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10.06.29 아! 6·25 포토 에세이 해군사관학교 (9)
  2. 2010.06.28 전차 중대의 양수리 도강 작전 (3)
  3. 2010.06.22 전함 백두산(1/4) (13)

아! 6·25 포토 에세이 해군사관학교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6.29 08:24

   국제 관함식에서 항진하는 KDX-Ⅲ "세종대왕함". 6·25 전쟁 당시 백두산함 등 중고 함정을 구입해와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출발했지만 그 와중에도 강력한 대양해군을 꿈꿔온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은 이제 아시아에서 그 누구도 쉽사리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해상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해군의 요람으로 굳건히 진해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군사관학교는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4년간 지·덕·체 수련과정을 거쳐 조국 해양수호의 간성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입니다.
  4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생도들은 소위로 임관, 약 5년 간의 의무복무를 거친 후 본인의 희망에 따라 전역 및 진급을 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 대왕급 구축함인 DDH-972 "을지문덕함". 창군 초기 선박 한 척 없는 열악한 여건에서 시작한 해군사관학교 졸업생들의 헌신적인 노고로 오늘날 대한민국 해군은 KDX-Ⅲ를 비롯한 우수한 성능의 구축함들을 다수 장비한 강군으로 거듭났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상징인 귀선 앞에서 담소 중인 생도들. 1999년 여성 생도가 입학한 이래 오늘날 해군사관학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국 수호와 해군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군사관학교는 어떻게 개교하고 발전해왔을까요?
  격동의 19~!20세기, 영국 해군의 영향을 받아 강력한 해상 강국을 구축했던 일본의 압제를 받아왔던 전훈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에 전념하다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손원일씨는 후배인 정긍모씨와 더불어 해군의 창설에 대한 강한 열망을 꿈꿔왔습니다.
  그리고 해방 6일 후인 8월 21일, 마침내 서울 안동교회에서 해사대를 결성한 것을 시초로 조직을 더욱 보강해 "조선해사협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정보통신의 중요성에 따라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은 노트북과 PMP, MP3 등의 장비 활용에도 능숙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1945년 11월 11일, 마침내 대한민국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이 창설되고 미 군정법령 제42호에 의거, 군사단체로 보장받음에 따라 대한민국 해군의 기초가 다져졌습니다.
  해방병단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들을 교육시키고 지휘할 장교의 양성은 필수가 되었고 이에 따라 1946년 1월 17일을 기해 현 진해 군수사령부 자리에 "해군병학교"가 설립되고 초대 교장으로 손원일 중령이 취임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해군을 이끌어갈 호국 간성을 양성하는 해군병학교의 교육과정과 군기는 매우 혹독했고 이는 동년 2월 28일에 입학한 제1기생 113명 중 54%인 62명만 졸업한 점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1946년 6월 15일, 해방병단이 해안경비대로 개칭되자 해군병학교 역시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로 개칭되었고 1947년 2월 11일에는 보다 효과적인 훈련 및 교육에 유리한 현 해군 교육사령부 기술병과학교 자리로 이전하게 됩니다.
  이후 조선 해안경비대 사관학교는 "해안경비 대학", "해사대학"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며 마침내 1947년에는 노산 이은상 선생이 작사하고 손원일 교장의 부인 홍은혜 여사가 작곡한 교가가 생도들에 의해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 설립에 기여한 초대 교장 손원일 중령과 교가를 작곡한 부인 홍은혜 여사

  1948년 10월 25일,  해사대학은 망해봉 기슭에 위치해 광활한 해역을 관제할 수 있는 현재의 옥포만으로 증축, 이전했고 11월 26일 해군대학으로 교명을 개칭합니다.

