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사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30 75. 국군 제3군단 최후의 날 (8)
  2. 2010.07.21 63. 다시 38선으로 (3)
  3. 2010.03.15 25. 그해 9월의 마지막 혈전 (64)

75. 국군 제3군단 최후의 날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8.30 08:20

 

  중요한 목지점인 오마치고개를 중공군이 장악하였다는 사실을 아군이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습니다. 미 제10군단 예하 인 국군 제7사단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중공군이 국군 제3군단 후방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국군 제9사단은 만일을 대비하여 사단이 보유한 차량과 중장비 200여대를 창촌 일대로 철수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오마치고개의 피탈이 파악되었습니다. 이들 철수 차량제대가 후방의 창촌으로 가려면 오마치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이동 중에 중공군으로부터 급습을 당하였고 이를 통해 고개가 차단당한 사실을 인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인근 국군 제3사단과 군단본부에도 즉시 보고되었습니다.


[중공군의 오마치고개 점령 사실은 국군 붕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군단본부는 이를 잘못된 보고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설령 적이 오마치고개를 장악했다하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침투부대나 공비들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직 그곳을 관할하는 미 제10군단으로부터 어떠한 사실도 통보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떻게 반나절 만에 중공군이 전선을 가르고 30킬로미터 후방까지 침투 할 수 있었겠냐하는 막연한 생각도 그런 오판을 가져왔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단본부가 이처럼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막상 중공군은 오마치고개는 물론 훨씬 남쪽 후방인 침교에서도 두 번째 포위망을 구축하던 중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퇴로가 엄중히 차단당한 국군 제3, 9사단이 오마치고개를 거쳐 후방으로 후퇴가 5월 17일 오후에는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설령 오마치고개를 넘었다하더라도 후방인 침교마저 적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여서 오마치고개의 중요성은 이미 반감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집어볼 점은 오마치고개가 아니라 바로 국군 제3군단의 항전의지였습니다.


  국군 제3군단과 예하 사단들은 단지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접하자마자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후퇴를 결심하였습니다. 물론 퇴로의 차단은 포위를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패배와 몰살을 뜻하는 단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마치고개의 피탈 소식을 전해들은 국군 제3군단은 5월 17일 오전 중에 이미 항전을 포기하고 철수를 목적으로 대책 없이 현리일대로 전방부대들이 집결하는데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도 공산군은 아군을 부분적으로 포위만 하였지 압박을 가하던 상태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먼저 국군 제3군단은 후퇴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국군 제7사단의 붕괴로 말미암아 먼저 뚫려 버린 미 제10군단 지역은 미 제2사단의 선전으로 더 이상 상태가 악화되지 않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국군의 무능이 바로 펑떠화이가 이번 공세를 국군지역으로 하게 만든 이유였고 철저하게 불행히도 그런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흘러갔습니다.


[능선을 기어오르며 인해전술을 펼치는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


  국군 제3, 9사단이 고심 끝에 시도한 작전은 결사항전이 아니라 한심하게도 오마치고개 돌파작전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오로지 후퇴를 염두에 두었던 작전이었습니다. 양 사단에서 각 1개 연대씩 차출하여 5월 17일 21시, 오마치고개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한마디로 앞에서 밀려오는 적은 그대로 놔두고 퇴로를 뚫기 위해 뒤로 돌아 공격을 가하는 치욕적인 형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그 결과 부대에 대한 통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부대들은 북한군의 무능으로 말미암아 유일하게 개방되어 있던 방대산을 무질서하게 넘어 철수, 아니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공용화기는 물론 개인 화기까지 버린 병사도 있었으며, 주요 간부들은 계급장마저 떼어버리고 철수하는 그야말로 오합지졸들의 나 살기 경쟁으로 작전상 철수가 아닌 도망이었습니다. 적에게 패해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퇴로가 차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싸울 생각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줄행랑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국군 제3군단은 통제력이 완전히 상실되어 부대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방대산의 철수로가 얼마나 혼잡하였던지 그냥 서 있으면 떠밀려서 앞으로 나아 갈 정도였다고 전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대열 속에는 말단의 사병은 물론 국군 제3사단장 김종오준장, 제9사단장 최석(崔錫)준장, 군단 참모장 심언봉(沈彦俸)준장등 3명의 장성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군의 이러한 비참한 도주는 창촌-광원리-하진부리까지 70킬로미터를 내려와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습니다. 5월 27일까지 70퍼센트 정도의 병력과 30퍼센트 정도의 장비가 간신히 수습될 수 있었는데, 어쩌면 이 정도의 병력이 수습된 것만 해도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우측으로 남하한 북한군 3개 군단이 정상적으로 진출하여, 최초 계획대로 3중 포위망을 완성하였더라면, 방대산 및 계방산 일대에서 무방비 상태에서 무참한 살육전이 전개되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기 때문입니다.


