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군사령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0.01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9)
  2. 2010.07.16 62. 다시 탈환한 서울 (7)

84. 고지 쟁탈전의 시작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10.01 08:21

  휴전협상이 진척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쌍방 모두는 휴전협상 자체를 파국에 빠뜨릴 수 있는 거대한 전면공세는 자제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휴전 자체를 부정하려 하지는 않았고 다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조성을 위한 제한적인 공격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유엔군은 공산군 측이 회담을 결렬시키려 할 때 강력한 화력과 공군력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유효적절하게 이용하여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1951년 휴전회담의 시작과 동시에 군사적인 대응 전략이나 전술은 이전과는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열하게 대지공격을 펼치는 유엔군 전투기]

  공산군에게 유엔군의 화력은 넘을 수 없는 한계였습니다.
  당시 유엔군은 임진강 하구-화천 저수지-간성을 연하는 캔사스선(Kansas Line)북방 10~20킬로미터에 와이오밍 선(Wyoming Line)으로 명명된 느슨한 방어선을 설정하여 놓고 있었는데, 이는 내심 휴전선으로 생각하던 캔사스선의 확고한 점령을 위한 전초진지(前哨陣地)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2중의 방어개념은 적이 대규모 공세를 취해올 경우에는 상당히 유효하였지만, 전력을 분산한 상태였기 때문에 종심 1~2킬로미터 내외에서 단일 고지군(高地群)을 목표로 벌어지는 제한전에서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뒤에 든든하게 설정 된 완충지대를 믿고 적이 공격해 올 때마다 제한적으로 후퇴한다는 것은 이제는 고려하기 힘든 전술이 되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제8군사령관 밴 플리트는 와이오밍선의 방어진지를 캔사스선과 동일한 강도로 축성하도록 지시하여 후퇴 없이 와이오밍 선에서 적을 격퇴하도록 조치하였는데, 그 덕분에 오늘날 휴전선이 애초 계획하였던 화천호-속초선보다 대략 10킬로미터 이상씩 북으로 북상한 현재의 위치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저돌적인 밴 플리트의 적극적인 대응전략으로 임시방어선으로 설정된 와이오밍선은 영구진지화 되면서 차후 작전은 이 일대의 고지군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공산군 측이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고의로 휴전회담을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동안 대규모 공세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시간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밴 플리트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아서 적에게 전력 정비의 여유를 주지 않고 유리한 지형을 계속 확보하기 위하여 과감한 공세를 감행하였습니다. 하지만 휴전회담장이 포함된 서부지역에서 공세를 감행할 경우 회담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고지쟁탈전의 소모전 상황을 알려주는 탄피]


  사실 휴전하였을 경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려는 고지쟁탈전은 이미 전 전선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북한군과 중공군은 이전처럼 주로 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국군의 출혈을 강요시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휴전반대 운동을 약화시키려는 부차적인 의도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국군이 담당한 지역이 지리적인 여건 상 미군지역보다 화력이 약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은 공산군에 비하여 병력에서는 여전히 열세였으나 화력과 기동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국군이 담당하던 해발 1,000미터 이상의 중동부 산악지역에서는 이런 이점이 효과적으로 발휘되기 힘들었습니다.


  공격과 방어가 반복되면서 고지쟁탈전은 쌍방에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강요하였습니다. 공격하는 병력은 아무래도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노출되고 체력소모가 심하여 상당히 불리한 형국이었지만, 물 한 모금조차 산 아래서 조달하여야 할 만큼 보급의 제한을 극심히 받는 고지를 계속하여 방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1951년 9월 펀치볼을 공격하던 미 제1해병사단에서 사상최초로 헬기를 이용하여 병력을 기동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후 헬리콥터는 지상군의 필수장비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헬리콥터는 새로운 전쟁 수단으로 급속히 부각하였습니다.]