  그리고 1949년 1월 15일, 마침내 "해군사관학교"로 개칭됨과 동시에 대통령령 제87호에 의거해 해군사관학교 설치령이 제정됨에 따라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을 거듭해온 학교가 마침내 일반대학과 동등한 수준의 교육기관으로 인정되는 법률적 보장을 받음과 동시에 명실공히 조국해양수호의 대임을 맡을 해군장교 양성의 요람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사관학교는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정규 교육과정을 일시 중단하고 해군사관학교 전투사령부를 발족했습니다.
  1950년 7월 13일, 아직 교육을 받고 있던 해군사관학교 4, 5, 6, 7기 생도들은 창원 지구 전투와 해상 작전에 투입되어 북한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잖은 생도들이 전사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대신 전쟁 기간 중 서울지역의 권위있는 학자들이 대거 진해 인근으로 이주함에 따라 우수한 교관을 확보할 수 있게 됨은 물론 미 해군 고문단의 도움으로 교육의 질적 발전을 이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참혹했던 3년 간의 전쟁이 휴전되자 다시금 교육기관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해군사관학교는 1953년 8월, 4년제 교육과정을 위한 교과과정을 마련하는 한편 1955년 10월 1일을 기해 사관학교 설치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1956년부터 사관생도들은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고 이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위풍당당한 행진

  이러한 교육과정의 발전에 발 맞춰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시설 확충에 착수한 해군사관학교는 1955년 통해관, 1958년 도서관 완공 등 기본적인 교육시설을 확보했습니다.
  여기에 장래 해군장교로서 일선에서 병사와 하사관들을 지휘할 사관생도 생활이 보다 발전적이고 체계적으로 제도화되었는데 우선 적성평가제도, 명예제도, 군기장 제도, 무감독 시험제도, 옥포회 활동 등 해군사관학교만의 독특한 전통이 바로 이 시기에 정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바로 1956년 3월 1일에 처음 시행된 천자봉 구보!
  해군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할 코스인 천자봉 구보는 생도가 단독군장으로 산악구보를 하며 천자봉을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사관생도 교육 및 생활/복지를 위한 각종 시설들이 건립되었는데 우선 생활관인 세병관과 면회 및 복지를 위한 옥포회관, 그리고 도서관과 합포관, 교회, 체력단련장, 고 이인호 동상 등이 완공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과학관, 제2 통해관, 호국사, 생도사, 생도식당, 웅포관, 실내 체육관이 건립되었고 옥포회관이 증축되었습니다.
  이어 1980년대에는 거북선 복원 및 통해로, 충무공 이순신 제독 동상 건립, 전산실, 대형 컴퓨터실, 중앙도서관이 건립되는 한편 해양체육을 위한 주정고와 수영장이 기공되었습니다.



 
원양 함정실습 중인 4학년 생도들. 졸업을 앞둔 생도들은 이제 전문적인 해군 장교로서 첫걸음을 내딜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1990년대에 들어 해군사관학교는 박물관, 교훈탑, 사관생도들의 복지시설인 벽파회관, 그리고 OCS 생활관 등을 건립했고 2000년대에 들어 충무관과 인호관, 그리고 생도사를 신축하는 한편 해군사관학교의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시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교육 중인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초창기 칠판과 분필로 시작했던 교육은 오늘날 첨단화된 디지털/시청각 교육장비와 강의실의 도입으로 더욱 효과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사관생도들의 교육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의 군 과학화 지시에 따라 과학화 교육 계획을 수립한 해군사관학교 교육과정은 기존의 이학사에 이어 공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으로 확대되었습니다.
  2학년으로 진학한 생도들은 해군과학( 이학사 )과 해군공학( 공학사 )로 나뉘어 항해와 기관병과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해군사관학교가 기존 일반대학과 같은 수준의 전공교육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1970년대의 교육분야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시대상을 반영한 이념교육을 바탕으로 한 정신교육이 교과개편에 다수 반영된 점과 1976년 1월 17일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으로 "117 사업"계획을 수립, 일대 개혁을 실시함으로써 신교과과정이 추진되었다는 것입니다.
  신교과과정은 학술적인 면을 충실하게 보완함으로써 기존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학사학위 소지자로서 손색없게 함은 물론 전문 장교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1, 2학년은 기초과목을 습득하고 3학년은 전공을, 4학년은 전공과 군사학 및 실습과 실기 위주의 교육을 받도록 세분화되었습니다.
  해군사관학교의 교육과정 중 가장 독보적이면서도 자랑할 만한 것은 바로 생도 4년간 교육의 총 결산으로 매년 실시하는 순항훈련입니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사관생도들에게 항해술 및 각종 현장체험훈련, 그리고 임관 전 함상 적응능력 배양을 위해 실시하는 순항훈련은 실무 적응능력과 지휘역량을 배양하고 세계화 시대에 맞춰 국제적 식견과 안목을 갖춘 해군장교로서의 자질을 축적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1954년 해군사관학교 9기생부터 실시한 순항훈련은 60년대까지 동남아시아 지역을 순항하는데 그쳤지만 1970년대에는 미국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을, 1980년대엔느 샌프란시크코, 벤쿠버, 괌, 미드웨이, 싱가포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피지, 라바울 등 20여 지역을 순항함으로써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국력을 실증했습니다.

