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34전차'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8.08 북 Su-76 자주포와 미 해군 함정의 대결 (10)
  2. 2010.07.19 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1] (18)
  3. 2010.02.03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8)

북 Su-76 자주포와 미 해군 함정의 대결

생생! 6·25/울프독의 War History 2011.08.08 16:58

 6ㆍ25전쟁 초기, 북한군 침략의 가장 선두에 섰던 무기가 T-34 전차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T-34 전차의 보전 협동 공격 모습]


 초기 빈약한 국군에게 마왕같은 위력을 발휘하던 이 전차도 낙동강 방어전에서는 볼품없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여 국군의 3.5인치 로케트 전차 사냥조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지만, 김일성이 자기 동서 유경수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던 105전차여단의 T-34 전차는 서울 점령의 주역 노릇을 했었다. 그런데 북한군에게는 T-34 전차라는 주역을 따라 조역 역할을 했던 궤도 전투 차량으로 SU-76 자주포가 있었다.

[옥산포에서 SU-76 자주포를 노획한 국군은 북한 전차병이 조종사들이 쓰는 비행모를 썼다고 했는데 이는 소련제 가죽 전차병 헬멧이다.]


 76mm의 포를 장착하고 4명의 승무원이 운용하는 이 침략의 조연은 한반도에서 주연보다 훨씬 실망스런 연기를 했다. SU-76 자주포는 개전 다음날 춘천 옥산포에서 국군 7연대 1대대에게 한 대를 노획당해서 6ㆍ25전쟁 전사의 서막에 나왔었다.

 서울 점령에 앞장섰던 T-34 전차는 그런대로 밥값을 했지만 6월 27일과 6월 28일, 북한군 7사단의 SU-76 자주포 11대가 홍천 북방 말 고개 전투에서 대전차 무기도 제대로 장비 못한 6사단 19연대와 2연대의 합동 공격에 모두 거덜나는 대 피해를 입었다. 선두와 후미의 4대가 파괴되자 앞뒤가 막힌 중간 대열의 7대의 승무원은 모두 하차, 도주하여 11대가 전량 격파당하는 망신스런 패배를 당했던 것이다. 이는 6ㆍ25전쟁중 SU-76 자주포가 당한 최대의 피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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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고개 전투에서 북한군 7사단, 12사단 등 부대명칭을 혼란스럽게 말하고 있는데 7사단이 맞다. 7사단은 안동 점령 후에 12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전 우가 지휘하던 7사단은 전원 조선족 부대로서 중부 공격 북한군 사단중에서 최강 사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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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76 자주포]


 SU-76 자주포는 한미 해병의 서울탈환작전 때도 최후까지 서울시에 남아서 저항하던 기갑차량으로 등장한다. 육상전에서 빈약한 이력서를 쓰던 SU-76 자주포가 미 해군의 6ㆍ25전쟁 전사에는 기습의 한방을 먹인 당찬 녀석으로 나온다. SU-76 자주포가 사격해서 대파시킨 목표는 미 해군 함정이다.

 북한은 남침을 급히 서두르느라 미군의 개입을 염두에 둔 여러 준비를 제대로 못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해안 방어 포진지들이다. 북한은 개전 초 몇 달은 해안선 앞 1-2km 내에 유유히 떠다니는 UN군 함정들을 구경만 했었는데, 해안포대를 준비하여 인천상륙작전에서 미 해군 함정에게 첫 탄을 먹이게 되었다.

 한편 동해안에서는 해안 포대 준비가 늦어져 1950년 12월 23일에 첫 탄이 날아갔고, 당한 쪽은 미 구축함 Charley.S.Sperry[DD-697]함이었다.

[구축함 Charley.S.Sperry 1945년 5월 11일 치열한 오키나와 상륙전의 역사적 한 컷에 등장한다. 가미가제 특공기에 당한 미 항모 벙커 힐의 승조원을 구하기 위해 항모에 접근하여 있다.]


 성진 부근에서 세발을 맞았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고 함정의 피해도 경미하여 일본 사세보에서 수리하여 동해안으로 다시 복귀하였다. 이 구축함은 북한군과 중공군이 꾸준히 그 세력을 늘려온 해안 포대의 화력에 당한 81척의 미 함정중 최초의 함정이었다.