[5월 27일 전투상황도]


  하지만 이러한 예측도 엄밀히 말하면 사상 최대 패전에 대한 핑계일 뿐입니다. 무기를 버리고 도망을 다녔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라는 가정이 나오는 것이었지, 결코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국군 제3군단을 공산군이 양익에서 완전히 포위하였어도 공중으로 보급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결사항전 의지만 있었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저항은 애초부터 생각도 못했고 도망만 다니다 국군은 역사상 최악의 패전을 당하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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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름과자 2010.08.31 12: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때 군단장 유제흥장군이 먼저 비행기 타고 달아나서 그게 부대내에 악영향을 끼쳐서 순식간에 무너진걸로 압니다

  2. 2010.09.03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걸 보고 가마귀 날자 배 떨러진다고 하죠..
    물론 유장군의 책임은 크지만.....

  3. Kim 2010.09.03 1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나 당시 군단장이던 유재흥장군은 맡는 보직마다 참패를 겪었지요. 개전 초 7사단의 궤멸적 타격, 2군단장 재임시 덕천전투 패배 3군단장 재임시 3군단의 현리전투 패배. 이때 밴플리트 장군과의 대면에서 대단한 명언도 남겼는데 뭐 어쨌든 전쟁에서 지휘부의 혼란이 예하병력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좋은 전례라 하겠습니다.

  4. Computer Network 2012.02.10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난 이런 행사를 통해 6.25전쟁이 어떻게 전쟁이 났는지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봉사를 많이하고 돈을 아껴써야되는 것도 깨달게되었다
    난 이런 캠페인이 더욱더 개발되어 더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5. expedia deals with regard to airfare 2012.05.21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러한 AA 대단한 위해 고마워 검토와 함께 게시 .. 전 완전히 astounded! 접근의 유형과 비슷한 제품을 잡아.

  6. expedia leasure activities 2012.05.21 16: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그들이 지역 사회와 연결된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 대한 지식을 곱하면하는 진보적 계획이다. 나는 국가의 추가 금액을 동일한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7. 피알앤애드 2014.06.25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포스팅 관련하여 사진자료가 필요해서 퍼다 씁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상업적인 용도나 변경은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63. 다시 38선으로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7.21 08:47

 

  서울의 군사적 의의가 반감되었다 하더라도 탈환한 이상 또다시 적에게 순순히 내줄 수는 없었습니다. 만일 서울을 한 번 더 적에게 내어준다면 그때는 전선이 한강일대에서 완전히 고착화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38선 일대인 임진강을 연하는 선까지는 전선을 밀어붙일 필요성이 절실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공세를 생각할 수 없도록 적에게 심대한 피해를 강요하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반복적으로 공세를 수행하는 동안 중공군과 북한군은 아군이 포위망을 형성하기 이전에 철수를 반복함으로써 주력을 격멸하는데 만족할 만한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을 후퇴시키고는 있었지만 격멸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의정부 북방에 북한군 제1군단과 중공군 제26군이 몰려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는데, 이들 중 의정부 서북쪽의 북한군 제1군단은 아군이 밀어붙이면 임진강을 건너 북쪽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포진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아군이 문산 북방의 교량만을 먼저 차단할 수 있다면 이들을 일거에 포위하여 섬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리지웨이는 대구에 위치하고 있는 제187공수연대를 임진강 남쪽에 공수시켜 퇴로를 차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제187공수연대는 3월 23일 07시에 대구비행장을 이륙하여 문산 북동쪽에 성공적으로 낙하하는데 성공하였고 북한군 136명 사살과 149명을 포로로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포로 들을 신문한 결과, 중공군과 북한군의 주력은 공수연대의 투입 바로 직전에 임진강북쪽으로 철수하였음이 밝혀지면서 적의 주력을 차단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이처럼 의정부 북쪽이 텅 비게 되자 다음날 국군 제1사단이 문산-법원리까지 진출하였고 이어서 미 제3사단과 미 제25사단이 임진강까지 북상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동해안 지역에서 국군 수도사단과 국군 제9사단으로 편성된 국군 제1군단이 3월 25일부터 양양을 향하여 공세를 개시하였습니다. 북한군 제69여단이 험준한 산악지역을 이용하여 강력히 저항하였으나, 동해상에 배치된 미 함정의 지원 함포사격에 의해 전의를 잃고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3월 27일 수도사단이 남대천을 도하하여 양양을 점령함으로써 한강하구 서쪽을 제외한 38선 일대에서 전선은 다시 형성되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군은 다시 38선에 섰고 전쟁이전의 상태로 회귀하였습니다.]


