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19 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13)
  2. 2010.01.06 UN 참전국 현황 및 피해 (41)
  3. 2009.12.29 왜 용어가 「6·25전쟁」인가? (6)

너무 싱거운 2차 서울 탈환

생생! 6·25/퍼싱의 군사 이야기 2010.08.19 09:16


  불과 3명의 적병을 사살하고 서울을 탈환한 제1 보병사단  오늘날에도 국토방위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6·25 전쟁 기간에 치러진 수많은 전투 중에서 1950년 9·28 서울 수복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비해 51년 3월 15일에 있었던 제2차 서울 수복작전은 비교적 적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50년 9월의 1차 수복작전이 수만 명에 달하는 적의 격렬한 저항을 극복한 후 이뤄졌던 데 반해, 2차 수복작전은 좀 싱겁게 끝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1951년 3월 14·15일에 한국군 제1 보병사단 "전진부대"의 선봉인 제15 보병연대가 서울에 입성한 이후 적의 경미한 저항만을 받았을 뿐 이렇다 할 치열한 교전없이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서울을 함락한 이후 중앙청 앞에서 승리의 퍼포먼스를 벌이는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 
  이 작전은 미 제8군이 3월 7일부터 발동한 리퍼작전(Operation "Ripper")의 일환으로 실시된 것인데 당시 제8군사령관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이 작전을 통해 중부의 미 제9 군단 예하 25 보병사단이 양수리와 팔당 부근에서 도하작전을 전개해 서울 동측을 위협하는 한편 한강 남안 진지를 확보하고 있던 미 제1 군단( 한국군 제1 보병사단·미 제3 보병사단)을 투입시켜 큰 피해 없이 서울을 탈환하려 했습니다.
  1951년 3월 7일 전 전선에서 UN군의 리퍼 작전이 개시되자 중·조연합사령관 펑더화이는 미 제25 보병사단의 도하와 중동부 지역에서 감행된 미 제10 군단과 한국군 제1 군단의 공격에 대해 지연전으로 대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선을 시찰하고 있는 펑더화이. 리퍼 작전이 개시될 시점에서 펑더화이는 현재 극심하게 소모된 전력으로 반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파악했고 신속한 철수 지시를 하달합니다.
  당시 베이징 방문 이후 막 전선 사령부에 복귀한 펑더화이는 3월 9일 한강 남안 진지에 있던 제38군의 1개 보병사단과 제50군의 1개 보병사단에 한강 북쪽으로 도하에 성공한 미 제25 보병사단의 진격을 지연시키면서 철수할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3월 11일에는 베이징의 저우언라이에게 “우리 군은 그 동안의 전투로 전력이 너무 많이 손실되었습니다. 따라서 재편성할 시간을 벌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서울을 포기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후미 부대로 지연방어를 펼치면서 일선의 유생역량을 보존하고 적 주력을 흡수해 38선까지 진출하도록 합니다.”는 내용의 작전 의도를 밝히는 전문을 발송했습니다. 
  그의 전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시점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극도로 혹심한 손실을 입었다는 점입니다.
  아! 6.25 방문자 여러분 중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그와 테란을 통해 "인해전술"과 "화해전술"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흔히 저그하면 빠른 확장과 부화장, 3마리씩 생산되는 라바를 통한 압도적인 인해전술을 떠올리게 됩니다. 즉 중국 인민지원군을 저그족으로 보면 되는 셈이죠.
  반면 테란은 대량 생산능력 및 보병 전력이 취약하지만 대신 공장에서 생산되는 아크라이트 공성전차와 토르, 전투 순양함 등으로 대표되는 '화해전술'을 구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테란이 UN군이었던 셈입니다.
  실제 1951년 1월 말에서 2월에 걸쳐 매튜 리지웨이 대장은 부족한 병력의 열세를 강력한 화력으로 보완하는 '화해전술( 火海戰術 )'을 구사했습니다.
  안 그래도 추위와 적시에 보급을 받지 못해 허덕이던 중국 인민지원군은 인해전술을 감행할 때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포탄과 기관총탄, 폭격으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었고 서울을 함락시킨 후 한강 남쪽까지 진출하는 과정까지 누적된 수치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당연히 UN군의 리퍼 작전에 맞서 과거와 같은 대 반격을 감행한다는 것은 무리였던 셈이었고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히 철수하여 후방에서 전력을 재정비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1951년 1월 말부터 감행된 UN군의 맹렬한 공격은 오랜 국공내전 및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인민지원군의 정예병들에게 크나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펑더화이로서는 중국에서 추가적으로 증원부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현재 전선에 배치된 전력만으로 싸워야했던 한계를 고려한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죠.