  새 천년을 맞이해 해군사관학교는 시대의 변화에 앞장 서 오늘도 학교를 새롭게 재창설한다는 각오로 정예 호국간성 육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해군사관학교가 어떤 기관인지 연혁을 살펴봤으니 6·25 전쟁 당시 34명의 전사자를 냈던 본교에 남아있는 6·25 전쟁의 흔적을 찾아 직접 가보는 것이 좋겠죠?

  다행히 해군본부 주최로 월간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와 자주국방 네트워크 회원들이 참여한 2010 안보현장 견학 행사를 통해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이자 전사학 교수인 조덕현 중령님(
해군사관학교 40기 )의 상세한 설명 덕분에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6·25 전쟁 관련 유물과 손원일 교장과 관련된 각종 설명을 경청할 수 있었습니다.


 
2010년 6월 24일, 해군본부 주최로 월간 디펜스타임즈 코리아와 자주국방 네트워크 회원들이 해군사관학교를 견학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덕현 중령님의 안내로 해군사관학교의 표상인 귀선에 대한 설명을 경청 중인 자주국방 네트워크 회원 및 월간 디펜스타임즈 코리아 취재진

  해군사관학교에서 1999년에 복원한 귀선.
  오늘날 귀선에 대한 각종 논란이 분분하지만 조덕현 중령님의 설명에는 현재 이 형태가 가장 확실하다고 합니다

  귀선 내부는 당시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고 선체의 경우 나무못을 실제로 박아넣는 등 적잖은 노력이 기울여졌습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내부의 6·25 전쟁 및 베트남 전쟁에서 활약한 해군과 해병대의 유품 및 전시물들을 견학하는 자주국방 네트워크 회원들

  아쉽게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는 6·25 전쟁 관련 유물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가치가 큰 유물은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유명한 백두산함의 대한해협 해전도입니다.
  당시 한국해군이 보유한 전투함 중 강력한 축에 속했던 백두산함이지만 북한의 무장 수송선 역시 중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였고 결국 적함을 격침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백두산함의 활약으로 후방으로 침투해 교란작전을 펼치려했던 북한군의 작전 기도는 무산되었고 이후 부산항을 통해 미군의 물자보급과 병력 증원이 이뤄져 전황이 역전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승리의 주역이었던 백두산함은 아쉽게 실물은 보존되지 못하고 모형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척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어링급 구축함보다도 작은 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두산함으로 조촐하게 시작한 한국해군은 현재 KDX-Ⅱ에 이어 이지스 구축함인 KDX-Ⅲ를 보유한 막강한 전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어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실 겸 조덕현 중령님의 연구실에서 각종 문의사항에 대한 문답이 이어졌습니다.

  해전사를 전공하신 분답게 서구해전사 및 6·25 전쟁 당시 해전사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오고갔습니다.
  특히 영국의 빅토리호나 미국의 컨스티튜션호처럼 백두산함도 보존되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내셨는데 그 와중에 바로 이 부근에 백두산함의 마스트가 보존되어 있다는 제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조덕현 중령님의 제보에 따라 직접적으로 부두로 달려간 결과 발견한 백두산함의 마스트.
  이것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백두산함의 유일한 흔적입니다.

  비록 백두산함의 실물은 볼 수 없었지만 그에 못잖게 귀중한 정보와 사료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리였고 호국 간성의 양성을 통해 강한 정예 해양강국을 꿈꾸는 대한민국 해군의 미래를 가늠하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6·25 전쟁은 우리에게 큰 비극이었지만 해군에게는 보다 큰 미래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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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호 2010.07.01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퍼싱님!!

    대한해협 해전도는 처음보는데 아주 멋지네요

    잘 보고 갑니다.

  2. 강준일 2010.07.01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주국방 네트워크 회원 분들 여럿 보이네요

    즐거운 시간이셨겠습니다.

    멋진 사진 에세이 잘 보고 갑니다

  3. 강효섭 2010.07.02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해군사관학교 견학 기회 있으면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귀선 사진 잘보았습니다.

