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mm'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4.06 1사단의 운산 탈출과 미 90mm 고사포 (10)
  2. 2010.03.18 6‧25 전쟁의 수호신 M26 '퍼싱' 중전차 (55)

1사단의 운산 탈출과 미 90mm 고사포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0.04.06 07:11

  세계 포병 전투사에서 가장 풍성한 이야기꺼리를 남겼고, 그래서 포병 밀리터리 매니아의 최고 관심을 받고 있고, 또 그래서 그 프라 모델이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포병 포는 독일 군이 사용했었던 88mm 포이다.




[88mm 포를 자세히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이 포는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태어나기는 고사포[지금은 대공포라는 말이 더 일반화 되었지만 이 대구경 포가 활약하던 시절에는 고사포로 통했다.]로 태어났다. 개발의 주체도 육군이 아닌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였다. 1928년, 88mm 포는 지금 세계 전차포의 주류를 이루는 120mm포를 개발한 독일 라인메탈사에 의해서 세상에 처음 선을 보였다.



[일 라인메탈사의 88mm 포, 대량으로 생산되어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에서 전차 못지 않은 큰 활약을 했다.]


  그러나 이 88미리 포를 세계 역사의 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것은
독일 육군이었고 그 신화적 명성은 적기 격추가 아니라 적 전차의 격파로 얻어진 것이다. 이 88미리 고사포는 스페인 내전 시부터 히틀러가 파병한 콘도르 레지온 부대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지상 목표 포격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9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부터였다. 이 전격전에서 88mm 포의 지상 목표 타격의 효율성에 눈뜬 사람은 프랑스 남부를 휩쓴 기갑사단을 지휘했던 에르빈 롬멜 장군이었다. 88미리 포의 위명(威名)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은 북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막을 무대로 펼쳐진 전투에서이다.



[독일 88mm 포.1분간 20-24발의 속사가 가능하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사령관 롬멜은 부족했던 독일 전차의 전력을
이 88mm 포를 최대로 활용해서 메꾸었다. 롬멜은 키가 커서 노출이 잘 되는 88mm를 땅을 파고 묻어 포신을 1m도 정도 높이로만 노출 시키고  이것마저도 천막천으로 덮어서 북아프리카에 흔한 모래 언덕으로 위장해서 사용했다. 그는 리비아 전투에서 영국 전차들을 유인해서 단 하루만에 유인에 걸린  영 전차 300대중에서 230대를 대파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일군은 리비아와 이집트 전선의 여러 곳에서 영국 전차대를 교
묘히 유인해서 이 매복한 88mm포로 전멸 시키자 그 공포의 충격이 전 연합군에게 전파되었었다. 장사정의 사거리에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독일88mm에 비해서 구경이 40-60mm정도의 초기 영국 전차들은 상대가 되지가 못했다. 전차포 사거리 포 밖에서 광선처럼 날아온 거대 폭탄을 맞고 마치 도끼에 찍힌 정어리 통조림처럼 산산조각이 났었다.




88mm 포의 귀재'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88mm포가 지상 목표 타격에 큰 활약을 한것은 88mm가 가진 또 다른 특별한 기능때문이기도 했다.
88mm가 육공 양면에서 대활약 할 수있었던 것은 대공포답지 않게 포의 고저각 운신이 엄청나게 컸었다. 즉 대공사격을 위해서 포신을 90도 가까운 고각으로 올릴 수도 있지만 고지 잠복 진지에서 포신을 수평 아래로 내려 산 아래 접근하는 전차를 타격할 수 있는 마이너스 10도 각도의 저각 사격도 가능했다.


  전쟁 초기에는 타국의 고사포들은 이런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었기에
88mm 포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88mm 포는 지형상 전투 거리가 짧은 유럽 대륙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지만 광활한 소련 전선에서는 대량의 적 전차 격파로 다시 대 활약을 했다. 물론 88mm가 지상목표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본연의 대공기능에도 충실했다.