  이렇게 아군이 다시 38선 일대에 정렬하자 미국정부는 38선의 재 돌파에 관한 모든 것을 야전군사령관인 리지웨이 장군에게 일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1950년 10월에 있었던 북진과는 개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미국의 의도는 38선 이북을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 상태에서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제한적인 돌파만 허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지리적으로 방어에 유리한 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으로 이어지는 선에 경고한 방어지대를 설치할 것을 결심하였고 이를 캔사스선(Kansas Line)으로 명명했습니다. 이 방어선은 총 184킬로미터에 이르렀지만 서부전선에서는 22킬로미터는 한강하구를, 중부전선은 16킬로미터에 걸친 화천저수지를 방어에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리지웨이는 4월 1일부터 현 전선을 38선에서 캔사스선까지 밀어 붙이기로 하고 이를 요철작전(Rugged Operation)으로 명명하였습니다. 아직까지 중공군과 북한군은 전열을 재정비한 상태가 아니어서 아군은 38도선을 기준으로 서부에서는 3.2~9.6킬로미터, 동부에서는 16킬로미터까지 손쉽게 북상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 애초 캔사스선은 38선 북방에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연결하여 임의적으로 설정한 방어선이었는데, 아마도 미국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때부터 대략 이 곳을 기준으로 미래의 군사분계선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아군이 캔사스선에 이르렀을 때, 중공군의 대부대가 평강-철원-김화를 연결하는 삼각지대(이른바 철의 삼각지대 Iron Triangle)에 집결하여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원산과 서울의 중간지역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여서 중공군의 차후 공세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단속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제8군은 캔사스선 10~20킬로미터 북방에 와이오밍선(Wyoming Ling)을 설정하고, 이를 확보하기 위한 작전에 재차 돌입하였습니다. 4월 11일 개시된 작전의 명칭은 작전명 불굴(Dauntless Operation)이었습니다. 작전명답게 제8군은 쉬지 않고 진격을 재개하여  전선을 한 번 더 북으로 걷어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최초 공세는 비교적 용이하게 진행되었으나, 4월 22일부터는 도처에서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 전진이 멈추었습니다.


[중공군은 대응이 거세어지면서 반격이 예상되었습니다. ]


  리지웨이는 이것이 적이 새로운 대공세 준비를 완료하였다는 신호로 해석하였습니다. 지난 4차 공세이후 두 달이 경과하는 동안 중공군의 특이 동향이 없었는데, 그것은 중공군이 공세에 나설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리지웨이는 각 부대에“적의 공세를 중단하고 적의 역공에 대비하여 방어로 전환할 것을 명령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은 철의 삼각지를 눈앞에 두고 공격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초미의 관심사는 중공군이 언제 어디로 공격해 올 것인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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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그해 9월의 마지막 혈전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3.15 11:03



  폭염 속에 계속된 북한군의 8월공세가 아군의 선방으로 실패하였지만 그렇다고 북한군이 부산 함락에 대한 희망까지 완전히 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8월 공세가 서서히 둔화될 시점부터 오히려 북한군은 기존의 제8, 13사단 외에도 제7, 9, 10사단 등 3개 사단을 추가로 전선에 투입했는데 이것은 당시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이었을 만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9월공세에 쏟아 부었습니다.



