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0.19 돌출부에 대한 단상 (11)
  2. 2010.08.25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 [ 下 ] (7)

돌출부에 대한 단상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10.19 08:49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선 이북의 영토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현재 미치지 못하는 미수복지역입니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아쉽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지역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지방의 DMZ은 여타지역과는 달리 상당히 북쪽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휴전당시에 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이처럼 이 지역이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되는 최북단으로 남게 된 데는 한미 지휘관간은 믿음과 신뢰 때문이었습니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의 DMZ이 북쪽으로 올라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1951년, 중공군의 몇 차례에 걸친 대공세 이후 미국이건 중공이건 서서히 휴전을 염두에 두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길항이 있었으나 전선은 현재의 DMZ부근에서 거의 고착화되었는데, 그런 이유는 최대한 전선을 짧게 단축하는 것이 우리도 그렇고 공산군 측도 유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덧 전쟁은 서서히 고착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전선에 참호가 깊게 파여지고 고착화 되었다면 그것은 공격보다 방어를 염두에 둔 배치인데, 이 경우 전선이 길게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이를 방어하는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볼 때 크게 2군데의 최단 횡단점이 있는데 하나는 동안만과 서한만사이의 북위 39도 50분 지점과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38도선 지점입니다.

[북쪽의 횡단점은 전략상 공산군 측이 수용하기 곤란하여 두개의 횡단점 중 군사적으로 대치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은 한강하구에서 속초에 이르는 선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성지역을 북에 넘겨주고 휴전을 하게 된 것은 아군의 공격을 공산측이 훌륭히 방어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강-임진강 하구를 방어선으로 삼고자하던 전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암묵적인 와중에서 볼 때 고성지역의 돌출부는 사실 조금 특이한 지역입니다.  만일 가칠봉에서 간성읍까지 최단거리로 DMZ이 형성되었다면 전선의 길이를 약 20Km 정도 단축하여 방어에 유리 할 것이고 이점은 북측도 알고 있었습니다.

[개성은 도심 뒤에 고지가 있어 군사적으로 이곳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그 만큼 휴전선은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형성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이 북으로 돌출하여 자유대한 지역으로 편입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1951년 6월 이후 동해안에서 작전을 벌이던 부대는 백선엽 소장이 지휘하던 국군 제1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태백산맥 서쪽과는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곳이었는데 국군이 전담으로 방어하다보니 타 전선에 비해 화력지원이 충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훗날 국군 최초의 대장에 오른 백선엽]


  포병전력의 확충이 여의치 않음을 고민하던 백선엽은 미 제7함대 제
5순양분대의 사령관으로 동해에서 작전 중인 알레이 버크(Arleigh Burke 1901~1996) 소장을 찾아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의를 즉시 받아들여 국군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거침없이 함포 사격을 지원했습니다.

[알레이 버크 그 또한 해군대장까지 진급하였다]


  요청이 있으면 이유불문, 시간불문, 장소불문하고 즉각적으로 지원사격이 이루어졌을 만큼 두 장군은 궁합이 잘 맞았고 이러한 버크제독을 백선엽이 국군 제1군단의 포병사령관이라고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이 덕분에 국군이 전담하던 동해안은 공산군이 감히 탄막을 뚫고 내려올 생각을 못하였고 그 결과 동해안의 휴전선은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해상포격은 국군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아군을 흥남으로 몰아넣고도 중공군이 배타고 후퇴하는 유엔군의 모습을 손가락 빨고 쳐다만 보았던 이유는 미 해군이 해상으로부터 쏟아부어대는 엄청난 탄막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전쟁 내내 공산군은 해상포격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할 수단이 전무하다시피 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격을 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고 반대로 아군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호막 노릇을 하였습니다.


[최초의 이지스 구축함인 DDG-51 알레이 버크]


  호인이었던 버크는 전후 대장으로 진급하여 미 해군 작전부장을 역임하였고 이후 미 해군발전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미 해군은 버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 해군 사상 최초로 생존해 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 건조한 구축함의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바로 최강의 전투함으로 평가받는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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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武運長久 2010.10.19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괴와 중공은 당시에 미주리같은 미국의 거함들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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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 해안선을 따라 진격을 하는데 많은 애로 사항을 겪었고 반대로 아군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보호막 노릇을 하였습니다.

  10. http://www.estyma.eu/ 2014.04.26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 대한민국의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최북단 영토는 함경북도 온성군이 아니라 강원도 고성군입니다.

  11. http://motowynajem.pl/ 2014.04.26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함포지원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습니다.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던 버크제독은 백선엽의 제

미스터리에 숨어있던 그 시절의 자화상 [ 下 ]

생생! 6·25/August의 군사세계 2010.08.25 09:40

 

  공식 발간된 전사를 살펴보면 1950년 6월 24일 0시를 기해 내려진 비상경계령 해제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는 합니다.  첫 번째로 장기간의 경계 태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별다른 도발 징후가 보이지 않았던 반면 정치적인 평화공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우선 들고 있습니다.  북한은 평양에서 활동하던 민족주의자 조만식과 남로당의 거물 간첩인 이주하, 김삼룡의 신병을 맞교환하자는 제의처럼 다양한 각종 평화선전 공세를 펼쳤습니다.

