 비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동안 위에서 분석한 내용들보다 확실한 이유로 거론되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한강교량 폭파였는데, 한강에 놓여있던 한강교량들(인도교, 철교, 광진교)을 아군이 폭파함으로써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한강을 건널 수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즉, 아군의 군사작전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와 관련한 주장이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이와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폭파되어 끓긴 한강 인도교]

 
  1950년 6월28일 새벽 2시30분, 한강 인도교(현 한강대교 구교)와 철교에 하늘을 훤하게 밝히는 거대한 섬광이 일어나고 뒤이어 귀청을 찢는 커다란 폭음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리의 일부 상판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서 강으로 추락하여 들어갔습니다. 바로 6.25전쟁사 초기의 비극 중 하나인 한강교 폭파사건이었고 이것은 북한군에게 서울이 함락됨을 암시하는 암울했던 서막이기도 했습니다.


[점령지 서울에서 벌어지는 인민재판 ]


  적의 진격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교량이나 주요 교통 시설물을 자의로 파괴하는 작전은 오래전부터 시도된 보통전술입니다. 한강교량은 한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전략시설물이었으므로 국군이 이를 파괴한 것은 일견 타당한 측면도 있습니다. 6·25전쟁 발발 초에 임진강철교와 춘천의 모진교 폭파에 실패하여 방어에 상당한 곤란을 겪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전쟁 중 파괴된 압록강 철교의 모습]

  한강 철교와 달리 적 후방 차단을 목적으로 아군이 파괴시킨 교량입니다.


  반대로 공격을 가하는 군대는 돌격로를 확보하기 위해 수색부대 같은 선도부대들로 하여금 본진이 진입하기 전에 주요 길목에 있는 교량을 먼저 확보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당연한 군사전술일 정도입니다. 따라서 적에게 밀려나고 있던 국군이 한강의 다리들을 폭파시킴으로써 적의 진공을 둔화시켜야 할 절대적인 필요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강교량의 폭파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잘못된 작전이었다고 비판받는 한강교량 폭파]


  당시 정황상 어쩔 수 없었다는 견해보다, 엄청나게 잘못된 것이었다는 비판적인 주장이 아직도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군사전략상 교량폭파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폭파의 시기와 방법이 너무 문제가 많았고 더구나 효과가 미진하였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폭파시기가 잘못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데, 이것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국군 역사의 치욕이기도 합니다. ( 계속 )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excursion us all these days 2012.05.25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언제든지 가장 효과적인 문서로서이 문서를 고려해보십시오. 그것은 정말로 특별한입니다. 사실 당신이 작성한 콘텐츠에 동안을 제공하고 주요 개념을 감탄. 우리는 더 중요한 생각과 더 많은 블로그와 포럼을 위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전문 지식이 특정한 보상 선물 바구니를 소유하는 그러한 행운의 사람이있어. 좋은 일을 계속!!

  2. home warrantee quotes org property insurance vocals rapidly 2012.05.25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좋은 블로그를 기부했습니다. 내가 진실로에게도 당신이 여기이 특정 훌륭한 문서를 확산 고맙다는 말을 좋겠어. 이곳은 서면 문명화됩니다. 이 사이트에 의해 사람의 귀중한 풍경을 공유하기위한 감사합니다. 사실 bared 그래서 블로그 안에서 매혹적인 제품을 반복했다.

  3. head to people news 2012.06.07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은 당신이 제공하고 있고 또한 떨어져 공짜로 제공되는 환상적인 소스의 일종 이죠. 저는 무료로 환상적인 학습 자원을 제공하는 욕망을 알고 목격 웹사이트를 좋아해요. 이 놀라운 소스에 대한 감사!



  4. indonesia rattan furniture 2012.12.30 2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료로 제공되는 좋은 참고 이러한 유형입니다. 난 완전

그들의 이야기 [ 3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6.30 09:07


 

  종종 11월이면 평안남도 양덕군에 있는 중공군 묘지를 백발의 중국여인이 찾아오고는 하는데, 이 여인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정권에서 직접 안내하며 예를 갖추기 바쁩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유송림(劉松林) 또는 유사제(劉思齊)라고도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첫째 며느리입니다.  비록 현재 중국정부의 요직과 관련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북한에서 이 여인에 대해 신경을 써야할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남편의 묘소를 참배하는 유송림]


  왜냐하면 유송림의 남편인 마오안닝(毛岸榮)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여 그곳에 묻혀있기 때문입니다.  정권을 획득하고 죽을 때까지 철권 통치자로 중국을 지배하였던 마오쩌둥의 첫째 아들은 사실 6·25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일부자료에는 자원해서 참전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의 지시로 그는 전쟁터로 나갔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마오안닝의 묘]


   우리입장에서야 10월 25일 등장한 중공군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중공군의 참전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만약을 대비하여 18개 사단으로 구성된 25만의 동북 변방군을 만주일대에 배치해 두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중순이후 전세가 역전되자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6·25전쟁에 개입할 것을 공공연히 천명하고는 하였습니다.