    특종 건지셨네요 ^^

  4. 박소정 2010.09.28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알고 싶었던 정보들이 많네요

  5. 박소영 2010.10.02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사진과 자료를 보니 진해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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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중대의 양수리 도강 작전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6.28 09:38

 

한강 도강하는 89전차대대 C중대 - 유엔군이 서울 탈환을
목표로 전개했던 리퍼 작전중인 1951년 3월 촬영이다.

배경의 산야가 눈이 덮힌 것을 보니 본 포스팅의
A중대가 도강을 완료한 뒤에 따라서 도강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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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치열한 전차전들이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 내내 유엔군 전차들의 주요업무[?}는
대전차전이 아니라
보병 지원업무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각 출판물에 6·25전쟁에 대표 전차로 소개되는 M 26 전차와

M 46 전차뿐만 2차 세계 대전의 M 4 셔먼 전차가 여러 주요 임무를

맡아 실행했던 일꾼이었음도 별로 각광받지 못한 점도 유의하자. 


오늘 소개하는 전차의 사례는 전투의 클라이막스가 ‘화려한’

전차전과는 달리 양수리 인근에서 남한강을 도강해서

보병들을 지원한 한 전차 중대의 ‘착실한’ 전투의 기록이다.


한국적인 지형에서 전차 단독이 아닌 보전포의 협력된

전투가 이상적인 작전형태가 될 터인데 이의 한 참조고가

될 사례로서 기대해본다.



1952년 철원 평야의 셔만 전차 중대 집결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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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9 전차대대 A 중대는 3월 2일 8군으로부터

한강을 도하할 25사단 35연대 3대대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수령했다.


본래 작전 계획은 보병들이 도강하는 동안 전차 중대는
강변에서 화력지원을 하고 한 나절을 기다린 뒤에
부교 설치가 끝나는 저녁에야 도강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강한 보병들이 전차의 동행없이 강변에서 멀리
진격해 들어 가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

전차 대대장 돌빈 중령과 중대장 브레넌 대위는 토의끝에
전차도 보병들과 같이 동행 도강해서 작전 시작부터 끝까지 
보병대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보병대대의 요청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 하면서도
더 나은 지원을 하겠다는 전차 부대의 자발적인 의사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951년 3월 4일.

중대장 브레넌은 전차 중대를 염두에 두고 있던 도강 지점에서

3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귀여리의 전방 집결지로 이동시켰다,


[지금은 팔당호의 최 상류지점이 될 듯하다.
그러니까 전차의 공격은
팔당호 연안을 따라 양평으로 가는
호반 길을 따라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전투 상보. 왼쪽이 지금은 팔당호 상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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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그는 소대장들을 그가 중대 본부로 쓰는 초가집으로

불러 그가 구상하는 한강 도강 계획을 밝히고 토의를 했다.


그의 계획은 전차 한 량를 전차 구난차의 윈치 케이불로 연결하여

강을 시험 도강을 해 보는 것이었다.

만약 수심이 너무 깊어 전차가 빠지게 되면 이쪽 제방에 있는

구난차가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전차가 북쪽 제방에 건너가게 되면 나머지 전차들은

개척했던 길을 쫓아가면 되었다.


셔만 전차 차대를 활용한 M 32 구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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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대장[토마스 앨리 중위]이 그 첫 번 전차를 강으로

끌고 가겠다고 자원했다.


이튿날 브레넌 대위는 한강의 남쪽 제방을 정찰했다.

그는 정찰에서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지점에서 1,000야드
남한강
쪽에 작은 섬이 존재함을 발견하고 이를 도강지점으로
선정했다.

그 작은 섬의 이 쪽은 강변과 250피트,
섬 건너
다른 한 쪽은 200 피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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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하는 지점에서 상류 쪽으로 조금 올라간

지점이 보병들이 도하 작전을 했던 곳이다.- 지도 참조 -
전차는 양평쪽으로 더 올라간 상류의 사잇섬에서 도강했다.
이곳은 팔당 댐이
들어 선후 강 수면이 크게 상승하여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이곳에 작은 섬이 있었고 흙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농사가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도 수초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서 표시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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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병들이 도하하는 도중 화력지원을 해줄

각 전차 소대의
진지도 선정했다.