[9월이 되자 북한군의 새로운 공세가 개시되었습니다]


  북한군은 8월 31일 마산-창녕일대의 서남부에서부터 공세를 재개하여 9월 2일에는 왜관-포항에 이르는 동북부전선에서도 공세를 시작하였는데, 서남부 지역을 먼저 공격한 이유는 유엔군의 시선을 그쪽으로 끌리게 하여 제9군 예비대의 이동을 촉진시킨 후, 동북부 지역으로 돌파구를 열려고 하던 전형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였습니다. 비록 8월 중순을 기점으로 전력균형은 서서히 국군과 유엔군의 우세로 바뀌어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전선의 주도권은 북한군이 잡고 있어서 9월공세의 초전 분위기는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세 첫날, 마산 정면에서 공격을 개시한 북한군 제6, 7사단은 미 제25사단을 함안까지 밀어붙였고, 영산 및 창녕 일대를 공격한 북한군 제2, 4, 9사단은 미 제2사단이 담당한 방어선의 가운데를 돌파하여 미 제2사단을 창녕과 영산 지역으로 양분시켜 버렸습니다. 그러자 제8군사령부는 예비대를 영산에 투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북한군이 원하던 바였습니다. 아군 예비대가 서남부로 움직이자 9월 2일부터 북한군 제2군단이 왜관-다부동 지역과 신령-영천지역, 안강-포항 지역에서 맹렬한 공격을 감행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마산지역에서 노획된 북한군 장비]


  이러한 북한군의 9월 공세는 과연 미 제8군이 부산을 지킬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였고, 그 기세 또한 격렬하여 지난 8월 내내 시체로 산을 쌓았던 다부동, 영천은 또 다시 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국군 제1사단을 대신하여 다부동에 투입된 미 제1기병사단은 북한군 3개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자마자 불과 3일 만에 다부동을 북한군에게 내어 주고, 4킬로미터 후방으로 철수하고 말았고 9월 5일이 되었을 때 아군의 엄청난 손실에 놀란 제8군사령부는 ‘데이비드슨 선’으로 철수를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회심의 반전 카드인 인천상륙작전을 위해서라도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야 했고 누구의 인내심이 더 큰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9월 12일 북한군의 공세능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미 제1기병사단이 대구 10킬로미터 전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돈좌시켰습니다.


  다부동 돌파와 더불어 북한군 제8, 12, 15사단이 신령, 안강, 영천지역으로 공격을 개시하면서 이곳의 위기도 함께 고조되어 갔습니다. 특히 북한군 제15사단은 국군 제1군단과 제2군단의 열려진 간격으로 저항 없이 전선 후방으로 침투하여 영천을 점령하면서 중․동부 전선이 순식간 양단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국군 제2군단장 유재흥은 제1, 6사단에서 각 1개 연대 씩 차출하여 영천에 투입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북한군 제15사단은 경주 방향으로 진출했는데 이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괴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북한군은 낙동강을 넘지 못하였고 대한민국은 살아났습니다.]


  제15사단을 측면에서 지원할 북한군 제8사단이 아군에게 격퇴당하며 움직이지 못하자 어느새 홀로 떨어진 북한군 제15사단이 국군에 의해 포위되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이었습니다. 9월 8일 국군은 영천을 탈환함과 동시에 9월 10일, 북한군 제15사단을 완전 포위섬멸하면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막아내었는데 이로써 북한군 제15사단은 동락리 전투, 화령장 전투에 이어 영천 전투로 세 번째의 참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보았습니다. 결국 여름의 마지막에 시작된 북한군의 9월 공세는 영천 전투를 마지막으로 서서히 막을 내렸고 대한민국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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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http://www.superman-stamina.net 2013.05.18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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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Social Bookmark 2013.05.27 0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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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try Minecraft free 2013.06.05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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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http://theptnet.com 2013.06.25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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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see this 2013.07.20 2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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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filing for bankruptcy 2013.07.31 0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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