[중공군의 참전 이면에는 커다란 갈등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태도를 평가절하 하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이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대일본 전쟁 및 국공내전을 간신히 끝내고 국가를 건국한지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신생국이었으며 오히려 대만문제, 만주문제, 티베트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중국이 6·25전쟁보다 더욱 심각하게 느끼고 있던 난제들이었습니다.


[중국은 신생국이어서 국내에 산적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바로 이때 스탈린이 참전을 권유하는 전문을 보내왔는데, 마오쩌둥은 이를 소련의 적극 개입으로 해석하는 실수를 범하였습니다.  마오는 중국이 한반도의 전쟁에 개입하면 스탈린이 적어도 공군을 참전하여 줄 것으로 예상하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10월 12일, 소련의 지원이 불가함을 통보 받은 마오는 만주에서 출병 준비를 하고 있던 펑떠화이(彭德懷)를 소환해 참전 여부를 재검토하였습니다.


[결국 마오쩌둥의 결단으로 참전이 이루어졌습니다]


  린바오(林彪)나 까오강(高岡) 등 권력 실세 대부분이 파병유보를 주장했을 정도였고 상황도 불리하게 돌아가자 마오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대국과 국경을 마주할 수 없다는 고래의 원칙에 따라 파병을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중공군의 6·25전쟁 참전은 마오의 전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마오쩌둥은 소련의 지원을 얻어내지 못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자 그의 장남을 참전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마오쩌둥과 마오안잉]


  마오안잉은 그의 어머니인 양카이훼이(楊開慧)가 국공내전 동안 국민당군에게 피살당한 후 겨우 목숨을 건져 세상을 전전하다가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중국으로 돌아와 1949년 유송림과 결혼하였는데, 불과 1년도 못되어 젊은 아내를 남겨두고 아버지의 명에 따라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오안잉은 펑더화이의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참전하여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갔습니다.


[마오안잉과 유송림]


  하지만 마오쩌둥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껄끄러웠던지 펑떠화이를 비롯한 대부분의 장교들은 그의 참전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전선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였던 마오안잉의 요구와 달리 후방의 사령부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사령부가 미 공군의 맹폭을 받아 11월 25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마오쩌둥은 대의를 위해 유송림의 소원을 거절하였습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마오쩌둥은 잠시 눈시울을 붉혔지만 "전쟁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라고 간단히 말을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유송림은 눈물로 남편의 시신만이라도 중국으로 가져 올 것을 마오쩌둥에게 부탁하였지만 해외 파병 중 전사한 중국군은 현지에 묻힌다는 전통을 깰 수 없고 수많은 중공군 전사자들과 형평이 마지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연 때문에 유송림이 북한에 있는 마오안잉의 묘소를 찾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많지만 아쉽지만 우리의 이야기를 찾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몇 회에 걸쳐 유엔군 최고지휘부와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자의 아들들이 6·25전쟁에 참전하여 그 역할을 다한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피아를 떠나 자국의 국민들에게 지도층으로 모범이 되어줄 만한 행동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6·25전쟁사에는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있는데,  막상 이와 관련한 우리의 이야기는 찾기가 몹시 힘듭니다.


  물론 당시 국군 최고지도부의 대부분이 불과 30대에 불과할 정도여서 이런 경우는 구조적으로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군을 포함한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빛을 발한 예보다 국민방위군 사건처럼 경악할 만한 권력층 비리를 찾기 쉽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6·25전쟁에 참전한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medical billing and coding 2011.10.28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편하였던 극동지역은 서구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쉽게 찾아가기 힘든 곳으로 인식되어 은밀히 허니문을 보내고 싶은 이 스타커플에게 좋은 신혼 여행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3. payday loans 2011.11.01 1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쉽게 찾아가기 힘든 곳으로 인식되어 은밀히 허니문을 보내고 싶은 이 스타커플에게 좋은 신혼 여행지가 되었던 것

  4. Rolex Watches 2011.11.03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 영양성분이 있을까?
    우선 생식기능에 관연하면서 불임을 예방하는데 좋은 비타민E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제인 남성에게 좋은 성분으로는 남성호르몬을 분비시키고 정자생성을 촉진시켜주는 아연이 있다.