보병들은 더 하류 쪽에서 도하 지점을 선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의 중대가 지원할 보병 25사단 35 연대와
지원업무를 협의하고
보병들이 타고 강을 도강할 단정을
챙길 공병 부대장과도 협의를 했다.


공병 대장은 브레넌에게 전차들로 하여금 단정을 적재한

트레일러 8량을 도하지점인 한강까지 견인 해줄 것을 간청했다.

각 트레일러마다 단정 5척, 합계 40척이 적재되어 있었다.



한국전 후반의 고지에서 활약하는 M4 셔만 탱크
셔만 전차는 작아서 한국의 좁은 산길이나 농로를
잘 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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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들의 요청은 트레일러 견인 트럭들이 진흙탕이 질척한
물가로 들어 갈 수가 없다는
고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병 및 공병들과 최종 합의한 작전 계획은 강변에 전개한
전차들이
0555부터 20분간 포격을 하고 0615분에 보병대대가

단정을 타고 한강을 도강하기로 하였다.


3월 7일 0330분에 기상한 전차 중대원은 0345에 이른 아침을 먹고

전차들을 도로에 행군 대형으로 정렬을 했다.
전날 내리던 눈도 그쳐서 주위가 조용한 은세계였다.

중대 편성은 전차 3개 소대 15량의 전차와 구난차 1량이었다.


서두에서 밝힌대로 중대는 전날 밤에 반쯤 파괴된 마을
귀여리에 도착해서
다음날 미리 행군 순서를 정해놓고
행군 대형을 짓기 좋게
분산해서 숙영했었다.


0430 브레넌 대위는 중대에게 출발 명령을 내렸다.

전차들은 느린 속도로 이동했다.

전차 15량 중 8량은 주정을 실은 트레일러를 전차 뒤에

견인하고 있었다.


한 척에 12명씩의 보병들이 승선할 수가 있었다.

너무 어두웠고 전차의 마력을 올려서 엔진소리가 적 진지까지

들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기 위해서였다.


전차들은 트레일러를 끌고 하류 쪽 보병 도하 지점으로
일단 가서
트레일러를 분리시키고 사잇섬이 있는
상류 쪽으로 이동하여
소대별로 미리 선정한 진지를 점령했다.


진지 점령 완료시각은 0545였다.

0555 105미리 곡사포 1개 대대와 영국군 포병 1개 연대와

이미 지정된 표적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드디어 명령일하 불레넌 대위 중대 전차들도 포문을 열었다.



도강 직후의 셔만 전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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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 셔만 전차들은 그날 격전이 될 것을 예상하고 포탑내에

71발의 포탄을 만재하고도 뒤 엔진실위에 예비포탄 54발을

최대한 적재했었다.

[76미리 포탄은 90미리나 105미리 탄 보다 훨씬 작아서

 다량 적재가 가능하다.]


첫 사격에는 엔진 실위에 적재했던 포탄부터 사용했다.

아직도 어둠이 가시지 않아 강 건너 적 진지가 있는 고지들은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전차들은 할당된 사격구역의 주요 적 진지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을 지역 사격으로 두들겼다.



한국 전쟁중 M4 셔만 전차와 보급품을 투하하는
C119 플라잉 복스카 수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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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5 대대 보병들은 신속한 동작으로 단정을 강 속으로

밀어 넣고
희미한 여명 속에서 제파[梯波]별로 도하를
하기 시작했다.


적의 기관총이 사격을 개시하였다.

몇몇 주정에 구멍이 나고 보병들이 부상을 당했지만
도하는 계획대로
진전되었다.


보병들은 강을 건너자마자 내륙으로 깊숙히 진출했다.

적의 기관총 사격은 치열해져 보병들에게 사격이 가해졌다.

적의 포병들 사격도 치열해서 설치 준비를 하던 부교도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보병대대의 단정 도하 작전은 아침 0740에 완료되었다.

중대장 브레넌 대위는 계획했던 전차의 시험 도강를
실시하기로 결심했다.


3소대장 엘리 중위의 전차는 구난차를 데리고
강변 200야드 지점까지
진출했다.


구난차의 케이블은 도강을 감행할 앨리 중위 전차의
후미에 연결되었다.

0800 앨리 중위의 전차는 강 복판의 사잇 섬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물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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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도강은 엄밀히 배를 타고 건너는 도하[ferry]와

도섭[ford]이 있다.