  전쟁 후기 독일 영공을 밤낮없이 휘젓고 다닌 영미군의 대형 폭격기들은 포함한 많은 항공기들이 이 88mm 포가 쏘아 올린 무수한 탄들의 탄막에 걸려 격추되었었다.




[독일 88mm와 120mm 포가 터뜨리는 치열한 대공 탄막을 결사적으로 통과하는 미 B-17 폭격기대]


  미군에도 88mm 포와 비슷한 대공포[고사포]가 있었다.
90mm M2 고사포다. 미국이 제공권을 확실히 틀어쥐지 못했던 태평양 전쟁초기. 이 90mm 고사포[구형 M1]는 미드웨이나 과달카날등에서 공습해오는 일본군 폭격기나 전투기들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었다.




[1944년. 오키나와, 대공 경계 중의 90mm 고사포]


  1943년도에 출현한 개량형 M 2 형은 88mm처럼 수평아래 저각 사격이 가능했다.덕택에 유명한 발지전투에서 직접 사격으로 독일 타이거 전차들을  격파하는 롬멜식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트기의 시대가 오자 대구경 고사포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미 90mm 포는 6·25전쟁에 참전해서지막 은퇴 무대를 장식했다. 6·25전쟁중 한국에 전개된 미군의 90mm 고사포는 독일의 88mm 포와 같이 대공 임무가 아니라 지상 임무에 동원되어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미 M-2 고사포의 지상 목표 포격 준비]


  90mm 고사포는 윌리암 헤닉 대령이 지휘하는 제 10 고사포 포병단
그룹의 한 포대로서 한국에 도착해서 있을 지도 모를 북한 공군의 부산 폭격에 대비해서 잠시 부산 영공 방위에 투입되었었다. [원래의 고사포병단에 다른 포병대대를 혼성했기에 고사포 포병단 그룹이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포병단 그룹장 윌리암 헤닉 대령은 독일 이민의 후손으로서 미 육사 졸업생이다. 한국에 오기 전 해안 포대장등 다양한 포병 지휘관의 이력을 쌓은 베테랑이었다. 같이 북진하면서 손발을 맞춰온 백선엽 장군의 평에 의하면 아주 겸손하고 노련한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제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구성이 독특하다.


제 78 고사포 대대  [90mm 고사포 18문]

제 9야포 대대 [155mm 포 18문]

제 2 중박격포 대대[4.2인치 박격포 18문]


  1950년 한국에 도착했던 제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미 1군단의 군단 포병으로서 부산 방공 임무를 마치고 그해 9월 다부동 전투에서 선방했던 한국군  1 사단의 지원 업무를 부여 받았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헤닉 대령은 ”내 평생 국군 1사단과 합동 작전을 할 때 최고로 잘 싸웠었다“고 회고했다고 백 선엽 장군의 자서전은 밝히고 있다. 이 미국의 고사포가 국군 1사단에 배속되어 북진하며 싸웠던 기록이 백선엽 대장의‘군과  나’라는 자서전에서 잘 소개되어 있다.



  [백 선엽 장군의 회고록 -

  장군의 사진은 휴전회담 대표시 사진]

  10 고사포 포병 그룹은 유엔군이 인천 상륙 직후 백선엽 장군의 1 사단이  낙동강 전선에서 적의 후방으로 돌입하여 보급선을 끊어 궁극적으로 적 3개 사단의 적을 붕괴시키는 공격 작전 때부터 막강한 화력 지원을 했었다. 서울 수복 후 다시 옛 주둔지 임진강 전선으로 복귀한 1사단은 이 10 고사포 포병 그룹과 함께 북진의 길에 올랐다. 평양 선두 탈환을 목표로 쾌속 진군하는 1 사단에 이 고사포 포병 그룹이 동행하며 지원을 했다. 북한군은 평양의 남방 15 킬로미터에 있는 지동리에  밀집된 토치카로 종심(縱深) 깊은 주 저항거점을 만들고 대기 하고 있있다. 방어선의 1사단이 12연대를 선두로 하여 야습할 때 10 고사포 포병 부대는 대규모 화력 지원으로 이 북한 방어선을 돌파하는데 일조를 하게 하였다.