 1951년 소해 구축함 톰슨[DMS-38]은 한반도 북쪽 성진항에서 해안 목표에 40밀리 보포스 기관포 사격을 위해 접근했다가 은신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4대의 SU-76 자주포가 포격을 가하여 13발이나 명중탄을 맞았다. 톰슨은 화력을 총동원하여 응전하면서 외해로 대피했지만 3명의 전사자와 4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소해 구축함 톰슨 [DMS-38] - 1,630톤]


 육군의 기갑차량과 해군의 전투 함정이 맞붙는 육ㆍ해의 대결은 아주 드물다. 6ㆍ25전쟁 중에는 원산항에서 미 구축함에게 중공군의 T-34 전차가 도전하였다가 5인치 함포의 세례를 받고 도주 한 일이 있었지만, 그 뒤 미군이 싸운 월남전에서는 이런 기갑과 함정의 대결은 없었다. 성진에서의 포격은 SU-76 자주포가 이 한반도에서 세운 최대의 전과이지 않나 생각된다.

 SU-76 자주포는 이 사건 뒤에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졌다. 한반도 중앙에 전선이 고착되어 더 이상의 기갑전은 없었고, 또 개전 이래 SU-76 자주포의 한심한 성능에 북한이나 중공이 전선 노출을 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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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에게 마왕같은 위력을 발휘하던 이 전차도 낙동강 방어전에서는 볼품없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여

  8. information 2013.10.14 04: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우가 지휘하던 7사단은 전원 조선족 부대로서 중부 공격 북한군 사단중에서 최강 사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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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고도 무모했던 반격작전[1]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7.19 08:33
  개전 초기 한국군을 공황상태로 몰아간 북한군의 T-34/85
  전차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한국군을 상대로 북한군 전차부대는 자신의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군에게 있어 6월 25일은 치욕의 날이자 절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는 하루입니다.
  이 날 새벽 4시 30분을 기해 암호명 "폭풍"으로 38도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 2개 군단의 일제 공격준비 포격이 시작됨과 동시에 T-34/85와 Su-76 대전차 자주포를 앞세운 보병들의 진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특히 오전에 개성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함락된 데 이어 포천마저 함락됨은 물론 밤 10시에 동두천까지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함락되면서 한국군 지휘부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전차라는 무기를 상상할 수도 없었던 한국군은 졸지에 T-34/85의 무한궤도에 참혹하게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너무도 참담했던 6월 25일이 지나고 26일 오전 1시가 됐을 때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군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 야전 사령부에는 세 명의 '별'이 모여 있었습니다.
  바로 총참모장 채병덕 소장, 제2 보병사단 "노도부대" 사단장 이형근 준장, 그리고 제7 보병사단장 유재흥 준장이 그들이었죠. 
  한시가 급한 시각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바로 전면적인 붕괴가 시작된 중서부 전선의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채병덕 총참모장은 제2, 7 보병사단장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제7 보병사단은 1연대와 18연대를 병렬해 덕정에서 38도선 방면으로, 2 보병사단은 5연대로 축석령에서 포천을 향하여 26일 미명을 기해 역습하시오.” 

  무모하기 그지없는 반격작전을 지시한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
  이는 정말 정상적인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내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현 위치에서 방어전을 펴는 것이 아니라 적을 향해 역습을 가하라니!
  그야말로 화약을 안고 화로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죠.
  후에 육군본부 작전 명령 제91호로 공식 문서화된 반격작전의 개시 시간은 6월 26일 오전 8시로 최종 공격 목표는 급격하게 붕괴된 38도선의 회복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공격을 진행 중이라 적잖이 애를 먹고 있던 북한군에게 있어 한국군이 제 발로 진지에서 걸어나온다는 것은 행운 그 자체였습니다.
  문제는 당시 한국군이 제대로 된 반격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전력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한국군 제7 보병사단은 이미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안 그래도 2개 보병연대만으로 격전을 치르는 통에 전력이 급격히 감소되었고 특히 제1 보병연대의 경우 동두천이 25일 밤 10시 무렵에 함락된 후 가까스로 수습된 잔여 병력으로 재편성을 진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육군본부는 부랴부랴 수도경비사령부 예하였던  제18 보병연대( 현 제3 보병사단 예하 "백골부대" )를 제7 보병사단에 배속시켜 반격작전에 나서도록 지시했습니다.