이 경우는 전차의 도섭(渡涉)에 해당한다.

그러나 독자들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도강이라는 일반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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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더 좋은 전차장 석의 앨리 중위는 조심스럽게 전방

강 수면을 살피며 차내 전화로 조종수
길로리 존슨 하사를 유도했다,


강의 수심은 생각보다 얕아서 3피트가 되지 않았다.

전차가 모래섬까지 거리의 3분지 2쯤 왔을 때 구난차의 윈치가

갑자기 멎었다.


그러나 전차는 탄력으로 케이블에 달린 구난차를 끌고
3,4피트를 가자
전차에 연결한 윈치 케이블의
커플링이 떨어져 나갔다.

조종수 길로리 존슨은 속력을 올려 사잇섬 물가에 무사히 올라섰다,


원래 도강 계획은 섬을 횡단해서 그대로 직진하고자 했으나

앨리 소위는 섬의 상류 쪽에 흙다리 교각과 이어진 발 디딤돌을

발견했다.


인간이 다리를 놓을 지경이라면 분명 그곳이 제일
얕은 곳일 것이다.

그는 즉각 섬의 상류 쪽 다리 기초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도 다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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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그 곳의 수심은 깊었다.

전차는 급경사로 물속에 머리를 들이 밀고
물이
조종수와 전방 사수석으로 물려와 두 승무원은
당장 물로 흠뻑 젖었다.


경험 많은 조종수 길로리 하사는 엔진이 침수되어 정지할 것을

막고자 악세레이타를 밟아 그대로 빠르게 전진하였다.

흙다리 나무 교각을 세 개쯤 지나자 또 수면이 깊어지며 물결이

포탑 아래 부분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수 초뿐, 전차는 다시 얕은 바닥으로 올라서며

강 건너편 강변에 도달했다.


마지막 구간을 건너는데 단 2 분도 걸리지 않았다.

안전하게 강안에 자리 잡은 앨리 중위는 건너편 강변에서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 중대 전차들에게 빨리 도강하라고 송신했다.


제 2 번 전차 스탈린 W.하몬 중사가 꼭 같은 루트를 타고
도강을 해서
단 5 분도 안되어 소대장 전차와 합류하였다.


전차 한 량씩 차례로 수중 도강을 하기를 원했던 앨리 중위는

2번 전차가 완전히 도강을 완료한 후에 3번 전차에게
도강을 명했다.


그러나 3번 전차는 바로 전 강변에서 화력지원을 하던 중

충격으로 조종석 아래의 비상탈출 해치가 느슨하게
풀려 있던 것을
미처 몰랐었다.

해치는 물속에 떨어졌다.


조종석과 전방 사수석에 물이 마구 밀려 들어와
조종 불능 상태가
되었다.


전차는 섬에 도착도 못하고 비교적 얕은 모래섬 강변에
정지하고 말았다.

앨리 중위는 남은 두 량의 전차들에게 조심해서 강을 건너도록
지시해서
모두 완료하였다.


5 량의 전차에서 좌초[?]한 한 량의 전차를 제외한 네 량의 전차가

도강에 성공하자 앨리 중위는 미리 도하를 완료한 보병과

합류하기 위해서 방향을 왼쪽으로 돌려 남한강을 따라 내려갔다.

이 때가 083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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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량 1개 소대인 미군 전차 부대 편제에서 소대장이 3 량을,

선임 하사가 2 량을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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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후퇴 당시에 보병들을 승차 시키고 한강을 넘어
후퇴하는 89전차 대대의 M4 셔만 전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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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반 3번 전차가 물속에 좌초되어 있었기 때문에

앨리 중위는
단 2 량을 지휘하고 앞서 갔다. 그 뒤를 약간

거리를 두고 선임 하사반의 전차들이 따랐다.


도하에 성공했던 보병은 1,000야드 정도 전진하다가 북한강과

한강 사이의 좁은 지역을 가로 지르는 도로 근처에서 잠시

교착되어 버렸다.


600야드 전방의 작은 고지와 철도 둑에서 적의 심한 사격을

받는 좋지 않은 상황에 노출 되었기 때문이다.


앨리 소대 전차 중 소대장이 직접 지휘하는 소대장반

전차 2량이 고지를 맡아 앞으로 돌진했다.