  이에 따라 서울을 방어하던 북한군 제47 보병사단과 중국 인민지원군 제50군에는 3월 13일, 도시를 포기하고 철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들은 3월 14일까지 서울에서 완전 철수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있던 한국군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3월 14일 제15 보병연대장 김안일 대령에게 수색대를 투입시켜 한강을 도하한 다음 중앙청까지 진출해 적정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미 제3 보병사단과 제1 보병사단 15 보병연대는 치열한 시가전을 치를 것을 각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정 반대였죠. 솔직히 위 게임장면을 봐도 알 수 있듯 일선 군인 입장에서는 가급적 피를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수색대의 지휘를 맡은 제15 보병연대 3대대 9중대 3소대장 이석원 중위는 소대를 이끌고 마포 쪽에서 한강을 건너 서울역을 거쳐 중앙청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들이 중앙청까지 행군하는 동안 적의 저항은 하나도 없었고 사실상의 무혈입성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죠.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 다가갔을 무렵에야 처음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며 저항하는 적을 발견하니 사실상 싱겁게 서울에 진입해 작전을 수행한 셈이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수색대는 중앙청에서 적 기관총팀의 저항을 받았을 뿐 사실상 서울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석원 중위는 별다른 문제없이 전방 고착견제와 측방 타격조 우회 전술을 이용해 적 기관총팀 3명을 사살하고 중앙청에 입성했습니다.
  "뭐야, 이 녀석들. 전부 도망간 것 아냐?"
  이석원 중위와 수색대원들은 문자 그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좀더 수색한 결과 서울 시내에 적이 철수하고 없다는 정황을 확인한 후 저녁 무렵 강남까지 진출해 있던 연대 본부에 복귀했습니다.
  이석원 중위의 최종 보고를 접한 김안일 대령은 3월 15일, 예하 3개 대대 전체를 서울 시내로 진출시켰고 중앙청에 다시 태극기가 게양되었습니다.
  무혈입성하기는 했지만 이미 서울은 치열한 격전 끝에 완전 폐허가 되어 있었죠. 사진은 전화로 피해를 입은 숭례문의 모습입니다.
  1차 수복 당시에는 해병대가 그 몫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당당하게 1 보병사단이 그 역할을 수행한 셈이었죠.
  제1 보병사단장 백선엽 준장은 치열한 격전 끝에 탈환했던 평양과 달리 너무나도 손쉽게 무혈입성한 서울 탈환으로 기분이 영 찝찝했지만 아무도 희생되지 않았기에 장병들의 기쁨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습니다.
  물론 북한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요.
  펑더화이의 ‘서울 자진철수’ 결정 및 제47 보병사단이 서울에서 퇴각했다는 소식을 접한 김일성은 중국 측에 격하게 항의했지만 현실을 무시한 의견이었던 탓에 저우언라이에 의해 간단히 묵살당했습니다.
  결국 이 일로 김일성과 펑더화이는 1951년 5월 중순까지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은 채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제1 보병사단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서울을 완전 수복한 제1 보병사단의 활약은 오늘날에도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제1 보병사단이 탈환한 서울은 이후 중국 인민지원군의 맹렬한 대공세에도 끝까지 함락되지 않고 휴전을 맞이하며 오늘날에도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굳건히 건재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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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슈타인╋ 2010.08.19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준기님// 감사합니다.