  평양을 탈환하고 다시 북진 길에 올라 통일이 바로 눈앞에 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유엔군은 중공군의 대거 개입이라는 큰 장벽을 만났다. 백선엽 장군은 제 2군단장으로 전보 되었으나 중공군의 매복 공격으로 전선이 위급하자 다시 1사단장직으로 되돌아갔다.그 때 1사단은 평북 운산에서 며칠째 중공군과 치고받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1사단 선두의 제 15연대는 이미 중공군과의 힘 부치는 전투로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1950년 10월 31일, 다시 사단장이 된 백 선엽 장군이 운산의 1 사단을 찾아 갈 때 운산 주변 산악은 중공군들이 미 공습을 방해하느라 여기 저기 피운 산불로 연기가 자욱했었다.연기가 뒤덮은 골짜기와 산등성마다 우글거리는 중공군 병사들을 볼 수 있었고 살기(殺氣)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백 장군은 먼저 초등학교에 자리 잡고 있는 미 포병 사령부를 찾아가서 헤닉 대령부터 만났다.

  헤닉 대령은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 헤닉 대령은 정색을 하며 경고했다. "적이 계속 아군의 틈새로 파고 들어와서 포위망을 조이고 있습니다. 오늘을 견디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태가 매우 위급합니다." 아직 사태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백 선엽 장군은 "왜 그리 투지가 없습니까?" 하며 못마땅하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나의 정직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오늘 중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한국군 1 사단과 우리 미군 지원 부대는 전멸 할 것입니다."  즉, 그날  밤 안으로 운산 아군을 단단히 묶어 버릴 중공군의 포위망이 완성 된다는 경고였다.


  노련한 헤닉 대령의 진지한 경고에 그제야 충격을 받은 백 장군은 1사단 연대장들을 만나보고 상황이 엄중함을 실감했다. 그는 즉시 국군 1사단이 배속되었던 미 1군단 사령관 밀번 장군을 면담하고 의견 상신을 하고 야간 철수를 허락받았다.




[국군 1사단장 백선엽 장군과 미 1 군단장 밀번 장군]


  그날 밤 후방 영변의 1사단 사령부에서 백 선엽 장군은 불안속에
1사단의 철수가 잘 진행되기만을 기도했다. 단지 북쪽 1 사단 쪽에서 밤새도록 들려오는 포성을 들으며 철수 작전이 중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다소 안심을 했을 따름이다.


  한편 미 1군단 사령부에서 철수 명령을 받은 1사단은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밤을 도와 전 사단이 철수를 개시하였다. 헤닉 대령의 고사포 포병단 그룹은 1만 5천발의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백 선엽 사단장이 철수를 건의하러 가면서 부탁했던대로 적절한 사격 계획을 세워 1사단이 철수 작전을 개시하기 전부터 주변 산악에서 칼을 갈고 있던 중공군들을 이 잡듯한 지역사격으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6.25 전쟁의 미 90mm 포 사격]

  헤닉 대령은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온 밤을 지새며 포사격을 직접 지휘했다. 표적 선정과 각 포대의 사격까지 직접 현장을 뛰어 다니며 격려하고 지도했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 표적의 크기와 셩격에 따라 보유했던 90mm 고사포와 155mm, 그리고 4.2 박격포의 포탄들의 불줄기를 표적에 들씌웠다. 90mm는 고사포는 표적에 따라 융통성있게 조준경으로 포착한 적군을 직사로 포격하거나 일반 곡사포와 같이 곡사를 해서 중공군에게 타격을 주었다. 일반 곡사포와 달리 째지는 듯이 날카롭게 울리는 90mm 고사포의 포성은 중공군에게 상당한 공포심을 주었을 것이다.