[북한의 민족지도자였으나 공산당의 탄압을 받은 조만식]


  사실 6·25전쟁 직전까지 38선 일대에서는 상당 규모의 국지전이 종종 벌어졌지만 오늘날 DMZ같은 팽팽한 긴장상태가 항상 유지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38선의 경비가 강화되기는 하였지만 남북 간의 통행이나 통상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가 아니었을 만큼 국민들도 설마 동족의 가슴에 북한이 총을 쏘겠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군 당국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습니다.  따라서 장기간의 경계태세의 계속 유지가 힘들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6·25이전 최대의 국지전이었던 송악산전투 기록화]


  두 번째로 병사들의 피로 누적주장입니다.  당시 10만도 안 되는 병력으로 후방에서 공비토벌도 하고 38선 일대를 철저하게 경계하기는 사실 무리였는데, 특히 전방의 제1, 6사단 같은 경우는 담당하는 38선 구역만 해도 80~90Km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으로 계속하여 비상경계 태세를 유지하기는 상당히 힘들었고 이 때문에 부득불 중간 중간에 경계령 해제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전쟁 직전 38선을 시찰하는 덜레스 미 국무부 차관보]


  그런데 상식적으로 판단할 할 때, 단지 경계령이 해제되었다고 장병들의 휴가, 외출, 외박이 일거에 허용될 필요는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6·25전쟁 발발 당시에 일부 부대는 거의 절반 정도의 병력이 영외에 있었을 만큼 경계령 해제와 더불어 전군에 걸쳐서 동시에 대규모의 장병들이 부대를 벗어났습니다.  어쩌면 비상경계령 해제 자체 보다 이러한 사실이 미스터리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 전쟁 전 국군의 모습 ]

  이와 관련하여 거론되는 주장이 농번기 일손 부족입니다.  당시 38선 이남의 최대 산업은 농업이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의 생존에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양력 5~6월은 농사에 가장 바쁜 시기인데 특히 당시는 거의 대부분을 인력에 의존하고 있었고 대다수 장병들도 농촌 출신이어서 일을 거들어야 할 절박성이 컸습니다.  따라서 국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경계령을 해제하고 병사들의 외출 외박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948년 서울 근교 농촌의 가을걷이 모습]


  그런데 이와 더불어 더욱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군량미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고, 6·25전쟁 발발 당시의 미스터리한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그리 중요하게 평가된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을 요소라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양력 6월이면 보릿고개가 절정에 다다른 때로 온 국민이 굶주림에 배를 움켜쥐던 시기였고 군대라고 결코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보릿고개는 온 국민이 고통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관련 자료를 보면 전쟁 발발 당시에 부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보유 군량미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발간한 6·25전쟁사에 따르면 국군 제6사단은 1950년 3월이 되었을 때 이미 보유한 알곡은 전무한 상태였고, 비상식량도 하루치에 불과한 약 700상자의 건빵뿐이었다고 나와 있는데, 여타 부대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가난은 6·25전쟁을 반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따라서 호구지책을 해결하라고 병사들을 병영 밖으로 적극 내보내고는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나라의 궁핍했던 군대의 자화상이었고, 우리의 선배들은 그렇게 굶주린 상태에서 도발을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미스터리라는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오늘날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전쟁직전의 비상경계령 해제는 결론적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비참했던 우리시대의 자화상이 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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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L 2010.08.30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당시 한국군 식량부족에 대한것은 공감이 갑니다...6사단의 춘천전투 일화(증언?)에서도 우두산 부근 164고지부근에서 적의 공격을 한번 저지시키고(혹은 자주포 1대까지 나포했다고 함...) 고지에서 살구로 점심을 때웠다고 하였으니...

  2. 흑기사 2011.06.23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나 더 빼신 게 있으신데요...

    위의 주장들이 백번 옳다고 쳐도 장교 구락부 낙성식에 군 수뇌부들이 죄다 몰려 있었던 것은 어떤 (큰) 이유가 있는가요?

    병사들을 (위의 이유로) 휴가를 보내줬다쳐도 (그 중요한 때에) 지휘관만이라도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면 초전 대학살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또 그 장교 구락부 낙성식에 거물급 간첩이 관련되어 있다고 하던데 이 또한 연구하셔야 되지 않을까요?

  3. 실버스타 2011.08.05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상경계령 해제와 땐스파티는 미 군사고문단장 직무대리인 라이트 대령이 채병덕 참모총장을 종용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당시에도 소문이 파다 했습니다.

    라이트 대령은 걸핏하면 헨리 대령이라는 명찰로 바꾸어 달았기에 육본 정보국에서 라이트 대령의 신변 조사도 했습니다.
    라이트 대령은 라이트 형제중 동생 오빌 라이트의 후손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 냈어요...

    이로 인해 미국이 남침을 유도했다는 음모설이 생겨 났지요.

    미국 정부는 남침을 유도하지 않았습니다.
    단 맥아더가 남침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본국으로 가는 남침 정보를 모두 차단하고 )
    국군의 전력을 떨어뜨려 남침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든후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 수퍼맨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2년후 대통령에 출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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