  오늘날 동부전선의 제1 군 예하로 철통 철책경계에 임하고 있는 제7 보병사단 "칠성부대"
  그러나 개전 초반 이렇다할 활약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실상 사단이 궤멸되고 마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취재 협조 : 육군 제7 보병사단 5 보병연대, 필자 제공 )
  하지만 의정부는 그나마 상태가 좀 나은 경우였습니다.
  리영호 소장이 지휘하는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의 주력이 배치되어 있던 포천은 이미 전면적인 붕괴가 임박했는데 우선 제7 보병사단 9 보병연대가 사실상 와해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전선을 이탈, 25일 오전 11시를 기해 광릉 방면에서 간신히 잔여 전력을 추스려 후퇴를 하려던 찰나에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 변경되었던 제3 보병연대를 증원한 것이었죠.
   원래 제3 보병연대는 제7 보병사단 예하부대였다가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이 변경되었는데 다시 모 부대로 돌아온 셈이었습니다.
  이후 제3 보병연대는 현재까지 제7 보병사단 예하 부대로 강원도 화천군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포천의 상황은 의정부보다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육군본부는 제2 보병사단 5 보병연대를 추가로 투입시켜 이형근 준장의 지휘 하에 북한군 제3 보병사단의 진격을 저지하는 한편 반격에 나설 것을 지시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때 제7 보병사단에 증원된 3, 5 보병연대가 현재도 사단 예하 부대라는 것입니다.

  6월 25일 하루 동안 육군본부에서는 전선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육군본부의 결정 및 채병덕 총참모장의 명령을 수령한 양 사단장은 서로 상이한 반응을 보였는데 제7 보병사단장 유재흥 준장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안 그래도 자신의 사단 예하 2개 보병연대가 궤멸 직전의 타격을 받은데다 원래 자신의 예하부대인 제3 보병연대를 돌려받는 것은 둘째로 치고 제2 보병사단 병력까지 증원된데다 개전 초반의 붕괴된 전선을 회복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제2 보병사단장 이형근 준장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5연대는 가용 병력이 겨우 2개 대대에 불과합니다. 2개 대대만으로 적 1개 사단에 역습을 감행한다니,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단 말입니까? 현재로서는 조금만 더 현 위치를 사수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 일찍 16연대와 25연대가 도착할 것입니다. 이 부대들이 완전 배치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때 반격을 감행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전장에서 병력을 축차 투입시키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소이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전선에서의 반격이라는 것은 후방에 충분한 기동 예비전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정설입니다.
  당시 육군본부의 결정은 전선에 크나큰 파국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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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7.19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퍼싱의 군사이야기를 연재 중인 만슈타인입니다.

    본 포스트는 연재물로서 총 3회 분량으로 계획되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라도 답변을 남겨주시면 성심성의껏 답해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2. 강효섭 2010.07.1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님, 언제나 멋진 포스트 잘 보고 갑니다.

    개전 초반에 장군들끼리 저런 알력 다툼이 있었다니....

    적전에서 기막힌 추태 한 판 벌였네요 -_-;;

    • ╋만슈타인╋ 2010.07.20 18: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이런 알력다툼 외에도 5.16 군사혁명과 12.12 군사반란이라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군님들의 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오늘날 대한민국 육군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김수민 2010.07.19 2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은 포천의 승진훈련장 같네요 ^^

  4. 조유진 2010.07.19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퍼싱님, 글 잘보고 있는데요

    사진을 클릭해도 크게 보기가 안되네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5. opohobag 2010.07.20 16: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채병덕 의 색깔을 의심해 볼만합니다

    6.25 발반 전후해서 나온 여러가지 명령에 의혹이 가장 많습니다

    무능을 가장한 利敵명령...이랄까

  6. 박소영 2010.10.02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막무가내로 몸으로 막으라는 명령은 정말 충격적인 것 같네요

  7. 김창원 2010.10.02 2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군된지 얼마되지 않은 한국군의 수준이 보여준 한계였습니다

  8. 이소현 2010.11.09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초기 너무나도 혹독한 희생을 치른 장병들에게 묵념을

  9. 김종관 2010.11.09 1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후속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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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이 잘못 투하한 조명탄에 노출된
    영국 얼스터 대대가 중공군의 공격에 맞서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생생! 6·25/북한의 남침에서 휴전까지 2010.02.03 11:46