  한국군 1사단에게는 헤닉 대령의 고사포 포병단 그룹뿐만 아니라 미 6전차대대의 대대장 그루던 중령이 지휘하는 50여대의 최신형 M46 전차까지 있었다. 엄청난 포병의 지원과 미 전차대의 엄호가 국군 1사단의 철수를 도왔다. 중공군은 그날 밤 한국군 1 사단도 포위하고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가 상상을 초월한 대 포격에 단념하고 불벼락 속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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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12월초, 송시륜이 지휘하는 중공군 9병단은
장진호 포위망을 뚫고 흥남으로 철수한 미 해병 1사단
섬멸에 미련을 못 버리고 함흥평야까지 쫓아 왔었다.

미군은 항구를 떠나면서 
남은 포탄을 모두 소진시키기 위해
주야를 가리지 않고 
여분의 포탄을 모두 뒤 쫓아온
중공군 측에 퍼부었다.

이 어마어마한 포격에 간 떨어지게 놀란 송 시륜의 중공군은
미 해병이 증원 군을 받아서 반격하는 줄 오해하고
추격을
중단한채 허겁지겁 대피했었던 전사가 이날 밤 불벼락을 맞은 중공군의
행동을 추측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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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밤  미군이 무자비한 포격으로 소비했던 포탄은 무려
1만 3천발이나 되었다.




[6.25전쟁에서 적진을 타격하는 90mm 고사포]

  헤닉 대령은 1사단의 철수가 다 완료된 후에야 포병들을 철수시켰고 마지막으로 포병 사령부도 철수시켰다. [미측 기록은 철수가 이틀간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있다.]어마어마한 화력의 지원 아래 국군 1사단의 3개 연대는 무사히 죽음의 골짜기를 벗어나 운산 10킬로 후방에 있는 입석-영변으로 모두 안전하게 철수 할 수 있었다. 포병 화력의 덕을 입어 철수하였던 1사단은 운이 좋았다. 며칠전 바로 옆 산줄기 넘어 1사단 우익에서 중공군의 잠복 기습에 크게 패하고 철수했던 한국군 2군단[6,7,8사단]이 비워 둔 공간을 채우려 진격해 들어갔던 미 1기병사단의 8연대는 중공군의 포위망에 걸려 섬멸적 타격을 입었다.


  이 연대에도 1사단과 같은 신속한 철수 명령이 내렸지만 집중적인 10고사포 포병 그룹의 사격에 국군 1 사단에 손을 못 대게 된 중공군이 방향을 바꾸어 전력을 미 연대 공격에 집중했기 때문에 포위망을 탈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최선봉의 3대대는 겹겹으로 포위당해 1기병 단장 게이 소장이 눈물을 머금고 구원을 포기했던 비운의 전멸 대대가 되었다. 900명 대대원중 700명의 대대원이 전사했거나 실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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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대 실종자 상당수가 포로가 되었다.중공군은
대다수가 부상자였던
미군 포로들을 북한군에게 넘겨주었고
북한군은 수백 명의 이들 포로들을 강변의 모래 사장에
끌고가 모두
학살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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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련한 헤닉 대령이 불안한 전세를 읽고
철수를 강력 건의 한 것이 전쟁 발발 초기 임진강 전선에서 사수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시간을 끌다가 1사단이 붕괴당한 쓰라린 경험을 했던 백 선엽 장군의 신속한 결단을 하게 했고 고사 포병단 그룹의 이은 활약이 1사단을 구조해 냈던 것이다. 8군 휘하에서 한국군 사단들 중에 별 피해 없이 건제를 유지하고 탈출했던 사단은 1 사단이 유일하다. 이 공로로 헤닉 대령은 미 정부로부터 은성 무공 훈장을 수여받고 나중에 장군으로 진급하여 근무하다가 은퇴했다.



[전쟁기념관에 숨어있듯 조용히 전시 된 M-2 고사포]

 

  고사포 포병 여단은 전선 교착후 1사단과 작별하고 중부전선에 배치되어 높은 고각 사격이 가능했던 90mm 고사포는 보통의 곡사화기들이 다루기 힘든 높은 고지의 적을 포를 높이 올려 쏘는 직사 사격이나 곡사 사격으로 강타하며 보병사단을 지원했다. M2 고사포는 6·25전쟁 뒤 국군에게 제공되기도 했지만 현역에서 은퇴했다. 유도탄이 도래한 신 시대는 그런 대형 대공 무기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다.