  사실 6·25전쟁에서 이 당시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진 일련의 고지전투들에 대한 인상이 너무 오래가서 이후 오래 동안 고지확보를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작전으로 여기는 시류가 있기도 하였지만, 고지 쟁탈전과 고지위주의 병력배치는 단지 상대에게 휴전을 강요하고 유리한 위치에 서기위한 상황 하에서 적용되는 특이한 전술이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보급이 제한되어 스스로 고립될 수 있는 고지의 점령과 확보는 일반적인 전쟁양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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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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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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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커서 중동부의 산악지역에 집중된 제한적인 공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피로 얼룩진 고지쟁탈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62. 다시 탈환한 서울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16 10:04

 

  지난 2월 10월 썬더볼트 작전으로 서부전선에서 한강남단까지 전진한 이후, 바로 강 건너편에 있는 서울은 유엔군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는 서울을 조기에 탈환하는 것이 지난 패배의 악몽을 떨치는 지름길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11월 유엔군의 크리스마스공세 실패 이후 이어진 후퇴 그리고 서울의 포기를 한마디로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이러한 악몽을 서울을 빨리 재탈환함으로써 하루 빨리 떨쳐 버리고자 했습니다.


[서울 탈환에 대한 맥아더와 리지웨이(左)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제8군사령관 리지웨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정치적 효과보다 군사적인 목표에 충실하여야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적을 격멸하고 밀어붙이면 서울은 저절로 탈환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서울 측방의 확보 없이 무턱대고 도심만 차지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바른 선택이 아니었고, 이미 서울 도심은 지난 1.4후퇴 당시에 완전 소개된 데다가 공습과 포격으로 폐허만 남아있는 텅 빈 상태였기 때문에 군사전략상 반드시 확보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맥아더는 여전히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지난번 북진의 실패로 말미암아 입김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던 성태여서 결국 리지웨이는 소신 것 작전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중부전선에서 격전이 펼쳐졌지만 서부전선은 한강을 경계로 하여 대치상태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앞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에 아군이 도하할 의도를 하지 않아 교전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기회를 엿보던 결과 리지웨이의 예측대로 중부전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이 홍천을 공격 중이던 3월 12일부터 서울의 중공군이 서울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항공정찰결과 서울에 주둔하던 대규모의 중공군 부대들이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관측되었고 또한 이날 한강을 도하한 미 제3사단의 정찰대도 같은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3월 14일, 국군 제1사단에서 파견된 5개의 정찰대가 한강을 도하하여 서울 시가지를 후속 정찰하였으나 적 부대를 발견하지 못 했고 이때 1개 정찰대가 중앙청으로 진출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내거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중부전선이 심각하게 무너지는 와중에 폐허가 된 텅 빈 서울을 중공군이 잡고 있을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습니다. 한 달여의 지루한 대치와 맥아더의 닦달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인내하며 기회를 엿보던 리지웨이는 드디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로 진입하여 적정을 살피는 국군 제1사단 정찰대]


  3월 15일, 리지웨이는 미 제1군단장에게 강을 건너 서울 북쪽의 주요 고지군을 점령하도록 명령했습니다. 3월 15일 05시 30분에 수륙양용장갑차로 무장된 1개 대대가 마포방면으로 도하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 탈환임무를 부여받은 국군 제1사단 15연대는 16일 아침 도하를 완료하여 서울전역을 장악하였습니다. 치열한 시가전 끝에 탈환한 지난 9. 28 서울수복작전 당시와 달리 중공군의 반격이나 시가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탈환한 서울은 지난 1년 동안 그 동안 4번이나 주인이 바뀌어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있었습니다.


  1.4후퇴 전 150만 서울시민중 부득이한 사유로 피난을 가지 않고 남아있는 시민은 20만이었는데, 이들에게 제공해줄 식량마저도 부족한 실정이었을 만큼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별도의 수복행사를 열지 않고 부산에 그대로 남아있었고 서울의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시민들에게 복귀를 자제해 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비록 서울을 탈환함으로써 전쟁의 분위기를 일신하고, 한국 국민의 사기를 고양시킬 수 있었지만 당시의 전황으로 볼 때 또 다시 서울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 및 시민의 귀환은 상당기간 지연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한강을 건너 마포에 진입한 국군 제1사단]


  이것은 중공군의 공세가 재개되고 전략적으로 적을 막아내기 힘들다면 또 다시 서울을 내주고 한강 이남으로 물러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런 입장은 서울을 선선히 내주고 북으로 물러간 중공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덧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서울은 이제 단지 상징과 명분만 있는 곳이지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악착같이 사수항려야 할 장소가 더 이상 아니었습니다. 전쟁은 동아시아에서 3번째로 컸던 도시를 이처럼 유령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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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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