포사격과 기관총 사격을 연속으로 가하자 고지로부터의 공격은

중단되었다.


고지의 적이 침묵하자 전차 2량은 양수리에서 양평으로 가는

중앙선 철도 둑에 붙어서 저항하는 적들에게 포문을 돌렸다.


철로에는 다 부서진 화차 6량이 서있었다.

화차들은 공습에 전소되고 기총소사에 벌집이 되어 있어

기동불능상태였다.


중공군은 기관총 3정을 화차 밑에 거치하고 미군들에게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앨리 중위의 두 전차는 공축 기관총과 76미리 주포의
12-15발의
포탄을 날려 적 기관총 3정을 모두 격파시켰다.


화차 밑의 기관총 3정이 제거되자 보병들과 전차는 철도를 넘어

보전 협동의 전진을 600야드 정도 계속했을 때 적의 새로운

기관총 3정이 전방에 나타나서 사격을 해왔다.


앨리 중위는 그중 한 정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하고
76미리 포탄
두 발을 쐈다.


두 번째 포탄이 정확히 명중하여 적의 기관총과 사수, 조수가

공중으로  분해 되어 비산했다.

앨리 중위의 두 전차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할 때 조금 뒤에서

후속하던 2 량의 전차가 알맞은 타이밍에 도착했다.

선임하사 커티스 D. 해럴 상사가 지휘하던 2 량의 선임 하사반

전차들이었다.


선임 하사반 전차 2 량은 나머지 두정의 기관총을 찾아내서

포사격으로 침묵시켜버렸다.


소대장반 2 량의 전차와 합세한 선임 하사반 2 량의 전차가
합쳐진
4량의 전차는 30분간 공축 기관총 소사를 하며
다시 보병들과
700야드를 전진했다.


엘리 소대가 분전[奮戰]할 때 강 저쪽에 남아있던 중대 전차중

일개 소대가 단 20분 만에 도섭에 성공했다.


후속 소대가 전차의 지원이 절실했던 다른 보병 중대를
지원하기 위해서
전방으로 이동을 하는 동안 마지막
전차 소대도 도강을 완료했다.


오전 10시까지 물에 빠진 한 량을 제외한 A중대의 모든 전차가

강을 건너 보병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전진하였다.


비상 탈출 해치가 떨어져 나가 이른 아침부터 물속에
고립되어 있던 전차도
그 오후에 구난되어 수리를 마치고
강을 건너 중대에 합류하였다.

그날 오후 보병대대는 전차 중대의 헌신적인 화력지원으로
목표를 어렵지 않게 점령하게 되었다.

도하 작전은 완전 성공으로서 보병 대대장 리 중령은
작전 성공은
전차의 성실한 근접 지원에 힘입은 바가
절대적이라고 하며 브레넌 대위에게 감사를 표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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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백두산(1/4)

웹툰 모음 2010.06.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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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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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06.22 1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세한 날짜는 잘 모르지만 이 전함이 한국전쟁 당시에 부산으로 침투하려던 북괴군의 수송선을 격침시켰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해협 해전이 었던가요...

    세계대전 때의 미국이나 일본이 치뤘던 해전에 비해서는 너무나 작은 전투였지만 당시의 우리 해군으로서는 어마어마한 성과였겠지요...

    아무튼 계속해서 연재작이 나오는데로 보겠습니다...

  2. 이형권 2010.06.22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두산함에 관련한 내용이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백두산함 다시 건조해서 전시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백두산함에 대해선 기록이 많이 찾지 못하겠더군요..

  3. 연이랑 2010.06.22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두산함! 그 이름도 늠름하네요.
    역사를 잘 모르는 제겐 정말 재밌는 공부가 되는 만화예요.
    다음편도 빨리 보고 싶어요.

  4. 뽀로리 2010.06.24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원인모를 이유로 침몰하고... 민군합동 조사단이... ㅋㅋㅋ

    • 검은날 2010.11.26 15: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그걸 농담이라고 웃으라고 하고 있는겁니까?ㅡㅡ이러니까 안보개념이 결여돼있다느니 하는말이 나오지...

    • 감사합니다 2012.03.07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인이 북한어뢰임이 밝혀졌지요.

      이렇게 웃을만한 일이 아닙니다.

  5. 최중원 2011.05.21 2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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