  6.25전쟁에서 미 90mm 고사포의 지상 목표 포격 실적을 
독일 88mm 고사포에 비교해보면 그렇게 화려하거나 거창하지는 않다. 그러나 90mm 고사포는 한국 제일의 정예 사단을 적의 포위에서 구출해낸 공적을 세우고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의 마지막 무대를 알차게 장식했다고 하겠다.



[전쟁 기념관의 M 2 고사포. 한국 수호의 한 공신인데 자기를 몰라보는 관람객들의 무심한 눈길을 서운하게 생각하는 듯이 보인다.]


  이 포는 서울 용산 전쟁 기념관에 가보면 볼 수가 있다.
별다른 설명도 없어 아무런 특징 없는 무기로 여긴 관람객들이 지나쳐 버리곤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국군 1사단을 중공군이 만든 죽음의 함정에서 구출했다는 이 고사포가 가진 역사의 향기를 맡아 보시기를 바란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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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mi5 2010.04.06 0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전쟁이 난다면 어찌될까 하고 생각해보네요..
    갑자기 끔찍해지네요..
    절대 그런 일 없어야되겠죠..^^

  2. 꿈꾸는 세상살이 2010.04.07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시에 작전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런 작전을 원할하게 해주는 것은 장비와 물자다.
    우리는 자주국방을 말로만 외치지 말고 현대식 최신 장비를 갖추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3. 배상원 2010.04.08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기념관을 갈때마다 전시된 포들을 무심하게 지나쳣는데 다음엔 유심히 보아야 겠네요 ㅎㅎ

  4. 독립군토벌대장 2010.10.29 1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선엽이 개새기 목을 잘라 버리고 가족을 전체 매장시켜 버려 그 치욕을 너희 피로써 갚을 것이다

  5. 독립군토벌대장 2010.10.29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드시 갚는다 백선엽 백인엽이 북한에서 일제앞잡이 처단에 쫒겨 남한으로 내려와 이승만이의 반공주의에 되살아나 예전 독립군 토벌의 자랑스러운 경력은 내세우지 않은 채 개한미국의 장군으로 33의 나이에 합참의장이 되었다지? 역시 사람은 시대를 잘 만나고 눈치가 빨라야 하는구나 하지만 당신 가족과 당신의 목 그리고 당신이 죽고 난 후의 유골도 반드시 찢고 갈아 역사의 치욕을 반드시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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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수호신 M26 '퍼싱' 중전차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3.18 09:25

 


  개전 초 북한군의 주력전차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950년 8월 5일, 북한군은 반드시 부산까지 진격할 목적으로 8월 공세를 감행합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군 및 미군은 낙동강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 


  8월 17일, 공세 개시 12일이 경과한 시점에서 진격 중이던 북한군의 T-34/85 3대는 2대의 거대 전차와 마주치게 됩니다. 

  북한군 전차병들은 개전 이후 최초로 한국으로 투입된 미군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에게 일방적인 K.O 승을 거두었던 전례가 있어 이 전차 역시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과감한 공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개전 이후 미군이 급히 한국으로 투입한 최초의 전차인 M24 "채피" 경전차는 공격력, 방어력에서 T-34/85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북한 전차를 무찌른 퍼싱, 북진의 선봉에 서다!



   M24 "채피"가 T-34/85에게 맥없이 무너져 내리자 미군은 급히 M26 "퍼싱" 중전차를 한반도로 투입합니다. 강력한 90mm M3 전차포와 최대 102mm 두께의 장갑을 두른 M26 “퍼싱” 중전차의 한반도 투입은 아군에게는 희망을, 적에게는 “공포의 사신”이 출현했음을 의미합니다. 