    제2차 서울탈환작전은 중공군의 신속한 퇴각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작전을 마무리지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이번 탈환작전으로 서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전세에 중요한 국면으로 자리매김했다는데 의의를 둬야겠죠

  2. 강현구 2010.08.22 1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타크래프트Ⅱ : 자유의 날개 화면이네요. 울트라리스크와 히드라리스크 대군에게 쫓기는 테란군이라....

    딱 적절한 대조 같습니다.

  3. 김준기 2010.09.15 0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슈타인 님

    내가 김준기인데 위의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요.

    우리 아빠가 내이름으로 열어놓은 블로그인데
    거기에 링크까지 걸었군요.

    어처구니가 없네요.
    양심적으로 실고 싶으면 삭제하세요..

  4. 박소영 2010.10.02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지상군 페스티벌 2010에서도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뉴스 보니 서울에서 당장 내려가 보고 싶네요 ^^

  5. 코튼 맨 2010.10.02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렇게 국방부 블로그에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안타까워요 ㅠ

  6. 리산 2011.06.07 00: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951년 3월 9일경 한강도하에 성공한 미25사단이
    실제로 어디로 도하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

    일부 책에는 현재의 양수리(두물머리공원),
    전적비는 조안면 쪽에..

    어떤 책에는 덕소쪽이라고 하는데,

    3군데 모두 도하를 한건지, 궁금합니다.

    혹시 아시면 부탁드립니다.

  7. 용뿔 2011.06.23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소하지만, 오타지적입니다. '우뢰와 같이 쏟아지는' 에서 우뢰는 우레로 정정합니다.우레는 순수 우리말로 천둥이라는 의미입니다.

  8. 이민하 2012.03.25 19: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 뺏기고 뺏기는 ..북한 남한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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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트를 읽으면서, 먼저 일반적으로 20대들에게 친숙한 스타크래프트2를 인용하며 포스트를 해 주셔서 더욱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 포스트로 제 1보병사단의 활약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포스트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 자신부터라도 남은 군생활 동안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며 복무하겠습니다.

    충성 ! 상병 박성현 이었습니다.
    21sunghyun@naver.com

  13. Get more info about Luminix Power 2014.02.13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볼 수 있었는데, 각자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신 참전 용

UN 참전국 현황 및 피해

생생! 6·25/6·25전쟁 지원국 2010.01.06 22:03


참전국 현황



참전국 피해현황


※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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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bat herbal alami 2013.02.23 22: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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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clips 2013.05.16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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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ebay suspension 2013.06.13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모씨네요.거기에 동조한 채명신옹도 마찬가지고도대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양반이 장군 칭호 붙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

  12. investissement participatif 2013.06.16 2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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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전투파병국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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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지원국가도 포함해서 21개국으로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데서는 파병 16개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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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으로 의료지원국가도 포함해서 21개국으로 알아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데서는 파병 16개국으로 표시하는 곳도 있어서요.

왜 용어가 「6·25전쟁」인가?

생생! 6·25/우리고장 국방유적지 2009.12.29 16:39

 

왜 용어가  6·25전쟁 인가?


 『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에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6·25전쟁? 6·25사변? 한국전쟁? 어느 것으로 불러야 하느냐는 용어에 대한 것입니다.

  전쟁 발발 60여년이 되도록 용어통일이 안된 것을 보면 6·25전쟁이 얼마나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용어하나에도 많은 논란을 벌일 정도로 얼마나 섬세한지 알 수 있습니다.


  국방부와 정부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서 검토한 결과 6·25를 「6·25전쟁」이라고 통일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

 

 

80년대, 북한 국가로 인정 못해 ‘사변’으로 불러

    80년대 까지는 6·25사변으로 불리는데 큰 이의가 없었습니다.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쟁'과 '사변'을 구분하는 핵심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를 '국가'로 볼 것이냐의 문제였는데 당시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는데 이견이 크게 없었던 것이지요. 


<사전적 의미>

동란 : 폭동, 반란, 전기쟁이 일어나 사회가 질서를 잃고 소란해지는 일

사변 : ① “전쟁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이상의 무력이 사용되는 난리” 

         ② “상대국에 선전포고 없이 무력을 쓰는 일”

전쟁 : 국가 또는 그에 준하는 집단 간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 상대방의
         의지를 강제하는 행위 또는 상태


  UN이 한반도에서 유일의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국가는 '대한민국' 뿐이고 민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댄 북한은 반민족적 범죄 집단이기 때문에 국가간의 교전상태에 붙여줄 수 있는 '전쟁'이 아니라 '사변'이라고 명명했던 것입니다.