    뿐인가. 칼슘과

  5. HTC Pakistan 2012.02.02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私は本当にあなたが私はあなたが私の知識ベースに追加したすべてのものに感謝、将来的にずっと有利になるだろうと考えています。あなたのブログとあなたが提供する詳細な情報が入れ時間と労力を賞賛!

  6. Computer Network 2012.02.10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 당신은 할 비즈니스 경제의 아이디어, 기업가, 경영진 등 많은를 수집할 수 있습

  7. available people these days 2012.05.25 16: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심할 바없이 멋진 웹 사이트. 저는 항상 멋진 개정을 위해 다시 돌려주지 유용하거나 더 이상 지금까지의 문제와 함께 환상적인 내용을 기사를 게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이런 짓을하여 작업에 감사드립니다! 바라건대 웹로그를 통해보다 유용한 사항을 볼 수 있습니다!

  8. document out and about each of our assets discover 2012.05.25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간단히 말해서 나는 이것을 스캔 그만둘 수 없습니다. 따라서 스트레이트, 정보와 나는 간단하게 알아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에 따라서 풍부. 인터넷 마케팅 사람들은 그대로 실행 신발은 사람 다른 모서리로가는을 표시,이 현명한 방법으로 이러한 우려를 쓰는 것을보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당신은 환상적인 tumblr가 될 수 있습니다. 계속 기억하십시오. 사실 다가오고 있기는지보고 기다릴 수 없어.

  9. available people these days 2012.05.25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식별 Pileateds과에 많은 매우 신중하게, 프레임간 연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의 저가이 기본 세트는 Luneau의 딱따구리가 가능하게 될 / 절대적으로 어떠한 Pileated이다 수있는보고 빠르게 수도 있습니다

  10. best way to save money on electric bill 2012.05.29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에 관한 아이디어가 맛있 확신 해요. 결과로 가능한 큰 거래 있어요. 아이디어의 큰 거래.

  11. small business owner rewards drawbacks 2012.05.31 1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기사를 밝히 위해 감사를 드려 야지 이것은 확실히 계몽 보고서입니다.

  12. top medical internet site types 2012.05.31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심각하게이 웹사이트에서 전시가 될 수있는 유용한 사실에있는이 웹 사이트에 훌륭한 서비스를 신청을 아주 분명 많은 너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웹사이트는 블로그와 블로그의 다양한 콘텐츠를 기사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13. where to find self-employed lack of employment advantages nj-new 2012.05.31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심각하게이 웹사이트에서 전시가 될 수있는 유용한 사실에있는이 웹 사이트에 훌륭한 서비스를 신청을 아주 분명 많은 너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웹사이트는 블로그와 블로그의 다양한 콘텐츠를 기사에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14. save money on food 2012.06.07 1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여기있어 아주 좋아요 정보. 저는 최근 들어 주 시간 셀룰라 전화를위한이 주제에 관한 통해 읽고 있었다. 고맙게도 내가 당신의 웹사이트에 이곳을 발견뿐만 아니라 수업에서 개인 양식. 나는 이걸 읽는 재미를 많이 필요했습니다.

  15. progressive snapshot 2012.06.07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로, 포스트 좋은, 이제는 그들이 다른 그와 함께 제출 people.Please에 공개에 대한 post.Many 감사로 충분한 리소스를 찾을 수와 함께 찾고 다양한 남성이나 여성이 있습니다.

  16. uefa live 2012.09.25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此分享我的,我很心存感激。

  17. uk casino 2012.10.03 20: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此信息分享我的感謝.

  18. Accounting Software 2013.02.20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我想谢谢你的分享您的想法把时间和贴的东西!

  19. http://www.livtraining.edu.au/cert-and-assessment/ 2013.03.13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이크로블로깅의 매력이기도 하죠.
    특히, 윈도우 클라이언트나, 스마트폰, 모바일 개짓을 사용하면.. 삶과 엄청 가까워지요

  20. free online casino 2013.03.20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分享你的事,我很高兴,让我知道这么多关于您的信息。

  21. online poker 2013.03.26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相当令人惊异的文章。这真的是真正的非常精彩的和有益的职位。感谢您与我们分享他的!这是我第一次去参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