  당시 북한군의 주력전차인 T-34/85는 성능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차량이었지만 퍼싱보다는 떨어지는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속도는 T-34/85가 빨랐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은 퍼싱이 우세했거든요.


 

  M26 "퍼싱" 중전차는 M3 90mm 전차포와 102mm에 달하는 장갑을 보유하고 있어 T-34/85를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차병들의 훈련 수준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다양한 전술 개발과 실전경험을 기반으로 한 미군이 북한군을 압도했습니다. 

  M26 퍼싱이 낙동강 전선에서 활약하면서 북한군의 공격이 계속 좌절되자 8월 21일 밤, 다부동으로 대규모의 북한 기갑부대가 돌진해 들어왔습니다.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M26 퍼싱 전차 1개 중대는 몰려오는 T-34/85와 Su-76 자주포들을 정확하게 조준해 명중시켰는데 밤에 치러진 전투로 포탄의 궤적이 선명하게 비춰지다 보니 마치 볼링장에서 공에 맞은 핀이 쓰러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투의 별칭이 바로 “볼링 구장” 전차전이 되었죠.


  북한군은 다부동에서 T-34/85 14대와 Su-76 5대를 잃었고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면서 미 해병대의 M26 퍼싱 전차들도 활약하게 됩니다.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미 해병대의 M26 퍼싱은 육중한 장갑과 90mm 전차포를 이용해 상륙 제대를 엄호하며 시가지로 진입했고 17일부터 영등포 방면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을 위해 출동한 T-34/85들을 닥치는 대로 부쉈습니다.



 

  M26 "퍼싱"의 등장으로 T-34/85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 결과 북한군은 9월 20일까지 24대, 25일까지 12대( 총 36대! )의 T-34/85를 손실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합니다.   북한군 전차부대가 지리멸렬하자 9월 21일, 낙동강 전선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대 반격이 시작되었고 그 선두에는 M26 퍼싱이 있었습니다. 

   M26 퍼싱을 선두에 세운 미군은 출발 5일 만인 9월 26일, 수원에서 인천상륙에 성공한 미 해병대와 조우했고 북한군은 38도선을 넘어 패주하기 시작했죠.  

  1950년 10월까지 북한군은 38도선 이남에서 239대의 T-34/85를 손실했는데 개전 당시 보유한 수가 242대였으니 사실상 전차부대가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반면 M26 퍼싱의 손실은 극히 적은 수준이었고 전선에는 200대가 투입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M26 퍼싱은 북진의 선봉으로 북한으로 진격해 들어갔고 10월 13일, 금천에서 T-34/85 8대를 격파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M26 퍼싱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의 혼란 속에서도 아군을 엄호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만약 퍼싱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은 중공군의 포위 전술에 말려들어 혹독한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비록 6·25 전쟁이 종전된 이후 후속 전차인 M47 “패튼”의 등장으로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차가 되었지만 이 차량의 활약으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보전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M26 "퍼싱" 중전차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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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순간 2대의 미군 전차로부터 발사된 포탄이 선두에서 질주하던 T-34/85에 명중했고 전차는 그 자리에서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순간적으로 경악한 나머지 T-34/85는 퇴각을 감행했지만 2번째 차량 역시 일격에 파괴되었고 최후의 1대는 공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전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3대의 적 전차를 무찌른 거대 전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미군이 투입한 M26 “퍼싱(pershing)” 중전차였습니다.

  15. Bookmarking Post 2013.05.28 04: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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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how to be a model 2013.07.15 02: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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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direktlån 2013.09.11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 운용된 T-34/85에 맞서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18. The Panorama 2013.10.02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

  19. Ideas for successful Silent Auctions 2013.10.24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군은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까지 밀려나고 맙니다.

  20. The Hillford 2013.10.28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지만 끝내 저지에 실패하고 낙동강

  21. Auctions for fundraising 2013.11.18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라는 천연의 장애물을 의지해 격렬한 사투를 벌였고 북한군은 T-34/85를 앞세워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