90년대 이후, UN 가입한 북한 UN 회원국 인정 불가피

   그런데 90년대 들어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냉전체제 붕괴로 인해 국제정세가 변했고 '91년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UN회원국으로서의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초기에는 남북한간의 대결이었으나 UN과 중공군이 개입한 6·25의 국제전적 성격을 제기하며 6·25를 '전쟁'이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힘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유엔의 참전 결의]


  또한 한편에서는 외국학자들의 책이 번역, 발간되면서 'Korean war'를 '한국전쟁'으로 번역한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전쟁'이 '6·25전쟁'에 비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용어처럼 인식되어 자주 사용되었고 지금도 자주 접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제3자 시각반영 우리 주체가 없는 용어

  그러나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정도로 인식되어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적당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이 한둘이 아닌데 유독 '6·25전쟁'만을 '한국전쟁'이라고 명명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겪은 고통의 역사인데 이것을 남의 나라 전쟁 이야기 하듯이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특히 북한은 여전히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국이 일으킨 전쟁' 같은 전쟁 주체가 모호해지거나 전쟁 책임이 뒤바뀌어 이해될 우려가 있는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는 조심스럽기까지 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국방부와 정부, 6·25전쟁으로 명명

이에 정부에서는 용어의 통일을 위해 90년대 이후 다각도로 검토하면서 「6·25전쟁」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90년대 : ‘6·25’ 관련 명칭 검토 필요성 제기(국방부 통일부, 교육부 행자부 등)

'97. 10월 : 관련부처 추천한 전문가 초청 명칭관련 학술세미나 ⇒ 6·25전쟁 잠정결론

'98. 6월 : 미 육군성, 2000년 한국전참전기념행사시 Korean war 공식 번역요청
              * 공식 검토 결과 「Korean war ⇒ 6·25전쟁」로 통보

'00년 : 국방부 주관 6·25전쟁 제50주년 기념사업시 공식명칭 ‘6?25전쟁’ 사용
           * 국무총리 주재 회의 시 ’6·25전쟁‘으로 명칭 통일(‘98. 9. 24)

'04.4월 : 교육인적자원부 학계 전문가 감수 거쳐 교과서 편수용어로 '6·25전쟁' 확정

'10년 : 6·25전쟁 제60주년 기념위원회 공식명칭으로 ‘6·25전쟁’ 사용  
 


  '98년도 미국이 한국전 참전 5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Korean war'에 대한 공식 번역을 요청 했을 때도 '6·25전쟁'으로 공식통보하였고 교과부에서도 모든 교과서 편수용어로 '6·25전쟁'을 확정하였습니다.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물론이고 국방부가 간행하는 각종 공식간행물도 '6·25전쟁'으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2월혁명'이나 러시아의 '10월혁명'같이 발발시점에 따라 특정사건을 명명하는 것은 인류의 오랜 습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건 발생일을 기준으로 명명한 '6·25전쟁'이 그나마 북한의 남침에 대한 역사인식과 우리 민족의 경험이 축적된 것을 반영하는 '객관적 명칭'이라고 보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6·25전쟁과 관련한 명칭은“어느 것이 맞고 틀리냐”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다만 학자가 아닌 일반 소시민으로써 그때 벌어진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호칭할 용어를 '통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복잡한 얘기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북한의 불범남침의 역사적 책임의식을 분명히 담고 있으면서 우리 국민정서와 관념에 부합한 '6·25전쟁'이라고 통일하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우리 국방부 사업단도 그래서『6·25전쟁 제60주년 사업단』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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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我幸行 2010.01.10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는 김성주의 난(亂)] 혹은 경인공란(庚寅共亂)이라 불러야 합니다.
    영어로는 Korean Civil War가 바른 표현이라 봅니다.

  2. 한국인 2010.03.14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성주의 난도 맞지만 그렇게 부르지 않는 이유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책임을 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윗글을 보니
    연세대 김명섭 교수님이 쓰신 "전쟁명명의 정치학"이라는 논문을 많이 참고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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