11. 스미스 부대의 붕괴


  1950년 6월 30일, 결정이 나자마자 곧바로 미 지상군의 한반도 투입이 이루어졌을 만큼 미국의 6·25전쟁 개입은 상당히 빨랐습니다. 일본 점령군으로 임무 수행 중이던 미 제8군 예하부대 중 한반도에 가장 가까운 규슈(九州)에 주둔하던 미 제24사단에게 제일 먼저 출동명령이 하달되었는데, 제8군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은 시급한 상황을 고려하여 제24사단에게 우선 대대 규모의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여 부산으로 공수시키고 난 후 뒤이어 사단 본대를 한반도로 전개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항공편으로 출발하는 스미스 부대]


  제24사단장 딘 소장은 예하 대대 중 가장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판단한 제21연대 제1대대에 포병대와 약간의 지원부대를 증원시켜 특수임무 부대를 편성하였고, 이를 대대장 스미스(Charles B. Smith) 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특수 임무대(Task Force Smiths)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1일 14시경 수송기편으로 스미스 부대가 부산에 도착함으로써 미 지상군의 역사적인 6·25전쟁 참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 시민들은 이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미군이 전세를 즉시 역전시켜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열차편으로 북상한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03시에 오산 북쪽 경부가도 상에 있는 교통요지인 죽미령인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던 중, 명령이 하달되자 당일 부대를 편성하고 다음날 부산에 도착한 후 대전과 평택을 경유하여 죽미령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스미스 부대원들의 전투준비는 당연히 미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년 전 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경험 때문에 미군들은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스미스 부대원들은 ‘북한군은 미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만으로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는데, 이러한 넘치는 자신감이 만용임이 밝혀지는데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전역에 도착한 스미스 부대]


 
스미스 부대가 빗속에 허둥지둥 진지편성을 마치자마자 8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죽미령을 향해 다가오는 북한군의 행렬이 관측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군은 한국군처럼 북한군 전차에 대한 공포는 없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사격하기에 가장 좋은 지점까지 다가오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7월 5일 07시 30분, 자신만만하게 75밀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하여 북한 전차를 명중시키면서 한반도에서 미군과 북한군간의 최초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타격을 입은 북한군 T-34전차는 잠시 멈칫했을 뿐 계속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미 보병들은 뒤에 배치된 제52포대로부터 지원 화력을 받았으나 적 전차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미군을 보기만 해도 물러갈 것으로 생각했던 북한군이 생각과 달리 전차를 앞세워 전선을 돌파함과 동시에 보병을 좌우로 신속히 산개시켜 미군진지를 일순간 포위 돌파하면서 스미스 부대의 방어선은 순식간 붕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만만했던 상황은 순식간 당혹으로 바뀌었고 6월 25일 국군들이 느꼈던 공포를 미군들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후퇴하는 국군을 한심스러운 듯 바라보던 스미스 부대원들
하지만 그들도 6시간의 전투 후 이 대열에 동참합니다 ]


  북한군의 진격 속도는 미군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을 만큼 상당히 급속하였습니다. 죽미령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포병대조차 갑자기 정면에 나타난 북한군 전차에 짓밟혀 버려 산산조각 나 버렸을 정도였습니다. 불과 반나절의 전투로 스미스 부대는 440명 중 150여명이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고 포병대의 야포를 비롯한 모든 중화기는 망실되었습니다. 미군과 북한군의 역사적인 첫 전투는 이처럼 미군의 참담한 패배로 끝이 났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미군들은 후퇴하는 국군과 나란히 열을 맞추어 남쪽으로 도망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초기에 벌어진 미군의 참담했던 패배는 단지 이제부터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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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기자부대 2011.01.01 2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력과 정신력도 문제였겠지만 빨갱이가 얼마나 잔악한 놈들인지 그 실체를 정확히 몰랐던 데 기인한 것입니다.

  2. Haberdashery 2011.10.30 0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번도 없이 목숨을 내걸고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있으니 또한 고마울따름입니다.

  3. premier automobile insurance companies 2012.05.08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는 오랫동안이 트랙의 대형 팬 있었어. 당신이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하고보고 드리겠습니다. 정말 이전을 고려 제작하고 있습니다

  4. top auto insurance companies 2011 2012.05.08 1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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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top car insurance companies 2011 2012.05.08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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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emergency essentials 2012.10.21 15: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력과 정신력도 문제였겠지만 빨갱이가 얼마나 잔악한 놈들인지 그 실체를 정확히 몰랐던 데 기인한 것입니다.

  7. electric fence for dogs 2012.12.03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력 증강은 유엔 해,공군의 후방 차단으로 거의 불가능하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유엔

  8. rattan indonesia 2012.12.30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원 트리트먼트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만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